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87＞을 토론토 개봉관에서 본 소감

[성우제]

신용카드 넣고 표를 구입하는 기계가

여럿 있는 데도 일부러 사람이 있는

매표소로 갔다. 그리고는

"나인티이인에이리세븐, 플리즈"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가 극장 직원에게

크게 들려서, 좀 특별한 영화라고

생각하도록.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지만.

토론토에는 

<1987:When The Day Comes>가

1월12일 금요일에 개봉되었다.

개봉일 마지막 상영은 밤 10시35분.

영하 11도, 체감온도 20도를 훌쩍 넘는

추위. 토론토 특유의 얼음비에

강풍까지 부는 밤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워낙 입소문이 많이 퍼져서 그런지

관객은 많았다. 3백명쯤 되어 보였다.

객석의 4분의 3이 찼다.

관객 대부분은 20~30대.

유학생이 많을 것이다.

우리 세대는 의외로 적었다.

광고가 덜 된 데다 날씨가 험한

탓일 것이다.

바로 그 시대에 20대 초중반을 보내면서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익숙한 터라

나와 아내는 감흥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착잡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끝나고 이야기를 나눴더니

비슷한 심경이었다. 그 시대를 

잘 모르거나 겪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생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지를 막연하게는

알고 있었으나 

남영동대공분실과 그곳

사람들을 속속들이 보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그곳을 다룬

영화는 차마 보지 못했다). 

서북사투리와 "받들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섬뜩했다.

최근에 읽었던 <화산도> 속의 '서북'이

오버랩되어서 그럴 것이다.

80년대까지 서북이 살아서 저렇게 

날뛰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

연희가 명동에 나갔다가

데모대에 휩쓸려 골목으로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똑같은 경험을 

했었다. 잠깐이었으나 그때 가졌던 

공포감이 순간적으로 휙 하고 올라왔다.

수십 년 잊고 지내다가 머리가 쭈뼛했다.

예전에는 정말 무서웠다. 잡히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내 친구 하나는 저렇게 모르는 사람과

손잡고 도망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해서 잘 살아오고 있다.

6월 장면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나온 사람들. 당시에도 그랬었다.

그들이 회사 밖으로

몰려나와서, 거리에서

별로 무섭지 않았었다.

선배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느낌이

들었었다.

연기로 보면 내 눈에는 박희순과 

김윤석이 돋보였다.

공감이 가장 많이 되었던 장면은

박종철 아버지가 물에 들어가는 대목.

예전에 말로만 들었던 그 장면을,

내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

울컥울컥 올라왔다.

기자들의 연기는 몹시 거슬렸다.

기자 개인이고 편집국 풍경이고 간에

오바가 심해 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세대는

복 받은 세대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1970년대고, 1990년대 초반이고

싸움은 80년대 못지 않았다.

80년대는 저렇게 영화로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영상으로

남으니...

내 앞에 걸어나가던 젊은 커플의

남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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