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문단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현수/현대시인협회 정회원
시를 사랑하는 열망과 한국문학을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은 별게의 문제일 수도 있다. 글을 대하는 자세와 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특별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거슬러 올라보면 우리에게는 윤동주라는 민족 시인이 있다. 암울했던 시절 시를 쓰는 윤동주에게 세상은 그를 평범하게 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인의 가슴은 늘 정의롭고 순수하다. 잔인했을 일제의 핍박에 굴하지 않고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을 그는 시를 쓰며 고뇌하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 수호 계몽 운동에 앞장섰을 것이다. 윤동주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해왔다는 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사하기까지 그의 곁에는 송몽규라는 고종사촌이자 든든한 동지가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시집을 출간하고 싶어 했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윤동주는 끝내 죽음을 맞아야 했다. 우리는 그의 시집을 사후에 만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독자로 그의 시를 절절하게 사모하고 이해하려 하는 후배 시인들이 되어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여러 가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한다. 윤동주가 순수문학을 하며 시를 쓰고 싶어 하는 학생이었다면 송몽규는 몸으로 실천하는 행동파 독립운동가가 되고 싶어 했던 문학가였다.
그간 윤동주의 그늘에 가려 송몽규라는 인물에 초점이 덜 조명되었던 건 사실이지만 문학을 하는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송몽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될 정도의 문장가였다는 사실이다. 시대만 잘 타고났더라면 송몽규 역시 윤동주에 버금가는 문학인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송몽규에 비해 타고난 투사 기질은 아니었지만 윤동주는 글을 쓰며 일제의 핍박을 견뎌내었고, 독립군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시간에 그는 펜으로 문장으로 문인으로서의 조국 독립을 위해, 제 할 일을 충실히 해왔기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존경받는 시인으로 남아 있는지 모른다.
이번 한양 6호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의 면면을 읽어 내리며 나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었다. 성격이나 성향은 다르지만 민족의 독립과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다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 등단하여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들 역시 앞으로 한양 문학과 대한민국 문단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는 훌륭한 작가들일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분들로 보여 진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시대를 앞서간 선배 작가들의 피 흘림과 희생의 노력 위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양문학 6호 신인상을 받은 작품을 대하려한다.
신인을 발굴하는 일은 보석을 캐는 의미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땅의 깊이나 조건을 알지 못하듯 작가의 글이 어떤 마음으로 창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본인 말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세련되고 능수능란하게 글을 다루는 기성 작가의 글과는 달리 신인상은 순수하고 아직은 때 묻지 않았으며 약간은 서툴게 보이더라도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풋풋한 글에 그 선정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이번 6호 봄 호에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이 예심을 거쳐 본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시나 시조를 쓰면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감정 속에 감동이나 교훈적인 글자가 있으면 좀 더 독자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교감하는 시와 시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시”부문 신인상으로는 박종선 시인의 낙서 외 2편, 그리고 시조 부문 신인상으로는 이종덕 시인의 고향 외 4수, 엄지원 시인의 한적한 산책로엔 외 4수를 선정하였다.
박종선 시인은 칼럼집을 펴내기도 했던 기본이 탄탄한 신인 작가이다. 그의 시에는 인생을 살아낸 역사가 보여 진다. 차분하게 그려낸 시의 내면에 작가의 품성이 느껴지며 세월과 인생 두 가지의 깊이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 “세월” 첫 구절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맺힌 것이 많은 건가 / 나 이직 덜 성숙되어 그런가 / 마음 속 참음에 시한이 다한 건가 / 그렇게 살고 있는 자신이 밉다’. 시인은 끝없는 성찰과 반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시 “오해” 에도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마음이 구겨지고/ 생각이 구겨지고/ 몸도 구겨지고/ 행동도 구겨진 하루/ 아직도 / 작은/ 욕심에 탐하는/ 내가 부끄럽다‘ 이렇듯 시는 교훈이 있어야 하고 울림이 있어야 하는 것인 게다. 박종선 시인의 시는 한그루 큰 느티나무가 서 있는 선이 굵은 글이 많다. 그의 시를 읊조리고 있노라면 오래된 고향 마을 어귀를 돌아가며 호젓하게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젊은 날의 자신과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어느 경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예리하고 독특하다. 손바닥 위에 아름다운 구슬을 올려놓은 듯한 그의 시에 조금만 더 다듬어진 글을 창작해 낸다면 우리가 기대해도 좋을 시인 박종선이 될 것이라 믿어 본다.
시를 쓴다는 것, 시조를 쓴다는 것은 자기 성찰이고 반성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있어 시란 일반 대중의 정서와 시를 짓는 작가의 사상이나 정서가 글로 잘 표현된 현상을 말하며 현대시의 형식은 그 틀이 특별히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황지우의 시 “뱀“ 은 ‘뱀, 너무 길다’가 전부이듯 현대 시에는 산문시에서부터 짧은 한두 마디로도 시가 되는 경우가 많음을 이해하고 다양한 장르의 글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이번 시 부문 신인상을 받게 된 박 종선 시인의 시에 가미된 서정성이나 미래 지향적 그리고 과거에 대한 회상과 미련 반성의 의미들은 시 창작의 욕망에 원초적 나르시즘을 기반으로 한 충동이 깔려 있는 시인만의 감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를 쓰며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 부끄러움과 자기 성찰에 대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보여 지는 박종선 시인의 힘은 향후의 한양문학에도 큰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다음은 시조 부문 수상자의 면면을 간략히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이종덕의 시조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반갑다. 달 밝은 밤 호롱불 아래서 읊으면 딱 제격이겠다 싶은 시조를 쓰는 시인이 이종덕이다. 그가 쓴 고향은 연시조 형식으로 읽는 독자 누구나가 금방이라도 고향 신작로에 들어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 시간 책을 만드는 일을 해오며 활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기도 했고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기도 한 전문성이 확실한 시인이다. 현대시조와 고시조의 차이를 보면 역사성으로는 갑오경장 이전과 이후로 나누지만 현대시조는 제목이 있고 고시조에는 제목이 없다는 것도 해당됨을 알 수 있다. 고시조가 풍류적 관념적 성격을 지니고 도덕과 충의 자연친화적 주제가 주를 이뤘다면 현대시조는 탐미적이고 지성적인 내용을 담은 개성적이고 자기 암시적인 주제 속에 내적 감정과 심리를 묘사한 시조가 많은데 이종덕의 시는 고시조와 현대 시조를 넘나드는 듯한 맛이 느껴진다. 고향을 제목으로 한 시조 마지막 연에 그의 추억과 애환이 담긴 그리움까지 절절함이 담겨 있다. 흰 구름 언제오니 지나간 너의 길을/ 옛 흔적 맘에 담은 너의 흔적 기다린다/ 되 오면 담은 내 고향 쏟아 놓고 가시게/ . 시조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느낌이 있어 좋다. 제목 아들과 추억 사이 또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감성을 끌어 올린다. 마을을 둘러싼 논두렁길을 상상하기도 하고 잠자리 날아가니 아들은 상심하고 에서는 아들에 대한 애비의 사랑도 보여 진다. 이종덕은 분명 성실함과 예리함으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시조를 쓰는 시조인이 되리라 확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벌써 그의 다음 시조가 기다려 짐은 섣부른 욕심일까?
엄지원의 시조는 섬세하고 탄탄하다. 기성 작가 못지않은 그의 기본기는 왜 이런 작가가 아직 등단을 미루고 있었을까 싶은 의심을 줄 정도다. 시조가 가진 문학사적 의미로 한문 문화가 모든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시기에 우리말로 노래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살린 점과 고려 시대에 형성되어 현대시조로 전승된 전통적 문학으로 양반과 평민 모두가 지었던 국민문학이었단 점이다. 시조의 특징이 초장, 중장은 3,4,3,4,의 개방된 모습을 띠어 생각의 지속을 보이다가 종장에서는 3,5,4,3,으로 하여 정서를 전환, 고양하면서 주제를 집약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시조의 초장과 중장은 뒤에 무엇인가가 이어질 것을 예상케 하는 율격적 개방성을 띠고, 종장은 호흡을 비대칭적으로 긴장시켰다가 풀어줌으로써 작품을 완결하는 것인데 엄지원의 시조는 이런 부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창작해 낸 시조로 보여 진다. 시조 햇살은 깃털에 앉아 의 전문에 나오는, 한적한 산책로엔 아직도 겨울이고/ 심심한 청둥오리 날갯짓 요란해도/ 햇살은 깃털에 앉아 봄바람을 부르네/ 이 시조는 여류시조시인 특유의 서정과 희망이 있는 깔끔한 시조로 보여 진다. 청둥오리의 날개 짓에 봄바람이 불어 마음 따스해지는 듯한 묘사는 엄지원 시인만이 상상 가능한 것들이다. 제목 고목의 나이테 전문을 보면 세월에 흐름 따라 풍파에 부딪혀도라는 압축된 두 구의 내용만 보더라도 그의 삶과 연륜이 느껴진다. 시조가 오래도록 유지되고 계승되어지는 데에는 공감성과 일치성 때문으로 어떠한 변용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작가와 시조를 이해하는 독자 사이에 형성된 무언의 약속 같은 규칙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잘 실행하며 글을 쓰고 시조를 짓는 시인이 바로 엄지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6호를 통해 새로이 발견하게 된 소득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시조를 쓴다는 것은 오래된 새로움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신인들의 시조를 읽어가며 현대시조의 당연한 전제이기도 한 오늘의 인식과 방향에 무감한 응모작이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목소리를 눈여겨보면 피상성에 걸리고 안정적 보법을 들여다보면 상투가 드러나 원고를 집었다 다시 놓아야했던 반복의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이종덕 시인과 엄지원 시인의 시조는 두 분 모두 말을 들어내는 압축미와 형식의 내면화 속에 잘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는 맛이 있어 많은 원고들을 물리치고 당선을 시켜야겠다는 확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예전에 비해 오로지 시만 쓰는 작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형식도 파괴되어지고 소설이나 산문에 비해 딸랑 한 두 장이 전부인 시의 고료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진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시조를 사랑하는 열정 하나로 글을 쓰고 문학을 한다. 모쪼록 평범하지는 않은 글쟁이의 삶이지만 한양 문학이라는 문단에서 등단을 하고 함께할 수 있음이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던가. 박종선 시인, 이종덕 시인, 엄지원시인, 세 분 모두 이번 봄 호와 함께 등단의 영광을 누리게 됨을 자랑스럽게 여기시어 부디 좋은 문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 분의 시인이 걷는 길에 한양 문인회의 이름으로 축하를 보내는 바이다.
첫댓글 시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가득한 글입니다.^^
선생님
주제 넘게도 지난 봄호 부터 합류하여 신인상 서평을 했었습니다.
남의 글을 평한다는 건 참 난감한 일이기도 합니다 ㅠ
신인상으로 당선되신 분들은
행복할것 같습니다
이렇게 깊고 정성 가득한 서평으로 문을
여니까요~
멋지십니다^^
신인 작가들의 글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서평이 부끄러웠습니다 선생님.
주말 편안한 일정 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깊이있는 서평을 읽게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詩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초보 신인작가들의 등단 서평이라 시에 대한 흥미를 잃지않게 하려는 생각으로 서평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맞으세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