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26-34】 (개역개정)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핵심메시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미약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성장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에게 구원과 ‘쉼’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에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조차도 배척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성도는 ‘십자가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성도들은 고난을 통해 구원의 승리를 얻게 됩니다.
* 참고 구절: 막 4:1~20 / 막 4:21~25 / 막 13:29-30 / 고전 3:5-7
【말씀 나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을 들어 보셨지요?
나비의 작은 날개 짓과 같은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말합니다. 아마존 정글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는 나비의 작은 움직임이 몇 달 후에 미국 텍사스주에 폭풍우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한쪽의 조그마한 변화가 다른 쪽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약한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 한 명의 작은 몸짓을 통해서도 세상이 변화되는 일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대학교인 템플대학교를 아시나요? 미국 공립대학 기준 46위로 미국 전체 순위로는 상위 2% 안에 드는 대학입니다.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안익태씨의 모교로도 잘 알려진 곳으로 미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템플대학에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아시나요?
미국 필라델피아 교외의 가난하고 자그마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병이 든 어린 한 소녀가 주일이 되어 예배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는 교회당이 너무 좁아서 교회학교로 활용되는 곳이 너무 비좁았고, 이미 학생들로 꽉차 있었습니다. 결국 이 소녀는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고, 대기 표를 받아들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일학교 교사는 이 소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렴. 오늘은 교회당이 너무 좁아서 너를 받아줄 수가 없구나!, 자리가 비면 알려 주마!” 이 소녀는 실망한 듯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병든 소녀는 그날 이후 교회를 가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소녀의 장례를 집례하러 간 목사님은 소녀가 병들어 누워있던 베개 밑에서 편지 한 장과 함께 돈을 발견했습니다. 편지 봉투에 들어있는 돈은 57센트였습니다.
그리고 편지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목사님, 저도 교회에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교회당이 너무 작아서 들어갈 수 없데요. 너무 적은 돈이지만 드립니다. 제가 모은 이 돈으로 교회당을 좀 넓게 지어서 우리 친구들이 다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목사님은 장례식에서 이 소녀가 남긴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목사님은 물론, 참석한 교인들 모두 감동 받았고, 모두 즉석에서 돈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도 교회당 건축 모금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렇게 이 병든 소녀의 57센트 헌금은 종자돈이 되어 크고 웅장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템플 교회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난으로 치료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소녀를 기리기 위해 극빈자 무료병원인 ‘선한 사마리아 병원’도 개원되었고, 이 일이 발전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인재를 양성 배출하고 있는 명문 템플대학교까지 설립된 것입니다.
이 소녀가 간절한 마음으로 드린 57센트,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8만 원 밖에 되지 않는 적은 금액이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은 미약할지라도, 보잘것없을지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이해하고,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에 대한 비유와 등경 위에 놓인 등불의 비유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씨의 특징은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든, 크기가 크든지 작든지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그 땅의 상태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말라 죽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심어져서 생명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생명이 뿌려지지만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뿌려집니다. 악인의 땅이든, 의인의 땅이든 햇빛과 비를 차별없이 내려주심과 같이 생명의 은혜도 차별없이 주십니다. 문제는 반응입니다.
생명을 품은 땅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1서5:11-12에 보면,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이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의 마음 밭 상태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4:21-25에 있는 등경 위의 등불 비유를 보면 그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등경 위에 올려 놓은 등불을 감출 수 없듯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빛도 감출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4:24-25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25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여기서 되질하다는 의미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곡식이나 가루 등을 되로 되어 헤아리다’ 라고 기록합니다. 한 되, 두 되 이렇게 헤아려 담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헤아려 담아 줄 귀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문맥을 보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되질하여 주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을 헤아려 주면, 이 생명은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샘물처럼 더 솟아나고, 가지고 있는 생명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이 햇볕에 말라 죽는 것처럼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나누는 일에 기한은 언제까지일까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말씀하시는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1-2절까지는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시고, 3-13절까지는 재난의 징조에 대해, 14-23절까지는 가장 큰 재난에 대해, 24-27까지는 주님이 다시 오심을, 28-37절까지는 무화과의 비유를 통해 그 날과 그 때의 대비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 29-30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성도들은 이 말씀에 따라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주님 다시 오신다고 생각하였는데, 성경에서 한 세대를 40년으로 보았기 때문에 마가복음을 처음 받는 사람들은 심판이 임박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인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주후 70년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30-40년이 된 기간이기 때문에, 당시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A.D. 70년에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주님 다시 오시는 가장 확실한 징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가복음 처음 독자들은 오늘 비유를 읽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오늘 본문의 겨자씨의 비유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겨자씨의 비유를 작은 씨앗에서 싹이 터서 큰 나무를 이루게 되니, 지금은 매우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열매를 맺는다는 요지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26절과 3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겨자씨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시는 목적은 이해력이 떨어지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33절을 보면,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다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말로 표현한 길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성경에서 천국을 표현할 때 모든 문은 진주문이고, 도로는 정금으로 되어 있고 사방천지에 보석이 즐비하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곳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얼마나 좋아? 라고 물어보면,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는 표현이 잘 않 되어서 함축적인 시를 써서 마음을 표현하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나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깝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확장되고 있습니다. 27절을 보면,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게 어느새 자라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여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 맺게 하는 일에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땅에 심겨진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몰라도 씨앗은 자랍니다. 28절에 보면,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겨우 싹이 튼 것을 보고 있을지라도 반드시 자라서 곡식이 여무는 때가 옵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목격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수의 때가 반드시 온다고 강조하십니다. 29에 보면,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의 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가복음의 처음 독자들이 생각하던 그 시기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여러 징조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처음에는 미약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씨앗에 불과한 겨자씨가 자라서 마침내 공중의 새들이 깃들어 쉼을 얻는 것과 같이,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아도 등경 위에 둔 등불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추수를 언급하시는 것일까요?
모든것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싹이 트는 때가 있고, 열매 맺는 때가 있으며, 추수할 때가 있듯이, 구원받을 때가 있고, 심판받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일은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고 방치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내기 하기 전에 모판을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아시죠?
모를 내기 위해서는 준비된 볍씨를 육묘 상자에 뿌리고, 출아가 되고 어느 정도 자라면 모판을 내어다가, 모내기를 하고, 곡식이 다 자라기까지 물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고, 때에 따라서 병충해 방지를 위해 약을 하고, 피도 제거하는 등 곡식을 얻기 위해 농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농부가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도움을 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농부가 볍씨를 1년 12달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볍씨를 보관하는 목적은 파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볍씨를 소독하고 육묘 상자에 뿌려 싹을 틔우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도 그저 품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목적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나누어준 생명이 싹을 틔우고 말고는 내 소관이 아닙니다. 그것이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심고 물을 주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사 3:6-7을 보면,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키-포인트는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과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 심고 물 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심는 일과 물을 주는 일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임으로 심고 물주는 일로 인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심고 물주는 밭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입니다.
종이 밭을 갈고, 수확을 하면, 그 추수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될까요?
주인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합니까?
당연히 우리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요?
주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무엇이었나요?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받은 그 생명을 나누어 또 다른 생명을 거두기 위함입니다. 씨앗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을 심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한 생명이 30개, 60개, 100개의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심어 몇 개의 생명을 거두는가? 라는 성과보다는 우리의 생명을 심는 그 자체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다’라는 것에 만족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게으고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민족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함을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에게 허락하신 사명을 유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그들은 자신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백성 됨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받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교회 구성원들 중에서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사람은 10%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하는 제자들이 10명 중에 1명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2/3는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행복한 삶의 방법을 돈의 풍족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복권이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기준으로 볼 때 역대 최고의 복권 구매율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10가구 중에 1가구 이상이 복권을 구매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과 고소득층에서의 구매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입니다.
소득이 학력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 이상의 학력이 높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지성인들조차도 복권을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성경은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길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서 살면 불행할까요? 행복할까요?
어디로 가야, 어떤 길을 가야 천국으로 갈 수 있나요?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즉,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천국의 삶이며,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이 비결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성도들이 할 일입니다.
말을 물가로 인도할 수는 있지만, 말이 물을 먹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는 있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주와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일은 끊임없이 생명의 물가로 인도해 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습니다.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겨자씨, 씨앗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생명을 주셨고, 우리가 가진 생명은 나눌수록 풍성해 짐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수라 할지라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결국 죽음의 물이 됩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을 나누어 주면 됩니다. 내가 나누어준 생명을 품은 영혼들이 그들의 생명을 나누고, 죽어가던 이들이 생명을 품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내가 가진 생명이 올바른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할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씨앗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언제까지 품고만 있으면, 심지 못하는 때가 이르게 됩니다.
지금은 심고 물을 주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수고가 가장 값지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의 때가 되면, 더는 뿌릴 수 없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복의 통로로서, 부활의 증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을 나누며 행복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믿음의 가정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지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믿음의 가정을 키워가는 귀한 사역에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