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다른 사물에 빗대자 - ③ 은유
③ 은유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지은 『내루다의 우편 배달부』를 영화화 한 〈일 포스티노〉의 대사가 기억납니다. 주인공인 네루다에게 시를 배우러 온 우체부가 묻고, 네루다가 대답합니다.
우체부: 선생님, 시가 무엇입니까?
네루다: 시는 은유야.
물론 시는 은유로만 말하는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시에 대한 가장 쉬운 정의는 ‘은유로 말하는 자’라고 이야기하면 무난합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운율은 가르칠 수 있어도 은유를 만드는 기술은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배우거나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천재들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술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천재적 재능의 산물이라는 이야기지요.
은유라는 말은 희랍어의 Metaphora에서 왔는데, 이 말은 ‘넘어서’라는 의미의 meta와 ‘가져가다’라는 의미의 pherein에서 연유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바꾸어 부르는 명명의 전이양식으로 은유를 파악하였습니다. 새로운 사물을 경험했을 때 이것을 기술할 새로운 언어가 없어서 이와 유사하거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은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은유는 전이이고 전이는 유추, 곧 유사성입니다. 은유는 현대시가 갖는 특성이자 현대시가 구축한 출발점입니다.
알렉과 위렌은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한 원리는 격조와 은유”라고 하였습니다. 하여튼 시인은 사물을 직접 말하지 않고 은유 등을 통하여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자라고 보면 됩니다.
은유는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어법입니다. 직유를 명유(明喩)라 하고 은유를 암유(暗喩)라고 합니다. A=B라는 관계입니다. 동일성의 비교입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같다고 서술하여 숨은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은유는 직유법에 비하여 대담한 비교가 필요합니다. 이 대담한 비교를 폭력적 비유라고도 합니다. 두 사물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표현하는 직유와 달리, “사람은 개다”처럼 본래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은유는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인식행위입니다. 은유는 단순은유와 복합은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순은유는 a=b로 끝나는 가장 간단하고 초보적인 형식입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김동명, 「내 마음은」 전문
위 시는 다음과 같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관념 | 보조관념 |
내 마음 | 호수 |
내 마음 | 촛불 |
내 마음 | 나그네 |
내 마음 | 낙엽 |
위 시는 단순은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호수’가 부분적인 동질성을 유지하면서 ‘마음’이 ‘호수’로 치환되며 의미를 확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치환은유라고도 하는데 은유 원래의 의미를 다른 사물의 의미로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유사성 심상에 의한 자리바꿈입니다.
봄바람은 안기기 잘하는 나비
여름은 할퀴기 잘하는 곰
가을바람은 울기 잘하는 송아지
겨울바람은 뛰어 달리는 성난 말
―황석우, 「사계의 바람」 전문
네 계절의 바람을 각각 나비, 곰, 송아지, 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개의 원관념과 한 개의 보조관념을 대응시키고 있는 단순은유입니다.
복합은유는 비유하는 심상이 두 개 이상인 경우입니다. a=b, a=c, a=d와 같이 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원관념이 비유되는 것입니다.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둘러버렸다
습관의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니다
정신 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만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賣春婦(매춘부)라 불러도 되겠다
黃金(황금)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權能(권능)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賣淫(매음)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十字架(십자가)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 (신)의 오렌지 주스를 줄 것인가
―최승호, 「자동판매기」 전문
사회적 상상력을 통해 돈 중심의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위 시에서 자동판매기는 매춘부이기도 하고 황금교회이기도 합니다. a=b, a=c의 형식이 됩니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상호작용입니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서 언어는 의미를 넓혀갑니다.
휠라이트는 은유는 철저한 존재 전환이고 의미 전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은유 방식으로 치환은유(자리바꿈)와 병치은유(마주보기)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은유개념을 치환은유란 용어로 기술하였습니다.
치환은유(A는 B이다)는 3가지가 있는데, 단순은유(하나의 원관념에 하나의 보조관념이 연결), 확장은유(하나의 원관념에 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이 연결), 액자식은유(은유 속에 은유가 들어 있는 것)가 있습니다.
치환은유가 의미를 암시하는 전통적인 은유라면 병치은유는 존재를 창조하는 새로운 은유 형태입니다. 병치은유는 마주보기 형식으로 유사성과 동일성을 갖지 않는 대상들이 당돌하게 마주보면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 결합의 형태입니다.
병치은유는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의 자리바꿈이 아니라 두 사물을 그냥 대조적으로 배치해 놓는 것입니다. 서로 유사성이나 전이성을 배제하고 각각 독자적으로 비동일성, 비친숙화의 폭력적 배열인 것입니다.
군중 속에서 허깨비처럼 나타나는 이들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에즈라 파운드, 「지하철 정거장에서」 전문
이 작품에서 주제어가 되고 있는 것은 ‘얼굴들’과 ‘꽃잎들’입니다. 이들 주제어는 치환은유처럼 주체와 매체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병치은유는 순수하게 이질적인 두 요소를 나란히 조합해놓은 것을 말합니다. 두 개의 요소가 서로 대응하게 작용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사성이나 연접성에 의거하여 표현하지 않고 돌발적 경험을 제시하는 특수성에 의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치은유에서는 유추 가능한 상상력의 실마리가 문맥상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표현이 아니라 제시적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독특한 상호관계를 맺고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킵니다. 당연히 독자는 시를 낯설게 받아들이게 되며, 당연히 그 충격이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국 현대시에서는 김추수의 무의미시, 이승훈의 비대상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병치은유는 일상적이고 논리적인 의미를 배제하는 원리이며, 예술을 독자적이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 원문의 내용 중에 있던 각주는 편의상 생략한 경우가 있음을 양해하시기 바람.(옮긴이)
<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공광규, 시인동네, 2018)’에서 옮겨 적음. (2020.11.0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06) 비유, 다른 사물에 빗대자 - ③ 은유/ 시인 공광규|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