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의 가족여행 이야기 ”
박 무 균 회원 / 전 대관령지소장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내 삶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남긴다. 특히 손주들과 함께 다닌 가족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손주들이 노는 모습을 쫓아다니며 카메라에 담고, 이 영상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나의 가족은 모두 9명이다.
첫 가족여행은 2012.7월 강원도 영월 만경대산의 자연휴양림에 있는 ‘물소리 오두막’이라는 펜션에서 1박2일을 보냈다. 계곡의 시원한 물에서 손주들이 튜브를 타고 즐기는 모양이 너무 좋았다.
두 번째는 2013.5월 강화 석모도의 자연휴양림에 있는 펜션에서 조개도 구워먹고 바다 구경도 하고 돌아왔다. 세 번째는 2015.8월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와 망상해수욕장에서 2박3일을 여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리조트는 분위기가 유럽에 온 것 같았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호숫가 정자에 가족들이 둘러 앉아 정담을 나누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다음 날은 망상해수욕장의 캠핑카에서 숙박했다. 손주들이 바닷물 속에서 튜브를 타고 아빠와 노는 장면과 밤에 캠핑카 옆에서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장면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네 번째 여행은 2017.1월 아들이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게 되어 이루어 졌다. 우리 내외는 아들의 학기가 끝나는 5월초에 토론토로 같다. 공항에는 아들과 호주에서 유학중인 며느리와 손녀(10살)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여행 목적지인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있는 ‘빨간 머리 앤’의 작가 몽고메리 고향으로 갔다. 그곳까지 3일이 걸렸는데 캐나다 동부의 광활한 평야와 위로 쭉쭉 뻗은 침엽수림 사이로 시야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멋은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좌우 옆의 숲속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손녀가 ‘빨간 머리 앤’의 줄거리를 설명해주는데 신이 났다. 이곳을 가는 것도 손녀의 뜻에 따라 정했다고 한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지만 막상 가보니 경치도 좋고 흥미로운 곳 이었다. 작가의 집은 초록색 지붕의 작은 2층집이었는데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오는 길에 랩스터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며느리가 통도 크게 $400을 썼다. 우리 내외는 처음 먹어보는 요리이기 때문에 더욱 신기하고 맛있었다. 다음은 퀘벡으로 갔다. 세인트로렌스 강변과 다름 광장의 중세시대 궁전인 ‘샤토 프랑트낙 호텔, 거리를 달리는 관광 마차 ’칼레슈‘ 등은 충분히 관광객의 눈길을 끌만 했다. 점심은 다름 광장의 먹거리골목에 있는 양식집의 야외 테이블에서 스테이크, 돼지갈비, 파스타를 먹으며 맥주도 한잔 했다. 이번은 내가 샀다. 다음 날 나이아가라 폭포로 같다. TV에서 보는 것보다 정말 장관이었다. 미국 쪽 폭포보다 캐나다 쪽 폭포가 더 웅장하고 경이로웠다. 배를 타고 폭포 밑까지 가서 보는데 심한 물보라 때문에 우비를 입어야 했다. 캐나다 측 관광객은 빨강 우비를 입었고 미국 측 관광객은 파란 우비를 입어서 구분을 했다. 다음 날 7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아들가족과 헤어졌다.
다섯 번째는 2017.5.24일부터 9일간 미국에 사는 딸 가족과 미국 서북부의 관광지를 여행했다. 첫날 오후에 애틀랜타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비행기로 가고 그곳에서 7인승 승합차를 임대하여 여행했다. 다음날 네바다 주의 사막을 지나 자이언 캐니언(Zion Canyon)으로 가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마치 서부극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 국립공원은 주변이 모두 거대한 돌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산책로 옆에는 다람쥐, 야생사슴들이 여유롭게 놀고 있었으며, 선인장과 야생화도 피어있었다. 석양에 물든 아름다운 바위산들을 뒤로 하고 숙소로 가는데, 광활한 푸른 초원과 목장들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날 숙소는 농장의 펜션이었는데, 손주들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염소와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다.
셋째 날은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으로 갔다. 자이언 캐니언이 석가탑이라면 브라이스 캐니언은 다보탑이라 할 만큼 대조적 이었다. 섬세하고 기기묘묘한 돌 조각상들이 계곡 안에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정말 신만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조화에 또 한 번 놀랐다. 넷째 날은 옐로우스톤으로 가는 도중에 솔트레이크 시티( Saltlake city)에 들렀는데 이곳은 몰몬교의 성지였다. 신전 대강당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신비하고 인상적 이었다. 연주 중에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몰래 촬영했다. 이날 점심은 ‘고려정’이라는 한정식 집에서 모처럼 한식을 먹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 했다. 여기서도 점심은 내가 샀다. 다섯째 날은 만년설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도로를 질주하기도 하고 눈이 쌓인 침엽수 사이를 달려서 잭슨 호수에 왔다. 이곳은 맑은 물과 만년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이 호수를 배경으로 손주 둘이 뛰어오르는 장면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호수가 나타나고 여기 저기 김이 오르며 물이 끓어오르는 간헐천들이 보인다. 간헐천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어느 것은 호수 속의 맑은 물속에서, 어느 것은 갯벌의 웅덩이에서 붉은 진흙을 토출하는 곳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올드 페이스풀 간헐천(Old Faithful Geyser) 인데 평균 90분마다 한번씩 32~56m의 높이로 물이 솟아오른다. 이 순간을 사진에 담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셔터를 누른다. 또한 주변 숲과 초원에는 버펄로, 사슴, 여우 등 야생동물들도 볼 수 있었고 고사목들도 그림처럼 남아있었다. 이곳은 너무 넓어서 이틀 동안 구경했다.
이날 밤은 카우보이 빌리지(cowboy village)의 이색적인 통나무집에서 잤다.
7일과 8일 째는 러쉬모어 마운틴(Mt. Rush More)을 방문하여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대통령 4명( 워싱턴, 제퍼슨, 루즈벨트, 링컨)의 얼굴 조각상을 보고, 록키 산의 국립공원을 횡단하여 덴버공항으로 갔다. 여기서 렌터카를 반환하고 애틀랜타 행 비행기를 탔다.
지금 나는 공직을 은퇴한 후 23년이 흘러간 황혼의 길을 걷고 있다. 2021년 2월에 팔순(八旬)을 맞았으나 코로나-19 때문에 가족모임도 모두 취소하고 여행계획도 무산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남겨준 마지막 가족여행은 내 생애에 가장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