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20코스-1
제주인의 삶이 응축돼 있는 밭담과 에메랄드빛 바다
제주올레 19코스 트레킹을 마치고 김녕리에 도착한 나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서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짐을 풀고 샤워까지 마치고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게스트하우스 거실로 나가 오늘 저녁 이곳에서 묵을 여행객들과 인사를 나눈다.
오늘은 남자만 네 명인데, 한 분은 중앙일간지 기자로 제주 출장을 마치고 삼일 동안 올레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고,
대구에서 온 사업가는 김녕리에 집을 사려고 왔단다. 네 명 중 가장 젊은 청년은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에 여행하려고 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4명은 회비를 갹출하여 주인의 안내로 한치회와 전복, 멍게 등을 사왔다.
싱싱한 회에다 술까지 곁들여 먹으며 얘기꽃을 피운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숙박하는 사람들끼리
식탁에 모여앉아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자들의 교류공간이다.
“저는 여행을 혼자 다닌다는 것을 상상도 못해봤는데, 여기에 와보니 혼자 여행하는 분들이 많네요.”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홀로여행에서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지요.”
대구의 사업가는 홀로 여행객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단다. 사실 올레길을 걷다보면 혼자 걷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렇게 시작된 얘기는 술을 매개로 늦게까지 무르익어갔다.
서로 살아온 얘기며 다른 곳의 여행담도 곁들여지니 처음 만난 사이지만 몇 년을 교류해온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다.
어제 6시간 정도 걸었던 데다 적당히 술까지 마신 나는 아침까지 세상모르고 잠을 잤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식빵과 샐러드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서 어제에 이어 20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대구 사업가는 비행기시간에 맞추느라 일찍 떠나고,
19코스를 걸을 기자와 20코스를 걸을 나는 김녕서포구 해변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출발을 한다.
20코스의 방향을 알리는 간세 앞에서 김녕리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잉크를 풀어놓은 것 같은 군청색 바다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다정하게 어울려 있다.
20코스는 김녕마을 골목길을 걷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골목마다 높은 돌담들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돌담 안에는 제주도의 전통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김녕리의 주택들은 현대식 건물도 있지만 제주도 전통양식의 집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녕은 다른 마을보다 비교적 제주도의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요.”
어제 저녁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골목길에는 옛 가옥을 개조하여 카페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어제 김녕리에 일찍 도착하여 마을을 둘러보면서 들렸던 카페도 그런 곳이었다.
창원에 살다가 작년에 이 집을 사서 외형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만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조그마한 제주도 가옥의 벽을 유리로 바꾸고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내었는데 밖으로는 바다가 바라보이고,
내부는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 50대 중반쯤 되는 아주머니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데, 그
런대로 장사도 되는 편이고 즐기면서 제주생활을 하다 보니 행복하다고 한다.
돌담이 아닌 해변 시멘트벽에는 벽화를 그려놓아 산뜻한 느낌을 준다.
몇 년 전에는 금속공예를 하는 분들을 모셔다가 마을 곳곳에 금속벽화도 설치했다.
바다로 나가는 골목 돌담 밖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오래된 마을 김녕리에는 예로부터 지하수가 풍부했다. 게웃샘물, 성세기물, 청굴물, 신수물, 고냥물 등으로
부르는 용천수가 풍족하게 솟아나왔다. 김녕리 해안을 따라 걷고 있는데, 둥글게 담을 쳐서 만든 샘이 보인다.
바다에서 맑고 차가운 민물이 펑펑 솟아나는 청굴물이다.
청굴물 용천수에 몸을 담그면 병이 치료된다고 하여 옛날에는 이웃마을 사람들까지도 이삼일씩 김녕마을에 머물며
청굴물로 몸을 씻고 갔다고 한다. 청굴물은 밀물 때는 잠겼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청굴물을 지나니 도대불과 육각정자가 손짓을 한다.
도대불 쪽으로 해안길을 따라가는데 접시꽃이 빨갛게 피어 푸른 바다와 보색을 이룬다.
김녕동포구와 김녕해수욕장으로 돌아가기 직전 해변 야트막한 언덕에 원뿔형의 도대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안마을 선창에는 도대불이 설치되기 이전부터 긴 나무를 세워 불을 밝혔는데,
도대불은 나무로 만든 등불보다는 발달된 신호유적이다.
도대불은 밤에 조업 나간 어부들을 안전하게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 마름모꼴이었던 김녕리 도대불은 1960년 태풍으로 허물어져 1961년 원뿔형으로 축조되었다.
도대불 상단에 등잔을 놓고 밤이면 호롱불을 켜놓아 밤에 입항하는 어부들에게 불을 밝혀주었다.
1972년 김녕리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도대불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도대불에서 바라보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김녕리 마을이 평화롭고, 마을 뒤에서는 멀리 한라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그리고 김녕항 등대가 북쪽으로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도대불을 지나자 김녕해수욕장 백사장이 등장한다.
해수욕장 뒤편 덩개해변 쪽에서는 풍력발전기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김녕리는 2.5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끼고 마을이 형성돼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다.
가옥이 1,200세대나 돼 제주시 구좌읍 소재지가 있는 세화리보다도 크다.
김녕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200m, 너비 120m, 평균 수심 1~2m 정도로,
해수욕장으로서는 규모가 작지만 희고 부드러운 모래와 맑고 푸른 바다가 검은 현무암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김녕해수욕장은 김녕성세기해변으로 불린다.
외세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 있었다고 해서 성세기해변이라고 불렀다.
해수욕장 앞으로 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지지만 타원형을 이룬 부드러운 백사장 때문에 해수욕장은 포근한 느낌을 준다.
슬며시 왔다가 말없이 빠져나가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파도는 섬섬옥수 같은 백사장이 그리워
성세기해변을 결코 떠나지 못한다.
여기에 뒤질세라 모래사장을 감싸고 있는 검은 돌들은 해맑은 바닷물과 귓속말을 주고받는다.
해수욕장은 넓은 야영장까지 갖추고 있다.
길을 걷다가 김녕성세기해변 쪽을 바라보면 검은색 현무암과 하얀 모래, 푸른 바다가 모자이크를 이루며 다가온다.
김녕리 마을 뒤편에 솟은 입산봉(삿갓오름)이 멀리 한라산을 등지고 마을을 감싸준다.
해수욕장을 지나면서부터는 평평한 해변오솔길을 걷는다.
덩개해안은 분출된 용암이 천천히 흘러가면서 널따란 바위지대가 형성된 곳이다.
검은색 현무암이 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어 ‘바다정원’ 같다. 그래서 덩개해안을 ‘백만평의 바다정원’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서 ‘덩’은 바위를 뜻하고 ‘개’는 바다를 의미하니 ‘덩개’는 ‘바위가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덩개해안은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은 바위로 그대로 남아있지만
안쪽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모래나 흙이 덮여 초지로 변했다.
덩개해안에는 환해장성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덩개해안은 염습지를 이루고 있어 소금이 함유된 땅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이 78종이나 자란다.
덩개해안 앞바다에는 썰물 때만 잠시 나타나는 두럭산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제주도 창건설화를 갖고 있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과 성산에 두 발을 딛고 앉아
두럭산에서 빨래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김녕해안도로 안쪽으로는 곳곳에서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고, 바다 가운데에도 2기의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
덩개해안을 벗어나 김녕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김녕해안도로를 걷다보니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설치돼 있는 해변에 위치한 연구원에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해양융복합연구실, 시스템 융복합연구실, 풍력연구실 등이 구축되어 있다.
내부에 있는 용암이 굳은 표면을 부푼 빵 모양으로 들어 올려 만들어진 투물러스라 부르는 용암언덕을 만난다.
용암이 평평한 땅위를 흘러가다가 앞부분이 먼저 굳어지면서 뒤에서 따라오던 용암이 앞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언덕처럼 솟아오른 지형을 만든다. 이 때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어
표면이 4각형이나 육각형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모양이 거북등을 닮아 거북등절리라고 부른다.
이어 밭담테마공원으로 들어선다.
밭담테마공원에는 밭담, 불턱, 통시, 산담, 방사탑 등 돌로 쌓은 제주도의 담들이 전시되어 있다.
밭담테마공원에서는 매년 가을에 밭담축제도 열린다.
밭담테마공원 앞바다에서는 사람들이 카약타기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제주올레 20코스-2>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