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진사
이승숙
그대여! 강바람이 그리울 때는 가야진사로 가보라. 폭풍 같은 강바람이 온몸을 맞이할 것이다. 사방이 탁 트인 정자에 누우면 세상만사 부러울 게 없는 곳. 휘어 감은 검푸른 강물, 사위를 품은 여리여리한 신록이 절경을 낳는다. 이유 없이 허전할 때, 삶에 지치고 힘들 때, 나는 그곳으로 간다.
‘가야진사伽倻津祠라 하면 어디에 있는 절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예전엔 나도 그랬었다. 이곳 강변은 심술 난 영등할매마냥 바람이 늘 사나운 곳이다. 그러므로 잠시만 있어도 정신이 바짝 나는 곳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강 건너 마을이 김해시 상동면 여치리다. 가야진사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그 강물 안쪽으로 용소가 있다. 낙동강에서 가장 깊다는 용소는 물의 소용돌이가 무서울 정도로 풍랑이 거칠다. 가야진사는 원동역에서 서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낙동강의 들판 한가운데 세워진 당집이다. 신라가 가야국을 정벌할 때 왕래하던 나루터이기도 하다. 마을수호신이 아닌 진신津神을 모신 제당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4월에 길을 나선다. 물금역 인근 맛집에서 산 톳김밥과 과일 몇 조각, 커피를 들고 가야진사로 향한다. 그네 벤치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책 속에 빠져든다. 가끔은 하늘 바라기를 하며 눈의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강물과 바람의 언어들이 시나브로 속삭인다. 그마저 무료해지면 다양한 운동기구를 타기도 하며 둘레길을 걷는다. 갈대숲은 작은 생명들의 서식지로 삶의 소리가 넘쳐난다. 그들은 바람 소리의 움직임으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통통 튀어 오르는 수런거림은 봄의 교향곡이다.
강물 위로 비스듬히 누운 버드나무의 신록이 청신하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저 버드나무의 거룩함. 삶의 겸손과 무소유의 방하착放下着을 내게 가르치는 듯하다. 일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버드나무의 생애가 곡진하다. 그 깊은 은유의 떨림이 생성하는 봄이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짙어 가는 색의 농도가 층층이 다르다. 낮달이 선연한 초록빛 산 풍경이 그윽하다. 그런 4월이 가고 있다.
봄이 오면 사내아이들은 버들피리를 불며 동네 골목들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 마을에서는 피리를 호뜨기라고 불렀다.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골고루 비틀면 속대가 빠진다. 나무껍질의 끝부분을 칼로 살짝 벗기면 완성이다. 입 안쪽으로 호뜨기를 깊숙이 넣고 입술로 살짝 눌러서 불면 소리가 나온다. 골목마다 들리던 삐~삐~ 호뜨기 소리도, 우물가의 버드나무도 이제는 찾을 길이 없다.
약이 귀한 시절에는 버드나무 잎을 입에 물고 있으면 통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 아스피린의 원료로 쓰이는 버드나무 껍질에는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의 약효가 있음이 밝혀졌다. 전쟁 중 출혈이 심한 부상자를 버드나무 껍질로, 휘휘친친 동여매는 모습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모두가 의료시설이 열악할 때 임시방편으로 쓰던 응급처치이다.
가야진사의 용에 대한 설화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테마공원을 중심으로 용의 언덕이 있고, 삼룡(청룡 한 마리와 황룡 두 마리)의 조형물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용산이다. 용산과 용당리란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용에 대한 설화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강물 앞 계단 아래에 내려섰다. 금방이라도 청룡이 튀어나와 삼키기라도 할 듯 풍랑이 거세다. 윤슬과 파도 때문인지 뱃속이 울렁이며 현기증이 인다.
옛날 한 전령이 공문서를 가지고 대구로 가던 길에 이곳 주막에서 묵었다. 꿈에 용이 나타나 남편이 첩만을 사랑하고 자기를 멀리하니 첩을 죽여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전령이 사정을 딱하게 여겨 다음 날 첩을 죽이기 위해 용소에 갔다. 그런데 실수로 남편 청룡을 죽이고 말았다. 슬피 울던 본처 황룡은 전령을 태우고 용궁으로 갔다고 한다. 그 후 마을에 재앙이 그치지 않아 사당을 짓고, 용 세 마리와 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봄가을에 돼지를 잡아 용소에 던지며 제를 올렸다.
이곳 일대는 과거부터 낙동강의 잦은 범람으로 피해가 큰 지역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국가 제사를 지냈다. 그때 사용되었던 제기 중에는 소를 형상화한 게 있다. 큰 희생을 상징하는 소의 몸체에 용신을 달래기 위한 술을 담아 사용하였다. 여기서 출토된 분청사기들은 현재 양산시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후 2시를 지나는 시간이 달음질을 친다. 아무리 뜨거운 불볕이 내리쬘지라도 이곳 강가에 서면 한기가 들 정도로 서늘해진다. 낙동강 물살을 가르는 수상스키 족이 벌써 여름을 부르는 듯하다. 빠른 세월이 야속하기만 한데 꺽~ 꺽~ 장끼의 울음소리만이 고요를 찢는다. 수꿩인 장끼가 암꿩 까투리를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푸드덕푸드덕 꺽~꺽~ 장끼의 홰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봄 내내 고향 들녘에서도 자주 듣던 소리인지라 반갑기 그지없다. 산란기에 접어든 장끼가 그들의 영역을 지키고자 내는 소리란 걸 후에 알았다.
어릴 적 엄마는 나를 ‘들꿩’이라고 불렀다.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하고 허술한 게 딱 들꿩 같다고 했다. 꿩이 놀라 달아날 때는 숲속에 머리를 박고 꼼짝 안 한다고 한다. 제 머리만 숨으면 남도 못 볼 줄로 생각하는 게 꿩이라며 나를 미더워하지 않았다. 별명대로 나는 오지랖만 넓었지 모든 게 오달지지 못하고 무르다. 그렇다고 빈틈없는 모도리 성향인 자들이 부럽지는 않다. 만약 엄마 아닌 남들이 그렇게 불렀더라면 언짢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좋든, 싫든 이제는 그 별명을 불러 줄 엄마도 곁에 없다.
가야진사 앞에는 둥치 큰 목련 나무가 서 있다. 다정한 부부처럼 가지가 서로 붙은 연리지다. 이런 거목의 목련 나무도 흔치 않은데 몸통 곳곳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상식 없는자들의 소행이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파인 구멍 모두가 불규칙한 하트 모양이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하트에 열광하는 걸까. 세상에는 완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나다. 사랑에 목마른 자들의 마음은 늘 고프고 허기져 있다. 잘못된 인연으로 영원한 족쇄가 되는 가혹한 사랑도 있다. 큐피드의 화살이 나는 여전히 두려울 뿐이다. 하기야 이런저런 셈을 하면 그 또한 어려운 게 사랑법이라고 한다.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는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화살을 마음대로 날린다. 그러므로 그가 쏘는 화살에 맞는 자는 상대를 불문하고 무조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맞을지 알 수 없으며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랑이란 본래 그렇게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사랑은 열린 하늘에서 함께 날아가는 자유라고도 한다.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랑을 꿈꾸는 자들은 목련꽃 피는 4월을 또 기다릴 것이다. 이곳 가야진사의 목련 나무도, 멀지 않아 사랑의 성지가 될 듯하다.
노을 진 강물 위로 큐피드의 화살이 꽂힌다.
이승숙
《수필과비평 》등단. 드레문학회. 수필집 『이화, 달빛 사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