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의 시 꽃의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 이세 동원된 '미지 … 존재 … 무명 … 추억' 등의 시어들은 독일의 릴케(R. M. Rilke)가 주로 즐겨 쓰던 시어들로 그의 영향이 강한 시다.
이 시에서 '너', '신부'는 꽃으로 비유된 대상물에 불과하다. 시적 화자는 그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하는 존재의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해 마지 않는다. '나'는 무딘 촉수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고난의 몸부림을 거듭한다.
그러나 존재는 얼굴을 가리고 좀체로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을 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시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다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맥락읽기
1. 화자는 누구인가?
--- 나
2. 대상 혹은 듣는이는 누구인가?
--- 너
3. 화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울고 있다.
4. 그 이유가 뭘까? 화자가 울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연을 찾아 보자.
--- 1연 (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왜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어둠이 된다)
--- 2연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5. 시적 대상을 가리키는 다른 시구를 찾아 보아라.
---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
6. 이로 미루어 볼 때 대상은 화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지고 있는가?
---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알수 없는 존재
---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다가가고 싶으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 존재
7. 화자의 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시어를 찾아 보고 그것들을 통해 화자의 심정을 이야기 해보자.
--- 나는 위험한 짐승,나의 울음,한밤내 운다.(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8. 자 그럼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 하겠지. 한번 정리해 보자.
---다가가고 싶은 존재가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기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9.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얘기한 시어를 찾아 보아라.
--- 무명의 어둠
10. 이런 무명의 어둠 즉 절망적인 상황에서 화자가 하는 행위는?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한밤내 운다,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든다.
11. 그런 행위들이 뜻하는 바는?
---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대상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한다.
12. 대상의 인식을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는 무엇인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실체 파악의 가능성이 엿보임)
14. 대상을 가리키는 시구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 비교해 보자. 그 변화의 속뜻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까마득한 미지의 어둠 ⇒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여.
--- 아직 그 실체에 다가간건 아니지만 완전한 어둠에서 약간은 실체에 다가간 듯하네요.
15. 5연의 '나의 신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 언젠가는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아직까지는 얼굴을 가린 상태이지만 대상이 너울을 가린 저 편에 얼굴을 가진 존재임을 알고 있는 한 그리고 그 가린 너울을 벗겨 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있는 한 언젠가는 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이다.)
16. 이 시에서 말하는 '너'는 무엇일까?
--- 꽃
17. 기껏 꽃 한 송이를 두고 실체를 알 수 있느니 없느니 울고 불고 야단인데 도대체 뭘 얘기하고자 하는 걸까?
--- 글쎄요. 하여튼 알듯알듯 하면서도 제대로 알 수 없음을 통탄하는 것 같네요.
그래 맞아.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대상의 본질, 대상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도 그렇지 않은 것도 또한 많다. 이러한 것을 철학적 용어로 불가지론이라 하지.
■ 핵심정리
*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 어조 : 사색적, 열정적 어조
* 특징 : 단순한 산문체의 시 같으면서도 깊은 의미를 지닌 난해시다. 꽃으로 대표되는 사물 속에 담고 있는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 그 자체에 그친다.
* 주제 : 꽃의 참모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존재의 본질 인식에의 염원)
* 의의 : 이 시는 초현실주의적 경향과 존재론적 내면 추구의 시로 릴케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 구성 : ① 인식의 부재 상태(제1,2연)
② 인식에의 노력(제3,4연)
③ 인식 실패의 안타까움(제5연)
■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너'가 가리키는 것을 밝히고, 그것과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를 찾아 그 상징 의미를 쓰라. 그리고 '나'는 '너'에 대해 어떠한 존재인지를 이 시의 주제와 관련하여 100자 이내로 쓰라.
<모범답> '너'는 '꽃'을 가리키며, 같은 의미로 쓰인 시어는 '신부'로서 존재의 본질을 상징한다. 시적 화자인 '나'는 존재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나 본질 규명을 이루지 못하는 존재이다.
2. 존재의 본질 규명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두 어절의 시구를 찾아 쓰라.
<모범답> '얼굴을 가리운'
3. 이 시에서 다음 작품의 밑줄 그은 부분과 같은 의미를 가진 시어를 찾아 쓰라.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모범답> 금(金)
■ 이해와 감상
릴케(R. M. Rilke)의 영향을 받아 존재론의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깊이를 추구한 김춘수의 초기시에 해당한다. 그의 시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읊은 것이다.
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없는 '나'(위험한 짐승)가 '너'(꽃)를 인식하려고 시도하면 '너'는 더욱 미지의 세계로 숨어 버린다. 그리하여 꽃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존재하고 있다.
제3연의 '무명(無名)의 어둠'이란 존재의 의미, 본질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을 말한다. 이 무명(無名)의 상태를 보다 못한 '나'는 의식을 일깨우는 불을 밝히고 인식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나'의 이 노력이 돌개바람처럼 문득 큰 힘으로 변하여 사물의 본질을 꿰뚫기만 한다면 '나'는 드디어 꽃을 똑바로 인식하고 알맞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꽃은 수줍은 신부(新婦)처럼 너울을 드리운 채 그 정체를 끝내 드러내지 않는 것을….
1950년대 김춘수는 '꽃'을 제재로 한 일련의 시로 우리 시에 존재론의 문제를 끌어들임으로써 한국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데, 이 시는 그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의의를 지닌다.
■ 이해와 감상2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 이 시는 앞에서 설명한 시 <꽃>에 대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꽃>이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화자가 남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어하는 소망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인식의 주체로서의 화자가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자 하는 소망을 읊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꽃'이 사물의 본질을 상징한다면, '미지'·'어둠'·'무명' 등은 사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화자는 그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 즉 꽃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1연에서 화자는 사물의 본질을 모르는 자신을 '위험한 짐승'이라 하여 무지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연에서는 자신의 자각 없이는 '꽃' 역시 불완전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3연에서는 '추억의 한접시 불'이라는 모든 지적 능력과 체험을 다하여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화자의 몸부림과 절망을 '나는 한밤내 운다'로 표현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비록 존재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했어도 그것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나의 울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역설적 깨달음을 보여 주는 한편, 마지막 연에서는 결국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만 자신의 안타까움을 '얼굴을 가리운 신부' - 꽃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 이해와 감상3
사물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 불가능성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다룬 작품.
이 시에서 `꽃'은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 혹은 본질적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그것에 접근하여 해명하고자 하는 인식 주체이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욕구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본질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가 사물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꽃)을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사물의 본질은 언제나 완전한 인식의 가능성 저편에 있으며, 마치 영원히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와 같다. 이것이 대체로 정리해 본 이 시의 철학적 의미이다. 제3, 4연은 이와 같은 좌절로 인한 슬픔과 비극적 의식을 노래한 것이다.
철학 술어로는 불가지론(不可知論, 참다운 실체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는 학설)이라 부르는 이 생각을 시인은 꽃이라는 사물을 초점으로 하여 표현했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을 철학적, 사색적 이미지의 시라 할 수 있다.
제2연에서 `나'를 `위험한 짐승'이라고 하는 까닭은 `너(꽃, 사물)'의 참된 의미를 잡으려고 내가 손을 뻗치는 순간 그 대상이 되는 사물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꽃' 즉, 대상의 참모습을 잡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제2연이 노래하듯이, 꽃은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가 있어야 가능한데, 존재의 참모습으로서의 꽃은 인식될 수 없으므로 이름도 없이 머무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제3연에 보이는 `무명(無名)의 어둠'이란 이처럼 사물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는 세계의 상황을 간결하게 압축한 구절이다. 시인은 이 괴로운 세계 속에서 밤새도록 운다. 그리고 그의 깊은 슬픔은 제4연의 독백처럼 존재의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를 떠돌다가 마침내 돌에 스민 금(金)으로 차갑게 굳어질 것이라고 예감된다. 울음으로 표출된 슬픔이 `돌개바람'이 되어 떠돌다가 석탑 속의 금으로 응결되리라는 시상은 매우 예리하고도 참신하다.
작품은 이러한 안타까움과 슬픔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나'의 간절한 부름으로 끝맺어진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는 곧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꽃'이요, 존재의 본질에 해당된다.
[해설: 김흥규]
■ 감상 포인트
▶ '나'와 '너'의 관계: 인식 주체와 인식의 대상이다. 시적 대상인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내가 알 수 없는 존재)이며,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다가가고 싶으나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즉 '나'는 '너'의 실체를 알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드러내지를 않는다.
▶ 말하고자 하는 것: 사물의 본질은 영원히 우리의 인식 저편에 불가지(不可知)의 상태로 남아 있다.끈질긴 의식 주체의 인식 노력.
▶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 = 무명의 어둠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
■ 심화 자료
김춘수, 『꽃』
인간에 미치는 언어의 역할
"이름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별명도, 애칭도, 심지어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사람.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일체의 기호가 붙여지지 않은 사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아름 모를 소녀'를 떠올릴 수 있는가. '이름'이 없다면, 하다못해 그에게 숫자 하나라도 붙어있지 않다면, 그는 정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언어가 먼저냐, 사물이 먼저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우리 인류가 언어를 사용한 것은, 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기껏해야 만 년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는 수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왔다. 그렇다면 당연히 실재하는 나무가 언어인 나무보다 먼저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러나 김춘수의 「꽃」은 우리에게 언어인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실재하는 '나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언어가 사물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언어가 사물의 존재와 존재 인식에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무었일까. 그것은 우리가 언어로 질서화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는 수억 년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무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다면, 나무라는 언어로 인간에게 인지되고, 인정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나무라는 사물로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의 꽃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 역시 '나무'라는 언어로 명명되지 않는 한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무가 '나무'라는 언어에 의해 비로서 나무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춘수의 <꽃>역시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 곧 언어에 의해 비로소'하나의 몸짓'이 아닌 '꽃'이라는 분명한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김춘수의 「꽃」은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음을, 곧 인식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역할 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사물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집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모든 사물도 언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X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인간에 의해 발견되어 X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후에야 비로소 X선이라는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김춘수의 「꽃」은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식의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철학적 성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꽃'이라는 언어가 없다면 철마다 피어나는 저 '아름다운 하나의 몸짓'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
㈎
너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의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참고 자료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언어가 존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언어와 익명성의 극복
어린왕자를 제시문으로 출제되었던 97 서울대 논술고사는 고전논술의 원조격인 문제라도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어린왕자를 제시문으로 글이 암시하고 있는 참다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방안을 물었는데, 우선 작품의 일부를 살펴보자.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공손히 대답하고 둘러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넌 누구니? 참 이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여우야."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길이 안 들었으니까."
"그래? 미안해." 조금 생각하다가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넌 여기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무얼 찾고 있니?"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사람들은 총으로 사냥을 해. 대단히 귀찮은 노릇이지. 하지만 사람들을 닭을 기르기도해. 사람이란 그저 한 가지 밖에 쓸모가 없다니까. 너두 닭이 필요하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도대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냐구?"
"모두를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맞는다는 뜻이란다." 여우가 대답했다.
"관계를 맺는구나?"
"응, 지금 너는 다른 애들 수만 명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필요 없고. 너는 내가 아쉽지도 않은 거야. 네가 보기엔 나도 다른 수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잖아?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준재가 될 것이고. 네게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생떽쥐베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왕자는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꽃이라 부른 장면을 어린왕자가 특정한 여우 한 마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바꾸어 보여 주었을 뿐이다.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는 이름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1 대 1 개인 관계의 시작이며,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첫 단계며, 애정을 확인하는 한 절차인 것이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관계도 의미가 없다. 현대인들은 비정한 익명성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꽃의 전문을 보자.
1,2연은 이름을 불러 주는일을 통해 하나의 몸짓에 불러주는 대상이 꽃으로 익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꽃의 3,4연은 그러한 언어를 통한 대상의 인식이 익명성을 극복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조건이라는 사실로 시적 인실을 확장시키고 있다. 어린왕자가 보여주고 있는 길들임을 통한 진정한 인간관계의 수립은 꽃이 말하고 있는 이름을 불러주는 일을 통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 다름 아니다.
그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는 나에게 있어서 이름 모를 소녀, 즉 익명의 대상일 뿐이다. 그의 빛깔도 향기도 장점도 아픔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렀을 때, 그 대상은 나에게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나는 그를 다른 남과 구별하여 생각하게 되고, 그 대상의 개성과 가치,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존엄성을 인정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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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은 답이 18번까지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