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자폐, 질환 아닌 유전적 진화의 산물… ‘신경 다양성’ 고려해 기회 평등권 보장을 입력2022.05.11. 오전 10:51
■ 정성진의 브레인 스토리
국가인권위원회가 우리나라 최초로 실시한 국가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인권침해와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인권침해 약 54%, 차별 69%).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듯 인권침해보다 차별이 더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근대 산업화 이후 인권, 평등, 복지의 강화에 따라 인권을 보호하고 차별을 막기 위한 ‘차별금지법’을 국가별로 제정해 시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가입 조건 중 하나로 차별금지법 같은 법률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도 유사법률이 있으며, 선진국 중 우리나라와 일본만 제정돼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유사법률로 ‘양성 평등기본법’을 시행하고 있다.
해외의 차별금지법은 성별, 인종, 장애, 국적, 학력, 종교 등의 사유로 공적·사적 서비스에서 차별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영국은 2006년 평등법을 제정, 2010년 전면 개정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사례로 주목받는다. 특히 유전정보를 차별배제 대상으로 적시했다. 기존의 ‘용모 등 신체조건’을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으로 확장해 적용하고 있다. DNA를 비롯한 우리의 생체정보가 과학기술 발전으로 손쉽게 식별이 가능해짐에 따라 이런 유전지표가 새로운 차별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개인의 생체적 특징을 차별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기’와 같은 사회적 부조리를 심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에 대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신경 다양성은 신경계 이상 질환을 치료해야 할 비정상적 장애가 아닌, 사회와 함께하는 유전적 변이로 봐야 한다는 개념이다. 모든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는 난독증,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자폐 스펙트럼 등을 질환이나 장애가 아니라 유전적 진화의 산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8년 호주 사회학자 주디 싱어가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알려진 신경 다양성은 생물학적 요소를 고려한 사회적 차별금지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개인의 유전적·환경적 요인과 교육 정도 등에 따라 모두 다르며, 이로 인해 각자가 갖게 되는 정신과 마음의 다양성을 사회가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뇌 신경 연결의 다양성으로 인한 결과는 개인 간에 유의미한 ‘다름’(Difference)을 나타내는 말이지, 옳고 그르다는 의미의 ‘차별’(Discrimination)을 뜻하지 않는다. 자폐 스펙트럼의 경우 생물학적 행동, 신경 및 유전적 특성에 대한 연구 내용이 보고돼 왔다.
실제로 많은 자폐 스펙트럼 보유자가 수학 등 특별한 분야에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부분을 사회적 약점으로 보기보다 일반인과 동일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복잡해지는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비대면화, 온라인화, 가상세계화 등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태생적 이상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난독증, 우울증, 강박 장애 같은 뇌 기능 이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신경 다양성의 관점에서 이런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사회 교육과 복지를 강화하는 게 디지털 포용의 한 지름길이 된다.
빠른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는 계층은 아동이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급격한 비대면과 온라인 수업전환으로 사회적 관계 형성이 중요한 3세 아동에게서 뇌 발달 지연이 예견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유아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기초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응방안이 절실해지고 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 속에서 그동안의 뇌과학 성과를 토대로 신경 다양성을 통한 혁신적 교육과 사회적 변화 수용의 길을 찾을 수 있다. 기존의 획일적 평가 기준에 맞춰 아이들과 소수자들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신경 다양성을 토대로 한 새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으로 보는 쪽으로 인식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