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민족식물자원의 중심에 있는 나무다. 개마고원 이남 한반도 중남부지방 에서 마을 당산나무로 자리매김했다. 아버지 나 무가 전나무(Abies holophylla)라면 어머니 나무는 느티나무다. 전통마을(聚落)이 자리 잡은 토심 깊은 충적지(沖積地)는 대표적인 느티나무 서식처다. 화성암 계열의 거대 암석이 묻혀 있는 토 심 깊은 충적(充積) 선상지(扇狀地)에서 공기와 물이 잘 통하는 쾌적한 조립질(粗粒質) 토지가 최적의 조건이다. 그래서 셰일(shale)과 같은 세 립질(細粒質) 암석이 발달하거나 진흙 토양환경 에서는 느티나무가 희귀종이다.
느티나무는 재질이 단단해,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 때 쓰는 재료목이다. 느릅나무 종류처럼 약 재로 쓰이는 일은 드물지만, 어린잎을 삶아서 나 물로 먹었으며, 다른 곡식 가루와 섞어서 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특히 음력 사월초파일에 느티썩 (槻葉餅, 규엽병)을 만들어 공양(供養)하는 풍습 이 고래로 있었다. 중국에서는 나무껍질과 잎 을 약재로 이용한다. 일본에서는 느티나무를 께야끼(櫸, 거)라고 부르며, 그 수형(樹型)과 목 질의 문양 등이 예사롭지 않다는 의미의 케야케 끼(けやけき)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8세기에는 느티나무 자체를 지칭하는 한자 槻(규) 자를 사 용하면서 쯔끼라고도 하며, 최고급의 활(弓) 재료로 이용했다." 그런데 한글명 느티나무는 동 북아 삼국 속에서 가장 한반도적인 문화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한글명 느티나무와 느티나무"의 '스틱(느티)' 는 누런 회나무란 의미를 지닌 황색의 눌/논
과홰/희나무 槐(괴) 자의 합성어라고 한다. 10)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해/희나무 槐(괴) 자 의 한자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느티나무는 자생했고, 당연히 글자 없이도 명칭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 가까이 에서 자생하고 장수하는 나무이기에 선사인들이 몰랐을리 만무하다.
일찍이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느틔槐(괴)라 했고, 다산(茶山)은 느티나무 널(槐板, 괴판)을 귀 목(龜木)이라 했다. 12) 중국에서 홰/회나무槐(괴) 자로 쓰는 것을 사가정이나 다산은 느틔 槐(괴) 자로 사용한 것이다. 느틔 槐(괴) 자의 자전(字 典) 풀이는 넋과 마음(魂, 혼)이 머무는 나무(木)라는 뜻이기도 한데, 동네 어귀에 서 있는 당산 나무와 인연을 맺고 있는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의 습속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홰나무 槐(과) 자는 오늘날 중국이나 한국에서나 모두 콩과의 회화나무(Sophora japonica)를 지칭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식물사회학적으로 홰나무 槐(괴) 자에 대응하는 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현재의 회화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느티나무이다.
중국에서 느티나무를 欅(榉, 거) 13)라고도 표기하는 경우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느틔 槐(괴) 이다. 오늘날 한자 槐(과) 지는 우리에게 회화나무일 경우도 있고, 느티나무일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글명 느티나무와 회화나무의 그 어원이나 유래가 같은 것은 아니다. 느티나무 와 회화나무, 두 생명체의 기원이나 서식 조건과 삶의 얼개는 식물사회학적으로 전혀 다른 종이다.
느티나무는 야생으로부터 우리와 인연을 맺은 고유종이라면, 회화나무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반도에 자생하지 않는 반고유종(半固有種, semi-native species)이다. 그래서 혼동할 이유도 없다. 회화나무는 중국나무이고, 느티나무에 견 줄 바가 못되는 수명이 짧은 공원 수종이다. 백 여년 만에 흉하고 괴상한 모양으로 늙어가는 것이 회화나무라면, 느티나무의 나이는 청소년에 해당한다. 더욱이 회화나무 아래는 쉼터가 될 수 없다. 진득진득한 액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느티의 어원은 느티나무가 지닌 신성(神性)의 어떤 징조라는 뜻의 '빛'과 수목 형상이 위로 솟 구친다는 뜻인 '티'가 어우러져 생겨난 '스트라는 것이다. 우리말 늦(는, 늘, 늣)은 느지에서 유래하고, 느지란 어떤 조짐이나 징조, 즉 상서(祥瑞) 를 뜻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15 그렇다면 음소(音 素)늦만으로도 느티의 유래를 살피기에 충분해 보인다. 느티의 음소 '낮'은 우리말 부사 '늦게'를 의미하는 옛말 느지와도 이어져 있고, 느릅나무 와도 잇닿아 있다.
느티나무는 살아가는 방식이 느긋하고, 늠름 하다. 느티나무 아래는 서두를 수 없는 느림의 공간이며, 수많은 생명을 끌어안는 어머니 나무다.
느티나무라는 한글은 서거정의 느티나 정철 (鄭澈, 1536~1593)의 느태처럼 15세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으며, 그 말의 뿌리(語源) 느지는 신화보다 더 오래된 선사시대의 종교적 삶의 시작 단계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다. 16) 속명 젤코바(Zelkova)는 돌(Dzel)처럼 단 만한 뜻으로 나무기둥(Kva)이라는 (Caucasus) 지방에서 부르는 방언(Dzelkva, Zelkoua)에서 유래한다. 느티나무속은 지구상 에서 동아시아 환동해지역과 코카서스에서 북 후 이란에 걸치는 서아시아지역에서만 현존한 다.
북미와 중부유럽 온대지역에서처럼, 지금 으로부터 1만5천 년 전까지도 혹독한 추위와 빙 하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터라 멸종하고, 현존하지 않는다. 개마고원 이남의 한반도 전역에서 느티나무는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그것은 한반도가 지구 생성 이후로 단 한 번도 단절 없이 생 물학적 진화의 역사가 지속될 수 있는 땅이었다 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중국이란 표현을 쓰기 전부터 한반도에 모여 살고 있었다. 결국 느티나무라는 이름은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되었으며, 이름의 유래 또한 한반도적(韓半島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멸종할 위기는 아니지만, 본래의 서식처가 크게 훼손되어 자생하는 느티나무 개체군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날이 그 수가 줄어 드는, 느티나무 노거수 실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