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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 '요단 저편 해 돋는 편'이란 곧 요단 동편 땅을 가리키는 말로, 이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 일찍이 모세가 점령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한 땅이다(1:12-15). 민 32:19 주석 및 본장 1-6 강해, '요단 동편 지역에 대해서'를 참조하라. 한편 본절에서부터 6절까지는 요단 동편 땅에서 과거 모세가 진멸 시켰던 아모리 족속의 왕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 - '아르논'(Arnon, '급류', '물살이 빠른 시내'란 뜻)은 오늘날에는 바닥이 말라붙은 골짜기이지만, 구약 시대에는 북부 아라비아의 산지에서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서쪽으로 약 32km의 물줄기를 형성하여 엔게디(Engedi)맞은편에 위치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긴 강이었다. 아르논이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모압과 아모리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서였다(민 21:13). 그리고 가나안 땅 분배 후 이 아르논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의 남쪽 경계선을 이루었다(신 3:12). 한편 '헤르몬 산'(Mt. Hermon)은 아모리 사람들에 의해 '스닐'(신 3:9; 대상 5:23; 겔 25:5)이라고 불렸으며, 아모리 왕국의 북쪽 경계선(신 3:8; 4:48)을 이루었다. 따라서 이 산은 북부 아모리 왕국의 바산 왕옥의 영토 내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2:5; 13:1). 그리고 이 산은 여호수아에게 의해 정복된 가나안 땅의 북방 한계선(수 11:17; 12:1; 13:5)으로 묘사되었으며, 가나안 땅 분배 후에는 므낫세 영토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했다<신 3:8 주석 참조>. '동방 온 아라바'는 요단 동편의 남쪽 한계선인 아르논 골짜기에서 북쪽 한계선인 헤르몬까지 이르는 요단 계곡의 동편 지역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여기서 '아라바'(Arabah)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요단 골짜기와 사해를 포함하여 멀리 아카바 만까지 이어지는 저지대의 대계곡을 가리킨다(3:16; 8:14; 11:2, 16; 12:3, 8; 12:8; 18:18; 신 1:1; 2:8; 3:17; 4:49; 11:30).
=====12: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 - '헤스본'(Heshbon)은 요단 강 동쪽 약 29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다. 민수기 21:25-30에 따르면, 헤스본은 본래 모압 땅이었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은 이 성읍을 모압인들로부터 빼앗아 그의 수도로 삼았다. 그 이후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던 도중에 시혼에게서 이 성읍을 탈취하였다. 탈취 후 땅을 분배할 때 헤스본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된 영토 내에 속해 있었지만, 사실상 르우벤과 갓 지파의 경계선 상에 위치해 있었다(민 32:37). 그런데 갓 자손은 가나안 정복 후에 이 성읍을 재건하였다(민 32:37). 그후 갓 지파가 이 땅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후 헤스본은 갓의 성읍으로 있다가, 후일 므라리 자손의 레위인들에게 할당되었다(21:39; 대상 6:81; 민 21:26 주석참조). '아모리 사람'(the Amorites)은 족장 시대 훨씬 이전부터 요단 강 동 . 서편에 정착해 살던 가나안 원주민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죄악으로 인해 멸망이 작정된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다(3:10; 창 15:16, 19-21; 신 7:1). 그리고 '시혼(Sihon)은 모세 당시 아모리 사람들의 왕(민 21:21-30)으로, 모세는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가를 얻고자 했다. 그런데 그는 허가를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치다가 참패를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시혼을 격파한 후 이스라엘은 그의 땅을 최초의 정복지로 선포했다. 이러한 시혼의 수도는 헤스본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아르논이었고, 북쪽 경계는 얍복이었다(민 21:24). 그리고 시혼의 영토 내에는 많은 촌락과 성읍이 있었다(민 21:25). 결국 시혼의 영토는 이스라엘의 땅이 되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자손 일부가 정착한 요단 건너편(Trans Jordan)의 일부가 되었다. 아르논 골짜기 - 민 21:13; 신 2:24 주석 참조. 아로엘 - 사해 동쪽 약 22km 지점인 아르논 강의 북쪽 강 언덕에 위치한요단 강 동편의 고대 도시이다. 오늘날 아라이르(Arair)로 추정되는 '아로엘'(Aroer)은 당시 아모리 오아국의 남쪽 한계 지점을 가리켰으며, 모세 휘하의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었다(12:2; 신 2:36; 3:12; 4:18). 그후 아로엘은 르우벤 지파에게 배당되었는데(13:7, 16; 삿 11:26). 그전에 정복된 다른 성읍들과 더불어 갓의 아들들에 의해 수축되었다(민 32:34). 길르앗 - 신 2:36 주석 참조.
암몬 자손 - 창 19:38에 따르면, 롯의 두딸 가운데 작은 딸이 그 아비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벤 암미'(Ben-Ammi)라고 지었으며, 후일 이 아들이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당시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의 트랜스 요단(요단 동편) 땅에 있었으나, 이스라엘은 친척 족속이므로 이들과는 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신 2:19)을 좇아 멀리 돌아서 진행했다. 얍복 강 - 요단 동편에 위치한 약 96km길이의 이 강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곳으로 유명하다(창 32:24). 강 북쪽의 만곡선 부분은 당시 암몬 자손의 서쪽 경계를 형성하였으며(민 21:24), 그 유역 서쪽으로 멀리는 갓 지파가 정착했다. 그리고 강의 서쪽 부분은 길르앗 지역을 둘로 구분시키는 천연적인 정치적 경계가 되었고(신 3:12, 16), 한편으로는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인 시혼 왕국과 옥 왕국을 구분지어 주는 강이기도 했다.
=====12:3
긴네롯 바다 - '갈릴리' 바다의 별칭으로 '긴네렛' 바다(신 3:17)로도 불리운다. 대략 남북이 22km, 동서가 14km 정도 되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이다. 상세한 내용은 13:24-28 강해, '갈릴리 바다'를 참조하라. 염해 - '사해(死海)'의 별칭으로 본래는 싯딤 골짜기였다(창 14:3). '아라바해', '동해'라고도 불리운다. 신 3:17 주석 참조. 벧여시못 - 모압 평지에 있는 헤스본 지역 성읍들 중의 하나로서, 나중에 르우벤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된 곳이다.(13:20). 민 33:49에 따르면,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최후로 진을 쳤던 곳으로 나타나 있다. 비스가 산록 - '비스가'(Pisgah)란 명칭은 '비스가 산꼭대기'(민 21:20; 23:14; 신 3:27; 34:1), '비스가 산록'(신 3:17; 4:49) 등의 결합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산록'(山麓)이란 산의 구릉(丘陵)이 시작되는 산기슭을 뜻한다. 그리고 비스가 산정(山頂)에서는 모압 평지가 내려다 보이며, 서쪽으로는 사해도 보인다(신 3:17; 4:49). 후에 비스가 산록은 르우벤 지파의 영토 중 일부가 되었다(13:15-20). 한편 하나님께 서는 말년의 모세에게 이 비스가 산에 올라 멀리 언약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라고 하셨다(신 3:27).
=====12:4
르바 - '크다', '강하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곧 거인 족속인 '르바임 족속'을 가리킨다(창 14:5; 15:20; 신 3:11; 삼하 21:16, 18). 신 2:11 주석 참조. 아스다롯 - 바산 왕 옥(Og)의 고향으로서(신 1:4; 3:10), 후에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으로 할당되었다. 이 지방은 이스라엘 북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후에는 '가르나임'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신 1:4 주석 참조. 에드레이 - 바산 왕 옥이 거주한 큰 성읍으로(신 1:4; 3:10), 동쪽 사막 근처 바산의 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야르묵 강의 한 남쪽 분기(分岐)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요단 동쪽 정벌시, 모세는 에드레이 외곽에서 싸운 전투에서 옥을 쳐 부수고 그 성읍을 멸하였다(민 21:33-35; 신 3:1-6). 민 21:33; 신 3:1 주석 참조.
바산 왕 옥 - 13:12 주석 참조.
=====12:5
헤르몬 산 - 신 3:8 주석 참조.
살르가 - 바산의 동쪽 경계에 위치한 땅으로(신 3:19), 처음 므낫세 지파에게 배당되었지만, 후에 갓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대상 5:11). 바산 - 신 3:1 주석 참조. 그술 사람 - 그술 지방은 북쪽 요단 강의 동부 지방으로서 마아가 족속의 땅과함께 므낫세의 아들 야일에게 배당된 땅의 일부이다(신 3:14). 이 그술의 경계 지역은 본절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이곳까지 취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술 족속(the Geshurites)이란 말은 13:11, 13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못한 족속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다윗과 그술왕 달매의 딸인 마아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삼하 3:3; 대상 3:2). 신 3:14 주석 참조. 마아가 사람 - '마아가'는 헤르몬 산의 동 남쪽에 위치한 조그만 나라로, 남쪽으로는 '그술'과 접경을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요단 강을 건너 '아벨 벳 마아가'에 이르렀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이 땅을 정복했으며(신 3:14), 그 공로로 이 땅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었다. 신 3:14 주석 참조. 길르앗 - 요단 동편의 산지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또 넓게는 요단 강 동편의 전 지역을 가리키나(22:9 이하), 좁게는 요단 강 동편의 중앙부 지역만을 가리키기도 한다(왕하 10:33). 신 2:36 주석 참조.
=====12:6
여호와의 종 모세가...기업으로 주었더라 - 모세는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Sihon)과 바산 왕 옥(Og)을 죽이고, 그들이 다스리던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하였다. 그 분배하게 된 관정과 분배 지역은 민 32장에 잘 나타나 있다.
=====12:7
요단 이편 - 여기서 요단 이편 지역은 요단 강 서편, 곧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민 32:19). 한편 본장 7절부터 24절까지는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정복한 31왕들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 이는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정복한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키는데, 이미 11:17에 언급된 표현이다. 단지 차이점은 이곳에 서는 북부 바알갓이 먼저 언급되고 남부 할락 산이 나중에 언급되었는데, 11:17에서는 북부 바알갓이 나중에 언급되고 남부 할락 산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11:17 주석을 참조하라.
=====12:8
산지와 평지와 아라비아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 -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이 표현은 요단 동편의 가나안 땅을 대략 지형적 특성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10:40및 11:16에도 언급되어 있다(10:40 주석 참조). 단지 차이점은 이곳에는 '광야'란 말이 더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광야'는 남부의 '네게브'(Negeb)라기 보다는 아라바 지역과 네게브로부터 남쪽과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유대 사막' 지역을 가리킨다. 헷 사람과...여부스 사람 - 당시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의 명칭들이 열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참조하라.
=====12:9
여리고...벧엘...아이 - 7:2 주석 참조.
=====12:10
예루살렘 - 10:1 주석 참조. 헤브론...야르뭇 - 10:3 주석 참조.
=====12:11,12
라기스...에글론 - 10:3 주석 참조.
게셀 - 10:33 주석 참조.
=====12:13
드빌 - 10:38 주석 참조.
게델 - '게델'(Geder)은 이곳에만 언급되어 있는 지명 이나, 구약 성경에서는 '그돌'(15:58), '그데라'(15:36), '그데롯'(15:41)등 유사한 지명들로 등장한다. 한편 이곳 주민이었던 그데라 사람 요사밧은 대상 12:4에 시글락(Ziglak)에서 다윗에게 모여들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세펠라(Shephelah)에 있는 유대 산지의 서쪽 비탈에 위치해 있었을 것이다. 학자들은 오늘날 이곳을 헤브론 산지의 '예둘'(Jedur)로 추정한다(Conder, Van de Velde, Keil, Robinson).
=====12:14
호르마 - 에돔변경, 유대 남쪽 험준한 지방의 마을로 '스밧'(삿 1:17)으로도 불리운다. 본절에는 게델과 아랏 사이에 있는 것으로, 15:30에는 그실과 시글락 사이에, 그리고 19:4에는 브둘과 시글락 사이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호르마(Hormah)는 민 14:45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 구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가나안의 가데스를 성급하게 침략했을 때, 아말렉군과 가나안 군대가 그들을 물리치고 호르마까지 추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일 여호수아는 이 성읍을 점령하여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하였다(19:4; 대상 4:30; 삼상 30:30). 오늘날 '아인 가데스' 북쪽 약 39km 지점에 위치한 '세바이타'(Sebeita)로 추정된다(Palmer, Keil). 아랏 - 헤브론 남방 약 30km 지점에 있는 네게브 지방 동북부의 도시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 성읍은 4번 언급되어있는데(12:14; 민 21:1; 33:40; 삿 1:16), 완만하고 넓은 경사지가 큰 평야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위치로 중요한 성읍이다.
=====12:15
립나 - 10:29 주석 참조.
아둘람 - 북쪽 세펠라(Shephelah)에서 유대 산지로 들어 오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가나안 성읍 중 하나로, 창 38:1, 2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는데, 곧 유다의 친구 히라의 고향으로 나타난다. 한편 아둘람(Adulam)은 성경에서 항상 동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다윗이 사울에게 추격당할 때 이곳에 피한 적이 있다(삼상 22:1). 이곳은 후일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고(대하 11:7), 또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자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느 11:30). 카일(Keil)은 반 데 벨드(Van de Velde)와 로빈슨(Robinson)의 견해를 따라 이곳을 오늘 날의 '데일 듀반'(Deir Dubban)으로 추정한다.
=====12:16
악게다 - 10:10 주석 참조.
벧엘 - 7:2 주석 참조.
=====12:17
답부아 - 이곳이 유다 지파의 성읍인지(15:34, 53), 므낫세 지파의 성읍인지(16:8; 17:7, 8)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 유다 평지에 속한 유다 지파의 답부아(Tappuach)일 가능성이 많다(Keil). 헤벨 - 아벡과 함께 북부의 샤론 평야에 위치한 도시로, 솔로몬의 12행정지구 중에 세번째였다(왕상 4:10).
=====12:18
아벡 - 샤론 평원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욥바의 정북동쪽인 야르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텔 라셀 아인'(Tell Rasel-Ain)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아벡'(Ahbek)은 비아 마리스(Via Maris)로 가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자주 언급되었다. 또한 이곳은 언약궤를 압류하고 실로를 파멸시킨 블레셋을 원정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삼상 4:1). 랏사론 -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 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이곳을 디베랴(갈릴리) 호수 근처의 '사루네'(Saruneh)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Knobel).
=====12:19,20
마돈...하솔...시므론 므론...악삽 - 11:1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시므론 므론'(Shimron-meron)은 '시므론'과 동일한 곳이다.
=====12:21
다아낙 - 이스르엘 계곡 남쪽에 있으며, 샤론에서 내륙을 이어주는 해안 길인 비아 마리스(Via Maris)가 이곳에 있다. 삼림이 우거진 북쪽 에브라임 산지 계곡은 매복하기에는 최적지이다. 가나안 점령 후 다아낙(Taanach)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으나(21:25), 므낫세 자손은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는 데 실패 하였고 나중에 가서야 그들을 종으로 삼았다(사사 1:27, 28). 그리고 왕국 시대에는 다아낙이 레위인들의 여러 성읍 중 하나로 묘사되었고(대상 6장), 솔로몬 치세 때에는 행정 구역상 주요한 이 곳은 므깃도 동남쪽 약 6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델 타아낙'(Tell Taanak)으로 추정된다. 므깃도 - 샤론 평야와 이스르엘 골짜기 사이에 있는 비아 마리스(Via Maris)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는 요충지이다. 따라서 이 곳은 애굽과 다메섹을 이어주는 주요 대상로(隊商路)였다. 가나안 정복 후 므깃도(Megiddo)는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되었지만, 므낫세 자손들은 므깃도나 이스르엘 평야 주변의 다른 요새 성읍들을 정복하지 못했다(17:11; 삿 1:27). 그러나 후일 솔로몬 치세 시에 므깃도와 하솔 및 게셀은 모두 정복되어 솔로몬 왕의 군사 요새로 사용되었으며(왕상 9:15), 나중에 므깃도는 솔로몬의 다섯번째 행정지구에 편입되었다(왕상 4:12). 후일 이곳은 유대 왕 아하 시야가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곳으로(왕하 9:27), 그리고 요시야 왕이 애굽의 바로 느고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곳으로(왕하 23:29, 30; 대하 35:20, 25) 유명하다. 특히 최후의 '아마겟돈'('므깃도의 언덕'이란 뜻) 전쟁이 일어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기도 한다(계 16:14, 16). 한편 로빈슨(Robinson)은 이곳을 오늘날의 '레윤'(Lejjun)으로 추정한다.
=====12:22
게데스 - '납달리 산지의 게데스'(19:35-38;20:7)라고도 불리우는데, 요단강 서편에 위치한 세 도피성 중에 하나이다(19:37;20:7;21:32). 또한 사사 바락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삿 4:6). 후일 이곳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정복당했다(왕하 15:29). 현재는 훌레(Huleh)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가데스'(Tell Kades)로 알려져 있다. 욕느암 - 갈멜 산 근처, 스불론 지파의 서남쪽 국경에 있던 한 성읍(19:11)으로,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다시 분배되었다(21:34). 욕느암(Jokneam)은 오늘날의 '텔 쿠이문'(Tell Quimun)과 동일시 되는데, 이곳은 므깃도 북서쪽 약 11km에 위치한 작은 언덕이다.
=====12:23
돌 - 11:2 주석 참조. 길갈의 고임 왕 - '길갈'(Gilgal)은 성경에서 5개와 각기 다른 곳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의 길갈은 팔레스틴 북방에 있는 갈릴리 지방의 길갈을 가리킨다. 이 길갈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명단에 나타나는 왕들이 주로 북쪽 지역의 왕들인 점으로 미루어, 이 길갈 역시 사마리아 북쪽 지중해와 갈릴리 사이에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곳은 오늘날 북부 요단 평야에 있는 '일율리예'(Jiljulieh)로 보기도 한다(Van de Velde, Conder, Robinson). 그리고 '고임'은 히브리어로 '민족들', '족속들'을 뜻하는 말로, '길갈의 고임 왕'이란 길갈 족속들의 왕을 가리킨다.
=====12:24
디르사 - 동쪽 아담의 시내쪽에서 요단 계곡으로 들어가는 와디 파라(Wadi Farah)의 내리막 길에 위치해 있다. 이 주위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며(아 6:4),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17:2, 3). '디르사'(Tirzah)는 오므리가 사마리아 성을 건축할 때까지 여로보암 1세로부터 바아사와 엘라와 시므리 때 까지 약 40년간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다(왕상 14:17; 16:8, 9). 이곳의 오늘날의 위치는 세겜에서 북으로 약 2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탈루자'(Talluza)로 추정된다(Robinson, Knobel, Van de Velde).
11:16-23과 더불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사에 대하여 개괄하고 있는 장이다. 이러한 본장에는 특히 모세가 정복된 요단 동편의 땅의 범위와 왕의 이름(1-6절) 및 여호수아가 정복된 요단 서편의 땅의 범위와 왕의 이름이 요약되어 있다(7-24절).
이처럼 본서 기자가 가나안 땅 분배에 관해 기록하기 앞서 계속 가나안 정복사를 기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이다. 즉 그는 이 가나안 정복 사건이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본장은 항상 당신 백성을 도우시고 친히 인도해 주시는 수호자 하나님을 증거해 준다(신 33:29 ; 시 54:4 ; 사 41:10). 그러므로 그분의 장중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께 존귀를 돌릴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고전 10:31).
1.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땅(12:1-6)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땅의 범위와 그 땅들을 지배하던 두 왕, 곧 시혼과 옥의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1-5절). 또한 과거에 모세가 이 땅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6절).
그런데 요단 동편 정복에 관한 이러한 기사가 본서에 잘 나타나 있지 않고 민수기에 잘 나타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진멸에 관해서는 민수기 21:12-35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이 땅의 분배에 대해서는 민수기 32:29-42에 잘 나타나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처음에 이들 두 왕의 땅을 전투없이 그냥 통과만 하려고 했으나 아모리 왕 시혼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자 그들을 진멸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산 역시 이스라엘을 대적하자 바산으로 올라가 바산의 거민들과 싸워 그들을 함락시키고 그 땅을 점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때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그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요구했었는데 모세는 그 땅을 그들이 요단 서편의 가나안을 정복하는 데 동참했다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주었다 한다.
이상에서처럼 모세 당시 이스라엘이 가나안 동편 땅을 정복한 것은 큰 의미를 띤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즉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위험을 드러내었을 뿐 아니라 가나안 거민들에게는 큰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다 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후 전개될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있어서도 반드시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임을 보여 주는 예고편이었다 하겠다.
그러니 지금 가나안 정복 사업이 완성된 시점에서 과거 그 사건을 회고하고 있는 본서 기자는 누구보다도 느끼는 감회가 새로왔을 것이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이 정복했던 요단 동편 땅의 경계를 지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요단 동편 지역에 대서 - 일반적으로 요단 동편 지역은 '트랜스 요르단'(Transjordan)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곳을 대개 '요단 저편'으로 칭한다(신 1:1). 넓은 의미에서 '트랜스 요르단'이라 하면 북쪽 끝 지역인 단(Dan) wl지방에서 남쪽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동쪽 이락(Iraq) 지방까지를 가리킨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뜻하는 좁은 의미의 '트랜스요르단'은 바산, 길르앗, 모압, 암몬, 에돔 지역 등을 가리킨다.
이곳은 수많은 골짜기들이 단애(斷厓)를 이루고 있으며 그 골짜기 사이에 시내가 흐르므로 그 주변은 관개 수로 시설이 없어도 많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요단 계곡으로부터 펼쳐져 있는 높은 산등성이의 마루는 주변의 더러운 공기를 차갑게 변화시켜 많은 분량의 비를 오게 한다. 이 빗물은 네 개의 주요한 강의 수원(水源)을 이루는바 곧 (1) 갈릴리 바다 바로 밑에 있는 야르묵 강, (2) 갈릴리와 사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얍복 강, (3) 사해로 직접 흘러 들어가는 아르논 강, (4) 사해의 최남단에 있는 세렛 강이다.
이 중 야르묵 강의 북쪽 지역인 바산은 비옥한 지대로 이스라엘과 아람 - 다마스커스 사이에 수년 동안 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한편 바산에서 남쪽으로 모압까지 이르는 지역이 곧 길르앗인데 얍복 강이 이 두곳을 북부 길르앗과 남부 길르앗으로 양분하고 있다. 다음으로 길르앗 남쪽에 있는 모압은 세렛 강과 아르논 강 사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러나 자주 위도상으로 사해 북쪽의 선상까지를 포함한다. 아르논 강 북부 지역의 고도는 평균 610-732m이지만 남부 지역은 대개 1220m 이상이다. 한편 세렛 강 남부에는 좁고도 긴 에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의 산들은 붉은 뉴비아 모래돌로 되어 있으며 평균 고도는 1525m가 넘는다. 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옛 페트라(old petra) 성읍은 경사가 매우 심한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식(Sik)으로 불리우는 좁고 긴 골짜기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성읍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단 동편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들자면 한 마디로 해발 600-1500m에 이르는 고지대란 점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아카바 만의 에시온 게벧에서 에돔, 모압, 암몬을 거쳐 바벧론으로 이어지는 주요한 국제 도로가 뚫려 있는데 곧 '왕의 대로'이다. 요단 동편 땅이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게 된 결정적 원인도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의 '왕의 대로' 통과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민 21:21-35).
한편 신약 시대에는 이곳 요단 동편을 '베레아'와 '데가볼리'로 구분하여 불렀다. 그중 데가볼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종종 언급된 지명이기도 하다(마 4:25 ; 막 5:20 ; 7:31).
2. 요단 서편에서 정복한 땅(12:7-24)
모세가 정복했던 동편 땅의 범위와 왕의 이름에 이어(1-6절)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서 정복한 땅의 범위(7, 8절)와 정복한 31명의 왕의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본문에는 가나안 남부 지역의 열 여섯 왕(9-16절), 북부 지역의 열 다섯 왕 이름이(17-24절) 정복된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여리고, (2) 아이, (3) 예루살렘, (4) 헤브롱, (5) 야르뭇, (6) 라기스, (7) 에글론, (8) 게셀, (9) 드빌, (10) 게델, (11) 호르마, (12) 아랏, (13) 립나, (14) 아둘람, (15) 막게다, (16) 벧엘, (17) 답부아, (18) 헤벧, (19) 아벡, (20) 랏사론, (21) 마돈, (22)하솔, (23) 시므론, (24) 악삽, (25) 다아낙, (26) 므깃도, (27) 게데스, (28) 갈멜, (29) 돌, (30) 길갈, (31) 디르사이다.
그런데 이상에서처럼 본서 기자가 지금껏 정복당한 가나안 왕의 명단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까닭은 하나님의 신실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비록 자그마한 성읍 국가들이긴 했으나 이토록 많이 가나안 땅에 운집해 있는 이상 이스라엘이 자력(自力)만으로 그들을 다 물리치기란 역부족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같은 싸움에 함께 하여 주사 승리할 수 있게 해주심으로 마침내 언약의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당신의 약속을 이루셨던 것이다(창 15:18-21 ; 35:12).
한편 과거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선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적 가나안 땅의 천국을 약속하고 계신다(마 5:3 ; 눅 6;20). 그리고 이스라앨과 맺은 약속을 신실되이 지키셨듯이 오늘날 우리와 맺은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고군 분투(孤軍奮鬪)하였듯이 우리 역시 의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싸움은 곧 자신을 지켜 악에 물들지 아니하며 복음의 진리를 이 땅에 증거하는 것이다. 오직 맡기운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일 뿐이다(고전 4:2).
요단 서편 지역에 대해서 - 요단 서편 지역이란 소위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의 땅'(창 15:18),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17)인 가나안 본토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창 12:5-7), 이삭(창 26:3), 야곱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고(창 28;13) 이제 이스라엘 자손이 차지한 가나안 땅이 바로 이곳이다. 이러한 요단 서편 지역은 북쪽으론 만년설에 뒤덮인 레바논 산맥, 서쪽으론 지중해 그리고 남쪽으론 네게브(Negeb)와 시나이 반도, 동쪽으론 요단강이 각각 그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곳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서 변화가 심하고 특히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요단 서편 땅은 그 특성상 또렷이 네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곧 다음과 같다.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제 1권 성경 총론, '성경의 무대 팔레스틴'을 참조하라.
(1) 북쪽 지역은 갈릴리로서 구약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비옥한 농경 지대인 광대한 에스드렐론(Esdrelon) 골짜기가 있다. 갈릴리의 고지대는 915m까지 달하며, 반면에 저지대는 610m가량 된다.
(2) 중앙 지역은 처음에는 에브라임 산지로 불리우다가 나중에는 사마리아로 불리웠다. 에브라임이라는 명칭은 이 남쪽의 반쪽을 차지했던 에브라임 족속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북반구의 산맥들은 남반구의 산맥들만큼 높지 않다. 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세겜 양편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특별히 중요한 산들이다.
(3) 남쪽 지역은 유대 지역으로서 이곳의 경사는 매우 심하지만 구약 시대에는 계단식 농사 방법으로 잘 경작되었다. 하지만 서해쪽으로 가면서 이 경사진 땅들은 메마르고 황폐하게 되어 소위 유대 사막을 영구적인 거주지가 될 만한 장소가 되지 못했다. 소위 사해 사본이라는 귀중한 문서가 발견된 곳도 사해 근처인 바로 이곳이었다.
(4) 한편 가나안 본토의 산맥들과 지중해 사이에는 해안 평야가 있다. 해안선은 없어지기 쉬운 모래 언덕으로 되어 있으나,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좋은 논경 지대가 있다. 이 해안 평야는 지중해까지 이르며 갈릴리 바다와 거의 같은 위도상에서 지중해쪽으로 돌출해 있는 갈멜 산 등성마루에 의해 끊겨진다. 이 산등성 마루의 북쪽에는 그림 같은 에스드렐론 골짜기가 동서로 드리워져 있다. 남쪽으로는 현대의 텔 아이브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샤론 평야가 있는데 이곳은 오늘날 좋은 과수원이 여기 저기 있다. 샤론 평야 밑으로는 블레셋만이 오랫동안 지배해 온 비옥한 땅이 있다. 이곳의 대부분 지역은 풍성한 수확이 나오는 질좋은 충적토이다.
한편 강우량은 남쪽으로 갈수록 차차 적어지지만 그래도 '가사'(Gaza) 지역에는 농사하기에는 충분한 양의 비가 온다. 옛 가사 지역은 주요한 성읍인 아스론과 함께 이 지역의 문화권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안 평야와 중앙 산맥들 사이에 융기해 있는 지대는 세펠라(Shephelah)로 불리우는데, 이곳 역시 농사에 적합하다. 지중해는 서쪽 팔레스틴의 전지역에 딸려 있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에 크게 영향을 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자연적인 항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해안은 유별날 정도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 아스글론(Ashkelon), 욥바(Jobba), 돌(Dor), 악고(Acco)에서만 약간의 하역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것 마저도 제한 당하였다. 때문에 약간의 이스라엘인들이 두로, 시돈, 비불로스에 좋은 항구를 소유하고 있었던 북쪽 페니키아 인에 의존하여 어업과 해상 무역을 했었다.
가나안 패망에 따른 교훈 - 이스라엘 정복 당시의 가나안은 물질 문화의 발전에 있었다. 성읍들은 잘 형성되어 있었고 가옥들은 뛰어난 건축 설계와 기술에 의해 지어져 있엇다. 건물의 바닥은 잘 포장되었거나 또는 회반죽으로 바랄져 있었고, 배수 시설 또한 발달되어 있었다. 일꾼들은 동(銅), 납, 금을 사용하는 기술이 있었다. 자기(瓷器)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게 속하였다. 애굽, 북방 메소포타미아, 구브로를 포함한 이방 나라들과 광범위한 무역을 하였으며 기술적인 지식에 있어서도 가나안은 광야 40년의 유랑 생활을 한 이스라엘보다 휠씬 앞서 있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역시 가나안 성읍들이 얼마나 견고하게 방비(防備)되어 있었고 그들의 문화가 발전되었던가를 보여 준다. 그런데 무기나 식량이 넉넉하지도 못한 이스라엘 군대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보다 훨씬 진보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실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점을 배울 수 있다.
즉 아무리 세상의 좋은 것을 소유했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멸망당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무찌르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가나안을 점령할 수 있었겠는가 ?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승 장구(乘勝長驅)하여 계속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점령해 나간 반면에 가나안 사람들은 멸망하여 비로 쓸어 버린 듯이 사라지게 되고 그들의 강력했던 왕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들의 묘비에 적혀진 패전의 기록 뿐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했음으로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에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으므로 패배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앞에는 늘 승리와 실패, 이 두 가지 겨람마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 속해야 할까 ? 이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 곧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편에 속하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와 영광스런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이 세상의 것이 많다고 자만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언제든지 사라지게 되고 만다.
영적 순례자에게 요구되는 자세 - 본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했던 가나안 왕들과 성읍들의 이름들이 회고록처럼 기록되어 잇다. 물론 이스라엘은 아직도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한 것이 아니며 앞으로 마저 정복해야 할 땅과 또한 정복할 땅을 분배해야 할 과업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잠시 여유를 가지면서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능력으로 승리한 전쟁에 관해서 뒤돌아보고 있다. 이와 같은 회상은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을 것이며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신약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 지나온 인생의 여정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회상한다는 것은 사막을 여행하는 순례자들에게 오아시스가 필요했던 것처럼 영적인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선물로 주셨는가를 망각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겨 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한편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대적자들을 무찌르고 가나안을 정복한 데 대하여 본장에서처럼 회상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행진해 나가야 했다. 사실 과거의 회상에만 빠져 앞으로 해야 할 일마저 망각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베드로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고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 17:4)하면서 현실에 안주해 버리려 했던 것과 같은 자세는 피해야 한다. 신자에게는 죽는 그날까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도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만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할 때까지 전진해야 했듯이 신약의 성도들 역시 계속 행진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여기에는 정지도 퇴보도 있을 수 없고 오직 전진만 있을 뿐이다. 이 순례자의 길이 멀고 험하고 외롭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좁은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갖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모든 어려움들을 이기게 하시어, 마침내는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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