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윤 시집, ‘금강종주시편縱走詩篇’ {금강 천리 길} 보도자료
김종윤 시인은 1964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현재는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집으로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 『텃밭 생명의 노래』, 『길에게 길을 묻다』, 『네모난 바퀴를 가졌네』, 『나뭇잎 발자국』이 있다. 대전문인협회, 사단법인 문학사랑협의회, 화요문학, 해밀 등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김종윤 시인은 금강종주시편縱走詩篇을 통해 삶과 길을 씨실과 날실로 묶으며 길 위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상처 깊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삶의 여정이며 길 위의 노래이다. 김종윤 시인의 ‘금강종주시편縱走詩’ {금강 천리 길}은 금강의 발원지인 장수 뜸봉샘에서부터 군산 탁류까지의 여정을 발과 자전거로 쓴 시집이며, 신동엽 이후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서정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눈물이 많은 짐승이라서/ 기쁨도 눈물로 풀고/ 슬픔도 눈물로 푼다/ 금강의 굵은 눈물 한 줄기는/ 강물이 되어 끝끝내/ 바다에 닿는다(「비 온 다음 날―금강 길 4」). 비단강, 즉, 금강이 우리들의 굵은 눈물이라니, 그야말로 ‘눈물의 기적’이자 ‘서정시의 승리’라고 하지 않을 없다.
장수군 물뿌랭이마을
수분령의 수본송水分松은
금강의 발원지 신무산 뜸봉샘
맑은 물줄기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도 푸르게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이 늙고 굽은 소나무는
갈라진 손끝마다 청바늘을 돋우고
한 줄기 샘물을 따라 바다 마중을 갑니다
뜸봉샘의 작은 물줄기는
바다를 꿈꾸는 노송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가슴에 한 줄기 강을 내는 일입니다
변함없이 믿음을 주는 일입니다
금강의 여정이 바다에 이르듯
노송의 삶도 바다에 닿습니다
강물을 궁벽치 않은 샘을 근원으로
사랑은 마르지 않는 그리움의 힘으로
먼 길을 밀고 갑니다
우리는 한 그루 소나무를 통해
변함없이 깊어지는 믿음을 봅니다
당신에게 향하는 내 믿음을 봅니다
―「수분송―금강 길 1」 전문
김종윤의 ‘금강(錦江) 길’ 연작 이십 편은 이번 시집의 1부를 담당한다. ‘물뿌랭이마을’, ‘수분령’, ‘수분송’, ‘금강’, ‘뜸봉샘’, ‘물줄기’, ‘샘물’, ‘바다’, ‘강’, ‘강물’, ‘샘’ 등 ‘물’ 관련 어휘가 이 시를 지탱한다. 시인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을 이번 시집의 핵심적인 배경으로 도입한 셈이다.
‘소나무’ 또는 ‘노송’ 역시 김종윤이 바라보는 주요 대상 중 하나이다. 시인에 따르면 ‘금강’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노송’ 역시 ‘바다’를 꿈꾼다. 김종윤은 이 시에 배치된 다양한 ‘물’ 계열 어휘를 ‘사랑’이나 ‘그리움’ 또는 ‘믿음’ 같은 소중한 덕목으로 규정한다.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가 놀라게 되는 까닭은 시의 화자 ‘나’가 ‘당신’을 지향함으로써 ‘우리’를 형성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바람 한줄기 소식 없고 햇살 뜨거운 날,
허리춤에 찬 물병 두 개를 비우고
지친 다리를 무겁게 끌며 걸어도
검은 길은 한마디 말없이 저만치 앞서 갑니다
금강 상류 유원지
왕버드나무 아래 배낭을 부리고
왼 발에 네 개 오른 발에 다섯 개
하얗게 부풀어 오른 물집을 터트리고
아픈 발보다 고픈 배가 간절하여
빈 그릇 하나 들고 밥 동냥을 갑니다
흰 밥과 김치 한 가득
그리고 뜨거운 고기도 몇 점
몸 속 길에 차곡차곡 밀어 넣습니다
밥 한 그릇의 힘이 오십 리
아침 밥 한 그릇의 힘으로 멀리 왔습니다
절실한 그리움도 없이
뜨거운 눈물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동냥밥 한 그릇에게 미안합니다
배낭을 둘러메고 신발 끈을 다시 묶습니다
한 그릇 밥의 희망은 든든하고
물병이 두 개나 있는 맑은 날입니다
―「동냥밥 한 그릇―금강 길 3」 전문
회화성이 두드러진 시이다. ‘금강 상류 유원지’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 역시 ‘금강 길’ 시편의 하나이다. 작품에 내재하는 화자 또는 시인은 “왼 발에 네 개 오른 발에 다섯 개/ 하얗게 부풀어 오른 물집을 터트리고”, “지친 다리를 무겁게 끌며” 걷는다. 그가 금강 길을 걸으며 느끼는 바는 일차적으로 “아픈 발”이지만 ‘고픈 배’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픈 발보다 고픈 배가 간절하여/ 빈 그릇 하나 들고 밥 동냥을 갑니다”라는 진술에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인 식욕(食慾)이 그득하다. 시인이 금강 길을 걷는 고된 행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 속 길’에 “흰 밥과 김치 한 가득/ 그리고 뜨거운 고기도 몇 점”, “차곡차곡 밀어 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종윤은 “밥 한 그릇의 힘이 오십 리”라고 말한다. ‘동냥밥 한 그릇’에서 ‘절실한 그리움’과 ‘뜨거운 눈물’을 깨닫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고, “한 그릇 밥의 희망은 든든하고/ 물병이 두 개나 있는 맑은 날입니다”라는 그의 진술은 인상적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김종윤 시인이 함민복이나 김종삼 같은 시인의 시 세계를 긍정적으로 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온 천지가
눈물 한 섬씩 받아
몸 씻은 날
산봉우리마다 피어나는
붉은 눈물 자국
실컷 울고 난 하늘
한결 깊어지고
붉맑게 흐르는 금강은
가슴과 가슴에
시린 눈물 한 사발씩 건네며
마을을 지나 바다로 간다
우리는
눈물이 많은 짐승이라서
기쁨도 눈물로 풀고
슬픔도 눈물로 푼다
금강의 굵은 눈물 한 줄기는
강물이 되어 끝끝내
바다에 닿는다
―「비 온 다음 날―금강 길 4」 전문
김종윤은 ‘햇살 뜨거운 날’에만 금강 길을 탐색하지 않는다. ‘비 온 다음 날’에도 시인의 금강 길 탐색은 계속된다. 그는 비 온 다음 날을 ‘몸 씻은 날’로 규정하고 ‘비’를 ‘눈물’로 해석하는데, 이는 매우 개성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바다로 흐르는 금강의 여정을 눈물의 행진으로 해석한 점이 탁월하다. “우리는/ 눈물이 많은 짐승이라서/ 기쁨도 눈물로 풀고/ 슬픔도 눈물로 푼다”라는 시인의 단언은 한국인의 성정(性情)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은 유구한 역사를 감당하고 있다. 김종윤은 우리에게 금강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기쁨과 슬픔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초승달에 빛나는 호수는
묵색의 빈 편지지 한 장이다
용담골을 떠나지 못하고 호숫가에 둘러앉은
낮은 불빛들을 향해 편지를 쓴다
잔설 옆에 노루귀꽃이 피고
정자 옆 양지에는 산수유 봄물 오른다고 쓴다
어제는 고사리밭에 묘 한 채가 이사를 왔다고
남의 발로 돌아왔지만
세상에 그리움보다 더 큰 이념이
어디 있겠느냐고 쓴다
찬바람 달래면서 용담호 수면에 가만 가만 눌러 쓴다
―「용담호에 쓰는 편지―금강 길 10」 부분
용담호(龍潭湖)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정천면·안천면·상전면·주천면·진안읍 일대에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조성된 인공 호수이다. 곧 용담호는 진안군의 1읍 5개 면을 수몰(水沒)시켜 만든 거대한 담수호이다.
김종윤은 ‘초승달에 빛나는 호수’ 곧 ‘용담호’를 ‘묵색의 빈 편지지 한 장’에 비유한다. 시인은 용담호에게 편지를 쓰는데, 용담호와 그 주변을 향해 편지를 쓰는 행위는 이 시를 추동하는 틀이다. 시인의 눈은 ‘낮은 불빛들’, ‘노루귀꽃’, ‘산수유 봄물’ 등을 포착하면서 편지를 쓴다. 4회 출현하는 동사 ‘쓴다(쓰다)’는 김종윤의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강조한다. 이 시의 가장 빛나는 대목으로는 “세상에 그리움보다 더 큰 이념이/ 어디 있겠느냐고 쓴다”를 꼽을 수 있겠다. 시인에 따르면 ‘그리움’은 ‘이념’보다 힘이 세다. 그리움 같은 개인의 순수한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정시이다.
----김종윤 시집, ‘금강종주시편縱走詩篇’ {금강 천리 길}, 도서출판 지혜, 값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