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윤성숙 전도사
제목: 바알과 싸우는 자, 여룹바알!
말씀: 사사기 6장 25-32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 또한 사랑의 관계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하나님을 섬기는 관계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관계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민수기 20장 2-3절>: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민수기 20장 13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다투어 말합니다. 그것은 모세가 자신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광야에서 다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마시게 합니다. 이렇게 하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악함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물을 ‘므리바 물(다툼)’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다투었다는 것은 곧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과 다툰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다툼의 결과로 모세를 포함하여 모두 광야에서 죽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의 착각은 하나님께서 맞서 싸우는 대상은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을 대적하여 싸우신다고 믿고 있지만 구약의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이스라엘의 그 악함을 드러내는 도구요, 그 죄를 징계하기 위한 용도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을 서로 싸우는 관계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 불순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이런 관계의 확실한 증거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입니다.
<렘 2:4-9>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를 버리고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다고 말합니다. 헛되고 무익한 것 곧 우상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2장 9절>: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2장 29절>: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신다는 것은 그들의 악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보는 시각은 악한 자, 그로 인한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는 그 원인이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또한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 원인 또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을 서로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요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일 뿐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언약입니다. 자신의 언약의 실행을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사용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결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없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우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심판의 대상일 뿐 사랑이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주체이신 자기 아들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이 적대적의 관계가 된 그 발단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곧 우상이 생기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죄로부터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이 된 이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아담의 후손으로 그 죄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인간은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대적 관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상은 무엇입니까?
우상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입니다. 곧 선악과를 먹어 다른 신이 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다른 신입니다. 그래서 <출 20:3>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다른 신이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과 같이 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인간이 자기의 신 됨을 투영하여 만든 것입니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 20:4>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투영한 그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의 발단은 아담의 원죄로부터입니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우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골 3: 5>에서는 ‘탐심은 우상숭배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그 탐심이 인간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이 되고자 하는 탐심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 우상입니다.
따라서 우상의 실체는 이 탐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이 탐심을 표출하며 사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곧 인간 자신을 숭배하는 것, 자신의 신 됨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의 하나님 됨을 우상숭배로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 이후 신이 된 모든 인간은 다른 신들이 되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 있게 된 것입니다(창3:15).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는 우상숭배가 가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자기의 신 됨을 증명하며 사는 인간들의 민낯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이냐, 나도 하나님이다!’라고 하나님께 대항하며 자기들의 신 됨을 증명하기 위하여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의 상태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집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와 그의 가문, 그리고 그 성읍 사람들까지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의 행태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요아스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습니다(삿6:11). 그런데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집에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분명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므낫세 지파에 속한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우상이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 그리고 그 성읍 사람들까지 모두 이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가 우상을 섬겼다면 그 아들 또한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기드온을 포함하여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이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아스의 집은 우상이 가득한 악한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우상들 가운데서 기드온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을 그 집에서 불러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아버지 요아스 집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상을 파괴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바알과 싸우는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바알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닌 바알과 싸우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기드온의 일은 바알과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알과 싸우는 자의 그 첫 행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아버지 요아스의 집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상을 찍어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알과 아세라상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와 그의 가문, 그리고 그 성읍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세운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신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욕망이 파괴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자기들을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되 그 아버지와 그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 일을 낮에는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합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보니 자기들이 섬기던 바알 제단이 파괴되었고, 그 곁에 있던 아세라 상이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는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둘째 수소가 드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 일로 온 성읍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온 성읍 사람들이 노하여 이 일을 행한 기드온을 끌어내라 합니다. 기드온을 당연히 죽이라고 합니다. 기드온을 죽여야 한다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알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어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자손이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한 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자손의 현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의 욕망을 위하여 바알과 아세라 상이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였다고 기드온을 당연히 죽이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기드온을 죽이려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을 없이 하려는 행동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유대인들입니다.
<마가복음 15:12-14>: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9-10>: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그 이유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9: 6-7절>: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이들의 눈을 뒤집히게 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의’보다 위에 있는 예수를 시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싫고 미운 것입니다.
자기들이 유대인들의 선생 자리에 앉아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가 선생이라 불리우면서 그 자리에서 군중들을 이끌고 다니는 것이 미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있는 예수를 끌어내서 십자가에서 없이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탐심입니다. 이들의 탐심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로 인하여 자기들의 ‘의’가 짓밟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고(롬10:1-3)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자기들의 탐심을 위하여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흔적을 지워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세대에서 바알과 싸우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기드온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닉네임이 ‘여룹바알’입니다.
<사사기 6장 32절>: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이전의 기드온은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라 불렸습니다. 자기 아버지 요아스에게 속한 기드온, 곧 자기 아버지와 더불어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자, 바알을 위하여 살던 자, 이 말은 곧 자기의 욕망을 위하여 살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 이후의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라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바알과 싸우는 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요아스의 아들에서 벗어나 여룹바알 기드온으로 그 행보를 걷게 됩니다.
이러한 기드온과 같은 자들을 신약성경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한 자들, 곧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요1:12).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자기의 탐심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곧 자기 안에 탐심으로 있던 자기의 ‘의’가 부정되고 예수의 ‘의’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로 하나님을 위하여 바알들과 싸우는 자들입니다.
기드온은 이러한 예수 믿는 자들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는 우상을 파괴했다는 것은 곧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자기 욕망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가 바알과 싸우는 여룹바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싸움이 방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한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싸움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고후 10:4>은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선한 싸움의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롬1:16).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선한 싸움입니다. 여룹바알로 부르심을 받은 믿는 자들은 모두 이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하여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된다는 사실을 복음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룹바알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날마다 이 복음의 내용을 가지고 예수를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또한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를 위한 여룹바알이 된 자들입니다. 바알과 싸우는 파이터들입니다. 부디, 복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를 위하여 사는 악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여룹바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설교 잘 들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내 속에 내가 새겨놓은 우상과 날마다 싸움하는 여룹바알 파이터로서 설교 내용 중 궁금한 점 한 가지가 있는데요.ㅋ~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우상 숭배를 타파하기 위해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고 난 후 새로 쌓은 제단 위에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둘째 수소를 번제로 드렸다고 되어 있는데 첫째 수소가 아니라 둘째 수소를 드린 이유가 무엇인지요?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라서 수행한것이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에는 첫 번째 소산물에 대한 상징성이 큰데 그것과 대비되는 어떤 의미가 있나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기회될 때 설교로 답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