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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망교회 2023년도 시리즈 설교>
- 설교일자: 2023년 2월 26일 주일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자
이사야 62:1~12(6~7)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설교 목적: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예를 통해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예언자 이사야도 같은 종류의 메시지를 선포했음을 이사야 62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사야 62장에서 예언자는 왜 이런 말씀을 전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와 목적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정체성과 임무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하나님의 경륜에 붙들린 사람들
2.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기대
3.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자
4. 주의 백성들을 위해 길을 내고 걸림돌을 치우자
1. 하나님의 경륜에 붙들린 사람들
저는 우리 교회의 주보에 우리 교회의 목표가 무엇인지 새겼습니다. 이 목표는 우리 교회 벽면의 현수막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저의 모든 설교에는 이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목표를 제목으로 책을 출판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제가 이 목표에 미쳤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제가 이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 교회의 목표이자 제 인생의 목표, 그리고 성경 전체가 바로 이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고 제가 확신하는 그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경륜에 붙들린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륜에 붙들린다는 말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로구나!’하고 분명하게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신한 사람들은 사실 그 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할 때 성경을 인용하고 풀어줍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붙들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왜 부르셨는지를 이해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자신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을 시작하실 때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어느 안식일에 성경을 펼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을 읽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의 성경 두루마리를 꺼내서 한 곳을 찾으시고 그 구절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그 구절은 자기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또한 예수님이 자신의 사명으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그 구절은 구약성경 이사야 61장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복음 4:18~19, 이사야 61:1~2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을 읽으시고 이 말씀이 지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바로 자신이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사명선언이며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경륜, 곧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일생은 바로 이 구절을 성취하기 위한 변함없는 도전이며 순종과 헌신의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또 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열성파 유대인입니다. 열성파 유대인이란 하나님의 율법과 성전을 목숨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았을 때 아마 그는 ‘이전엔 내가 왜 이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하고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경륜이 전에 비밀처럼 숨겨졌다가 이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새롭게 깨달은 하나님의 경륜을 말로 설명하고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가 말로 설명하기 위해 찾은 곳은 유대인의 회당입니다. 그곳에는 안식일마다 성경을 읽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성경을 풀어주면서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자리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는 바로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풀어주면서 설명하는 사도 바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복음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고 배척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복음전도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을 때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첫번째 설교를 누가는 비교적 상세하게 정리했습니다(행 13:16~41). 사도 바울은 구약 성경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그 핵심 메시지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출애굽과 사사시대, 사무엘과 다윗 왕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셨으며 부활하셨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그 메시지의 절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행전 13:38~39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선포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에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은 포로에서 자유를 얻으며, 눌린 자가 풀려나며, 눈 먼 자가 고침을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기를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바로 그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경륜은 이스라엘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지나간 세월동안 인도하신 목적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해방과 자유, 그리고 회복의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 그리고 새 소망을 주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바로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이것을 전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기쁜 소식이며,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자신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알게 되었는데, 어찌 잠잠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또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예언자 이사야입니다.
2.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기대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62장을 보면,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예언자가 나옵니다. 그는 얼마나 강력하게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혔는지 마치 자신이 하나님과 한마음이 된 것처럼 분명하고 뜨겁게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기대였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나라와 동족을 바라볼 때 하나님과 같은 마음과 같은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인 예루살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예언자 이사야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62장에서 그는 이렇게 벅찬 가슴과 뜨거운 마음으로 자기 백성에게 설교합니다:
1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2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야훼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3 너는 야훼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자'라 하지 아니하고 너의 땅을 '소박데기'라 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임'이라, 너의 땅을 '내 아내'라 부르리라. 야훼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이다.
5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이사야 62:1~5, 공동번역개정판
이것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예언자 이사야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없고, 또 실패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는 자신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 복 없는 사람이나 재수없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박복한 인생이라고 했고, 요새 사람들은 ‘루저’(loser)라고 부릅니다. 루저라는 영어 단어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루저와 같이 새롭게 사용되는 말을 신조어고 부릅니다. 신조어가 오래 되면 일상어가 됩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 실리게 되지요. 루저라는 말은 아직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사전은 루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루저(loser): 말이나 행동, 외모가 볼품없고
능력과 재력도 부족하여
어디를 가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
이사야는 예루살렘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나 ‘소박데기’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소박맞고 돌아와서 처량하게 살면서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루저로 살아가는 인생, 바로 그것이 이사야 시대의 예루살렘이 자기를 이해하는 자아상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왜 이렇게 자신을 루저와 소박데기로 이해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나라가 현재 열강에게 짓밟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수의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정성껏 가꾸어 모은 곡식을 빼앗아 자신들의 먹거리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도를 심어 포도주를 만들어 보관하면 그 원수들이 그것을 빼앗아 자신들의 잔칫상의 음료로 삼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힘깨나 쓰고 유력한 사람들은 다 끌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노인들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었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존귀한 사람들인지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홀로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러나 예언자의 선포가 끝나면 사람들은 이내 다시 이전의 실망한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3.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자
예언자 이사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끊임없이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에 보초(파수꾼)를 세워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계속 하나님의 경륜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포는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간구였습니다:
6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 위에 보초들을 세운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아니하고
그들은 결코 잠잠해서는 안 된다.
"야훼를 일깨워드릴 너희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7 하느님께서 가만히 못 계시게
예루살렘을 기어이 재건하시어
세상의 자랑거리로 만드시게 하여라."
이사야 62:6~7, 공동번역개정판
예루살렘 성벽에 선 보초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백성을 일깨워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고 선포하며 일깨워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또한 우리 조상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때 시내산에서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제사장의 나라로 삼으시고 열방 위에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나라의 머리가 되고 등불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세상 나라들을 우리의 유업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세상 모든 나라들에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나타낼 횃불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 아닙니까! 주님, 이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제 일어나 우리를 위하여 일하여 주시옵소서!”
예언자 이사야는 성 위에 보초들을 세워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자는 말은 하나님을 깨워서 계속 일하시게 하자는 의미겠지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계속 외침으로써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자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쉬신다는 이야기가 나온 곳은 창세기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그 관리자인 인간을 세우신 후에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안식일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다시 일어나셔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을 맡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땅에는 다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마다 불법과 폭력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조 이전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돌아간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세상을 회복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일에 착수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사람을 부르시고 새 나라와 민족을 세우셔서 자신의 나라를 맡아 다스리도록 위임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창조의 연장이며 다른 말로는 새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다시 한번 생명으로 가득한 땅을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키시고 구원하셔서 열방을 비추는 횃불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어 달라고 예언자 이사야의 동역자들은 보초로 활동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 중에 성동구청 신우회원들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신우회 임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청의 복음화를 위해서 조해강 목사님을 잘 활용하겠습니다. 목사님을 좀 괴롭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분이 말하기를, ‘목사님은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하시니까 괜찮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우회원들은 구청의 복음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우회가 부흥하여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성동구청의 복음화와 신우회를 위하여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동역자들이 성벽에서 외치는 그 선포는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켜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이며, 동시에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끊임없이 들려주는 설교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외친 그 메시지는 하나님이 이 세상과 자기 백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면서 그 글에 동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바로 이것임을 확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죄 사함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억눌리고 움츠린 사람들이 다시 기를 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세상을 비추는 등불로 살 수 있게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모으시고 가르치신 제자들은 이제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렇게 보면, 교회는 옛날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처럼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고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선포하는 대리인들이며 제사장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며 아브라함의 복을 세상에 전할 사람들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횃불이며 주님의 손에 들려진 왕관이라고 한 말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의 등불이며 소금이라고 가르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예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엡 3:10). 그러니 교회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왕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약속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인사말로 사용하는 구호가 무슨 뜻인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사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합시다!’ 사실 하나님께서 항상 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아직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시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일은 인간의 배반으로 다시 황폐하게 된 세상을 회복하시는 일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을 회복하게 하시며 새로운 계시를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동역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도처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신 그 결과로 자유를 얻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그 백성들이 돌아오는 길을 닦으라고 동역자들을 격려합니다.
4. 주의 백성들을 위해 길을 내고 걸림돌을 치우자
나아가라, 성의 이 문 저 문을 지나 나아가라.
하느님의 백성이 올 길을 닦아라. 큰 길을 닦고 또 닦아라.
걸림돌을 치워라. 뭇 백성 앞에 깃발을 높이 올려라.
야훼께서 외치시는 소리, 땅 끝까지 퍼진다.
수도 시온에게 일러라. "너를 구원하실 이가 오신다.
승리하신 보람으로 찾은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수고하신 값으로 얻은 백성을 앞세우고 오신다.”
이사야 62:10~11, 공동번역개정판
하나님의 경륜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일어나 그 기쁜 소식을 전파합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일깨워주며 하나님이 쉬지 못하시게 늘 깨어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들려주신 약속을 기억하고 암송하며 노래합니다. 그리고 이제 일어나 이 문 저 문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돌아오는 길을 닦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이렇게 기도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게 하시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골로새서 4:3, 표준새번역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면 이 문이든지 저 문이든지 가리지 않고 나가서 전하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이유도 자신이 전하는 바로 그 복음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말합니까?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그것은 온통 하나님의 경륜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 이야기를 심판과 구원으로만 이해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축복과 저주의 이야기로 풀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규범이나 규칙 모음집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세상살이를 위한 처세술 교본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계획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입니다. 이 위대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현실의 문제에 갇혀 자신을 한탄하고 앉아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사야 62장은 바로 이처럼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을 들려주는 예언자 이사야의 설교입니다.
이 가슴 벅찬 소식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찬송하며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고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과 세상을 향한 소망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저는 하나님의 경륜을 만나는 사람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리 교회와 신우회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여기시는지 들려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기도하고 찬송하며 기뻐하게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마음에 차면 흘러서 이 문과 저 문으로 나아가 주님의 백성이 돌아오는 길을 닦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과 삶에서 걸림돌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데리고 오실 백성들을 맞이하러 나아갈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 저는 우리 교회의 표어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정했습니다. 주님이 속히 오십니다! 주님이 기도하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쉬지 못하시고 일하시면서 자기 백성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십니다. 주님은 밧모섬의 요한에게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20)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화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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