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열 처녀 비유 (슬기 있는 자, 미련한 자)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
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
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13)
오늘은 예수님께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 즉 신랑을 맞은 슬기 있는
것과 맞지 못한 미련의 것의 의미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슬기 있어서 예수님을
맞으신 믿음이 되었기를 참으로 바라고, 다만 이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믿음을 더욱 견
고히 하시는 기회가 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열 처녀 비유에 대해 보는
눈을 좀 열어드리고자, 비유의 배경을 좀 설명하겠습니다.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생각과 맞지
않는 비유 풀이들은 전부 다 바리새인 누룩이요, 서기관의 누룩으로 인간의 교훈들에 불과합니다.
만일 성영님이 오셔서 계신 영의 사람, 즉 성경이 열린 사람이면, 그 같은 예수님의 생각에 맞지
않는 인간의 교훈들은 듣기가 매우 거북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가졌다면 비진리가 좋게 들
려질 수 없다는 것, 당연한 상식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성경을 머리로 알고 믿는 사람들이 성경 박사, 성경학자가 되어 있고 목사가 되어 있다는
것, 머리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비교하여 성경을 말한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충분히 밝혀드렸습니
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는 그 초점(focus)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비유에서 집중해야 할 핵심
은 바로 예수님이므로, 비유를 말할 때 예수님이 중심이 돼 있지 않으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여러
분에게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예수님은 대부분 유대인을 대상으로 비유 말씀을 하셨고, 그다음 이
스라엘 속에 넣으신 하나님 언약의 뜻을 비유로 말씀하셨고, 그다음 비유가 구약성경 말라기와 신
약성서가 기록되기까지 약 4백여 년간의 공백기를 다룬 성경과 같은 역할이라는 것, 그래서 이 몇
가지의 사항을 알지 못하면 사실은 비유의 바른 해석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의
속사정을 알지도 못한 영적 소경들이 비유를 말하고 있으니 거기서 무슨 정답들이 나오겠습니까?
신약 사복음서에 보면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이들이 항상 등장하지 않습니까? 비유가 대부분 이
들을 대상으로 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들을 대상으로 말씀하셨
는가, 알아야 또 복음서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려면 구약과 신약 사이, 성경이
기록되지 않는 약 400여 년의 시대로 가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나
라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르호보암 왕에게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었는데, 그나마 베
냐민 지파는 이미 멸종되다시피 되었고, 대부분 유다 지파 사람들로 이루어져서 남왕국 또는 남유다
라고 불렀습니다. 르호보암에게서 열 지파가 나갔는데 그들은 북왕국 또는 북이스라엘이라고 불렀
습니다. 이 북이스라엘이 약 210년 후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하였고, 이방 혼으로 혼혈을 이
루고, 하나님 백성의 신앙 성결을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북왕국의 수도는 사마리아로 신약에서 보
면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상종치 않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신앙을 버렸다 해서
개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북왕국보다 150여 년 정도 더 존속하던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포로로 잡혀
갔는데 이 유다 지파는 절대로 핏줄의 성결, 신앙의 성결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신앙을 굳게 지켰
습니다. 이후 70년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면서 이들에게 고민이 생겼습니
다. 왜 우리가 이렇게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고 이같이 고통과 곤욕을 겪느냐, 이것은 우리 조상
들 때부터 죄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 그러면 우리가 조상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 찾아
내서 다시는 그 같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지 않느냐 해서, 조상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깊이
연구한 결과 안식일 범한 죄가 클 것으로 생각한 겁니다. 그때 그 유대 지파가 자신들은 그 어떤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혈통이든 신앙이든 성결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며 성전 중심의 신앙을 한
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유다 지파와 관련지어 유대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먼저 사마리아를 배척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재건에 비용을
대고 우리도 예배드리러 오겠다고 하자 유대인들이 "아주 너희들은 개다, 감히 그 더러운 돈을 하나
님의 성전에 쓸 수 없다 성전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철저히 거부하고 막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이 신앙의 우월감이 지나치다 보니 신앙적 교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구약의 말
라기서를 기록한 마지막 선지자로 그 이후 선지자가 없는 시대를 맞이했는데 BC 331년, 331년경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 아버지의 야망을 계승하여 세계 정복을 위해 주변 국가를 하나하나 정복
해나갔습니다. 이때 유대민족도 알렉산더에게 정복을 당했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몇 해 못 가서 33
살 젊은 나이에 말라리아로 죽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가 통치하던 제국은 네 개의 왕조로 나누어져
서 유대나라는 그중에 톨레미라는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톨레미 왕조는 자기가 통치하던
민족들의 내정과 종교는 간섭하지 않고, 단지 조공만 조금 받는 것으로 하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대민족도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전통이나 문화를 지키고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가 헬라 시대입니다. 그래서 헬라 문화와 헬라 언어를 접하게 됐고, 헬레니즘(Hellenism)문화
와 언어가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자유도 BC 200년경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시리아라는 나라가 힘을 길러 톨레미 왕조에게서 유대나라를 빼앗았습니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서 이때부터 유대민족의 엄청난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가 유대민족의
언어인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쓰지 못하게 통제시키고 그리스어를 쓰고 그리스 문물을 받아들이도록
강압했습니다. 시리아가 재정난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중요한 보물들을 다 약탈해 갔고,
유대교의 중요한 문화들을 파괴했습니다. 할례 의식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 성전에서의 제사 등
등을 다 폐지하고 복사된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제단들을 다 헐고 그곳에다가 우상의 제단을 만들어서 돼지를 제물로 바치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유대민족에게는 엄청난 고민이었고 이때부터 지도자들 간에 의견이 갈라지면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신약에 예수님에 대해 별로 관심 두지 않고 부활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그 사두개인
들은, 다윗 왕 때 사독이라는 제사장이 있었는데, 다윗 왕을 계속 보호하고 도왔던 유명한 사람으
로 그 사독의 후예들로서 이때 사두개라는 사두개파가 생겨났습니다. 사두개파의 주장은 "우리 유
대 국가가 유지되려면 그 부유한 그리스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라고 나왔고 그에 맞서서
반대하는 계층이 있었는데 "절대로 안 된다 율법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니 우리는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하는 바리새파가 생겨났습니다. '바리새' 또는
'바리슘'이라고 하는 이것은 '율법을 지키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으로 구별되었다'는 뜻
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빼앗기고, 제사를 지내려고 성전에 들어가면 시리아 군인들이 잡아다가 처
형을 했으니 결국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망할 도리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도망자는 시리아의 저항 세력으로 여겨 기어코 찾아내 처형을 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이 힘 다해 뛰어 도망하다가 안식일을 만나면 뛰지를 못하는 겁니다. 뛰다가 땀나면 일
한 것이 되니 그것은 율법을 범한 것이 된다 하여, 뛰지도 못하고 걷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안식
일을 범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일하지 말라 하신 안식일 준수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
를 오해하여 무저항으로 걸어가다 활에 맞아 죽고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조상들처럼 또다시 안식
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다고 해서 유대인들의 순교가 그때 가
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산속으로 도망가 있던 맛디아라는 제사장이 다섯 아들과 함께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유대인들이 씨도 안 남겠다" 생각하고 맛디아를 찾아서 몰려든 유대인들과
함께 전략을 짜서 밤에 모두 무기를 들고 계속 게릴라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맛디아의 셋째 아들
마카베오가 큰 승리를 거두어서 시리아로부터 독립하고 약 130여 년간 정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간의 서로 주장이 다르니 사이가 악화되어 원수지간이 돼버렸어요. 그
렇게 내분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또다시 예수님 태어나시기 63년 전에, 즉 BC 63년에 로마의 폼페
이우스에 의해 함락되어 다시 또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실 때도 유대민족은 로마
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이제 여러분이 바리새인이 어디서 생겨났고 사두개인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아셨지요? 그리고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해 주기 위해서(에스라서) 생겨난 사람들입니
다. 그들을 랍비, 또는 선생, 율법사라고 불렀는데 유대 백성에게 큰 존경을 받는 위치였습니다.
율법의 이해가 없던 백성에게 서기관이 그 해석을 내려주었다는 말입니다. 이 서기관들이 율법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해서 백성에게 '이것은 해도 된다, 저것은 안 된다'하는 말이 떨어지면 그것
이 유대 백성에게 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너무 세분화하여 가르치니 백성이 이 계율에
얽매여 수고의 무거운 짐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오늘날도 교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교
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는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참자유의 법을 가르쳐주지
못하는 예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이 약 육천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율법 속에 두신 본뜻을
살피기보다는 율법을 지켜 그 의로 영생에 들어가는 줄로 알아 율법을 지키는 것에만 목적을 둬버
렸습니다. 사람 중에는 율법을 지켜낼 자는 없음에도 이들이 다 지키고 사는 것처럼 행세하니 다
외식에 걸렸습니다. 그러니 율법 속에 본뜻을 깨닫지 못한 영적 소경이 되어,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사두개인은 제사장의 후손으로 성전 관리를 맡은 자들
에 속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부자로 살았어요. 그들은 내세관도 없고 부활도 천사도 믿지 않았어
요. 구약성경에 보면 복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
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하시니, 땅에서 사는 동안 부귀영화와 명예를 가지고 존경받고 인기
얻고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한 현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두개파가
역사 속에서도 우리가 잘살 수만 있다면 이방인들의 문물들을 받아들이자고 했던 사람들이라고 하
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을 믿으니 구원은 당연히 받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복 주셔서 잘살게 되니 그것을 구하라고, 땅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것으로 맞추어주는 곳이면, 그것
은 죽이는 독을 주는 곳이요, 사두개파에 누룩입니다. '시대 따라 교회도 세상 오락 문물을 좀 받
아들여야 한다. 시대 따라 교회도 취미 생활하도록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하는 것, 그것은 본뜻
에서 벗어난 성영님이 계시지 않은 마귀의 소리요, 소굴입니다. 이런 사두개의 사상이 교회라는
곳에서 크게 역사하고 있다는 것 다 보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신구약 사이에 누가 없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가 없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는 대로 죽였습니다. 마21;33-46에 예수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셨고,
히11:32-40까지 이것을 증언하였고, 특히 36,37에서 오늘 말씀 중에 나올 선지자들을 증언하고 있
습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살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 머리로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
여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나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까지 죽였습니다. 어떤 선지
자가 와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하면 서기관들이 "저것은 하나님의 말이 아니다
틀렸다"하면 그냥 처리했습니다. 바리새파는 "다른 것 볼 것 없다, 우리를 봐라,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의 행하는 바를 보라"하고 자신들의 말과 행위를 의의 기준으로 삼아 가르쳤고, 그것을 또 해
석하여 제공한 것이 서기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사이 400여 년의 기간에 선지자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뭐가 없었다는 것입니까? 하나
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400여 년의 공백 기간이 끝나갈 무렵 누가 나타났습니까? 제사장이요 선지
자인 침례 요한입니다. 침례 요한은 제사장 가문에 대단히 지체 높은 반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
서 유대 백성들은 비로소 우리 민족에게 등불이 될 선지자가 왔다고 하여 침례 요한이 움직이는 대
로 따랐는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쫓아다니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저게 진짜냐 가짜냐 하면서 그
러면 네가 하나님이 보내신다고 한 엘리아냐 묻기나 하고, 차마 죽일 수는 없으니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예수님도 특별한 선지자로 알았던 것입니
다. 그래서 죽일 구실을 찾은 겁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마5:11,12에 나를 인하여 핍박받으
면 너희에게 복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것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왜 고난을 받는 것일까, 조상의 죄
때문이다. 조상이 율법을 어기고 성전을 바로 섬기지 않고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바로 섬기자. 이것을 어기는 자는 죽이더라도 우리 유대민족이
더는 고난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고 나온 그것이 자기들은 옳은 줄로 알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에서 벗어나 도무지 표적에 맞힐 수가 없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기가 주인이 된 자기중심의
것을 백성에게 끼쳐주었으므로 민족이 더한 고난을 겪은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
를 죽이고 예수님까지 선지자로 알고 죽이는 데가지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자기 머리에서 나는 것은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절대로 맞는 말인 것 같지만, 그것은 죽은 것이요, 어둠이요, 죄요, 악이요, 불법이요 그러므로
하나님과 원수로 행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자기가 옳다고 나오면 그것은 백
퍼센트 사단의 자식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고 무엇을 주장한 자들인지 그 정
체를 확실히 알았습니까? 우리가 비유 말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참고가 되도록 신구약 중간사의
이야기를 대충 말씀드렸는데, 이제 여러분이 비유 말씀 한두 편 정도만 들어도 앞으로 비유 말씀
이 어렵지 않게 다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신구약 중간사, 말라기부터 침례 요한이 오기까지를 말씀이 없는 무슨 시대라고요? 밤중 시대라고
합니다. 또 암흑시대라고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없고 캄캄한 밤중 시대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밤중에'하신 말씀 있습니까, 없습니까? 6에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했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없는 캄캄한 밤중에, 즉 신구약
중간사, 선지자들의 말씀이 없는 영적 어두움의 때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
라'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랑 맞으러 나오라고 말한 이는 누구일까요? 침례 요한입니다. 1에서
'그때에'하셨습니다. '그때에'한 것은 마24:45-51의 '충성된 종과 악한 종'에 대한 비유와 같은
내용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구약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라 말이지요. '그때에
천국은...., 하셨는데 예수님은 항상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 여러분 다 알지요? 그러면
천국은 누구를 말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말한다는 것, 예수님을 천국이라고 하고 또는 하나님
나라라고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그래서 천국이나 하나님 나라나 같
은 것인데 '천국'했을 때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를 말하고, '하나님 나라'했을 때는 예수님의 것
을 가지고 성영님이 오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천국의 씨를 어디에다 넣으셨습니까? 아브라함 가정입니다. 창22장에 네 씨가 그 대적의 문
을 얻으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해서 바로 그 씨가 아브라함이 낳
은 아들 이삭이 아니라 갈3:16에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
브라함에게 독자를 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시고 이삭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씨를 아브라함
가정에 심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씨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 독생자를 주시겠다고 하
신 것, 이삭이 태어난 것으로 씨의 싹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시작은 아브라함에게 언약
하신 것부터입니다. 갈3장에 모든 이방 민족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시려고 먼저 아브라
함에게 무엇을 전했다고 했습니까?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가장 시초로 받은
사람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또
열리는 것입니다. 풀리는 거예요.
막4:28에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했습니다. 그러면 어디를 말한 것일까요? 아브
라함의 가정입니다. 다음에는 이삭이요 한 것은 또 어디일까요? 아브라함의 후손들 이스라엘입니
다. 아브라함에게 뿌린 씨가 싹터 자라서 이삭을 피우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했습
니다. 이삭에 충실한 곡식은 누구를 말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에 심으신 씨,
독생자 언약이 자라 이삭으로 충실한 데서 예수님이 나오셨어요. 그다음 29에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했습니다. 이제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잘익은 열매이니,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그 목적이 열매를 거두는 것이니, 그러므로 유대인
중에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로 영접해 맞아들인 자는 바로 아브라함 때에 뿌린 생명의 씨를 받아
서 그 씨로 싹터 이삭을 피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열매로 거두어진다는 것을 오늘 본문 10에
서 예비되었던 자들, 즉 슬기로운 자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1에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한 '열 처녀'는 숫자 열이나 열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고, 완전히 채운 유대인 전체를 의미합니다. '열'은 유대인 전체를 총칭하는 비유, 수라는 말
입니다. '열'은 땅에서의 수예요. 그리고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한 것은
열 명 중에 반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반은 못 들어갔다는 말이 아니라 "야! 그래도 비율로 보면
양호한 숫자다, 5대 5니 그래도 대단히 양호하구나"이런 계산이 아니라, 유대인 중에서도 들어가는
자가 있고,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두 종류임을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들어가지 못하고 슬
기 있는 자는 들어간다는 의미에요. 이해됐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라고 유대인의 혼인 풍습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창2:24에 남
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 하신 것은 인간 남녀가 만나 결혼
하는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떠나 이 땅에 신부를 맞으러 오신다는 계시의
말씀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함을 말씀하신 뜻이라는 것,
그 계시의 말씀을 그대로 이스라엘의 생활 속에 넣으시고, 말씀의 의도를 깨닫는 한 방편이 되게
하셨다는 것, 또한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혼례 풍습을 들어서 천국
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혼인 풍습을 알지요? 신랑이 신붓집으로 오는데 저녁에 옵니다. 그래서 신
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초저녁부터 저 동구 밖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초저
녁에 올지 밤중에 올지 한밤중일지 모르니 등에 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언제 오신다는 것입니까? 밤중에 오신다는 말입니다. 밤중은 영적 밤중, 말씀이 없는 캄캄한 때를
말합니다. 처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초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아주 캄캄함이 극에 달
한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오실 때도 그
와 같은 상황 중에 오실 것이니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천국은 뭐냐? 그같이 천국이신
신랑을 기다리고 그 신랑을 맞아 영접하여 신랑과 함께 혼인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하신 그 등은 무엇의 비유인가?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자
를 주신다는 생명의 언약이 등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주신 그 생명 얻을 길로 안내해주는 율법
이 등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독생자를 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셨고, 그 독생자의 언
약, 메시아 그리스도를 만나러 갈 수 있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율법을 주셔서 이스라엘이 그
율법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길에 대하여 안내해주는 등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주
신 율법으로써 다 자기 앞에 있는 등이었습니다. 율법은 메시아의 언약이요 만날 수 있게 하는 등
불입니다. 그러니까 미련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슬기 있는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미련한 자는 등만 가졌다고 했고, 슬기 있는 자는 등과 함께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이 말씀을 이스라엘의 이야기로만 듣는 것이면, 제가 말씀드릴 이유가 하
나 없는데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이야기로 연결하여 듣습니까? 자기 믿음이 되기 위해 듣는 것이
냐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 처녀의 비유 말씀에 이어서 그 뒤에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남의 이야기, 이스라엘의 이야기로만 듣고 마는 것이면, 그것은 한 달란트 받아서 땅에
묻어둔 미련한 자요, 악한 자입니다. 그러잖아요들? 제가 일부 사람들이 하는 말로 그대로 표현
합니다. 저는 '주님'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이지 주님이라고
만 해서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아! 뭐 주님이 우리 구원
을 다 이루어놓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는데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믿으면 되지 성경 모른다고 구원
못 받냐?"고들 하잖아요?
성경 다 모른다고 구원을 못 받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 사람으로 그 예수님
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믿는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 사랑하여 섬기는 믿음
이 되야 하는 것이니, 그래서 온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성경을 알려고 하느냐, 그럼에도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 몰라도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주님 믿으면 구원받
는다고 했으니까'하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가지고 믿는다 하면서 성경을 땅에 묻어둔 것같이
하는 태도로 구원받는다고 말한 것이냐, 만일에 후자라면 가서 장사하여 한 달란트를 남기라고, 한
달란트를 주셨는데 한 달란트를 남기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 악한 자에 속한 것일 뿐입니다. '단지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구원을 이루어 주셨으니 그것을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지 우리가 뭘 더 해
야 하는 것이냐, 하나님이 나를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주시는 것이니 그것을 믿으면 된다'
한다면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는 악한 자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 잘 알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는 것 잘 가지고 있다가 여기 가지고 왔
습니다"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보니 한 달란트의 값은 남기지 않았으니 한 달란트 받
아 땅에 묻어둔 미련한 자요, 악한 자요, 그 악한 자는 달란트 비유 마지막에 어떻게 된다고 말씀
했습니까?
그러니까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둔 자와 같은 믿음은 꼭 자기 입맛에 맞는, 자기 수준에 맞는
말씀이나 이야기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우편 강도가 "예수여! 당
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하니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
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셨다고, 그러면 그 강도가 성경 알기나 하냐? 단지 그 고백 하나로 구원
받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죽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이 구주인 것을 믿고 시인하면 구원받는
다고 하는 자기 논리를 폅니다. 우리가 우편 강도가 성경을 알았는지 알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강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즉 예수님이 무죄한 분이라는 것,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예수님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하나님이신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자신은 마
땅히 죽을 죄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영혼이 구원 얻기를 원했던 것입
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을 알고 예수님을 알았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좌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웃고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면서, 자기를 죽지 않게 하라고, 즉 우리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너와
내가 내려가자 육체가 살게 하라는 것,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하라는 육의 구원을 원한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로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기가 죄인인 줄도 모르는 교만으로 땅에서 살 것을 위한 그
리스도를 찾았고, 우편 강도는 자신이 죄인으로 당연히 죽어야 마땅할 죄인인 것을 알고 영혼이 구
원 얻기를 원했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오신 이후에 온 인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
릴 때 함께 달렸던 좌편 강도냐 우편 강도냐 하는 두 종류라는 것을, 그래서 우편 강도처럼 예수님
을 믿고 아는 일에 영혼에다가 초점을 두는 것이면 그는 낙원, 즉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요, 예수님
을 믿는다고 하나 육의 것에다 두는 것이면, 구원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갈라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거기에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가 있고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두
종류에 대해서 보여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데나 갖다 붙이고 헛소리들 하지 말라
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같이 다섯 달란트 받아 남긴 자의 가르치는 말씀을 잘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가
진 자는 슬기 있는 자요, 다른 사람을 말씀에 들도록 이끌어주는 자가 두 달란트 받은 것입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나님의 생각에 맞게 잘 깨달아서 자기에
게 남기는 말씀으로 믿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일러 남기도록 하는 그것은 다섯 달란트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받은 자다, 그리고 여러분이 두 달란트 받은
것이라고 하면 기분 되게 나쁘려나요? 그냥 농담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믿음의 슬기가
있다면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영님에 의해서 잘 새겨듣고 믿음의 능력, 속사람의 능력을 갖춰나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 뜻을 담은 창조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통해서 믿음의 길을 잘 안내받
으며 이끌림을 받아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신 슬기 있는 믿음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랑을 맞으려면 등과 함께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슬기가 있
어 말씀하신 분의 의도를 마음에서 새김질되고 깨달아, 길을 잘 인도받아 예수님을 만나 영접해 모
셔 들인 믿음이 됐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혼인 잔치에 들어갔을까요,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들어간 것입니다. 목숨이 죽은 뒤에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는 것입니까? 아니라는 것 알지요? 초림
의 예수님을 만난 것, 즉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자기 안에 오셨으므로 만나게 된
것을 혼인 잔치에 들어간 것으로 말씀합니다. 현재 혼인 잔치는 아니지만 이미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본문에서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는 이때 초점이 누구입니까? 신랑이지요? 그럼 신
랑이 누구예요? 그리스도지요. 등을 들고 신랑으로 비유된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갔는
데,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그러므로 자기가 죄를 지을 때마
다, 또는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속하려고 준비한 제물에 안수하고 피 흘려 하나님
께 보이시는 것으로, 그리스도 구주가 오시면 이처럼 피 흘려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피 흘리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대망하며 기다린 민족입니다.
그런데 세대가 지나면서 어느새 율법을 주신 의미는 변질되어 자기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
는 것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율법이 가르치는 바 죽으러 오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둔 것이 아니고, 자기에게 두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름을 가지지 않아 등불이 꺼져간 것
을 말합니다. 처음은 메시아에 대한 등은 가졌었지만 말라기 그 이전부터 잊은 바 되었고, 등불의
역할을 한, 율법 속에 든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사람들 속에서 꺼져버리고, 예수님이 오시자
그렇게 고대하던 신랑과 같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왔다고 맞으라고 외쳐도 신랑을 맞을 수 있는,
신랑을 알아볼 수 있는, 신랑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마음도 귀도 눈도 다 어두워져서 맞아들
일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는 신랑에 대한 언약을 영혼에 새기고 오직 신랑에 대한 이야기와 소식에 마
음과 귀를 다 두고, 신랑만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없어도, 신랑이 언제 올지 올 때를 알 수 없어 졸며 자기는 했어도 자기 속에 하나님의 율법의 뜻,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는 그 언약을 굳게 잡고 있었으므로 '보라 신랑이로다'라고 신랑
앞에서 신랑이 오는 것을 알리는 음성에 일어나 곧 신랑을 알아보고 맞아 영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자기 앞에 있어도 맞아들일 수 있는 것 절대 아닙니다. 등을 가졌으면 그것은
신랑을 맞으려는 것이니, 거기에는 오직 신랑에 관하여만 마음과 귀를 집중하고 선지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 오실 때가 가까웠는지,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지 분별하는 슬기로 기다릴 때, 신랑을
맞으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신랑을 알아볼 수 있게 되어 맞아 영접하여 함께 혼인 자리로 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등불을 들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율법을 주신 것, 오직
신랑을 맞아야 하는 것임을 아는 그 목적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자들은 신랑이 더디 오니까 신랑에 대해서 차츰 희미해지고 해이해져, 슬그머니
세상 정욕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세상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육신을 위해 사는 데에 온 마음
을 쓰고, 더 쌓으려고 장사하러 다니니 다른 신랑을 따라가는 것이 돼버렸으므로 진짜 신랑에 대해
서는 둔해져서 신랑을 신랑으로 알아볼 능력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영
접하여 맞아들인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나다나엘!
저 목수의 아들 예수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저 사람 요셉의 아들 예수인데, 어떻게 저가
메시아냐?" 지금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났거든요. "네가 밤낮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리
더니 정신이 잘못된 것 같다" "빌립! 어떻게 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지" "나다나엘! 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했는데 저는 나사렛에서
나지 않았느냐? 네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야? 어떻게 저 예수가 이스라엘의 임금이냐? 누가
그런 헛말을 믿겠느냐? 공회에 잡혀가서 곤욕 치르기 전에 그런 말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이다" 이것이 슬기 있는 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입니다.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영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외치고 다니며 또한
요3:29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
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 예수님은 오셔서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신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랑을 기
다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침례 요한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일부는 침례
요한의 내 되에 오시는 이에 대한 말을 듣고 따라다니면서 그에 대한 기름을 사 보려고 한 겁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내 뒤에 오신다 하니, 하나님의 어린 양을 맞을 기름을 찾는데, 그들에게 나누
어줄 기름이 있지가 않습니다. 자기 속에 가지고 있어야 할 기름이 없으니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요6:41-45에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
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이같이 구약의 말씀과 선지자들의 말에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오늘날도 마
찬가지 임) 가르침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 육의 삶에 빠져있고 하나님의 의도를 버리고 엉뚱한 방
향으로 나갔으므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신랑을 맞지 못할 길이 돼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이방인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이루셨으니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
다고 하는 것은 인본의 속이는 말입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때를 알고 준비하는 자가 지혜
로운 자라'고 하는 이 말은 제가 목사들에게서 자주 들은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언제
잠을 잤습니까? 이방인이 언제 잠잤습니까? 우리 이방인은 잠자는 때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입니다. 영적 암흑시대, 선지자가 없었던 400여 년간의 시대를 말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다 사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생명 얻는 것과 영생으로 들어가는 일을 다 이루어놓
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이방인도 구약의 가르침을 반드시 거쳐 와야 합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
다. 구약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구주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침을 잘 받으며 영
의 믿음으로 세워져야 하고, 신랑이신 예수님을 영혼으로 만나 한몸을 이뤄야 합니다. 율법 속에
넣으신 근본 뜻을 배우고,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언약을 가지고 대망했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바리새인은, 사두개인은, 서기관은, 백성은 왜 그
기다리던 예수님을 맞지 못하고 멸망으로 들어간 것인가 하는 그 이유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아!
이들이 이래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구나! 이것으로 가려져 버렸구나!"를 확실히 볼 수 있어서
자기 속에 그 같은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을 깨끗이 팔아 버려야 합니다. 깨끗이 팔아야만 예수
님을 사게 되는 것으로서, 너무나 중요한 달란트를 남기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자신이 바른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되기 원하면 성경 박사인 서기관은 왜, 하나님의 율법
을 잘 지키려고 목숨까지 건 바리새인은 왜, 사두개인은 왜 그렇게 성경의 중심, 성경의 주인공이
신 예수님을 배척한 것인가를 알아서 자기 속에 그 같은 서기관적인 것, 바리새적인 것, 사두개적
인 그런 요소들을 깨끗이 팔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유대교의 지도자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메시아가 오시도록 하는 성전 제사를 매일 드려왔음에도 왜 정작 예수님을 배척했느냐? 하나님께
그 많은 제물의 피를 흘려 제사하는 그 제사의 본뜻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그 의식을 중시하여 의
식에만 치우쳤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도 그같이 하나님의
본뜻에서 벗어나 행하는 것만 중시하고 치우쳤던 의식들을 다 팔아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
면 예수님을 볼 수도 맞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의 자격을 갖추어 예수님을 만나
혼인 잔치로 들어가게 하는 이 같은 질서적인 가르침, 생명의 말씀이 지금 귀에 들려지고 있지 않
습니다. 바리새 서기관 사두개의 가르침들로 다 장악되다시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신랑을 맞을 수 있도록 예비된 자들은 함께 혼
인 잔치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혼인 잔치는 시제상 미래의 일이지만, 예수님은 미래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 믿음은 이미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을 수 있도록 예
비되었으므로 예수님을 만난 영적인 신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혼인 잔치에 들어간 것입
니다. 요즘 '때를 알고 준비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말인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이것을 제가 이해하기는 종말의 때가 되었으니, 예수님 오실 때가 가까웠으니 예수
님 맞을 준비하라는 말이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종말의 때를 아는 것이 예수님 맞을 준비인 줄 알
고 자기 속은 예수님과 관계도 맺지 못했고, 예수님을 자기 안에서 아는 바 없는데, 성영님이 오신
영이 되지도 않았는데, 종말의 때를 알기 위해서 열심히 예언들에 귀 기울이고 현상들에 마음이 쫓
아다니지 않습니까? 알맹이 없는 겉의 것들 쫒아다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련한 자입니다.
그런 것들을 좇으며 성경이 말씀하는 종말 때에 일어날 일들을 다 알아도 그것으로 혼인 잔치 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사단이 쳐놓은 덫에 다 잡혀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매한 소리 듣고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여러분도 왜 예수님과 신랑으로 하나 되는 믿음이 되지 못하느냐?
신랑의 것을 왜 받아먹지 못하느냐? 성영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왜 속 능력이 되지 못하느냐? 말
씀을 듣고도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고 왜 말씀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느냐? 신랑의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을 취하고 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랑을 아는 일에 초점을 두지 않고 다 겉껍데기, 인
본이 뿌린 누룩을 먹고 자라왔으므로 그것이 방해되어 성영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
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잘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쫓아다녔기 때문에 성영님의
말씀이 영으로 받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육의 자아로 행한 그것이 대단한 방해꾼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한편 자기 생활 속에서도 도무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수가 없는 생활의 거
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정하고 가증한 것들을 품고 살고 있으니, 도무지 말씀이 역사할 수가
없고 영적 능력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활공간이 어둠의 처소가 돼 있는 것은 아주 예사가
돼 있습니다. 귀신이 거하도록 하는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라면 거룩
한 말씀이 영으로 받아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여, 나는 왜 말씀을 듣는데도 능력이 안 될
까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늦지 않았다면 먼저 자기 주변을 개끗이 정리하고, 자기 속에 심어진
누룩들 다 몰아내고 새로워질 수 있는 영의 믿음의 전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성영님께서 느닷없이 보이신 것이 있습니다. 여기 말씀을 생명이라 여기면서 말씀을 높이고
듣는다는 사람들이, 그동안 말씀이라고 들어온 것들, 자신 안에, 인본의 양심 사상에서 나온 말씀
들로 쌓여 있는데, 또 여기 말씀을 듣자니 그 심영이 얼마나 혼란합니까? 여기 말씀이 하나님의 생
명의 말씀인 것은 알기는 하겠는데, 그러나 영으로는 받아지지 않고 능력이 되지 않는 겁니다. 자
기 영혼으로 경험하는 말씀으로 받아지지가 않는 겁니다. 참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은 머리의 지각으
로는 알지만, 영적 능력으로 경험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이 생명인 줄 알고 듣기는 하
는데, 육으로 믿는 것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영혼의 능력이 되지 못하니 여전히 마음이 뭔지 허전
하고 공허한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다른 것을 또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성영님께서 이것을 제
게 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뭔가 자기 속이 허전하고 공허한 것 같으니까, 마음이 초조하여 또 말
씀을 찾는다고 돌아다닙니다. 어디서 찾겠습니까? 인터넷에서 이것저것을 듣고 다니다 보니 걸려드
는 거지요. 그러면서 또 여기 말씀을 듣는다고 듣고 있으니, 여러분! 성영님께서 그것이든지 이것
이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원하면 그것을 듣든지, 여기 말씀을 듣든지 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 다 문 닫아버리고 다른 것 깨끗이 끊고 이 말씀에 전념하여 말씀으로 들어올 수 있
도록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던지 둘 중 하나를 하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 말씀을 듣고 생명이 조금 열리려고 하는데, 마음이 뭔가 빈 것 같으니 불안하고 초조감이 몰
려오니 자연스럽게 인터넷 들어가서 이것저것 듣는다고 다닙니다. 그러니 그 속에서 역사하는 귀
신들이 달라붙는 겁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바리새인의 말, 서기관의 말, 사두개인의 말들로 사단
이 뿌리는 거짓된 예언들을 들으면서 그 영혼이 또 거짓에 잡혀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분명히 말
씀을 드립니다. 다른 것 다 닫고 이 말씀을 정말로 듣고, 성영님 의지하고 자신을 쳐 복종하는 훈
련으로 영혼의 능력을 갖추는 말씀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서 말씀 듣는다고 하면, 오히려 말씀에 부딪힐 것밖에 없고 자신에게 크게 해를
불러들이게 되니, 가벼이 행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허전하고.....왜 허전해? 믿는다는 사람이 도대체 허전하다는 것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
까? 오랜 세월 잘못된 말씀들로 들은 것들에 의해 영의 말씀이 거절당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
는 진이 돼 있으니, 생명의 말씀이 채워지지 않으니, 생명이 그 속에 없으니 당연히 허전할밖에
없는 것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잘못 쌓인 인본의 진, 어둠의 진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무너
뜨리는 훈련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데 하지 않으면서 어디 딴 말씀 들으면 뭐가 해결되려나 하고,
생명을 뒤로하고 말입니다. 거지 동냥질 다니듯이 하고 다니니, 그러니 이것이 구원이 있어요, 없
어요? 절대로 없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같이 수많은 경고를 보내시면서까지 이것이 생명
이라고, 이것이 진리라고 애통하며 전하는데, 그리고 자신도 레마의 말씀이요 생명이라고 고백하면
서도, 고백했으면 그 고백에 책임을 져야지, 그런 줏대가 있어야지,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듣다가 또 귀신 붙어서 방해받고, 말씀에 혼란을 겪으며 영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습니까?
여러분! 오늘날 말씀이라고 전해지는 것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영적인 말씀이
빈약하고 진리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없는 때입니다. 수많은 말씀이 쏟아지고 있지만, 영적 생명을
주는 말씀, 진리로 세워질 수 있는 말씀이 없다니까요, 차라리 자기가 성경 보세요. 자기 영혼 잡
아먹히는 그런 말 들으면서 예언이나 듣고 지옥 봤네, 환상 봤네, 그런 것 왜 듣습니까? 성경에 지
옥 있다면 믿는 것이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면 그것을 믿는 것이지, 왜 사람들이 지옥 봤네, 뭐
봤네 하는 것에 심취하여 쫓아다닙니까? 그러니 또 귀신에게 잡혀서, "아이고 마음이 불안하고 허
전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 것이 무슨 구원입니까? 그러니까 그런 줏대 없는 영
혼들 다 잡아서 끌고 가려고 얼마나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미혹하는지, 악의 영들이 밤낮으로 수고
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 방향으로 속여 보니 잘 속아 넘어갑니다. 그것으로 무리를 잡아끌어서 잡
아먹었어, 또 보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또 그 방향으로 미혹하여 잡아먹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강림이 가까워져 오는 이때가 바로 영적인 깜
깜한 밤중과 같을 때입니다. 성서가 없어서 어둠의 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있는 이
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말씀이 온 땅에 보급된 이때에, 또한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설교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이때 말입니다. 진리가 온전히 가려져 진리에 서지 못한, 말씀이
없는 어둠의 때라는 말입니다.
사단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들을 뿌려놔서 지금 영적인 밤중의 때를 만났습
니다. 말씀이 없어서 영적인 밤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부터 하기 바랍니다. 초림의 예수
님이 밤중에 오셨다는 것 기억하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때도 말씀이 없었다고 하니까, 선지
자가 없었다고 하니까 백성이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하고 받지 못했다는 것 아니에요. 구약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 지도자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말들, 하나님의 과녁에 맞히지 못한 말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다
멸망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강림이 가까운 이때도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정신들 차
려야 합니다. 사단이 인본의 마음과 귀와 머리를 이용하여 거짓으로 포장된 말씀을 어마어마하게
뿌리고 있는 때라는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때에 여러분이 정신을 차려 성영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다 한 소경으로 끌려가는 것입
니다. 그런데 사실 기회가 지나가 버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련한 자들이 '저분이 예수님'이라
고 '너희 신랑'이라고 해도 맞아지던가요? 눈앞에 있어도 맞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성
영)으로 알고 영으로 맺는 관계이기 때문에, 슬기 있는(자기 속에서 뜻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자,
준비된 자가 아니면 예수님 맞지 못합니다. 저분이 예수님이라고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자기 마음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십 년 믿는다고 했어도 예수님 다 만나지 못했습니다.
자기 기분, 자기 열심 내고 다니면서, 본질은 없고 종교적인 것에만 취해서 말이죠. 진짜 예수님께
맞히었으므로, 그 신랑의 말을 듣고 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는 이때, 생명
없는 말 듣는 것으로 자기 영혼을 귀신에게 내주고 혼미함으로 훼방하도록 하지 말고, 다시 귀 닫
고 성영님이 보내신 말씀에 집중하여 말씀 위에 서는 훈련을 기꺼이 하시라는 말입니다.
저의 신앙 간증에 말했잖아요, 말씀을 바로 알고 싶어서 수많은 설교를 들었는데, 들을 때는 기분
이 좋고 소망이 넘치고 힘이 솟아나 살 것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본래 자리로 돌아가 여
전히 어둡고 캄캄하고 곤고했다고요. 이 괴로운 데서 벗어나고 싶어서, 예수님의 평안에 들고 싶어
서, 말씀을 바로 알아서 바로 믿고 싶은 소망에 기도하고 기도했더니, 성영님께서 "너의 모든 것을
차단하라, 내가 너의 교사가 되어 너를 가르치겠다. 지금 듣는 말들은 빠진 것이 많다, 네가 구하
고 찾는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성영님으로 인도를 받아 여기까지 왔고 여
러분에게 그 말씀을 전해드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마지막 때라는 것을 심각하게 알고, 방황하
지 말고 자기 영혼을 살리는 이 말씀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마음과 생활을 겸손히 하여 계속 말
씀을 듣고 읽다 보면 차츰 듣는 귀로 살아나게 되고,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되면서 영의 말씀으로 먹
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거듭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영적 능력이 생
성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공허하다 싶으면 또 말씀을 들어요. 또 성경을 읽어요. 또
말씀을 들어요. 그러다 말씀을 통해서 기도가 생각나면 또 기도해요. 그러면 성영님께서 생명의
생수를 끼쳐주실 것이니 영에 생명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잘못된 것들로 채워진 것이 하나하나 힘을 잃고 떠나갈 수 있도록 그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그것인데 어디 가서 뭘 찾겠다고...., 그런 생명 없는 누룩의
말들을 찾느냐는 말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자기 영이 기뻐하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생명의 빛
이 비쳐 생명이 조금 열리려고 하는데 또 자기가 막으러 다니는 겁니다.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셨기
에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해야 할 것으로 알아 말씀을 드리는 것을 끝으로 이 말씀을 맺으려 합니
다. 이제 열 처녀의 비유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아셨지요? 비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외부인들이
많아 이 비유를 말씀드리긴 했는데, 이젠 이 비유를 어떻게 보고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아셨
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비유가 지금 들을 말씀으로는 너무 늦을 때입니다. 이미 슬기 있는
자로 예수님이 자기 안에 오셔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연합된 믿음이면 그 심영이 천국 잔
치입니다. 자기 안에서 천국 잔치가 있고, 잔치하러 가는 것입니다. 근데 이제 무슨 이 비유 말씀
을 전하겠습니까? 이제서! 그러나 혹 들어야 할 이들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주신 말씀이지 않나 싶
으니, 기회를 버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맺습니다.
나의 신랑이신, 우리의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을 성영님으로 깊이 사랑하고, 이 말씀을 전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 돌립니다. 아멘!!
제 13 장 열 처녀 비유 (슬기 있는 자, 미련한 자).P323-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