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3일 목요일 저녁예배
유홍균 담임 목사님 -
본문 : 이사야 43장 1-7절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사]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43:5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사]43: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람들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내가 어떠한 삶속의 위기에 봉착할 때 보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움 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위기에 봉착할 때 문제가 생기고, 환경과 조건이 바뀌어갈 때 두려움이라는 것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가슴을 졸입니다. 고향을 떠나 전쟁터에 떠나거나 중대한 수술을 앞둘 때 두려움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또 산비탈 꼬불꼬불 낭떠러지 길을 걸어갈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이 되고 이 어렵고 힘든길을 갈 때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것입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은 꽤 강한 것 같고 뭐든지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땅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야생동물이나, 어두운 골목길을 지날 때는 귀신이 나올까봐 무서워서 못갑니다. 아마 지금도 시골 깜깜한 밤에 화장실에도 못가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합니다. 언제 칼을 들고 나타날지 모릅니다.
밀림에 들어가면 맹수에게 꼼짝 못하고 물 속에서는 상어에게도 꼼짝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속성을 보면 강한 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약한 자 앞에서는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전쟁이 나면 평안한 마음으로 주의 전에 나와 기도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서도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러한 위기나 위협속에서도 사람들이 평안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때 가장 평안할까.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때가 아닐까요. 그런데 누군가가 옆에만 있어도 평안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큼으로도 두려움이 떠나갑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고 준비된 사람이면 좋겠지만, 내가 지켜주어야 하는 어린아이가 있다고 해도 평안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공존에 살아가고 서로 기대며 살아가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혼자살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서로 공존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떤 민족에 가보면, 아들이 자라 성인식을 치를 때가 되면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밀림으로 들어가 칼 한자루를 주고 나온다고 합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나오느냐, 아니면 맹수의 밥이 되느냐. 주위에서는 맹수들의 울음소리, 바스락소리들을 들으며 두려움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내고 어렴풋이 여명이 밝아올 때 보면 깜짝 놀랄일이 생깁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는 완전 무장을 하고 아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나를 지키고 계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안심을 하게 됩니다. 그 후에 그 아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움을 잊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비록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도 항상 어디서든지 나를 지키고 있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43장에 보면 바벨론 포로시기에 두려움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희망의 말씀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조국의 미래와 자신의 장래에 대해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빼앗기고, 포로생활로 고역을 하고 있고, 늘 불안과 초조가운데 살아가고 언제 채찍이 내려와 나를 칠지 모르는 상황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너희는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강조하며 말씀하십니다. 지금 어려분들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도처에는 두려움을 주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으로, 북한의 움직임에, 자식들과 손주들이 전쟁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두려워합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거부당할까 하는 두려움, 직장에서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말씀 안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야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제일 첫 번째,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5-41절에 보면
[막]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막]4: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막]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막]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막]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갈 때 광풍이 오게 됩니다.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완전하신 예수님께서 같이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덮침에 두려움을 느끼고 죽음의 위험을 느낍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딱 두마디를 하십니다. 그러자 그 광풍이 잠잠하고 고요하게 자라앉아버립니다. 그러고나서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떨고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예수님,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없을까.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더 나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온전히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알고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제자들의 믿음보다 나을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죽으신 뒤 3일만에 부활하신 뒤에도 온전히 예수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온전히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오순절 성령의 임재가 임하고 나서였습니다. 그 때 진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죽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책임지신 것 같이 제자들은 죽기까지 하나님을 믿고, 죽기까지 예수를 전했습니다. 결국 순교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창대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작은 엄청나게 큰 자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이 믿음을 지켜서 큰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알고 지은 죄가 더 큰 것처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 죄로 인하여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었지만 믿음이 없고 두려워하며,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불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에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여러분들이 듣기에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생각의 영이 우리를 유혹하고, 환경과 조건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분별하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늘 왜? 라는 불신앙의 생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마음속에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가지 못하기에 불신앙이 항상 우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불평과 원망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이 위기의 순간마다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씀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도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도 우리 마음속에 정말 그 믿음이 온전하냐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불신앙의 물음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은 바로 불신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온전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 안에 온전한 믿음이 있으면, 내 안에 두려움이 생길 수 있을까. 절대로 두려움이라는 것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나는 못하지만 내 안에 계신 그 분께서 하실 것을 믿는 온전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캄보디아 갔다와서 간증을 드렸지만 캄보디아에서 하나님께서 그만큼 일하실 줄 몰랐지만 그 분께서 말씀하시는대로 따라다닐 때 그 분께서 엄청난 일을 하시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필요한 모든 자원도 대주시고 물질로 채워주시고 내가 죽고 오직 하나님만 붙들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모두 일하여주시는 것입니다.
남들이 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말해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주여주여 입술로만 하는 믿음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서 우리의 삶의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구속하고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십니다.
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모세의 때와, 가나안 땅 앞에서 요단강에서 물길을 여셨으며, 다니엘의 세친구들을 불 속에서 사르지 못하도록 지켜주신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돌부처 앞에서 손바닥이나 빌고, 나무 앞에서 형형색의 종이를 걸어놓고 춤을 추는 것과 다릅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구체적인 믿음이고 말씀에 의거한 행함이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시련을 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역경을 헤쳐나갈 때 힘들고 가장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함께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가나안땅에 가라 내가 준비해놓았다 라는 말씀을 듣고 나아갔으면 그냥 들어갔을 땅입니다. 그러나 불신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10명의 사람들은 그들은 강하고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와 같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증거로 엄청난 포도를 들고 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은 그 땅에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의 손에 붙였으니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오히려 이 두사람을 돌로 치려합니다. 이 믿음을 지키는 신앙. 이것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신앙생활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육적인 자아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환경 조건에 규합하여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결코 하나님과 관계가 없어집니다. 과감히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안에서 과거의 내 삶을 놓지 못하고 과거의 끈에 묶여서 살아가는 내 자아의 모습입니다. 그 40일의 정탐, 하루를 일년삼아 40년을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도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이러한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내 삶 가운데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하늘나라 올라갈 수도 있는데 내가 잘못살아서 지금 이 땅에서 40년을 버티며 살아야 할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 보면 오래 사는 것이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때가 되어도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때가되서 하나님 오라하시면 가면되는데, 조금더 악착같이 살아가려하다보면 죄의 순간들이 찾아올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세를 갈아치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두려움에는 불신이 싹트고 불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심어준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사람 아브라함은 본토친적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그는 아무 조건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나갑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지고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네 본토친적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뭐라고 말할까요. 하나님 어디로 보내실건데요? 거기는 살기 좋아요? 많은 것을 따지기 시작합니다. 자기 입맛에 맞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오직 믿음으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그들.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서 성공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 믿음이 미지의 땅으로 가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사]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시편 23편에 다윗의 고백도 나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한 고백입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입니다. 다윗은 양을 위한 사랑에 대해 모두 알고있는 자입니다. 곰과 사자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자입니다. 양들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을 때 목자의 고민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멍들거나 다친 양들을 돌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자였습니다. 양을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을 알았기에,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뭐든지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어렵고 힘든 고바위, 가파른 언덕을 걸어갈 때도 있고, 절벽이 우리를 막고, 비통함과 불만족이라는 바위가 우리의 길을 막고 우리를 흔들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절벽아래로 고꾸라질때도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 길가에 털썩 주저앉게 되고, 모든 것을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생각이 우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이렇게 믿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때로는 우리의 머리를 지나갑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멀어졌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상처받고 어려울 때에도 우리가 불신의 마음으로 좌절과 절망에 있을 때에도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며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상처난 우리의 몸을 주님께 맡기기만 하면 그 분께서 우리를 싸매고 고치시며, 마음까지도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뜻하는 바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두 손은 우리를 돌보시느라 바쁘십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를 칠까 항상 바라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우리는 첫 번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첫 번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마음은 과연 정말 주님을 첫 번째로 대하고 있을까요. 주님이 첫 번째라면 예배에 늦을 수도 없고 예배에 빠질 수도 없으며 새벽제단을 날마다 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 여행에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즐겨부르는 찬송가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못하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세상을 살아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으로 어떠한 고난도, 환란도 이겨내시기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두려움이 있다면 빨리 소멸시키시기 바랍니다. 항상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놀랄 것이 없습니다. 항상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존 밀턴은 실명된 후에 더 큰 사역을 하게 됩니다. 실낙원이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우리를 더 높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존 밀턴이 말합니다. 정말 절망적인 삶은 앞을 못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한다고 주저않는 삶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혼자 버려졌다고 생각이 듭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고 계십니다. 항상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 나은 것을 줄까. 어떻게하면 더 좋은 것을 줄까 항상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장 10-13절에 보면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사]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사]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여러분들의 삶속에 풀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더 큰 것을 주기 위해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고 행함있는 믿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증거자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