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번(ballade #1 in A), * 2번(ballade #2 in F), * 3번(ballade #3 in
Ab), * 4번(ballade #4 in F)
Etude: Op.10, #1, (C장조 알레그로 4/4박자) Etude: Op.10, #8, (F장조 알레그로 4/4박자) Etude: Op.10, #9, (F단조 알레그로 몰토 아지타토 6/8박자) Etude: Op.10, #10, (A플랫단조 비바체 아사이 2/8박자) Etude: Op.10, #11번, (E플랫장조 알레그레토 3/4박자) Etude: Op.25, #2, (F단조 프레스토 2/2박자) Etude: Op.25, #3, (F장조 알레그로 3/4박자) Etude: Op.25, #4, (A단조 아지타토 3/4박자) Etude: Op.25, #5, (E단조 비바체 3/4박자) Etude: Op.25, #6, (G샤프단조 알레그로 2/2박자) Etude: Op.25, #7번, (C샤프단조 렌토 3/4박자) Etude: Op.25, #8, (D플랫장조 비바체 2/2박자) Etude: Op.25, #9, (G플랫장조 알레그로 비바체 2/4박자) Etude: Op.25, #10, (B단조 알레그로 콘 푸오코 2/2박자) Etude: Op.25, #11, (A단조 렌토-알레그로 콘 브리오 4/4박자) Etude: Op.25, #12, (C단조 몰토 알레그로 콘 푸오코 2/2박자) 야상곡이 쇼팽의 전 작품 중에서 차지하는 의의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선율이나 화성의 아름다움, 여기 깃든 풍성한 시정과 섬세한 감성 등을 특출한 것이어서 쇼팽 음악의 한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낸 곡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야상곡이라는 것 자체가 로맨틱하고
센티멘탈의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Prelude: Op.28 #15, (전주곡. 작품28의 제15곡: Prelude. #15) 왈츠란 4분의 3박자로 빙빙 돌아가며 추는 춤을 위한 연주곡이다. 당시 '왈츠의 황제' 요한 스트라우스의 가볍고 화려한 왈츠가 분위기를
주도하던 음악의 도시 빈을 방문한 쇼팽은 이러한 왈츠들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화려함과 우울함이 묘하게 뒤섞인 빈이라는 도시의 분위기에 맞는 왈츠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쇼팽의 왈츠들은 매우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내면적인 감성을 강조하는 놀라운 피아노곡들로 탄생했다. OP. 34 - 1 NO. 1, ≪화려한 왈츠≫ OP 64-1 NO.5, ≪강아지 왈츠≫ Scherzo: Op.31, (스케르쪼. 작품31. Bb단조) 폴로네즈 제3번, ≪군대≫ (POLONAISE "Militaire" OP.40 - 1) 폴로네즈 제6번, ≪영웅≫ (POLONAISE "Heroque" OP. 53) Barcarolle: Op.40, (뱃노래. 작품40) 출처:천리안
왼손은 옥타브로 무게 있는 선율을 연주하고 오른손은 아르페지오를
화려하게 연주한다. 이 곡은 정서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교적인
것이라 하겠는데, 특히 구성의 기초가 되고 있는 화성을 파악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어진다.
Etude: Op.10, #2, (A단조 알레그로 4/4박자)
반음계의 연습곡으로 매우 기교를 요하는 우울하고 암담한 분위기를
가진 곡이다. 손가락 각각의 강약과 독립성을 요구하며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Etude: Op.10, #3, (Tristesse(이별의 곡))
<이별의 곡>으로 불리는 쇼팽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곡이다. 쇼팽 자신조차도 "나는 여태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쓴 적이 없다"고 제자였던 굿맨에게 말했다고 한다.
Etude: Op.10, #4번, (C샤프단조 프레스토 4/4박자)
빠르고 경쾌한 제 4번은 연습곡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곡의 하나이다.
그러나 시정(詩情)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Etude: Op.10, #5, (G플랫장조 비바체 2/4박자)
이 곡은 <검은 건반> 연습곡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손은 검은 건반만을 연주하고 왼손은 화음으로 화려하게 작곡한 이 곡에 대해 쇼팽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쓰고 있다. "비이크 양은 나의 연습곡을 잘 치게 되었습니까? 그녀는 이 곡보다 더 나은 곡을 선택할
수가 없습니까? 이것은 검은 건반을 위해 작곡된 것이란 사실을 모르면 재미가 없는 곡입니다."
Etude: Op.10, #6, (E플랫단조 안단테 6/8박자)
제 3번과 같이 <녹턴>풍의 곡이며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반주에 계속 동일한 음형이 나오고 있으나 그것이 곡을 단조롭게 하지 않고 통일시키고 있다.
Etude: Op.10, #7, (C장조 비바체 6/8박자)
화려하고 밝은 곡이며 일종의 토카타풍의 연습곡이다.
작품 10의 연습곡 중 가장 내용이 경쾌한 곡으로 오른손의 활달함으로 가장 알맞은 연습이다. 왼손에 확고한 가락이 나오고 있다.
왼손의 분산화음 슬라스타카토의 선율이 나오는 감정적인 곡이다. 쇼팽은 이 곡을 특별히 모세레이즈를 위해서 작곡했다고 하며, 이 곡의
신경질적이고 거칠은 정서는 병으로 타격을 받은 만년의 쇼팽에 대한
전조(前兆)라고 보아진다.
이 곡은 리듬과 악센트의 연습곡으로 되어 있으며, 둘잇단음표와 셋
잇단음표의 악구가 교대되어 미묘한 대조가 나타나 있다. 리스트의 <도깨비불>과 함께 천분과 공상에 찬 무궁동<Perpetum Mobile>풍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두 손이 거의 다 옥타브 이상의 음역을 아르페지오로 해서 연주하는
손을 벌리기 위한 연습곡이다.
Etude: Op.10, #12, (Revolutionary(혁명): C단조 알레그로 콘 푸오코
4/4박자)
1831년, 쇼팽이 고향을 떠나 빠리로 가는 길에 슈투드가르트에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을 억누를 길이 없어 작곡했다는 <혁명의 에튜드>. 기술적으로는 왼손의 움직임을
위한 연습곡이지만 이 곡에 담긴 통절한 심정은 연습곡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음시(音詩)라고 하겠다. 그래서 단독으로 많이 연주된다. 12편의 연습곡을 끝내기에 알맞은 격정에 넘치는 장대한 곡이다. 그러나
미디 파일로 듣기에는 좀 미흡하다. 장대한 맛을 별로 느낄 수 없으니
원곡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짝사랑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자신이 다시는 조국 폴란드의 땅을 밟지
못할 신세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 바르샤바를 떠난 쇼팽은 음악의 도시라는 빈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마침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손을 잡은 때라서 러시아에서 독립하려는 폴란드 국민인 쇼팽은
빈에서 적국 사람의 취급을 받았다. 이에 그곳을 떠나 영국으로 가려던 그는 도중에 들른 독일의 슈트드가르 트에서 러시아가 조국 폴란드를 다시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때는 1831년, 그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
"가엾은 아버지, 어머니 굶주리고 계시겠지.
누이와 동생은 여린 몸을 러시아 군인에게 짓밟혔을까.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괴로워라.
오로지 절망을 피아노에 쏟을 뿐이다."
그는 피아노를 때려 부술듯이 곡들을 써 내려갔고, 그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그대로 담긴 곡이 오늘날 ≪혁명≫으로 알려져 있는 ≪연습곡
다단조 작품 10의 22≫이다. 이 곡에서는 쇼팽의 나라 잃은 분노와 타국에서의 외로움이 격렬하게 느껴져 온다. 알레그로 콘 푸오고, 4/4박자의 세 도막 형식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 곡은 연주할 때 무엇보다도 악센트와 힘을 필요로 하는 피아노 연습곡이다.
자신은 프랑스인 이었지만 아내와 아내의 조국 폴란드를 사랑하는 마음에 폴란드 독립을 위해 혁명군 장교로 전쟁에까지 나섰던 쇼팽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준 애국심은 평생 쇼팽을 괴롭히고
절망의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애국심이 또한 그에게 평생동안 위대한 음악을 쓰게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국을 향했던 쇼팽의 발걸음은 결국 아버지의 조국 프랑스로 옮겨졌고, 은컵에 담은 한줌의 폴란드 흙을 소중히 지닌 채 그는 파리로 들어섰다. 그리고 쇼팽이 평생 지니고 다녔던 그 흙은 결국 그가 파리의 한
묘지에 쓸쓸히 묻힐 때 그의 무덤 위에 뿌려졌다.
이 곡을 들으면서 아직도 그의 묘지에는 향과 꽃이 끊이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의 발걸음으로 붐비고 있다는 사실이 쇼팽에게 사후에라도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tude: Op.25, #1, (A플랫장조 알레그로 쏘스테누토 4/4박자)
일명 <에올리안 하프> 혹은 <양치기의 피리>라 불리는 이 곡은 아름답고 낭랑한 선율이 하프처럼 연주되는 아르페지오의 장식의 의해 노래되고 있다. <에올리안 하프>란 말은 슈만이 한 말이고 <양치기의 피리>란 쇼팽 자신이 이 곡의 해석에 있어 "목동이 폭풍우를 피해 동굴에 피난하여, 멀리에선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그는 조용히 피리를 잡고 멋있는 가락을 부는 장면에서 생각했다"는 데서 기원한 제목이다.
레가토로 가볍게 연주되는 꿈결같은 곡으로, 손가락 끝과 팔의 유연성을 위한 연습곡이다.
복잡한 리듬을 가진, 원래 리듬 연습곡인데, 악센트가 많이 변화되기
때문에 미묘한 터치를 위한 연습곡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성코페이션의 연습곡으로써 화성이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침착치 못한 흐름과 광시곡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곡이다. 클라크는 이
곡의 이름을 <불안>이라 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케르쪼풍의 곡으로 중간 부분은 E장조로 조바꿈되고 왼손에 선명한 가락이 나온다. 주부(主部)는 매우 불안한 감을 풍기며 중간부는 우아하다.
3도의 연습곡으로 단순한 기계적 연습이 아니라 어두운 마음의 외침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선율은 왼손에서 흘러나온다.
작품 10의 <이별의 곡>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곡이며 오른손의 고음과 왼손의 선율이 서로 교차되어 주고 받는다.
오른손의 6도를 위한 곡으로, 폰 뵐로는 "피아니스트 필수의 연습곡이다"라 말했다.
일명 <나비>라는 제목을 가진 이 곡은 경쾌하고 매력적인 연습곡이다.
힘찬 옥타브의 연습곡, 중간부는 렌토로 B장조, 3/4박자의 선율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흘러나온다.
일명 <겨울바람>이란 연습곡이다. 조용한 렌토의 네 소절의 서주가
있으며 격동적인 주부(主部)로 들어가는 이 곡은 작품 10의 <혁명>과
함께 매우 정력적이며 열정적인 곡이다.
양손의 아르페지오를 위한 연습곡이다. 어두운 대양의 정서와 요동치는 느낌을 주는 이 곡은 <대양연습곡>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Mazurka: Op.7 #1, (마주르카. 작품7의 제1곡)
쇼팽의 마주르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쇼팽의 전기(傳記)를 쓴
미국의 하네커는 "템포루바토가 차고 넘친, 그리고 마지막에는 농민의 발소리를 듣는 즐겁기만한 작품이다. 우리들에게 산다는 것, 그리고 춤추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평했다
야상곡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리스트는 쇼팽을 방문했을 때,리스트는 쇼팽의 야상곡을 자기식으로 변형시켜 연주하고 있었고 이에 쇼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리스트 곁에 다가가 "내 작품을
내가 칠 수 있게 해주겠어요? 쇼팽만이 쇼팽의 작품에 변화를 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하자 리스트는 "그렇다면 쳐 보시요"라고 톡 쏘듯이 대답했다. 그 순간 나방이 램프 속으로 뛰어들어 불이 꺼졌고 리스트가 불을 켜려 하자 쇼팽은 "켜지 마시오. 대신 다른 모든 촛불도 꺼
주십시오. 내겐 달빛만으로도 충분하니까"라며 희미한 달빛 아래서
한시간 내내 피아노에 영혼을 불어 넣었습니다. 경청하던 리스트의
눈 속에 눈물로 가득차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며 나는 하찮은
어릿광대였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Nocturn: Op.9 #1, (야상곡. 작품9의 제1곡: Nocturn. #1)
단순하지만 감미로운 선율의 매력이 있는 곡이다. "육감적이지만 꿈과 감미로움이 충만하고 있다. 그것은 황혼을, 밤의 정적을, 그리고 그것이 일깨워주는 상념을 나타낸다"는 것은 프레데릭 닉스의 말..
Nocturn: Op.9 #2, (야상곡. 작품9의 제2곡: Nocturn. #2)
쇼팽의 야상곡을 대표할 만큼 많이 연주되고 애청되는 센티멘탈한 감미로움에 넘친 곡이다.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이 되어 더욱 통속화됐다. "여자들만이 모여들 만한 경지"라고, 평론가들의 평은 비판적이기도 하다.쇼팽의 야상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곡의 하나인 '제2번 E플랫 장조 작품 9의 2'는 서두에 나오는 아름다운 주제를 섬세한 장식음을 첨가하면서 변주해 가는 단순한 서법으로 씌어져 절정부분이 한층 효과적으로 살아나고 있다.
Nocturn: Op.15 #2, (야상곡. 작품15의 제2곡: Nocturn. #5)
쇼팽의 야상곡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풍만한 걸작의 하나로 알려진
곡이다. 주선율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미묘한 하모니는 쇼팽의 매력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다.
Nocturn: Op.48 #1, (야상곡. 작품48의 제1곡: Nocturn. #13)
쇼팽의 야상곡 중에서 가장 장대한 이 곡을 "최고의 녹턴(야상곡)"이라고 평하는 학자도 있다. 비탄에 아롱진 주선율에 대해서 렌토(적당히
느린 속도)의 당당한 중간부를 두고 다시 돌아온 재현부는 두 배의 속도로 매우 극적이다.
Nocturn: Op.55 #1, (야상곡. 작품48의 제1곡: Nocturn. #15)
Nocturn: Op.72 #2, (야상곡 작품번호 72.: Nocturn. #20)
쇼팽의 야상곡 중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빗방울의 프렐루드>로 불리우는 단독으로도 많이 연주되는 유명한
곡이다. 89소절로, 전주곡 중에서 가장 길다. 거의 전곡을 통해서 Ab의 음이 단조롭게 계속되기 때문에 <빗방울>의 신화가 생겼는데 중간부는 음울한 정서, 전후에는 부드러운 선율이 흐른다. 빗방울이 졸졸
떨어지는 소리가 단조롭기는 하지만..지겹지는 않듯이.....멋진 곡이다..
조르쥬 상드(프랑스의 여류작가로 쇼팽과 9년간의 운명적인 사랑을
함. 상드는 남성적이며 사교적이고 음탕하기까지 하였고, 쇼팽은 그
반대로 여성적이고 비사교적이었는데 그래서 이들의 만남이 더욱 극적이며, 또한 상드는 쇼팽의 예술적 혼을 발휘하는 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마치 李箱과 금홍의 관계처럼??)---조르쥬 상드는 이 곡은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만다고 했다. 마죠르카에서 상드가 외출했다가
비바람 속을 돌아와 보니 이 곡을 치고 있더라는 이야기다. 마침 비는
멎어서 처마 끝에 빗방울이 단조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고..... (믿거나
말거나...)
새로운 피아노 연주 기법을 요구하는 이 곡들은 당시의 유행에 좌지우지되던 음악에 대한 반성이자 왈츠를 단지 '춤을 추기 위한 배경곡'
정도로 인식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감상을 하기 위한 섬세하고 귀족적인 왈츠도 있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또한 쇼팽의 슬라브인 특유의 우수 서린 정서가 서정적인 독특한 스타일의 왈츠를 창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쇼팽의 왈츠들은 이상하고도 신비한 매력이 담겨 있다. 일생 동안 쇼팽은 곡의 왈츠를 작곡했다.
피아노 왈츠들 중에서도 최초로 출판되었던 이 곡은 가장 무도곡다운
화려함과 상쾌함으로 ≪화려한 대왈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간결하면서도 무도회의 기분을 잘 표현했으며 왈츠의 리듬과 선율이 명백하고 원활한 작품이다. 이 곡을 들은 동료 음악가인 슈만은 '만약 이
곡으로 춤을 춘다면 상대방은 적어도 백작 부인 이상이 아니면 안된다'는 표현으로 이 작품의 화려함과 기품을 인정했다고 한다.
1835년에 작곡된 이 곡은 3개의 ≪화려한 왈츠≫로 되어 있다. 다른
왈츠곡에 비해 실용적인 무도곡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곡은 무도회장에서 쇼팽이 즉흥적으로 작곡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곡을 들은 슈만이 '서주 부분의 쾌속함이 비길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계속되는 무도의 부분이 정말 잘 표현되었다'고 극찬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곡을 들으면 화려한 무도회장에서 기품있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남녀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듯 하다.
악보에 따라서는 ≪화려한 왈츠≫라는 곡명으로 표시한 경우도 있지만 들어보면 곧 알 수 있듯이 이 곡에서는 조금도 화려한 맛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슬픈 왈츠≫라고 불려질 성격의 이 곡에 ≪화려한 왈츠≫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은 위에 소개한 34 - 1번 곡과 이 곡이 함께 출판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한다.
이런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 안해도 '화려함이 극도에 달하면 오히려 슬픔과 통하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이 곡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들으면 재미있을 듯 하다. 평생 슬픔과 그 슬픔의 극복을 반복하며
살아온 쇼팽이 내릴 만한 슬픔에 대한 개념이 아닐까?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가 강아지 한 마리를 길렀는데, 상드가 나갔다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꼬리를 치며 그녀를 반겨 주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런 강아지의 모습에 상드는 홀딱 반했고 쇼팽에게 이 모습을 음악으로 표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강아지 왈츠≫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느껴지는 빠르게 맴도는 형식으로, 강아지가 제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느낌을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라면 강아지조차 이렇게 예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운
소품이다.
쇼팽의 음악 세계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인 조르주 상드는
당시 남녀간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다룬 연애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였다. 둘의 사랑은 불행한 결말로 끝났지만 그녀와 함께 지낸 9년 동안이 쇼팽에게는 많은 걸작들을 써낸 기간이었다. '결핵'이라는 고질병을 달고 산 쇼팽을 열심히 간호해 준 상드와 그녀를 위해 작곡을 한 쇼팽의 관계는 예술가들 특유의 불같은 정열과 자유로운 영혼의 충돌로
인해서인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열정과 사랑만으로 행복해
하며 살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사람은 너무나 이기적인가 보다. 이들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 중에서 그래도 둘이 사랑하며 살던 시절을 보여주는 곡이 이 ≪강아지 왈츠≫이다.
OP 64 - 2 NO. 7
1847년에 출판된 이 곡은 쇼팽의 음악 세계만의 특징인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병고에 시달리는 인간의 나약함이 여실히 나타나는 곡이다.
폴란드 고유의 민속춤인 마주르카에 가까운 리듬으로 쓴 왈츠이지만,
마주르카의 흥겨움보다는 슬픔이 가득 담겨 있는 듯하다.
쇼팽의 위대함은 피아노 연주곡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놀 정도로 뛰어났던 그의 음악성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평생 괴롭히고 좌절하게 만든 조국과 결핵이라는 두 존재를 이렇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승화시켜 냈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OP 64 - 3 NO. 8
위의 OP 64 - 1, 64 - 2와 같은 해에 만든 작품이지만, 이 세 작품 중에서는 내용적으로 약간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는 이 곡이 잘
못 만든 곡이라는 것이 아니라, 앞의 왈츠들과 연결적인 왈츠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조그만 변화 외에는 이 곡만의 특징이
없어서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 왈츠 자체에는 명랑하고 부드러움이 들어 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곡 전체는 ≪강아지 왈츠≫와 같이 중간부를 가진 세 도막 형식을
취한다.
쇼팽이 피아노 연주곡으로 쓴 왈츠 14곡들 중에서 이 곡까지 8곡만이
쇼팽의 생전에 발표가 되었고, 나머지 곡들은 그가 죽은 후에야 발표가 되었다. 그 중 몇 곡은 아주 최근에야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발표한 왈츠곡들은 모두 귀족 여성들에게 바쳐졌는데, 어떤 곡은 남편이 있는 귀족 부인에게, 어떤 곡은 쇼팽이 잠시 머물렀던
보헤미아의 귀족 처녀에게 바쳐지기도 했다. 이 곡은 한때 쇼팽의 제자였던 브라니츠카 백작 부인에게 헌정이 되었다.
OP 69 - 1 NO.9, ≪이별의 왈츠≫
쇼팽의 사후에 공개된 그의 유품 가운데는 '나의 슬픔'이라는 글이 겉에 쓰여진 낡은 봉투가 하나 발견되었고, 그 봉투 속에서는 마리아 보진스키라는 여성이 보낸 이별의 편지가 나왔다. 그리고 이 편지에는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1835년 여름 카를스바트라는 곳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부모를 만나기
위해 파리를 떠났던 쇼팽은 돌아오는 길에 드렌스덴에 있는 친지인
보진스키 백작을 방문했다. 이 집에서 그는 어릴 때의 소꼽 동무였던
마리아를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끌린 둘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도 잠깐, 그녀에게 결혼을 신청한 쇼팽은 마리아의 아버지의 결사적인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쇼팽은 그때까지의 자신의 심정을 담아 작곡한 이 왈츠곡 OP 69 -1
을 자신을 추억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마리아에게 보냈다. 실연 당하기 전에 쇼팽이 느꼈던 사랑의 감정이 주로 담겨져 밝고
매력적인 이 곡을 마리아는 ≪이별의 왈츠≫라고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자신의 애절한 심정을 담아 이별의 편지를 보냈고 쇼팽은 이 편지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이별의 왈츠≫와 편지는 20여년 동안 묻혀졌다가 쇼팽이 죽은 후에야 세상에 빛을 보였다.
OP 69 - 2 NO. 10
이 왈츠는 쇼팽이 아직 폴란드에 살고 있던 1829년의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프랑스에서 쓰인 후기의 왈츠들 같은 우아함보다는
오히려 당시의 그가 수집하고 연구했던 마주르카에 가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수가 담긴 서정적인 선율은 틀림없이 이 곡이 쇼팽의 곡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단순한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왈츠 OP 69 -2는 3개의 왈츠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또한 이러한 개성들이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마무리되고 있어서 '파릇 파릇했던 쇼팽의 젊은 시절의
기운이 녹아 있는 듯 솔직한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Piano Sonata No.2, Mov.3, (March Funeral)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
"여러분! 천재가 등장했다. 모자를 벗으라"는 평을 써서 무명의 쇼팽을
가장 먼저 인정한 슈만마저도 <소나타 제2번>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평했다. "이 작품을 소나타라고 이름 붙인 것은 농담이 아니었을런지는 몰라도 돌발적인 기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쇼팽은 방자한 그의 아들 네 명(소나타 형식의 4악장을 비꼼)을 함께 묶어서, 그렇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에다 이 이름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쇼팽의 자유분방함을 그런 형식 논리로 접근한 방법부터가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4악장 중에서 특히 이 3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
불리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비장감과 비통함이 처절히
흘러 넘치지만, 쇼팽 특유의 부드러운 선율도 아울러 깃들어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엄숙함과 비장함은 세상에 남아있는 자들의 비통함이요, 중간부의 부드러운 선율은 망자(亡者)를 위한 자장가처럼 부드럽다.
쇼팽의 <스케르쪼> 4편 중에서 가장 유명한 2번째 곡. 이 곡이 작곡된
1837년은 쇼팽이 사랑하는 백작의 딸 마리아 보진스카에게 정식 구혼을 했다가 마리아의 백부의 완고한 반대로 고배를 마실 때였던 만큼
인생에 대한 회의와 애증이 서려 있다고 한다.
폴로네즈란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헨리 3세가 폴란드의 왕위에 즉위한 후 귀족들이 왕 앞에서 규칙적인 음악에 맞추어 행진하는 행사를
가지면서 비로소 형태를 갖추게 된 음악이다.
동유럽의 약소 국가 출신이라는 점과 고국을 등지고 프랑스에서 음악
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으로 남들보다 더 쇼팽의 고독함과 천재성을 알아본 리스트는 "폴로네즈는 본래 폴란드 귀족 사회의 전통적인 감정만을 나타냈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폴란드의 국민성이 가미되어
발전한 가장 순수한 국민 음악의 전형이다."라며 그 진가를 인정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리스트라는 음악가가 쇼팽과 평생 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나눈 것도 물론이다. 무도회의 배경곡으로서의 폴로네즈는
이미 쇼팽 전에 전성기가 지났지만, 쇼팽은 애국적인 열정으로 폴란드의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비애,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울한 예감들을 이 곡에 훌륭하게 담고 있다.
1838년에 작곡된 ≪폴로네즈 3번 ≫은 드높은 나팔 소리, 북소리를
연상케하는 화려함으로 인해 ≪군대 폴로네즈≫로 알려져 있다. 쇼팽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에서 작곡했다는 이야기에 맞게 이 곡은 매우
호탕하고 용감한 군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아마도 쇼팽은 용감한
군대를 이끌고 자신이 선두에 서서 폴란드를 침공했던 러시아군들을
쫓아내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담아 이 곡을 썼으리라. 쇼팽의 애국심에 대한 일화 중에서 그가 어느 날 친구인 티투스와 함께 조국으로 돌아 가 싸울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상의를 했고, 이에 티투스가 괴로워하는 쇼팽에게 "조국을 위해 너는 무력이 아닌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싸워라." 라고 권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곡에서는 쇼팽이 이
친구의 권유를 얼마나 가슴 깊이 새기 고 있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곡은 모데라토, 3박자의 화려한 곡으로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때로는 조바꿈된 트리오가 있다. 세 도막 형식으로 제1, 제 2테마가
곡의 성격을 규정짓고 있다.
19세기의 명 피아니스트이자 쇼팽과 같은 폴란드 출신이었던 루빈슈타인은 이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평을 했다.
"이 곡은 잊혀져 가는 폴란드의 황금 시대를 회상하게 만듦과 동시에
폴란드의 위대함과 몰락의 운명은 이 곡 ≪군대 폴로네즈≫가 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폴로네즈는 '폴란드풍'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이 모두 폴로네즈 작품을 남겼지만, 쇼팽은 이 곡을 비롯한
16곡의 폴로네즈를 발표함으로써 유행의 하나였던 폴로네즈를 음악
형식으로 굳혀 버렸다. 바흐나 모차르트가 폴로네즈를 쓴 것은 단순히 그 행진 리듬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지만, 쇼팽은 자신의 조국인 폴란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폴로네즈를 썼을 뿐 아니라 이를 폴란드
국민 모두의 국민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쇼팽이 쓴 6번째 폴로네즈인 이 곡은 "쇼팽의 폴로네즈를 들으면 운명이 가져다 주는 온갖 부정한 것에 용감하고 대담하게 대항하는 확고한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 같다."라던 리스트의 칭찬이 꼭 들어맞는 곡이다.
1842년 작곡된 이 곡은 폴란드의 과거 화려했던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데, 그 구상의 웅대함과 완벽한 표현력이 영웅에 비길 만 하기 때문에 ≪영웅 폴로네즈≫라는 별명이 붙었다. 리듬이 너 무 강렬해서 마치 불타는 듯하다는 평도 있다. 이 곡을 듣고서도 쇼팽이 여성적인 음악만을 하는 음악가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세 도막 형식의 이 곡은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던 폴란드를 상기시키듯이 규모가 웅대할 뿐 아니라 그만큼 완벽하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문학이나 미술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감상적인 작품들만을 썼던 슈만
등의 동시대의 다른 낭만 주의 음악가들과는 달리 쇼팽은 조국에 대한, 여인에 대한, 피아노에 대한 사랑으로 작품들을 썼고 이 폴로네즈는 이러한 그의 섬세한 감수성이 더욱 빛나는 곡이다.
폴로네즈 제 7번, ≪환상≫ (POLONAISE "Fantaisie" OP. 61)
쇼팽이 조국의 음악을 사용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분야는 폴로네즈뿐이 아니라 '마주르카'라는 약간 느린 4분의 3박자 형식의 춤곡들도 있다. 쇼팽이 파리에서 활동하던 당시 마주르카는 이미 전 유럽에 전해져 낯설지는 않았다. 쇼팽은 10대 때 폴란드 시골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민요를 채집했던 실력을 바탕으로 새롭고도 폴란드 민요의 정신이 뚜렷이 비치는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들을 썼고, 이로써 폴란드의
전통 음악, 마주르카와 폴로네즈는 세계 음악계의 한 부분을 차지 하는 장르가 되었다.
하지만 1845 -1846년 사이에 작곡된 이 곡은 폴로네즈이면서도 폴로네즈의 형식에서 떠난 것이어서 ≪환상 폴로네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곡을 들어보면 작곡가의 비통한 고뇌가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는 쇼팽이 조르주 상드와의 9년에 걸친 생활을 청산하고 실의에 차 있던 시기에 만든 곡이어서라는 해석이 있다.
4개의 주요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형식과 양식이 대단히 자유롭다. 한편 이 작품의 정서적인 내용은 쇼팽 자신의 우수와 앞으로
올 폴란드 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국민적인 투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사에 있어서 클라라와 슈만의 사랑 못지 않게 중요한 대목이었던
쇼팽과 상드의 사랑은 서로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만 서로의
영혼을 파먹는 마약같은 관계이기도 했다. 결핵 치료를 위해 상드와
그녀의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지방으로 이사까지 갔던 쇼팽은 오히려
건강을 더욱 해치고 돌아왔고, 이때부터 서로의 관계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었다. 전형적인 순정파의 모습으로 상드를 소유하려 했던
쇼팽의 욕심과, 한 남자에게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던 상드의 자유로운 영혼은 같이 할 수가 없었나 보다. 또한 병마 때문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쇼팽의 환상의 세계도 감돌며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래서인지 이 곡은 그의 생활이 반영되어 있는, 다시 말해서 그의 정신적인 불행이 잠재되어 있는 '병적인 내용'의 곡이라는 평을 듣는다.
상드와의 이별은 쇼팽에게 커다란 슬픔을 남겼고 그 후 그의 음악들은 더욱 더 우울해지고 깊어졌다.
<바르카롤>은 쇼팽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의 작품. 이듬해부터 그의
폐결핵은 더욱 악화되어 마침내 작곡을 단념하기에 이르렀다. 상드와의 관계도 상드의 딸 소란쥬의 결혼문제로 결렬 직전에 있었다. 쇼팽의 작품 내용이 병적인 정서에 지배되어 섬새한 음영(陰影)이 짙어지고, 그 반면에 기술적으로는 그 심경을 담기 위해서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으리라. 쇼팽이 단 한 편밖에 안 쓴 <바르카롤>에도 그것이 투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