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

고향워나 우리 집은 의정부에서 제일 거대한 병원의 장례식장 뒤편에 있다. 여러 약국과 검은 옷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택시가 모여있는 대륙상사와 고양이와 강아지와 백발의 할머니가 함께 사는 집을 지나 낮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우리 집이 있다. 장도 서지 않는 동이 단 두 개뿐인 아파트이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입구 겸 출구 옆에는 오래된 주택 하나가 있다. 나는 그곳을 좋아한다. 그곳에 사는 할머니는 목욕탕 의자에 앉아 강아지나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신다. 경비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날이 좋은 날에는 다른 할머니들과 둘러앉아 모임을 하시기도 한다. 마당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줄 밥이 차려져 있다. 어느 날에는 익힌 소면이 놓여 있어 할머니께 물어보니 비둘기에게 줄 밥이라 하셨다. 동물만큼 식물도 많다. 은행나무, 코스모스, 봉숭아나 이름 모를 다양한 식물이 심겨 있다. 지나가다 물어보면 어떤 꽃과 나무인지 언제 심었고 얼마나 자랐는지 설명해 주시곤 한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면 작은 놀이터가 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고 대부분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이나 운동기계를 사용하는 노인이 있다. 단지를 한 바퀴 돌다 보면 (3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이곳의 유일한 흡연구역인 작은 정자가 있다. 흡연구역의 뒤쪽에는 작은 산과 이어지는 계단이 있고 계단 밑에는 우암이의 겨울 집이 있다. 우암이는 이곳에 사는 노란 고양이다. 작은 아파트라 길고양이도 우암이밖에 없어 덕분에 나비, 야옹이, 귀여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이다. 나는 아파트의 이름을 따 우암이라고 부른다. 조금만 놀아줘도 발라당 누워 배를 까며 정자 옆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꾹꾹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개냥이이다. 나는 이곳의 풍경을 사랑한다. 이곳은 여러 지역과 아파트를 떠돌아다니다가 처음으로 정착한 집이다. 아파트에는 초, 중학교를 다니며 인연이된 다섯가구가 함께 모여 살고 있다. 나는 이곳에 있는 여러 집과 사람들을 거치며 자랐다. 이곳에 사는 친구들과 자전거로 등하교를 함께 했고 서로의 20살을 축하해주었다. 지하주차장에 모여 몰래 술을 먹기도 했다. 추석이면 할머니 집에서 받아온 여러 반찬과 식재료를 교환했다. 직접 키운 농산물을 나누기도 했다. 새해에는 한집에 모여 뒷산에 올라가 해를 봤다. 떡국을 함께 만들어먹었다. 김장을 하기도 했다. 집 뒤에 있는 즉석떡볶이집에 모여 자주 점심을 먹었다. 아파트 단지를 조금만 돌다보면 아는 이웃 한명이 보였고 그들과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심심할틈이 없었다. 어딜가나 친구들이 있었고 어딜가나 놀러갈 공간이 있었다.  아파트의 소소한 풍경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건 이 당연한 일상이 곧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우리가 향하는 길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을 때, 친구들이 한명씩 군대에 가고, 대학의 기숙사에 가고, 취직을 하며 점점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이 사라질 때. 시간이 흐르며 가장 변화하는 시기에 놓여 있는 우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건 자연스러운일이지만 이 당연한 일상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도 섭섭하다. 나는 종종 이 순간을, 이 안락한 풍경을 무척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간 누군가 내게 고향을 묻는다면 나는 노란 고양이가 사는 이 작은 아파트를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