오늘은 하루 종일 울란바토르 시내를 걸어서 발길가는 대로 마음껏 돌아 볼 예정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서점을 돌아다니며 몽골 여행 가이드북을 찾아보았으나 한글로 된 책은 없고 영문판 론리 플래닛 외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여행지에서 그곳을 설명해 주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선입관 없이 그냥 보고 느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도 인터넷을 검색해 몽골이란 나라와 이 나라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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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시내 개략도<펌>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울란바토르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으로 '울란바토르'라는 표기는 몽골어가 아닌 러시아어의 독법에서 유래했다. 1923년까지는 “니슬렐후레 ”라고 불렸다. 중국어로는 우란바투오[烏蘭巴托]로 쓰며, 1924년까지 성벽을 뜻하는 쿠룬[庫倫]이라 했고, 유럽 사람들은 우르가라고 한다. 오르콘강의 지류인 툴라강 우안, 해발고도 1,300m의 초원성 고원에 있다. 동경106°55′12″, 북위47°55′12″에 위치하고 있어 기온은 여름에는 27℃까지 오르고, 겨울에는 -46℃까지 떨어지며 바다가 없는 대률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이룬다.
1649년 초대 활불(活佛)이 라마묘(廟)를 창건한 이래, 몽골의 라마교 본산으로서 발전하였고, 18세기는 러시아·청(淸) 양국의 중계무역지가 되어 더욱 번창하였다. 1911년 외몽골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고, 1921년 혁명으로 옛 라마교 국가가 무너지고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라마교적 색채는 거의 사라지고 겨우 절 하나만 남았다.
울란바토르 시의 역사는 1639년부터 시작된다. 처음 1639년에 지금의 으브르항가이 아이막(Өвөр хангай аймаг) 지역에 수도의 터를 잡아 1649년 초대 활불(活佛)이 라마묘(廟)를 창건한 이래, 몽골의 라마교 본산으로서 발전하였고, 18세기는 러시아·청(淸) 양국의 중계무역지가 되어 더욱 번창하였다. 1639년부터 1706년까지 으르그(Өргөө), 그리고 이흐 후레(Их Хүрээ), 1911년부터 1923년까지 니슬렐후레(Нийслэл Хүрээ), 마지막으로 1924년에 소집된 몽골 최초의 국가 대회의에서 니슬렐 후레를 울란바토르라고 개명할 것을 결정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국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의 중심도시다. 전에 울란바토르는 수많은 절과 건물, 게르 촌이 있는 도시였다. 지금은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90년 전에 이 도시에는 약 50,000명이 살았으나, 현재는 장, 단기로 체류하는 외국인과 국내 여행객을 포함하여 약 150만 명(2016년 추정)정도가 살고 있다. 몽골 전체 인구의 50%에 달하는 인구이다. 이 급격한 인구의 증가는 대부분의 서쪽지방 사람들은 실업과 집안의 가난, 혹독한 겨울 추위로 인한 가축의 동사(凍死) 등으로 수 천년된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의 이주 증가 때문이다.
1924년 울란바토르로 개칭하고 몽골의 정치·경제·문화면에서 새로운 중심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몽골 인구의 절반 정도가 수도에 모여 살고 있다. 중국 지닝[集寧]에서 러시아 연방 울란우데를 연결하는 철도 연변에 있다. 공업화는 1934년 러시아의 원조로 공업 콤비나트가 건설된 데서 비롯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피혁·제화(製靴)·모직물 등의 공장이 중국·체코슬로바키아 등의 원조로 그 면목을 일신하였다. 또한 식육·유제품·제분 등의 식료품공업 콤비나트가 러시아의 원조로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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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돌아본 울란바토르 시내 지도
호텔 옆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깨우기가 미안해 나 홀로 울란바토르의 새벽 공기를 뚫고 거리로 나선다. 아침식사 후 아들과 시내 중심을 비롯해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하고 우선 울란바토르 기차역 쪽으로 간다. 기차역은 호텔에서 1km도 안 되는 곳에 있는데 거리 여기저기가 공사 중이라 철로 옆에 조성된 공원길을 걸어서 간다. 공원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여기저기 쓰레기와 건축자재가 쌓여 있고 공원 중간에 있는 길도 보도블럭이 깨진 곳이 많아 걷기에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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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역 앞에 마중 나온 차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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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역 새벽 기차에서 내리는 승객과 안내양
울란바토르 역에 도착하니 이제 막 열차가 도착해 밤새 열차를 타고 온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리고 있고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과 차량들로 역 앞 거리가 매우 혼잡하다.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곳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열차의 차량 문 앞에는 열차 여승무원이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하차하는 승객들을 돕고 있다. 하차하는 승객들은 야간열차에 시달렸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역한 가운데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들고 열차에서 내리고 있다.
몽골의 교통은 철도가 중심으로 주요 도시는 철도역을 따라 발달했다. 그 가운데서도 울란바토르 기차역은 이웃의 중국, 러시아의 각지에서 몽골로 들어가는 철도의 종착역으로 몽골의 관문 역할을 한다. 몽골은 바다가 없어 항구가 없기 때문에 기차역이 물류 및 교통의 중심일 수 밖에 없어 역 주변으로는 각종 상품들을 보관하는 물류창고가 밀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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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역사
기차 역사(驛舍)는 2층 석조 건물로 역사 중앙에 시계가 걸려 있는데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역사치고는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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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시 만난 라마교 사원
기차역을 뒤로하고 평화의 거리(Peace Avenue) 쪽으로 걷다보니 우측에 라마사원이 보인다. 도심에 있는 사원이라 매우 화려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모든 문이 잠겨 있다. 사원 이름이 써있지만 키릴문자에 까막 눈이라 사원 명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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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년 음악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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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음악가 동상 기단부에 새겨진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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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쪽 벽을 장식한 타일 벽화
평화의 거리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우측 공원에 기타를 연주하는 젊은 음악가 동상이 있고 동상 한 쪽엔 악보가 새겨져 있지만 역시 누구의 동상인지 알 수 없다. 구글지도를 검색해 봐도 공원이름 조차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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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중고 관광버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주유소 마당엔 한글로‘동진관광’이라고 쓴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데 아마 한국에서 쓰던 중고 관광버스를 수입해 그대로 쓰는 버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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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거리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들과 간단히 짐을 챙겨 시내관광에 나선다. 우선 어제 못 가본 서울의 거리(Seoul Avenue)부터 시작한다. 서울의 거리는 호텔에서 한 블록 위로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평화의 거리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의 거리는 1995년 10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조순 시장이 방문하여 서울과 자매결연을 맺고 이를 기념하여 울란바타르에 ‘서울의 거리’를 설치하기로 하고 서울시에서 조성해 1996년 7월 1일 몽골 독립기념을 맞아 나트사그도르지의 거리 1km 정도를 서울의 거리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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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실내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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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정(亭)
서울의 거리 한가운데는 서울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2002년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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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링인 체렌도르(Balingiin Tserendorj) 석상
석상 아래 동판에는 『Balingiin Tserendorj는 1868년에 일크 사비의 헤르렌 바르바이의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1911년의 민족자주운동의 유명한 지도자였다. 1912년에서 1915년까지 그는 복드칸 정부에서 외교각료를 지냈다. 그리고 1923년부터 1928년까지 인민정부의 최고의원이 됐고, 1928년 2월 13일에 죽었다.』는 내용이 몽골어와 영어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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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왕 민지도르진 칸도르(Chin Wang Minjiddorjin Khanddorj) 동상
동상 아래 동판에는 『1869년 태어난 그는 1911년 몽골 독립혁명의 주역 중 한사람이자 몽골 외교사의 창시자로 1915년 사망하였다. 2011년 그가 살던 집 앞에 동상이 세워졌다.』는 내용이 몽골어와 영어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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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 이희승 선생이 쓴 “홍익인간” 비석
서울정이란 정자로 가는 길엔 한글학자 이희승 선생의 “홍익인간”한글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누구의 글씨인지 왜 이곳에 비석을 세웠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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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국립극장
짙은 분홍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건물로 입장료는 25,000TG(한화 약 15,000원)인데 약 한 시간 반 정도 몽골 전통의 춤, 노래, 악기 등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고 마지막엔 몽골 전통악기로 대부분 이루어진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공연도 선보이며 한 번에 두 가지 음을 동시에 내는 몽골 전통의 발성법인 '흐미' 공연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오후에 다른 공연장에서 ‘흐미’공연을 보기로 해 그냥 통과한다.
윰자진 체덴발(Yumjaajiin Tsedenbal) 좌상
좌상 아래 동판에는 『Yumjaagiin Tsedenbal은 1916년에 웁스 아이막의 다브스 솜에서 태어나 1938년 재정부 대리인을 거쳐 1940년부터는 MPRP 의회의 General Secretary를 지냈으며 1952년 초이발상이 사후 수상으로 취임해 1984까지 장기간 수상을 역임하였다. 1991년 모스코바의 쿤세보 병원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