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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자료 보관실-----♥ 스크랩 중국 곤유산 철차산 전편
청산 추천 0 조회 61 09.11.03 00: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행지 : 중국 곤유산.철차산

 

산행일 : 2007년 1월 26 ~ 29일 (금~월요일)

 

누구랑 : 산찾사.초록잎새.시간여행.하늘채.이언수님. 박범승&옆지기

 

(이동 경로)

 

1일 : 대전(12:40)~인천항(15:40)~화동훼리 승선 출국(18:00)

 

2일 : 산동성 석도항(09:00)~출국수속완료(10:40)~곤유산 구룡지경구(12:30)

       ~ 곤유산 창산봉등정(3시간)~위해시 소피아 호텔(18:35)~발맛사지~꼬치집 뒷풀이

 

3일 : 소피아 호텔(08:50)~철차산 등정(10:55~13:20)~적산 법화원 관광후 석도항 입국수속

 

4일 : 인천항 09:30~대전 13:30

 

    (중국 지도)

 

 

 - 첫날. 1월26일-


작년 죽을 고생을 하며 다녀온 황산의 여파로

옆지기 초록잎새는 중국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내나라 내땅 그 아름다운 산하를 아직도 다 밟지 못했는데 궂이 갖은 고생 다하며

중국 뭐 볼게 있냐란 옆지기를 사람과 상품,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는 세계화의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 하덜 말고 모든 비용은 나의 비상금으로 충당할테니 따라만 오라 겨우 설득을 한후

함께할 산우를 물색하니 총 7명이 나서줌에  중국을 향한 나의 두번째 해외 트레킹을 준비한다.

 

중국은 넓고 넓은 땅으로

이쪽과 저쪽 끝까지 가려면 비행기로 3시간 이상

기차로는 밤낮 일주일 넘게 달려도 못가는 우리 남한 면적 100 배의 광대한 영토다. 

지도를 보니 산동반도에서 한반도를 향해 톡 틔어 나와 한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석도항이 있다.

그곳이 이번 우리가 가려는 3박4일 여정의 여행지다.

 

대전팀의 여권을 팩스로 보낸후

비상금이 있을리 없는 난 무조건 아내에게 여행경비를 보내라 억지를 부려

Amazing tou의 약자로 이름을 지은 A M 트레킹 이 희선님 앞으로 송금후 미리 회사에 연가를 내곤

떠날날을 기다리는데 일기예보는 하필 그날 폭설주의보라서 인천항 갈일이 걱정스럽다.

 

26일 아침

하늘을 보니 아직 눈이 내릴 기미는 보이질 않으나 잔뜩 흐렸다.

함께할 산우들과 이상기후로 늦을것을 우려 점심도 거른채 일찍 인천항으로 향했다.

아파트를 나서며 내리던 눈발이 고속도로를 접어들자 점점 더 거세진다.

천안 휴게소에서 쇠고기 국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신갈 인터체인지를 지나

인천으로 향하자 다행히 눈은 소강상태를 보이나 지금껏 잘 달려준 이언수님의 카니발 승용차 하부에서

이음의 소음이 감지되어 살펴보나 외관상 별 이상은 없어 보여 내 경험상 파워 스티어링의 고장 같아

그대로 인천항 주차장으로 향했다.

 

인천항 제1 여객선 터미널에서

중국 곤유산과 철차산 트레킹을 안내할 이 희선님을 만나

간단한 우리의 일정 설명을 듣고도 시간이 남아 터미널 이곳 저곳을 살펴보니

우리가 가야할 석도항 배편과 운임이 적힌 안내판이 보이는데.

우리가 배정받을 특실 4인1실 편도운임이 14만원에 왕복은 22만원이다.

왕복 뱃값도 안되는 돈으로 3박4일 모든 일정을 진행시키는 A M 트레킹 이희선님의 노하우가 신기하고 부럽다.

 

     (인천 여객선 터미널 전경)


   (출국 수속을 기다리며...) 

 

도착한지 1시간이 넘는 지루함을 견디고

출국수속후 선실에 들어가 짐을 풀자 벌써 해는 넘어가 캄캄한 야밤이다.

잠시후 선식이 배식되고 산우들과 함께 부페로 제공되는 한식으로 배를 불리자

기분좋은 나른함이 온몸에 스멀스멀 스며든다.

 

     (선실 식당에서 저녁식사) 


   (저녁 식사후 매점에서 커피로 후식)

 

밤을 꼬박 달리는 선실의 밤을 무료하게 보낼순 없는법.....

그것이 훼리를 이용한 여행의 묘미요 재미라 함께한 산우 모두가 뭉치고

거기에 우리의 가이드 이 희선님이 함께 하니 화기애애한 술판이 흥겨워짐에

술이 약한 나도 분위기에 취해 한잔 두잔 받다보니 얼큰하게 취해 버렸다.

 

이번 트레킹엔 대전 7명과 인천 10명의 단촐한 팀이 총인원이다.

지난주엔 100명을 인솔해서 다녀왔다는 가이드 이 희선님은 그래서 이번은 룰루랄라~

부담 없이 편안히 휴양가는 여행의 느낌이란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군대가서 하나 건진 친구 범승이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관계로

겨울의 뜸한 공사기간의 무료함을 달래려 갑자기 이번 여행에 함류했는데

술이라면 지고는 못가도 먹고는 갈수있는 타입이다.

시간여행님과 같은 회사 동료의 이언수님 역시 술 하면 한가닥 하는 인물이요

시간여행님과 하늘채 부부는 말하면 잔소리인 술도가의 고수들이라

꺼내어 놓은 술병을 보고 놀란 가이드님 일찌감치 꼬랑지 내려 달아나고...

 

가저간 맥주피티병 2병에

쇠주팩의 빈병이 늘어가는 사이 그것도 모자라

면세점에서 사온 중국의 독한 고량주 큰병 2개가 비워지고도 끝을 몰라

내일을 위해 강제로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인천산악회 회장님과 나에게 특별히 2인1실을 배정해 줬으나

산우들과 함께 잠을 자려 남자 3명인 방에 그냥 몸을 뉘었는데 날씨탓에

심하게 흔들리는 배의 요동과 치사량을 넘긴 나의 주량으로 속이 심하게 울렁거려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는 고통이 엄습한다.

 

화장실을 몇번이나 들락날락하다

침대를 벗어난 선실의 응접실 바닥에 몸을 뉘었는데 얼핏 잠이들었다 깨어난건

선실을 진동하는 친구 범승이의 코고는 소리다.

속은 진정이 ?으나 소음에 더이상 잠을 잘수 없어 그냥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선실에서의 파티) 


   -이틀날. 1월 27일-

 

18,000 톤, 평균속도 21노트. 정원 750명의 화동훼리 대선단을 밤새 흔들어대던 풍랑이

새벽이 되자 진정의 기미가 보이더니 산동반도 석도항에 도착하면서 새색씨처럼 잠잠해진다.

선실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던중 하늘을 보니 붉게 물드는것 같아

얼른 식사를 끝내고 선실 갑판으로 뛰어나가 짙은 운무에 쌓인 동쪽하늘을 뚫고 올라오는 일출을 잡았다.

 

    (선상 일출) 


접안이 끝나고도 하선까지는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진다.

갑판에서 석도항을 내려다 보니 작년 일조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일조항의 첫 느낌이 빛바랜 6~70년대의 사진을 보는 풍광인데 반해 이곳은 깔끔한 느낌으로

우리 조국과 별반 다르지 않음이 느껴진다.

 

석도항 뒤로 웅장하게 다가서는 암릉의 산은 바위가 붉다 하여 적산(369M)이다.

그래서 이곳 석도항의 옛이름이 적산포다.

그 적산아래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과 붉은 지붕을 한 마을이

그 옛날 우리 신라인의 집단 거주지 신라방이다.

적산 법화원 유적지는 마지막날 일정에 포함 되어있다.

 

 (배의 갑판에서 바라본 석도항과 적산의 모습) 


출국수속을 끝내고 석도항을 나서자

중국의 모든 일정을 함께할 가이드와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는 내 예상과(?) 다르게 아주 깔끔하고 기사 또한 얌전한 운전솜씨로 신뢰를 준다.

곤윤산으로 이동하는 1시간 30분 동안 간간히 가이드의 산동성에 대한 안내멘트가 이어지는데

짙게 베어나오는 북한 사투리에 간간히 웃음이 이어진다.

인구 40만의 석도는 물이 없어 주로 밀을 생산하는 관계로 주식이 빵이고

과일이 많이 생산되며 특히 그중 이곳의 앵두는 특산품으로 아주 비싸다는게 대략적인 설명이다.

 

석도의 도심을 벗어나자

끝없이 펼처지는 들판이 이어지며 산들을 볼수 없다가

울퉁불퉁 암릉의 연릉들이 저멀리 보임에 곤유산이 가까워옴을 알수있다.

이곳 지리를 훤히 알고있다는 운전기사가 버스를 들이댄곳에 이희선님이 내려서더니

잘못 들어왔다며 버스를 돌린다.

운전기사가 도착한 곳은 일반적인 관광객이 오는 곳으로

곤유산 최고봉 태박정까지 차가 오를수 있단다.

트레킹을 위한 우리의 산행들머리 구룡지 경구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 민가에서 키우는

개,고양이, 오리, 닭들이 먼저 우릴 반겨준다.

 

  (곤윤산 구룡지 경구 주차장에서 단체사진)

 

국가 A급 산림공원 곤윤산의 창산봉 등정에 앞서

주차장에서 인천팀과 함께 기념사진으로 증명을 남긴후

살포시 내린 눈을 밟고 숲을 향해 중국 조선족 산행가이드의 뒤를 따른다.

 

콘크리트의 길을 따라 오르다 갈림길에서 구룡정을 향한 우측길을 버리고

좌측의 소로를 따라 둔덕을 하나 넘으니 산의 계곡물을 막은 저수지 구룡지가 나오고

구룡지를 넘자 비로소 소나무 울창한 숲길 이어지다 얼음으로 뒤덮인 구룡폭포가 반긴다.

 

 

 

 

 

구룡폭포를 지나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선등자가 없어 아무도 밟지 않는 흰눈을 살포시 밟으며 오르는 암릉은

상당히 미끄러워 여간 조심 스러운게 아니다.

가는데 까지 진행해 보려던 마음을 접고 모두들 아이젠을 하라 이른후

조선족 가이드를 앞질러 우리 대전팀이 선등하여 창산봉을 향한 오름질에 추위가 가실쯤 나타난

갈림길에서 진행을 멈춘후 나홀로 우측의 길로 들어 가보니 등로는 계곡길로 이어진다.

되돌아 나와 우측의 암릉길을 택해 후미일행 모두 올라서자 조선족 가이드가 인천팀을 인솔하여

올라서다 우릴보고 그쪽길은 상당히 위험하니 조심해 가시라며 만류는 않는것이 우리의 산행능력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인정하는것 같다. 

 


  (암릉길에서 자라바위..) 


눈길의 바위는 생각보다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눈 덮인 등로는 희미하나 외길의 능선임에

길 잃을 염려는 없에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여 진행하다 바람이 잔 암릉의 양지바른곳에

자리를 잡고 산행전에 나눠준 일용할 양식인 차디찬 김밥으로 고픈배를 달래준후 산행을 이어간다.

 


중식후 암릉을 타고 오르다 보니

암릉 아래 계곡길로 인천팀이 오르는게 보인다.

커다란 바위를 하나를 타 넘어 둔덕을 내려오자 계곡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이후 등로는 외길로 창산봉까지 이어진다.
 

 

드디어 곤유산 창산봉 정상에 올랐다.

철탑과 함께 태양열 집열판의 시설이 자리잡은 정상엔 그러나 정상석은 없다.

창산봉아래 병풍처럼 펼쳐지는 드넓은 산봉오리의 모습은 장관이다.

창산봉 바로 앞의 곤유산 정상 태박정은 운무에 살짝 가려 그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곤유산....

중국도교의 발원지며 구룡지경구(九龍池景區), 연하동경구(煙霞洞景區),

태박정경구(泰 頂景區), 악고전경구(岳姑殿景區), 무염사경구(无染寺景區) 등의 관광구역을 끼고 있는

곤유산의 한 봉오리 창산봉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장엄하다.

 

얼마후 뒤이어 올라선 가이드에게 저기 보이는 태박정에서

이곳 창산봉까지 줄기능선을 이은 산행이 가능한가를 물어보니 능선길이 이어진단다.

암릉과 때론 육산이 어우러진 이곳 능선을 잇는 종주산행이 가능하다니 가슴이 울렁댄다.

시간과 돈과 육신의 힘이 허락되면 꼬옥 다시 한번 찾아 종주산행을 하고픈 생각이 간절하게 가슴을 친다.

 

   (곤유산 창산봉에서 바라본 풍광들)

 

    (운무에 살짝 가린 곤유산 정상 태박정)


  (창산봉 정상에서 초록잎새) 

 

 
창산봉 정상에서 내림길은
우리가 오른 암릉의 능선옆 계곡길로 내리다
구룡지 구룡정을 거처 앞서간 우리일행의 족적과는 다르게 나홀로 용왕각에 올랐다.
용왕각엔 평범한 중국인의 모습과 닮은 용왕 부부의 신상이 모셔저 있다.
 
     (용왕각의 신상)


용왕각에서 구룡지경구 주차장에 내려서자

나를 앞서간 일행들이 뒤늦게 내려오다 먼저 내려선 나를 보고 놀랜다.
축지법을 써서 먼저 내려왔노라 산우들께 너스레를 떨어대며 으시대자 모두들 웃는다.
우리 대전팀이 내려선후 30분쯤이면 도착할것이란 예측이 빗나가며
1시간을 추위속 기다림에 떨게 만든 인천팀이 도착함으로 오늘의 일정 곤유산 무사산행의 끝을 맺는다.
 
산행을 끝낸후
숙소로 정해진 위해시의 소피아 호텔에 여장을 푼후
인근의 한식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메뉴는 토닭곰 이란다.
이곳에서 나온 반찬중 향이 짙게 우러나는 야채를 한수저 떠 먹은 초록잎새는
비위가 상했는지 다른 음식까지 먹지못해 내 속을 태우는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왜 밥을 안 먹냐는 나의 말에 신경질만 내다 청도맥주는 입맛에 맞는지 맥주만은 잘도 들이킨다.
 
   (촌스런 간판이 돋보인 한인 음식점)


   (저녁 식사중 대전팀을 위하여~)
 
한인 음식점을 나온뒤
중국여행의 연례행사인 발 맛사지에 나선다.
전신 맛사지에 한국돈 만오천냥이라 모두들 받아보겠다는데 우리만 빠질순 없어 전원
중국 조선족 가이드가 안내하는 맛사지 업소로 직행했다.
 
       (발 맛사지 업소 전경)

 

발 맛사지는 기대완 다르게 별 볼일 없다.

가냘픈 소녀가 성의껏 주무르고 두둘기는게 가여워 손짓 몸짓으로 나이를 물어보니 15살이다.

우리 막내보다 두살이나 어린것이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게

한편 가엽고 한편 이런 어린것에게 서비스를 받는 내가 양심에 걸려

도저히 인간이 할짓이 아니란 생각에 1시간 이상 앉아 있는 동안 바늘방석에 앉은듯 불편하다.

 

다행히 소녀들은 이런 업소에 일하는 소녀치곤 활발하고 쾌활한데

대장금의 주제곡을 흥얼거리자 창을 해달라 졸라 한오백년과 도라지 타령 밀양 아리랑을 불러주니

손뼉을 치며 아주 좋아하며 답곡으로 중국노래 한곡을 합창으로 뽑아댄다.

 

맛사지 업소에 들릴때

AM 트레킹 이희선님이 요금에 팁도 포함됐으니 일절 팁을 주지 말라 했어도

1시간 이상 성심성의를 다하는 어린소녀들을 외면할수 없어 옆자리 친구 범승의 지갑을 털어

천원의 팁을 손에 쥐어주고 맛사지 업소를 나왔다.

 


   (발 맛사지집의 소녀)

 

맛사지 업소를 나온 일행 모두

그렇게 먹고도 소화기관은 왕성한지 뒷풀이를 원해

가이드의 안내로 위해시의 먹자골목의 꼬치집을 찾았다.

우리입맞에 맞는 이곳의 메뉴는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꼬지로 구워 각종 주류와 함께 판매한다.

청도맥주와 중국 고량주등을 시키고 얼큰한 신라면까지 식탁에 올린 우리의 화려한 만찬에 모두들 입이 즐겁다.

 

배가 부르고 술이 올라 거나해지자

홀로온 언수님이 중국의 조선족 가이드에게 나 외로우니

짝을 하나 구해달라 농을 던지니 우리돈 십만원이면 얼마든지 하룻밤 여인을 구해주겠노라 말을 한다.

 

그러나 중국이란 나라에 오면 정말로 조심할게 여자다.

중국에는 부부임을 확인해주는 신분증인 일명 부부 신부증이라는 것이 있다.

남녀간 호텔에 들어갈 때 이 부부 신분증이 없으면 절대 들어갈수 없다.(물론 외국인은 제외)

이런 사실을 모르고 중국여성과 함께 호텔에 투숙해서 잡혀가는 한국사람이 의외로 많단다.

그러나 재미 있는것은 밤 12시 이전에는 처벌을 받지 않는단다.

이런점을 노린 꽃뱀과 중국 공안이 짜고 여행온 한인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한다.

중국이란 나라는 되는일도 안되는 일도 없다란 말은 뇌물을 쓰냐 안 쓰냐의 말과 같다.

간통죄가 없는 대신 밤 12시를 넘겨 중국여인과 투숙하다 잡힌 사람은 거액의 뇌물을 써야 풀려날수 있단 얘기다.

만일 매춘행위로 적발되어 여권이 압수됨은 물론 공안국에 연행되어 처벌을 받고 처벌후엔 好色(호색)이란

도장이 찍히게 되어 다음부턴 중국 출입을 금지 당하고 싶은 욕감무쌍한 인간이 있다면 말리진 않겠으니

한번 해보시라. 뿌리한번 잘못 놀린죄 나라망신 폐가망신임을 해외여행자여 명심하라.

 

아무튼

먹자골목 꼬치집을 나오며 계산을 하니

그렇게 실컨 배터지게 먹고 마신값이 우리돈으로 2만 6천원이라 또 한번 놀랬다.

위해시 먹자골목의 파티로 이틀밤을 장식한 우린 3성급 소피아 호텔 2인1실에 들며

중국일정의 이틀째 밤을 아늑하게 보낸다.

 

     (양고기 꼬치구이)


   (중국 전통 고량주)



   (꼬치집에서 대전팀 모두 위하여를 외치며~)

 후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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