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구의 시 세계 ‘세월’의 언어로 교감하는 영혼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내시경’을 통한 세상 읽기 일찍이 영국의 평론가 매슈 아놀드(M. Arnold)는 시는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라고 했다. 인생을 비평하는 일은 곧 현실 사회의 비평과도 그 맥을 함께 한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인생과 사회가 불가분성이라는 점이며 사회성을 외면한 채 인생 자체만으로의 비평은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시의 사회성, 이는 인간이 어떤 경우에라도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 수 없다는 일차적인 전제가 되며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현대시는 이러한 사회적 형태를 도외시(度外視)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고 거기에서 소재를 찾거나 주제를 추출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현대 사회는 복잡다단하게 이루어져 있고 인생의 가치관 창출에는 많은 모순과 불합리가 내포되어 있어서 시인들은 이러한 갈등과 고뇌들을 형상화하고 표현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대시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류영구 시집 『』에서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내시경’을 통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목도(目睹)하게 되는 것도 그가 응시하는 사회적 다양한 모습들이 외적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까지 이 ‘내시경’을 통해서 세상을 읽는 일에 몰입하고 있음을 우선 발견하게 된다. 류영구 시인은 이처럼 「내시경」이란 작품을 연작으로 32편이나 현현함으로써 그가 보편적인 세상살이에서도 심안(心眼)에 투영되는 어쩔 수 없는 실상들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적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삶의 깊은 곳에 이상기류異常氣流가 감지되었다 조직검사를 하여 삶이 구성원으로서 합당한가를 검사해야 한단다 한 주일 동안 조각을 분해하여 그리운 사람, 미워한 사람 속죄贖罪할 사람, 용서容恕할 사람 낱낱의 일상日常들을 점검해 보아야 한단다 비이커 속에 주마등처럼 스치는 삶의 모습이 넣어지고 기억의 괄한 언어들이 숨을 헐떡인다 하늘과 땅도 누우런 빛을 내며 저물어간다 모두가 떠나가야 할 열차에 앉아 정말 숙연肅然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보다가 문득, 차창 밖에 소슬한 낙엽 한 잎 떨어짐을 보았다 --「내시경 22-병」전문 위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낱낱의 일상’ 즉, ‘그리운 사람, 미워한 사람 / 속죄할 사람, 용서할 사람’들을 ‘점검’하는 것으로 그가 간직한 ‘내시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삶’에 대한 ‘이상기류가 감지’ 되었기에 ‘조직검사를’ 정밀하게 해야 한다는 시적 사회성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이상기류’는 우리 현실의 모순들이며 불합리적 요소들이다. 이는 ‘하늘과 땅도 누우런 빛을 내며 저물어’ 가는 시적정황으로 그가 고뇌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을 현현하면서 ‘문득, 차창 밖에 소슬한 낙엽 한 잎 떨어짐을 보았다’고 인식의 전환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다시 ‘내가 너를 모르고 / 네가 나를 모르는 / 가슴 깊숙이 // 불빛 하나 / 비춰보면 / 거기 // 아직 사랑하는 마음 / 한 조각 / 낡은 비바람에 울고 있지(「내시경 1-사랑」전문)’라는 어조(語調)로 인식의 순도(純度)를 조절하고 있어서 현실에 대한 배태성이 아니라, 포용과 수용의 미학을 제시하는 특성도 있다. 류영구 시인이 적시하는 사회적 언술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창을 열어도 닫아도 소리는 밤낮 없이 성업 중이다 / 해괴망측한 소리들이 매일 판치는 세상이다 / 내 머리에도 심장에도 이상한 소리가 판을 친다 / 나도 모르는 소리, 소리 들이 판을 친다(「내시경 5-소리」중에서) - 퇴직하면 그럴듯한 반듯한 명함 하나 만들고 싶었다 / 정직한 문구, 뭐라고 새겨 넣을까 / 재산은 국민주택 규모, 달랑 집 한 채 / 아직껏 누구도 이겨보지 못한 멍청이 / 부동산 투기 한 번 해보지 못한 말단 공무원 / 자식도 픽 웃을 이런 문구는 말도 안 된다(「내시 경 6-명함」중에서) - 누구는 누구의 아들 누구는 누구의 사돈에 팔촌 / 부모 잘 만나 머리 잘 만나 세월 잘 만 나 친구 잘 만나 / 학교 잘 만나 조상 잘 만나 선배 잘 만나 / 여기서 억 저기서 억 날숨 들숨 억억 / 소리 치고 세탁하고 머리 감고 지내는 꽃들의 왕국(「내시경 10-나라」중에 서) -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다 무엇들이냐 / 이 세상 고고하며 나왔다면 다 필요했던 것 /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리는 야속한 세상 / 어허잇 잡된 것들! 물렀거라 굿판 벌이자/ 새봄 오면 우리도 날개 달고 날아 보것지(「내시경 13-굿판」중에서) - 경제가 우선인데 어제 매일 신문 사회면엔 / 아파트 베란다에선 젊은이가, 한 가족은 차 와 함께 퐁당 바다에 / 자살했다는 기사가 콩알만치 났다더군 / 나라가 잘 돼야 민초도 잘 살고 / 우리 같은 도회 참새들도 먹이 감이 많을 텐데(「내시경 21-민초」중에서) 그는 이와 같이 ‘해괴망칙한 세상’과 ‘야속한 세상’을 ‘내시경을 통해서 판독(判讀)하고 있다. 이 세상에 대한 번민과 고뇌가 그의 심저(心底)에서 시적 원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울분에 가까운 이런 현상들을 ’그러려니 / 그러려니 / 종일 장맛비는 내리고(「내시경 25-그러려니」중에서)’ 라는 체념이거나 긍정적 포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는 또한 ‘작은 불빛아, / 어드메쯤, 어느 날 비춰주겠나 / 그날의 큰 기쁨을 기억하게(「내시경 4-삶」중에서)’라거나 ‘하얀 세상이 되었으면, 손잡고 비틀거리며 / 허허 벌판 하얀 거리를 밤새 걸어보고 싶다(「내시경 11-집」중에서)’, 또는 ‘산사의 고즈넉 염불소리와 / 어촌 교회 새벽 종소리와 / 가슴 속 깊이 흐르는 강물의 흐름소리를 / 가끔 들으며 살면 어떠리(「내시경 9-규중칠우쟁론기」중에서)’라는 어조로 하나의 기원의식을 탐색하는 특성도 표징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2. ‘세월’과 동행하는 존재의 의미 류영구 시인은 현실과의 타협이든 불합리성의 배척이든 간에 ‘세월’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모든 삶은 시간성과 무관할 수가 없다. 그도 이러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감지하고 그가 인식한 ‘비명’이나 ‘절규’ 등으로 인생을 비평하면서 새로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틀 속에서 숨을 쉰다 바람도 햇빛도 모두 그렇게 숨을 쉰다 무겁게 둘러싼 쇠줄을 가슴 팔 다리에 안고 가위가 세월을 구조화시켜 요동친다 잘 가꾸어진 정원의 화려한 꽃들의 변신이 아닌 오래고 모질게 자라기를 기도하는 시간들이 멈춰진 그 속에 하, 감탄의 단어들로 구석구석 장식된 마술사의 손안에 놀아나는 큰 고통이 아라비안나이트의 밤을 기다린다 끝나지 않는 비명의 문은 늘 배고픔으로 울고 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으로 울고 있다 야망이 명예처럼 빛나고 있는 슬픈 족속들의 틀 속에는 언제나 눈물이 고여 빛나고 있다 내 아픔의 절규가 언제나 죽순처럼 자라고 있다 --「분재원에서」전문 아직도 긴 터널 멀고 빛은 어디쯤일까 빚은 쌓여만 가고 다음 생生은 어디쯤일까 내가 머물 삶은 어디쯤일까 --「터널」중에서 그렇다. 그는 ‘세월’의 ‘구조화’를 자탄하고 있다. ‘시간’과의 동행에서 절감하는 ‘고통’과 ‘비명’과 ‘배고픔’ 그리고 ‘몸부림’과 ‘눈물’과 ‘ 아픔의 절규’뿐인 세상에서 그의 의문은 ‘내가 머물 삶은 어디쯤일까’ 또는 ‘또 얼마나 많은 삶을 향해 / 녀석은 몸부림치며 울어야 하나(「병실에서」중에서)’로 변환하고 있다. 류영구 시인이 이러한 의문형 어조로 시적 구도를 형성하는 것도 그가 궁극적으로 탐구해야 할 해법을 찾아가는 하나의 여과(濾過)일 수도 있어서 그의 관념적 형상화는 다원적인 상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는「그렇지만」이란 작품에서 ‘’솔로몬의 구약성서 중 전도서 1장 2절을 인용하면서 ‘-헛되고 헛되며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 헛되도다-’를 절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인의 본령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시의 위의(威儀)도 문제이지만, 현실적 정황을 깊이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존재의 의미 혹은 가치관의 정립으로 인간 본연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잔잔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어조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그는 ‘달빛 별빛 세월빛으로 / 점 하나 찍으려 했지만 / 밤 지나 해 뜨면 / 덩그러니 남는 건 / 흐느낌의 나를 지우는 슬픈 노래(「점 하나 찍어 보았으면」중에서)’를 부르면서 다음 「수녀와 비구니」에서처럼 안온을 구가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존재의 의미 찾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은 파란 숨을 쉬며 그녀들의 책장 위에 살며시 앉아 소녀 적 꿈을 하나하나 엮어 주었고 세월 바람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주고 있었다 3. 회상의 언덕에서 반추하는 그리움 한편 류영구 시인의 사유(思惟)에는 영원히 각인(刻印) 되어 있는 ‘그리움’이 상존하고 있다. 그의 ‘그리움’은 ‘삼류열차 기적소리’에도 있고 ‘까만 눈동자’에도 있다. 그리고 ‘밤비’와 ‘가을 깊은 밤’에도 있다. 대체로 이 ‘그리움’은 정한(情恨)에서 생성한다. 그가 현실적 고뇌의 한 단면이기도 하거니와 한 생애에서 가장 절실하게 가슴을 울리는 정적 언어가 바로 그리움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창 밖 낡은 슬라이트지붕 위 펄럭이는 오수午睡 그대 그리움 꿈길 따라 호숫가에 머물며 외로운 긴 젊음이 뚜우- 삼류열차 기적소리 울리며 세월 속으로 사라진다 이 작품「그리움(1)」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세월 속으로 / 사라’진 모든 삶의 형상이 그에게서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그리움(2)」에서도 ‘소슬한 흔적 하나 남아 / 강바람 무늬로 흘러간 / 그윽한 아름다운 시절이여’라고 회상함으로써 시간성과 접맥된 삶의 흔적이나 그 과정들이 이제는 ‘밤마다 / 그리움은 / 사립문 열고 / 어둠의 긴 강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움’의 형상화는 대체로 사물이미지에서 추출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류영구 시인은 관념적 소재에서 바로 관념이미지를 투영하는 시법을 구사하는 특성도 발견하게 된다. 「훨훨 너에게로 간다」「변주곡」「울고 싶을 때가 있다」등의 작품이 그러하다. 그러나 일반 사물에서 취택하는 그리움의 실상과 진실이 정제되어 표징하는 예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어서 그의 시적 정황과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 윤회의 먼 언저리 돌아 / 촉촉이 스미는 봄날 / 잔잔한 그리움에 젖어든다(「봄비 내리 고」중에서) - 이 꽃 지면 가을 깊고 / 벗 그리움 한이 되어(「배롱나무」중에서) - 그리움이 가슴팍에 무늬 짖는 그대로(「가을 여행」중에서) - 소슬하게 불어오는 가을잎 바람소리 들으며 / 잊혀진 그리운 이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 다(「하, 이 가을에」중에서) - 가을은 / 내 마음 호수湖水가에 / 그리움 한 점 / 물무늬 남기고 / 가버리다(「가을에서 겨울까지」중에서) - 어머님 기침 소리 / 그리움 뱉고(「겨울밤」중에서) - 추억 같은 그리움들을 물결치게 했다(「시향」중에서) - 그리움은 물결처럼 고독해서 / 바람이 불면 일시에 가버립니다(「벽과 늑대」중에서) 이렇게 그가 ‘그리움’에 대한 시적 동기는 ‘가을’과 ‘겨울’ 등 계절의 시간성에서 다양하게 추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삶의 궤적에서 각인되었거나 성찰의 한 양상에서 반추하는 일반적 심리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가 보편적인 상상에서 유발하는 인생의 진솔한 양태를 형상화하는 시법으로서 자아를 인식하는 소중한 가치관의 전환이기도 하리라. 그가 인식 단정으로 표징한 다음 두 편의 작품에서 이를 확인하게 된다. 덕유산 계곡마다 잦아드는 내 그리움 그대 가슴에 고이 심어놓고 사랑한다 한 마디 남겨두고 가려니 봄 오면 메아리로 울려주게나 --「덕유산」전문 여보게 친구야, 무주 구천동 깊은 계곡 물소리 한아름 담아 내 사막의 모래톱에 꽃피는 봄 편지와 함께 가만히 뿌려주겠나 그윽한 그리움 새록새록 자라게 --「편지」전문 이처럼 모든 그리움은 ‘사랑’을 전제로 하거나 매체로 하게 된다. 여기에서 ‘사랑한다 한 마디’와 ‘여보게 친구야’ 등의 어조가 바로 이러한 전제를 확산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려는 진정한 ‘그리움’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 현실적 고뇌에 대한 화해를 탐색하고 그는 이 화해에 동승하여 시적 진실을 도출하는 비범성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의 ‘그리움’은 ‘어머니’이든 ‘친구’이든 ‘사랑’이라는 대명제를 실현하여 ‘봄 오면 메아리로’ 울려 퍼지기를 그는 간절하게 희구(希求)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시와 영혼의 접맥, 그 진실 류영구 시집 『』에서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것은 시의 사회성에 대한 강렬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으나 더욱 명징(明澄)한 것은 시와 영혼의 접맥이다. 프랑스 시인 볼테르(Voltaire)의 말대로 시는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라는 명언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도 그의 「시론」에서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라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으며 듣는 이의 영혼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논지로 보면 시와 영혼과의 불가분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가슴속에 이렇게 흐르는 것은 무엇일까 밤마다 영혼의 기도가 멱을 감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도 한 가닥 별빛 아쉬움의 가슴앓이의 깊은 곳에 몰래 숨겨둔 한 가닥 촛불의 불꽃 너와 나 사이에서만 존재해야할 의미의 거리 번뇌는 그렇게 자그마하게 번지고 있다 류영구 시인은 우선 작품 「번뇌」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영혼의 기도’는 ‘번뇌’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존재해야 할 의미의 거리’를 인식하기 위한 ‘번뇌’는 다시 시작 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유는 바로 영혼과의 교감을 시도하는 시발점이며 그가 구축하려는 정서의 본령으로 접근하는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방법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내 가슴속에 이렇게 흐르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그는 이런 의문과 동시에 시적진실의 해법도 찾고 있는 것이다. 저희는 당신에게 무엇을 드리오리까 드릴 것이 없어 이 아픔을 드리오리까 아니면, 이제 조금 남은 저희의 영혼을 드리오리까 마리아여, 이 작은 영혼 받아주옵소서 - 1963 방황의 날에- 그는 「마리아여」에서 ‘이 작은 영혼을 받아주옵’기를 염원하는 것도 통시적인 일상에서(또는 보편적인 사물에서) 형이상(形而上)인 정신세계를 갈구하는 동인(動因)이 되고 있다. 오늘밤 잉태된 영혼 되어 가을밤 강 별빛 되어 흐르리라 젊음 같은 불꽃 되어 흐르리라 또한「별이 되어」에서처럼 ‘별빛’과 ‘불꽃’으로 흐르는 그의 심성 내면에는 영혼이 침잠(沈潛)되어 시적인 원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자화상」에서도 ‘그러나 내 영혼은 밤마다 / 그대 마음 속 배회하여 / 폐가의 이끼 틈에서 / 고뇌의 창을 열어 깃발을 꼽아 / 심마니의 아흔 아홉 날의 기도를 이루려 하나니’라고 어조를 정리함으로써 그가 기원하면서 갈망하는 영혼의 세계와 접맥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의 심중에 충만해 있는 시심(詩心)과 무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와 영혼, 동질성의 영역이 바로 우리들의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된다. 「시향(詩香)」에서 ‘진한 포도주 내 젊은 날들의 깃발들이 / 촉촉이 물기 묻혀 포구에 닻을 내리고 / 간간이 들려주는 시 음률에 소록소록 꿈을 꾸다’와 같이 그의 꿈과 영혼의 조화이다. 한편 그는 ‘녹 쓴 야간열차에 실려 가는 흐느적거리는 내 혼아 / 창 밖에 서리는 그대 향해 달려가고픈 내 혼아 / 신천동 다리 위의 서쪽 풍경처럼 흔들리는 내 혼아(「혼아」중에서)’라고 절규하면서 방황하거나 번뇌에 싸여 있지만 동대구역에서 ‘처용 아내 시를 토하며 / 비에 젖고 있’는 시를 만나고 있다. 이처럼 일별해본 류영구 시인의 시 세계는 인식과 존재의 문제들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려는 시법에 충만되어 있다. 시가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셸리의 말)이거나 인생의 비평이거나 간에 시인은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를 탐구하는 정신세계의 주역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각고(刻苦)의 노력과 지적 혜안(慧眼)이 필요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