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연애
투석실의 스케줄은 세 타임으로 구분된다. 아침 일곱 시 첫 타임의 치료가 시작되면, 오전반 환자들이 한꺼번에 오기 시작한다. 환자들은 자기가 늘 눕는 침대에 누워 순서를 기다린다. 몰려드는 환자들의 팔에 바늘을 찌르고, 기계에 연결하다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투석기가 모두 돌아가기 시작하면 한숨을 돌린다. 이제 매 시간 혈압을 체크하고 환자들의 상태를 돌아보면 된다. 한 번씩 혈압이 낮아지거나, 다리에 쥐가 나거나, 복통을 호소하거나, 기계에 알람이 울리거나 하는 일들이 있기는 하지만 마칠 때까지는 비교적 조용하다.
4시간이 지나고 치료가 종료되면 다시 바빠진다. 투석 기계를 정지시키고, 바늘을 뽑고, 카데타를 교체하고, 다음 치료 준비를 위해 기계를 소독한다. 침대를 정리하고 다시 기계에 카데타를 설치하고 오후 스케줄의 환자들이 오기까지 모든 준비를 마무리한다. 그러자마자 두 번째 타임에 치료를 받기 위해서 환자들이 몰려온다. 다시 첫 타임 치료 때처럼 바늘을 찌르고, 기계에 연결하고 치료를 시작한다. 이런 과정이 5시 경에 또 한번 더. 9시 경 저녁반 환자들의 치료까지 다 마치고 내일 오전 치료를 위해 기계를 준비시켜 놓으면 투석실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K는 오후 5시경 병원에 도착한다. 피로로 머리가 멍하다. 투석 치료를 받고 나면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신장이 망가진 이후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졌다. 그중 하나가 잠을 자야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 투석 치료를 받아야 피로가 풀린다는 것. 일주일에 세 번씩 몇 년째 병원에 오다 보니, 병원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환자들, 익숙한 간호사들. 팔을 걷고 침대에 눕는다. 간호사가 다가와 팔을 소독하고 바늘을 찌른다. 바늘이 송곳만큼 굵다. 바늘이 살을 뚫을 때 몇 년째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을 느끼지만 나쁘지 않다. 멍한 머릿속을 깨워주는 듯하다. 사실 K는 바늘에 찔릴 때마다 기분이 좋다.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아픔을 느끼는구나. 내가 살아있구나.
밴드를 붙여 팔에 카데타를 고정하고 나면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피가 빠르게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약간 어지럽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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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투석실에서 K와 마주치던 사람이 있었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고 K가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K보다 더 나이가 어려 보여 기억을 하고 있었다. 몇 주간 보이지 않기에 K는 간호사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물었다. 간호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몇 주 전에 죽었어요. 바다이야기인가 뭔가 게임장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게 갑자기 불법이 되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재산도 다 날리고 빚도 지고 그랬나봐요. 칼륨 수치가 높아 응급으로 병원에 실려왔는데 수박 한 통을 한꺼번에 먹었다나봐요.
수박에 칼륨이 많아 그렇게 먹으면 안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쓰러져 있는 걸 동생이 응급실로 데리고 왔는데... 그렇게 됐어요. 가족이라고는 여동생밖에 없는 것 같던데. K도 나쁜 마음 먹지 말아요.
K가 투석을 시작할 때 병원에서 들은 금기사항은 대부분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중에 하나가 과일과 야채에 칼륨이 많이 들어있는데 신장 환자의 경우 배출이 잘 안되고, 칼륨이 쌓이면 심장에 이상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죽기까지야 할까 했었다.
K는 자신이 생과 사를 가르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한다면 손쉽게 죽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지운다. K는 자신이 처음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의사를 기다리는데 갑작스레 시야가 좁아지던 경험은 K의 인생에서 가장 죽음과 가까웠던 시간이었다. 동시에 K의 인생 중에서 가장 살고 싶었던 때였다. K는 정말 죽음이 두려웠고 간절히 살고 싶었다.
처음 투석을 받을 때 K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관절 마디 마디가 뻣뻣했고 다리에 힘이 없었다. 무기력증과 통증도 심했다. 다행히 투석 치료를 받으며 K의 상태는 안정이 되었다. 병원에 스케줄에 맞춰 반드시 가야 하고 여러 가지 제약과 조심할 것이 많았지만, 점점 더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점점 죽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꼈다. 그럴수록 K 안의 생의 욕구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했다. 사랑이었다.
누구나 동의하리라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돌아간다”는 문장은 과장된 문장이 아니다. K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돌아가던 사람이었다. 매력적인 이성이 지나갈 때, 자주,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돌아갔다. 그러나 신장이 망가진 후 K의 눈은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에너지를 자신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점점 상태가 안정이 되고 회복되면서 K의 눈이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K의 눈은 확실히 돌아갔다.
K는 인사를 하고 지내는 투석실 환자인 G와 함께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복도 저쪽에서 허리선이 잘록한 옷이 잘 어울리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K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G는 그 여자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그 여자도 어색하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지나쳤다.
어? J 선생님이에요?
G가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서야 K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예.
와! 사복 입으니 못 알아보겠네요. 완전 연예인인데요? 저렇게 예뻤나요?
그날 이후 K는 병원에 들어서면 늘 J를 찾았다. J가 근무를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J가 건네는 평범한 인사, 일상적인 농담 같은 것들에 얼굴이 상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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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K를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한다. J는 투석실에서만 3년차인 입사 5년차의 간호사였다. 5년차이지만 아직 간호사일이 어려웠다. 선배 간호사들 중에 J를 싫어하는 간호사가 몇 있었고, J가 실수를 할 때마다 놓치지 않고 자존심을 긁으며 지적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작은 실수까지도. J는 다시 실수하지 않게 긴장했지만, 그럴수록 더 긴장하고 실수를 했다. 그럴 때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병원 일로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J는 불안했다. J의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약을 먹고 조절이 되어 지금은 일상 생활에 문제가 없지만, 처음 조현병이 발현이 되고 진단을 받기까지 엄마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로 인해 두려워했던 경험, 진단을 받고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호전이 될 때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은 J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어머니의 질병 앞에서 J가 간호사라는 것은 별 소용이 없었다. 그저 정신병 환자의 가족일 뿐이었다. J는 자신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머니처럼 조현병이 발현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J는 어머니의 조현병이 어머니의 자궁암 수술 후유증과 더불어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날도 J는 선배 간호사로부터 지적을 당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늘을 찌르러 가는데 낯선 환자가 누워있었다. 차트의 나이를 보니 J보다 어렸다. 투석 치료를 오래 받은 환자들은 낯빛이 탁해진다. K는 아직 피부가 괜찮았지만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바늘을 찌르고 나자 K는 힘은 없지만 또렷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별 것 아닌 그 인사에 그날, J는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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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돌아간 날 이후 K는 J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몇 번 같이 식사를 하고 다른 간호사들과 어울려 함께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J도 K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의 관계를 쉽게 진전이 되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면 친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호감에는 선이 있었다.
치료에 적응을 하고 몸이 점점 회복되면서 여유가 생긴 K는 늘 과거를 후회했다. 건강할 때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라며 자주 상상을 했다. K는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K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건강의 한계를 늘 의식했다. 그것들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미래가 아니라 당장을 생각하자 다짐했다. 그러자 삶이 단순해졌다. K는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용기를 주었다. K는 점점 더 J에 대해 생각했다. K는 J를 갈망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J는 그에게 생을 의식하게 하는 통증이었다. J가 자신을 좋아할까, 자신이 고백하면 좋다고 해줄까, 나의 쉽지 않은 상황까지 받아들여줄까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고려하고 고민하기에 K는 가진 것이 적었다. K는 J와 식사를 하며 고백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J에게 저녁을 먹자고 문자를 보냈다.
J는 K의 고백이 당황스러웠다. 호감이 있었지만, 그걸 이성 간의 감정이라고 생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K는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이라 좋았다. 그러나 사귀는 것은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J는 당황스럽다며 일단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J는 고민이 되었다. K가 남자로서도 매력이 있어서 고민이 되었다. K를 자주 만나고 친해진 것에 이성적인 끌림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K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다. 병원은 소문이 빠른 곳이다. 소문은 소비되기 좋게 악의적이고 자극적으로 가공되기 쉬웠다. 만약 K와 사귄다면, 그 소문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를 싫어하는 간호사들이 그 관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다닐까 두려웠다.
J는 친한 친구를 불러내어 술을 마시며 K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K에 대한 호감이 있다면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사귀는 건데 뭐 어때, 단순하게 생각해 라고 했지만 결국 반대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J는 마시고 또 마셨다.
고민 끝에 J는 단순해지기로 했다. 그냥 사귀어보자. 그간의 연애들도 그랬었다. 헤어지고 나면, 이렇게 쉽게 헤어질 것을 시작할 때 왜 그리 고민을 했나 하는 사랑들이었다. 아마 그날 J의 결심의 팔할은 술기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알코올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J의 결정이었다. 술에 취한 J는 K에게 전화를 해 당장 데리러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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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J의 비밀연애는 신기하게 들통이 나지 않고 있었다. J는 침대에 누워있는 K의 발가락을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기도 하고, 지혈을 해주며 팔뚝 안쪽을 간질이기도 했다. K는 J의 출근 시간에 함께 병원에 와, J를 먼저 들여보내고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투석실로 들어가 J에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어느 날은 투석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기다렸다가 퇴근하는 J를 태워가기도 했다.
K는 J를 사랑하면서 점점 자신의 질병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J의 사랑은 K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J 덕분에 K는 점점 더 살고 싶어졌다. J도 K로 인해 자존감이 높아졌다. K는 J의 좋은 점을 찾아내 자주 칭찬하였고, 그 칭찬이 진심이었기에 J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머니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었다. K와 J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그들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J는 언제까지 이 관계가 계속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감정들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이전의 연애를 통해 알고 있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K가 좋은 사람인 것은 변함없었지만 감정이 가라앉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K도 그들의 관계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K는 스스로에게 이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J를 사랑하고 J와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J가 원한다면 아무 말 없이 보내주리라고 생각했다. K는 자신의 상황이 J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K는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고 J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관계를 끊는 어려운 역할을 J에게 떠넘기려는 비겁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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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J는 여행을 자주 갔다. 낯선 도시에서는 그들의 관계가 들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리낌 없이 보통의 연인처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번에 간 도시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겨울이었고 유명한 온천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K와 J는 유명한 관광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둘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J의 투석실에 같이 근무하는 동기 Y가 J를 가만히 불렀다.
야, 너 솔직하게 말해라, 연애하지?
응?
너 P 온천에 간 적 있어? 37병동에 있는 N이 너를 봤다는데? 어떤 남자랑 걸어가는데 심상치가 않더라던데?
제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N도, Y도 J와 같이 있던 남자가 K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아니야. 나 닮은 사람이겠지. 난 거기 간 적 없어.
그래~~?
장난스럽게 쳐다보는 Y를 두고 돌아서며 순간 J는 놀랐다. Y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소문이 나서 그것을 핑계로 헤어질 수 있겠다는, 헤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 때문이었다. J는 언제가 K와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K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K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연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랑과 연민을 구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만약, 소문이 나서 그것을 핑계로 헤어질 수 있다면 자연스럽지 않을까.
*
봄인데도 비가 자주오는 이상한 해였다. 방문을 연 K는 퀘퀘한 냄새가 며칠 전보다 조금 더 짙어진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언뜻언뜻 스치던 불쾌한 냄새가 비가 계속될수록 조금씩 진해지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제습기를 돌리면 며칠 괜찮았다 다시 냄새가 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냄새가 사라지는 것 같아 이제 괜찮아졌다고 안심을 하지만 다시 비가 시작되면 여지없이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비 오는 날이 길어지면 조금씩 더 짙어졌다.
버티고 버티던 K는 문제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벽을 가로막고 있는 책장들을 옮기고 짐을 치우며 냄새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벽지를 더듬는데 창틀 밑의 벽지가 조금 축축하게 느껴졌다. 확실하게 젖어있는 것 같지 않아 고민하다가 벽지를 살짝 잘라내 들추자 확실히 젖어 있었다. 사람을 부르니, 창문을 둘러 쏘아 놓은 코킹의 수명이 다해 그곳으로 물이 샌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뒤 방수와 도배를 새로 한 방은 쾌적했다. 깨끗하게 고치고 나니 곰팡이 냄새가 심했었다는 것을 K는 새삼 깨달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미련하게 미루었다고 후회했다.
후회했다. K는 깨끗해진 방의 침대에 누워 J와의 관계를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예전에 해결해야 했다. K는 J에게 문자를 보냈다.
둘은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K의 눈에 J는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고, J의 눈에 K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K도, J도 이제는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둘은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고마웠다고, 너로 인해 행복했다고, 늘 기억할 거라고, 서로를 보듬었다. 둘이 함께한 시간은 K와 J를 이전보다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 시간이었다. 문을 나선 둘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첫댓글 늘 새로운 도전을 하십니다. 저도 언젠가 따라서 한번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목과 다르게 평범하지 않은 연애 이야기로 읽힙니다. 수업시간 합평이 궁금해지는 소재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