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음식, 구황음식에서 국민음식, 귀족음식까지>
소나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게 없는 나무다. 건축, 조선의 용도로도 쓰지만, 나무 전체가 식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쓰인다. 직접 먹기도 하고, 먹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난방용으로도 소나무장작이 가장 뛰어나다. 솔갈비(솔가지)는 중요한 불쏘시개이자 취사할 때 불의 힘을 조절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여서 맛있는 음식 조리에 유리하다.
1) 송화 음식
꽃가루는 송황(松黃)·송화(松花)라고 한다. 빛이 노랗고 달짝지근한 향이 나는데, 4 ~5월에 채취하여 다식을 주로 만들어 먹었다. 노란 꽃가루로 날리는 송화는 봉오리가 터지기 전에 채취해야 해서 채취기간이 짧으므로 매우 귀한 음식이다. 다식은 송화가루와 꿀을 섞어 반죽하고 이를 다식판에 모양을 내어 찍어내어 굳혀서 만든다.
송화가루는 물에 침전시켜 송진과 독을 제거한 후 먹는다. 주로 다식으로 먹지만, 꿀물에 섞어 차로 먹기도 하고, 면을 만들 때 섞어 먹기도 한다. 향긋하고 달짝지근한 솔향 때문에 인기가 높다. 송화는 지혈효과가 알려져 있으며, 방부성이 강해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다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싼 음식, 귀한 음식이다. 송화도 꿀도 모두 귀한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송화가루를 4,5월이면 판매하는 곳이 있으나 공정이 복잡하여 귀하고 비싸다. 다식이 귀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울진 화재로 송화가루 구하기가 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더 귀족음식이 되어버릴 것이다.
2) 송기 음식
송기(松肌)는 말 그대로 소나무 껍질인데, 속껍질을 말한다. 소나무 중 전분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부위여서 구황식품으로 벗겨 먹었는데 섬유질만 많을 뿐 실제로 영양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흔히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을 잘 쓰는데, 소나무 껍질을 먹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여 변비가 생기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탄닌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초근은 칡뿌리, 목피가 소나무 송기이다.
송기는 그냥도 먹었지만 보통 떡으로 만들거나 죽을 쑤어먹었다. 송기떡은 송기로 만든 떡으로 평안도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나무가 있는 곳이면 전국에서 다 먹은 전국구 떡이다.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시인 백석의 시 <여우 난 곬 족>에 나오는 송기떡 관련 부분이다. 평북 정주 출생인 백석으로서는 송기떡은 흔히 접한 음식일 것이다. 1935년에 발표한 이 시는 명절날 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해 먹고 노는 모습을 이것저것 엮어서 그려낸 것이다. ‘엮음’의 형식은 사설시조나 판소리의 수법을 정통으로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내용 또한 이처럼 매우 민속적인 소재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과 형식 모두 전통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중시하는 대등사고를 보여주는 수법과 시어라고 할 수 있겠다.
교수잡사(攪睡襍史)에 실린 ‘소금장수 처를 훔치다’(鹽商盜妻)는 생원인 주인이 과객인 소금장수 몰래 처와 함께 야밤에 송기떡을 해먹으려다가 떡도 처도 도둑맞는다는 음담패설이다. 모두 송기떡이 민간의 보편적인 음식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민중의 삶을 잘 보여준다.
송기떡은 소나무 껍질 떡이라고도, 송피(松皮)떡이라고도 한다. 한자어로는 송기병(松肌餠), 송지병(松脂餠)이라고 한다. 송지(松脂)는 송진을 말하는데, 송기에도 송진이 있기 때문이다. 송기가루를 멥쌀가루와 버무려 시루에 쪄 안반에 쳐서 만든다. 송기를 잿물로 삶아 우려낸 다음, 절구에 넣고 곱게 찧어 사용한다. 송편 ·절편 ·개피떡, 개떡 등으로 만드는데, 이 가운데 송기송편을 가장 많이 먹는다.
송기떡은 임병 양란으로 굶주리던 백성들이 만들어 먹던 것이 전승된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 송기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다. 송기는 고운 팥죽색을 내며, 떡을 차지게 만들어주며, 고급한 솔향을 내는 식재료이다. 송기는 송화와 같이 방부기능이 있어서 송기떡도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아 두고 먹기에 좋다.
요즘은 다른 식자재가 풍부해진 데다 송기떡은 제조 과정이 복잡해서 거의 전승이 끊겼다. 일부 반가에서는 제사음식으로 올리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다.그런데 최근에 소나무가 많은 경남 합천에서 송기떡을 만드는 떡집이 생겨나 주목을 받고 있다. 고급화된 떡으로 화려하게 복귀하여 일부러 찾는 귀한 떡이 된 것이다.
하지만 송기떡은 6.25 이후까지도 흔히 먹던 음식이었다. 농촌의 아이들은 송기를 꺾으려 산을 누비며 다녔다. 꺾은 송기를 껌처럼 씹어먹기도 했는데, 소위 송기껌이라고 하는 것이다. 송기떡은 여름 햇보리 나올 때까지 보릿고개에 먹은 중요 구황식품이었다. 곡물이 부족하므로 쑥버무리, 나물죽 등 곡물 절약을 위해 흔한 식재료과 함께 자주 해먹은 보편적인 음식이었다. 가난 덕에 식재료와 음식 지평이 넓어진 셈이다.
송기떡이 일상에서 사라진 것은 먹고 살만해진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 다시 송기떡 선호 풍조가 일어나고 있다. 음식에서의 자연 회귀 현상이다. 더 많이 먹고 살만해진, 고도의 경제 성장의 열매는 삶에서 자연 회귀로 나타난다. 덕분에 음식의 역사는 돌고돈다. 크게 유행하는 음식은 대부분 민중의 음식이다. 얼마 전까지 민중의 음식은 자연과의 합치를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송기떡도 그 한 사례라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크게 유행하기에는 송기를 얻는 공정이 너무 복잡하다. 아직은 송기로 연명했던 어려웠던 조상의 삶을 기억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 거 같다.
3) 솔잎 음식
솔잎은 한자어로 송모(松毛)라고 한다. 솔잎은 비타민이 풍부하고 항균 효과가 있으며 향이 좋아 식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① 송죽(松粥)은 솔잎죽을 말한다. 송죽은 솔잎을 날로 짓찧어 짜낸 물을 말하기도 하지만, 민간에서는 말린 솔잎을 찧어 만든 가루에 보릿가루를 섞어 끓인 죽을 말한다. 조선조 1554년에 발간된 구황식품 서적인 <구황촬요(救荒撮要)>에도 솔잎죽을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② 송편 : 송편은 쌀가루를 반죽해 그해 수확한 콩·팥·밤·대추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은 뒤 솔잎을 깔고 찐 반달 모양의 떡이다. 조선시대에 일상식이었던 송편은 18세기에 추석 절식으로 등장했다. 드디어 국민음식이 된 것이다.
소로 콩, 팥, 깨, 밤, 대추, 잣 등을 넣어 콩송편·팥송편·깨송편·밤송편·대추송편·잣송편 등을 만든다. 추석 때는 오려송편을 먹는다. 오려는 올벼의 옛말, 즉 올벼[早稻]를 수확해서 빻은 햅쌀로 빚은 송편을 말한다. 절기상 추석은 일반 벼를 추수하기에 빠르므로 햅쌀은 올벼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타 솔잎 음식으로는 솔잎가루, 솔잎차, 솔잎 효소, 솔잎녹즙 등등이 있다. 솔잎가루는 미숫가루에 섞어 마시기도 한다.
3) 기타 솔잎 사용 음식
솔잎에 찐 송편은 솔향이 나고, 쉽게 상하지 않으며, 찔 때는 서로 붙지 않아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은 효과를 누려 다른 음식 조리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송편과 같이 찜이나 구이 요리에 많이 사용하는데, 특히 수육을 만들 때 솔잎을 깔고 조리하면 은은한 향이 배어 풍미를 돋워주므로 많이 애용한다. 음식을 삭힐 때도 사용한다. 영산포 홍어는 예부터 항아리에 돌을 깔고 홍어를 재우는데, 중간중간 볏짚과 솔잎을 번갈아 넣고 밀봉해 보관하여 삭힌다.
장독대에 소나무는 단골손님이다. 간장독에는 솔가지를 띄우고, 간장을 담그고서는 독 주둥이 위로 둥글게 솔가지 낀 금줄을 둘러 삿된 것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 발효가 잘 일어나 맛있는 장이 되도록 장독신에게 빌었다. 솔가지의 방부 기능에서 확산된 민간적 활용이다.
4) 기타
소나무는 술을 만드는 데도 쓰여, 송순주(松筍酒)·송엽주(松葉酒)·송실주(松實酒)·송하주(松下酒)·송절주(松節酒) 등등이 있다. 송하주는 솔뿌리로 빚어서 소나무 밑을 파고 묻은 술이다. 송절주는 소나무옹이, 송절(松節) 술이다. 송실주(松實酒)는 소나무 열매, 즉 솔방울로 만든 술로 솔방울의 한자어를 써서 송자주(松子酒)라고도 한다.
소나무 자체는 아니지만 소나무 뿌리에 붙어 자라는 복령과 송이도 소나무 관련 식약재이다. 복령(伏靈)은 소나무를 벌채한 뒤 3∼10년이 지난 뒤 뿌리에서 기생하여 성장하는 균핵으로 약재로 쓰인다. 소나무 뿌리의 정기가 모여 있다고 해서 복신(伏神)ㆍ복령(伏靈)으로 불렀다.
소나무 소나무 뿌리에 붙어 자라는 것으로는 ‘송이(松栮)’도 있다. 맛과 향이 뛰어나 버섯의 황제라 불리는 송이는 인공재배가 되지 않고 채취가 어려워 비싼 가격에 팔린다. 울진 지역의 대규모 산불로 양봉과 함께 송이채취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소나무 음식은 음식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식재료다. 최빈곤층에서 국민음식으로 최대한 지평을 넓히고 위로는 최상위층의 음식까지 소나무로부터 재료를 얻었다. 동일한 식재료 근원으로부터 조리 방식을 달리하여 다양한 음식을 얻었다. 음식의 종류와 조리방식의 다양성까지도 국민나무 소나무 음식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음식으로서 나무 문화 비교에 접근하여, 일본 삼나무, 유럽 자작나무와 올리브나무를 살피면 우리 소나무가 가장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음식을 보면 나무와의 친연성과 함께 일상의 나무 활용의 지혜가 보인다. 인류의 삶을 고양시키는 지혜를 소나무 음식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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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민나무 소나무와 그 문화권> 세 편 중 한 편입니다.
1. 국민나무 소나무, 그 일상과 예술과 문화 : '한국문화 연경기언' 게시판
2. 나무 문화권 비교, 한국 소나무, 일본 삼나무와 유럽권 자작나무와 올리브나무 : '한국문화 연경기언' 게시판
3. 소나무 음식, 구황음식에서 국민음식, 귀족음식까지 : '음식문화 연경기언' 게시판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 영릉 주변의 소나무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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