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9:1-10:24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 옛적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읍으로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15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이하생략).
왕을 세워 주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9장과 10장은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의 아들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가장 준수했으며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큰 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무엘처럼 늙지 않았고 사무엘의 두 아들처럼 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십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는 동기가 지극히 불 신앙에 근거한 요구임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요구가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책망하면서 허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정작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이 일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간섭하시고 열심히 주도권을 행사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는 이미 사무엘 상하를 통하여 이 역사의 주인공이 다윗 왕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윗을 세우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사울을 먼저 세워서 일을 복잡하게 만드십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은 분명히 유다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나온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유다 지파가 아닌 베냐민 지파인 사울을 초대 왕으로 세우십니까? 이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사울의 인감 됨과 형편을 살펴서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실만한 인물이니 우리도 그를 본받자고 하면 성경 전체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과 적용이 되어 버립니다.
다시 10:24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최고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최고입니다. 짝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백성이 만세를 부를 만큼 그들이 보기에 준수하고 용맹스럽고 왕이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 사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불러서 그가 왕이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기름도 붓고 성령을 주십니다. 새 마음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사울은 실패합니다. 하나님도 이를 아십니다. 알면서도 세우십니다. 왜 그렇게 하신다고요? 그들이 왕을 원한 그 이유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보라는 뜻입니다. 인간 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다스리는 통치의 한계와 실패를 경험해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통해 아무리 탁월한 조건과 능력과 기술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지속적인 간섭과 통치가 없으면 왕으로서 한계와 절망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심지어 성령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셔도 그 성령의 감동을 소홀히 여기고 자신의 이기심으로 반응하는 인간의 타락성과 그 결과를 똑똑히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어디서 세우십니까? '미스바'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상기시킵니까? 17-19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 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미스바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물리치고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고백을 담아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운 장소입니다. 여기는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그들을 대신해서 싸워주시므로 인간 왕이 필요 없음을 알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임을 확인시켜 주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시면서 바로 여기 미스바에 백성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지금 하나님께 구하여 얻고 있는 인간 왕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상기시키시고 사울을 왕으로 뽑습니다. 사울이 누구라고요? 그들 중에 누구도 짝할 자가 없는 그들이 보기에 가장 왕으로 적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택하여 세우신 것은 사울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왕이 되어 다스릴 때 그 결과가 어떠함을 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의 마음에 합하여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왕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왕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워 감당하게 하는 왕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입니까? 9:16을 보십시오. 두 가지죠. 하나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고, 하나는 블레셋과의 전쟁수행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새 마음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을 보면 그는 그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지 못합니다. 블레셋과 제대로 전쟁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합니다. 나중에는 성령이 아니라 악령에 사로잡혀서 다윗을 핍박하고 죽이려 합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왜 이런 왕을 세우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에 진심으로 항복하고 감사함으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 왕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악한 통치의 실제를 경험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스립니다.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강압과 강요로 통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설득하시고 잘못된 길을 막아주시지만, 우리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 그 고집을 허락하시고 우리의 미련함을 허용하시어 우리 생각대로 살아보게 하시고, 그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내고 빚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사울을 먼저 왕으로 세우고 사울과 다윗이 함께 섞여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무엘서는 전반기는 사울, 후반기는 다윗이 차지하는 단순한 구조 이전에 이 둘이 함께 섞여서 하나님 나라의 스토리를 형성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울이 권력을 휘둘러 다윗을 핍박하고, 다윗은 사울이 주는 고통과 억울함을 견디는 세월을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랍니다. 그 속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울은 다윗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세워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마저도 연약한 약점을 드러내고 실수와 실패를 남깁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이 고집을 피워 얻게 된 왕의 제도, 인간 왕이 다스리는 왕정 제도의 역사 속에 도대체 완전한 왕이 있더냐? 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선한 왕도 다 한계가 있고 약점이 있고 죄에 넘어지는 실수와 실패를 보임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원해서 세운 인간 왕 중에는 아무도 이스라엘을 바르게 다스릴 완전한 왕이 없음을 증거 합니다. 시편 127:1-2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되도다.” 이스라엘의 왕정 역사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드러내어 주는 역사이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모든 여정을 통해 당신의 왕 되심이 얼마나 복된 은혜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항복하고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 통치를 갈망하는 백성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 사울을 먼저 왕으로 세우시고 다윗을 세우셨듯이, 우리 인생 안에도 사울의 실패를 먼저 경험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과 다윗이 섞여서 내 삶에 들어오게 하셔서 연단과 시험의 시간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생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그런 의도를 잘 해석해서 오늘을 믿음으로 살면서 주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 백성의 성품과 인격을 구비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16을 찾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목표이고 교회가 가야 할 방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련한 고집을 허락하셔서 사울을 왕으로 세워주시고, 그렇게 만들어낸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내 속에 끊임없이 사울과 다윗의 연약함이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애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온유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게 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삶을 추구하게 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감당하는 성도로 구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이런 팔 복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팔 복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때, 그 자체가 독특한 맛과 기능을 감당하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입니다. 이 맛을 잃지 않고 이 빛을 감추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박홍섭목사 / 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