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톡톡톡톡 톡톡톡톡 톡톡톡……
처음에는 천장에 쥐가 들어온 줄 알고 우리 부부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저걸 어떻게 잡지? 정말 귀찮게 생겼네.”
“아니야, 잘 들어 봐. 만일 쥐가 천정에 들어온 거라면 온 사방에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낼 텐데, 지붕 모서리 쪽으로만 소리가 나고 있어, 그러니까 적어도 지붕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않은 거야.”
이렇게 희망 섞인 추측을 하면서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항상 지붕 위에서 나는 소리에 대해 연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소리는 점점 빈번해지고, 커지고, 소리가 나는 범위도 넓어져만 갔습니다. 급기야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gutter(처마를 둘러싼 물받이)를 박박 긁는 소리까지 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잠 못 이루는 Vancouver의 밤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뒷마당에서 지붕을 살펴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시커먼 세모꼴 얼굴을 한 커다란 쥐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성벽 위에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듯이 말입니다. 아주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상하다. 이곳의 쥐는 아주 작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저건 왜 이렇게 크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돌멩이 하나를 던져 쫓아 버렸습니다. 이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지붕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그 놈이 쥐가 아니라 청솔모(여기서는 그냥 다람쥐라고 부릅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청솔모 쫓다 말고 옆집 처마 밑에 둥지를 튼 비둘기들을 쫓느라고 수십 개의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 놈들이 새벽부터 구구구구 시끄럽게 굴어 작은 딸이 잠을 설치곤 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배설물을 지저분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오른 팔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투구 수가 많았습니다.
돌 던지는 것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머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여, HOME DEPOT라는 곳에 가서 도움을 청했더니, 동물들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는 전자제품을 추천하더군요.
“그렇지, 역시 첨단 무기가 나와 있었군. 흐흐흐 이제 네놈은 끝이다.”
35불쯤 주고 사온 그 첨단 무기를 뒤뜰에 설치하고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다음 상황을 기다렸습니다. 찌잉 찌잉하는 소리가 무척 믿음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흘이 지나도 다람쥐 측의 변화는 전혀 없었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첨단 무기 옆 나무 울타리를 그 놈이 아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때로는 작는 나무 위에서 그 첨단 무기를 호기심을 가지고 내려다 보고 있더라는 겁니다. “저 놈이 나를 비웃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사이에 스쳐갔습니다.
이제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좋다. 한 번 해 보자 이거지.”
본격적으로 정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네 놈이 지붕에만 있을 리는 없으니, 반드시 오르내리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집 4면을 몇 일 동안 아무리 살펴 봐도 그 놈이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집 구조를 샅샅이 살피고,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 없는 미스테리였습니다.
천정에서는 여전히, 아니 점점 더 복잡한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사각 사각, 톡톡톡톡 톡톡톡, 부욱 부욱, 뻑뻑뻑뻑………”
정탐 활동이 지루해진다 싶던 어느 날, 뒤뜰 왼쪽 나무 울다리 위에 시커먼 그 놈이 애기 주먹보다 더 큰 빵을 들고 앉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앞 뒤 가릴 것 없이 뛰쳐나갔습니다. 그놈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의 무자비한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그 놈이 얼마나 놀랬는지(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빵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그 놈이 어디로 가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 놈은 후다다닥 나무 울타리 위를 달려가다가 우리 집 벽으로 뛰더니, 그대로 처마 밑까지 기어 올라간 뒤, 뒷다리는 벽에 붙이고 앞다리를 들어 gutter 끝에 걸치고는 몸을 끌어 올려 지붕 위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 초 후에는 저쪽 끝 알루미늄 gutter에서 후다다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잠잠해졌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뒤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오늘 정탐에서는 적어도 세 가지 성과가 있었다.
첫째, 그 놈에게 심리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가했으니 앞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갈 지도 모른다.(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둘째, 그 놈이 어떻게 지붕에 올라가는지에 대한 미스테리가 낱낱이 밝혀졌다. 보통 벽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벽난로 굴뚝 때문에 툭 불거져 나온 벽을 타면 벽과 gutter 사이가 짧기 때문에 통로로 이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 놈의 행동 반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 동안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격을 개시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그 놈이 버리고 간 빵을 깊이가 50cm쯤 되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넣은 뒤 나무 울타리 밑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 놈이 다시 오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지요. 다음 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아무런 징후가 없었고,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빵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이 곳이 그 놈이 다니는 길목이란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그 날 밤 잠을 자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꿈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 줄이야! 옛날 한 과학자가 방향족 화학 구조식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 지 고민하던 중, 꿈속에서 뱀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꿈을 꾸고는 그 해법을 찾아냈다고 하는데, 나의 이 아이디어도 그에 버금가는 것이 아닌가!
다음 날 바로 그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용 플라스틱 백(한국에서는 비닐 봉투라고 부르는 것)을 테이프로 연결해서 폭 40cm, 길이 3m 정도로 만든 뒤, 그것을 다람쥐가 올라다니는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미끄러워서 못 올라가게 한 것이죠. 우리 집에는 벽난로가 두 개가 있어서 똑같은 작업을 두 군데에다 했습니다. 그 날 밤 뿌듯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타다다닥 빡빡빡빡 톡톡톡톡톡톡톡……”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우리를 깨우는 저 소리에 저는 크게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세기의 아이디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그럴듯한 아이디어라고 자부했는데……
어제 설치한 장애물을 살펴보니 발톱 자국이 있는 것같기도 하고 아닌 것같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이 작전은 실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다른 작전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그 놈이 다니는 길을 파악했으니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바로 덫을 놓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한국 농촌에서 흔히 쓰는 그런 덫은 없다네요. 그래서 신문 광고를 보고 전문가한테 전화를 했더니, 다람쥐가 지붕에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대로 두면 지붕 밑 곳곳을 갉아서 급기야는 큰 공사를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다람쥐 가족들이 살게 되면 보통 일이 아니라면서요.
그래서 그 전문가에게 다람쥐 퇴치를 의뢰했습니다.
가로 세로 각각 20cm, 길이 60cm 정도인 trap cage를 설치해 놓고 그 안에 빵조각과 피넛 버터를 발라 놓았더니, 다음 날 아침 커다란 다람쥐가 잡혀 있더군요. 앓던 이가 쏙 빠진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승리한 장군처럼 포로를 내려다 보며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그놈은 씩씩거리며 등을 둥그렇게 부풀리고 온몸의 털을 세워 저에게 적대감을 보였습니다. 전문가를 불러 그놈을 멀리 갖다 버리게 하고는 기분 좋게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잡은 동물은 절대로 죽이지 않고 다른 지역에다가 풀어 주게 되어 있습니다.
6년 여 만에 다시 골프채를 잡은 관계로 100타 깨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필드에 나갔는데, 운이 좋았는지 90대 중반을 쳤습니다. 기분 좋게 돌아오며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떡하지? 천정에서 소리가 또 나.”
그 말에 이번에는 덜컹하는 소리가 제 가슴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재미 있게 골프를 쳤다는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딴 놈이 잡힌걸까? 아니면 혹시 암수 한 쌍이 살고 있었나? 그 동안 줄곧 혼자만 다녔는데….”
전문가에게 다시 전화해서 덫을 한 번 더 놓게 했습니다.
다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층에서 내려다 보니 덫에 무언가 잡힌 것 같은데, 좀 이상했습니다. 분명히 검은 물체가 보이긴 하는데, 주변에 희고 풍성한 털같은 게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토끼만큼이나 큰 동물인데 뭔지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구리 같기도 하고 ...... 어쨌든 다소 미심쩍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겁도 나서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와 전문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대충 모양을 설명해 줬더니, “아, 스컹크네요. 아이구 그거 골치 아픈 놈인데. 절대로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그놈이 한 번 방귀 뀌면(사실은 액체를 분사한답니다) 일주일 정도는 근처에 못 갑니다.”라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둘째 딸 친구 하나가 스컹크가 쏜 방귀에 오염되어 한 동안 병원에 다녔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 냄새가 참기름 쏟아 놓은 냄새하고 비슷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스컹크가 냄새 피운다 해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별로 문제될 일이 없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전문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더군요. 잡혀 있는 스컹크에게 접근해 가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스컹크를 안심시키면서 빵조각을 서너 개 넣어 주고, 종이 상자로 뒤쪽에서부터 덫을 가린 뒤, 조심스럽게 앞쪽에 있는 문을 열어주었더니, 스컹크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래도 그 분위기는 사뭇 긴장된 것이었습니다. 스컹크를 놓아 준 뒤 덫을 치우고 보니까 그 사이에 똥을 싸 놓았더군요.
예기치 않게 스컹크 같은 동물이 들어와 잡힐까 봐 이제는 덫을 땅바닥에 놓을 수가 없어, 나무 울타리 위에 묶어 놓아야 했습니다. 다시 이틀을 기다렸습니다. 무심코 밖을 내다 보니 커다란 다람쥐가 나무 울타리 위에서 덫에 놓아둔 빵을 들고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덫 밖에서 말입니다. 빵만 살짝 들고 나오는 바람에 문이 닫히질 않았던 모양입니다. 결국 그놈을 놓치고 말았는데, 그놈을 다시 보게 되는 건 그로부터 약 1주일 후가 됩니다.
어쨌든 실망한 채로 뒤뜰에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지붕 위를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지붕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4개의 눈동자!!!!!!!!!!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새끼 다람쥐 두 마리였습니다.
“아이구, 저기서 새끼들까지 낳았구나.”
새끼들은 아직 지붕에서 내려올 능력이 없을 텐데 저놈들을 어떻게 잡지?
다시 전문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새끼 두 마리가 있습니다.”
“저도 그 속에서 새끼를 낳았을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일이 번거러워지네요. 이번에는 덫을 지붕 위에 놓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긴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에 덫을 설치한 뒤 전문가는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다시 나가서 지붕 위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 !!!!!!!!!!!!!!!
비교적 작은 검은 물체들이 지붕 위에서 오글오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네 마리쟎아?
저는 점점 전의가 상실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네 마리의 새끼 다람쥐들은 번갈아가며 덫이 있는 틀 속을 드나들었는데,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 그런지 문이 쉽게 닫히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가 잡혔습니다. 나머지 세 마리는 바깥쪽에서 그 틀에 올라가기도 하고 틀 안에 있는 먹이를 좀 얻어 먹어 보려고 별 짓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새끼들이라 한 놈은 안에 갇혀 있는데, 바깥에 있는 놈들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오후에 다시 지붕 상황을 살피러 나갔습니다. 지붕을 올려다 보는 순간,
????????????????
!!!!!!!!!!!!!!!!!!!!!!!!!!!!!!!!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저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표현을 제가 사용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해도 너무 했다. 여섯 마리라니. 설마 더 있는 건 아니겠지?”
한참을 망연히 쳐다보다가 집안에 들어와서 쉬고 있으려니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덫이 바닥으로 떨어져 문이 조금 열렸고, 그 안에 잡혀 있던 다람쥐는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가지 걱정이 늘었습니다.
“달아난 다람쥐가 크면 자기가 살던 집이라고 다시 올텐데. 그 때 또 이짓을 다시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기존에 나무 울타리 위에 설치되어 있는 덫에라도 잡히기를 기원했습니다.
다시 전문가를 불렀습니다.
“제가 수많은 집을 다녀 봤지만, 6마리 새끼는 처음 봅니다. 이 집 주인께서 정말 좋은 분인가 봐요.”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 말이 전혀 제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끔찍하다는 생각 밖에는……
이 번에는 덫을 한꺼번에 세 개를 지붕 위에 설치했습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자 새끼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마치 일광욕을 즐기러 나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부모 중 하나는 잡혔고, 다른 하나는 덫에 놓아 둔 빵만 먹고 사라진 다음 행방 불명 상태라서, 먹이 공급이 안 되었던 터라 배가 몹시 고파서 무조건 밖으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번에는 금방 덫 세 개가 다 닫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전문가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가져가라고 했더니 다음 날 아침에야 온답니다. 그 날 밤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어서, 새끼 다람쥐들이 동사할까 염려되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 위에 잡혀 있는 새끼 다람쥐들을 보고는 어떻게 좀 해 보려고 주위를 빙빙 돌다가 급기야는 뒤뜰 맞은 편에 있는 차고 지붕 위에까지 올라가서 한 동안 노려 보다가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차고는 1층이라 2층 지붕에 있는 먹잇감이 아무리 먹음직해도 어쩔 수가 없었겠지요.
다음 날 아침, 덫을 내려다 놓고 보니, 모두 네 마리가 잡혀 있었습니다. 덫 하나에 두 마리가 함께 잡혔기 때문인데, 그 중 한 마리는 살짝 염려했던 대로 죽어 있었습니다. 발육 상태가 좋지 않았던 데다가 털도 별로 나 있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을 주니까 두 놈은 비교적 유순해서 반갑게 받아 먹는 데 반해, 한 놈은 무척 흥분해서 씩씩거리며 온몸의 털을 세우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한 뱃속에서 나와도 성격이 제각각인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이제 지붕 위의 새끼 한 마리와 도망친 새끼 한 마리, 그리고 행방이 아직도 묘연한 어미(인지 아비인지 모르지만) 한 마리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도망간 새끼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답니다. 먹이 찾을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숨길 능력도 없어 십중 팔구 다른 동물들에게 잡혀 먹혔을 거랍니다. 특히 까마귀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들으니,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다소 아팠습니다.
나머지 새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덫 한 개를 지붕 위에 또 설치했습니다. 이 번에도 금방 잡혀서 지붕 위의 새끼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행방불명인 어미는 벌써 며칠째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섯 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혼자의 몸으로 돌보는 것이 어려워 멀리 가 버린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의 추측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으로는, 그놈이 암놈이 아니라 숫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암놈이 새끼들을 그렇게 쉽게 버리고 가겠습니까?
그 동안에도 나무 울타리 위에 설치되어 있던 덫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그 아비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여분의 덫 하나를 맞은 편 나무 울타리에도 설치해서 만전을 기했습니다. 전쟁을 확실히 끝내기 위해서였지요
행방불명된 숫놈에 대한 존재가 머릿 속에서 사라져 가던 어느 날 무심코 뒤뜰을 내다 보다가,
마당에 시커먼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놈이었습니다. ‘돌아온 다람쥐’
마당을 배회하던 그 놈이 나무 울타리를 기어 올라가 덫 입구에 섰습니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철망으로 된 틀위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두 발 앞으로 나갔다가 한 발 뒤로 물러나기를 몇 번인가 반복하다가 드디어 미끼를 먹기로 결심한 듯 거침 없이 전진했습니다. 받침판을 밟는 순간 ‘철컥’하고 문이 닫혔고 그것으로 이 길고 긴 전쟁은 모두 끝났습니다. 다람쥐 제국의 부활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전문가의 손에 먼 곳으로 이송되기 전에 먹이라도 좀 주려고 접근했더니, 온몸을 크게 부풀리고 털을 세워서 저를 위협했습니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철망을 긁어 대면서 씩씩거리는 것이 마지막으로 의연히 최후를 마치려는 적장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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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길 가다 다람쥐를 보면 귀엽다고 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곤 했는데, 이제는 정말 귀여운 다람쥐를 봐도 3개월 이상 맞서 싸운 적군으로만 보일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들어간 전쟁 비용도 속을 쓰리게 하겠지요. 하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는데, 그 정도의 출혈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끝으로 이 글이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동경, 아니면 적어도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 가는 아기 다람쥐에 대한 예쁜 환상을 무참히 깨뜨려 버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3년 전에 써 놓은 것인데, 이 카페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고자 올립니다.
듀크씨, '역이민'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글이지만 이곳에 들어오시는 분들께 작은 읽을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우하하하~ 우하하하~
전쟁을 치르신 원글님께는 죄송하지만 빼어난 글솜씨에 몰입하여 웃다가 긴장하다가
계속 이어지는 코믹 전쟁물(?)에 저도 모르게 모든 인간사 뒤로했습니다.
우리동네엔 배짱 두둑한 다람쥐와 저녁 9시쯤 나타나는 안경쓴 너구리가 주연으로,
조연으로는 청솔모때문에 가슴 쿵더쿵 하는 일이 종종있어 더욱 실감났읍니다.
원래가 동물들의 생활 터전에 사람들이 집을 지어 침범을 한것이니 잘못은 사람이 먼저 한것 아니겠습니까.ㅎㅎㅎ
보는사람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올 봄에 텃밭에 침범하는놈(보는사람마다 얘길했더니 그라운드 헉 이라는 놈이라더군요)
저는두주간을 씨름하다가 사진에서 보는 똑같은 덧을 홈디포에서 50불인가 주고 사다가 놓았는데요 잡지는 못하구
덜컥 소리에 이놈이 놀랬는지 옆집 앞마당 숲으로 이사를 갔습니다.조금 전에도 오디나무 밑에서 뭘 먹고 있는걸 보았는데 다시 우리집 쪽으로 올까봐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젠 사슴이 문제입니다.오이줄기랑 감나무 순들을 먹어치워서
감나무는 자랄 새가 없네요
ㅎㅎㅎㅎ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빼어난 표현력에 추천드리고 갑니다. 역이민과 관계 없기는요! 이런 글은 이민경험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이야깁니다. 전에 써놓은 글이 또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민 초기부터 짧은 글이니마 써 둔 것들이 있는데 상당수는 없어져 버렸고, 남은 글도 신통치 않은 것 뿐입니다. 그래도 혹시 올릴 만한 것들이 있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오파썸(opossum)'이라고 불리는 보통 흰색이며 쥐보다는 훨씬 크지만 비교적 느린 동물이 뒷뜰에 가끔 나와서 그 대책으로 진도개를 구해다 퇴치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길들일 수 없거나 길들이기가 아주 힘든 다람쥐, 청솔모와 같은 동물은 자연 상태에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좋지만 너무 가까이 하기엔 성가신 것들입니다. Alexy님의 글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몇년 전 밴쿠버에 살던 때가 생각나는 군요...
주택 살며 한번씩 겪게 되는 원치 않는 전쟁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그 땐 담장 밖의 싱그런 나뭇잎들도 가을의 낙엽되어 뒷마당에 낙하할것 염려하여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콘도에 살다 보니 다시 주택 생활이 그리워집니다. 미국 여행 소식도 들을 겸 점심번개 신청합니다.
미 대륙 횡단 여행이 중단된 것을 모르셨군요. 나중에 만나 뵙고 말씀 나누지요.
제가 최근에 했던 경험과 한치의 틀림이 없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틀로서 무려 20마리 이상을 잡았습니다.
저는 직접 운전해서 버렸는데...주로 골프장에...5마일 이상 운전해서 버려야한답니다.
실제로 스프레이를 뿌려서 근처 공원에 풀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바로 돌아와있었습니다.
지붕안의 다람쥐들은 모두 처치가 되었고...고즈녁한 시간들에 마당을 뛰놀면서 한가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녀석들이 사라지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는데 최근에 다시 새벽이면 새롭게 나타난 다람쥐 울음에 뒤란이 다시 생명의 분위기로 수선댑니다. 지붕에만 들어가지 않는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위 글을 쓴 다음 해에도 몇 마리를 더 잡았습니다.
그 때마다 저도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골프장에 갖다 버렸습니다.
그 뒤 새로 이사온 옆집 고양이가 수시로 우리 집 앞 뒤 마당에와서 순찰을 도는 덕에 아주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공원을 지니가다가도 청솔모를 보면 여전히 투지가 솟아 오릅니다.
스프레이를 뿌린 녀석이 자기 집이라고 정확하게 다시 돌아오는데까지는 이 친구들이 명석하다고 봐야하는데
다시 틀에 들어가 잡히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경주애인님의 원래 동물이 살던 터에 우리가 침범한 것이 아닐까...하는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타임지에 케네디공항 활주로에 사는 거위들이 비행기에 부딪히거나 빨려들어가거나 위험으로서 제거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가고 예측되듯이 동물 애호가 협회에서 거위떼처럼 들고 일어났습니다....거위에 대한 인간의 불공정한 행동이라는 것인데....거위는 천적을 멀리서도 볼수가 있는 시야가 트인 평지를 좋아한답니다...그래서 공항과 골프장에 몰려사는 것이죠...그런데 자연은 공백을 싫어하고 인간이 사라지면 모든 평지는 숲으로 덮히게 된다고 합니다...결국 현재의 평지들은 인간들의 산물이고 그래서 인간때문에 거위가 몰려드는 것이니까 결국 원인을 제공했으니 불공정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단숨에 읽어내린 글이지만
그동안 청설모와의 긴 시간 투쟁이었겠어요
밴쿠버의 6월은 참 아름답겠지요
통계상으론 그렇습니다마는, 올해 6월은 지난 15년 동안의 날씨 중 최악이었습니다.
드디어 alexy 님의 글을 읽게 되었네요. 톡톡튀는 글 솜씨에 은근한 매력이 넘칩니다.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잠시 즐거웠습니다. 어머님의 건강은 여전하시겠지요. 모든식구들의 안녕을 빕니다.
사실은 Lawrence님 힘들어 하시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생각에서 올린 글이었는데, 재미 있게 읽으셨다니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파킨슨씨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오래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병임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침대에서 혼자서는 몸을 일으키지 못하시니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현재는 요양 병원에 계십니다.
저희도 오래전에 다람쥐가 들어와 집 창문을 긁어 1500불 정도의 손실이 잇었지요.결국 트맆을 놓아 잡기는 했는데 그놈이 너무 커서 무섭더라고요. 그놈을 데리고 강을 건너 몇마일 떨어진 곳에 플어 놓앗던 기억이 잇습니다.
Squirrel을 없애기 위하여서는 1. roofer 나,gutter repair하는 사람 부르시어, 집안으로 들어올수있는 구멍 전부막고, gutter밑의 VENT제대로 마추어져있나 확인및 고치시고, 2.뒷마당에, 진도개 한마리 기르시면, 집안에 움지기는것은 오직 진도개뿐이 됩니다. 3. 가끔 진도개가 잡은것 삽으로 검은 garbage bag에 넣어 버리시면 해결됩니다.
진도개가 최곱니다. 이 종자는 사람에게는 관대하지만 자기구역안의 다른 짐승이 있는 것을 절대 그냥 두고보지 못합니다. 우리 국산 토종개가 이렇게 요긴히 쓰일줄을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ㅎㅎ
호호호....하하하...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글솜씨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재미있게 세상모르고(?)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