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역사의 현장, 임란의 성지에 왔다. 안으로 수많은 유적과 함께 국립진주박물관을 품고 있으며 밖으로는 남강을 끼고 있다. 멈추고 흘러가는 임란의 모든 것이 이곳에 다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남강은 논개도 진주성 대첩도 지켜봤을 터이지만 이제는 비련의 강이 아닌 미관의 강, 낙관의 강으로 흐른다. 아직도 지속되는 성안 유물 유적의 복원 상황은 역사의 복원과 함께 현재적 삶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역사가 현재로, 선조가 후손으로 살아있다.
1. 진주성 대강
명칭 : 진주성(성내에 수많은 유적, 유물 있음)
위치 : 경남 진주시 남강로 626
입장료 : 2,000원
방문일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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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주성 소개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이룬 곳이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 지방을 지키는 길목이어서 진주성을 두고 조선과 왜의 다툼이 매우 치열하였다. 곧 조선 선조 25년(1592) 10월에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1554∼1592)과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이 진주성을 지키면서 왜군 2만명을 격퇴하였다. 하지만 다음해 6월에는 왜군 4만 여명이 진주성을 공격하였는데,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1537∼1593)과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등이 성 안의 모든 주민과 함께 성을 지키려고 하였다가 끝내 죽임을 당하였다.
현재 내수문(內水門)·외수문(外水門)·암문·장대(將臺)·포루(砲樓)·촉석루(矗石樓)·서문·내북문(內北門)·함옥헌(涵玉軒)·진남루(鎭南樓)·산성사(山城寺)·창렬사(彰烈祠)·충민사(忠愍祠)·화약고·관덕당(觀德堂)·공신당(拱辰堂)·포정사(布政司)·군기고·중영궁(中營宮)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진주성은 1970년대에 진주성 정화사업을 거쳐 복원 정비된 것이다. 그 뒤에도 발굴이 진행되어 기록에 전하는 내부 시설이 일부 밝혀졌다. 특히 1999년에 진주성 공북문터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 공북문 받침돌 아래에서 약 80㎝ 이상되는 판축층이 확인되었고, 그 아래에서는 저습지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호지(湖池)가 4곳이라고 한『여지도서(與地圖書)』의 기록이나「진주성도(晋州城圖)」의 성 안 건물터 배치와 부합되는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진주성은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고쳐 쌓았던 축성 방법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임진왜란의 산 역사를 담고 있는 성으로, 당시의 무기, 화약 등 국방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갖춘 성으로 알려져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공북문
김시민장군상
김시민장군이 공북문쪽을 바라보고 있다.
영남포정사 문루
영남포정사 문루는 진주성의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영남 포정사는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병마절도사 남이흥이 신축하였다. 고종 32년(1895년)에 진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 '영남포정사' 현판을 걸고 영남 행정중심지임을 알렸다. 건양 원년(1896년)에는 경상남도 관찰사 집무실 선화당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일명 망미루(望美褸)라고도 불리며,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남포정사 문루
진주성 우물
진주성은 삼국시대부터 왜적의 침략을 맞기 위해 쌓은 성으로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후기 진주성도에 표시된 우물 3곳 가운데 하나. 임진년 진주대첩 당시 관군과 백성들의 주요 식수원으로 사용. 2013년 진주시가 발굴 복원.
남강. 진주성을 감싸 안으며 흐르고 있다.
*쌍충사적비
문화재 지정 :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호
건립시기 : 1792년(정조 16)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전공을 크게 세운 성주목사(星州牧使) 제말(諸沫, 1552~1593) 장군과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큰 공을 세운 제홍록(諸弘祿, 1558~1597) 장군의 충의를 기록한 사적비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의 높이 4m, 너비 103㎝, 두께 28㎝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징비록(徵毖錄)』에 제말 장군은 경상도 고성(固城)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웅천·김해·의령 등지에서 전공을 세운 의병장으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조정에 알려져 성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 후 성주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조카가 되는 제홍록은 숙부인 제말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으나 이순신 휘하에서 싸우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한 인물이다. 이에 1792년(정조 16) 이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이조판서 서유린(徐有隣)에게 비문을 짓게 하고 비각을 세워 쌍충각(雙忠閣)이라 이름하고, 진주성과 성주성에 각각 세우게 하였다. 비문은 이병모(李秉模)가 썼고, 전액(篆額)은 조윤정(曺允亭)이 썼다.
일명 ‘제씨(諸氏) 쌍충비(雙忠碑)’로 불리우는 이 비는 본래 진주성 안 촉석루 옆에 있었으나 일본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61년 지금 자리에 다시 옮기고 비각을 새로 지었다.
이수(螭首)에는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키어 머리를 맞대고 중앙의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고, 그 아래에 4개의 국화무늬를 조각했다. 비를 받치는 귀부(龜趺)는 이수의 조각이나 비의 규모와는 달리 아무 조식(彫飾)이 없는 방형이며, 특히 돌출되게 조각한 두 눈 형상이 매우 토속적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쌍충각
쌍충사적비
촉석루. 공사중이어서 관람불가. 진주성 핵심을 보지 못한다.
촉석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666. 정면 5칸, 측면 4칸. 남강(南江)의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어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1241년(고종 28)에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1365년(공민왕 14)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촉석문
호국종각
임진대첩계사 순의단, 순국 민관군의 충혼을 기리는 제단. 1987년 건립
김시민장군 전공비와 촉석 정충단비
촉석 정충단비
김시민 장군 전공비(金時敏將軍戰功碑)
임진왜란 때에 김시민의 전공을 새긴 석비로, 진주 전성각적비(晉州全城却敵碑)라고도 부른다. 1972년 2월 12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다.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면오(勉吾)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다. 1591년(선조 24)에 진주판관이 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목사 이경(李璥)을 대신하여 목사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10월 진주성 1차전투에서 진주판관 성수경(成守慶), 곤양군수 이광악(李光岳), 함창현감 강덕룡(姜德龍), 의령의병장 곽재우(郭再祐), 거창의병장 김면(金沔), 합천의병장 정인홍(鄭仁弘) 등 경상우도 관군과 의병을 연합하여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추록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추봉되었다.
비는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칸 맞배지붕의 비각으로 보호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진주 주민의 열망에 따라 1619년(광해 11)에 세운 것이다. 성균관진사 성여신(成汝信)이 글을 짓고, 성균관생원 한몽인(韓夢寅)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1천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10만명의 군대를 물리쳤다고 했으나, 다른 기록에는 3,800여명으로 2만명의 적을 격퇴했다고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다시 진주 영남포정사 문루
하마비. 수령 이하 모두 하마하라는 비석. 수령만 말타고 지날 수 있다.
진주성 비석군
뒤쪽으로 철로 된 비석이 보인다. 비철?이다.
경절사
경앙문
경절사. 진양하씨 문중의 시조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하공진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진주시는 근처에 선화당을 복원할 예정이나 진양하씨 문중과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공진 장군
경절사 뒤로 북장대가 보인다.
운주헌터
*진주성 안에 유물 유적이 하도 많아 2부로 나누어 올린다. 이어 2부를 올릴 예정이다. 성내에 있는 박물관은 따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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