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역사퀴즈>
1. 후삼국시대에는 철원지역에서 후고구려로 건국한 나라이름과 왕의 이름은?
* 태봉국 , 궁예왕
2. 경기도 소속이었던 철원이 강원도로 이관된 것은 조선 어느왕 때인가?
* 세종 ( 16년)
3. 조선시대에 철원군 동송읍고석정 맞은편 강에 석성을 쌓고 관군과 대적한 인물은?
*임꺽정.
4. 성호이익이 임꺽정, 홍길동과 더불어 조선 3대 도적(의적)으로 지목한 인물은?
황석영은 그의 이름으로 4권 대하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
*장길산
5. 장편소설 『임꺽정』을 저술한 소설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정치인으로
경술국치 직후 귀국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휘문학교(徽文學校)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1920년대 초반에는 한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시대일보사(時代日報社) 사장으로 재직 중인 1927년에 민족 단일 조직인 신간회(新幹會)의 창립에 관여하여 그 부회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회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의 주모자로 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좌익운동에 가담하고,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바로 월북하여 북한 공산당정권 수립을 도우면서 부수상 등 요직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이름과 호는?
* 벽초 홍명희
6. 철원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원래의 지역 특성에다가 경원선과 금강산선이 분기되는 교통의 요지라 엄청나게 발전했으며[6], 특히 철원평강평야의 젖줄로 불린 봉래호저수지가 1923년 완공되면서 강원도를 대표하는 곡창지대이자 경원선 연선의 주요 대도시로 거듭났다.
해방 직전인 1944년 당시 철원은 강원도에서 몇 번째로 큰도시였을까?
* 두 번째 (첫째는 춘천읍)
7. 지금은 북한의 영역이지만 철원,김화와 더불어 철의 삼각지라 불리는 도시는? * *평강군
8. 철의 삼각지를 중심한 요지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1만 9,954발, 중공군은 5만 5,000발, 포탄 총 27만 4,954발을 쏟아부었다. 6.25 전쟁 중 단일 최다 포탄소비 전투. 국군은 겨우 1개 사단이 3개 사단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 있었지만, 대신 4배의 포탄을 퍼부어댄 것이 승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이는 국군의 또 다른 대승인 용문산 전투 이후 병력의 열세를 화력의 우세로 메꿀 수 있음을 또 다시 증명한 사례가 되었다. 이전투는 무엇인가?
* 백마고지 전투
9. 백마고지전투가 계속된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그렇게 계속되던 고지점령전에서 9사단은 휘하 병력을 총동원해 반격, 중공군이 공격의 교두보로 삼았던 백마고지의 북쪽 능선을 또다시 탈환해 중공군 전체를 백마고지 일대에서 격퇴함으로써 비로소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사상자는 3,396명이었는데, 중공군 사상자는 몇 명쯤일까?
*1만 4천여 명,
10. 제2땅굴은 강원도 철원(鐵原) 북쪽 13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1m, 높이 2m, 깊이 지하 50~160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다. 이 땅굴이 발견된 해는 언제인가
* 1975년 3월 24일
11. 제1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고랑포(高浪浦) 북동쪽 8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깊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다. 이지역은 어디인가?
* 경기도 연천
12. 제3땅굴은 판문점(板門店) 남쪽 4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95m, 높이 2.1m, 깊이 지하 73m, 길이 약 1.6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다. 이땅굴이 발견된 시기는?
*1978년 10월 17일
13.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발견된, 너비 1.7m, 높이 1.7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이다. 이지역은 ?
*강원 양구(楊口) (북동쪽 26km 지점)
14. 이 전망대는 DMZ 부근에 위치한 여러 전망대들 가운데 특히 북한의 모습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248Km에 이르는 군사분계선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 지역인 대성산, 적근산, 삼천봉이 한눈에 들어오며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오성산과 금성지역 등 북한 지역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잡초 속에 묻혀 있는 금강산 전철길 또한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 전망대의 이름은?
* 승리전망대
15.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로, 1992년 9월에 개장하였다.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대와 더불어 대중에게 매우 잘 알려진 통일전망대이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류지점에 위치하는 서울에서 가장가까운 통일전망대는?
* 오두산 통일전망대
16. 이 강은 화산폭발 이후 용암이 흐른 자리가 강이 된 매우 특이한 강이다.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해강원도 철원군, 경기도 포천군과 연천군을 지나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한탄강은 총 136km의 길이를 자랑한다. 강 주변은 기암절벽을 비롯한 많은 지질 자원을 가지고 있어 그림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 어느 강보다도 변화무쌍하고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이 강은 발원지에서 임진강의 합류점까지 현무암으로 된용암지대를 관류하기 때문에 곳곳에 수직 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래프팅 장소로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강은?
*한탄강
17. 이 다리에 대해서 철원군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한국 전쟁 중 큰 공적을 세우고 조선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연대장 박승일(朴昇日, 1920년 ~ 몰년 미상)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설이다. 이 다리의 이름은?
* 승일교
18. 철원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 당시, 강원도의 도청이 소재했으며 구철원은 철원군의 중심지였다. (도청은 1946년 12월 원산시로 이전하였다.) 이때 1946년 철원읍 관전리에 북한에서 3층 건물을 건설했는데, 한국 전쟁을 거치며 구철원은 대한민국에 귀속되면서 이 건물도 대한민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쟁 때 폐허로 변한 탓에 이 건물도 현재 1층은 멀쩡 하지만 2층은 골조만 남아있다. 이 건물은 무엇인가?
* 노동당사
19.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에 있는 절이다. 신라 경문왕 5년(865)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리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이름이 이렇게 명명되었으며 절 내에는 도선국사가 제조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삼층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이 사찰의 이름은?
* 도피안사
20. 이 폭포는 철원 동송읍을 관류하는 한탄강(漢灘江) 하류에 형성된 폭포로서, 임꺽정(林巨正)이 거처했다고 전해지는 고석정(孤石亭)에서 서쪽으로 2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한탄강의 양안에 장보(長洑)처럼 일직선으로 가로놓인, 높이 3∼5 m, 길이 80 m의 거대한 암반을 넘어 거센 물이 수직으로 쏟아져내려 장관을 이룬다. 이를 일컬어 현지 사람들은 철원 8경의 하나라고도 하고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도 한다. 이 폭포의 이름은?
* 직탕폭포(直湯瀑布)
첫댓글 잊고 지냈던 동양사상 카페!!
교수님
철원의 역사퀴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