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1화
전쟁의 서막.
/ 7년 전, 2012년. 백혜주 시점.
작전명, <Mentos>. 내 말에 전부 웃음이 터진다. 보통 작전명은 팀장이 작전에 대해 연관된 단어 중 제일 떠올리기 쉬운 것으로 짓는데, 내가 이리 지어오니 비웃어보인다. 풉, 킥, 하며 수박맛 멘토스를 먹고 있던 막내도 웃는다. 저걸 확. 성질 같았으면 너 이리와, 했을 텐데 이번에는 참는다, 내가.
S급 이상의 센티넬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 현장. 그리고 그 현장 마다 떨어져 있는 멘토스 껍질. 멘토스 사건은 곧, 가이드 연쇄 살인 사건과도 같았다. 그제야 표정이 일그러지는 팀원들이었다. 반정부의 센티넬로 인해 우리 한국 센터의 가이드만 벌써 3명이 살해가 되었다. 순서대로 D급, B+급, A+급. 저급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저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A+급 김소희 가이드 사건 현장 사진이야.”
김소희 가이드는 김종인과 오세훈의 동기였다. 그들은 차마 못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과 신발, 가방.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시신. 범인은 최소 S급, 최대 SSS급으로 볼 수 있었다. 능력 또한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는 놈. 가이드에 대한 피해 의식이라도 있는 듯, 참혹했다. 같은 가이드인 김도한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해간다.
“좆같은 새끼.”
워낙 후배들을 아꼈던 터라, 이 사건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긴 했다. 김민석이 김도한의 열을 식힌다.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였다. 다음 장의 화면을 넘겼다.
“그런데 이 사건을 알기라도 한 건지, 그 놈이랑 싸운 흔적이 발견됐어.”
재가 되어버린 현장에서 재라고 하기에는 빛이 나는 은빛색의 재. 그것은 현장 여러 곳에 묻어 있었고, 여태껏 한 번도 총을 사용하지 않았던 놈은 총을 사용했다. 실탄이 무려 4개. 놈 답지 않았다. 놈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임이 틀림 없었다.
“은빛 색, 저 재는 뭐야?”
찬열이가 물어온다. 민석이가 대신 대답했다.
“라이트닝만 낼 수 있는 고유의 색. 은색. 그리고 노란색.”
“라이트닝이 존재하긴 해? 반정부에 존재한다고 해도, 왜 반정부 애들끼리 싸워.”
민석이의 대답 뒤로, 이해할 수 없다는 종인이의 말. 그래, 센터 가이드를 상대로 반정부 끼리 싸우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렇다는 건 단 한 가지의 경우의 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아버지야?”
김도한의 말에 다들 숨을 죽인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준면이가 현장 다녀왔지.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 되었는지 나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10년 넘게 가이드 없이 살아왔을 것이고, 그 능력이 달았다고 해도 무방했었을 것이다. 10년 동안 잠잠하다, 이 사건을 마치 알았다는 듯 움직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였을 지도 모른다.
10년 동안 추적해봐도, 아저씨의 흔적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덕분에 내 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들은 아주 꽁꽁 숨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의 아버지가 센터 외부인 인천의 한 섬에 지어 놓은 결계로 가득한 집에는 그 누구의 흔적도 없었다. 김도한도, 김민석도, 변백현도 일 년에 몇 번이고 그 곳을 찾아갔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죽은 줄만 알았다.
“형... 아버지.”
준면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짧게 마무리 짓는다. 팀원들도 얼핏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김도한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현재 한국 센터에는 어떤 사람으로 불리우는지. 센티넬 교육 첫 시간부터 우리는 <반역자>에 대해 배운다. 네가 우리 센터에 개기면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찾아낼 거라는 위협적인 교육. 덕분에 10대 후반인 센티넬들은 당연히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그들은 세뇌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역자로 불리는 김송혁의 자식들은, 팀 엑소를 빛내고 있었다. 너무도, 어이없게 말이다.
블랙리스트보다 상위의 개념인 레드리스트. 블랙리스트는 기본적으로 생포, 레드리스트는 즉시, 죽여야하는 존재. 그게 바로 김도한의 아버지인 김송혁의 운명이었다. 김도한의 눈이 흔들린다. 불안해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사건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
“장기 사건으로 분류한다.”
난 알 것 같거든. 팀원들은 어리둥절하다. 지금은 말 못해주지만, 너희들도 언젠간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앞으로의 가이드 살해사건은 없을 거야. 놈들은 목적을 이룬 것 같거든.
“잠시만요. 보스님. 저만 이해 안 되나요?”
“저도 이해 안되는데요.”
막내들이 손을 든다. 종인이 먼저, 그 다음 세훈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여주도 살아 있으면 딱 저 정도였겠다. 늘 이들을 보며 느낀다.
“모르는 거 당연합니다. 막내들. 자, 단기 사건 먼저!”
김민석이 나를 무표정으로 쳐다본다. 녀석은 나를 한 번씩 저렇게 쳐다볼 때가 있었다.
“마약밀수사건. 존나게 지겹지?”
“.....”
꼭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는 듯.
나는 그 눈빛을 오늘도 무시했다.
회의를 마치고 일찍이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했다. 팀원들은 센터에서 으리으리하게 지어준 숙소에서 살았지만, 나는 줄곧 컸던 나의 집에서 살았다. 이곳도 나름 살만 했다. 의료센터와도, 녀석들과의 숙소와도 가까웠다. 사실 난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참 웃기게도, 센터에서 태어났다고 센터 밖에만 나가면 그 잘난 백혜주가 대인기피증에 걸린 듯 사람을 무서워했다. 사람이 많은 거리도 그랬다.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누가 내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유전도 아니고, 경수도 그랬다. 백경수라는 말이 더럽게 안어울리는 내 동생, 도경수. 내가 도혜주로 개명하는 게 더 빠를만큼 도경수라는 이름이 착 달라붙는 그 이름. 씻고 나오니 녀석이 예쁘게도 깎아놓은 과일이 눈에 띄었다. 곧장 숙소에 가지 않고 우리집에 들린 모양이었다. 나도 꽤나 과묵한 편인데, 녀석도 그랬다. 딱히 말을 걸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남매에게는 공백이 아주 길었다.
“누나.”
녀석의 말에 사과를 먹던 내가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살아있을까.”
사실 어떻게든 살아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열 여덟 때 헤어진 후, 9년 동안 소식을 몰랐으니 내게는 잊혀질 법도 한데, 잊혀지지 않았다. 아마, 그 애는 이제 그 때의 내 나이쯤이 되었겠다.
“너 기억은 나?”
“잘 안 나.”
“하긴. 너도 어렸었을 때니까.”
또래보다 발달이 몇 단계는 느렸을 것이다. 여섯 살 때 다시 살아난 그는, 입모양으로 벙긋하는 수준이 다였다. 말을 할 줄도, 일어나 걸을 줄도 몰랐다. 세 살이었던 여주보다 더욱 느렸던 것 같다. 여주가 뛰기 시작할 때, 경수가 걸었고, 여주가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대들 때, 경수는 이제야 말문이 텄다.
난 아픈 녀석이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센터국장에게는 경수가 죽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한 번 숨이 끊긴 건 사실이었으니까. 국장은 부모가 아닌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 손을 붙잡았다. 혜주야, 우리 혜주. 너 아저씨한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야 돼. 너희 부모님이랑 아저씨랑 친한 거 알지? 그 말에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아, 그 때 내 나이가 몇이더라. 열 한 살이었나. 김도한이 요상하게 땋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저씨가 내게 속삭였다.
‘네 동생 죽은 거 아니지?’
그리고 나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경수.... 죽은 거 봤잖아요.... 아저씨의 손을 놓으며 연기했다.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았다. 저 새끼는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경수의 발현통과 각성통이 6년이라는 시간을 앗아갔다. 왜 그랬는지 알 것만 같았다. 주 능력은 치유(SS급), 그리고 나머지의 S급의 능력.
‘왜 그렇게 국장이 돌은 새끼처럼 그랬는지. 알겠네.’
잠결에 들은 아빠의 말.
카피얼(S급), 시섬(S급), 투명인간(S급).
그의 능력은 자그마치 4개나 되는 센티넬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지고 있는 능력이 4개나 됐다. 그래서 다들 경수를 숨기기 바빴다. 경수에게도 모르는 사람이 오면 무조건 본인을 제 능력으로 감추라 교육받았다. 그렇게 경수는 우리집에서 투명인간, 그러니까 유령처럼 살았다. 그런 무서운 능력을 가진 아이를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한 사람.
‘오빤 바보라서 바보야, 경수 바보!’
‘응. 경수 바보야.’
우리 여주. 그렇게 둘을 보고 있으면, 행복했다. 여주야, 오빠한테 바보라고 하면 어떡해. 내 말에 녀석은 내 허리를 감싸 안는다. 경수는 정말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진짜 너, 커서 어떻게 할래. 여동생 시집 간다고 하면 너 어떡할래. 속마음으로만 생각했다. 우리 여주는 기껏해봐야 내 허리춤에 오는 작은 키. 그리고 제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아니, 이렇게 애교를 부리니까 옆 집 녀석이 널 쫄쫄 쫓아다니는 거 아냐.
‘백여쥬유!’
말 하기가 무섭게 달려오는 녀석. 우당탕당 달려온 두 녀석, 재현이와 백현이. 나를 보며 한 녀석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누나누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여주랑 결혼하면 여주 언니인 누나한테는 처형이라고 불러야 된대~!’
처형 맞지, 처형? 대답해달라는 듯 내 손을 잡고 조른다. 녀석도 내 키의 어깨도 넘지 않는 꼬맹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수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두 여주 오빤데 나한테는? 그렇게 물어보자, 그것까지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귀여워 죽겠다, 정말. 녀석의 볼을 꼬집었다.
‘근데 이짜나. 내가 오빠랑 결혼한대?’
‘너 나랑 안하면 누구랑 해!’
‘나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에?’
‘헐... 나쁜 사람.’
입을 비죽비죽 내는 게 귀여웠다. 여주 마음을 뺏어야지, 내 말에 그러겠다며 다짐을 하는 녀석. 경수는 쭈볏쭈볏 소심하지만 단호하게, 둘 사이를 갈라 놓는다.
‘나 배고파.’
‘나두. 누나 나 떡볶이 만들어주면 안 돼?’
백현이와 재현인 내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열 살짜리의 부탁을 열 여섯인 내가 들어주지, 누가 들어주랴. 못 말린다는 듯 우리집으로 다 데리고 들어가자, 저 멀리서 뛰어오는 두 사람이었다. ‘야, 빽! 나도. 내 것도 해!’ 김도한과, ‘누나아!!!!!’ 김민석.
백혜주, 백여주, 도경수.
그리고 김민석, 김도한, 김재현, 변백현.
잡힌 녀석은 다섯,
그리고 탈출한 녀석은 둘.
우리의 운명은 어쩌면 그 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 2019년 현재, 백여주 시점.
“악, 씨발!”
“와하하하하!”
“존나 아프다고 몇 번을 말했냐고.”
욕설을 내뿜는 김종인, 짱구 흉내를 내며 비열하게 웃는 나, 이미 많이 당해 이마가 감각도 없어진 김재현. 가위바위보로 이마 박치기를 하자 제안을 한 건 김종인이었다. 내가 세 번 맞다가, 이제 한 번 때린 건데 김종인은 엄살을 부린다.
“센티넬이 가이드한테 맞는 거랑, 가이드가 센티넬한테 맞는 거랑 같아요? 왜 그러세요?”
“존나 빡쳐. 이거 진심이야. 네가 보통 가이드야? 너 완전 미친 가이드잖아!”
“왜 이러세요! 이거 놔요!”
내 손목을 잡고 눈을 부라린다. 그 모습이 웃겨죽을 것 같다. 내가 가이딩이라도 하면 어쩔려고 이렇게 손목을 덥석 잡지. 그러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아..흑, 하... 돌았냐? 너...”
어느 정도의 양인지는 모르겠지만 접촉 가이딩을 내뿜자, 김종인이 단숨에 떨어진다. 이거 존나 나쁜 새끼네. 너 이거 센티넬한테는 살인이라는 거 알아, 몰라! 냅다 소리를 지르자 김재현이 김종인의 손목을 확인한다. 가이딩 지수 94%. 살짝 쫄았던 나는 시무룩하게 있는데,
“웬 구라야. 94인데. 누가보면 쇼크온 줄 알겠네.”
“와. 남매 사기단이야, 뭐야.”
“우하하하하!”
“선생님.. 백여주 제발 저 웃음소리 금지시켜주세요....”
남매 사기단에게 당한 김종인은 곤욕이었다. 김민석에게 울며 애원을 한다. 팀장님의 등장에 방금까지 난폭한 나는 어디로 가고, 절로 다소곳해졌다. 김종인을 향해 뻗은 내 다리를 걷어내 다소곳하게 앉았다. 앞머리 정리까지 하며 말이다.
“여주야.”
“네!”
“나가서 점심 먹을까?”
“네네네네! 네네!”
흡사, 유치원생들이 네네, 선생님! 하는 것과 같이 해맑게 대답했다. 김종인의 저 억울하다는 표정. 넣어라, 진짜. 이를 악물고 쳐다보자 ‘미친 개...’하며 나지막하게 이야기한다. 김재현은 이미 적응했는 듯 김종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린다.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어?”
“팀장님. 소맥 드셔보셨어요?!”
“야. 낮이다, 낮.”
내 말에 바로 김재현이 나를 제지했다. 무튼 다 상관 없었다.
“소맥? 소백산맥도 아니고. 그게 뭐야?”
웃으며 이야기해서 개그인 줄 알았다.
“히히히! 소맥이요, 소맥!”
우하하하하, 아까와 다른 웃음을 내며 다시 정정해주었다.
“소맥? 소맥이 뭔데?”
...내가 팀장님이랑 몇 살 차이 났더라.
“네 살.”
김준면이 정정해준다. 충격에 빠진 내 얼굴을 보던 그가, ‘쟨 그런 거 모르니까 그냥 알려주면 돼.’ 그렇게 이야기한다. 큰 눈망울이 나를 향해 깜빡인다. 팀장님은 섹시하고, 다정하고, 자상하고, 잘생겼는데,
“형 소맥 몰라? 소주 맥주를 섞은 거.”
“아 그런 거였어? 줄인 말이었구나. 몰랐네.”
귀엽기까지 하면 어쩌라는 거지?
부팀장님은 내게 토하는 시늉을 보인다. 좋은 걸 어떡하라구요! 좋은 걸 어떻게 부정하냐고요! 그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팀장님과 나, 둘 만의 자리인 줄 알았다. 이렇게 우르르 올 거 였으면 술 먹자고도 안했을 거야. 내가 며칠 전 마신 와인 술병이 아직 남아있는데. 미쳤다고, 김재현 학교 앞 주점에서 술판을 벌릴 줄이야.
“와. 서울대인데도 낮술하는 사람 많구나.”
“시험 기간이라 그래.”
“시험 기간에는 공부만 해야되는 거 아니야?”
“스트레스 풀어야지.”
서울대생들은 스트레스 수학 문제로 푸는 거 아니었나요.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으로 푸는 거 아니었나요. 오세훈의 말에 웃겨 죽을 것 같다. 아니, 넌 뭔데 조선시대 왕 순서를 다 아는 건데? 내 말에 가차없이 내 볼을 꼬집는다. 왜 반말을 하냐는 듯. 정말 콱 꼬집어서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다. 아프잖아, 진짜.
“아, 아파!”
“야! 아프다잖아!”
내 말과 동시에 변백현의 말이 들려왔다. 왜 이러세요, 왜 예민보스세요. 오늘은 또. 팀장님과 부팀장님이 웃었다. 박찬열도 헛웃음을 지며 웃는다. 뭐가 웃긴 건데... 내 얼굴 보고 왜 웃냐고...
“여주는 좋겠네.”
“네?”
박찬열의 말에 땅콩을 입에 넣다말고 후두둑, 더럽게도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김재현이 내가 흘린 땅콩을 자연스럽게 제 입으로 가져다 넣는다.
“아니야.”
미지근한 그의 반응에, 더 궁금해져 알려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팀장님이 말한다.
“여주야. 너 그렇게 귀여워서 얻다 쓰지?”
돌았다. 이건 씨발 고백이잖아. 이건 찐 고백이잖아.
“저 사실... 팀장님. 이렇게... 이런 자리에서...”
팀장님의 고백에 대한 나의 고(GO)가 있어야겠지.
“말하기 부끄럽고 민망했는....”
“백여주!!!!!!!! 고...”
“네?”
나의 직진을 전하려는데 김준면이 갑자기 내 팔을 잡고 일어난다. 그러더니,
“고.... 고구마 사줄까!!!!!”
그대로 내 손을 잡고 가게 밖을 나섰다. 아, 분위기 좋았는데 무슨 고구마야. 진짜 인간 고구마 덩어리. 고덩이, 김준면. 원망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가 너 눈치 없는 것 같아서 한 번만 말할게.”
“저 개념은 없다고는 들어봤어도, 눈치 없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게 더 안 좋은 거 아니냐... 아, 아무튼.”
김민석은 너 안 좋아해. 그러니까 제발 고백하려는 생각 좀 그만해. 알겠어? 김준면의 말이 거짓말같진 않았다. 내 얼굴이 어땠으면 갑자기 김준면이 내 손을 잡으며 곧바로 미안해... 사과를 할까. 다른 건 모르겠고 그건 알겠다. 아까 오세훈한테 볼이 꼬집혔을 때 고인 눈물이, 떨어졌다는 걸 말이다.
김준면이 이제는 빌기 시작한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경솔했어. 진짜 미안해. 여주야. 내 손을 붙잡다, 이제는 내 손을 떼고 제 손을 싹싹 빈다. 나는 상처를 받은 걸까? 아니면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흐른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잘못했다는 말과 함께 나를 내려다보는 김준면을 올려다보았다.
“부팀장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생각 안 해.”
“뻥치지말고, 왜 그렇게 생각해요!”
“네가 성급하게 자꾸 고백을 하려는 것 같아서...”
“그게 다예요?”
“응..”
미안해. 여주, 할 수 있어. 김민석 철벽통 다 깰 수 있으니까 한 번 깨보자. 내게 응원까지 해준다. 1분 전까지는 안 좋아한다고 못을 박아 놓고서는. 손을 뿌리쳤다. 다시 잡는다. 뿌리친다, 잡는다. 뿌리치고, 잡고. 뿌리치고, 잡고. 그걸 한 스무 번 넘게 반복했을까. 박찬열이 자동문을 뚫고 나온다.
“작작하고 들어와.”
그 말에 웃음이 터져 부팀장님을 바라보았다. 내 웃음에도 여전히 울상이다.
“나 할 수 있댔어.”
“응?”
“오빠가 그랬어. 나 할 수 있다고.”
팀장님 내 걸로 만들 수 있다고. 씩 웃었다.
이제는 정말 직진으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여태껏 덕질하듯 좋아한 것 같아. 속으로만 너무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좀 티 내야겠어.
소란스럽다. 그 이유는 박찬열이 시발점이었다. 사건은 방금 전, 내가 김준면에게 ‘오빠’라고 했다고 사귄다니 만다니 만천하에 거짓 소문을 낸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사랑싸움을 하는 줄 알았나보다. 그러다,
“그러네. 너 나랑 세훈이한테만 오빠라고 하지, 아무도 오빠라고 안 하잖아. 물론 나랑은 이제 맞먹었지만.”
김종인의 말에 더욱 신뢰를 가진 여론이었다. 그 거짓 여론은 결국 김준면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그러게. 재현이 형은 이제 형들한테 다 형이라고 부르는데 넌 아직 우리 빼고 다 팀장님, 부팀장님, 선배님이야. 난 솔직히 선배님이 제일 웃겨.”
변백현을 보며 김종인이 비아냥거렸다. 변백현은 발끈했다. 뭐... 어쩌라고, 인마. 그 말은 사실 일리가 있긴 했다. 같이 산지도 벌써 두 달인데, 김재현은 말을 다 놓고 잘 지내는데 나혼자 철벽을 쌓고 있는 모양이었다.
“찬열이오빠 해줘. 박 선배님 말고, 열이오빠.”
“아, 오글거리는데. 차녈이오빠!”
“와이씨!”
귀여워 미친. 나를 끌어 안는 박찬열이었다. 김종인은 “뭐가 귀엽다는 거죠? 방금?”하는 소리를 내었다가, 팀장님께 한 대 얻어맞았다.
“여주야. 나한테도 해봐.”
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민석.
“오랜만에 듣고싶다.”
그 눈빛에 결국 넋이 나갔다. 김재현이 내 등을 때린다. 정신차려, 너.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려,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민석의 눈을 쳐다본다. 어디서 미친듯이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데, 변백현이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본다. 시발, 또 내가 뭘 잘 못한건데. 내 되도 않는 애교가 듣기 싫다 이거야? 그렇다면 존나.
“민석이오빵!”
술 취한 척, 미친 척 해야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 모게!”
바로 후회했다.
“바로! 오빵!”
정말 바로 후회했다. 그 말을 하고 나는 가방을 챙겨 조용히 일어나서 맞은 편에 있는 게임방에서 펀치 기계로 돈을 이 만원이나 날렸다. 죽이고 싶었다. 누굴 죽이고 싶었냐면, 그 때 그 짓을 한 나를. 팀원들은 무전으로 보란듯이 비꼰다.
여주야, 언제와? 와, 너 펀치 존나 잘한다. 너 혹시 격투기 선수 아냐? 아니 여주는 어쩜 저래? 여주야, 얼른 와. 오빵 사가지구 와. 나도 네가 제일 좋아하는 오빵! 먹고 싶네.
- 코드넘버 D. 뭔 개소리야, 다들?
- 코드넘버 P. 여주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 뭔 줄 알아, 형?
- 코드넘버 D. 피자빵. 왜?
- 코드넘버 P. 아니. 오빵! 이래. 아 존나 웃겨 진짜. 눈물이 안 그쳐.
- 코드넘버 D. 나?
나 이 지랄. 아, 존나 웃기네. 김준면과 박찬열, 그리고 김종인은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나는 정말 세상을 종말 시키고 싶었다. 그 놈의 변백현이 뭐라고 승부욕이 불타올라서는.
‘퍼억-’ 펀치 기계에 주먹을 휘둘렀다.
99,999,999점.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이런 거 진짜 한 번도 안 찍어 봤어요?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김재현과 내 표정은 ‘헐..’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진지하게 도경수는 ‘우리는 미군합동작전 같은 큰 작전 나갈 때 영정사진이랑 단체사진 찍지.’ 그렇게 이야기했다. 시발... 인생네컷 찍으러 와서 영정 사진이 웬 말이냐고.
도경수까지 다 모인 팀 EXO. 다들 내가 있는 오락실로 하나 둘씩 모였다. 그리고 김재현과 나는 틈만 나면 찍었던 인생네컷을 찍자는 내 말에 다들 ‘그게 뭔데?’라 이야기했다. 좁아 터진 곳에서 결국 우리는 나눠 찍기로 했다. 총 9명. 3명씩 나눌까요? 내 말에 오세훈이 그럼 나머지 한 컷은. 그렇게 대답한다. 그러게... 어떡하지? 고민을 하는데,
“우리가 두 명씩 나누고, 박여주. 네가 4컷 다찍어.”
“박여주 누구야.”
“미안. 박찬열이랑 헷갈...”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박여주 누구야.”
“아 제발 그만해!”
“박여주 누구야.”
도경수의 실수에 나는 집념을 가지고 따지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에 울상을 지으며 귀를 틀어막는 우리 오라버니였다. 장난이었다는 듯 히히 웃자, 괘씸하다는 듯 내게 꿀밤을 때린다.
그렇게 나누어서 찍게된 사진. 사진은 무슨 사진이냐며 툴툴거리던 변백현은 어느새 머리띠까지 끼고 있다. 저 새낀 내가 봤을 때, 여기서 제일 관종이야. 혼자만의 생각을 김준면과 공유한지도 벌써 두 달. 김준면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내게 손바닥을 내민다.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했다.
숙소에 돌아와 다이어리를 꺼냈다. 겨우 2장 뿐인 사진. 내가 하나를 가져왔다. 다이어리에 붙일까 하다, 팀원들과 첫 사진이 닳을까 조용히 상자를 열어 그 속에 보관했다.
첫 번째 컷은 김민석, 도경수와 함께 찍은 컷. 둘 다 과묵한 편이라 이런 거 찍으면 어색할 줄 알았는데 나름 깜찍한 포즈로 꾸며진 잘생긴 얼굴들. 사실 얼굴이 다했다고 무방하네. 두 번째 컷은 박찬열, 오세훈과 함께 찍은 컷. 이 분들도 더럽게 잘생기긴 했다. 최장신들과 찍어서 그런지 소인국 사람처럼 나오긴 했지만. 웃으며 세 번째 컷을 보았다. 정말 나를 죽이고 작정한 컷. 김준면, 김종인. 우리우리, 얼굴 몰아주기 하자며 가위바위보를 해서 김종인을 몰아주기했는데, 시발. 둘 다 멀끔하게 찍히고 나만 혼자 엽사를 찍었다. 나 참, 아직도 생각하면 어이가 없네. 표정을 구겼다가, 마지막 컷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김재현, 변백현과 찍은 사진.
내게 어깨 동무를 한 채로 입꼬리를 당겨 여유롭게 웃는 변백현, 천진난만하게 내 머리 위에 장난스러운 뿔을 만들어 올리며 인디언보조개를 드러내는 김재현. 마지막으로 그들 사이로 꽃받침을 한 채로 해맑게 웃는 나.
/
벌써 이곳에서 다섯 번째 작전이었다. 이번 브리핑은 부팀장님이 진행했다. 질리게도 많이 해봤다는 마약사건. 나에게는 처음이었지만, 이번에는 꽤나 중요한 작전인 듯 다들 숨소리도 내지 않고 김준면의 말에 집중한다.
“이번 마약파티에, 마카오 쪽 보스가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다는 말이 있어.”
센티넬에게 마약은 쥐약과도 같았다. 특히나 일반인에게. 센터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 센티넬들 중에서도 반정부 소속이 아닌 떠돌아 다니는 센티넬들이 중국과 각 지역에서 마약을 밀매한 브로커들에게 마약을 구입하고, 삽시간 안에 범죄가 일어난다. 당연하게도 범죄의 희생양은 일반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거고. 그 범죄를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나무를 잘라내는 게 아닌,
“민석이랑 경수, 그리고 세훈이는 미군합동작전 발령이 나서 이번 작전은 내가 통솔할 거야.”
뿌리를 도려내는 게 우리가 해야할 일.
여주한테 이야기 못한 게 있어. 회의를 하다 말고 팀장님이 진지한 목소리를 낸다. 뭐지? 고백인가? 내 생각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김준면이 헛웃음을 친다.
“너희도 다 알지. 어쩌면 여주도 눈치 챘을지도 몰라.”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다.
“A+급 이상 센티넬들 중 약 20%는 가이드의 향을 맡을 수 있어. 그리고 가이드 100명 중 한 명은 향기를 품고 다니지. 그럼 센티넬들은 그 향이 이끌리는 대로 저 혼자 미쳐. 근데 여주야. 넌 그 향이 생각보다 많이 강해. 우린 한 집에 살면서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다들 느꼈을 거야. 물론 우리 중에도 못 맡는 사람도 있어.”
다들 조용한 걸 보니 느끼고 있었나보다. 팀장님은 많이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나는 센티넬들 중 일부가 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리고, 팀원들이 죽어라 숨어있어봤자, 들키기 쉽다는 말과 똑같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여주를 작전에서,”
“아니요.”
빼겠다는 말은 절대 안 된다. 민폐지, 민폐이긴 할 거다. 하지만, 나도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오빠와 친하다는 연구원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두 번째 작전이 끝났을 때 말이다.
“왜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해요?”
“...뭐?”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우리 팀장님 미련하고 바보같을 줄 알았지.
-
‘연구원?’
‘응. 오빠 아는 사람 중에 없어? 진짜 졸라 똑똑하고, 약 같은 것도 완전 뚝딱 만들어 내는 사람.’
‘있긴 한데, 왜?’
‘저번에 놀이공원 작전 갔을 때 느꼈는데....’
여기서는 불가능은 없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래서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다른 센티넬들이 나를 찾지 못하게 하는 그런 약을 만들어달라고 떼를 부릴 참이었다. 떼를 부린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간절했다. 조만간 팀장님이 현장에는 나오지 않는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할 것 같았으니까.
‘언니 다 됐어요!?’
‘내가 뚝딱박사인 줄 아나보다, 너.’
‘네! 네! 네!’
‘어딜 봐서 도경수 친동생이야?’
2주 동안 연구원 언니를 거의 압박하다시피 찾아갔다. 내가 올 때마다 손에 맛있는 걸 사들고 와서 민망한 듯 웃어보이자, 이제는 연구실 문을 잠가 놓지도 않았다. 내가 오면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할 일을 할테니 하며 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5일이 되던 날, 그녀는 나를 먼저 호출했다.
‘이거 보여?’
‘그래프요? 저 그래프 알레르기 있어서....’
수포자여서.... 내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던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기본 가이드 SCENT 수치는 0.038이야.’
‘그런데요?’
‘넌 보이니?’
넌 5.889야. 가끔 네가 지나가면 센티넬들이 너를 쳐다보진 않던? 그 말에 지난 날을 깨달았다.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내가 센티넬 훈련관을 뛰어갈 때마다 나를 쳐다보던 몇몇의 센티넬들.
‘비유하자면 사람들이 향수 한 번 칙- 뿌리고 다닌다면 넌 향수 500ML짜리 다섯 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들이붓는다고 생각하면 돼.’
그렇게 제 언어로 비유까지 해주시니 감사하긴 한데.... 그럼 여태껏 팀원들은... 개미 같은 목소리에 언니는 괜찮다는 듯 웃는다.
‘코드넘버 BK, B, L만 가지고 있는데. 세 명 빼고 네 향 못 맡아.’
그 세 명도 곧 적응했을 거야. 그래도 다행이긴 했지만 난 왜 이렇게 과도한 게 많아서. 살짝 짜증이 났다. 가이드 향 같은 건 아직 교육관에서 교수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역시 실전이 중요한 거긴 한 건가. 별 잡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언니는 대뜸 내게 초록색과 노란색이 혼합된 알약을 건넨다.
‘한 시간으로 노력해봤는데, 네 수치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최대 40분.’
‘헐! 성공한 거예요?!’
‘그럼. 내가 누군데.’
언니의 손을 붙잡다가, 이걸로 모자란 것 같아 몸을 끌어안았다. 저 사실 정말 기대하긴 했는데, 기대 안하기도 했거든요. 진짜 고마워요. 진짜, 진짜 고마워요. 내 말에 나를 포근히도 안아준다.
‘혜주언니 동생이잖아. 너.’
우리 언니 품이... 꼭 이런 기분일까.
-
그리고 당당하게 꺼낸 알약 통. 다들 백혜주 동생 맞네. 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전 준비 봐, 거의 뭐 리틀 백혜주.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한테 들었으면 이상했을 것 같은데, 팀원들의 말은 꼭 칭찬같이 들린다.
“못 믿겠어요? 먹어볼게요.”
“너 그거 누가 만들...”
변백현의 말을 씹고 물 없이 삼켰다. 몸에 별다른 느낌은 없다. 나도 처음 시도해보는 거다. 이곳에 시도할 수 있는 대상자가 있었으니까.
“어때, 김재현. 나!”
딱 달라 붙어 이야기했다. 그러자, 김민석도, 변백현도, 마지막으로 김재현도.
“.....”
“아무 향도 안 나.”
“...안 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겨서도, 막무가내도 아닌 정말 정당하게 현장에 나갈 수 있게 됐다. 팀장님, 오빠, 오세훈은 우리끼리 남겨 놓고 떠나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반나절 동안 자신들이 가지 않을 방법을 찾았지만, 전혀 없었다. 이미 엑소 팀에서 지원을 나가지 않으면 미군이 반군에게 질 게 뻔했으니.
“걱정하지 마.”
“안 해. 걱정.”
도경수는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곧바로 김준면을 쳐다본다.
“다치기만 해봐. 다 형 책임이야.”
“잘 났다. 상사한테.”
까칠한 눈빛이 말해준다. 나 존나게 걱정하고 있어요. 그 눈빛은 팀장님도, 오세훈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작전이 될 수도 있는데, 팀원이 세 명이나 빠진다. 나도 긴장이 안 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변백현. 개기지 말고 준면이 말 잘 들어.”
“왜 나한테만!”
“솔직히 너만 개기잖아.”
할 말이 없어진 변백현은 김민석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벙긋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헬기를 타고 떠났다. 우리에게도 남은 시간은 딱 12시간이었다.
/
변백현의 총은 항상 두 개였다. 쌍칼도 아니고, 쌍총. 그의 오른쪽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하나 슬쩍했다. 눈을 감고 있던 그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넣어라.”
머쓱해하며 총을 제자리에 두었다. 옆에 있던 박찬열은 너 도벽 있냐며 별 쓸데없는 말을 했다.
“근데 찬열이 오빠, 왜 변 선배는 총을 항상 두 개 가지고 다녀?”
“쟤?”
나도 몰라. 그 미지근한 말에 한숨을 쉬었다. 이 오빠는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아무 것도 모르네.. 시선을 돌리니, 창가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는 김재현이 눈에 들어온다. 몇 달 전까진 우리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거리.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더욱 사람들이 몰려 있는 밤거리였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게는 가족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김재현이 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저씨가 함께였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의식이 없었던 2년 간, 그에게는 나뿐이었다.
“......”
“....왜.”
말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
“.......”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와 함께한 16년의 세월. 어쩌면,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눈동자는 대답을 했다. 알아, 알겠으니까. 다치지나 마.
바글바글한 차 안이 겨우 두 명 없을 뿐인데, 이리 허전할 수가 없었다. 털털털, 비탈길을 오르는 소리. 사실 두려울 것도 없다. 내게는 이리 든든한 사람들이 있는데. 눈을 감고 이어폰을 끼고 있던 김준면이 피식 소리 내어 웃는다.
곧 현장에 도착했다. 마약 파티가 일어나는 곳은 서울 외각 지역인 경기도 XX군. 동네 주민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논과 밭, 그리고 산. 쥐 한 마리 찍- 하지 않는 곳에 도착해 내렸다. 돌아갈 때는 헬기로 가기에 근처에 위장헬기가 있었다. 시냇물이 졸졸졸 흐른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왔다.
“나 가이딩.”
짧게 말한 김재현이 내 손을 잡았다. 부팀장님이 앞장 섰고, 동태를 살피기 위해 김종인이 먼저 현장으로 순간이동 했다. 그 뒤로는 박찬열, 그리고 맨 뒤로 변백현. 그와 나는 딱 중간이었다.
[코드넘버 L, 가이딩 지수 95%, 매우 안정.]
귓가에서 들려온다. 손을 떼려는데, 다시 잡는다. 그 때 깨달았다. 가이딩 때문에 손을 잡은 게 아니구나.
동태를 살피고 온 김종인이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김준면은 ‘왜?’ 물었고, 입을 우물쭈물하며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숫자가 예상보다 너무 많아. 형이 갔다 와야 될 것 같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A+급 이상인지도 모르겠고.”
“몇 이나 되는데.”
우리가 예상한 숫자는 최대 20.
“....딱 두 배.”
김준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 센티넬이라는 보장 없잖아.”
변백현의 말에 다들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센티넬만이 몇 명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김준면과 김종인이 움직였고, 우리는 수풀 속에서 대기명령을 받았다. 쪼그려 앉아 앉은 키보다 큰 수풀을 처내기 바쁜 나였다. 박찬열이 거슬리면 다 불 질러 줄까? 하는 잔인한 소리를 내뱉었다. 제발 진담 같이 하지마.
- 코드넘버 K. 박찬열. 8구역 지나서 옥상으로 와.
- 코드넘버 P. 오케이. 다른 애들은?
- 코드넘버 K. 대기.
그가 불길을 내뿜으며 8구역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다리가 저려온다. 딱히 김준면의 지시는 없었고, 아직 작전이 개시되지 않은 것 같았다.
- 코드넘버 K. 찬열이 옥상 무사히 도착했으니까 말할게. 이번에 3:3으로 움직일 거야. 기존의 2:2:2는 위험해. 총 인원 40명 중에 34명 센티넬. 6명 일반인. 하지만 센터 블랙리스트에 있는 일반인이라서 딱히 그건 상관 없고.
침을 꿀꺽 삼켰다.
- 코드넘버 K. 여주 약 먹은지 몇 분이나 지났지?
- 코드넘버 B. 15분.
- 코드넘버 K. 20분 만에 끝낸다.
찬열이가 옥상에서 가스밸브관 폭파시킬 거야. 나머지 도주하는 놈들 다 죽여.
작전이 완전히 뒤바꼈다. 짧은 순간에 가장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원래는 2인 1조로 각 구역에서 대기 후, 마약이 완전히 주입 되었을 때를 기다렸다가 삼각지대를 만드는 작전이었는데, 30명이 넘는 센티넬들을 단 5명이서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 코드넘버 K. 웬만하면 재현이랑 백현이 둘 중에 한 명만 움직여.
- 코드넘버 L. 내가 갈게. 넌 있어.
- 코드넘버 P. 폭파 시작 30초 전.
김종인은 순간이동으로 우리의 맞은 편 수풀로 향했다.
건물이 꽤나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한 눈에 봐도 다들 마약에 절여있는 모습이었다. 콩알만큼 보이지만, 그래도 박찬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폭파와 나의 가이딩이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 코드넘버 P. 폭파 10초전. 여주야, 속으로 세.
5, 4, 3, 2, 1.
콰아아앙-! 내 숫자와 동시에, 빨갛고 검은 불꽃이 피워올랐다.
- 코드넘버 K. 일반인 6명 전원 사망. 센티넬 25명 사상. 9명 도주.
내 손을 놓은 김재현이 도주하는 센티넬들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는 놈들에게 벼락을 내리 꽂는다. 아까 폭파음과 같은 벼락소리에 뒤를 쳐다본다. 그 사이 김종인은 박찬열과 김준면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오기 위해 사라졌다. 9명의 센티넬들은 서서히 그를 감싸 원을 만든다.
“변 선ㅂ...”
“너 혼자 있을 수 있어?”
변백현은 내게 총을 건넨다.
“뭔 일 있으면, 무조건 하늘 위로 쏴.”
그리고는 내 볼을 쓰다듬더니, 씩 웃는다.
그런 변백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가 내민 권총을 바라보았다.
My Joo.
그가 가지고 있던 총은, 내 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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