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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 이 지명들은 14:6에도 등장하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지명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와는 달리 동쪽으로부터 전도를 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 바울의 1차 전도여행시 개종한 것으로 알려지는 디모데가 채 1년도 안돼 시행된 2차 전도여행때에 벌써 '제자'라고 불리었다는 것은 디모데의 어릴 적 성장배경과(딤후3:15) 그 신앙의 열심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고전 4:17에서 디모데는 바울에 의해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불리운다. 바울이 그와 의기 투합한 다른 이들 모두에게 '내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걸로 보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뜻이 맞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Lenski). 그 모친은...헬라인이라 -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 곧 이방인이었다. 이를 볼 때 디모데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유대 신앙에 돈독(敦篤)하지 않았거나(Lenski) 혹은 소아시아 지역이 예루살렘보다 허약한 유대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eil). 이렇듯 유대적 전통에 철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유대인의 법에서는 아이가 어머니의 종교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디모데가 그때까지 할례조차 받지 않은 것은 유대 전통에 대한 그 어머니의 태도를 명백히 보여준다. 또한 3절의 미완료동사 '휘페르켄'(그는...였다')을 볼 때 이방인(헬라인)이었던 디모데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16:2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이라는 지명이 함께 거론된 것은, 루스드라와 더베, 이고니온 등이 서로 인접해 있어서(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거리는 31km) 상업 등 정기적인 교류가 성행하였기 때문이다.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 부모의 이방 결혼이라는 외면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이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1:22;6:3;딤전3:7). 실제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에 성도들의 평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0:22;22:12).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잘 대접하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찌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예수의 질타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마15:4).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 바울은 디모데를 그의 복음 사역에 있어 동료이자 조력자(助力者)로 삼고 싶어하였다. 즉, 바울은 1차 전도여행때 요한 마가가 담당했던 역할을 이제 디모데에게 담당시키고자 하는 것이다(13:5). 디모데는 이때부터 바울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 디모데라는 이름은 바울이라는 이름과 함께 고린두후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디모데전.후서 등의 서두에서 등장한다. 이때 디모데의 나이를 15세 혹은 18세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바울의 1,2차 전도여행의 간격이 채 1년도 안되었던 걸로 보아 이보다 많은 21세쯤으로 추청된다(Lenski). 유대인을 인하여...할례를 행하니 - 예루살렘에서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과(갈2:3) 달리, 바울이 여기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했다 하여 문제삼는 자들이 있다. 고전 7:17-20을 쓴 바울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고(Haenchen) 그래서 이 부분이 나중에 편집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썼던 것뿐이지, 무조건적으로 유대인의 전통을 모욕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20)라는 말씀은 바울의 이러한 선교적(宣敎的) 전략을 잘 대변한다. 바울은 그 자신이나 실라처럼 디모데도,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이라고 비난받지 않고 순조롭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자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양친이 모두 이방인이었던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은, 부친만이 이방인이었던 디모데의 경우와 다르다. 이는...다 앎이러라 - 그 근처에 사는 유대인들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 양친의 혼합 결혼은 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을 것이며 또한 여전히 그들의 비난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16:4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 1차 전도여행시 복음을 증거했던 곳 즉,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디옥 등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지키게 하니 - 규례(the decisions)는 예루살렘 1차 총회에서 '결의된 내용'(15장)을 가리킨다. 할례 문제를 발단으로 하여 개최된 이 총회는 율법 엄수를 주장하는 자들의 폐쇄적인 태도를 멀리하고, 이방인들을 한 형제로 영접한다는 내용을 결정하여 안디옥과 수리아, 길리기아 등에(15:23) 전했다. 그러므로 남북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은 아직 그 '결의안'내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작정한'의 헬라어 '타케크리메나'는 야고보가 15:19에서 결의안을 표결에 부칠 때 사용한 '크리노'(판단하다')의 완료수동태형에 관사가 붙은 분사이다(reached, NIV, RSV;decided, LB;ordained, KJV). 개역성경의 '작정한 규례'는 이러한 원문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다소 불분명한 번역이다. 한편 '규례'(도그마타)는 토의를 위해 모인 모임에서 결정된 것을 말할 때 사용되며, 이 단어의 동사와 여격은 항상 '결정되었다'의 뜻으로 사용되지 '명령한다'의 뜻이 아니다(Lenski).
=====16:5
이에 여러 교회가...날마다 더하니라 - 본절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멘 운' 은 누가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서, 4절에 대한 '결과'를 나타낸다. 즉, 여기서는 바울의 적극적인 증거, 교육사역과 예루살렘 결정 사항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의 결과로, 교회가 굳건하게 자라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에 고대 율법의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자 새로운 이방인들이 교회에 더 많이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본절은 그때 그때마다 전후 문맥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는 6:7;9:22;12:24;19:20;28:31과 비교된다. 그리고 브루스(Bruce)는 본절을 누가의 이야기 중에 가장 중대한 결론(結論)이라고 말한다.
=====16:6
성령이...못하게 하거늘 - 성령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 뜻을 전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누가의 관심은 그 사실 '자체'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었을 수도 있고(9절;23:11) 주변 환경(環境)의 영향때문에(예를들면 유대인의 반대) 계획을 변경했을 수도 있다(Neil).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 - 이 지역에 대한 해석은 나중에 바울이 보낸 '갈라디아서'가 북갈라디아에 보내진 것인지의(남갈라디아설) 문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에 아주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1)이 구절은 헬라 문법상으로 살펴볼 때 '한 지역'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본문 '텐 프뤼기안 카이 갈라티겐 코란' 중에서 '프뤼기안'과 '갈라티켄'을 형용사로 취급, 이들이 모두 '코란'에 걸린다는 것이다. 프뤼기안과 갈라티켄이 '카이'('그리고')로 연결되어 있고 관사가 처음 낱말 앞에만 있는 걸로 보아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E.D.Burton). 남갈라디아설의 측면이 강한 이러한 주장은 행정구역상 갈라디아주 전체가 아니라 갈라디아의 브루기아 지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든지 일반적으로 브루기아 방언과 켈트 방언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로마의 갈라디아주 남쪽 내륙의 브루기아 지방에 인접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켈트족이 거주하였던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갔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2)이 구절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두 지역을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다(Lake, Haenchen). 바울 일행이 페시누스, 앙키라, 다비움에 이르는 북갈라디아 전역을 휩쓸면서 교회를 세웠으리라고 보며 그래서 나중에 그곳에 '갈라디아서'를 써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리학상으로 치명적인 결점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누가가 그 광범위한 사역을 '디엘돈'(그들이 다녀가다')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누가의 서술만으로는 바울의 행적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 일행이 아시아의 본래 선교 목적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이 아시아의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소아시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Marshall). 한편 본문에 이어 계속 언급되는 바, 소아시아로부터 드로아에 이르는 전도 여행 경로를 지도로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16:7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보면 바울이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전승에 따르면 오네시보로(Onesiphorus)에 의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비두니아 - 소아시아의 북서부 지방. 흑해와 마르마라(Marmara)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 6-10절을 통해 '성령'으로부터 '예수의 영'을 거쳐 '하나님'으로 용어가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은 단순한 표현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원초적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을 통해 어떻게 복음의 진로를 안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6:8
무시아를 지나 - 무시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드로아를 갈 수 없는데도 누가가 '디엘돈테스'(통과했다') 대신 '파렐돈테스'(지나쳐 갔다')라는 분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는 이러한 용어 선택을 통해 무시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분사를 through( 통하여)로 번역한 LB는 누가의 의도를 다소 무시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드로아 - 에게해 연안에 있는 항구(港口)로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를 잇는 배가 출입하던 곳이다.
=====16:9
밤에 환상이...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꿈과 환상은 고대에 있어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9:10,12;10:3,17;18:9;22:17). 이는 밤이든 낮이든(10:11) 상관없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밤중의 '어느 때'를 뜻하는 '디아 뉴토스'가 사용된 걸로 보아 아마도 바울이 잠들었을 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나치게 '말씀' 계시만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환상의 '시각적'요소를 배제하려는 자들도 있었다(Michaelis).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호라마'(환상')나, '오프데나이'(나타나다'), '이데인'(보다')등의 단어는 이 환상의 시각적 명료함을 잘 보여준다(Haenchen). 결국 환상은 단순한 상상이나 추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시각적인 것을 동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드로아에서 바울에게 도움을 구했던 마게도냐인이 바로 누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누가가 마게도냐인 즉, 빌립보 출신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이미 누가가 바울에게 마게도냐에 복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만남이 환상 가운데 이용하셔서 바울 일행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혹자는 드로아에서 바울이 실제로 마게도냐인들의 방문을 받은 바 있고, 이것이 심층 심리 속에서 작용하여 꿈으로 나타났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H.Marshall). 어쨌든 이 환상이 하나님이 보내신 초자연적인 환상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각양의 짐승들을 보이신 것처럼 바울에게도 환상 가운데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이다(Lenski).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담지자에게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16:10
우리가 - 본서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드로아에서이다(10-17절). 이 '우리'라는 형식과 관련하여, 바울 일행이 빌립보로 갈 때에 동행한 빌립보 주민이 있었다는 점과 그 사람이 누가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이 '우리'라는 표현이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관한 기사(11-40절) 이후에는 멈추어져 있다. (2)두번째 '우리'라는 부분(20:5-15)이 전도자들의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재방문할 때 시작되어 있다. (3)본장에서 빌립보에서의 사역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본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와 상면하게 되었다고 추론하는 학자들이 많다(Ramsay, schlatter, Wei ). 그러나 이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일 따름이다. 곧 -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바울의 순종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으뜸가는 태도는 '순종'이다(삼상15:22;히5:9;11:8;13:17). 인정함이러라 - 이의 헬라어 '쉼비바조'는 원래 '결합시키다'는 뜻으로 9:22에서는 '증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는 '결론내리다'(assuredly gathering, KJV;conclude, NIV, RSV)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16:11
사모드라게 - 드로아와 빌립보 사이, 에게해 북동쪽에 있는 섬이다. '물과 지진과 말(馬)'의 신인 포세이돈이 산으로 형성된 이 섬에서 고대 트로이 평야를 측량했다고 해서 포세이돈 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섬은 북에게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기항지(寄港地)가 되었는데, 추측컨대 바울 일행도 여기서 닻을 내렸을 것이다(Neil). 직행하여 - 의사였던 누가는 의학 용어에 익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항해 술어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유뒤드로메오'는 순풍을 받아 우와좌왕하지 않고 곧장 항해하였다는 것을 잘 드러내 주는 용어이다(Lenski). 당시의 화물선이나 여객선의 경우 바람을 잘 만나 순조롭게 항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육지나 바다의 바람과 해류를 잘 이용해야 했으며, 때로는 우회하는 항해도 감수해야 했다(18:21,22). 네압볼리 - 사모드라게로부터 16km 내륙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 빌립보의 외항으로,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로마의 도로 '이그나티우스 대로'(the great Egnat- ian way)의 동부 지역 종착 지점이었다. 한편 여기서는 저자가 함께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거쳐간 항구이름과 소요(所要) 기간 등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우리' 문장으로 기록된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20:5,13-15;21:1-8;27:1-28).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돌아올 때 닷새가 소요되었던 것(20:6)과 비교해 볼 때, 네압볼리까지 250km를 항해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그 순풍의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16:12
빌립보에 이르니 - B.C.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샘'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퇴(敗退)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다.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였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마게도냐 지경 첫성 - 누가가 빌립보를 이렇게 표현한 사실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본들 역시 차이를 보여 정확한 해석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 n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등 대다수의 본문에 따르면 '프로테 메리도스 테스 마케도니아스 폴리스'(마케도냐 지경의 첫성')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첫째가는 도시라 할만한 곳은 빌립보가 아니라 오히려 B.C.167-146년 사이에는 암비볼리였고 그 후에는 그 주의 수도 데살로니가였다. 그런하면 어떤 사본들에 '프로테'(첫째')대신 '프로테스'(제1의')로 되어 있어 빌립보가 '마게도냐 제1지구의 도시'였음을 가리켜 주고 있다. 즉, B.C.146년 전지역이 마게도냐주(州)로 개편되기 전 B.C.167년에 마게도냐가 로마인들에 의해 4개 행정규역으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에서 제1지역의 도시였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베자 사본(D)은 ' '(프로테)를 '케팔레'(우두머리', '수도')로 이해하여 주(州) 수도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때의 수도가 실제로는 암비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쟈안(Zahn)은 여러나라들이 하나 이상의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 사본을 옹호한다. 그러나 '프로테'가 도시의 경칭(敬稱)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빌립보와 같은 로마 식민지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Haenchen) 이러한 해석상의 여러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마게도냐 지구의 첫째가는 도시'로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the chief city of that part of Macedonia, KJV;the leading city of that district of Macedonia, NIV, RSV). 왜냐하면 행정상의 고려 외에 누가가 이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6:13
안식일에 -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도착한 후 첫 안식일에 지역 회당을 방문하여 가급적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의 일반적 관례(慣例)였다(13:5;14:1, F.F.Bruce).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프로슈케'(기도처')는 거의 항상 '쉬나고게'(회당')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기의 '기도처'가 실제 회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Schurer). 그러나 본절, 16절의 '기도처'는 회당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자들만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고 또 본서의 다른 곳에서 '회당'이라는 구체적 명칭이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17:1,10,17).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하나의 회당에는 최소한 10명의 남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자들만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의 '기도처'는 여자들이 관습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추측된다(MaRSHALL). 한편 이러한 기도처의 장소로는 주로 강변, 바다 근처 등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유대의 정화 의식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Marshall). 문 밖 강가에 나가 - 여기서 '강가'는 갱가이트강(the Gangites) 아니면 크레니트(the Crenides) 강변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여자들에게 - 남자가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글라우디오(Cla- udius)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 그 식민지 도시인 빌립보도 그러한 전범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작은 모임도 무시하지 않았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단순히 청중들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마18:20).
=====16:14
두아디라 성의...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 - '루디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렌스키(Lenski)는 누가가 여격을 사용해 개인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의 루디아는 개인의 이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Bruce 등) '루디아'가 이름이 아니라 단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한다. 당시 루아디라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계속 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두아디라에 있을 때 이미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들었는데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쿠엔'(듣고 있었다', '듣곤 했다')은 미완료형으로서 반복되는 모임을 암시한다. 이 동사는 루디아가 바로 첫 안식일에 회심(回心)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Lenski).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 바울의 말을 들을 때에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학자들 중에는 이 '루디아 여자'의 본명이 유오디아 또는 순두게(빌4:2)였으며 또한 회심한 간수 글레멘드(빌4:3)의 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Zahn). 또한 바울이 언급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빌4:3)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으며 혹자는 바울이 루디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Renan).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은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16: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 8:36에 등장하는 에디오피아인의 경우처럼, 루디아가 신앙을 고백한 후 곧바로 세례가 베풀어졌다. 루디아의 집 또한 고넬료의 집처럼 세례를 받았다(10:47,48;11:14). 한편 유아 세례를 옹호하는 자들은 이 구절을 포함, 이와 유사한 구절들을 통해(11:14;16:33;18:8;고전1:16) 이 집의 세례가 어린아이들도 포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어린아이 특히 유아에 대한 언급이 여기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본장 주제 강해 '유아세례' 참조). 어쨌든 이 '집' 속에 장사를 돕는 하인이나 노예들이 포함된다면 어린아이라고 해서 꼭 배제(排除)될 이유도 없다(Lenski).
=====16:16
그리이스-로마의 미신적 배경을 상기시키고 있다(8:9;13:6). '귀신'(프뉴마 휘도나)의 '퓌돈'은 고린도만 북부 파르나소스산 남쪽 언덕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에서 신탁을 지키는 신화 속의 뱀 또는 용을 가리키는데 퓌돈은 결국 아폴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퓌돈은 나중에 복화술사(腹話術師)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는데,그 내부에는 퓌돈의 영이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졌다(Plutarch).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 여종은 점을 쳐 사람들의 앞날을 알아 맞히고 많은 돈을 벌었으나, 수입금의 대부분은 주인들에 의해 착취되었다. 이러한 주인들의 태도는 약자들의 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약함을 이용하여 이윤만을 챙기려는 불의한 정치인들과 악덕 기업주 그리고 적게는 이기주의에 젖어있는 우리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16:17
바울과 우리를 쫓아와서 - '바울'과 '우리'를 구분하여 표현함으로써, 누가는 스스로를 특별히 바울을 중심으로 한 선교팀의 일원으로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 문장은 여기에서 끝나고, 빌립보성을 그리고 있는 20:5,6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가 그곳에 교회을 세우기 위해 홀로 남았으며, 몇 년 뒤 바울 일행의 마지막 전도여행시 합류(合流)했다는 사실을 추측케 해준다(Neil).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너희에게 전하는 자 - 예수의 사역중 귀신들이 소리지른 일을 상기시켜 준다(막1:24;3:11;5:7;눅4:34,41;8:28). 이 소녀의 외치는 내용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모두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헬라어 '호 데오스 호 휴시스토스'(지극히 높은 하나님')는 본래 뵈니게 사람들의 신(엘 헬루온)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히브리인들은 이 말로 야웨를 가리키고(민24:16;시78:35;사14:14;단3:26;4:32;5:18,21;에스드라상2:3) 헬라인들은 제우스를 가리키는데에 사용하였다(Roberts, Skeat, Nock). 한편 '소테리아'(구원')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죄로부터 구원을 의미했으나 이방인들에게는 사람과 물질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권세로부터 해방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귀시들린 여종의 이 외침은 바울과 실라의 사역을 명쾌하게 드러내주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복음의 사명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사43:10;딛2:15).
=====16:18
여러 날을 하는지라 - 바울이 여러 날 동안 귀신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이 여종의 외치는 소리가 처음에는 그다지 위험스럽게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복음을 널리 알리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여러 날이 경과하는 동안 바울은 이 여인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침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축출(逐出)한 것이다(H.Marshall).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즉시 나오니라 - 바울이 왜 '심히 괴로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분명치 않다. 벤트(Wendt)는 거룩한 복음이 부정한 영에 의해 증거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아울러 그 소녀의 딱한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Lenski). 소녀의 외침으로 인해 전도자들은 외관상으로는 뜻하지 않았던 유명세를 받았을 것이고, 나중에는 복음의 선포보다 귀신의 말에 더 관심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한편 귀신을 쫓아내는 이러한 능력을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도자들에게 주신 능력들 가운데 하나로,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의 정복자임을 나타내는 표적이었다(마4:24;8:16;눅4:41). 구원받은 소녀의 회심에 대해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소녀는 루디아와 그녀의 집안 사람들, 의사 누가, 직업 군인 간수 등과 함께 빌립보 초기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6:19
종의 주인들 - 이들은 사업적인 연합체였거나 혹은 단순히 개인 주인이었을 수도 있다.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 나중에 에베소에서도 그랬던 것처럼(19:23-27), 복음은 미신이나 악을 이용하여 이윤을 챙기는 자들의 사업을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누가는 18절과 19절에서 동일한 동사 '엑셀덴'(나오니라'-18절;'끊어진'-19절)을 사용함으로써 흥미로운 언어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바울과 실라를 잡아 - 이때 디모데와 누가는 왜 핍박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물론 디모데와 누가가 바울과 실라보다는 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었기 때문일 수 있으며, 또한 그 시각에 디모데와 누가가 다른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디모데가 반헬라인이고(half-Greek) 누가가 완전히 헬라인이었던 반면,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주요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보인다(Bruce, Neil). 20절과 21절에서 죄목(罪目)을 이야기하며 민족적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가')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저자 - 이곳에는 법정이나 감옥도 있었다.
=====16:20
상관들 앞에...심히 요란케 하여 - 그들은 바울이 소녀로부터 귀신을 쫓아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인종적 편견을 부추겼으며 또한 로마 제국내에 공공 평화를 해치고 폭동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로 몰아붙였다(왕상18:17;19:40;24:5). 바로 1년 전에 황제 글라우디오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축출하라는 칙령을 내렸었다(18:2). 이에따라 유대인들은 제국 전역, 그중에서도 특히 식민지역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았을 것이다(Neil).또 '요란케 한다'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 당시 유대교는 로마법에 따라 허용되었으나, 로마인이 유대인에 의해 개종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16:21
로마 사람인...전한다 하거늘 - 여기서 언급된 풍속에 대하여 혹자는 만찬때의 '거룩한 입맞춤'(필레마 하기온)의 관습이 부도덕한 동양 제의(祭儀)의 모습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Haenchen). 그러나 송사자들의 관심은 풍속보다는 그들이 더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래서 복수의 출구를 찾고 있던 송사자들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알고, 무조건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풍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아무런 근거가 없었고 사실상 악한 동기를 숨겨두고 있다는 점, 그리고 똑같이 로마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산헤드린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송사한 일과 유사하다(요19:6).
=====16:22
상관들이 - 로마의 식민지였던 빌립보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주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치 정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로마 식민지에는 '두움비리'(duu- mviri)라 하여 집정관이 두 사람씩 있었다. 그런데 일부 식민지에는 이들에게 '프래토레스'(praetores ; , 스트라테고이)라는 존칭이 적용되었는데(20,22,35, 36,38절), 이곳 빌립보에서도 그러하였다. 한편 이 집정관들 밑에는 두 사람의 '릭토르'(랍두코이)가 있었는데, 이들의 임무는 집정관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매로 치라 하여 - 바울은 이 태장(笞杖)에 대한 고후 11:25에서, 다른데에 기록이 없는 두 번의 태장과 함께 언급한다. 또한 그는 살전2:2에서 이곳 빌립보에서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대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매우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16:23
많이 친 후에 - 22절의 미완료 동사 '에켈류온'(매로 치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유대인들은 태형의 경우에 40대 이내의 매를 맞았다(신22:18;25:3). 그러나 릭토르들은 언제 매를 멈춰야 할지를 몰라서 상관의 신호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상관들은 반복해서 매를 치도록 신호를 보냈다. 바로 이것이 미완료 동사가 의미하는 바이다(Lenski). 그러므로 '많이 쳤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선한 일을 하고도 정식 재판조차 받지 않은채 심한 고난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감수해야 할 고통인지도 모른다. 든든히 지키라 - 이 말 속에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2:19에서 베드로를 지키던 간수는 베드로가 탈출하자 그 책임을 지고 목숨을 잃었다.
=====16:24
깊은 옥에 가두고 - 로마의 감옥은 보통 3종류로 분류된다. 즉, 죄수들이 햇빛을 쬐고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보통 감옥(communiora)과 견고한 빗장을 치고 잠그는 내옥(interiora) 그리고 사형수들을 수감하는 지하옥(tullianum)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내옥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양발에 착고를 채워 벽에 고정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면 발이 벌려져서 고통스런 자세가 된다(Lenski). 사실 상관은 그들이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했었다는 소문을 듣고, 특별한 감시의 필요성을 느꼈을 수도 있다(Marshall). 한편 이러한 완벽한 수감(收監) 상태는, 나중 그들의 탈출 내용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극적인 감동을 더해준다.
=====16:25
밤중쯤 되어...찬미하매 - 고난 중에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롬5:3;약1:2;벧전5:6,7). 이 내용은 기적적인 구출을 바라는 간구보다는 고난에 대한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는 전형으로서 기록된 것이다(Neil).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적적인 방법으로 풀려나게 됨으로써, 간수들은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16:26
이에 홀연히...다 벗어진지라 - 양식 비평은 옥문이 저절로 열려 기적적으로 옥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고대 세계에서는 흔했다면서(5:19-24;12:7-10;도마행전154) 35절의 이야기가 24절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즉, 양식 비평가들은 25-34절이 누가의 이야기가 아닌 삽입된 '전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가 그와 비숫한 다른 이야기와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역사적 확실성을 훼손받아야 할 근거는 없다.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가 가운데를 뚝 떼어내고 보아도 의미가 잘 통한다고 해서, 그 중간 자료를 삽입된 '전설'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섬세(纖細)하게 미쳤는가 하는 것은 '벗어졌다'는 의미의 '아네데'(* )가 제1단순과거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16:27
간수가 자다가...자결하려 하거늘 - 로마의 법에서 죄수를 도망하게 한 간수는 그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죄수들이 도망간 걸로 생각하는 간수가 검(로마의 정규 무기)을 빼어든 것은, 별다른 죄도 없이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심한 형벌을 받았는지 짐작케 해준다. 고난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도 찬미할 줄 아는 사도들과 재난 중에 자살하려고 하는 이교 로마인 간수는 얼마나 서로 대조적인가! 한편 '그 간수는 자결하려 하기 전에 왜 좀더 감옥안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는가?' 혹은 '설사 죄인들이 도망쳤다 하더라도 그것이 초자연적 힘에 의한 것이었을 때 간수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는가?'(Clemen) 등의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미 바울의 초능력 소문을 들었던 간수는 직접 눈앞의 기적에 직면하여,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막9:6;16:8,Marshall).
=====16:28
바울이...다 여기 있노라 하니 - 본문에 대해 '바울이 어떻게 어두운데도 간수가 죽으려 했는지를 알았는가?' 또한 '다른 죄수들이 하나도 도망치지 않았는가?' 하는 등의 질문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감옥안에 희미한 빛조차도 없었겠느냐고 주장하면서, 다른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초능력을 목격한 죄수들의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H.Marshall, Lenski). 그러나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때때로 그러한 것처럼, 압축된 이야기에는 저자의 목적을 뒷받침하는 중요내용들만 부각(浮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가 세목 하나하나를 논리적으로 꿰맞추지 않는 때도 있는 것이다(Marshall).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 감옥을 이 간수 혼자서만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 간수는 조수에게 등불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바울과...부복하고 - 간수는 자신이 착고에 채우며 고문했던 자들 앞에 이제 엎드렸다. 이제야 비로소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사자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려 존경의 뜻을 표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10:25). '부복하고'의 헬라어 '프로세페센'은 '앞으로 떨어졌다', '맹렬히...에 돌진했다'는 뜻을 내포하는 바, 이 간수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잘 나타내는 말이다.
=====16:30
저희를 데리고...하거늘 -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복음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가 '구원'에 관해 물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순간에 간수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17절)라고 외친 소녀의 말을 상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구원'의 의미가 간수의 근무 소홀로 인한 지위 상실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쟈안(Zahn)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죄수들은 한 명도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생들아'라고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이'(주들이여')는 존경의 어조를 내포하고 있다. 간수는 지진(地震)을 통해 자존심 따위는 모두 털어버렸다.
=====16:31
가로되...얻으리라 하고 - 본절은 초대 교회 복음 증거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대주제였다(2:38,39;3:19-26;4:12;8:12;10:43;13:38,39). 동시에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피스튜손'(믿다')은 당연히 단순과거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그 순간, 구원은 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항상 주 예수께 신뢰와 의탁을 두는 것을 뜻한다. '너와 네 집'(수 카이 호 오이코스 수)에서 '너'라는 개념이 이미 동사 어미로 표현됐는데도 '쉬'(너')가 첨가된 것은 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간수의 믿음이 자동적으로 아내나 아이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그가 자기의 인격으로 믿어야 했던 것처럼 그 식구들도 각자의 인격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16:32
그 집에...전하더라 - 10:2;11:14;18:8;고전16:15 등에도 가장(家長)과 가족들의 개종에 대한 예증들이 보인다.
=====16:33
밤 그 시에...세례를 받은 후 - 여기서부터는 문법적으로 간수가 주체가 된다. 믿음의 첫 증거로서 간수는, 전날 매질한 것을 사죄하는 의미의 일을 했다(마25:36;히10:34). 그리고는 그와 그 가족들이 지체없이 세례를 받았다. 복음의 힘이 어떠한 지를 잘 보여주는 구절이다.
=====16:34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 바울과 실라가 얼마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허기진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샬(Marshall)은 이 식사와 함께 성만찬이 베풀어졌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자기집에 올라가서'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간수의 집이 꼭 윗층에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마당에서 방으로, 그리고 식당으로 모시고 들어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Lenski). 크게 기뻐하니라 - 간수와 식구들의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적인 자살의 순간에 구원의 길로 들어선 간수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 이는 바로 복음의 역사가 아닌가! 한편 누가는 불필요한 세목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바울과 실라는 이 일을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16:35
날이 새매...놓으라 하니 - 상관은 아전(lictor, 22절 주석을 보라)을 시켜 두 사람의 유대인을 풀어주도록 하였다. 갑작스런 상관들의 태도변화에 객관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인지 어떤 서방 사본은 이 부분을, 날이 새매 상관들은 시장의 광장으로 갔고, 지난 밤의 지진을 상기하면서 두려워하며 아전을 보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닐(Neil)도 이러한 입장을 취한다. 누가는 직접적인 지식이 없을 때에는 가급적 사실 자체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상관들은 공적인 태형과 하룻밤의 투옥으로 그들의 의도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던 듯하다(Lenski, Haenchen, Marsall). 혹은 그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 대한 송사가 거짓된 것임을 발견하고 그들을 석방하도록 명령했다고 해석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Lenski)>
=====16:36
평안히 가라 - 누가는 이 인사말을 통해 간수의 회심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 인사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자주 사용하였던 유대식 인사인 것이다(눅8:48).
=====16:37
바울이 이르되...나가야 하리라 한대 - 당시 아구스도 칙령(Edicts of Augustus)에 의해 확정되고 발전된 발레리안과 포르시안법(Valerian and Porcian laws)에 따르면, 로마 시민은 로마의 보호 아래 로마 행정지역의 어느곳이나 여행하며, 본인의 동의하에서만 지방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뿐만아니라 곤란한 문제일 경우에는 지방 당국이 아닌 황제 자신에게 재판을 받기위해 호소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로마 시민의 항소권에 대해서는 22:25-29;25:9-12;26:32;28:16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때리고'의 헬라어 '데로'는 '가죽을 벗는다'는 뜻으로서 태장의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케 해준다. 그리고 '아카타크리투스'(죄도 정치 아니하고')는 이곳과 22:25에만 등장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재판에 붙여지지 않았다'이다. 상관들은 재판도 열지 않은 채 태장을 가하고 그들을 투옥함으로써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혹자는 바울 등이 왜 좀더 일찍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의아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추측컨대, 그러한 주장은 군중의 소동과 함성(喊聲)의 분위기 속에서 묻혀버렸을 것으로 보인다.
=====16:38
로마 사람이라...두려워하여 - 어쨌든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에게 취한 행위는 심각한 위법 행위였고, 이것이 상부 기관에 보고되면 충분한 문책 사유가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내세운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새로 탄생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복음에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도구로 사용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빌1:18). 둘째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물론 애매한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참으면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벧전2:19), 그 고난 자체가 즐거운 일일 수는 없는 것이다.
=====16:39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 헬라어 '에로톤'(청하다')의 미완료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관들이 계속하여 떠나기를 청하였으나, 이에 대해 바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Lenski). 상관들이 바울일행에게 빌립보를 떠나도록 요구한 이유는 머무를 경우 상관들의 범법 행위가 로마 식민지 도시 전체에 알려지게 돼,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한 까닭이었다. 둘째는 귀신들린 소녀의 주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몰려와 계속적으로 바울과 실라의 처벌을 요구할 경우, 그들 자신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16:40
두 사람이...위로하고 가니라 - '호이아델포이'(형제들')라는 용어를 보아 추측컨대, 이때 이미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 귀신들렸던 소녀 들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가 구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교회는 누가의 지도하에(17절 주석 참조), 새로 탄생한 교회들 중 가장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였다. 바울은 로마에서 구금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 A.D.62년경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 교회의 '감독들'과 '집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빌1:1) 상담과 권면의 내용을 적고 있다(빌2:25-30;4:10-19). 한편 상관들이 전도자들을 추방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난 것은 꼭 상관들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빌립보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여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한 다른 곳에서는 그들의 사역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Lenski). 그러나 누가는 빌립보에 남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10절에서 시작되었던 '우리' 문장은 17절에서 끝났다가 20:5 빌립보에서 다시금 등장한다.
앞장에서 예루살렘 공의회가 이방 기독교의 승리로 종결되었거니와 본장에서는 기독
교가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제1차 전도 여행이 성공리에 끝
나고 이제부터는 약3년간에 걸친 제2차 전도 여행으로 위대한 이방 선교사 바울의 활
동이 전개되고 있는 바, 복음은 소아시아를 떠나 지중해를 건너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
었다. 본장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주의깊게 고찰되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문맥상의 유의점. 앞장 후반부(15:36)에서부터 시작하여 18장까지 계속되는 바
울의 제2차 전도 여행은 그의 이방 선교 사역 중에서 가장 기 여정(旅程)으로서 기독
교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뜻있는 여행이었다. 예루살렘 회의의 결
과로 지금까지 문제시되었던 교회 내부의 교리적 갈등이 일소(一掃)되었으니 이로써
복음의 이방 진출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복음이 유대 땅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8:1) 예루살렘
공의회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김으로써 복음은 소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땅으로 진출하
게 되었다. 참으로 유대주의와의 대결에서의 기독교 승리는 기독교로 하여금 복음의
내용을 확고히 정비(整備)하게 함으로써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를 극복하고 세계 종
교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을 제공해 준 것이다. 이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인 복음은
(롬 1:16)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그리고 마침내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 제국에
까지 확산되어 나갈 것이었다.
(2) 하나님의 선교 계획. 본서 전체를 통하여 익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복음 사역이
인간의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
이다. 즉 선교의 주체(主體)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과 유대교의 귀의(歸依)한 헬라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
으나 하나님의 강권적인 지시에 의해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바 있었다(10
장). 본장에 수록된 마게도냐 환상 기사 역시 선교 사역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간섭과
계획을 잘 보여준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더베, 루수드라, 이고니온 등지의 여러 지역을 방문한 후 로마의
대로(大路)를 따라 중요한 해안 도시였던 에베소로 가려고 했으나 성령의 제지(制止)
를 받자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비두니아 지역으로 북상(北上)하려 하였다. 그러나 예
수의 영(靈)이 그것도 허락지 않으시고 마게도냐로 가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선교
계획은 바울이 아시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
이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하여 복음 전파의 행로(行路)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육적 뜻을 따름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는 것임을 고
백하고 있다(고후 11:16-22).
(2) 믿음의 증인들. 본서에는 복음 사역의 결실(結實)로서 믿음의 증인들이 등장한
다. 스데반과 빌립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가(6:5) 있었으며, 베드로에 의해
회심(回心)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된 백부장 고넬료(10:44). 바울의 이적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총독 서기오 바울(13:12), 그리고 디모데와 루디아가 본장에 등장
한다.
이중에서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시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되는 바,
후에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서 그 사명을 장 감당하였던 자이다. 루디아도 바
울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로서 그녀는 빌립보 사역의 첫 열매였으며 바울의 빌립
보 사역을 전심전력(專心專力)으로 도와 주었다(빌 4:3).
또한 본장에는 바울의 실라의 투옥(投獄) 기사가 등장하거니와 간수들과 그의 가족
이 구원받는 사건이 수록되어 있다. 간수들 역시 믿음의 증인들로서 바울의 이방 사역
이 본격화되면서 맺은 전도의 결실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이들은 모두 초대 교회
의 믿음의 산 증인들이었으니 이들로 인하여 복음이 널리 확장되어 나갈 수 있었다.
저자 누가는 본장에서 이방 사역에 대한 중간 보고(報告)를 하고 있는 바, 여러 교회
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 하였다고 증언한 것은 이방 선교의 사역이 풍
성한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5절).
한편 본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는 바울이 그의 여행에 디모데
를 합류(合流)시키고 환상에 의해 마게도냐로 떠나는 장면이 나오며(1-10절), 둘째 단
락은 빌립보에서의 사역 중 루디아의 회심 이야기와 귀신들린 여종을 고친 이야기가
나오고(11-18절), 마지막 단락은 바울 일행의 투옥 기사와 이적적(異蹟的) 구출 이야
기가 수록되어 있다(19-40절). 참고적으로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경로를 통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이 디모데를 택하여 마게도냐로 떠남(16:1-10)
본문은 소아시아의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행한 바울의 사역에 관하여 간략하게 묘사
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장차 복음 사역의 큰몫을 담당할 성실한 동역자 디모데를
선택하여 일행에 합류시켰다. 또한 본문에는 복음 전파 행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마
게도냐 환상이 기록되어 있는 바, 바울의 일행은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복음의 돛을
내리게 되었다. 본문에 부각되는 다음 사항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바울의 선교 방침. 본문에는 바울이 신실한 제자 디모데를 택하여 그의 이방 사
역에 참여시키며 또한 그에게 할례를 행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거니와 여기에서 바울
의 두 가지 선교 방침을 찾아볼 수 있다.
(가) 바울은 이방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여러 동역자들과 협력(協力)하였으
며 후계자를 양성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선배 바나바와 결별한 후 유능한 일꾼인 실라
를 택하였으며, 제2차 선교 여행시 드로아에서 의사 누가를 택하여 그의 사역에 동참
시켰으니(10절)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主治醫)로서의 역할을 하며 끝까지 바울의 사역
을 도왔고, 누가복음과 본서를 기록하는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본문에는 바울이 성숙
한 신앙을 소유하였던 디모데를 택하여 동역자로 삼는 장면이 나오는 바, 바울에 의해
발탁되어 훈련을 받은 디모데는 후에 에베소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역량(力量)을 발
휘하게 되었다.
(나) 적절하게 상황을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장애 요소를 제거하
고 그들에게 원활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방인의 할례와 율법 강요는
반대했으나 유대인에게는 금하지 않았으니 각자 그들이 물려받은 문화 양식을 유지하
면서 더욱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은 유대
인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유대인같이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두번째
선교 방침이었다.
(2) 성령의 인도하심. 본문에는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으나 성령께
서 그것을 막고 유럽 쪽으로 인도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복음으로 아시아
를 정복하려는 욕망(慾望)이 간절하였는데 예수의 영(靈)은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였으
니 유럽 전도가 더 시급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복음은 아시아에 머물지 아니하고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본서에 나타난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인간의 뜻이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
지하여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으로 성령을 체험한 이후부터 성자(聖子)
시대가 끝나고 성령(聖靈) 시대로 접어들었거니와 초대 교회는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
심에 의하여 이룩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다.
베드로가 삼천 명을 회개시킨 놀라운 사건(2:37-41)이나 그가 베푼 많은 표적과 기
사들(3:5;5:12-16)도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
여 교회가 흩어진 것도 복음을 더욱 확장시키려는 성령의 강권적 역사하심에 기인한다
(8:4). 또한 핍박자 사울을 회심시켜 이방인을 위한 복음 증거자로 세우신 것도 성령
의 역사였고, 바울의 선교 사역에 함께 하사 능력을 베푸시고 방향을 제시하시며 인도
하신 분도 성령이었다. 이제 바울을 유럽으로 인도하신 성령께서는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로 인도하셔서 복음을 증거케 하실 것이었다(23:11).
(3) 복음 전파자의 소명. 복음 전파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치 않았더라면 오
늘의 교회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본문에는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고 하나
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호소
(呼訴)하는 환상(幻想)을 보고 지체치 아니하고 순종하였으니 복음 전파자로서의 불타
는 사명감을 지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것은 저들을 구원하기 위함이
라는 확실한 소명 의식이 바울로 하여금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순교하기까지 진리
를 증거케 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주의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이며 어디든지 순종하며
나아갔고 이로써 구원의 세계 전역(全域)에 거하는 이방 민족에게 임하게 되었거니와
복음 전파자의 태도는 확고한 소명 의식과 더불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유아 세례의 성경적 근거. 본문에는 루디아 집안 사람들과 간수(看守)의 모든 식
구들이 바울에게 세례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당시 유아(乳兒)들도 세
례를 받았을 가능성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에 본 주제 강해에서는 현재 복음주의 교
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유아 세례의 성경적 근거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 구약성경의 근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언약의 표징으로
서 아브라함으로부터 대대로 집안의 남자들에 대해서는 생후 8일만에 할례를 시행할
것을 명하셨다(창 17:9-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세례를 할례와 결부시키며 복음 아래
서는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골 2: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징표로서 어린 아이들이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사실은 유아 세례에 대한 구약성경의 근거라 할 수 있겠다. 구약에서는 부모에게 내린
약속이 그들의 할례받은 자녀에게까지 해당되었던 바, 오순절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언
약 백성의 징표로서 세례와 이에 따른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약속을 언급하면서 그 자
녀에게까지 이 약속이 적용됨을 밝히고 있다(2:38,39).
(2) 예수의 가르침. 예수께서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은 복음서에 나
타나 있지 않으나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셨으며 나아가 어
린 아이들을 천국에 들어갈 사람의 모형(模型)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신 바 있다(막
10:14-16).
(3) 사도들이 행한 유아 세례. 본서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유
아 세례를 행했다는 흔적이 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안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
었으며(10:44-48), 바울도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의 모든 식구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14,15,32-34절). 온 식구들 가운데 어린 아이가 배제(排除)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어
른들과 더불어 어린 아이들도 함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남편이나 아내의 자녀들을 긴밀하게 결
합시켜 거룩하다고 부르고 있으며, 어린 아이들도 부모의 믿음을 통해 거룩한 상태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고전 7:14).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유아 세례는 충분한 성격적 근
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빌립보에서의 사역(16:11-18)
바울은 실라, 디모데, 누가 등으로 새롭게 전도단을 조직하여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마게도냐를 향하여 떠났다. 본문에는 바울 일행이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關門)인 빌립
보에 도착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빌
립보에서의 사역은 그 성과가 뛰어난 든든한 교회의 기반을 이룩하였다(빌 1:3-5). 다
음 세 가지 항목을 통하여 본문을 숙고해 보기로 하자.
(1)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도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었
으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나타난다(17:32). 본문에는 빌립보 사역의 첫 열매로서 루디아의 회
심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루디아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공경하는
여인으로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
녀는 유럽 지역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또한 본서에 등장하는 여자
중에 최초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이다. 이후에 잇따른 여자들의 개종이 있게 된다
(17:4).
예수 시대에도 신실한 여인들이 끝까지 주를 따랐던 것처럼 루디아라는 여인 역시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과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던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녀
는 상인(商人)이었으며 독신(獨身)이나 미망인(未亡人)으로 추측되는 바, 하나님께서
는 비천한 여인을 들어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로 귀하게 사용하신 것이다.
(2) 귀신 들린 여종과의 만남. 본문은 주로 바울과 여인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
다. 루디아의 개종(改宗) 이후 바울은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나게 되었으니 자신의 점
(占)치는 능력으로 인하여 주인에게 악용(惡用)당하고 있던 자였다. 그녀는 바울을 보
자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임을 알아보고 큰 소리로 외
쳤다. 이 장면은 귀신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소리지른 일들을 연상케
한다(막 1:24;3:11;5:7;눅 4:34,41;8:28).
바울은 그녀의 속에 사단이 역사하고 있음을 곧 알아차렸고 그녀가 무고(無故)하게
고통을 당하며 악인(惡人)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동정을 느꼈음이 분
명하다. 전도자의 눈은 비천한 여인의 눈과 또 한 번 마주치게 되었다. 주위에 모인
수많은 무리들의 시선은 바울과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3)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자들에게 주신 능력들 가운
데 하나였다(막 16:17). 예수께서는 그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귀신들을 쫓아냄으로
써 예수 자신으로 인하여 사단의 권세가 정복당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암시
하셨다. 또한 예수의 12제자들과 70인의 전도대는 예수께로부터 귀신을 꽃아내는 능력
과 권세를 부여받았다(마 10:1;막 6:7;16:17;눅 9:1;10:17). 축사(逐邪)의 표적이야말
로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나타내 주는 증거였다.
본서에서도 예수의 사도들 역시 표적을 행하는 가운데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었을 것
이나 다 수록되지 않고 오직 본문의 사건만이 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예수의 후계자(後繼者)로서 예수께서 행하신 축사의 이적을 이방 여인에게 행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이방 민족에
게도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된 이 비천한 이방
여인은 곧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이 되었을 것이며 루디아와 함께 빌립보 교회의 초대
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 신약 시대의 여행과 통신. 본서에는 여행에 관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께서
전도 여행으로 3년간의 공생애를 보내셨듯이 바울도 전도 여행을 통하여 일생을 복음
전파에 전력하였다. 이에 본 주제 강해에서는 신약 시대의 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졌으
며 어떠한 통신 수단이 존재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여행. 여행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여행 거리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가) 여행의 목적. 신약 시대에는 여행이 보편화된 것이 아니었으며 소수의 사람
들만이 멀 곳으로 여행을 했을 뿐이다. 여행의 목적은 주로 사업을 위해,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들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종교적 절기를 지
키기 위하여 순례여행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운동 경기나 학문, 의료 시설의 중심 도
시들도 여행자들을 끌어들였다.
(나) 여행의 방법. 여행은 주로 육로(陸路)와 수로(水路)를 통하여 행해졌다.
(a) 육로. 로마의 도로는 매우 복잡한 양식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훌륭한
도로와 다리의 건설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안전하게 여행을 하게 해주었다. 여리고에
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눅 10:30-37)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도로 가운데 하나
였다. 육로로 여행할 때에는 수레나 마차, 병거 그리고 짐을 싣는 동물들, 즉 낙타나
당나귀, 코끼리, 말 등의 수단을 이용하였다.
(b) 수로. 도로 이외에 많은 사람들은 수로를 이용하였으니 수세기에 걸쳐 선원
들은 강풍과 싸우며 지중해를 항해하였다. 로마로 가는 길에 지중해를 지나간 바울의
여행은 폭풍우 속을 항해한 극적인 사건이었으며(27장) 바울의 이 경험은 당시 여행자
들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다) 시간과 거리. 여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여행의 방법, 날씨, 여행자의 신체 조
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24-32km 정도 걸을
수 있었다. 예수께서 다니신 최장 거리는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에서 갈릴리 지경까지
의 길로서 약 130km 정도이다. 초대 교회의 복음 전도자들은 여행이 어려웠음에도 장
거리 여행을 통하여 곳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특히 바울은 육로와 수로를 통하여 소아
시아 전역과 마게도냐 지방을 수차례 방문하였던 바 지중해 주변을 왕래한 그의 여행
은 복음 전도에 대한 그의 정열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
겠다.
(2) 통신. 로마 제국은 무역을 활성화시키고 광범위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몇
가지 형태의 통신 제도를 설치하였다. 최초의 우편 제도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B.C.522-486)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부 우편 제도는 공적인 일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일반 시민의 우편물은 거의 취급하지 않았다. 개인 서신들은 보통 여행자들에 의해 전
달되었다.
교회와 신자들에게 보내진 초기의 편지들은 육로와 수로를 이용하는 전도자들에게
의핸 전달되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속달 우편과 유사한 파발 제도를 갖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정거장을 만들었고 이 정거장들은 여관으로도 사용되었다.
3 바울과 실라의 투옥(16:19-40)
앞문단에서 바울은 귀신들린 여종을 치유하였거니와 본문에는 그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옥에 갇히게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바울을 박해
한 자들은 동족(同族)인 유대인이었으나 본문의 핍박은 최초로 이방인들이 행한 것이
었다. 다음 항목들을 통하여 본문을 주의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1) 고난받는 사람들. 본서에는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셨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숱한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제자들에게 환난을 예고하셨고(요 16:33) 사도 바울도
고난을 전제(前提)로 하고 그의 이방 사역을 전개(展開)하였다(14:22). 시작부터 극심
한 반대를 받아오던 초대 교회는 스데반과 야고보를 비롯한 순교자들을 냈으며, 그밖
의 사도들은 안으로는 유대인과 밖으로는 이방인의 이중적 핍박을 받으며 복음을 증거
하였다. 감옥에 갇혀 매를 맞은 것은 비단 바울과 실라뿐 아니라 베드로도 당하였던
일로서(12:5-19)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
(고후 11:23-27).
본장에서는 본격화된 이방 전도가 이방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순탄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고난과 더불어 어렵게 시작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방 전도자
바울에게는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정치적으로는 이방 민족의 핍박이라는 이
중적인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찬미하는 사람들. 예수께서는 의(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거니와(마 5:10)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이 받는 고난이 결코 무익(無
益)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종으로서
의 고난이라는 특권(特權)을 누리는 자들이었으니 비록 육적으로는 매를 맞고 투옥된
처지에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었다(마 5:11,12). 바울은 지금
당하는 환난이 장차 주어질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에 비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하며
(고후 4:17;엡 3: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게 된 사실에 감사하여 기도
하며 기쁨으로 찬미의 제사(祭祀)를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본문은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인정하며 순복(順服)하
는 자들에게 기적적 능력이 임함을 보여준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獄中)에서 찬미(讚
美)하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모든 죄수들의 쇠사
슬이 다 벗겨졌으니 성령께서는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셨던 것이다.
(3) 구원받은 사람들. 당시 로마법에는 간수가 죄수를 놓칠 경우 그 죄수의 형량 만
큼의 형을 간수가 대신 받도록 되어 있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퇴역 군인 출신이
었으므로 그가 지키던 바울 일행의 신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자 엄격한 책임감 때문에
자결(自決)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바울과 실라는 구출
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간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였으니 바울은 위기의 순간에 그
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며 그 자신뿐 아
니라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바, 바울과 실라의 환경을 초월한 믿음(롬 8:38,39;빌 4:4;히 3:6)이
빌립보의 간수와 그의 가정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장에는 바울 일행이 유럽에서의 첫 사역지였던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루디아와 그의 가족,
귀신들린 여종, 간수와 그의 가족들로 미약하게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점점 굳건하여
져서 훗날 유럽 교회의 발상지(發祥地)가 되었으며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빌립보 교회
의 여러 훌륭한 모습들을 격려하고 있다(빌 1:5,27-30;2:17,18;4:3,14,15).
* 명예로운 석방(釋放). 본문에서 간수(看守)를 회심시킨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
권을 내세워 떳떳이 감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그 상황과 저자의 기록 의도 등을 본 주
제 강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빌립보에서의 사역은 루디아의 개종, 귀신들린 여종의 치유 등으로 매우 박진력(迫
眞力)있게 시작되었으나 바울 일행은 몰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상태에 직면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놀라운 이적적 사건을 체험하고 바로다음
날 석방 명령을 받았다. 로마 당국은 공적인 타협과 하룻밤의 투옥으로 그들의 소요죄
(騷擾罪)를 용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로마 당국의 석방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조용히 빌립보를 떠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매듭지어
지지 않았다.
바울은 사건이 그렇게 간단히 처리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지
닌 로마 시민의 권리를 내세웠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실라도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
다. 그들은 상관들이 친히 와서 로마 시민에게 합당한 예의를 보여주고 그들이 호위
(護衛)하는 가운데 옥에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당시 로마법은 죄목이
드러나기 전에 로마 시민을 죽이거나 채찍으로 때러거나 고문하거나 감금(監禁)할 수
없었다. 또한 만일 형이 선고되었다면 그 판결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재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울과 실라를 투옥한 것은 대단한 과오(過誤)였던 것이
다. 로마 당국은 바울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불법적인 처사에 대해 공적으
로 사과하고 빌립보를 떠나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바울의 빌립보 사역은 핍박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명예롭게 막을 내린다. 이 장면은 바울이 그의 이방 사역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로마 당국의 호의와 배려를 받게 되는 바, 그 첫번째 사례(事例)가 된다 하겠다. 바울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로마의 보호 아래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 장면이 앞으로 많이 등장하겠거니와 거기에는 저자 누가의 변증적이며 선교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본서 후반부에서 수차례 언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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