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과
동해신묘의 가치
- 양양의 ‘용오름 도시 프로젝트’와 그 문화적 의미 -
이학주(강원대학교)
국문초록 | ||
이 글은 동해신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목적에서 썼다. 그 방법은 시공세계글쓰기와 반(反) 4차 산업혁명의 구도에 두었다. 삭막한 기계중심의 산업에서 인간중심의 산업으로 넘어가자는 취지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절대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간과 귀신의 교감(交感)을 통해 양양을 용오름도시로 만들자고 역설했다. 자유로운 시간여행을 해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고, 기계로만 산업혁명을 이룬 사실에 반기를 들어 앞으로 5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선(善) 중심의 인간과 귀신’이라는 중심축을 활용하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시공세계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현재로 가져와서 현재적 가치 창출을 이뤄내야 한다. 이에 동해신묘는 전통을 세 가지 측면에서 활용하자고 했다. 첫째는 전통계승론이다. 이는 전통적 제의의 원형을 잇는 방법이다. 동해신묘는 물(水) 신앙을 중심으로 인간과 신의 교감을 이룬다. 이때 광덕왕을 신위로 모시고 며칠에 걸려 제의를 행했듯이, 제사의 원형을 살려서 축제의 형태로 발전시키자고 했다. 둘째는 전통활용론이다.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신이성으로 재해석해서 현대적 매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방법이다. 동해신묘는 제의의식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원망충족을 할 수 있는 기복신앙에 신비성과 신이성을 바탕으로 환상과 실재가 함께 하여 현재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과 신의 교감, 그리고 사람의 정서는 단순하고 쉽게 이해할 때 가능하다. 셋째는 전통창작론이다. 전통은 만들어짐으로 원형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의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야기마케팅 입장에서 만들어야 한다. 그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은 동해신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를 없애고, 익살스런 콘텐츠로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은 용과 용신을 쉽게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주제어 : 동해신묘, 시공세계글쓰기, 5차 산업혁명, 신과 인간의 교감, 인본주의 |
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양양의 동해신묘(또는 동해신사, 동해묘)가 전승돼 온 현상을 바탕으로, 그 활용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고확장을 해 보는데 있다. 동해신묘는 인간과 용신과의 교감에 따른 제의이므로 그에 맞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 방법은 시공세계와 반(反) 4차 산업혁명의 구도 차원에서 다루었다. 이를 전통계승론, 전통활용론, 전통창작론이란 세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서 고찰해 본다. 전통계승론은 옛 전통인 제의를 원형 그대로 계승하는 방법이고, 전통활용론은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을 신이성으로 재해석해서 현대적 매체를 활용해서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방법이며, 전통창작론은 전통은 창작된다는 관점에서 원형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만들자는 방법이다. 이런 전통문화의 계승과 활용과 창작은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에 양양에서도 동해신묘를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취지에서 본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 취지는 동해신묘가 갖고 있는 동해용신에 대한 인식에 두었다. 이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인간과 귀신에 대한 교감(交感)과 관련이 된다. 우리 선조들은 인간과 인간의 교류를 갖고 살기도 했지만, 상당히 많은 삶의 공간을 차지한 것이 귀신과의 교감이었다. 무엇을 하든 귀신과 잘 사귀어야만 인간의 생활이 편안하고 풍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병을 옮기는 악귀(惡鬼)는 가두거나 쫓아내고, 신(神)은 공경해서 풍요와 안녕을 돕도록 유도했다. 원한이 맺힌 귀신은 원한을 풀어주어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서 귀신의 입장에서 보면 요즘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의 방법은 이미 옛날부터 행해졌다고 생각한다.요즘처럼 기계를 통한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귀신을 통한 교류 또는 교감의 방식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인간과 귀신의 교감을 바탕으로 인간성 회복이란 측면에서 동해신묘의 활용을 작성할 것이다. 이는 과거와 미래의 자원을 현재적 가치로 치환하는 시공세계 글쓰기를 접목시키면 더욱 확고해 진다.
문화(文化)는 인간활동의 총체적 현상이다. 그것도 오랜 전통과 글[文]이라는 최고의 인간 사고표징(思考表徵)을 통해 만들어낸 삶의 표상이다. 이 때문에 문화의 범주는 구획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문화를 얘기할 때는 문화 앞에다가 표징의 수식을 넣어서 지칭을 한다. 곧 음식문화, 주거문화, 풍류문화, 신앙문화 등으로 지칭을 해서 표현한다. 그래야만 구체성이 드러나서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화가 인간 활동의 총체적 현상이라고 해서 문화의 개념을 얘기하는 것은 동해신묘도 우리의 문화적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동해신묘는 물(水) 신앙문화(信仰文化)의 결정체이다. 동해신묘의 신앙주체는 해신(海神)인 용신문화(龍神文化)이다. 이 때문에 동해신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용신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용신문화의 교리나 근원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동해신묘를 중심으로 행해져 온 해신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인식론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왜 용신문화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동해신묘가 활성화 되지 못하였을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 요인은 여럿 있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차원이다. 그 가운데 동해신묘와 관련하여 분명하게 원인을 파악하여 대처해야만 한다. 특히 양양의 동해신묘는 역사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아주 가늘게 그 제의만 이어올 따름이다. 동해신묘의 기록도 여러 문헌에 전하고 있지만 누구든 활성화 차원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 위치가 강릉이었는데, 양양으로 옮겼다. 중사(中祀)로 나라에서 제수를 보내왔다. 양양현감이 동해신묘에서 제향을 올렸다.’ 이런 정도의 기록이다. 이런 기록을 모아서 학자들은 역사를 논하고, 신앙을 논했다.
그 때문에 그동안 동해신묘에 대한 연구는 주로 역사적 사실에 따른 시기와 위치와 모양에 대한 것이었다. 전통을 어떻게 원형대로 계승하고, 현대 매체를 활용하고, 원형을 고집하지 말고 만들어야하는 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처음 동해신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장정룡의 「동해신묘의 문화적 고찰」에서 비롯했다. 이 논문에서는 관련 설화를 모아 기록했다. 이어서 1997년 학술강연회가 있었는데, 정영호가 「양양동해신묘의 복원과 용신도」를 발표하고, 장정룡이 「양양동해신묘와 양양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발표했다. 이 발표는 동해신묘의 복원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가치 있는 학술강연이었다. 그리고 이기용이 「동해신묘의 역사적 고찰과 이해」를 제27회 향토문화자료 공모전에서 발표했다. 이 발표문도 역사적 자료나 이미 알려진 자료를 찾아서 고증하는 방식이었다. 정영호는 「동해묘에 관한 소고」를 발표했다. 양언석은 「동해신묘고찰: 명칭을 중심으로」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양양군지, 성소부부고 등의 자료에 동해신묘에 관한 자료와 고증이 있다. 그리고 2022년 8월에는 동해신묘의 정체성과 복원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어서 역사, 명칭, 정비방향 등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들 자료를 참고하여, 구체적인 활용내용보다는 동해신묘의 활용방법과 방향에 대한 논의를 제시할 것이다.
2. 시공세계글쓰기와 반(反)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동해신묘의 활용방법
1) 시공세계글쓰기의 활용
동해신묘의 제의는 나라에서 제수(祭需)를 내려 제사하는 중사(中祀)였다. 동서남북 해신사(海神祠) 가운데 하나로 나라의 수호(守護)와 태평(太平)과 풍농(豐農)과 풍어(豐漁)와 기우(祈雨)를 행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곳 양양에 동해신묘가 있었던 것은 고려의 서울 개성에서 볼 때 정동(正東)에 위치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서해신묘는 정서(正西)인 황해도 풍천(豐川)에 세워졌고, 남해신묘는 정남(正南)인 전라도 나주(羅州)에 세워졌다. 지금은 그 지역이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마한문화공원 내로 변했다. 북쪽은 바다가 없어서 두만강신사(豆滿江神祠), 북서편은 압록강신사(鴨綠江神祠)를 모셨다.
이들 신묘는 연구에 따르면 신라 말 또는 고려 초부터 행해져 왔다.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는 1028년(현종19) 이전에 동해신묘를 모셨으며,양양군지에서는 991년(성종10)에서 1102년(숙종7) 사이에 건립되었다고 보았다. 중간에 몇 번의 중수와 훼철과 복원이 있었다.
동해신묘의 용신은 “고려시대 해신(海神)은 국가수호, 국태민안, 풍농 풍어뿐만 아니라 바다와 비를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듯이 그 역할이 넓었다. 또한 이곳에는 관련 설화가 있다. <허균의 동해용왕묘 설화>, <등명사 폐찰 설화>, <동해송 금란>, <구전 동해신묘이야기> 등이다. 그리고 허균과 남공철의 비문도 있다. 이들 설화는 동해신묘를 현대적 콘텐츠로 활용하는데 절대적인 자료이다.
이처럼 동해신묘는 오랜 전통을 지닌 제의이다. 제의이기 때문에 인간과 용신의 교감(交感)이 중요하다. 그 제의는 역사가 오래 되었으며,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의 변화양상도 궁금하다. 이 때문에 동해신묘에서 과거에 행했거나 미래에 행할 제의 양상과 형태 등을 온전히 현재에 가져오기 위해서는 시간여행을 해야 가능하다. 이런 시간여행을 해서 그 당시의 제의와 그에 얽힌 사실을 가져오는 방법으로 시공세계글쓰기가 있다.
시공세계글쓰기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이야기를 글감으로 끌어와 글을 쓰는 방법이다. 시공세계(時空世界)는 3차원의 시공에 4차원의 시간을 가져와 형성된 시공이다. 이 때문에 시공세계는 시간을 제어하는 기계인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이 이론은 1895년 웰스의 4차원 이론을 도입한 소설 <타임머신>에서 비롯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가공하여 작품으로 만들고, 미래의 상상을 가공하여 작품으로 만든다. 이런 가공의 세계가 인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별세계 또는 과거와 미래의 세계인 환상을 현실에 실재하는 세계로 가져와 환실세계(幻實世界)를 만들어 현재적 가치창출을 이뤄내면 된다.
그 때문에 시공세계글쓰기를 통하면 동해신묘의 동해용을 현재 우리 앞에 살려낼 수 있다. 동해신묘의 용이 하늘로 오름하는 용오름 광경을 해오름 양양(襄陽)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동해의 붉은 태양이 떠오를 때 그곳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조화를 부리는 장면을 연출해 낼 수 있다.
21세기의 지구촌 문화코드는 시공을 초월한 시공세계의 실현에 있다. 가상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기계인간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 가상의 세계를 현재에 가져와서 현재적 가치를 창출해 내자는 것이다. 요즘 가상현실(假想現實), 증강현실(增强現實), 복합현실(複合現實) 등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은 모두 시공세계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지역발전을 이룰 수 있는 원소스(One Source)가 있다면 여러 매체(Multi Use)를 활용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자원을 현재의 가치로 치환하여 양양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동해신묘의 동해용 또는 용신은 밤낮 양양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설화와 신앙은 얼마든지 이렇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쉽게 생각해서 2016년에 일본에서 출시하여 선풍을 이끌어냈던 포켓몬고를 떠올릴 수 있다. 포켓몬은 일본의 다양한 귀신(鬼神)이다. 그 귀신을 전 세계에 걸어 다니게 만들었다. 이는 21세기의 시공에 옛날 일본 귀신을 시간여행을 통해서 살아 있게 한 것이다. 단 게임이라는 매체로 두 세계를 연결한다는 ‘질서(秩序)’가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시공세계글쓰기는 환상(幻想)과 실재(實在)가 만나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분명하게 ‘연결의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전기소설(傳奇小說)처럼 ‘꿈’이어도 좋다. <쥬라기공원>처럼 모기의 피로 공룡의 유전자를 찾아 공룡을 부활시켜도 좋다. 다만 그 질서가 타임머신처럼 인과관계(因果關係)나 합리성(合理性)을 띤 다면 더욱 좋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적 가치를 만들어 낼 때는 마케팅(Marketing) 차원에서 해야 한다.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체계적인 경영 활동이다. 여기서 경영활동을 창작활동(創作活動)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정말 필요하고 가치 있는 콘텐츠를 동해신묘의 원소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첫째는 동해신묘 관련 사실과 설화의 특성을 분명하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동해신묘의 주인공 동해신(용이나 용신)을 양양의 공간으로 데려와서 거리를 활보하게 해야 한다.
2) 반(反)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인간성 회복, 인문주의에 기초한 5차 산업혁명
동해신묘에 머물며 동해를 다스리는 광덕왕은 외부의 침략과 역병을 옮기는 병마(病魔)로부터 국가를 수호하고, 태평성대를 꾀하며, 농사의 풍년과 어업의 만선을 관장하고 있다. 광덕왕은 기우제의 대상 신이기도하다. 그리고 그들 전체를 통치하는 옥황상제가 하늘에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그래서 남공철의 <양양동해신묘중수기사비>에는 “후세에 또 왕의 작위를 더하여 동해를 말하되 광덕왕, 서해는 광윤왕, 남해는 광리왕, 북해는 광택왕이니 제후로 예우하여….”라고 했다. 이는 상제(上帝)가 동서남북의 용왕을 제후로 인정하고, 그 지역을 다스려 인간에게 이롭게 하라고 했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행복과 불행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렇게나 인간을 도와주지는 않는다. 허균이 쓴 <중수 동해용왕묘비>에 나오는 어부 지익복(池益福)의 경험담에 드러나듯 조건이 있다. 그들 용신[해신]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인간이 제공해 줘야 하고, 매년 일정한 시기에 그들을 달래는 제의를 행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 부정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부정은 용신의 존재와 위엄을 지켜주는 인간들의 최소한 노력이다. 그렇게 하면 이들 신은 그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인간들을 어떤 경우에도 이롭게 해 준다. 이렇게 보면 동해신묘의 용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이 위로를 받고 의지하고 싶어 만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고 행복과 불행을 정하는 이런 용신과 귀것을 일러 우리는 귀신(鬼神)이라 말한다. 귀신은 인간이 있어야만 그들의 존재가 부각된다. 그래서 인간과 귀신은 언제나 교감(交感)을 갖는다. 서로 돕고 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여 해악을 줄 수도 있다.
이처럼 동해신묘를 비롯한 동서남북의 해신묘 설립과 제사 등은 모두 인간의 삶과 직결된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삶은 귀신과 교감을 잘 할 때 편안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 이때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는 ‘이 세계’이고 귀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저 세계’인 별세계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고, 그것이 추구하는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산업혁명(産業革命)은 인간 삶의 혁신을 가져온 산업의 급격한 변화이다. 이를 통상 1차에서 4차까지 나누어서 말한다. 1차는 1784년의 증기기관의 기계제작, 2차는 1870년 전기 발명으로 대량생산, 3차는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의 자동화 시스템, 4차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된 사물을 제어하는 가상 물류시스템 구축에 두고 있다. 그러니 1차에서 4차까지는 모두 기계로 만들어진 산업구조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일을 하는 인공지능을 다룬 산업이다. 인공지능은 사람과 같이 학습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패턴인식을 하는 등의 인지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터 공학이다. 이 지능을 활용해서 하는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이다.이처럼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으로 골자는 빅데이터(Big Data)에 따른 초지능(超知能, Super Intelligence)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내세워 초연결(超連結, Hyper Connectivity)과 자동화(自動化, Automatize)를 통해 산업을 주도해 나가 인간에게 필요한 현재적 가치창출을 이뤄내는 일련의 과정이다.그러니까 상상할 수 있는 최첨단 과학기술이 총동원되어서 산업혁명을 이뤄나가는 시스템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을 형성하는 바탕은 융복합형 창의력에 있다. 곧 인문학적 상상력이 과학으로 현현되는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이다.
이들 기술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물질문명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나 기계인 인공지능을 활용한 산업은 인간성 상실이라는 큰 부작용을 낳게 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성(感性)과 감정(感情)을 기계장치가 대신할 수 있다는 순간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심각한 관계를 가져온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산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이다. 결코 기계를 위한 산업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反) 4차 산업혁명을 논해야 한다. 여기서 반 4차 산업혁명은 기계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인간적인 정서(情緖)를 담아 인간을 돕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담은 정서가 바탕이 되어서 산업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산업혁명은 1차에서 4차까지 모두 기계를 중심으로 했는데, 5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정서를 중심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기계를 중심으로 산업혁명을 하다 보니 인간의 정서가 말랐다. 그래서 지구촌이 모두 승패와 1등 중심과 개인중심과 자국중심의 전쟁구도로 내닫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인해 자국중심의 사고가 팽배해서 패권주의(霸權主義)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왜, 꼭 자국이 으뜸이어야 할까? 인간의 정서가 중심으로 된 인본주의(人本主義) 곧 인문주의(人文主義)의 산업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다. 세계는 하나이다. 세계는 한 나라이다. 세계는 한 가정이다. 세계는 형제자매이다. 이런 생각으로 산업혁명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니까. 다음의 5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중심이 아닌 인간의 정서 중심으로 산업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의 정서를 담은 5차 산업혁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다문화론(多文化論), 다신론(多神論), 다종교론(多宗敎論)의 입장에서 선(善)이 주체가 된 인간과 귀신의 교감, 인간과 인간의 교감이 중심이 된 산업을 만들어내면 된다. 그러니 모든 산업의 바탕에 ‘선(善) 중심의 인간과 귀신’이라는 중심축을 활용하면 된다.
인간과 귀신의 교감을 축으로 형성된 사회에서는 승자독식의 폭력이 있을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는 홍익인간, 인내천,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한글정신 등이 바탕에 깔린 인간과 귀신의 교감이 필요하다. 절대자, 권력자, 우두머리를 배제한 보통 인간의 여린 정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의 모든 성인들이 주창한 ‘사랑[자비(慈悲), 인애(仁愛), 박애(博愛)]’가 세상을 가꿀 수 있다. 사랑이 지배적이어서도 안 된다. 사랑이 세상을 지배하면 사랑 또한 권력이 된다. 사랑이 우두머리, 절대자, 권력자로 둔갑하면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5차 산업혁명은 실패한다. 가령, 살인을 하고나서 ‘난 너를 사랑해서 죽였다’는 논리와 같아진다. 사랑은 세상을 형성하는 보편원리여야 한다. 인간과 귀신이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될 때 사랑은 지구촌을 이끄는 보편원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인류를 위한 인공지능은 기계가 중심인 산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오직 인간의 착한 본성에서만 인류를 위한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다. 얼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 <오징어게임>은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아이들의 놀이가 어른들의 욕심과 무서운 기계적 죽음을 주축으로 했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창작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런데 선(善)을 추구하는 인본주의가 사라진 게임은 인간의 정서를 파괴하게 된다.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이기는 것이 놀이이고 게임이라지만 승자독식과 패자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관적으로만 표현했다. 놀이는 놀이로 그쳐야 한다. 상대를 놀이에서 쓰러 뜨려도 놀이가 끝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옛날처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원칙이다.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게임은 선한 게임이 아니라 악마의 게임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를 전통놀이에서도 강조해야 한다. 그래서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에 5차 산업혁명은 절대 선을 바탕으로 하는 인본주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이 결말에서 그 게임에 참여해서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나는 반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우리의 전통놀이를 게임이라고 한다면, 게임은 놀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징어게임>을 만든 작가와 감독은 다른 뜻이 있었겠지만, 동해신묘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선악의 대립에서 선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해신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절대선이라는 사람과 신의 교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 동해신묘의 전통문화 계승과 활용, 그리고 창작
동해신묘의 계승과 활용과 창작의 방법을 시공세계글쓰기와 선을 주축으로 한 인간의 정서로 반 4차 산업혁명의 입장에서 비롯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이 방법을 적용해서 동해신묘의 창조적 계승에 따른 활용방향을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본고의 목적이 동해신묘의 기존 사실을 바탕으로 활용하는 사고확장에 있으므로, 큰 틀인 방법과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창작콘텐츠 제시는 차후 활용계획서로 미룬다.
1) 문화의 전통유지를 위한 계승 – 전통계승론
전통계승론은 동해신묘의 전통인 제사의 원형(原型)을 이어받는 방법이다. 동해신묘의 전통은 물(水) 신앙에서 비롯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고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물을 관장하는 용신에게 제향을 드린다. 제사는 신과 인간의 교감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의례이다. 그리고 그 행사를 주관하고 참관하면서 인간과 인간의 교감도 이뤄진다. 마치, 강릉단오제의 제의와 난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강릉단오제가 지금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공세계글쓰기의 원리와 인간과 인간, 인간과 귀신의 교감을 이루는 바탕 때문이다. 그 교감이 곧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전승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중심의 산업혁명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왜 반(反) 4차 산업혁명을 해야 하고, 5차 산업혁명은 선을 축으로 한 인본주의로 가야 하는지를 잘 나타낸다.
전통은 옛 풍속을 이어갈 때 그 가치를 더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전통의 변질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전통의 계승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 때문에 전통은 시대적 유행(流行)을 타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발생한 판소리와 탈춤이 지금도 원형대로 연행되는 현실과 같다. 이것의 좋고 나쁨은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떨 때는 둘 다 옳고 어떨 때는 둘 다 그르다. 다만 풍속이고 문화라는 차원에서 교감이 이뤄질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종교국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유일신을 부르짖으며 강릉단오제 현장에서 행패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우리의 문화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릉단오제는 어떻게 보면 민속신앙이지만 이는 또 세시풍속이다. 그렇듯 동해신묘의 제의도 국가가 개입되는 민속신앙이면서 풍속의 일종이다. 또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개인의 신앙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해신묘의 제의를 왜 원형에 맞게 계승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제의 속에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원초적 의식이 계승되어 오기 때문이다. 사람과 귀신의 교감이다. 자연의 횡포를 인간은 이길 수 없다. 가뭄과 폭우와 폭풍과 해일과 갑작스런 풍랑 등은 모두 동해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횡포이다. 그런 횡포는 인간의 힘과 영역을 넘어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한다. 그런 자연의 횡포를 옛 사람들은 귀신의 조화로 보았다.
그런데 귀신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다. 물론 귀와 신의 시공은 다르다. 신도 맡은 바 역할이 있고, 역량이 다르다. 신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처럼 조직과 계층이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가정신은 가택(家宅)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산신은 산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마을신은 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이들 신을 총괄하여 다스리는 옥황상제 같은 절대적인 신이 있다. 신이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패를 부릴 때 그것을 제어하는 기능을 그 계층으로 만들었다. 이 중에 동해신묘는 꽤 높은 단계의 신이다. 동해라는 바다와 그 주변의 지역을 총괄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동해신묘의 용왕신이 갖고 있는 위치에 따라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생각을 바탕으로 전통을 계승해서 그 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면 동해신묘의 전통 원형은 무엇일까. 이는 동해신묘의 역할을 규정한 기록을 보면 어는 정도 알 수 있다. 동해신묘의 사우(祠宇)가 지녔던 규모와 제의에 대해 여지도서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렇게 기록했다.
동해묘(東海廟) 관아의 동쪽 10리, 바닷가에 있다. 정전(正殿)이 6칸, 신문이 3칸, 전사청이 2칸, 동재와 서재가 각각 2칸, 백천문(百川門)이 1칸이다. 매해 초에 별제(別祭), 음력 2월과 8월에 상제(常祭)를 지낸다. 향(香)과 축문(祝文)은 모두 서울에서 내려온다.(여지도서)
명산(名山)은 설악(雪嶽)이다. 【부(府) 서쪽에 있는데, 신라 때 소사(小祀)로 하였다.】 동해 신사당(東海神祠堂) 【부(府) 동쪽에 있는데, 봄·가을에 향축(香祝)을 내려 중사(中祀)로 제사지낸다.】(세종실록153권)
중사(中祀)는 모두 3일 동안을 산재(散齋)하고, 2일 동안을 치재(致齋)한다. 【1일은 본사에서 하고, 1일은 제소(祭所)에서 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128권)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동해신묘의 건물 규모와 제의날짜와 제수에 대한 기록이 되어 있다. 그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최소한 지방의 향교와 같은 규모를 갖추었다. 이는 국가와 양양도호부에서 동해신묘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썼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제의의 규모는 설악산은 소사(小祀)인데 비해 동해신묘당은 중사(中祀)로 지냈다. 대사와 중사와 소사는 규정이 매번 바뀐 전례를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다. 곧, 태종실록7권 태종 4년 2월 20일 기사에는 도교 숭봉에 대해서 “중사(中祀)의 예(例)에 의하여 5일 동안 재계(齋戒)하게 하소서.”라 했으며, 태종실록24권 태종12년 9월 28일 기사에는 “그 기간은 제사에 따라 일정하지 않은데, 대사(大祀)에는 4일 동안, 중사(中祀)에는 3일 동안, 소사(小祀)에는 2일 동안 산재하였음”이라 하였고, 태종실록24권 태종12년 10월 7일 기사에는 “대사(大祀)에는 3일 동안, 중사(中祀)에는 2일 동안, 소사(小祀)에는 1일 동안 치재하였음”이라 하였다. 이밖에도 그 규정에 대한 사례는 아주 많다. 이 가운데 태종실록28권 태종14년 8월 21일 기사에는 “ 악(嶽)·해(海)·독(瀆)은 중사(中祀)로 삼고, 여러 산천(山川)은 소사(小祀)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동해신묘는 해(海)에 해당하니 중사의 예로 제사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규정이 일정치 않았는데, 중사는 향(香)과 축문(祝文)을 나라에서 보낼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 제사이다.
그런데 정조실록에는 동해신묘를 제사하는 예법이 법전에 실려 있는데 그를 이행하지 않았고, 관리를 하지 않아서 더럽혀졌다는 기사가 보인다.
양양(襄陽) 낙산진(洛山津)에 있는 동해신묘(東海神廟)는 제향을 드리는 예법이 나라의 법전에 실려 있으니 이곳을 어느 정도로 중시했던가를 알 만한데, 근년 이후 제관(祭官)이 된 자가 전혀 정성을 드리지 않아 제물이 불결하고 오가는 행상들이 걸핏하면 복을 빌어 영락없는 음사(淫祠)로 변했으며, 게다가 전 홍천 현감(洪川縣監) 최창적(崔昌迪)의 집이 신묘(神廟)에서 매우 가까운 지점에 놓여 있어 닭이며 개들의 오물이 그 주변에 널려 있고 마을의 밥짓는 연기가 바로 곁에서 피어오릅니다. … 요즘 풍파가 험악해져 사람들이 간혹 많이 빠져 죽고 잡히는 고기도 매우 양이 적은데, 해변 사람들이 다 그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신명을 존경하고 제사 예법을 중시하는 도리로 볼 때 그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 …
양양 낙산진 동해신묘에 관한 일도 장청대로 보수한 뒤에 감사가 그 결과를 장계로 보고하면 그대 권준을 헌관으로 차임하여 제물을 올려 양양 백성들이 옛날처럼 풍요를 누리도록 빌게 하겠다.(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54권)
이처럼 동해신묘가 방치되어서 피해가 컸으며, 이에 어떻게 위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중사인 동해신묘의 제사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남공철의 <동해신묘중수기사비>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
옛날 주나라 법제에는 네 차례로 경칩에 제사하고 입하에 기운을 맞이하여 제사하고 백로에 기우제로 인하여 제사하고 대한에 납향으로 인하여 제사지내니 한 해에 네 번이라. 왕이 두 홀로 홑바탕 다섯 치를 두고 짐승은 작은 소나 양을 쓰고 폐백은 오방색을 보이고, 왕과 주관하는 사람은 다 연하고 부드러운 세 깃털을 꽂은 면류관을 쓰며, 풍류는 유빈을 연주하고 노래는 함종으로, 춤은 대하로 추고 다섯 번 그릇을 가지런히 함은 이 조정에서 하는 것처럼 드리는 것이고 맑은 술은 이 음식을 드림이라.(<동해신묘중수기사비>)
물론 이 제사 방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으나 강원도 관찰사 남공철이 봤을 때는 이에 합당한 제사법에 따라 행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런 제사를 준비기간과 함께 약 3일~5일간 행했으니 요즘 보면 축제(祝祭)와 같은 큰 제사였다. 그리고 용왕의 이름은 “왕의 작위를 더하여 동해를 말하되 광덕왕, … 제후로 예우하여 제사를 산과 내 안에서 제사했다고 하며(동해신묘중수기사비)”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위패는 광덕왕(廣德王)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광덕왕 등의 용왕 이름은 김시습의 <용궁부연록> 등에도 나오는데, 이 중 광덕왕은 동해용왕의 명칭으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후로 예우했다 했으니, 축제를 연다면 그 규모가 상당히 크게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양양군지에 따르면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진행됨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제의(祭儀)는 매년 1월 1일에 새해맞이 할 때와 해변개장 때에 양양군수가 헌관이 되어 동해신묘에서 국태민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양양군지)
그러나 이처럼 해맞이 행사와 해수욕장 개장제로 변해서 그 전통을 잇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이는 시대에 따라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그대로 전승하지는 않는다. 현재는 이 제사가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로 등록을 한다든지 하면 옛 제도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동해신묘의 제의는 3~5일 정도 행했는데, 이는 3~5일 정도 행하는 강릉단오제와 같은 축제의 모습이다. 강릉단오제는 범일국사서낭당과 김유신산신당에 제사하고, 신을 모시고 남대천에 내려와서 축제를 행하는 형태이다. 위의 기록에서 본 동해신묘관련 기사와 같이 동해신묘도 제사의 원형을 살리고, 신을 즐겁게 하고 마을의 안녕과 복락을 비는 축제의 형태로 계승하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과거의 모습을 현재에 가져와서 행하는 시공세계글쓰기와 선이 주축이 된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인본주의 방법이 적용되어 동해신묘를 계승할 수 있다.
2) 문화의 전통과 현대적 재해석 – 전통활용론
전통활용론은 동해신묘에 내재되어 있는 동해신의 신비성과 신이성을 재해석해서 현대적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동해신묘의 전통문화는 얼마든지 현대적 상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통의 계승은 시대인식을 잘 하고 그 시대의 문화콘텐츠로 변화를 줘야 지속이 될 수 있다. 마치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와 같은 논리이다. 전통적인 오징어게임이 어떻게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지구촌 사람들에게 접목될 수 있었을까. 이 드라마는 한국의 전통게임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만든 최고의 선전매체이다. 전통놀이라 하여 마을 입구나 공터에 오징어를 그려놓고 서로 밀치면서 노는 것만이 전통계승이 아니다. 이를 현대적인 매체를 활용해서 새롭게 가공하여 흥미를 주고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전통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드라마 <오징어게임>처럼 그 지향점이 경쟁 원리로만 주어지고 그 결말이 무섭게 이뤄진다면 문제가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그런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악행도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선행으로 이루어진 것이 더 많다. 그렇게 착한 행실을 만드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왜냐면 인간의 본성은 동물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승자의 근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최고의 가르침인 종교(宗敎, 마루 종, 가르칠 교)의 근본정신이 사랑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선을 추구하지 악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시공세계글쓰기를 접목하여 동해신의 신이성 내지는 신비성을 현대적인 매체에 담아 문화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살면서 환경에 맞춰 물건을 만들고 더 넓고 깊은 사유를 하여 더 편하게 살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 있는 사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회귀로 새로움을 만든다든가 과거이탈로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콘텐츠이고, 문화이다. 이곳에 이야기를 잘 입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면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동해신묘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이야기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활용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동해신묘는 제사의식에만 머물면 안 된다. 제사의식에만 머물면 발전이 없다. 이는 성공사례를 통해서 동해신묘의 활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강릉단오제가 서낭제와 산신제라는 제사의식에만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강릉단오제가 세계유산이 되고 여태까지 매년 100만 이상의 관광자가 찾아오고, 강릉의 대표 축제로 자리 잡은 것은 제사를 기초로 그에 딸린 갖가지 이야기와 문화행사 및 콘텐츠 발굴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릉단오제는 전통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말 모범답안이다. 첫째는 강릉단오제는 신주미 등을 모아 강릉사람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둘째는 누구나 범일국사처럼 국사가 되고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곧,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범일국사이야기를 볼 수 있다. 석천, 처녀임신, 학바위, 국사, 굴산사 등의 제재는 신이성을 띠고 있다. 김유신이야기, 정 씨 처녀와 서낭신의 결혼이야기 등이 있다. 셋째는 세시풍속 단오제와 관련을 맺었다. 넷째는 관노가면극 등의 콘텐츠가 풍부하다. 다섯째는 산신과 서낭신으로 누구나 위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신앙의 차원이 깃들어 있다. 여섯째는 물건을 사고팔며 먹거리가 풍부한 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일곱째는 시장을 비롯한 관료와 무당이 함께 하는 제의와 공연이 열리는 것이다. 이밖에도 강릉단오제를 보면 평생의 한이 풀린다는 등의 격언을 만들어서 유행하게 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춘천의 공지천 설화에서도 볼 수 있다. 공지천 이야기는 공주의 곰나루 설화와 같은 유형이다. ‘곰짓내’, ‘곰지내’에서 비롯했다. 곧 ‘곰(神)이 지어준 내’가 훗날 전혀 다른 공지천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면서 이 퇴계와 얽힌 설화가 나오고 도통수련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춘천마임축제가 나오고, 이외수의 <황금비늘>이 나오고, 각종 조각상이 만들어지고 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공주의 곰나루이야기는 같은 유형의 이야기인데도 공지천이야기처럼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공주의 곰나루는 신화(神話)로만 전승이 되어 제사의식에 충실한 반면, 춘천의 곰짓내 이야기는 신이성(神異性)으로 변화하여 많은 이야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곧 시공세계 글쓰기의 핵심인 환상과 실재가 함께한 것이다.
강릉단오제와 춘천 공지천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한 콘텐츠로 생성될 수 있었던 원인은 신화에만 머물지 않고, 제사의식에만 치중하지 않고, 환상과 실재가 함께하는 신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로 생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신의 교감을 간직하고 있으며, 절대 선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된 모든 이야기와 콘텐츠가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공동체를 위한 선행으로 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동해신묘의 경우도 신앙적인 제사의식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신앙적인 면을 유지하되 인간과 신의 교감을 통한 신이성을 간직하여 환상(幻想)과 실재(實在)가 함께 할 수 있는 면으로 나가야 한다. 신앙은 기복(祈福)을 담고 있다. 아주 중요한 콘텐츠 생성 요소이다. ‘복을 구할 수 있다’는 의식은 모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최고의 주제어이다. 누구나 원망충족(願望充足)을 하고자 하며, 모자란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미신(迷信)에 대한 개념은 버려야 한다. 미신은 세상에 없다. 다른 종교를 얕보거나 터부(Taboo, 접근 꺼림)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이 미신이다. 특정 종교인이 미신이라고 하지만,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 밖 이야기인 환상적인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동해신묘의 이야기는 벌써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현재 동해신묘 관련 이야기는 허균의 <중수 동해용왕묘비(重修東海龍王廟碑)>, 그리고 <구전 동해신묘 이야기>라 하여 최종낙(崔鍾洛) 양양군수의 죽음 이야기와 관우제사 이야기 등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동해송금란(東海松 禁亂)>도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동해신묘 관련 이야기인데, 물론 찾아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들 이야기는 동해신묘를 활용하여 새로운 콘텐츠로 만드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셋 다 신비성(神祕性)과 신이성(神異性)이 있어서 앞서 거론된 강릉단오제와 춘천 공지천 이야기와 상통하고 있다. 그 중에 인간과 신과의 교감이 주요 모티프로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資歲禳禳 해마다 풍년들게 도와주시고/ 民無札傷 백성들 상하지 않으며/ 五兵不入 전란이 미치지 못하게 하여/ 於萬斯年 길이길이 만년토록/ 祐我獘邑 우리 고을 도와 주소서”라는 <중수동해용왕비문>의 끝부분 같이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곧 기계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산업혁명의 문제를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바꿀 수 있는 내용이다. 이는 본고에서 주창하는 5차 산업혁명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환상과 실재가 함께 하여 시공세계글쓰기를 하기에도 좋은 자료이다. 특히, 바다와 신과 인간 그리고 신앙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 내기에 좋다. 게다가 권준을 헌관으로 임명했던 사실을 더한다면 인물설정도 상당히 수월하다. 이런 인물에 선악의 대결을 넣어서 선룡과 악룡의 결투가 들어가면 더 좋은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
단,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면 곤란하다. 보다 단순하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캐릭터도 가령 ‘깨비’처럼 단순해야 되지, 복잡하면 안 된다. 신이성과 신비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공세계글쓰기와 귀신의 세계를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의 방법을 동원하면 보다 쉽게 현재적 가치창출을 이룰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과 신의 교감은 복잡하고 어려우면 접근할 수 없다. 인간과 신의 교감, 그리고 사람의 정서는 단순하고 쉽게 이해할 때 가능하다.
3) 창작으로 전통문화 만들기 - 전통창작론
전통창작론은 전통은 창작된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만들자는 방법이다. 전통은 만들어짐으로 원형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곧 사람이 살면서 전통문화는 만들어진다. 사람의 가치관도 인생관도 세계관도 생사관도 모두 살면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필자는 전통창작론이란 입장에서 양양의 동해신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동해신묘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동해신묘도 처음에는 만들어졌다. 동해신묘는 고려시대에 개성을 중심으로 정동진에 해당하는 양양에다가 동해용왕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서 제사를 올린 데서 비롯했다. 그때 정남에는 남해신사가 정서에는 서해신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국가에서 백성들을 달래고 통치하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해서 중사(中祀)의 예로 대했다. 이렇게 모든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에 시간과 역사성[사건]이 더해지면 전통문화가 된다. 이런 전통창작론을 부정하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모든 전통문화는 있을 수 없다. 양양에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서 오래 지속되면 양양 전통음식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동해신묘의 전통을 누가 어떻게 개발하느냐는 중요하다. 그렇게 문화는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문화는 한국 사람이 만든 문화이다. 서양의 음악 서양의 신앙을 한국 사람이 한국 토양에 맞게 만들면 한국의 음악이고 한국의 신앙이 된다. 인도의 불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불교가 된 사례와 같다. 유학이 한국에서는 중국유학이 아니라 한국유학으로 살아남는다. 그런 것이 나중에는 한국의 전통 미풍양속이 되어 계승이 된다. 동해신묘를 배경으로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새로운 콘텐츠로 탄생이 된다. 이런 것은 언제나 유행을 타기 때문에 지속의 여부 문제이지 사라지고 보전되는 문제는 따질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공감해서 반응이 좋으면 오래 지속되는 것이고, 공감하지 않아 반응이 좋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는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 양양에서 동해신묘와 관련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면 그것이 동해신묘의 전통문화가 되는 것이다.
양양에서 만든 동해신묘이야기에 동해신묘 관련 사실이 아주 조금 들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야기는 얼마든지 원형을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마인드맵도 이야기자원에서 원형(原型)-발상(發想)-연상(聯想)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이야기마케팅[Story Marketing]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원숭이엉덩이>노래를 생각해 보자. ‘원숭이엉덩이는 빨개-빨간 것은 사과-사과는 달아- 단 것은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 백두산은 높아 …’ 등으로 내용이 이어진다. 이 노래에서 원숭이 엉덩이와 백두산은 전혀 상관이 없다. 이렇게 변해도 동해신묘와 관련된 이야기이고 동해신묘와 관련된 문화라면 그것은 동해신묘의 전통문화가 된다. 이는 삼척의 <척주동해비>와 갈남의 해신당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허목(許穆, 1595~1682)이 지은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좋은 원천자료이다. 분명한 이야기도 있고, 또 그 이야기의 내용도 좋다. 글씨도 달필이다. 제의도 행한다. 그런데 지켜보면 척주동해비는 같은 삼척에 있는 해신당보다도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퇴조비(退潮碑)라는 원형보전에 너무 치중해서이다. 척주동해비의 비문을 써서 세우고 나서 해일을 막았다는 사실만 부각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콘텐츠로 만들어 나가야 했다. 대부분 척주동해비문의 글을 새긴 도자기, 병풍, 액자, 족자 등의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행위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척주동해비를 부적(符籍)의 기능으로만 사용했다. 그것도 상당히 비싼 값으로 판매하였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콘텐츠이다.
그런데 삼척 갈남의 해신당(海神堂)은 척주동해비와는 다른 입장에서 접근이 되었다. 남녀의 사랑이 담긴 당신화에 슬픈 사연을 담은 해일의 피해를 넣었고, 원한을 푸는 장치로 남녀의 원초적인 성기(性器)를 첨부하였다. 쉽게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성기이지만 해학과 풍자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 성기이다. 감춰야 할 대상을 상징으로 드러냈으니 부끄러움이 아니라, 웃음이 된 것이다. 웃음이 됐으니 누구나 어디에서나 얘기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이야기로 변신한 것이다. 급기야 남성의 성기는 해학의 상품이 되어 익살로 유머로 변신하여 남근 장승 깎기 행사로 이어졌고, 성기 박물관이 되었다. 신앙이 상품으로 변한 사례이다. 그 때문에 원초적 상징과 해학은 폭넓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반응이 좋았다. 매년 20만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명소로 탄생한 사례이다. 해신당의 사례는 전통이 쉬운 콘텐츠로 창작되어 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해신당과 해신당신화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확장시켰다. 사람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고, 웃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이 둘의 사례에서 보듯 하나는 실패했고, 하나는 성공했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의 차이이다. 너무 원형에만 집착해서 생각이 확장되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여 반응하지 않게 된다. 관광의 성공요인인 특별하면서도 보편성을 띠어 열광하게 만들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어렵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쉽게 공감하고 반응하여 재방문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래서 동해신묘의 전통은 재미와 쉬움으로 창작되어야 한다.
첫째, 동해신묘의 경우도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신묘의 접근을 쉽게 해야 한다. 문이 꽉 잠긴 동해신묘는 아무도 찾지 않는 지방기념물이고 죽은 박물관이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공룡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익룡을 타고 하늘을 날고 공룡과 놀이를 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을 만들 듯이 동해신묘도 바뀌어야 한다. 엄숙한 신앙의 대상으로 남은 동해신묘는 영원히 지금의 모습으로 접근을 불허하고 반응하지 않는 소나무 숲 속의 건물일 뿐이다. 최소한 동해신묘의 내부를 누구나 쉽게 가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방이 막힌 동해신묘는 누가 가도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다. 주변엔 화장실도 갖춰지지 않았다. 동해중수기사비문은 글씨가 작아서 읽을 수조차 없다. 게다가 나무진이 떨어져 글씨를 가리고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자동차 한 대 댈 수 없는 공간이다.
둘째, 동해신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야 한다. 언제까지 동해신묘의 전통을 어려운 단어 중사(中祀)로 남게 할 것인가. 왜 중사의 제의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퍼포먼스로 만들어지지 못하는가. 왜 동해신묘의 용과 용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익살스런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소설, 뮤지컬, 대중가요, 연극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는가. 왜 쉽게 이해시키고 알리고자 낙산 앞바다에서 용이 등장하여 꿈틀거리면서 춤추지 못하고, 용오름을 연출하지 못하는가. 양양은 해오름의 고장이다. 용오름과 해오름이 함께 하면 정말 환상적인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려면 보다 쉽게 동해신묘를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셋째, 동해신묘의 용과 용신을 쉽게 가지고 놀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용은 크고 웅장하다는 기존 관념을 버려야 한다. 등용문에서 용이 되는 실체는 뱀이 아니라 잉어와 같은 물고기이다. 후한서<이응전(李膺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황하(黃河) 상류의 하진(河津)을 일명 용문이라 하는데,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고기들이 오를 수가 없다. 강과 바다의 큰 고기들이 용문 아래로 수없이 모여드나 오르지 못한다. 만일 오르면 용이 된다.(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뱀을 가져놀기에는 문제가 많다. 징그럽고 무섭다. 그래서 쉽게 장난감으로 만들거나 놀이기구로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나 용이 되는 물고기는 누구나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다. 물고기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전혀 부담이 안 된다. 어른들도 그렇다. 낙산사 풍경처럼 고즈넉한 산사의 울림과도 연계할 수 있다.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는 등용문 상징의 물고기는 양양 낙산의 바다와 낙산사와 사람들이 잘 어울릴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해신묘는 쉽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전통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남원의 춘향콘텐츠, 장성의 홍길동콘텐츠, 춘천의 공지천콘텐츠 등처럼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야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반응하게 할 수 있다.
3. 결론
이 글은 동해신묘를 어떻게 전통계승과 전통활용과 전통창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목적에서 썼다. 그 방법은 시공세계글쓰기와 반 4차 산업혁명의 구도에 두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절대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간과 귀신의 교감(交感)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시간여행을 해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고, 기계로만 산업혁명을 이룬 사실에 반기를 들어 앞으로 5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선(善) 중심의 인간과 귀신’이라는 중심축을 활용하면 된다. 인본주의가 중심이 돼야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시공세계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현재로 가져와서 현재적 가치 창출을 이뤄내야 한다.
이에 동해신묘는 기계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으로 새로움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보편적 사랑 중심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융복합 창의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에 동해신묘가 절대 선(善)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서 동해묘의 활용문제를 밝혀 보고자 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전통계승론으로 전통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계승하는 방법이다. 동해신묘는 물(水) 신앙을 중심으로 인간과 신의 교감을 이룬다. 전통은 옛 풍속을 이어갈 때 그 가치를 더할 수 있다. 옛 제도를 문헌에서 보아 익혀서 전통을 계승해야 함을 말했다. 이때 광덕왕을 신위로 모시고 며칠에 걸려 제의를 행했듯이 3~5일 걸리는 축제의 형태로 행해야 한다.
둘째는 전통활용론으로 문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현대적 매체를 활용하도록 범위를 넓혀야 한다. 전통의 계승은 시대인식을 잘 하고 그 시대의 문화콘텐츠로 변화를 줘야 지속이 될 수 있다. 동해신묘는 제의의식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원망충족을 할 수 있는 기복신앙에 신비성과 신이성을 바탕으로 강릉단오제나 춘천 공지천처럼 환상과 실재가 함께 하여 현재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 이야기를 만들었을 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과 신의 교감은 복잡하고 어려우면 접근할 수 없다. 인간과 신의 교감, 그리고 사람의 정서는 단순하고 쉽게 이해할 때 가능하다.
셋째는 전통창작론으로 전통문화를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전통문화는 만들어진 것이다. 동해신묘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 이때 원형에 너무 집착해서는 곤란하다. 사람들의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야기마케팅 입장에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 중 하나로 동해신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해야 한다. 둘은 동해신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를 없애야 한다. 익살스런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만들어서 해오름과 용오름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은 용과 용신을 쉽게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용은 크고 웅장하다는 기존 관념을 버리고, 용은 뱀이 아닌 물고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뱀은 징그럽고 무섭지만 물고기는 친근하다.
이처럼 동해신묘는 쉽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원형을 벗어나 전통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남원의 춘향콘텐츠, 장성의 홍길동콘텐츠, 춘천의 공지천콘텐츠 등처럼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야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반응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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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reative Succession of Traditional Culture and Value of Donghae Shrine
- Dragon Ascending Town Yangyang Project and It's Cultural Meaning -
Lee Hak Ju
This study is a try to utilize Donghae Shrine. Timespace and anti 4th industrial revolution are used. It’s a try to transit from dreary machine centered industry to human centered industry. It asserts to make Yangyang a city of dragon ascending through sympathy between human and god searching for the absolute good. It says new contents can be made through free time travel and 5th revolution should be based on human emotion revolting against mechenical revolution. The pivot of good centered human and god on humanism can be used. Real value should be created importing virtual world made in the dimension of time space. So this study used tradition in three ways.
First, succession of tradition. Donghae shrine is a place of sympathy between human and god focused on the belief in water.
Second, utilization of tradition. Donghae shrine should not be only a place of memorial ceremony. Realistic value should be created in the presence of reality and fantasy on the basis of mystery. Story should be made simple. Sympathy between human and god and human emotion can be understood through simplicity and easiness.
Third, creation of tradition. Tradition can be made, so we should not obsessed by prototype. Tradition should be made in the direction of story marketing to induce sympathy and response. It should be accessed easily. Donghae shrine should be understood with ease. Exciting contents should be made deleting difficult terms. Dragon and god should be played with easily.
Key words: Donghae Shrine, Time space writing, 5th revolution, Sympathy between Human and god, Human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