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자
김 초 성
금정산 자락은 내 집의 일부이자 든든한 믿음이고 기둥이다. 언덕진 길을 오르며 발걸음이 무거워질 땐 습관처럼 우거진 솔숲 위로 길게 드러누운 능선을 바라본다. 구름발치에 파란색과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큰 바위 얼굴처럼 떠올려보는 얼굴은 지금도 나만이 그리는 형상이다.
그 얼굴은 하나의 모습이지만 매번 달라진다. 어느 누군가의 자화상이거나 책속에서 본 성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심신이 지쳐있을 땐 아버지의 얼굴로 그려지곤 한다. 형제들과 오래도록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된 탓일까. 띠앗에 그리워 늘 외로움을 탔고 마음 추스를 곳이 없었다. 나의 이 버릇은 오랜 기간 자주 찾아왔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찾아 새둥지를 버젓이 틀었어도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삶의 고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생업에 지쳐가도 아이들과 남편에겐 수퍼우먼이 되어야했다. 내가 만능인이 되어주길 바랐고 나 역시 매사에 체력이 소진할 때까지 몸과 마음을 혹사를 하였다. 주변 사람들에겐 체면과 자존을 지키지 못해 속을 끓이다보니 더더욱 지쳐 갔다.
물심양면으로 마구 퍼 담고 싶었던 젊은 시절, 많은 것을 포용하기엔 내 그릇은 보잘 것 없이 작고 초라하고 연약하다고 여겼다. 그러한 이유를 환경과 조건에만 핑계를 두었다. 커질 수 없는 그릇이라 투덜대며 둥개기만 했다. 현실을 실감하는 생활인으로 살지 못하고 무지개만을 쫒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조용히 일침을 놓으셨다.
“생각에 달렸다. 쓸모 있는 것을 담으면 되는 거지. 작은 씨앗을 담아 보거라.”
씨앗이 돋아낸 싹은 해를 거듭하면서 꽃이 피고 열매로 맺는다. 푸른 나무가 된다. 그런 말씀이 있기 전까지는 씨앗은 그저 다양한 모양새나 색깔을 가진 알맹이일 뿐이었다. 때가 되면 종족보존을 위한 식물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이어가는 씨앗이지만. 씨앗이 가지는 인내와 고통, 지루한 시간은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었다. 생명의 지혜와 꿈, 노력과 희망, 시련과 나눔의 향기, 뿌듯한 결실과 자연의 순환을 알려주셨음을 당시엔 알지 못했다. 너만의 종자를 잘 키워나가라는 아버지의 씨앗으로 숨은 뜻을.
누리지 못하고 채우지 못하는 정서에 속병을 앓을 때가 있다. “조금만 덜어내면 나중에 알게 된다 ” 라는 말씀이 더욱 가슴에 맺힌다.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짧은 이 말씀은 봄날의 새잎처럼 마음에 각인된다. 수용하기 어려웠던 유혹들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 쯤에야 나의 잠언으로 동반하게 되었다. 가끔씩 금정산 능선을 바라본다. 어려울 적마다 아버지의 음영이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두고두고 새기며 산다. 집에서 일터로 시계추 같이 살아가는 동안 정신적 위안과 채찍이 되어서 새로운 힘을 얻곤 한다.
밀림 속의 천사 슈바이처나 영혼을 벅차게 하던 악성들, 감히 넘볼 수 없는 펄벅의 필력과 봉사가 내 마음의 등불이 되어줄 수는 있어도 나의 멘토가 되어 줄 수는 없었다. 자식들만 위하는 다정한 아버지로 살기보다도 사회를 위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신 분, 둘도 없는 인생의 스승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으므로. 각별하신 아버지가 바로 나의 멘토이셨다. 작은 것으로부터의 철학을 실천하지 못했던 나는 더 이상 청맹과니는 되지 않으련다.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을 바보라 한다. 난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 늦게라도 배우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이 늦은 배움에 심취할 때 그만큼 새 앎의 희열이 크다. 나도 늦게나마 그 희열을 맛보고 싶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 같은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가능하면 주변의 일과 인연을 내 고유한 종자로 삼아 소신껏 따뜻한 시선으로 키우려고 애쓴다. 매서운 계절을 이겨내고 푸른 나무로 클 때까지.
약력
[에세이스트] 신인상.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경수필. 금정구 문인협회 . 서정과서사 회원.
약사문학상.
수필집『 노마의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