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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하나 스크랩 [유럽] 터키여행3
┏☆뜀도령™☆┛ 추천 0 조회 297 07.05.22 18:1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2006. 7. 18(화)

아침식사를 호텔에서 마쳤다. 이 곳 알티노즈 호텔의 부페 아침식사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침식사 후 다시 합류한 신한은행팀과 함께 오늘은 남부 쪽으로 가볼 참이었다. 남부지역은 교통이 좋지 못한데다 볼거리들이 워낙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다. 당근 기동력이 있어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코스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형태였지만 이 곳에서는 현지 여행사를 수배하여 이날 하루의 관광패키지를 구입했다. 예정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가이드 여직원이 나타났다.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 한마디 없고 차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원래 담배를 끊은 상태였지만 내게 권하는 담배를 말없이 거절했다. 게다가 여직원의 인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까칠함이 드러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1시간정도 늦어 버스가 도착하고 드디어 출발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한참을 갔다. 미국인 청년 두 명과 터키 현지인 세 명이 일행이 되었다.

 

드디어 데린쿠유의 지하도시에 도착했다. 이 곳 지하도시는 아랍인들을 피해 4만명의 가톨릭 교도들이 살았다고 한다. 어쨋든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쳐진 길은 미로였고 이런 좁고 답답한 곳에서 4만명이 살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기가 입구다.

 

지하도시는 무척 시원했다. 입구를 들어와 넓은 공간이 나오자 마자 여직원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이 장면이 대충 비가 오면 식수를 어떻게 모아서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찍고 보니 괴기영화가 따로 없다. 

 

이런 통로를 가다 보면 크고 작은 공간이 나온다. 공간이 나오면 그 곳은 주거공간이거나 공용공간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우물

 

우리와 함께한 터키인 일행. 핑크색 꽃무늬 옷을 입은 아가씨는 여행사 직원이지만 오늘은 비번이랜다. 그래서 모처럼 놀러 온 언니와 형부를 데리고 왔단다. 이름이 생각이 안나넹. 광원이가 안보인다. 이 아가씨가 광원이를 좋아한 것 같은데... 

 

입구 근처의 카펫 가게. 완전히 후지다사 제품이다. 어린 애들이 수공품인형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당근 안샀다.

 

다시 자리를 옮겨 우흐라라 계곡으로 갔다. 사진은 우흐라라계곡 입구 조금 못미쳐 보이는 절벽

 

그 곳에서 만난 어린이들. 초컬릿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었는데 마침 먹을게 아무 것도 없었다. 하긴 우리가 언제 군것질거리 갖고 다녔나.

 

근처 마을풍경

 

계곡으로 내려가는길

 

내려가는 계단이 무척 길었다. 내려가서 조금 걷다 보면 토굴성당이 나온다. 일행 중 미국인 청년 두놈이 계속 칭얼거린다. 우리는 한참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천천히 가는데 얘네들은 후딱후딱 가기를 원했다. 게다가 아싸가 벌레물린 발목에 염증이 생겨 걷기를 조금 버거워했다. 가이드는 가운데서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가이드에게 계속 징징거리는 소리에 나도 은근히 열받았다.

 

 

토굴성당 내부 천정벽화

 

바위에 동굴도 뚫려 있고 

 

시냇물 건너에 당나귀를 타고 있는 어린이도 만났다.

 

계곡을 나와 Belisirama라는 곳을 거쳐 야외로 테이블을 설치한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가장 먼저 나온 샐러드와 수프. 보신탕 국물처럼 보이는 이 수프는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디따 맛있었다. 샐러드도 모양새보단 맛있고 빵은 누룩 없이 구운 것같았는데 배가 고팠나 이 것도 역시 맛있었다.

 

주요리로 나온 생선과 쌀. 역시 맛있다. 음료는 당근 에페스 맥주. 캬~~~~!

 

 

 

 

다음은 셀림이라는 곳으로 상인들이 임시 숙소로 사용하던 터라고 한다.

 

안가볼 수 없어서 들어가 봤다.

 

 

이 곳이 길고 긴 행렬의 상인들이 머물다 갔다는 카라반사라이(Caravansarai)다. 입구에서 폼잡고 서있는 리유군. 뭐가 못마땅한지 입이 나왔다. 왜그래?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같구만. 결국 헤어지긴 했지만도...

 

어두운데서 폼잡는구만. 안보인다네.

 

마징거가 남산에서 나오는 줄 알았디만 괴레메에서 냐와야?

 

카메라가 속썪이는게벼?

 

나도 개폼 한 번.

 

올려다 본 원 안의 하늘이 예쁘다.

 

일정 끝나고 돌아가기 전 단체 사진 한장 찍고... 근데 여기 사람들한테 사진을 부탁하면 왜 중심에 사람을 두지 않고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찍는지 원.

 

여자친구가 이 사진 보면 오래살지 못할낀디 우짜자고.....

 

아싸의 발목 염증으로 인해 심하게 부어 걷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병원을 들렀다. 여행사로 다시 돌아가 미국 애들과 터키인들을 내려 주고 나서 병원에 데려다 줄 것으 ㄹ특별히 부탁했고 그들은 흔쾌히 응해 주었다. 나의 요청으로 진료시 통역을 해주도록 요청했고 이 것 역시 흔쾌히 받아들였다. 늦게 오고도 사과가 없어 기분나빠하던 나는 오히려 그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친절하게 끝까지 아싸의 진료와 처방에 동행해 주었다. 우리는 너무 고마워서 팁으로 20불을 건넸다. 그녀는 무척 고마워했지만 그녀가 베풀어 준 친절에 비하면 작은 것임을 피력하였다.

 

초저녁에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맥주를 사다가 회식을 할 참이었다. 맥주를 사러 가는 길 역시도 이국적인 거리의 분위기가 즐거움을 주었다.

 

 

 

 

여기서 맥주도 사고

 

여기서 과일도 사고

 

나오다 보니 굵직한 체리가 너무나 맛잇어 보였다. 두 개로 나누어 진열되어 있어서 품질에 차이가 있는가싶어 어느게 더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짜식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알아 들었다. 결국 그게 그거인것 같아 이걸로 달라고 하니 봉지에 담기 시작한다. ㅡㅡ;

 

호텔쪽으로 돌아오다 보니 두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들을만했다.

 

우리를 이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에페스 맥주 만세! 이걸 다 먹고도 부족해서 더 사다 먹었다.  

 

맥주를 마시던 중 희준군이 기구를 꼭 타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학생 때 캐나다에서 300 US달러를 부르는 기구를 타 보고 싶어 집에 전화해서 돈 좀 부쳐 달라고 해다가 야단 맞은 적이 있단자. 그런데 그 이상을 불러도 타고야 말 이 상황에 150을 부르니 지금 안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되니 그럴 수 없다는 거였다. 나는 그까짓 기구를 탄다고 짜릿한 뭐가 있을거라는 기대가 들지 않아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니 카파도키아 오토갈에서 우리에게 150불을 불렀던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했다. 생각해 본 뒤 전화를 주겠노라고 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영어에 가장 유창한 광원군이 전화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 하는얘기가 기분 잡치는 소리였다. 150짜리는 물건너 갔고 200인가 얼마하는 회사의 자리만 남은데다 그나마 지금 확정하지 않으면 이 자리도 없고 더 높게 부르는 회사의 자리 외에는 없을거라는 얘기였다. 우리가 전화를 하니 좀 더 비싼 가격에 흥정을 하고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150짜리는 애초에 없고 미끼였는지도 몰랐다. 광원군이 의견을 물었다. 나는 단박에 기분이 상해 안탈테니 탈 사람들만 모여서 다녀 오라고 했다. 결국 안타는 쪽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결국 희준군만 남은 외로운 신세가 되어 결국 포기했다. 광원군이 대변한 우리의 답변은 시원스러웠다. "우리도 당신이 우롱하는 가격에 농락당할만큼 바보는 아니니 그만 두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그런것은 아니라며 극구 해명을 하더라나. 어쨋든 우리는 기구 탑승을 잊고 맛있고 맛있는 에페스 맥주에 푹 빠졌다.

 

2006. 7. 19(수) 

오늘 셀추크로 떠나야할 광원과 희준이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계속 다니기를 원했다. 결국 셀추크의 호텔로 전화해서 해약한 뒤 이 곳 카파도키아에서 하루를 연장하고 우리와 함께 이스탄불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괴레메로 향하는 버스를 다시 탔다. 네우세히르에서 어디를 가나 출발지점으로부터 일정 거리까지는 같은 길로 가야했다. 달라지기 전까지의 길은 새로울게 없었다. 괴레메에 도착해서는 우선 마을부터 둘러 보았다. 가는 곳마다 운치가 있었다.

 

 

이 곳의 호텔들도 예쁘게 꾸며 놓아서 그 자체도 볼거리였다. 

 

 

 

 

이런 바위는 마을 안에도 지천에 깔렸다.

 

염료를 끓이고 있길래 뭐하는덴가 들러 보았다.

 

두 명의 젊은 여인이 카펫을 짜고 있었지만 그리 고급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갤러리 아나톨리아라고 써 있는 건물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그 곳에서는 두 명의 나이든 여인이 카펫을 짜고 있었는데 매우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수준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전시된 카펫의 수준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라비아 궁전도 이렇게까지 럭셔리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내 카메라가 얼마나 후졌는지 여기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 곳의 사장이라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이 가장 먼저 보여 준 카페트다. 가격이 무려 1,000달러. 아름답고 섬세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비쌀 줄이야... 크기도 아주 작다.

 

하나를 더 보여 주는데 고상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아주 작은 것도 보여 준다.

 

비싸다고 손사래를 쳤더니 250불짜리를 보여 주는데 그건 바깥에서 젊은 여인네들이 짜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배낭여행객인 우리가 이런 카페트를 살리 없다고 생각을 이미 하고 있으면서도 박물관 안내하듯이 친절하게 구석구석을 보여 주었다. 어지간한 박물관도 이만큼 스펙터클하지는 않았다. 주인은 "이 곳에서 구경하는데만 1인당 20불을 내야한다"고 했다. "이런 예술품을 보는데 20불이면 너무 싸다. 1인당 100불을 내면 안되겠냐"고  되받아쳤더니 그는 웃었다. 자신의 농담에 당황해 하지 않는 것도 그렇거니와 자신들이 만든 예술품에 대한 최대의 찬사로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한다. 친절하게 입구까지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들어가는 입구인데 결국 우린 뒷문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가다 보니 어렸을 때 흔하게 본 물건이 보인다. 추억을 자극하는 삼륜차.

 

 

나름대로 전통의상이라고 주장하는 가게에 가서 물건도 좀 골랐다.

 

 

 

입어보고 멋있으면 살려고 했는데 생긴건 잠옷이고 잠옷치곤 불편했다. 이게 뭐야 씨! 비단이장수 왕서방 밍월이 쳐다보고 맛이 간 포즈다. 모자만 샀다.

 

괴레메도 식후경이다. 밥먹으러 갔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메르칸 레스토랑. 막상 찾아가 보니 환상적인 분위기에 우린 기냥 맛이 갔다.

 

2층 테라스로 가서 자리를 만들었다.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꼭 우리카페인것 같은 착각.

 

 

갖구워 내온 빵이 엄청나게 길다.

 

뜀도령이 하는 추잡한 짓에 허락 없이 나도 동참.

 

희준군도 만만치 않군

 

포도주도 한 병 주문하고

 

주요리

 

 

밥을 먹고 나서 괴레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언덕을 향해 걸었다.

괴레메 파노라마가 시작되는 언덕 초입.

 

여기서부터 계속 걸어가면서 괴레메 파노라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처음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면 내려다 보이는 지대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올라갈수록 지대가 높아지면서 더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도대체 어떤 풍화작용이 이런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 놓았을까.

 

어제 우리가 아바노스에 다닌 동안 광원과 희준은 이미 이 곳 괴레메 파노라마를 봤다고 했다. 그러나 자료 준비가 안되어 있던 그들은 다시 현지 패키지를 이용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우라와 함께 다니면서 어제와 같은 길을 가는데도 어쩌면 이렇게까지 느낌이 다를 수 있냐며 만족해했다.

 

이쯤에서였나 보다. 참았던 장난기가 발동했다.

 

언덕을 따라 걷다 보니 미끄럼을 타면 재미 있을 것 같았다.

 

말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한 번 시도해 보았다. 처음 내려갈 땐 좋았는데 조금 더 내려가면 낭떠러진데 이놈의 미끄럼이 멈출줄을 모른다. 어어어~~~! 

 

간신히 멈추긴 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은 아래쪽이 그리 까마득해 보이지 않지만 조금 더 미끄러져 내려 갔으면 벼랑에서 떨어져 죽거나 사망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거다. 문제는 바닥이 거칠어 보여서 안미끄러질 줄 알았는데 이건 바위가 아니고 말하자면 매우 단단하게 굳은 모래였다. 그러니 표면은 힘주어 문지르면 미끄러질수 밖에...

 

이거 왜 이렇게 미끄럽냐. 사력을 다해 지그재그로 달려서 올라가면 단 몇 미터만 더 올라가면 되는데  도로 미끄러지니 이거 참 사람 환장할 노릇이다. 리유는 내가 사경을 헤매는게 재미있었는지 사진을 두 장이나 찍어서 보여줬다. 마귀할멈같으니... 결국 광원이가 던져주는 가방끈을 잡고 간신히 올라왔다. 역시 사람은 가방끈이 길어야 하나보다. 10년 감수했다. 이젠 철 좀 들어야지.

 

괴레메 파노라마는 무척 길었다.

 

 

지루한 줄 모르고 걸었다.

 

희안한 것으 뙤약볕이 눈부실정돈데

 

그리 덥지도 않고 땀도 별로 나지 않는 건조한 기후가 마냥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가다 보니 터키의 깃발도 보인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운치있는 카페가 또 나온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곳에 들러 차를 한잔 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곳이었다. 포도넝쿨 같은 것들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손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늘의 일정에 대한 소감도 정리를 해가면서

 

웨이터인지 주방장인지 아님 카페의주인인지(주인은 아닌듯...) 귀여울 정도로 작은키에 콧수염은 아주 멋들어졌다. 충분한 휴식 후에 다시 우치히사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다 보면 우치히사르가 나온다.

 

이 곳이 우치히사르 마을이다. 

 

우치히사르는 보는 바와 같이 특이한 분위기를 가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곳에서 버스를 타고 네우세히르로 돌아가 짐을 찾아 나왔다. 희안한건 20분정도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드나무처럼 생긴 나무가 몇그루 있어 그 밑에서 기다렸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 거기서 화단턱에 앉아 기다리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짐을 수습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위르깁으로 갔다. 위르깁 오토갈에서 출발해 이스탄불로 향하는 야간 고속버스는 네우세히르를 거치기는 하지만 네우세히르에는 똑똑한 레스토랑이 없고 남는 시간 때우기가 막연했다. 도착하는 즉시 버스표부터 구입했다. 위르깁에는 운치있는 카페가 지천에 널린데다 기념품을 살만한 가게들도 많았다. 한 기념품 가게에서 구경하다 나오니 엄청 예쁘게 생긴 22세 전후정도의 처자와 광원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새를 못참고 한 명 또 꼬셨나 했더니 여자 쪽에서 꼬신 것 같다. 우릴 본 그 아가씨는 '네 친구들이냐'고 묻더니 인사만 하고 그냥 갔다. 성의인척 하고 묵을 호텔 없으면 우리집에 와서 묵으라고 꼬시고서 넘어가면 기냥 바가지를 씌우는 그런거 간혹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니만 으째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아닌가싶다. 위르깁에 도착한 우리는 약국을 들렀다. 아싸의 약을 구입하기 위해 들렀던 것 같다. 거기 약사의 미모가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얼굴은 하얗고 엄청 풍만한 가슴에 허리는 완전히 개미허리였다. 그 옆에 남편인지 남의 편인지 알 수 없지만 후져 보이는 남자가 함께 약장사를 하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에는 미인이 많았지만 남자들은 인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약국에서 나온 우리는 기념품 가게를 다니며 선물로 돌릴 물건을 골랐다. 손가락 모양의 하드 아이스크림도 사먹어 가며 구경하는 재미도 여간 쏠쏠한게 아니었다. 어느 기념품 가게 사장은 아들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물건도 예쁜게 가장 많았을뿐 아니라 주인장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신사였다. 주인은 우리보고 대만사람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볼때는 중국계, 한국계, 일본계가 다르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볼 때는 그 인물이 그 인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전통악기를 연주한다면서 원하면 우리들을 위해 전통읆악을 연주해 주겠다고 했다. 이거 얼마나 좋은 체험인가싶어 좋다고 했다. 광원과 희준도 좋아했다. 나는 먼저 나가 있던 리유군, 뜀도령, 아싸를 데리러 갔다. 그들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돌아오마구 대답하고 막상 돌아왔지만 왠지 아쉬웠다. 시간이 없으니 두 세곡만 연주해달라며 주저 앉았다.

 

연주가 아주 흥을 돋구었다. 기다리다 화가난 아싸가 와서 '금방 오겠다고 해서 기다리다 못해 왔더니 여기서 지금 뭐하냐'며 화를 냈다. 순간 양쪽에 미안해졌다. 무안~~~~! 사장은 우리보고 '친구가 화났으니 빨리 가보라'며 등을 떠민다. 우리는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나와서 뜀도령과 리유군한테서 또 야단맞았다.

식사를 하기 위해 점찍어 둔 쇠미네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 곳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레스토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에 운치있는 카페들이 많아 미리 정해두지 않았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엄청나게 고민했을 것이 틀림 없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쇠미네는 난로라는 뜻이란다.

 

주면이 내려다 보이는 2층에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내가 시켜 먹은 주요리 닭날개 구이

 

누군가 시켜겠지 난 별로 먹고싶지 않은 닭 앞가슴살 

 

뜀도령이 뭔지도 모르고 용감하게 주문한 음식은 양고기 구이였다. 은박에 구이가 예쁘게 포장되어 나온 것을 나이프로 잘라 뭔지도 모르고 입에 넣은 뜀도령은 임산부 구역질하듯이 기냥 뱉어냈다. 결국 이사람 저사람이 자기 먹을 것을 덜어 뜀도령에게 동냥했다. 나도 닭날개와 볶음밥을 조금 나눠 주고 양고기를 받아왔다. 그래도 난 먹을만하다. ㅋㅋ

 

그건 그렇고 이건 도대체 무신 얘기를 하다가 나온 표정일까 내가 생각해도 디따 궁금하다. 음식 나오기 전 리유가 웨이터보구 더운물을 갖다 달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만행을 저지르려고 더운물을 달라고 할까 했더니 리유군은 거기에 라면 스프를 풀고 아작낸 라면 부스러기를 넣었다. 후후 불어가며 돌려서 마시기 시작했다. 현지식만을 고집했던 내가 갈등이 생겼다. 음식에 관한 한 현지음식만을 먹어야 조금이라도 많은 문화체험이라는 주장을 펴던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싶다. 리유군과 뜀도령이 어찌나 놀려먹던지... 고이헌!

 

밥을 먹고 난 우리는 야간 버스를 타고 하야장장 긴밤을 주구장창 달리면서 잤다. 네우세히르에 정차한 고속버스

 

 2006년 7월 20일(목)

 버스 안에서 잠을  자며 가는 길은 몹시도 긴 시간이었다. 하렘 오토갈에서 하차하여 버스 아래쪽 짐칸세서 짐을 꺼내려던 우리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짐을 넣은 이후 많은 사람들의 짐이 그 안에 더 들어가다. 우리 짐을 꺼내기 위해서는 남의 짐을 끄집어 내야 했는데 남의 짐들을 함부로 만지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차장이 와서 보더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듯이 양 손바닥을 보이며 고개를 들썩였다. 어이가 없었다. 결국 우리보고 에센레르 오토갈까지 가서 내리라는 말인 것 같은데 그럴 의향은 전혀 없었다. 가방을 꺼내자고 했더니 차장이 성질을 내며 거칠게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어이가 업사 못해 화가 났다. 이상하게도 화가나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더니 막힘없이 유창한 영어가 나오는데 나도 신기하다. 짐을 꺼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집어 넣는 시간도 오래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 차장에게 화가 넜지만 리유군은 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단다. 내 생각엔 리유군의 오버인 것 같은디... 어쨋든 이 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에미뇌뉘 부두로 다시 돌아왔다.

 

아스토크 호텔로 다시 돌아왔는데 꼭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짐을 맡기고 간단한 차림을 하고 다시 나섰다. 우리는 맥주를 한캔씩 물고 Et-Is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아무 생각없이 맥주캔을 들고 들어갔는데 주인이 뭐라고 한다. 첨엔 별생각이 없이 실례였구나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근처에 아마도 사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가서 남은 맥주를 비우고 들어갔다. 내부는 그리 분위기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음식 맛은 좋았다.

 

 아침겸 점심식사였던 관계로 필라우(볶음밥)와 닭고기같은 간단한 음식을 시켜서 먹었다. 희준군의 볶은 고추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

 

그리고 나서 간 곳은 술탄아흐메트자미. 어이가 없었던 것은 카파도키아로 떠나던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생각없이 걷다가 발견한 한 회교사원을 보고 정말 웅장하고 멋지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지도를 들고 찾아와 보니 그 때 그곳이 바로 이 술탄아흐메트자미였다니... 더 웃기는건 그 건너편에 역시 회교사원인줄 알았던 건물은 아야소피아(성소피아 성당)이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강조된 이 절묘한 외형 다시금 감탄을 하게 한다.

술탄아흐메트 자미(Sultanahmet Camii)는 큰 돔은 27.5미터, 4개의 중간돔, 30개의 작은 돔으로 구성되어 있고 미나레(첨탑)의 높이는 43미터라 한다. 미나래가 6개라고 하는데 나는 4개밖에 못보았는데 뒤에 더 있었나?

 

첨탑이 인상적이다.

 

안에 들어가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안에 들어가니 회랑과 안뜰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장을 위해 긴 행렬의 맨 뒤에 섰다.

 

술탄아흐메트 1세의 명을 받아 미말 시난의 제자 메흐메트 아가(Mehmet Aga)가 설계하여 1616년에 건설되었으며 오스만왕조 건축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돔에는 26개의 작은 창이 다닥다닥 뚫려있다.

 

내벽 타일은 청색을 띠고 있는데 2만여장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린단다.

 

천장도 엄청 높아 장엄함을 더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넋을 잃고 봤다. 

 

대형돔

 

여자들은 천을 두르고 들어가야 했다. 희준군은 두바이에서 구입한 아랍전통복장을 입고 들어갔는데 터키인들은 동양인이 입고 있는 것이 신기했나보다. 어떤이는 '핸섬보이'라는 칭찬을 연발했다.

 

이 번에는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아야소피아로 갔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건축이 시작되어 콘스탄티누스 2세 시대인 360년에 완공되었단다.

 

 

 

그뒤 화재로 몇 번 소실되어 537년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6년만에 재건되어 비잔틴 야식의 대성당이 세워졌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되어 성당이 자미로 바뀌었고 증개축이 있었었고

 

당시의 벽화들은 1700년대에 칠보로 덫칠되어 있다가 후에 복원되었단다.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가득한 곳이었다.

 

나가고싶지가 않았다. 이미 볼 것은 다 보았지만 왠지 덜 본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이 곳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기때문이었던 것 같다.

 

2층에서 본 기둥 중 하나. 기둥 하나만도 이렇게 섬세하다.

 

궁륭천장에는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화가 있었다.

 

이 안에서 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이 벽화를 디카로 찍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뜀도령이 찍은 것이 가장 낫다싶어 올려 보았다.

 

성모마리아의 손모양이라 불리는 기둥에 나도 손가락을 넣고 돌려보았다. 남들은 이거 할 때 소원을 빌었다는데 나는 그냥 돌려만 보았다.

 

마지막에 보고 나온 현관 위 벽화

 

이 곳에서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지하궁전으로 갔다. 이스탄불의 이 곳 유럽지역은 가장 중요한 관광지가 오밀조밀 모여 있어 다니기가 무척 편리했다. 심지어는 내일 가기로 한 토프카프 궁전도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는 곳에 있고 묶고 있는 호텔이 가까운 것도 큰 매리트였다.

지하궁전은 이름은 그러하지만 실은 지하저수지다. 발렌스 수도교로부터 여기까지 물을 끌어와 식수로 사용되었다.

 

지하궁전은 예상대로 더위에 지친 심신을 식혀주었다.

 

바닥은 물로 채워져 있고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다리가 여기저기 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종아리를 덮을 정도의 깊지 않은 물속에는 생선들이 떼거리로 날아다녔다. 

 

 

기둥 밑에 거꾸로 박혀있는 메두사의 두통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가고자 했던 식당 모자이크를 찾아갔다. 야외로 테으블을 내어 놓은 운치있는 카페였다.

 

 

 

 

대부분 스테이크류의 음식을 시켰다.

 

나는 거시기뭐시기라던가 하는 해물요리를 시켰다. 맛은 평범했다. 남들게 더 맛있어 보였다. 먹다보니 생각나서 먹다말고 음식사진을 찍었다. ㅋ. 에피타이저로 주문한 샐러드에는 양젖치즈가 가미되었는데 맛은 웨엑!

 

다음 코스는 그랜드바자르(Kapar Carsi: 카파르 차르쉬)였다. 터키어로는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이었다. 밤새 버스안에서 자고 계속되는 여름날의 지친 일정에 점심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왔다. 호텔로 돌아가 약간은 낮잠을 때린 후에 다시 가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도로 집어 넣었다. 저녁에 상점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랬고 저녁에는 술탄아흐메트자미와 아야소피아를 다시 와보려면 지금 가야 했다. 막상 가서 보니 사진에서 보던 운치는 없었다. 이 시장은 엄청나게 크다. 돌아다니다 보면 같은 입구로 나올 수 가 없을 정도라 한다. 15세기 중반 메흐메트 2세가 건설한 이치 베데스텐(Ic Bedesten)과 산달 베데스테니(Sandal Bedesteni)라는 2개의 시장이 중심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역시 바가지가 심했다. 무자비하게 깎으면 알고 깎는 것으로 알고 꼬리를 내리곤 한다. 뜀도령은 대단한 bargainer였다. 무조건 상대를 껴안고 Oh my friend thank you very much 하면 가격 협상은 끝이었다. 

안살 것 처럼 버티다가 뜀도령이 깎아놓은 가격이 괜찮은 것 같아서 찻잔, 사과차 분말, 전통과자 등을 샀다. 시큰둥하다가 기껏 깎아놓으면 가격협상에 기여도 없이 공짜로 따라서 산다고 뜀도령의 잔소리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에그 디르브라.

올 때는 금방 찾아는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어지간히 돌아서 간 것 같다. 덕분에 시장구경은 실컷 했다.

 

쉰다고 호텔로 돌아간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술마시는 회교도들

 

 

마시다 보니 출출해졌다. 곯아 떨어진 광원군만 놔두고 에미뇌뉘 부두에의 자그마한 선상에서 파는 고등어케밥집으로 모두가 나가서 고등어캐밥을 따로국밥으로 사고(빵 따로 고등어 따로, 야채 따로)

 

인근 식당에서 밥을 6개 도시락 포장으로 샀다. 반찬처럼 먹는 쌀밥을 한포장씩 여섯개나 사가니 주인은 어리둥절해했다. 

 

호텔로 돌아와 광원군을 깨우는데 만사가 귀찮은지 안먹는단다.

 

희준군이 가져온 볶은 고추장을 꺼내 먹시 시작했다. 보기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이 상차림은 그래도 잊기 힘든 만찬이었다. 돌아갈 때가 되자 한국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소금간만 한 고등어 구이와 밥, 그리고 볶은 고추장. 여기에 에페스 맥주... 남기지 앟기 위해 광원군의 몫으로 사 온 것까지 모두 먹어 치웠다. 광원이를 깨우다말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폼잡는 리유군. 이거 어디가서 오해받기 꼭알맞은 사진이군. ㅋ 뒤늦게 일어난 광원군이 아쉬워할 줄 알았으면 남겨둘걸 그랬나보다. ---> 라고 말할려구 그랬다. 그랬더니 이 글을 읽은 뜀도령이 당장에 딴지를 거는 답글을 올려 놓았다. 내용인 즉슨,

(까칠한 뜀도령 수정 들어감: 고등어 캐밥 사러가기전 맥주를 마실때의 일-맥주가 떨어지자 또한번 뜀과 assa군이 사러갔다오는 사이에 모두 잠들었고 저녁 8시 넘어서 겨우 깨워서 캐밥 사러감...글구,,,신한맨은 고등어캐밥 사가지고와서 먹는순간 벌떡 일어나서 맛있게 먹었음...고등어캐밥 못먹은 사람은 리유형임...메~~~~~~~~~~~~~~~~~~~~~~~~~~~롱 )--->답변 : 블로그 정리 게을러서 늦게 했더니 별 수모를 다 당하네. 잘라따! 쒸! 그 잘난 꼬릿글 저 하단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음. 지우면 주거! 영원히 보관할거야.

 

저녁을 먹고 나서 야경을 보기 위해 술탄아흐메트지구로 나섰다. 건조한 여름저녁이라 시원했다. 역시 나와 볼 가치가 충분했다.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술탄아흐메트 자미.

 

야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조명을 받은 나무

 

아야소피아의 야경

 

노점상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자기는 한국을 좋아한다며 한장 찍어달랜다. 이 곳 인터넷 사정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나는 메일 주소를 받아 왔다. 당근 발송실패.

 

가까이서 찍은 아야소피아 야경

 

술탄아흐메트자미 첨탑

 

늦은 시간에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2006년 7월 21일(금)

마지막날 아침이다. 마지막날엔 항상 그렇듯이 나도 면도를 했다. 다들 나보고 면도한 얼굴이 낯설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토프카프 궁전으로 가는 길은 운치가 있었다. 리유군이 주먹을 들어 올리는걸 보니 뜀도령 뭔가 맞을 짓을 한게로군.

 

토프카프 궁전은 오스만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다 한다.과거 이 곳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토프(대포)카프(대문)사라이(궁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1453년 이스탄불을 함락한 메흐메트 2세가 1460년대에 이 궁전을 지었고 그 이후 증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부지 안에는 술탄의 거실, 의회, 후궁들의 거처인 하렘도 있는데 하렘은 별도의 티켓을 다시 구입해야만 관람이 가능하다. 티켓을 구입하고 대문을 들어선다.

 

입장권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장식물이 전시해 놓았는데 이 중엔 술탄의 문장도 있지 않을까

 

 

 

이곳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이 것은 일본 도자기다. 우리 도공들을 납치해서 만든 작품이 여기에 와 있다니 어이가 없군.

 

 

 

 

셈세한 타일벽

 

 

 

공공화장실 예쁘기가 짝이 없다.

 

술탄의 똥간도 별수 없다. 생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쭈그리고 앉는 수밖에....

 

 

 

 

 

 

 

 

 

하렘 관람을 위한 세컨드 티켓. 후궁들의 처소였기에 세컨드 티켓을 파는가 모르겄다.

 

이제부터 하렘으로 들어간다.

 

거데한 거울이 버티고 있다. 후궁들을 만나러 가는 술탄이 거울을 들여다 보고 터번도 한 번 매만지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토프카프 궁전 구경 끝.

 

우리는 시르케지역 부근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을 일만 남았다. 왠일인지 점심을 버거킹에서 먹자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이스탄불까지 와서 버거킹이라... 나는 되뇌르 케밥을 먹겠다고 했다. 그것도 마지막 식사인만큼 양고기 케밥으로.

 

 

먹어보라고 잘라주는 양고기 덩이를 떨어뜨렸다. 에고 아까브... 양고기 맛은 아주 담백하고 좋았지만 밀전병이 맛을 흡수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거킹을 먹으러 갔다. 나는 케밥을 먹으며 약간의 산책을 즐긴 뒤 버거킹으로 가봤다. 어마어마한 양의 프렌치 프라이를 먹지 못해 허덕거리며 제발 좀 먹어달란다. 어이 없음. 사실 오후 일정에는 아야소피아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어제 보았으니 오후 시간은 남는 셈이었다. 다른 관광지를 찾아 떠나는 방법이 남았지만 나는 이스티크랄 거리의 헌책방에 LP음반이 전시되어 있었던 것이 무척 신경이 쓰였다. 프랑스나 영국의 고가 클래식 음반이 나온다면 뒤집어질 판이었다. 나는 책자와 지도를 내어 주고 발렌스 수도교를 가 볼것을 권장하고 난 다시 이스티크랄 거리를 가보겠노라고 했다. 그냥 그곳에서 쉬겠단다. 그래서 나는 예니 자미를 잠깐 들른 뒤   

 

이스티크랄 거리로 트램바이를 타고 갔다.

 

카파도키아로 가기 전 그 흑인 미인을 보았던 그 언덕을 올라 결국 서점을 찾아갔다. 겨우 200여장정도 가 있을뿐이라 실망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뒤져 보았지만 별볼일 없었다. ㅜㅜ 그래도 이 곳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후회가 되서 두고두고 생각날 판이었으니 이스탄불 문화의 거리에 있는 고서점에 들어가 뒤져보고 주인과 대화라도 나누어 봤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터키 전통음악 CD음반을 한 장 샀다. 다시 돌아와서 보니 모두들 시르케지역 주변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들을 고르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자 공항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창밖을 내다 보며 이제 모든 일정을 마쳐야 한다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트램바이 안에서 셀카 한 컷 찍었다.

 

두바이에 도착해서 좌석을 배정받은 뒤 면세점에서 마지막 쇼핑을 했다. 아랍음악 3장세트 음반을 한 장 샀다. 한국에는 없는 아이템인데다 오래된 음원들이라 만족감이 컸다. 실컷 구경하고 나서 시간을 보니 비행기 이륙 시간이 임박했다. 여섯 사람은 달리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우리때문에 기다리게 만드는 쪽팔리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이륙 10분전쯤 도착했다. 티켓 리딩을 하는데 자꾸 에러가 나는 모양이었다. 문제가 있는지 물었더니 문제 없다며 볼펜으로 좌석번호를 긋고 나서 다시 써준다. 좌석표대로 찾아가 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수기라 취소승객을 감안해 오버차징을 했던 모양이다. 꿈지럭거린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만세! 이코노미클래스의 세배 가까운 가격의 비지니스클래스였다. 럭셔리한 식사에 넓찍한 자리. 그리고 대우도 완전히 틀렸다. 이런 행운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싸에겐 죄도 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싸만이 이코노미석이어서 우리와는 따로 갔다. 스튜어디스에게 부탁을 해보았지만 지금생각해 보면 어림도 없는 부탁을 했다.

동서양의 만남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나라 터키. 이 곳을 내가 실제로 다녀 간다. 가기 전에도 가슴이 설렜지만 지금도 터키라는 이름에 가슴이 설렌다. 좋은 여행은 3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았다. 좋은 행선지, 좋은 일정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세가지가 충족되었으니 두고두고 남을 추억을 터키에서 만들어 낸 셈이다. 한 군데라도 더 가보는 것이 목표지만 언젠가 터키가 내게 손짓을 계속 할테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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