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위치: 남아메리카 동북 대서양연안
인구: 600,566명 (2023년 추계)
수도: 파라마리보
면적: 163,82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수리남 공화국 (Republic of Suriname)
기후: 열대우림기후
민족 구성: 인도계(37%), 크레올인(31%), 자바인
언어: 네덜란드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힌두교(27%), 개신교(25%), 로마가톨릭
화폐: 수리남 달러 (SRD)
대륙: 남아메리카
국가번호: 597
GDP: USD 3,857,000,000
인구밀도: 4명/㎢
전압: 127V/60Hz
도메인: .sr
수리남과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남아메리카 중북부 해안에 위치한 공화국. 북쪽으로 대서양, 동쪽으로 프랑스령 기아나, 남쪽으로 브라질, 서쪽으로 가이아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파라마리보이며 화폐는 수리남 달러이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공존하는 개발도상의 혼합경제이며, 보크사이트와 금을 비롯한 광물 매장지가 많아 보크사이트 채굴, 알루미나와 알루미늄 생산, 서비스업, 농업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인당 GNP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높다.
수도는 파라마리보이다. 북쪽으로 대서양, 동쪽으로 프랑스령 기아나, 남쪽으로 브라질, 서쪽으로 가이아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가이아나, 프랑스령 기아나와 국경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연환경
해안 쪽에는 해수면과 고도가 비슷하거나 그 이하인 좁은 해안평야가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습지로 이루어져 있어 배수시설과 제방을 갖추어야 한다. 해안평야 뒤로 펼쳐진 구릉성 삼림지대는 삼림으로 뒤덮인 남쪽의 낮은 산맥으로 연결된다.
브라질 국경을 따라 있는 단층지괴 중앙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 산맥은 전국토의 약 4/5를 차지한다. 수리남 남서부에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고지 대초원지역도 있다. 7개의 주요하천이 남에서 북으로 이 나라를 관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나간다. 이 가운데 마로니 강은 프랑스령 기아나와의 국경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남쪽 고지 부근에서는 강줄기가 폭포와 급류를 이루므로 항행이 불가능하다.
1년 내내 습윤 열대성기후를 나타내지만 해안지대에서는 북동무역풍의 영향으로 열대적 특성이 다소 완화된다. 강우량은 내륙 산악지대의 경우, 연평균 3,000㎜ 이상이고 북서 해안지대에서는 평균 1,900㎜이다. 4∼8월의 주요우기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고, 12∼2월의 짧은 우기에 연강우량의 나머지에 해당되는 비가 내린다. 8∼12월의 긴 건기를 포함해서 2번의 건기가 사이에 있다. 기온은 연평균 27℃로 1년 내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구릉성 고지대의 일부, 해안지대, 몇몇 강유역은 농사를 짓기 위해 삼림을 제거한 상태이다. 전체 육지 중 1% 미만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이다.
수리남에는 야생동물이 풍부하다. 원숭이·개미핥기·아르마딜로·나무늘보·맥·사슴·재규어·퓨마·오셀롯 등의 다양한 포유동물과 카이만·이구아나·거북이·방울뱀·무타독사·보아콘스트릭터 등의 파충류가 발견된다. 그밖에 매우 다양한 조류와 곤충류가 서식하며 물고기도 풍부하다.
수리남에는 보크사이트와 금을 비롯한 광물 매장지가 많다. 여러 강들이 뛰어난 수력발전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며, 수리남 강 같은 몇몇 강은 이미 알루미늄 산업에 동력원으로 개발되고 있다.
국민
수리남의 국민은 주로 동인도인, 크리올, 자바인, 소수의 흑인집단, 중국인, 남아메리카 인디언, 네덜란드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인도인들은 대부분 소규모 농장을 운영한다. 크리올은 파라마리보 시에서 정치·소매업·전문직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자바인들은 대부분 네덜란드인이 소유한 대농장에서 일을 한다. 부시 니그로라고 불리는 수리남 흑인들에게서는 지금도 종족규율·종교·수렵·어업·화전농경을 포함한 생활상에서 아프리카 서부 종족들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연평균 자연인구성장률의 추세는 라틴아메리카의 표준치보다 낮다. 독립시기를 전후하여 네덜란드로의 이주가 급증하여 1973∼75년, 1979∼ 80년에 1/3에 해당하는 인구가 줄어들었다. 최대 도시인 파라마리보와 그 근교에 전체 인구의 약 4/5가 살고 있다. 수리남 제2의 도시는 니웨니케리이다. 수리남의 인구는 2023년 기준 60만 566명이고, 인구밀도는 3명/㎢이다. 전체 인구의 1/4가량이 15세 이하이며, 도시거주자가 인구의 2/3를 차지한다.
언어
공용어는 네덜란드어이지만, 크리올인 스라난 통고(수리남어)가 방언으로서 사용된다. 또 각 민족은 자주 자신들이 원래 사용하고 있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 중국어, 베트남어등도 사용된다.
문화
수리남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고유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부시니그로들도 아프리카에 살았던 선조들의 생활방식을 대부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크리올·동인도인·자바인들도 상당 부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예컨대 자메이카 여성들은 아직도 전통의상을 만들어 입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민족들은 상업적·사회적 활동에서 잘 융화되어 있다.
역사
수리남이라는 이름은 최초의 원주민이라고 알려진 수리넨족(族)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16세기 전에 다른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의해 쫓겨났다. 1593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수리남의 소유권을 주장했으나 1602년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651년에는 당시 바베이도스의 총독이던 프랜시스 윌로비가 영국인 정착민들을 보냈으나, 1667년 '브레다 조약'에 따라 니웨암스테르담(뉴욕)과의 교환조건으로 수리남은 네덜란드에게 넘어갔다.
168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커피와 사탕수수 농장을 세우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인부로 들여왔다. 야만적인 착취로 많은 노예들이 내륙으로 달아났다. 결국 네덜란드인들은 이들을 인정하고 땅을 나눠주었으며 그후 흑인들은 추장을 뽑아 아프리카 서부의 문화와 정치를 재현했다. 이들이 네덜란드인들에게 부시니그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종족이다. 1799∼1802년, 1804∼15년의 짧은 영국 통치 기간을 제외하면 수리남은 줄곧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1863년 노예제가 폐지되었고, 그대신 중국·자바·인도 등으로부터 대농장에서 일할 계약고용인들이 도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 대농장 농업은 침체되었고, 1915년 처음 발견되었던 보크사이트가 주요수출품으로서 대농장 생산을 대신하게 되었다. 수리남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추축국(독일·일본·이탈리아)에 점령당하지 않은 2곳의 네덜란드령 가운데 하나였다. 헌법상의 개혁(1948∼51)에 따라 자치권을 얻고 1954년에 결국 자치정부가 구성되었다.
1975년 독립을 맞이했고, 헨크 아론이 입헌의 의원내각제 국가로 성립한 수리남 최초의 총리로 취임했다. 1979년 자바인 내각이 사임하면서 1980년초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6개월 후 특무상사 데시 보우테르세가 또 쿠데타를 일으켜 1982년 12월부터 통치권을 행사했다. 1982년 시민저항운동이 일어나서 군부가 그 지도자들을 처형하자 네덜란드와 미국은 경제적 원조를 중단했다. 그후 경제가 쇠퇴하고 부시니그로 게릴라들의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정부의 권위와 법집행의 유효성 등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1987년에 유권자의 압도적인 지지로 새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88년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바인, 크리올,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이루어진 3당연합의 일치된 노력으로 민간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러나 군부는 계속 직접적·간접적으로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종교
종교는 기독교가 48.4% 힌두교가 22.3%, 이슬람교가 13.9% 등으로 다종교 국가이다. 아메리카에서는 가이아나와 함께 힌두교도가 많은 국가이다.
수리남과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75년 11월에 수리남이 독립하자마자 수리남을 승인하고 국교를 수립했으며, 한국은 주 수리남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93년 6월에 공관을 폐쇄하고 주 베네수엘라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수리남은 1985년 6월에 우덴 호우트 총리가 방한하여 우호를 다진 바 있고, 1992년 5월에 뭉그라 외무부장관의 방한 이후 고위인사의 방한이 있었다. 한국은 1991년 9월에 김교식 대통령 특사, 201S년 1월에 중남미 구매사절단이 방문한 바 있다.
한편 수리남은 비동맹 중립노선을 표방하며 1979년 비동맹 회원국에 가입, 1980년대 쿠데타로 군부가 들어서면서 1982년 10월에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나 양국이 소극적이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수리남의 경제개발을 협력하기 위해 1991년부터 2018년까지 148만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한 바 있다. 2019년 기준 수리남의 대한국 수출액은 579만 달러, 수입액은 1,779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원목, 알루미늄괴, 어류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건설중장비, 화물자동차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어업협력합의각서(1976년 3월), 사증면제협정(1976년 8월), 문화협정(1978년 11월), 경제기술협정(1985년 2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19년 기준 수리남에는 52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수리남의 수도인 파라마리보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1년 12월 기준 4명의 수리남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