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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항상 진실을 찾아야 한다. 진실은 우리를 늘 기다리고 있다. -파스칼-
옐로우페이퍼에서 심심찮게 다루는 UFO나 심령사진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시선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당한 이유로 작용된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하디흔한 불충분한 증거 한 줌마저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간 내가 비웃어왔던 흐릿한 기록을 남긴 사람들보다도 못한 결과 앞에, 허탈한 마음 이후에 찾아올 격한 스트레스에 대한 감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진실이란 흔하게 꾸는 개꿈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을 깨달았다.
주체 못할 모험심과 더불어 근력까지 남아도는 어떤 괴짜가 대체 이런 곳에 통나무집을 지을 구상을 한 것일까? 느릿느릿 걸어도 마을에서 어른걸음 십 분여 거리. 하지만 어느 기점으로 문명의 질서가 빠르게 멈춤과 동시에 시작되는 협착한 오솔길은 간신히 흔적만 남았고, 최상급 무질서의 활엽들이 철저하게 시야를 방해했다. 악조건의 연속은 챙겨온 장비들을 팔 벌려 덤비는 잔가지에 걸려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아니면 실수로 독사나 벌집을 건드리는 불상사를 만나게 될까 조바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도착 후 통나무집 주변에 널린 최근의 흔적들을 둘러 탐색하다가 지나온 길을 다시금 눈여겨보니 단순히 직선거리 하나만으로는 전혀 힘겨움의 요인을 찾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통로였다.
졸음이 깃든 누군가의 손이 스케치를 하다 멈춘 것처럼 불명확하게 생기다만 오솔길은 통나무집 마당이 시작되는 부근에서 자신의 지랄 같은 과업을 이루었다는 여운을 남기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오솔길과 어수선한 마당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서서 뒷덜미를 파고드는 잔가지를 빼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두어 발짝 앞 누렇게 말라죽어있는 자잘한 나무들 밑으로 두 번 접힌 인쇄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무심히 팔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바지와 등에서 땀에 붙은 옷이 떨어지며 이내 차가워지려 했다.
‘흉가체험 후기’이번에 소개드릴 흉가는 대전시 외곽에 위치한 한 통나무집입니다. 마을로부터의 거리, 통나무집만이 가지는 충만한 기괴함과 떠도는 괴담, 그리고 공포 한계의 최고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비오는 밤과 곡소리를 빼닮은 바람. 이러한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이 통나무집은 마니아들의 극찬을 받는 천혜의 흉가임이 또 한 번 입증 되었는데요. 9기에 참여했던 직장인 조아영씨를 비롯한 몇 분은 체험 후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10기 멤버모집은 내달 초 기상조건이 최악으로 치닫는 날을 선별, 카페에 공지할…….
인쇄물의 안쪽 접힌 부분은 말라비틀어진 바깥쪽과는 달리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제법 으스스하게 포토샵을 거쳐 연출한 통나무집을 배경에 두고서 연신 브이를 그리며 찍은 기념사진들과 그 위로 방정맞은 이모티콘이 넘쳐나는 텍스트가 찍혀 있었다. 종이 하단엔 절반이 떨어져나간 밤나무 잎이 한복판에 쩍 들러붙어있었고 나는 곰팡내 날 것 같은 그것이 손에 닿는 것이 싫어서 더 이상 읽는 것을 포기했다. 종이의 상태는 이미 잔뜩 훼손되어 있었지만 이곳에 떨어진지 오래되진 않은 것 같았다. 물론 10기가 이미 다녀갔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내 작업을 방해하는 복병으로 그들과 마주칠 떨떠름한 가능성에 대해 고심해보았다.
하지만 흉가체험 동호회가 달랑 한 두 팀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또 굳이 널리고 널린 흉가 다 놔두고 오로지 한 곳만 고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동호회의 흉가체험 방식은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피상적인 공포만을 즐기며 호들갑만 떨다 가거나 펜션에 놀러오듯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마시며 쌍쌍파티 하는 것이 보편적인 패턴일 것이다.
투덜투덜 잡초사이를 지뢰밭 지나듯 조심스럽게 살피며 나타난 무속인이 나를 발견하고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가까운 곳에 머물지만 이곳에 오는 것은 처음이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청바지입고 올 것을 갖다가…….”
폭이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개울 한복판을 야전삽으로 퍼내어 공간을 만들고서 비닐봉투째 담가 둔 음료수를 꺼내기 위해 나는 비탈진 개울로 내려갔다. 놀란 개구리 여러 마리가 몸을 날려 물속으로 숨기 바빴다. 제법 차가워진 알로에주스를 종이컵에 따라주며 무속인에게 맡길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당연하죠. 어려운 일 아니에요 하나도.”
장소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무속인은 통나무집 곳곳을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면서도 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정말 간단합니다.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캠코더를 설치할 적당한 장소를 봐주시면 다 끝나요.”
무속인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치마에 묻은 거미줄을 떼거나 머리에 치렁치렁 들러붙은 부러진 솔잎 등을 잘도 찾아내며 부산스런 행동을 반복했다.
“하나 돌아다니긴 하는데……어? 애기네?”
무심히 말을 내뱉지만 번득이는 눈빛을 유지하는 무속인의 눈길을 따라 나 또한 통나무집 현관이나 컴컴한 창문을 바라봤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긴 하지만……뭐 위험하진 않겠어요.”
무속인의 눈이 가늘어지고 시선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불쌍한 애에요. 정박아로 보이는데……”
돌아가는 무속인을 배웅한 뒤 서둘러 장비점검을 끝내고 캠코더를 설치할 내부 세 곳을 살펴야 했다. 한 때 온갖 장식품과 그럴듯한 그림이 걸려있었을 널따란 거실과 벽엔 자잘한 볼펜글씨나 화이트로 굵게 그려진 하트와 이미 수년전에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유명 댄스그룹의 팀명 등 난잡한 낙서가 빼곡하게 자리하며 나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낙서들 위를 과감하게 덮어버린 붉은색 페인트글씨는 여기에 처음 들어온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여자애 귀신 정말 있음 2층 절대 혼자 가지 말 것.’ 스프레이 페인트를 태어나 처음 사용해본 것처럼 ‘여’자의 ㅇ만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었고 페인트는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다 굳어 멈췄다. 바닥엔 부러뜨려 쓰다가 버려진 것으로 예상되는 양초 조각들이 여러 개 뒹굴었다.
고개를 돌려 조금 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심하게 낡고 훼손되긴 했지만 웬만한 체중은 아직 무난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잔뜩 그을린 창문은 사다리 없이는 누구도 올라설 수 없는 위치에서 굳게 닫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나는 계단에 발을 디디며, 으레 그럴 것이라 짐작했던 것보다 삐걱거림이 매우 적다는 것에 약간 놀랐다. 계단은 아주 견고했다. 하지만 흉가에서는 적막 또한 그리 반길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곧바로 머리를 스쳤다. 약간 어스름했던 거실과는 극단적으로 다른 직사광선이 미간에 살짝 통증을 일으켰다. 화재 후에 상당부분 무너져 뚫려버린 천장으로 바깥의 태양광이 막힘없이 들어왔다.
2층으로 혼자 가지 말라던 낙서에 신빙성이 있거나 말거나를 떠나 위치상으로 캠코더를 설치하기 적당해 보였다. 다행히도 무속인이 가장 먼저 지목한 곳과도 두어 걸음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계단의 전체모습을 하나 잡는 것이다. 다음은 아이의 방. 무속인이 절대 빠뜨리지 말라던 2층의 방 천장을 다시금 살펴보니 무척이나 높았다. 작은 사다리를 펼쳐서 벽에 불안하게 걸치고 올라 캠코더를 달아야 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원래 모습을 상당히 잃은 2층의 방엔 한 쪽이 심하게 푹 꺼져 들어가 수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침대와 그 위에 비스듬히 올려놓은 까닭모를 거대한 낡은 가마솥 등 밟고 올라설만한 물건은커녕 온전한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 집이 폐가가 된 결정적인 원인이 화재였음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지붕부터 뻥 뚫려 내려 생생하게 보이는 파란 하늘, 모조리 불타버린 가구들, 그을음으로 도배를 해버린 듯 시커먼 벽과 천장 등을 살펴보면 이것은 가스가 폭발했거나 포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큰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이어진 화재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발생했을 화재임에도 통나무집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에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봤다. 화재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거나 다른 이유로 빠르게 진화되었거나…… 그렇지 않고서야 명색이 통나무집인데 통째로 불타버리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모니터 할 4개의 캠코더 위치를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외각에서 통나무집 전체를 담는 화면과 거실을 넓게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계단 쪽을 비추는 화면, 그리고 2층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화면, 마지막으로 2층 높은 천장에서 내려다보며 방 전체를 비추는 화면.
텐트의 좁은 틈으로 용케 들어온 파리 한 마리가 일정 각도를 유지하며 맴을 돌다가 내 몸이 좁은 내부를 채우려드는 것을 알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닥을 닦던 걸레를 펼쳐 흔들어 파리를 쫓으며 시험 삼아 촬영해보았던 적외선캠코더 내용을 살폈다. 담겨진 화면들이 예상보다 조금 어둡다는 점이 석연치 않지만 별다른 방도들 찾지 못했다.
끓는 물에 라면을 쪼개 넣으며 어쩐지 오늘밤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 같은 캠코더들에 대해 고민했다. 또한 휴대용 형광등의 배터리 여분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밤이 되자 통나무집 주변의 발성기관을 지닌 모든 동물들이 내는 소리가 한데 섞여 들려왔다. 대자연이 짓는 거대한 화음이 짧은 틈도 없이 펼쳐졌지만 그 중엔 유독 튀어나오려 애쓰는 소리들이 더러 있었다. 몇 마리나 되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개구리 소리부터 바로 가까운 머리맡에서 울어대다가 내가 몸을 틀면 뚝 그치는 귀뚜라미 소리 등이 그랬다.
소화도 시킬 겸 잠시 그렇게 누워 있다가 자정이 넘으면 녹음장비를 가지고 통나무집 내부로 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실행을 앞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전자제품을 박스에서 꺼낼 때 만나게 되는 스티로폼 마찰음과 아주 유사하지만 똑같지도 않은 듣기 괴로운 소리가 통나무집에서 들려왔다. 처음 소리가 들려왔을 때 환청을 들었거나 아니면 배고픈 고라니가 산을 헤매다 통나무집에 갇히기라도 한 것일까 여러 방향으로 생각을 해 보았지만 뚜렷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거실에 다시 들어서자 같은 장소이지만 한낮에 보았던 내부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는 듯 착각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단지 한 발을 옮기는 데도 마치 지뢰밭 한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처럼 긴장을 늦추기가 힘들었다. 한 손엔 휴대용 형광등을, 다른 한 손엔 감도를 최대로 증폭시킨 마이크를 들고서 단서가 될 만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팔을 뻗자 형광등 빛이 으스스한 벽과 바닥을 내달리듯이 펼쳐졌다. 변상증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얼굴들이 벽과 천장, 바닥에서 스멀스멀 나타났다. 어느 것은 고집스럽게 노려보지만 더러 비웃는 얼굴과 어린이 만화속의 과장된 표정도 간간히 보였다. 모두 하나같이 떨쳐내고 싶지만 한 번 만들어진 얼굴들은 좀체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 때 2층에서부터 가벼운 책상을 성급하게 밀쳐내는 듯 격한 소리와 함께 내가 채 대응하기도 전에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발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발소리들이었다. 그것들은 빠르고 일정한 박자로 쫓고 쫓기는 느낌이 강하게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빠른 판단을 요하는 상황임을 직감한 나는 발소리가 더 가까워지기 전에 계단 아래 먼지투성이 공간으로 우선 몸을 숨기고 형광등을 껐다.
바깥에서 이미 들었던 스티로폼 비비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려왔다. 나는 일그러지는 내 안면근을 의식하면서도 마이크가 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실제론 얼마 되지 않았을 테지만 꽤나 길게만 느껴졌던 몇 초 후, 그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술은커녕 감기약도 먹은 적이 없지만, 내 시야에 뚜렷이 나타난 것은 제정신 가진 사람의 눈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멀쩡한 유리창에 우유를 끼얹고서 잠시 기다리면, 반투명한 상태로 된 답답한 유리 반대편을 어렵사리 볼 수는 있는 것처럼 지금 바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의 모양새가 그러했다. 형태가 일정하지도 않은 그것은 계단이 시작되는 곳 바로 앞까지 급하게 내려오더니 우뚝 멈췄다. 마치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정돈하거나 판단하는 듯이 보였다. 내 키에 반도 되지 않아 보이는 그것의 몸을 통과하여 어두운 거실의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것은 앞뒤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운 모양새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습이 매듭 없이 바뀌어갔다. 거미 궁둥이처럼 생겨먹은 몸통이 점차 부풀면서 팔다리로 짐작할만한 것들을 덮어갔다. 그리고 땀이 식어버릴 상황이 이어졌다. 그것이 방향을 틀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허여멀건 커다란 달걀처럼 생긴 것이 거의 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에야 나는 그것의 위쪽에 눈으로 여길만한 것을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밝힌 형광등은 그것과 나를 동시에 놀라게 했다. 이내 그것의 몸통에서 팔다리가 빠르게 뽑혀 나왔고 아주 듣기 괴로운 스티로폼 소리를 끌면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짧고도 낯선 그 시간을 견디느라 내 등과 이마엔 땀이 맺히고 있었다. 녹화는 어디까지 되었을까? 그 스티로폼 소리의 주인은 저게 맞을 텐데 대체 뭐였을까?
나는 녹음장비의 시각화표시에 특정 지점부터 제멋대로 펼쳐져 기록된 내용을 확인하고서 잠시 흡족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계단 난간에서 머리만 내놓은 채 나를 빤히 지켜보는 여자아이를 본 것이다. 아이는 몽롱한 상황에서 정신을 못 챙기는 나와는 달리 형광등에 눈이 부시지도 않은 듯 무덤덤한 시선만을 유지하다가 고개를 쏙 빼서 모습을 감췄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멀어지는 아이의 발소리를 따라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형광등 불빛이 미치는 공간마다 으스스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서로 닮은 구조물 속에서 내 상상력은 온갖 괴상한 얼굴들을 만들어내기 바빴다. 그리고 역시나 흔들리는 불빛은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것을 재차 깨달았다. 이 집은 크기에 비해 단순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이미 낮에 한 번 둘러본 경험은 아이를 따라가는 내 발길에 혼선을 가져오지 않도록 큰 도움이 되었다.
형광등이 필요 없을 만큼 달빛이 밝았다. 뚫린 천장 밖으로 새하얀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차디차지만 싫지 않은 바람이 한껏 들어와서는 머무르지 못하고 쪼개지며 상당부분이 방안에 갇혀 맴돌기를 반복했다. 뚫린 천장 아래 벽을 보고 뒤돌아 앉아있는 아이를 보았다. 투명도가 일정치 않은 아이의 등을 지나서 낡은 전기콘센트를 식별할 수 있었다.
“안녕?”
마치 이어폰이라도 꼽은 사람처럼 아이는 내 물음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와 대화하는데 용기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리고 투명도가 위태로운 이 아이가 연기처럼 사라지기라도 한다 하더라도 계단의 캠코더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너무도 작은 아이의 등 쪽으로 형광등을 비추어보았다. 불탄 침대 모서리와 방바닥에 널린 온갖 것들의 긴 그림자가 아이와는 무관하게 기울어졌다.
“나쁜 달괄귀신”
아이가 뱉은 말소리와 함께 초록화면 시각화 표시가 미약하게 파르르 떨다 멈췄다. 헐렁한 셔츠를 걸친 아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다리를 M자 모양으로 꿇고 앉아 자신의 손을 조물거리는 듯 했다. 나는 아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히 다가가 옆에 쪼그려 앉아보려 했지만 발을 새로 디딜 때마다 꾸준히 피어오르는 먼지와 배려심이라곤 아예 없는 형광등 불빛 때문에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달괄귀신이 누구니?”
생각보다 큰 내 말소리에 아이보다 내가 더 놀랐다. 서서히 부채질하듯 흔들리는 뚫린 천장 밖 나뭇가지들의 여유로운 움직임 뒤로 촘촘히 박힌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할머니가 그랬어. 아주 나쁜 달괄귀신이 사람을 괴롭힌다고.”
아이가 말하는 달괄귀신이라면 불과 몇 분 전 상황으로 미루어서 대강 짐작할 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아직 만나 뵙지 못했다. 아이의 할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하실까.
아이의 모습은 투명도가 일정치 않다는 것을 빼고 나면 여느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손을 맞잡아 열손가락 모두를 예외 없이 꼼지락대고 있었다. 먹이를 깎아대는 부산스런 설치류의 귀여운 모습과 닮아있었다.
아이의 투명도는 호흡이나 기분상태, 그리고 에너지의 소비 등의 영향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판단됐다. 아이의 몸이 서서히 뚜렷한 형태로 채워지자 내 눈은 아이의 빨간 손톱에 머물게 되었다.
“이거 할머니가 물들여 주신거니?”
“응, 근데~ 자다가 손가락 빠져서 응 두 개는 잘 안됐는데~ 이거랑 이거……”
아이가 작은 손바닥을 뒤집어 내게 손톱을 보이려고 하다가 내 뒤 무언가를 응시했다. 아이의 눈은 천진한 마음이 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눈으로 그것을 짧은 시간 응시하다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나는 아이와는 달리 형광등 불빛 정반대방향의 그 무엇을 확인하기까지 몇 초를 소비해야 했다. 당겼던 고무줄을 놓기라도 한 것처럼 날랜 동작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의 구불구불한 파마머리와 헐렁한 셔츠가 희미한 잔상만 남기고 사라졌다. 계단에서 다시금 요란한 발소리들이 이어졌다. 나는 장비들을 살피면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속도를 내 아이의 뒤를 쫓았다. 형광등 불빛이 격하게 흔들리며 방 여러 곳을 빠르게 훑었다.
거실 한 귀퉁이 벽과 벽이 만나는 곳에서 멈춰있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길게 따르던 잔상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며 작은아이의 안정적인 형태를 갖춰 나갔다. 아이의 손엔 투명하지 않은 낡은 파리채가 들려져 있었고 그것을 마치 검이라도 되듯이 구석에 겨누고 있었다. 파리채 끝부분 멀지않은 곳에선 희끄무레하고 둥그런 것이 궁지에 몰린 채 쩔쩔 매는 모습을 보였다.
“혼나볼래? 나가라니까! 나가!”
아이는 반투명한 팔을 들어 올려 파리채로 확 때리려는 시늉을 보이거나 바닥을 찰싹찰싹 치면서 귀여운 위협을 가했다. 아이가 말한 달괄귀신임에 틀림없을 그것은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된 채 역시나 고역스런 스티로폼소리를 구슬프게 흘렸다. 나는 녹음장비의 작동을 빠르게 확인하며 아이 앞으로 다가갔다.
“넌…누구야? 네가 달걀귀신이야?”
그것은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나와 거리가 좁혀지는 것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몸통에선 앙상한 나뭇가지를 닮은 팔다리를 서서히 빼냈다. 그것의 얼굴엔 눈이라고 우길법해도 좋을 납작하고 동그란 호떡 같은 것이 두 개 있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코나 입 따위를 찾긴 어려웠지만 그것만으로도 묘한 표정을 일으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봐, 넌 누구냐고!”
공간 내에서 내 목소리가 울리며 돌아왔다. 그것은 눈을 움직일 수 없는 신체구조 탓에 온 몸을 돌려서 우리가 조금 전에 호들갑스럽게 달려 내려온 계단을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그리고 발성기관이 어디 붙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몸에서 또다시 그 빌어먹을 스티로폼 소리를 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전달을 내가 절대로 못 알아들을 것이라 체념한 듯 했다. 아이와 내가 어떤 대응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아이를 밀쳐내고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아이가 파리채를 쥔 손에 잔뜩 힘을 주며 쫓아가려고 할 때 내가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아저씨가 얘기해볼게 알았지?”
언어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로 벽에 부딪혔다. 그것과 나는 그 문제로 서로 난감해하는 심정을 이해하는 눈빛을 충분히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다.
잔뜩 그을린 침대 모서리에, 앉은 것인지 기댄 것인지 불분명한 자세로 있는 그것 앞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효과적인 눈높이 대화를 위해서였다. 또한 그것이 괴상한 존재임엔 틀림없다고 여겨짐과는 다르게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우린 한동안 그렇게 마주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등진 너저분한 벽엔 형광등과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위치를 그리는 그림자들이 어른댔다. 아주 옅게 흔적만 보이던 그것의 그림자가 점차 진해져갔다. 아이와의 경험으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투명도의 변화는 곧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끼기긱 기기이이이긱”
점차 흰색으로 또렷해지다 만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건넨 모양이었다.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의미를 눈곱만큼도 헤아릴 순 없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아이는 문틀에 몸을 반만 내밀고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아마도 누군가가 멀찍이서 보고 있다면 문틀에서 고양이 꼬리처럼 흔들리는 파리채만 보일 것이다.
대화를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일단 최대한 많은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소개하기로 했다. 들고 있던 형광등을 바닥에 내려놓자 수많은 그림자의 위치가 바뀌다가 멈췄다.
“나는……음……사…인간.”
“끼기이이이익”
“음……그리고……저기 저……아인…… 인간 이었어.”
“끼기이……”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마당에 과거형을 어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답답할 때 나오는 버릇인 구부린 검지를 앞니로 살짝 깨물자 녀석이 조심스럽게 따라하려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가느다란 팔엔 깨물만한 손가락 비슷한 것은 달려있지 않았다.
“이봐, 넌 대체 누구냐고?”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답답하다는 듯 혼자 투덜대며 다가온 아이가 나비처럼 사뿐히 침대에 올라섰다, 물론 여기에서의 모든 엇나가는 상식처럼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이거!”
아이가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것은 내가 여태 무심히 지나쳤던, 가마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제야 나는 가마솥이 어째서 이런 곳에 놓여있는 것인가 생각해보려 했으나 녀석은 소리를 멈추고 나보다 한 발 앞서 행동에 옮겼다.
잎사귀를 싹 뜯어낸 잔가지 같은 팔을 뻗은 녀석이 가마솥 궁둥이 부분에서 뭔가를 조물대자 가마솥에서 성능 좋은 세탁기가 탈수코스를 돌릴 때와 비슷한 소음을 내며 미세하고 기분 요상해지는 진동이 전해왔다. 그리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이 익은 밤송이처럼 벌어졌다. 녀석은 그곳에 몸뚱이를 절반 이상 힘겹게 밀어 넣고는 역시나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연속적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녀석의 손가락 끝에 담뱃갑보다 약간 작은 괴상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녀석의 표정이나 생각을 알아내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들고 기뻐하는 마음은 얼추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게 뭔데? 응?”
녀석은 그것을 드라마 속 불편한 만남의 자리에서 봉투 내미는 동작처럼 슬며시 밀어 보였다. 그것이 그렇게 내 앞에 놓이며 몇 곱절 큼직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난 네 정체를 묻고 있는 거야 이 달괄귀신…….”
내 말소리에 그 작은 기계가 반응했다, 그리고 녀석이 희멀겋게 변하며 몸을 숙여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동안 두어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녀석은 물끄러미 나를 보는 모습을 취했다.
“그게 뭐하는 기곈데? 응? 음주 측정기 같은 건가?”
녀석은 대답대신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쪽 벽에 타들어가 숯검정이 된 나뭇조각을 부러뜨려 내 앞에 보란 듯이 다가왔다. 대강 짐작은 가지만 나는 녀석의 행동을 두고 지켜봤다. 녀석의 깡마른 손가락은 보기와는 달리 허투루 움직임 없이 제법 섬세했다.
가장 먼저 그린 큼직한 동그라미만 봤을 땐 무엇을 그리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차츰 하나씩 더해지는, 크기가 제각각인 동그라미에서 언뜻 감이 오다가 일곱 번째 동그라미에 도넛 모양으로 테두리를 그리자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태양계를 그린 것이다. 숯검정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분명 태양계에 속한 행성을 그린 것이라 여겼건만 행성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동그라미는 해왕성 뒤로 여섯 개가 더 그려졌다.
녀석은 끝으로 숯검정을 꽉 눌러서 길게 테두리를 만들어 동그라미들을 감쌌다. 그리고 지구와 달을 그린 동그라미 아래에 밑줄을 두 번 그었다.
“그래 그게 지구야. 끼끼가 아니고 지구.”
녀석이 기계를 다시금 살피더니 뭔가 수월하다는 몸짓을 취해보였다. 그리고는 둥그런 몸을 움직여 벽 쪽으로 최대한 붙더니 그곳에서도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여러 개 추가로 그렸다. 충분히 알만했다. 녀석은 그 새로 그린 동그라미 중 하나에 숯검정이 부러지도록 진하게 칠해 보였다.
“넌 거기서 온거다? 외계인?”
적어도 내가 머무는 보편적인 세계의 기준으로 볼 때 지극히 일반적이며 정상적이라고 스스로 자부해도 문제없을 나의 앞에, 파리채를 휘두르는 꼬마귀신의 천진한 모습이 함께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외계인이라. 그것도 낯선 행성에서 사고사하여 영혼만 현지적응중인 이 존재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고민했다. 분명히 이러한 상황은 예상치도 못했을 뿐더러 당연히 각본에도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꼬마귀신의 음성과 어쩌면 촬영기록을 확보했다는 소기의 목적달성 외에 생각지도 못했던 원 플러스 원이 내 앞에 있다. 꼬마귀신과 마찬가지로 외계인의 음성과 녹화파일 또한 이미 상당히 확보되었음은 틀림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저 단순히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조작의혹 등 허점투성이 동영상을 확보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인류사의 위대한 업적인 것이다. 이런 믿기 힘든 일의 주인공이 나라니.
많은 시간을 마치 나무에서 수액을 뽑듯 난이도 높은 지루함으로 미진하게 흘러 보냈다. 의사소통에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아낸 것은 하나같이 가벼이 다룰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중에 하나는 아이와 관련한 직접적인 이야기였으므로 외계인과 나는 혼자 놀고 있는 아이가 대화 내용을 알아듣지나 않는지 긴장을 유지했다. 어린아이에 관한 보호방침이 우리네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라웠다.
지구상의 자연생태, 그중에서도 파리의 환경 적응력을 살피기 위한 샘플채집을 하러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팀과 함께 지구를 안방처럼 드나들었다는 외계인은 통나무집 인근에서 무리한 저공비행을 하던 중 눈앞에 나타난 고압선을 피하려다 그만 통나무집에 추락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믿기 힘든 여러 상황 속에 머물렀으므로 그의 말에 의심을 심지 않았으나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보이려 분주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가마솥을 닮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 타던 단거리 우주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번역기를 꺼내기 위해 보였던 동작을 자로 잰 듯 반복하더니 가마솥 내부에서 투명하고 두툼한 봉투 두 개를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투명하고 매끈했으나 그 재질이 비닐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져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소재 안을 꽉 채운 것은 건포도 알갱이처럼 잔뜩 웅크린 채 말라죽어있는 파리 떼 뭉치였다.
“끼기긱 끼이이끽”
혐오스러운 파리봉투를 들여다보느라 형광등을 끌어다 비추는 동안 외계인이 나를 보고 소리를 냈다. 가마솥을 들어 옮기려는 시늉을 하지만 절대적으로 힘이 부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광등을 아무데나 고정하고 침대 위 외계인 옆으로 다가갔다. 도무지 표정 따위를 읽을 길이 없는 얼굴이지만 언어를 넘는 얕은 교감이 서로 형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무쇠 가마솥 또한 무거울 테지만 이것은 뭐랄까 의도적으로 무거운 재료만 골라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무게가 상당했다. 대체 이토록 무거운 것이 어떻게 날아다녔다는 것일까. 대기 밖 거대한 모선으로부터 우린 알 길 없는 통제 에너지장을 받아서 일정범위 안에서만 활동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뭔가 오작동을 일으켰거나 아니면 독단적인 행동이 사고로 이어졌을까 하는 상상이 가지를 뻗었다.
애초에 낮은 침대라고 당연히 생각했었지만 그 또한 순간적인 압력으로 덮쳐버린 가마솥 때문에 내려앉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황상 신빙성이 있었다. 나는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는 가마솥을 움직일 방법을 찾다가 계단으로 뛰어가 너덜대는 난간 기둥을 부러뜨려 지렛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정적 속에서 나무 빠개지는 소리에 놀랐던지 벽 앞에서 혼자 놀던 아이와 외계인의 시선이 일제히 나무기둥을 들고 있는 내게로 향했다. 둘 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투명도가 잠시 멈춘 채 아이는 놀란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있었고 외계인은 가느다란 팔다리를 빠르게 몸속으로 넣어 짧은 시간동안 달걀귀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그것을 들고 다시 가마솥으로 향하자 외계인이 작은 소음을 냈다.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될 텐데’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역시나 지렛대로 쓰기엔 기둥이 너무 짧았다. 이 외계인 귀신은 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마저 무시해버리는 내 모습을 보고 지구인 전체가 똑같은 바보들뿐이라 여기진 않을까 잠시 무의미한 염려를 했으나 상관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죽어서 저 꼴을 하고 있으니.
생각을 바꿨다. 납덩이같은 가마솥은 절대 이런 방식으로 옮길 수 없었다.
“침대를 끌어내면 되잖아?”
언제 다가왔는지 아이가 한손으론 연신 셔츠 끝을 잡아 늘이면서 파리채를 든 손으로는 침대모서리를 툭툭 치며 무심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럼…… 그래볼까?”
내가 기둥을 침대 위에 풀썩 던지고 침대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외계인이 상황을 알아채고는 침대로부터 멀찍이 물러섰다. 자신이 외부 충격에 부상을 입을 것이란 착각을 한 듯했다. 하긴 이 외계인도 침대를 옮기는 방법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현재 통나무집에서 머리를 쓸 줄 아는 존재는 아이가 유일한 것 같았다. 나는 무속인의 견해가 틀렸다고 본다.
내 양 손이 침대 하부 적당한 위치를 잡아끌자 수천 년간 움직일 일이 없는 고대유물 같았던 침대가 약간씩 딸려 나왔다. 침대와 벽 중간에 절묘하게 박혀 걸쳐있던 가마솥이 기우뚱 움직임을 보였다. 가마솥이 흔들리던 그 뒤로는 힘을 많이 가하지 않아도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 스스로의 무게를 못 이기며 침대를 밀어내던 가마솥이 그만 바닥에 꿍 소리를 크게 내며 떨어졌다. 불과 0.5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지만 실로 엄청난 중량을 자랑하는 가마솥은 반동만으로 침대를 밀어냈다. 그 지나침을 웃도는 묵직한 충격에 내 양손이 반사적으로 귀 옆을 감싸려다 말았다. 나는 그 중량감과 충격 때문에 우리가 디딘 2층 전체가 이대로 무너져 내려버리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외계인 또한 놀랐는지 소리를 지르며 저만치 물러섰다. 아이만이 비어져 나온 침대 모서리에 몸이 겹쳐지며 그 자리에 무신경하게 서있었다. 창문 밖 아주 멀리서 소리에 놀란 개들이 연이어 짖어댔다.
내가 아이를 다시 벽 쪽으로 돌려보낸 것은 가마솥 때문에 생긴 침대 옆 넓어진 틈으로 보인 작은 발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형광등 때문에 모여든 곤충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벽에서 맴도는 것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침대 위 낡아빠진 담요를 걷고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틈 사이로 발을 옮겼다. 형광등 빛이 침대에 가려져 명확하게 살필 순 없었지만 그곳엔 예상대로 두부와 상반신이 심하게 훼손된 작은 시신이 있었다. 대체 얼마동안 이대로 방치되었던 것일까, 육안으로 대충 확인해보아도 피부가 이미 바짝 말라 굳어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우선 담요를 끌어다가 아이의 시신을 덮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외계인이 슬며시 옆으로 다가왔다. 스티로폼 비비는 소리를 낮게 흘리다 멈췄다.
“유감이란 말을 한 거지? 어, 잠깐……”
나는 여전히 들 수는 없지만 종전에 처박혀있던 모습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바닥에 놓인 가마솥 이곳저곳을 손바닥으로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내 손길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끼끼이 끼이익”
외계인이 바로 옆에 다가와서는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 네가 해봐.”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담요 위를 닿을 듯 말듯 미끄러져 들어간 외계인은 가마솥의 널따란 궁둥이부분에 역시나 잔가지 같은 손가락을 여러 차례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가마솥이 전기면도기만한 진동으로 몇 초간 흔들렸다. 그리고 한가운데에서 미세하고도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반으로 갈라져갔다. 그러한 모습은 내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모양이 가마솥과 유사했으므로 당연히 뚜껑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한계였다.
틈이 벌어지고 나서 혹 뭔가 다른 절차가 남았을까 하고 얼마간 기다렸지만 가마솥은 그 상태 그대로 모든 동작을 멈췄다.
나는 반투명한 채 다가가는 외계인을 지켜보았다. 외계인이 벌어진 틈 사이에 가느다란 손가락을 넣어 양쪽으로 벌리자 틈이 아주 쉽게 열렸다. 그리고 하부에서는 받침대 용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두툼한 뭔가가 여유롭게 나오더니 이내 멈춰버렸다. 따라서 가마솥은 이제 내가 봐왔던 가마솥의 모양을 완전히 잃은 채 이젠 뭐라 칭하기 어려운 괴상한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그 산만한 내부에서 가장 넓은 공간엔 외계인의 시신이 굳은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사고당시의 충격 때문인지 목 부위가 위를 향해 꺾인 듯 부자연스러웠고 그 옆에 머리 비슷한 것이 또 하나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쪼그라들어 있었다. 동그랗고 납작한 플라스틱조각 같은 두 눈은 뜨고 있는 것 같았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 주변엔 죽어서 마른 파리 부스러기가 널려 있었다.
가마솥의 내부는 납득이 가지 않는 넓은 활용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오밀조밀한 인형의 집 장난감처럼 여러 조잡한 장치들이 제법 붙어있었고, 각 버튼엔 문자나 기호인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것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봐, 저게 너…야?”
“끼이이익 끼끼익”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통나무집 적당한 위치마다 고정 캠코더를 이미 설치해 두긴 했지만 지금 눈앞의 자료를 영상기록으로 남길만한 것은 핸드폰뿐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내가 하는 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혼자 앉아서 벽에 붙은 곤충들을 괴롭히거나 몸을 비틀며 노래를 흥얼거리고만 있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오피큐알 에스티 유~”
약 5분이 되지 않는 간단한 촬영을 마치고 재생을 해보자 어둠에 싸인 탓인지 영상은 흡족하지 않았다. 마치 한밤중에 정전이 되어 암흑뿐인 집에서 홀로 가동되는 냉장고 문을 열어 내부를 찍은 것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간쯤 지날 때 영상 하부에서 투명한 비닐에 바람을 넣은 것 같은 모습으로 찍힌 외계인의 모습은 이 영상을 확인할 사람에게 귀찮을 정도로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의 필요할 것 같았다.
어지간한 건물 내부였더라면 밀물 들어차듯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을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천장이 뻥 뚫려있는 이곳에서는 집 밖의 새소리와 함께 색채들이 자리잡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이 밝아지는 만큼, 반대로 외계인과 아이의 모습이 희미해지는 것을 알았다. 나와 상관없었던 이 통나무집에 담긴 사연들에 대해, 그리고 외계인의 견해를 힘겨운 절차로 듣다보니 날이 밝아왔다. 눈앞에서 서로 마주본 상태로 온갖 이야기를 전해 듣던 중 외계인의 모습이 정도 이상으로 투명해지더니 곧 꺼질 불씨처럼 사그라져갔다. 벽 쪽을 바라보니 아이의 모습도 이미 사라져버렸고 아이가 흔들어대던 파리채만이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나는 뜨끈뜨끈한 형광등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목 줄기를 타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양팔을 벌리고 좌우로 몸을 틀어 스트레칭을 했다. 산새소리와 맑은 공기만 갖고 본다면 통나무집에서 처음 맞이한 신선한 아침이지만, 엄습해오는 피로감 탓에 아름다운 아침은 내가 누릴 것이 아니었다.
잡아 끌어내어 삐딱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침대와 벽 틈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가마솥과 그 안의 외계인 사체, 그리고 내가 담요로 덮어둔 아이의 사체가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악몽을 꾼 것이 아니었다. 녹음장비의 저장기록을 확인해보았다. 밤사이의 버릴 것 하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 빽빽하게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전 중엔 에너지 보충을 위해 충분히 자둬야겠다. 자고나서 대업을 이어갈 생각을 하니 흡족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통나무집 밖으로 나서고서 텐트를 향해 걸으며 온 몸을 감싸는 감당 못할 피로를 느꼈다. 텐트 내부로 기어들어가던 기억이 드문드문 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 앞에 섰을 때 순간적으로 주변 사물이 틀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아주 독특한 두려움을 동반해서 찾아왔다. 컴퓨터 모니터의 해상도나 픽셀을 조절할 때처럼 뭔가가 퉁 하는 옅은 충격과 함께, 내 몸이 흔들리는 거함위에 버티고 서서 힘겨워 하는 현실적이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이 상태 속에서 몇 분만 버틴다면 멀미에 괴로워할 것이 불 보듯 빤 하지만 벗어날 대책은 막막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발을 뜻대로 딛기조차 어려웠다. 진흙에 박혀버린 다리를 뽑듯이 온 힘을 다해서 어려운 한 걸음을 옮겼다. 그 발이 땅을 딛자마자 바닥이 통째로 내려앉으며 몸이 180도 뒤집혔다. 바닥이 천장이 되고 천장은 바닥이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긴 했지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외계인 스티로폼 소리의 근원지가 어디인가 찾으려 할 때 한쪽 벽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위태롭게 달리는 외계인이 나를 미처 살필 겨를도 없이 거실을 지나 또 다른 벽으로 사라져 묻혀버렸다. “야이 달괄귀신아!” 외계인을 쫓다가 모습을 드러낸 아이가 뒤집힌 거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외계인이 사라진 곳과 전혀 동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사라졌다. 아이의 말소리와 스티로폼 소리가 한데 섞여서 공기 중에 흡수되지 않고 내 주변을 떠돌았다. 통나무집과 나 그리고 두 꼬마귀신들이 유리로 만든 공안에 갇혀 진공상태 속을 부유하는 느낌이 짙었다.
다시금 발을 높이 들어서 땅을 내리치듯 힘껏 구르자 지축이 기다렸다는 듯이 뒤집히다가 고스란히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속이 메스껍고 관자놀이에선 맥박 진동이 점차 크게 증가했다. 시간마저 멈춰버린 것 같은 공간을 거꾸로 허우적대며 온전한 위치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 몇 차례나 더 반복되었는지 모르겠다. 좌우의 평행은 극도로 민감한 선 위에 놓여 여차하면 뒤집히겠다는 심산으로 나를 괴롭혔다.
깊은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인 흐름으로 가는 열쇠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았다. 한참 끌어 모았던 숨을 길고 천천히 내뱉기를 반복하며 얼마인지 모를 시간을 보냈다.
어느 때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주변 사물이 모두 안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 페인트로 칠해놓은 벽의 섬뜩한 낙서, 그리고 낡은 가구와 쓰레기더미들. 그것들이 죄다 머리 주변에서 옅은 현기증과 함께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돌고 있는 착각이 있었지만 서서히 잦아들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대로 피로에 젖은 몸을 누인 채로 잠시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누운 채 몇 분이 흘렀을까 미세하게 괴롭히던 어지럼증이 서서히 잦아들어갔다. 기분 나쁘게 틀어졌던 모든 것들이 초침과도 같은 여유로운 시간으로 되돌아와 또렷하게 기준점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꼬마귀신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주변은 고요했고 집 밖에서는 영역다툼이라도 난 것으로 생각되는 까치들의 성난 소리가 한차례 시끄럽다가 점차 멀어져갔다.
언제부터 여기에 누워있었던 것일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곳마다 수북한 쓰레기더미와 떨어져나간 문짝들, 그리고 붉은 페인트 글씨가 사라지고 없었다. 장소는 분명히 맞으나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천장엔 고풍스러운 조명이 내 바로 머리 위로 떨어지기라도 할 듯이 매달려 있었고 벽엔 밝은 빛깔 도배지가 발라져 있었다. 소파역시 먼지하나 없이 깔끔했으며 장식장엔 값이 꽤 나가 보이는 가지각색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바닥과 내 등 사이엔 부드럽고 널따란 카펫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2층 계단에 서있는…… 나는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바로 고쳐 앉았다. 계단 중간치서 우뚝 멈춘 채 나를 응시하고 있는 낯선 할머니를 발견한 것이다.
체구가 굉장히 왜소한 그 할머니는 약수터에서 방금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위아래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었고, 투명썬캡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약간 굳어져 있었다.
“옴마? 시방 남의 집에서 뭣하고 자빠졌디야?”
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깜빡여보고 주변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여기는 통나무집 거실이 맞긴 한데 모든 것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지만 죄다 흠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헌데 저 할머니는…… 마실 나온 동네 주민이실까? 혹시 집주인이라면? 아니다 사전 조사할 때에도 이곳은 빈집으로 방치되던 것을 분명히 확인하지 않았던가?
“저기……할머닌 누구신지……?”
“염병할……술을 처마실라믄 곱게 처마실 것이지.”
할머니는 말을 마치자마자 힘겨워 보이는 걸음걸이로 돌아서서는 난간을 붙잡고 2층 방으로 향했다. 나를 향해 상소리를 퍼붓기는 하지만 대조적으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주야- 이 잡것이가 또 워디로 가부렀다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녹음장비 따위는 없었다. 아직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할머니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나치게 깨끗해진 거실을 가로질러 튼튼하고 매끈한 계단을 오르다 난간 한 지점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역시나 내가 뜯어낸 난간기둥마저 말끔히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밝은 햇살이 문지방을 넘어 기울어지는 2층 방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부터 디밀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간 할머니는 분명 이 방 말고는 갈 곳이 없었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방은 한 눈에 봐도 어린아이의 공간임에 틀림없을 디자인으로 앙증맞게 꾸며져 있었다. 소박함과 사치스러움의 정확한 중간선을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옅은 분홍빛 시트가 인상적인 침대엔 작은 아이가 방금 전에 빠져나간 듯 얇은 이불이 봉긋 솟아 있었고 벽과 만나는 침대모서리엔 사람 만 한 곰 인형이 짧은 두 다리를 펴고서 무게를 못이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침대 맞은편엔 어린아이가 쓰기엔 많이 커 보이는 책상이 있었다. 책상서랍장 위 공간엔 플라스틱 파리채가 놓여있었고 책상 위엔 무엇을 만들려 했는지 어설프게 오려놓은 색종이 조각들과 어린이용 공책이 펼쳐져 있었다. 공책엔 여러 장에 걸쳐서 힘주어 쥔 연필로, 팔다리는 괴상했지만 눈과 입은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별달린 막대를 손에 쥔 긴 머리 공주가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내 손은 빳빳하게 길이 난 공책을 접어 표지를 살폈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봐옴직한 금발에 큰 눈이 초롱초롱 귀여운 소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 웃음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의 화려한 치맛단 위엔 삐뚤빼뚤한 연필글씨로‘박영주’라고 쓰여 있었다.
천장 또한 말끔했다. 조금도 틈을 허락하지 않는 굵직한 통나무들이 연속적으로 길게 기울어져 있었고 그 한복판에 밖으로 열리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 아래엔 어린아이가 밟고 올라설만한 작고 튼튼한 사다리가 있었지만 내게 사다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열릴지 의심스럽도록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밖으로 힘주어 열어젖혔다. 활엽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크게 부채질하듯 흔들렸고 햇살이 간혹 잎사귀 사이를 뚫고 내려왔다. 하늘은 작은 구름 두서너 점만이 멀찍이 보이는 쾌청한 날씨였다. 어디쯤 붙어있는지 짐작만 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매미소리는 시끄럽지 않았다.
기운차 보이는 파리 한 마리가 윙-소리를 내며 창틀 위에 앉아 날개를 정리하나 싶다가는 다시 날아오르고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더니 내 팔 안쪽에 날아와 붙었다. 파리는 팔의 움직임이 없는 불과 몇 초간의 시간동안 안심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리고 둥근 머리를 두리두리 살피거나 날개까지 꺾어 싹싹 비비는 등 부산스런 행동을 이어갔다.
절반 이상 시야를 가리는 활엽 옆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는 오밀조밀 집 몇 채로 모여 있는 마을 일부가 보였다. 짙은 주황색과 초록색 지붕들이 골고루 섞여 보이고 마당에 묶인 큰 개와 그 앞에 쪼그려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그 작은 마을과 맞닿은 하늘에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작고도 짙은 먹구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여 재차 확인해보았다. 여전히 먹구름은 그 자리에 굳건히 버티어 있었다. 먹구름의 비상식적인 모양새에 대해 잠시 동안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저 하늘 한복판에 떠있던 먹구름이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했다.
먹구름은 바람의 저항이나 중력 따위와는 전혀 무관한 듯 제자리에서 자유로운 원운동을 서서히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썰어놓은 흰떡처럼 균형 잘 잡힌 타원형을 유지하며 내가 있는 통나무집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다가왔다. 이어서 또렷한 식별이 가능해지자 그것이 먹구름이 아니란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통나무집으로부터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왔다. 역시나 그 모양자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를 의식하기라도 한 것인지 서서히 원운동을 멈춰갔다. 상공에서 그런 낯선 광경이 벌어지거나 말거나, 새들의 움직임과 매미소리 등 동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원운동이 멈췄다.
다음순간 그것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너무도 작은 콩알만 한 것들이 테두리 전체에서 뿜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갔다. 맑은 하늘에서 준비 없이 만난 불꽃놀이 같은 형상이었다. 수많은 다른 것들은 죄다 어디로 흩어져 갔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중 하나가 방향을 잃고 흔들리더니 산자락을 가로지르는 고압선에서부터 틀어진 각으로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마솥! 시골집 아궁이에 걸쳐있어야 딱 알맞을 모양을 갖춘 그것이 허공 속을 팽개쳐지듯이 내가 있는 통나무집을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귀를 찢어버리고도 남을 굉음이 주변을 덮었다. 통나무집이 통째로 흔들리고 나는 직접적인 충격을 받아 뒤로 나가 떨어졌다. 일순간 붕 떠올랐던 내 몸은 충격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했으나 다행히도 침대 위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정면을 보니 비스듬한 천장 한가운데는 뻥 뚫려버렸고 뚫린 천장의 안팎은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내덕분에 튕겨나간 봉제 곰 인형도 이미 검고 흉측하게 불길에 휩싸여버렸다. 조금 전까지도 멀쩡했던 방 안은 크고 작은 불길들에 더해져 빠르게 타들어갔다. 그리고 내 발밑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큼직하고 뜨끈뜨끈한 가마솥이 기울어진 채 처박혀 있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불을 끈답시고 미친 듯 바닥에 손을 휘저어보았으나 불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텐트 안은 푹푹 삶는 더위로 가득 찼고, 맨몸으로 소낙비라도 뚫고 달리기라도 한 듯 온몸이 땀으로 넘쳐났다.
정신을 차린 뒤 건전지와 간식거리를 추가로 사올까 했지만, 라면은 넉넉했고 가방 뒤적이면 쓰다가 굴러다니는 건전지를 여유분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핑계거리로써 외출하는 마음을 가볍게 돌려버렸다.
적외선캠코더가 야간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통나무집 내부로 들어서자 무언가로부터 새로운 마음을 강요라도 받듯이 심기가 편치 않았다.
계단을 올라 다시금 살피는 2층 방엔 내가 철수하기 전 상황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침대는 당겨져 있었고 넓어진 틈바구니에 넉넉하게 자리 잡은 가마솥과 담요에 싼 아이의 시신, 벽 아래 놓인 파리채와 내가 파손시킨 난간 기둥이 있었다. 나는 파리채가 놓인 곳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혀 그것을 집어 들어보았다. 그리고 바닥엔 외계인이 숯검정으로 칠해놓은 행성들의 흔적 또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이의 방에 설치해 두었던 캠코더를 재생해보았다. 지난 밤사이의 믿기지 않는 흔적들이 빠르게 휙휙 지나갔다. 침대위에서 가마솥을 떨어뜨리던 시간에서는 역시나 화면이 파르르 떨리며 지진이라도 감지한 것처럼 화면 속 모든 것들이 일정시간 요동쳤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아이와 외계인의 모습이 어두운 공간에서 전혀 무리 없이 촬영되어져 있었다. 다만 캠코더의 내려다보는 각도의 차이와 투명도의 변화 감지가 육안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식별문제에 지장을 미칠만한 변수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촬영은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었다.
뚫린 천장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손되고 불탄 흔적이 역력한 천장의 단면을 올려다보니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려는 이미지들의 연속을 감지했다. 꿈에서 보았던 것이 틀림없는 그 기억의 실마리를 잡아내기 위해 나는 벽을 마주한 채로 묵념하듯 눈을 감았다. 구토가 일어날 만큼 어지러웠던 기억, 천장 밖 하늘에서 유영하던 먹구름 같은 비행체, 곰 인형……. 이미지들은 머릿속에서 산산이 흩어지기만 할 뿐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이 꿈도 영원히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았다.
핸드폰을 꺼내어 몇 분간 만지작거렸다. 아이의 시신을 언제까지나 저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만으로도 실적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이곳에서 하룻밤만 더 머문다면 더 많은 증거물을 갈퀴질 하듯이 모을 수 있었다. 정확한 사고날짜가 언제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아이의 사망과 관련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경찰수사는 내일부터 진행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지체된 날들로 봤을 때 전혀 늦는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룻밤만 더 머물 필요가 있었다. 재와 먼지가 수북한 책상 위를 입으로 한 번 불고 핸드폰을 올려두었다. 아, 아이의 공책! 그리고 박영주! 아이의 이름일 것이다. 영주를 부르던 할머니는……? 갑작스레 밀고 나오던 기억은 또 한 번 한계에 부딪혔다.
설치된 캠코더들의 배터리상태와 만족스러운 녹화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밤에 외계인과 또다시 만나 많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저녁식사를 미리 앞당겨 먹어둘 필요성을 느꼈다. 야영 이틀째 되던 날 오후인 지금, 첫날 인근 무속인의 도움을 받아 설치했던 적외선캠코더들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점검을 이상 없이 마쳤다. 전체 네 곳에 설치한 캠코더 중에 유일하게 실외에 설치한 캠코더만이 복사열에 노출되어 반숙이 되어있었다. 나는 달궈진 캠코더 접안부에 눈꺼풀이 데일까 염려되어 손가락을 먼저 대보았다. 처음에 맞추어놓은 프레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최적의 화면 안에는 3/1부분 타들어가고도 여전한 건재함을 과시하는 통나무집이 버티고 선 채 전체 윤곽을 충실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눈을 뗀 나는 육안으로 다시 한 번, 그리고 모니터 속 똑같은 화면을 재차 확인했다. 땡볕 말고는 별 것 아닌 기상상태에 비할 때 지나칠 정도로 빛에 민감한 탓인지 화면상의 배경은 실제보다 약간 짙은 빛깔을 보였다.
해가 점점 저물어감에 따라 물 위에 투명비닐이 겹친 것처럼 찾기 어려웠던 아이의 모습이 점차 윤곽을 드러냈다. 아이는 내가 자신을 보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그저 맑은 날 풀밭을 거닐다 바람에 흩날리는 잡풀 입새를 보고도 장난하는 새끼고양이와 별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주 멀리서 우릉우릉 다가오는 천둥소리가 낡은 유리창을 얕은 진동으로 흔들다 놓았다. 날씨를 미리 확인하진 않았다. 내 기록취재작업은 날씨가 가져오는 변수와는 크게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만났을 때 아이는 지난밤에 그랬던 것처럼 흥분한 상태로 있지는 않았다. 다만 늘어질 대로 늘어진 낡은 티셔츠를 변함없이 걸치고서 하늘거리거나 너덜거리는 모습으로 진득하니 있질 못했다. 느닷없이 제자리서 뛰어오르기도 하고 긴 파마머리를 손으로 분주히 감는 등 여느 어린 아이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정신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아이에게 여전히 분기가 풀리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것은 아이의 등 뒤로 시커멓게 타들어가다 못해 한쪽부터 무섭게 무너져 내리다 멈춘 문틀과 그 앞에 선 아이의 몸이 일정한 리듬으로 투명도가 바뀌는 것을 알아보게 되면서였다. 아이는 온전한 곳보다 그을려있는 부분이 월등하게 넓은 침대시트와 잿가루 뿐인 거실바닥 카펫 위에서 지침 없이 춤을 추거나 우뚝 멈춰서는 헐렁한 셔츠 속에 자신의 팔다리를 구겨 넣느라 힘들어했다. 그 까닭모를 행동은 아이가 돌아앉아 공처럼 몸을 말고 셔츠자락을 끌어 양 무릎을 감싸고서야 끝이 났다. 아이의 발목까지 셔츠 끝이 덮이고 아이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옷 안에 온 몸을 담는 자신만의 놀이가 아이에겐 이미 익숙한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적당히 어둠이 깔려오는 시각 방을 기웃거리거나 아이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나는 왜 아직까지 외계인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로지 시각에 의존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어찌 알았는지 한 손에 파리채를 거머쥐고 때마침 모습을 보이는 외계인을 향해 달려갔다. 계단에서 또 한 차례 바쁜 발소리들이 멀어졌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무한으로 반복되는 일상인 점을 새삼 깨달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정시간이 지난 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외계인을 쫓지 않았다. 나는 녹음장비를 재차 점검한 후에 외계인과의 심도 있는 인터뷰를 준비했다. 대화방식은 외계인의 번역기 하나에 의존하는 답답한 방식 외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 많은 질문을 해야 했고, YES/NO를 재차 물어봄으로써 한걸음 한걸음씩 대화를 이어갔다.
뚫린 천장을 통해서, 비라기보다는 안개에 가까운 빗물이 한 두 방울 떨어졌다. 외계인과 마주앉아 순탄하지 않을 장시간 인터뷰를 위해 난 체온을 유지해야 함을 자각했다. 적당한 것을 찾다가, 담요를 걷어낸 침대 위에 얇은 시트가 의외로 상당히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는 그것을 끌어내 어깨에 둘렀다.
파리에 관한 그의(혹은 그들의)애착은 실로 대단했다. 파리의 생태연구 수준은 우리 상식으로 봤을 때 아주 희한한 접근법을 토대로 연구해온 것 같다. 외계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는 생물종은 결코 인간이 아닌 결론이 나온다는 것에 잠시 당황했었다. 파리 또한 독보적인 지배세력이 아니며, 전 세계 각지에 고루 분포된 곤충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판단했을 때 결코 안락하지 않은 지구환경의 실질적인 승리자 집단으로 꼽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반박했다.
“지금 네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대신 파리가 주고받을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대화에 차질을 주는 단 한 가지, 뜻 전달이 원활하지 못한 점을 제외하고 외계인은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여러 차례 이거다 저거다 캐물은 후에 답을 얻게 되었다. 외계인은 이 쓸데없는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대답은 명쾌하게 했다.
“끼이익끼이(그렇다)”
지구인의 오만함으로 가려진 감각으로는 파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며, 인간은 지능이라는 개념에 대해 단면밖에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땅 위의 주인행세를 하는 시간은 전체 곤충들의 그것과 비교해볼 때 아주 미미한 시간에 불과하다고 그는 단호히 말했다.
나는 지금 통나무집 흉가에서 사고사한 외계인 귀신을 마주보고 앉아 파리만도 못한 인류 전체를 대표해서 나무람을 받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돌리고 싶었다.
“저 아이는 왜 매일처럼 널 괴롭히는 거고 너는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역시나 그는 번역기를 통해 시간을 들여 뜻을 파악했고 그 다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내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고된 노력을 했다.
처음엔 아이의 행동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다짜고짜 위협하는 아이에 쫓겨 통나무집 이곳저곳을 도망 다녀야 했지만 몇 시간 그렇게 버티고 나면 어느 순간 아이는 이내 무신경해지고 그 간격 주기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의 그러한 까닭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저모양이 된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분명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탔던 1인용캡슐엔 충격 때문에 송수신장치가 고장이 나버렸으므로 자신은 현재까지 탐사대에게 실종상태일거라 말했다.
“열이 필요하다고?”
외계인은 오랜 나날을 적잖은 고민거리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물론 나로서는 그의 표정을 읽어낼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 고민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의 유일한 살림밑천인 문제의 가마솥이 외부와 교신할 방법을 상실한 것과 자신의 시신을 고향 별로 보내고픈 깊은 소망이 그의 이성을 차츰 흐리게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기본적인 습성에 있어서 나 같은 지구인들과는 생각 틀 자체가 다른 판단으로 끌어가는 족속이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지구인끼리도 각자 흩어져 사는 민족끼리 서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문화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어쩌면 아직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을 탐사대에게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차선책으로 가마솥에 열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식은 내겐 너무나 낯설었고, 이야기가 깊이 들어갈수록 나는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다음 진행을 위해 그러지 않은 척을 했다. 자신이 사고를 당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 또한 내 상식의 범위로는 담아내지 못할 내용이었다. 다만 들은 내용을 오직 풀이로만 옮겨본다면 이 외계인 종족은 일정한 때가 되면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그리고 짚신벌레의 출아법처럼 뭔가 이런 비슷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낡은 육신에서 떨어져 나오는 빛깔 도는 새로운 육신으로 갱생하게 되는 것은 그네들로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따라서 이들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해 사망하기 전엔 불로장수가 보장된다는 얘기인데,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 몸이 변화하는 주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그 원인으로 추락사 해버렸다는 것이다. 100%는 아니겠지만 대강 이런 얘기였다. 나는 떠다니는 가마솥 안에서 갈라져 나가는 몸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항로를 이탈해 통나무집에 처박히기 직전의 외계인 모습을 상상했다.
외계인과 힘겨운 대화에 집중하느라 잠시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이가 스리슬쩍 우리 곁에서 멀어져서 계단난간에 서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외계인과의 완성도 낮은 떨떠름한 대화를 뒤로하고 궁둥이를 움직였다. 아이에게로 다가가기 전에 감싼 시트에 가려진 녹음장비현황을 다시금 살폈다.
아이는 계단에 서있었지만 시선은 허공에 머물러 통나무집 밖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행동이 궁금해진 나는 아이의 손에서 흔들리는 파리채를 손가락 끝으로 잡아 멈췄다.
“영주야?”
“…….”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나를 잠시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 눈빛은 자기 이름을 어떻게 알았느냐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불렀으면 말을 해라였을 것이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또 왔어. 촛불 사람들이.”
아이가 말한 촛불사람들은 또 뭔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전에 통나무집 바깥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장난스럽게 비추는 랜턴 빛 중 하나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다 조금 맥이 풀린 상태가 되어 아이의 셔츠 위를 지나갔다.
아이는 때 되면 몰려오는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처음엔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가꿔지지 않아 멋대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뿐인 마당 안에 시끌벅적 낯선 얼굴들이 들어서는 것부터, 그네들이 서로 가벼운 농담을 하며 들어서거나 음습한 거실에서 촛불하나 달랑 켜놓고 바들바들 떠는 모습들에 아이다운 흥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때때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그러한 행동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듯 했다. 천장에서 거꾸로 내려다보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려보기도 했지만 그러한 것에서 별로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고 한다.
십여 명이 통나무집 안으로 하나 둘 들어왔다. 가장 먼저 들어온, 덩치가 유난히 큰 남자가 입구 쪽에 서서 경계심으로 긴장한 사람들을 도왔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통나무집 이곳저곳을 랜턴으로 비추며 살피기 바빴다. 그 중에 하나는 거실 벽의 빨강글씨를 보고는 놀라는 시늉을 과장된 행동으로 보였다. 연령대가 대체로 비슷한 이 젊은 남녀는 준비해온 돗자리를 최대한 넓게 펼치며 그 외의 짐은 일단 한쪽 구석에 모아 쌓아 두었다.
“자 여러분 집중해주세요. 드디어 오늘 10기 회원들과 함께 이곳 대전흉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때마침 부슬비도 내리는데 적당한 시간에 잘 도착 했습니다. 신청하셨던 님들로 판단했던 것보다 참여율이 높습니다. 우선…….”
뒤늦게 혼자 들어온 다른 남자가 리더의 말을 막았다.
“밖에 텐트가 있어요. 여기 누가 있는 것 같은데…….”
“텐트에 사람 있어?”
“비어있긴 한데 사람 흔적이 있어요.”
“가만…….”
그가 들고 있던 랜턴을 여기저기 비추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 안에 누구 계십니까? 누구 있어요?”
리더의 갑작스런 큰 목소리에 놀란 사람은 일행 중 여성회원들 뿐만이 아니었다. 난간의 귀퉁이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숨긴 나를 아이가 무심결에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답 없음을 사람이 없는 것이라 빠른 결정을 한 팀은 만약에 텐트 주인이 돌아오면 동호회활동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내가 저들로부터 몸을 숨길 까닭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서 기가 찼다. 계단을 내려가 ‘서로 방해하지 말고 각자의 목적대로 머물다 가자’라고 미리 말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 여기 웬 캠코더가 있어요. 이거 작동 되는 중인데요?”
한 여자가 구석에 둔 가방을 열려 하다가 캠코더를 집어 들고 말했다.
“누가 있는 게 분명해요.”
“집을 죽 살펴봅시다. 두 명씩 한 조로 짜서 그렇게 둘은 저쪽 방으로 갔다 오고, 진수는 여기 회원님하고 집 뒤로 한 번 가보고, 우산 있지? 오케이, 그리고 거기 회원님들은 여자 회원들을 지켜주세요. 저는 2층으로 갔다 옵니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던 리더가, 큼직한 체구를 앞세우고 계단으로 다가왔다. 내가 다닐 땐 들을 수 없었던 삐걱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의 발걸음에 앞서 한 옴큼씩 다가오는 랜턴의 밝은 빛이 시야를 방해했다. 나는 리더와 조우하는 적절한 타이밍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먼저 다가가 인사를 청해야겠다고 생각하고서 다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서 리더의 굉음에 가까운 절규를 들어야 했다.
“어…아…아 아악~~~~~~~~!”
리더는 크게 중심을 잃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지나치게 밝은 랜턴의 빛이 내 어깨 옆으로, 2층 방 문틀로, 그리고 천장을 따라 빠른 원을 그리다 뭉뚱그려졌다. 계단 일부분이 크게 파열음을 내며 리더는 굴러 내려갔다. 그 옛날 TV에서 보던 명랑운동회의 애드벌룬 굴리기 게임이 연상되었다. 거실에 남아있던 여자회원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정신을 잃을 듯이 공간 안에서 비명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여자들이 서로 머리를 숨기기 위해 메추라기처럼 응집했고 남자들은 허둥대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리를 듣고 빠르게 모여든 2인조 탐사대원들 또한 하체에 힘이 풀려 망연자실했다.
나는 시트를 뒤집어쓰고 불쑥 나타난 내 모습에 리더가 놀라자빠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어느 틈에 계단 아래쪽에서 파리채를 들고 서있는 아이에게로 몰려있었다. 아이는 황망하게 질려있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아무 일 없다는 편안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리더는 계단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 때문인지 이미 엎어져 기절하여 거구로써 계단을 막아버렸다.
“호신 무기!”
누군가의 외침에 따라 여자들 뒤편에 놓인 가방을 향해 몇이 달려갔다. 그들은 말을 듣지 않는 손으로 어둠속 가방을 뒤져서 뭔가를 잔뜩 꺼내어 서로 나누어가졌다. 나무십자가, 마늘, 부적,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기다란 향이었다.
“에비! 에비! 훠이~ 절로 가!”
각자의 무기를 손에 든 남자들이 아이와의 일정한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산만한 위협을 보였다. 한 남자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켜자 라이터 불 또한 떨리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그 남자는 향에 불을 붙이느라 진땀을 흘렸다. 가느다란 몇 가닥이 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하필 대응시간이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향을 맡았다는 남자의 불평 가득한 표정은 어둠 속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부산떠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올려보다가 빠르게 흥미를 잃은 아이는 파리채만 살랑살랑 흔들다가 갑자기 뭔가 번득 생각난 듯이 계단 쪽으로 돌아섰다. 아이는 빠르게 투명해지며 두툼한 리더의 몸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여 올라왔다. 아이는 나 또한 무신경하게 지나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랜턴으로 아이의 뒤를 쫓던 사람들은 계단 위에 멀거니 서서 내려다보는 나를 그제야 발견하고는 또 한 차례 비명을 질렀다. 여자들의 비명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혀 깨지는 파장에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집단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우선 나라도 모습을 드러내고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등 뒤에서 스티로폼 비비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일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쫓겨 달리는 외계인이 내 뒤로 빠르게 지나가 계단을 내려가고 그 뒤로 아이가 파리채를 휘두르며 뒤를 따랐다. 요란한 발소리로 계단을 내려가던 외계인이 그 와중에 나를 잠시 올려보는 여유를 부렸다. 왜 하필 이런 때에…….
외계인과 아이는 1층 이곳저곳의 벽을 아무렇지 않게 뚫으며 서로 쫓고 쫓겼다. 투명도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둘은 추격전의 공간을 점차 넓혀갔다. 여자들 몇이 자신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외계인을 보고 그대로 실신해버렸다. 남자들 몇이 쪼갠 마늘을 정신없이 던졌지만 소용없었다. 리더가 몸을 꿈틀거리다가 난간을 붙들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정신을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엉뚱한 곳에 떨어뜨렸던 랜턴을 집어 들고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여자애 귀신 원래 있습니다! 제가 방심했었지만 그건 그다지…….”
외계인이 예상치 못하게 진로를 틀어 리더가 퍼져 앉은 계단을 향해 달렸다. 리더는 어둠속을 뚫고 달려 나오는 둥그렇고 허연 물체와 정면으로 마주치고는 또 한 번 의식이 몽롱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리더를 일으켜 자초지정을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온 몸이 풀린 채 앉아있는 리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리더가 굳은 목을 살며시 돌리며 나에게 초점을 맞추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봐요 괜찮으니까 걱정 말아요.”
리더의 눈은 이미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담기를 포기한 듯 아득했고 벌어진 턱은 심한 경련으로 닫히지 않았다. 리더가 모든 기운을 소진하고 또 한 번 늘어지기 직전에 뭔가가 어둠속에서 날아와 내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쳤다. 흔들리는 여러 불빛들 반대편을 똑바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쪽에서 날아온 것만은 틀림없었다. 통증에 비해 상처가 작았다. 하지만 뒤통수에서 끈적끈적 피가 솟구쳤다. 피 묻은 손을 한 번 보고, 발아래에 나무십자가가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채는 것과 상관없이 두툼한 마늘이 날아들어 내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양팔을 휘저어 그만 던지라고 외쳐보았으나 그들은 이미 실성한 듯 소리를 지르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던졌던 마늘을 다시 주워 던지기를 반복했다.
눈을 뜬 채 둔탁한 뭔가에 정타로 맞아버렸다. 그 순간 아픔의 인식보다는 주변의 모든 것이 불릿타임처럼 정지한 채 흐르고, 뭔지 모를 편안함 속으로 내가 서서히 들어가는 느낌이 찾아왔다. 내가 머문 시간을 누군가가 확 잡아 늘이기라도 한 듯, 모든 것이 안락했다. 이 포근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싫은 마음의 근원을 알 수 없었다.
발아래도 따뜻한 느낌이 전해왔다. 그 또한 싫지 않았다. 무한한 포근함이 얼굴을 감쌌다.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은 예쁜 여인의 품속? 아니면 하얀 천사들이 나를 포대기에 감싸고서 뭉게구름 속을 여유롭게 지나는 것일까? 내 생의 크고 작은 집착과 욕심들이 모두 부질없고 돌아볼 필요도 없는, 미련 없이 버려도 좋은, 그저 이대로 언제까지나 머물렀으면…….
“불이야! 불이야!”
언젠가 감기약을 먹고 회복되던 때와 아주 유사한 느낌을 타고 희미하게 눈이 떠졌다. 1층 거실 한쪽 바닥과 벽에 ㄴ자로 붙은 불이 날름거리며 천장을 향해 빠르게 기세를 높여갔다. 불길은 바닥에 펼쳐진 채 이미 반쯤 타버린, 내 어깨에 걸쳤던 시트에서부터 시작된 듯 했다. 도무지 조용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앞 다퉈 집을 빠져나가느라 소동의 폭을 넓혔다. 뭔가 해볼 틈도 없이 불은 사납게 번져갔다.
“이 븅신아, 향불을 던지면 어떡해!”
“빨리빨리 밖으로들!”
“캡틴마왕님 빨리 업고 나가요!”
“좀 빨리! 이러다 다 죽어요!”
여자들의 끊임없는 비명소리, 그리고 나무 타들어가는 소리와 매캐한 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연기 탓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향 분간도 되지 않는 곳에서 무작정 한 곳을 정하고 달려 나갔다. 한쪽 눈은 찰진 진흙을 발라버린 것처럼 먹먹했고 그로 인해 중심 또한 흔들렸다.
눈앞에서 불탄 벽이 밖으로 와르르 무너지며 궁금했던 많은 것이 드러났다. 평화를 간섭받지 않는 마당과 덩그러니 드러난 내 텐트, 흩어져 도망갔던 사람들. 얼른 나가서 진상을 알려줘야지. 아차!
내 소중한 기록이 담긴 캠코더들과 녹음장비는? 실로 난감했다. 불길은 점점 거세어지고, 상당한 거리를 두었음에도 열기는 감히 범접할 수가 없었다. 뿌연 연기 저편에서 스티로폼 비비는 소리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멀리멀리 희미해졌다.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꽉 끼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한쪽 눈을 손으로 막아보았다. 굵직한 빗물이 일직선으로 내려와 남은 동공을 강타했다. 정신이 들면서, 이미 몇 분 전부터 나는 마당에 대자로 누워 장대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빗물은 이마에 튀기고 코로 스미어 매캐함을 가져오거나 눈가에 고여 흘렀다.
그대로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아 뒤를 돌아보았다. 흉물스러웠던 통나무집이 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 뒷산의 수풀이 낯선 모습으로 흔들렸다. 재만 남기고 전소된 통나무집. 출입구의 철재 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쌓인 잿더미 위로 풀썩 쓰러졌다. 황망한 마음뿐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잿더미를 향해 조심스럽게 몇 걸음 옮겼지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했다. 짐작컨대 삽시간에 번진 불의 강한 화력으로 통나무집이 순식간에 타버렸고, 멀찍이 마을에서 누군가 화재현장을 발견하여 119에 신고하기도 전에 허무맹랑하게도 상황이 끝나버린 듯 했다.
빠르게 줄던 비는 어느 때를 기점으로 야무지게 뚝 끊겼다. 침묵을 유지하던 풀벌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찌륵찌륵 울어댔다. 점차 시력이 돌아온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을 삼켜버릴 기세로 비를 퍼붓던 구름은 말끔히 사라지고 유난히 밝은 별빛들이 그 자리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직 하나 남은 먹구름이 점차 빠르게 다가왔다. 그 구름은 다가오는 속도와 비슷한 리듬으로 전체 넓이가 사방팔방으로 벌어져갔다. 먹구름이 퍼진 하늘만큼 별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지상에서 불과 몇 백 미터 거리도 되지 않을 것처럼 가까워진 먹구름은 비를 뿌리지도 않았다. 움직임 또한 일반적인 구름의 패턴과는 많이 달랐다. 곱게 썰어놓은 흰 떡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서 가진 것은 여유뿐임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제자리에서 꽤 오랜 시간 천천히 맴돌았다. 먹구름은 여전히 움직임엔 변화를 주지 않은 채로, 한복판일까 아니면 어디일까 알 수 없는 곳에서 가늘고도 유난히 밝은 빛줄기를 잿더미가 된 통나무집을 향해 내리 쏘았다. 그것은 카멜레온의 혀처럼 단 한 순간에 끝나버린 일이었다. 내 눈에 간신히 남은 여운으로는 그 빛이 번갯불을 닮지 않았다는 것 정도만 판별할 정도였다.
일을 마친 먹구름은 그 자리에서 잠시 더 머물다가, 무슨 급한 볼일이 갑자기 생각나기라도 한 것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빠른 속도를 내며 하늘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목이 뻐근해지도록 멍하니 서서 바라보던 나는 잠시 후에 뭔가가 텐트 위로 팍 떨어지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빗물이 잔뜩 고인 텐트 위에 정확히 떨어지면서 오래전 우유광고에서 보았던 왕관현상처럼 물을 사방에 튀기다가 마당 풀밭에 사뿐히 팽개쳐졌다. 눈에 너무도 익숙한 그것, 분명 아이의 파리채였다.
날이 밝자마자 내가 처음으로 옮긴 행동은 당연하게도 발이 푹푹 빠지는 잿더미 속을 헤집는 것이었다. 이 잿더미에서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야 반가울 캠코더들과 녹음장비와 핸드폰 그리고 가마솥이었다.
오전시간을 다 할애하며 미친 사람처럼 잿더미 속을 뒤적거리던 나는, 씹다 버려진 껌처럼 제멋대로 녹아 우그러진 채 떡고물 바른 것처럼 재를 잔뜩 입은 캠코더 두 개와 녹음장비를 찾아냈다. 모두 하나같이 망가짐을 넘어서는 폐품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한숨이 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값으로 매길 수도 없는 그 어마어마한 대기록들이 한순간에 이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마솥은 없었다. 엉망으로 발견된 캠코더들도 어쨌든 찾아냈는데 그 큼지막한 것을 찾지 못할 리는 없었다. 정황으로 미루어 파리에 집착하는 외계인의 친구들이 다녀간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한 가닥 희망은 남아있었다. 널따란 1층 거실이었을 위치를 중점적으로 찾아 헤매다 의외로 상태가 깨끗한 세 번째 캠코더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재를 잔뜩 뒤집어썼고 방금 꺼낸 군고구마처럼 뜨끈뜨끈했지만 전원이 켜진 상태였다. 어쩌면, 어쩌면 이것 하나 만으로도 대업엔 지장이 없을 수 있었다. 손가락을 펴 뿌연 화면을 정신없이 닦아내고 저장된 영상을 찾아 돌려 보았다.
얼른 식별하기 어려운 컴컴한 배경이 보이지만 주변 소음과 섞인 음성은 여러 사람이 각자 내뱉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만을 들려주었다. 영상은 그렇게 뚜렷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긴박했던 순간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지던 비슷한 상황이 마무리되는 순간은, 누군가가 던졌을까 아니면 바닥에 놓였던 것을 의도하지 않은 발길질로 차버린 것일까. 여러 잔상만이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보이다가 한 기점에서 멈춰 섰다. 화면 속에서 발견한 내 모습은 받아들이기 의심스러운 모양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화면의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나와 거구의 리더가 화면 우측상단에 간신히 포착되어진 채 서로 몸을 포개고 있었다. 보기에 썩 유쾌할 리 없는 화면 속 내 모습은 리더의 거대한 몸 위에서 연인의 몸을 탐하는 모습처럼 매우 다정한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 얼굴은 리더의 살덩어리 가슴에 묻혀있었고,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손을 셔츠 속에 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보존이 된 유일한 캠코더에 담겨진 영상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캠코더가 바닥에 내던져지고 힘껏 여러 차례 밟았다.
젖은 텐트를 대충 털어 접고, 마시다 만 음료수를 개울에 부어서 버렸다. 파리채를 집어 들어 잠시 살펴보다가 멀리 던져버렸다. 간소한 캠핑도구와 마당에 설치했던 실적 없는 캠코더와 불지옥에서 걸어 나온 것과 진배없는 몸뚱이만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힘겨움을 요구하는 풀숲을 빠져나가 차에 옮겨 타고 곧바로 경찰서로 가 사건접수를 해야겠다. 전문 수사 인력이 투입되면 아이의 흔적과 모든 조사를 순탄히 진행하겠지. 조사에 필요하다면 경찰에 순순히 진술해줘야겠지. 아 그런데 이를 어쩌나. 사건 현장을 훼손해 버렸으니. 그 또한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면 믿어주겠지. 내가 여기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오로지 진실로써 이야기 해주면 되는 것이겠지 뭐.
침묵으로 주인을 기다리던 내 차에 다가가 트렁크를 열어 모든 짐을 쏟아 붓고는 그대로 닫아버렸다. 누런 색깔 군데군데 다 떨어져나간 간판을 억지로 단 구멍가게에서 끊었던 담배를 사서 앞 평상에 앉아 심란하게 연기를 뿜었다. 은백색 택시 한 대가 속도를 죽이며 다가왔으나 마른먼지가 나를 향해 날아와 담배연기와 일순간 겹쳤다. 택시는 내 차 옆 애매하게 좁은 틈에 솜씨 좋게 박아 주차했다. 가게 주인아낙이 나와 택시에서 힘겹게 내리는 할머니를 부축했다. 택시기사는 가랑이를 움켜쥐고 가게 뒤편으로 종종 사라졌다. 주인아낙은 할머니를 평상에 앉혔다. 두 사람은 몰골이 흉한 나를 개의치 않았다.
“차가운 식혜나 하나 내와. 기사양반은 커피 마신단다.”
곧 떨어져나갈 것 같은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간 아낙은 금세 캔 음료 두 개를 들고 나와 평상 위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화장지를 끊어 캔을 닦은 후, 식혜를 따서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목이 탔었는지 꿀떡꿀떡 소리를 내며 마시다가 밥알 붙은 것을 혀로 날름거리려다가 포기했다. 흡족한 표정으로 나온 택시기사가 양손은 허리에 얹고 배를 내밀어 할머니 앞에 섰다. 아낙이 또다시 화장지를 풀려 했지만 그냥 집어서 주는 할머니가 더 빨랐다. 택시기사는 죽-소리를 내며 캔 커피를 들이마셨다.
“그럼 언제 또 가시게?”
택시기사가 말했다.
“나도 모르지. 문병 간다고 알아보길 하나~ 반갑다고를 하나……자꾸 그 소리만 해. 달괄귀신얘기는 인제 해줘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고.”
“달괄귀신? 아~달걀얘기 하시는 거지? 누가?”
“누군 누구? 할멈 손녀 얘기하는 거잖아. 영주.”
할머니는 들고 있던 빈 캔을 평상에 탁 놓고 일어나 가게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들내외한테 맡겼으면 그냥 맘 편히 있잖고……젊은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애 쓰셨수, 담 번에 전화 할 테니 그 때 봐요.”
택시기사도 다 마신 빈 캔을 할머니가 두었던 식혜깡통 옆에 두었다. 아낙은 할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택시기사가 모든 주머니를 뒤적이다. 결국 나에게 불 있냐고 물었다.
“믿기는 힘들겠지만 그 할머니 얘기……거의 사실일 겁니다.”
택시기사는 손을 모아 라이터를 켜준 내 손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담배를 빨아 당기면서 동시에 눈만 빠르게 굴려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을 목례를 한 뒤 택시에 몸을 넣었다. 택시는 자박자박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마른 먼지를 흩날리며 멀어지는 택시 꽁무니를 보며 나는 곧바로 경찰서로 갈까, 찜질방을 찾을까, 아니면 병원을 먼저 갈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땡볕 하늘을 올려보니 눈에 통증이 아려왔다. 오늘 밤부턴 영주가 저기 어디쯤엔가 작은 별이 되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