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산(561.2m)
전남 강진군 병영면, 장흥군 유치면
수인산은 강진군 병영면과 장흥군 유치면에 걸쳐 있다. 고려말 남해안으로 침략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수인산성
을 비롯해, 조선시대 병마절도사가 거주하던 병영터가 있는 국방상의 요충지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새다.
높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고 오묘한 산세를 지닌다. 자연적인 산세를 이용하여 쌓아 올린 수인산성의 정상
부는 드넓은 고원지대를 형성하며 조릿대와 어울리는 억새가 황금벌판을 펼친다.
산행은 병영면 버스터미널에서 면사무소를 지나 전라병영사지기념비가 세워진 곳에서 시작된다. 포장도로를 따라가
면 홈골저수지가 정면에서 좌측으로 돌며 수인사가 나타난다.
수인사 좌측 나 있는 등산로를 오르면 수십 그루의 감나무와 몇 개의 묘지가 보인다. 길은 금새 가팔라진다. 헬기장을
지나면 나뭇가지가 긴 터널을 이루며 길을 만든다. 산죽도 덩달아 등산로를 꾸민다. 10여분을 더 가면 암봉이 병립하는
서문이다. 수인산성 내부에는 성을 쌓았던 돌들이 흩어져 있고, 온갖 유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온돌에는 아궁이를 형성
하고 있으며, 커다란 맷돌이 흙 속에 파묻혀 있다.
북문을 지나 억새밭을 헤치고 오르면 정상 노적봉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무등산, 지리산, 두륜산, 천관산,
흑석산, 월출산이 둘러싼다. 가까이는 장흥벌과 병영벌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산행길잡이
등산로는 수인사를 기점으로 해서 정상을 둘러보고 홈골로 하산하는 길과 홈골이나 수인사로 올라서 장흥군 유치면
수덕리나 성불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홈골저수지 원점회귀형 코스가 인기 있다. 홈골저수지~홈골~정상(노적봉)~병풍바위~수인사~홈골저수지. 식수는
수인사에서 준비해야 한다. 수인산 산행은 5시간이면 충분하다. 고원분지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차분히 산행을 즐기는
게 좋다.
*교통
수인산에 가려면 광주, 장흥, 강진을 기점으로 한다.
광주에서 병영은 광주광천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05:00~21:30까지 30분 간격 운행. 병영 경유 강진, 장흥행
버스 이용.
강진방면에서는 05:45~22:45까지 20번 운행하는 군내버스 이용.
장흥공용정류장(061-863-9036)에서 05:30~22:00까지 30~40분 간격으로 운행. 병영 경유 광주행 직행버스 이용.
장흥에서 대리행은 06:10~19:1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유치행 군내버스 이용, 대리 하차. 병영버스정류장 061
-434-1770.
*숙박, 먹거리
강진이나 장흥 일원의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병영면에는 나도의 푸짐한 반찬이 곁들여 나오는 한정식으로 유명한 수인관(061-432-1027)에서 민박도 제공한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1년 3월호
병영성엔 600년 전이나 다름없이 해와 달이 뜬다
수인산 수인산성 한가위를 맞아 고향에 들어서면 고향의 산이 먼저 반긴다. 산을 보고서야 비로소 고향 땅에 돌아
온 안도감을 느낀다. 병풍바위 위로 보르달이라도 뜨면 이내 들뜬 마음은 수인산정으로 달려간다.
수인산은 천혜의 요새다.
단순히 솟아오른 산이 아니다. 그리 높지 않지만 그 안에는 설악산과 지리산이 갖춘 화려함과 깊이가 있다.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정은 수인산성이 되어 웅장한 산세를 품고 있다. 산과 산 사이의 협곡만 차단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이곳은 왜란과 호란시 피난처였고, 의병항쟁과 농학농민군들의 본거지였다.
그리고 수인산은 병영성을 거느린다. 병영면 한 복판에는 하멜이 7년간 머물렀던 전라병영성의 옛터가 있다. 수많은
외침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역사를 지켜본 산이 바로 수인산이다.
수인산의 경게를 이루는 강진, 장흥을 찾아가려면 흔히 문화답사 1번지라 일컫는 남도의 관문인 월출산을 지나야 한
다. 영암읍에 들어설 무렵이면 월출산이 실루엣을 이루며 그 품안에 품었다가 길을 비껴준다.
남도에 이르는 곳은 산뿐만 아니라 영산강, 탐진강, 섬진강과 같은 많은 강들이 바다와 접해 있다. 그래서 땅이 비옥
하고 산물이 풍부한 지리적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산악, 농경, 해양의 지리적 특성은 곧 호남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또한 왜란, 호란기에 타지역과 달리 의병항쟁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곳을 찾을 대마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교차한다. 남도의 포근함, 향토성, 그리고 강렬함 같은 것이다. 그
러나 그 강렬함에 녹아든 것은 항쟁과 피흘림의 역사였다. 들어설 때마다 뇌리를 강하게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느낌은
바로 그 안에 '젖어듬'이었다.
수인산에 이르는 길은 '명산유적답사지'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산이 먼저인 것은 단순히 유물에 국한된 바
라봄이 아닌, 그것을 품고 있는 산에 대한 앎에 가치를 우선하고자 해서다.
산국에서 태어난 이 땅의 자손들에게 산은 삶 자체다. 한가위를 맞아 고향을 밟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향을 품고 있는 산이다. 산을 보고서야 고향 땅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산은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닿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수인산에 오르면 그 찾아들고 싶은 고향의 안김을 체험할 수 있다.
수인산의 높이는 561m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은 점봉산처럼 원시림을 이루는 홈골의 비경을 만날 수 있고, 북한산
처럼 암릉이 도열하여 천혜의 요새를 만든 병풍바위와 수목원처럼 잘 닦인 등산로에 동백, 은행, 산죽 등과 같은 갖가지
다양한 나무들이 도열한 수덕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인가. 산 언저리에 학이 노니
는 홈골저수지, 수인산성에 둘러쳐진 정상의 거대한 분지, 그 안의 수인사 옛 터와 그곳에서 사용했던 우물, 방죽, 그리
고 인위적으로 만든 듯한 수로와 봉화대, 주봉인 노적봉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치열했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산임을 알아야 한다. 전라병영성지가 놓인 병영면의 역사와 하멜의 표류기를, 왜
구가 침범해 올 때마다 근처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됐던 병영성을, 그리고 동학혁명 때는 관군에 대항해 패했던 동학
농민군의 마지막 항쟁지인 수인산 자락의 석대들판을, 또한 전란으로 비롯된 우익과 좌익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때마다
불타던 수인산성 내의 수인사의 흔적들을 알아야 한다. 수인산성은 이 많은 비경과 이야기들을 보듬은 채 오랜 세월 우
리와 함께 했다. 비록 나지막한 산이지만 그 속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노라면 수인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노적봉과 수인산성
수인산에는 산 위에 산이 있다. 그 산에 가야 수인산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기에 수인산 산행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더더욱 그 높이를 헤아려서도 안 된다. 그렇게 알고 수인산에 갔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들이 오른 것은 정상 노적봉이 아닌 병풍바위였을 뿐이다. 그리고 단지 작은 산이었을 뿐이다.
수인산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적봉에 올라 주변의 형세를 둘러보아야 산정이 형성하고 있는 산세의 그 미묘한 형
세를 파악할 수 있다. 전체를 먼저 봐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병사들을 지휘하기 위해서 장군이 높은 망루에 오른 듯, 수인산의 정상 노적봉은 병사들을 지휘하는 망루처럼, 산 위
에 도 하나의 산이 되어 서 있다. 마치 거대한 왕관의 형상이다. 하지만 노적봉이란 이름은 벼 낱가리를 쌓아 놓은 것처
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어느 명산 못지 않다. 무등산, 지리산, 천관산, 흑석산, 월출산에 둘러싸는 곳이 이곳이
다. 가까이는 장흥벌과 병영벌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장흥벌을 흐르는 탐진강이 길게 꼬리
를 늘어뜨리며 다도해로 빠지고 있다. 또한 병영면은 너른 평야를 감싸 안은 듯 산세가 이루어져 비옥한 곡창지대를 형
성하고 있다. 이곳에 올라 주변의 형세를 바라보았을 때야 비로소 왜 전라병영성이 이곳에 주둔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
다.
산정의 수인산성은 수직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려말부터 조선말까지는 병영성의 전략적 요충지로 왜구가 침입할
때면 장흥, 강진, 영암, 보성 주민들이 피난하여 왜구를 막을 목적으로 축성했다는 산성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
하면 둘레가 3,756척, 높이 9척, 많은 건물과 동,서,남,북문과 우물 6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어 동으로 장흥 억불산, 서로 영암 갈두봉, 나으로 마량 남원포와 통하였다.
현재도 동서남북으로 절벽이 틈을 내어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성문은 강진과 장흥 땅으로 길
을 낸다. 동문은 또 다른 내동문과 외동문을 중턱에 만들어 장흥군 유치면 수덕리로 통하고, 서문은 병영면의 수인사를
거쳐 홈골저수지로 이어진다. 남문 또한 능선을 타고 홈골저수지에 이른다. 북문은 등산로 외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홈골을 지나 홈골저수지에 다다른다.
수인사 코스를 따라 처음 서문에 들어섰을 때 산 아래에서 본 느낌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보물선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 순산 보물을 찾아 헤맨다. 서문을 지나자마자 성문의 돌을 쪼아서 쌓아 만들었다는 성문암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
다. 주변에는 절에서 사용했던 맷돌이 빽빽한 잡풀 속에 숨겨져 있다. 물이 고여 썩어 있는 자그마한 우물도 보인다. 정
글을 헤치듯 길을 터며 남문 쪽으로 가다보면 구들을 얹힌 흔적이 남아 있다. 아궁이가 그대로인 걸 보니 오레되지 않은
흔적이다. 수인사의 진월스님(80세) 말씀에 따르면 5~6년 전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렀던 터라고 한다. 곧이어
큼직한 방죽도 하나 나온다. 그리고 길은 사방으로 이내 흩어져 남문, 동문, 북문으로 이어진다. 남문을 지나 북문쪽으
로 가파른 계곡을 내려오면 노적봉으로 가는 길목이다. 도중에 널찍한 억새밭을 만나게 된다. 바로 청년암터가 있었던
자리다. 근방에는 인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수로가 계곡이나 동굴처럼 놓여 우거진 수풀에 가려 있다.
산정의 평원을 걸으며 그 흔적들을 좇다보면 황페한 집터와 절터, 우물들이 그대로 부풀어오르고, 그 당시 살던 사람
들과 마주칠 것 같다.
수인사~병풍바위~노적봉
수인사를 오른쪽에 두고 냇가를 건너 가파른 시멘트 길을 오르면 곧 산에 들어선다. 병풍바위 1.34km 표지판을 지나
정겨운 시골의 뒷산을 연상시키듯 감나무가 오른쪽으로 들어차 있다. 간간이 보이는 붉은 홍시가 가을의 눈맛을 즐겁게
한다. 감나무밭을 지나면 좁은 길이 이내 사라진다.
"여기 주인은 등산로 아니라고 그래요." 수인사의 주지인 일정스님은 못내 아쉬운 듯 길 위에 들어선 농작물을 보고
말한다. 길이 사라진 게 아니라 길위에 조차 온갖 밭작물을 심어놓은 것이다.
5분여 가다 보면 새로 뻥! 뚫린 길이 나타난다. 좁은 산길이 어느새 머리에 바리깡이 지나간 듯 파헤쳐져 있다.
"요 몇 달 전에 산중턱에 묘 쓴다고 경운기가 다니면서 새로 낸 길이에요'" 5월에만 해도 멀쩡했던 길이라고 김하나씨
(30세)가 말해준다. 길은 기존 등산로와 함께 이리저리 얽혀 있다. 아무길이나 들어서도 매 한가지로 만난다. 곧 대리석
으로 치장한 묘지가 나타난다. 허연 이빨을 드러낸 듯 산의 조망을 망치고 있다.
가파른 길을 올라치면 널찍한 바위가 나타난다. 일정스님에 의하면 옛날 장흥으로 소금장수가 쉬어 갔던 곳이라 하여
'소금바위'라 불린다고 한다. 잠시 후 헬기장이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새로 세워진 이정표에는 수인산성 0.5km, 수
인사 0.82km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 서면 수인산 병풍바위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 되어 올려다 보인다.
"병풍바위의 모습이 꼭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아요." 일정스님의 말에 기자는 갸우뚱했지만 어찌보면 새가 부리를 들고
쪼는 듯한 형상이기도 하다.
취재진이 지나왔던 수인사 뒤편으로 홈골저수지가 푸른 산을 머금고 있다. 성에 입성하는 부대처럼 취재진은 수풀로
우겨진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선다. 산죽이 어느새 등산로 양측을 가득 메우며 도열한다. 성을 나와 취재진을 마중 나온
병사들 마냥.
길은 이내 계단으로 바뀐다. 깔끔하게 정돈된 듯한 등산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여르의 열기만큼이나 무더운 날
씨로 줄기차게 내리던 땀이 모처럼 잎사귀를 타고 흐르는 바람에 멈칫한다. 어느새 일정스님은 한참 뒤쳐져 있다.
병풍바위 가운데에 자리잡은 서문암을 약 30여m 남겨놓고 수풀에 길이 가로막힌다. 발길과 손짓을 해가며 길을 터
올라서자 곧 정상과 다름없는 서문이다. 이곳에 올라 왼쪽에 자리잡은 병풍바위에 올라서면 시야는 병영면의 너른 황금
벌판의 광활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금새 넓어지던 시야는 병영면을 둘러싼 산세에 갇히고 만다. 특히 정면 오른쪽
으로는 월출산의 연이은 첨봉들이 해맑듯 태양을 가득 머금고 빛을 낸다.
홈골저수지~홈골암자터~북문
초가을 강진의 산은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듯 했다. 지난 3월 봄날에 보았던 수인산의 풍경과는 사뭇 달라 왠지 낯
설게 느껴졌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9월의 홈골은 정글 그 자체였다. 등산로는 나무들의 연한 발목이 무수히 취재진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수풀 속에 갇힌 기자는 햇볕만 뜨겁던 3월이 봄날이 떠올랐다.
3월만 되도 이 산은, 형상은 겨울의 모습을 띄지만 여름의 날씨를 보였다. 아직 거친 가지를 뻗어내지 않았지만 산정
을 뒤덮은 온기는 한반도 제일 먼저 움튼 싹을 내어 푸릇한 가지들이 질주했다. 이렇듯 제일 먼저 무더위가 시작된 곳임
에도 불구하고 9월이 되어도 여름 더위는 꺾이지 않았다. 낮은 산은 온통 밀림을 이루어 인적조차 끊어 버린 것이다.
홈골저수지 제방 위를 걸으면 저수지의 수면을 스치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제방을 가로질러 왼쪽으로 들어서
면 저수지가 끝날 때쯤 감나무밭이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찜통갗은 무더위임에도 가을을 알리는 듯 산 언저리 감이 붉
다. 곧이어 과수원에서는 큼직한 배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홈골에 들어서면 배 밭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는 한 바위재 0.77km 표지판이 있다. 곧장 앞으로 5분여 가면 도둑
골(0.6km)과 쌀남바위, 홈골 절터(0.55km)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홈골 절터 방향으로 들어서면 감나무밭과
묘지를 지나며 본격적인 홈골산행이 시작된다. 곧이어 칡덩굴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너덜지대에 들어선다. 길이 수풀에
덮여 새롭게 개척하듯 산행을 해야 한다. 이내 옷은 가시덤불에 올이 풀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풀씨들이 옷에 달라붙는
다. 무수히 손짓발짓하며 떨궈내도 소용없다. 달리 위안이라면 생전 보지 못한 야생화들이 지천에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던 것이다.
한 바탕 몸부림을 치고 나니 대나무가 숲을 이뤄 하늘조차 가려 한밤이나 다름없다. 이곳에는 홈골 절터가 있다고 한
다. 곧이어 좌우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칡넝쿨과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잡목 속에 가려져 있다.
홈골의 깊이에 가려 하늘만이 보이는 급사면을 올라 북문에 당도하면 평원 위로 억새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노적봉으
로 곧장 올라서는 길목과 억새밭에서 만난다.
평소 때면 1시간 남짓 걸리지 않을 등산로가 2시간 반이나 소요됐다. 이파리가 떨어지고 들풀들이 사라지는 겨울이나
봄 무렵이 돼야 홈골의 제 모습을 보며 산행할 수 있을 듯싶다.
유치~수덕목장~외성문~내성문~동문
장흥군 유치면 대리에 이르렀을 때 탐진댐 이설도로 농로개설공사가 한창이다. 수몰되는 농로를 수몰외 지역으로 이
전하는 것이다. 대리마을은 이미 주민들의 이전으로 폐가가 된 곳이 곳곳에 발견된다. 마을을 지나 수인산 골짜기로 들
어서자 수만 그루의 은행나무가 햇빛을 받아 반쯤 노래진 이파리를 나풀거리며 한 가운데 길을 낸다.
비포장도로른 표고버섯 하우스를 지나 수덕마을로 이어졌다. 3~4채의 집들이 남아 있다. 한 때는 커다란 마을을 조
성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밭에는 뽕나무와 갖가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전형적인 시골풍경이다. 사람의 소리는 들
리지 않아 빈집처럼 보인다.
수덕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수인산성 외성을 지나 50여m쯤 가면 경운기 길이 우회한다. 이곳에서 휘어지지
않고 곧장 계곡으로 들어서야 한다. 등산로가 계곡에 가지런히 나 있다. 좁은 길은 너덜바위를 형성한다. 기와장 같은
바위가 널려 있다. 성벽을 밟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후에 수인산성 내성이 오른쪽의 계곡을 가로막고 산줄기를 따라 쌓
여 있다. 장흥에서 오르는 이쪽의 경사가 허술한 지형이라 여겼던지 두 겹으로 성을 쌓은 듯하다.
계곡을 건너서 비탈길을 올라서자 동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예전에는 이곳 산 전체가 동백나무로 숲을 이루었다고 한
다. 하지만 땔감으로 잘라지고 뿌리채 뽑혀 이제는 구간 구간만 식생되고 있다.
손질이 잘 된 등산로는 계곡을 왼쪽에 두고 오른다. 산죽이 때때로 반기는 듯하면 이내 동백나무가 펼쳐진다. 정상 못
미처 대나무 숲이 사방에 펼쳐지며 한껏 기분을 고조시킨다. 흡사 동학농민군들이 죽창을 들고 에워싼 듯한 섬뜩한 느
낌이다. 대나무숲을 지나자 수인산성 동문을 지나 산정의 평원에 도달한다. 곧장 길은 홈골(북문) 방향으로 이어져 있
다. 좁은 소로 왼쪽으로는 뜻밖에 거대한 수로가 계곡처럼 버티고 있다. 수인산성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내려가는 길
이다. 하지만 사람도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6.25사변 때는 이곳을 땅굴로 여겨 공비들을 소탕할 목적으로 아군이 전소
시켰다고 수인사의 진월스님은 전한다. 수로가 끝날 때쯤 억새밭이 나오며 오른쪽에 노적봉이 나타난다.
*산행길잡이
수인산의 대표적인 등산코스는 강진 병영면의 수인사, 홈골에서 시작하는 곳과 장흥 유치면 대리의 수덕목장에서 올
라가는 길이다.
수인사와 홈골 방면은 병영면 버스터미널에서 10여분 걸어 전라병사영지 기념비가 세워진 곳에서 시작된다. 이곳에
서 수인산을 보면 홈골저수지 제방 뒤편으로 병풍바위가 보인다. 수인사는 홈골저수지 우측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가면
배나무밭을 지나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다. 홈골 방면 코스는 홈골 저수지 제방을 가로질러 간 다음 저수지 왼쪽 골짜
기를 타고 올라서면 된다.
수덕목장 코스는 장흥군 유치면 대리에서 시작한다. 장흥읍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7km쯤 가면 유치면 대리마을 입구
를 지난다. 이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대리마을을 지나 수덕마을에 이른다.
각각의 코스들은 대체적으로 1시간이면 정상 아래 분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각 코스에 따라 정상 노적봉까지는 20여분
남짓이 소요된다. 코스에 따라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계절적으로 다소 산행시간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여름의 홈
골은 인적이 거의 끊겨 잡목과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었던 터라 두세 배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대체적으로 모
든 코스는 전체 산행시간이 3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5시간 정도면 산정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