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바르게 보시(布施)를 베푸는 방법
바르게 보시(布施)를 베푸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보시(布施)를 하지 않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보시(布施)하여야 하는 것인가 이다.
어떤 보시(布施)를 하지 않아야 하는가에는 열 세 가지가 있다. 늦추어 보시하는 것, 번뇌(煩惱)를 일으키게 보시하는 것, 여법(如法)하지 않거나, 도리(道理)에 어긋나게 보시하는 것, 약속(約束)한 후 약속보다 적게 보시하거나, 열악(劣惡)한 것을 보시하는 것, 대가(代價)를 기대하며 보시하는 것, 조금씩 적게 보시하는 것, 남의 자식과 아내를 빼앗아 보시하는 것, 재산(財産)을 강탈(强奪)하여 보시하는 것, 남을 상해(傷害)하고 대치(代置)하는 방편(方便)으로 보시하는 것, 남을 강요(强要)하여 보시하게 하는 것, 욕(辱)하거나 비웃거나 풍자(諷刺)하거나 꾸짖거나 험한 말을 하면서 보시하는 것, 불보살(佛菩薩)의 학처(學處)를 위배(違背)하고 보시하는 것, 오랫동안 쌓아두고 보시하는 것 등인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버려야 할 나쁜 형태의 보시행이다.
보살이 오랫동안 쌓아 놓은 재물은 죄(罪)로 보며, 재물을 얻어 바로 보시하는 것은 무죄(無罪)로 본다. 이렇게 오래 쌓아두고 베푸는 보시는 복덕(福德)이 많지 않은데 그 동안에 구걸자를 물리치고 염오하게 한 후에 구걸자에게 주기 때문이고, 오래 쌓아 놓는 기간 동안 많은 번뇌(煩惱)가 일어나고, 재물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선행(善行)을 막게 되며, 중간(中間)에 손실(損失)을 일으키게 되므로 궁극의 보시가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가행(加行)으로 보시를 베풀 것인가. 기색(氣色)이 환하고 웃음 띤 얼굴과 진실한 말로 어떤 복밭(福田)이나 공경(恭敬)하고, 때를 잃지 않고 적시(適時)에 맞게 하고, 남에게 해를 끼침이 없이 하고, 만행(萬行)의 고(苦)를 참아가며 보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연(因緣)으로 자기의 복덕(福德)이 매우 많이 생기게 되고, 다른 부류(部類)의 번뇌(煩惱)를 조복(調伏)할 수 있게 되며, 다른 사람들을 불법(佛法)으로 이끄는 공덕을 이룰 수 있게 되고, 중생들을 올바른 길로 거두어 성숙(成熟)시킬 수 있게 된다.
만일 자기에게 재화(財貨)가 없다면, 기예(技藝)나 불사(佛事)의 사업(事業)으로 재물을 보시하거나, 혹은 인색(吝嗇)한 자들에게 보시(布施)를 권장(勸奬)하도록 하거나, 법어(法語)를 설하여 법(法) 보시를 하거나, 구걸자를 신심(信心)있는 부잣집에 보내고, 따라가 보시하는 협조자(協助者)가 되어야 한다. 시주물은 좋은 물건을 택하여 베풀고, 준비해 둔 보시물을 원만하게 베풀어야 한다.
보시(布施)할 때 어떤 것은 줄 수 있고, 어떤 것은 줄 수 없는 것인가. 어떤 물건을 베품으로써 그것이 악취(惡趣)의 인과(因果)를 벗어나는 삶으로 인도(引導)하고, 영구(永久)히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악(惡)을 끊어 선업(善業)에 들 수 있게 하고, 지금 당장은 안락을 얻지 못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영구히 이익이 되게 할 수 있다면, 보살은 이런 것을 베풀어야 한다. 베푼 것이 미래에 고통을 가져오게 하거나, 해로움을 가져오게 하거나, 지금은 약간의 안락을 가져다 주더라도 뒤에는 해롭게 하는 인(因)이 될 수 있다면 베풀지 말아야 한다.
보시(布施)하여서 안 될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시간(時間)에 관점을 두고 말한다면, 보살은 몸과 같은 신체를 중생들에게 보시할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누가 그대에게 육체(肉體) 등의 주기 어려운 것을 구걸하고자 할 때, 대자비(大慈悲)의 즐거운 뜻이 성숙(成熟)할 때까지는 보시(布施)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정진(精進)을 혐오(嫌惡)스럽게 쇠퇴(衰退)시키게 하는 것인가. 힘은 약하면서 감당(勘當)할 수 없는 일을 무리하여 억지로 추진하거나, 정진(精進)이나 열망(熱望)이 아직 충분하게 성숙하지 않았는데, 감당하여 이루기 어려운 일을 행함이라 하였다.
자기의 육신(肉身)을 보시(布施)하려 할 경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 주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리심(菩提心)의 종자(種子)가 싹도 트기 전에 버리게 되어,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하게 되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몸을 보시(布施)하지 않을 때란, 더 많은 중생들을 위하거나, 더 큰 해야할 일이 남아 있다면, 그대의 사지(四肢)와 몸을 달라고 해도 주지 말아야 한다. 살생(殺生) 등 남과 나를 해치는 죄(罪)를 짓도록 요청(要請)한다면,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주면 죄가 된다.
외물(外物)을 보시(布施)하지 말아야 할 경우와 보시하여야 할 경우에 대하여 말한다. 첫째는 주지 말아야 하는 도리가 있는데, 출가(出家)한 사람이나 재계(齋戒)를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정오(正午)가 지나 음식을 주지 않는 것 등이다.
보시(布施)하는 곳에 따라 보시할 수 없는 경우란, 계율을 지닌 자에게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준다거나, 오염(汚染)된 음식을 준다거나, 파 마늘 고기를 주어서 먹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아야 될 사람에게 술을 준다거나, 수용(受容)해서는 안 될 율의(律儀)에 어긋나는 파 마늘 등에 오염(汚染)된 음식(飮食)을 계율(戒律)을 갖춘 이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보시(布施)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원귀(寃鬼)와 나찰(羅刹) 귀신(鬼神) 등과 흉포(凶暴)한 마음에 사로잡혀 보답(報答)을 모르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들이 요구할 때는 주지 말아야 한다.
먹고 마심에 정도(正道)가 없고, 있어도 적당한 양(量)을 모르고, 구걸하는 습성에 빠진 자에게는 주지 말아야 한다. 욕심(欲心)이 많고, 가져도 만족(滿足) 함이 없는 구걸자(求乞者)에게도 주지 말아야 한다. 외도인(外道人)이 경전(經典)의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재물(財物)을 대치하여 얻기 위한 생각으로 구걸하는 자에게는 주지 말아야 한다.
만일 애써 베껴 쓴 경전(經典)을 어린애 같은 분별심만 있는 자가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에게 준다면 죄가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시하기 위하여 남에게 요구해도 죄가 된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깊은 뜻을 알게 하고,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시한다면 죄가 아니다.
정법(正法)을 빙자한 경전(經典)이나 외도(外道)의 논소(論疏)와 경전을 신심있는 중생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베껴 쓰게 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시하거나, 남에게서 구해 준다고 하면 죄가 된다. 수중(手中)에 있는 것도 바르게 오류를 고치고 나서 주거나,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베껴 쓰도록 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바른 가르침이 아닌 것을 파악하여 다른 사람들에 옳바른 정법(正法)을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주지 않는 방편(方便)으로는, 이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겠다고 완고(頑固)한 말로 돌려서 말을 하면 않되고, 직접적인 좋은 방편으로 그 사람을 이해(理解)시켜야 한다. 좋은 방편이란 보살이 처음부터 시방(十方)의 모든 보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든 소유물(所有物)의 뜻을 맑게하여 보시하는 것이다.
어떤 구걸자가 재산(財産)을 요구(要求)하는 것이 합리적(合理的)이라면, 불보살은 중생에게 보시하지 못할 재산은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주어야 하지만, 불합리(不合理)한 상황이라고 판단된다면, 청정한 의궤(儀軌)처럼, 이것은 남에게 이미 회향(迴向)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미 남의 것으로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줄 수 없다고 부드러운 말로 이해시켜야 한다.
자신의 불법(佛法)을 수행(修行)하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구걸자에게 주지 않아도 허물이 아니다. 자신이 행하는 수행(修行)의 선근(善根) 공덕(功德)에 필요한 것이라면 주지 않아도 허물이 아니다. 남에게 해(害)를 끼칠 수 있는 독(毒) 무기(武器) 불 술 등은 어떤 경우라도 구걸자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악취(惡趣)로 가는 인(因)을 쌓는 타락(墮落)한 물건들과 다만 오욕락을 즐기고자 하는 물건은 주지 말아야 한다. 생물(生物)에게 해(害)를 끼치기 위한 방법은 가르쳐 주지도 말고, 주지도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