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6코스 : 대우하나아파트~자유공원
서해랑길의 1코스는 해남부터 시작하여 강화도까지 북진하며 코스 숫자가 증가한다. 시작한지 두번째만에 96코스를 걷고 있으니 이것은 남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지역은 인천광역시 서구. 아직 인천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뜻깊은 날이다. 고교 친구 두명이 함께 걷기로 하였다. 모두 트레킹을 좋아해서 참여했다. 앞으로 5년간 이어갈 서해랑길의 완주를 기대하고 109코스가 끝나는 날에 해남 땅끝탑 앞에 모여 세 명이 헹가래를 치고 기념하고 싶다.
대전에서 가족 행사로 인해 97코스를 건너 뛰다보니 검암역이 아닌 대우하나아파트정류장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인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계양산(395m)을 지나 징매이고개 생태터널과 연결된 천마산을 내려오면 경인고속도로와 만나는 서인천IC 부근이다. 이곳은 낯설지 않은 곳이다. 90년도 중반때 근무지가 부평으로 발령나면서 약 2년간 백운역 근처의 부평현대3단지 아파트(산곡동)에서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하나아파트 정류장에서 하차하고 보니 기억은 고사하고 어디쯤인지도 분간할 수 없다. 사전에 지도를 보며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방향을 알지 못한 것이다. 동서남북의 위치도 모른채 자유공원을 향하여 출발한다. 산길로 들어서며 안내판을 바라보니 인천종주길과 원적산 둘레길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계양산은 천마산과 연결되고 다시 원적산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낮은 산이라서 곧장 능선에 닿게 되고 어느 트여있는 암석의 봉우리를 오르니 그 곳이 원적산 정상이다. 해발 211m. 사발팔방 전체가 다 보이는 곳은 아니지만 나무사이로 비쳐지는 인천의 조망은 깨끗한 날씨로 인해 멋지게 다가온다. 청라국제도시의 중심지역이 바로 앞에 있고 그 너머로 삼각형 형태의 산은 마니산으로 생각된다. 다시 죄측으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지므로 북항으로 보인다.
반대편으로 돌아가 서울 방향을 바라본다. 부평구의 즐비한 아파트 너머로 높은 산이 펼쳐진다. 좌측은 북한산이고 우측은 관악산이다. 가로막는 산들이 없다보니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에 계양산에 오를 때도 볼 수 없는 풍광들이 다가온 것이다. 요즘 다니는 곳마다 대부분 날이 좋다보니 보이는 전경은 늘 마음에 남고 고맙기 그지 없다. 둘레길을 트레킹을 하면 이렇게 다양한 전경과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높은 산은 그 나름의 멋이 있는 것이고 둘레길은 그런 산이 보여주지 못하는 주변의 아기자기한 멋을 제공한다.
인천 시가지를 걸으며 이렇게 낮은 산 능선을 경유하더라도 가끔 전망이 있는곳을 만나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니 여기에도 마법이 숨어 있다. 경인고속도로나 공항철도를 이용하며 지나칠 때 언제 이런 원근을 볼 수 있겠는가! 김포의 수안산부터 한남정맥의 능선을 이용하여 가현산, 계양산, 천마산 그리고 원적산까지 이어 왔으나 서구 가좌동에 있는 장고개부터는 능선 산행을 버리고 시내 도로를 따른다. 지금부터는 자유공원까지 햇빛을 받으며 지루하게 걸어야 한다.
가좌이음숲을 지나는데 일행들이 모여 앉아 간식을 들고 있다. 원래 시내에서 매식을 하기로 했으나 이 근처에 사시는 선배님이 후라이치킨과 막걸리로 한턱을 쏘신 것이다. 감사합니다~. 공원 내 나무 그늘 아래서 친구들과 모여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낮은 산이지만 그래도 산행을 끝내고 내려 왔고 거기에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술 한잔하는 것이니 막걸리 맛이 어떨지는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다보면 함께하는 일행과도 조금씩 알아가는 계기도 된다. 원적산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친구 세 분과 함께 오신 선배님이 양주 한 잔을 주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가면 얼굴도 익히게 된다. 또한 막독팀장과도 지난 얘기를 하면서 옆에 있는 친구들과도 친해진다.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5년을 함께 할 일행들이다. 산을 오르며 해안길을 걸으며 어떤 때는 눈 비를 맞으며 해남까지 가면서 늘 마주칠 동료들이다.
가좌IC를 돌아 서인천가구 단지를 지나면서 산업단지를 거친다. 삼표블루콘 인천공장이 보이고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엄청난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계속 지나면서 길은 동구청 방향으로 이끌어 가지만 구청 건물은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묘한 것인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천세무서는 정문을 지난다. 그리고는 커다랗게 보이는 창영교회와 그 옆으로 영화학원 법인인 창영초등학교와 마주친다.
창영초교는 1907년도에 설립되었으니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그 당시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특히 인천의 3.1운동 발상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도로변에 있는 학교 건물 1층 벽면에는 관련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내를 걷다보면 역사 문화를 접하는 이런 즐거움이 추가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산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다. 인천에 살지 않는 이상 언제 이런 곳을 지나칠 것인가. 여행은 그런 것이다. 늘 현재를 만나면서 새로운 것을 관통한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지나간다. 고풍스런 아벨서점 앞에 서서 바라보다 오래전 청계천에 있던 고서점들이 오버랩되어 추억의 사진을 남기려는데 상점 앞에 세워둔 차량들이 훼방을 한다. 고서적과 차량은 공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배다리사거리를 지나면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극장인 애관극장을 만난다. 1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한산과 헌트가 상영 중에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신포재래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뒤를 돌아보니 어딘가 눈길을 잡아끄는 건물이 보인다. 그 아래쪽에는 지하주차장을 신축중에 있다. 설치된 현수막을 보니 답동성당이다. 일행이 없었으면 잠시 둘러 보았을 것이다. 붉은 벽돌로 세워진 외관이 수려하다. 나중에 자료를 확인해 보니 본당 내의 로마네스크 창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고 한다. 성당이 언덕에 있으니 1890년도에는 인천항이 잘 보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처음엔 고딕양식으로 지었으나 1937년도에 개축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을 추가했다. 그래서 성공회의 서울주교좌성당,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한국의 3대 로마네스크 건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덕수궁에 갈 때 서울주교좌성당을 만나 봐야겠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인천도 역사가 파라만장하다보니 다양한 유물과 문화가 혼재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신포시장에서 40년된 정통중국식 산동만두와 공갈빵을 맛보고자 했으나 대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자유공원으로 향한다.
백범 청년 김구 역사 거리가 나온다. 백범 김구가 인천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 얘기는 백범이 청년 시절에 명성황후의 시해에 배후자로 생각한 어떤 일본인을 살해했을 때 인천감리서에 수감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105인 사건과 관련하여 인천감리서에 다시 수감되었고 인천항 공사 현장에서 노역에 시달리던 시절이 인천에서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인천감리소가 있던 장소에 역사거리를 조성하였는데 거리에 설치된 동상은 장년의 백범으로 보인다.
중구청 앞에 있는 이정표는 인천제일교회 옆으로 높고 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안내도를 보니 각국조계지계단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쓰여진 글씨가 대부분 지워지거나 흐릿해서 무엇을 알려 주는 것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는 각국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외국인이 치외법권을 누릴수 있는 지역을 알려 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조약을 처음 체결한 일본뿐만이 아니라 청나라, 미국, 영국 등이 이어지면서 이 지역에 석조 계단을 설치하여 경계를 구분하였다.
조계지계단하면 이곳 보다는 차이나타운의 삼국지벽화거리에 있는 청일조계지 계단을 주로 찾는다. 그 곳은 중국식과 일본식 석등이 설치되어 있고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거대한 공자상까지 있는 등 역사성이 높게 평가되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5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여기는 한가한 편이고 안내도가 없으면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높고 긴 계단으로만 여길 것이다.
드디어 자유공원이다. 먼저 와 있던 분들과 다시 조우하면서 맥아더장군동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남긴다. 백두대간 때도 그랬지만 여기도 각 코스마다 단체 사진을 남기고 있다. 전 코스를 끝내고 나면 완주증이 있겠지만 그건 달랑 1장뿐이다. 추억을 얘기해 주는 것은 사진뿐이다. 긴 시간이 필요한 서해랑길은 남겨논 사진이 향후 더욱 빛날 것이다.
자유공원은 처음 방문이다. 오늘을 위해서 몇 십년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느즈막에 맥아더장군 동상 앞에 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인천역에서 도보로 15분이면 방문할 수 있는 거리지만 이곳을 오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친구들과도 처음으로 사진을 남긴다. 맥아더 동상을 바라본다. 정면이지만 몸은 약간 틀어져 있다. 얼굴은 인천항 방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천항과 떼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공원은 인천 송학동에 있는 해발 69m의 응봉산에 있다. 넓은 광장의 닻 모양조형물 옆에 서서 바라보면 인천항과 월미도, 영종도, 팔미도 그리고 인천대교가 그림처럼 들어온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은 시간이 없어서 그냥 스쳐간다. 연오정과 석정루는 근처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날 다시 찾는다면 꼭 보고 싶은 정자다.
계단 아래를 바라보니 차이나타운이다. 물론 여기도 처음이다. 계단을 내려서면서 문을 통과하며 위를 바라보면 선린문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모양은 패방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지붕이 있으므로 패루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곳은 대부분 마주치는 것이다. 여기는 젊은 청춘들이 넘쳐나고 활기차 있다.
그 유명한 차이나타운에 왔으니 짜장면 한 그릇은 맛봐야 한다고하여 어느 중화집에 들어서니 대기중이다. 그 옆 식당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 줄이 없는 곳에 들어갔더니 가좌이음숲에서 양주 한잔을 주시던 선배님 일행들이 있어서 동석을 하였다. 각자 취향대로 음식을 주문했다. 지금까지 별도로 점심을 먹지 않았기에 허기가 약간 느껴지던 때다. 기대가 너무 컸다. 간짜장의 맛이 평소와 다르게 맛이 나지 않는다. 이 곳 식당은 한국맛이 아니고 중화식으로 느껴야 제 맛을 아는가 보다. 선배님이 일괄 계산해 주어서 너무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서해랑길 96코스는 산행과 도심지를 걷는 일정이다. 김포에서 시작된 한남정맥을 이어가다가 원적산을 지나 장고개공원에서부터는 도심과 연결되어 구한말에 격변지였던 개항지 인천항까지 도시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일부 접하게 되었다. 인천의 예전 역사가 이렇게 살아 있음을 처음 알았다. 서해랑길을 걷다보면 자연뿐만이 아니라 각 해안 지역의 여러가지 지역 문화도 눈여겨 볼 수 있음을 알았다. 이제 두 코스를 더 진행하면 인천지역을 벗어나고 세 번째인 시흥시를 거치면 오이도에 도착한다. 서해안 해안길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날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두루누비앱에는 서해랑길 개통 기념으로 '이번 주 걷기 행사'라는 이벤트가 있다. 서해랑길 96코스를 시작하면서 심심풀이로 응모했는데 인천 중구청으로부터 당첨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동행한 친구 한 명도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경품이 많다는 의미일까? 경품은 마그네틱과 손수건 그리고 종이퍼즐이라고 한다. 오는 23일까지는 수령할 수 있도록 발송한다고 한다. 마그네틱 물품을 못봐서 그렇지만 커피 한 잔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잠시 해본다.
첫댓글 멋진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부드러운 글의 흐름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따라 읽다보면 좀더 읽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추석명절 잘보내시고 다음번 회차에 즐겁게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