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토, 일 연달아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토요일은 산다래 암장에서 교육이 진행되었는데 이날 여러 이유로 인하여 (주차장 막힘, 릿지화 부모님댁에 놓고 옴) 너무 늦은 시간에 암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날 아침 기온이 영하 7도였습니다. 산다래 암장 옆에 있는 작은 오버행 구간에서 볼트와 웨빙을 이용한 등반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시간이 1시 30분 무렵인데 공기가 찬 건 물론이고 바람도 너무 세서 다들 추위에 떨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날은 이른 철수를 하고 당고개역 앞의 샤브샤브 가게에서 간단하게 회식을 한 뒤 헤어졌습니다.
일요일 4주차 교육에는 늦지 않게 ktx표도 이른 시간으로 예매를 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여유있게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당고개역에서 옆의 잠든 사람을 깨우다가 문이 닫혀버려 뜻밖의 종점 구경을 하고 다시 당고개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ㅎㅎ
날이 풀려서 그런지 당고개역 1번 출구 앞에 등산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보여 있더라구요. 세현님과 운봉대장님, 타나님 이렇게 실버암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25분 쯤 열심히 올라갔는데 저는 체력이 딸리고 입고 온 옷 때문에 덥기도 해서 가장 꼴찌로 뒤처져서 힘들게 올라갔습니다. 실버암장 옆에 있는 슬랩구간에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암장을 개척하신 분들이 오셔서 여기 이름이 사실은 소속 산악회 이름을 딴 거봉암장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슬랩 구간 중턱에 있는 나무도 잘라서 없애버렸다는데 정말 그 나무가 있던 곳의 바위 색깔만 주변 바위와 다르게 좀더 밝은 색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거기 있던 나무가 작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베어서 내려보내고 제거한 건지 대단할 따름입니다. 뭔가에 미치면(개척자분이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심) 웬만한 장애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극복해내는 열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배울 내용은 톱로핑과 멀티피치 후등빌레이여서 헬멧과 장비들을 착용하고 슬랩에 오르기 위해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빠뜨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암벽화를 안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2주차 때 릿지화로 등반했으니 오늘도 릿지화로 슬랩 구간을 오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생각일 뿐이고 저 빼고 전부 짱짱한 암벽화를 준비해 오셨더라구요. 다행히도 세현님께서 흔쾌히 본인의 암벽화를 빌려주셔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관은 이제부터였습니다. 오늘 오를 슬랩의 경사와 길이는 제가 지난 시간에 오른 산다래 1피치보다 훨씬 가파르고 길었습니다. 운봉대장님이 톱로핑을 걸기 위해 올라가시는 걸 볼 때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올라가시길래 '음, 나도 저렇게 올라가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보기에 쉬워보인다고 그것이 실제로 꼭 쉽지많은 않은 것이었습니다. 벽에 붙는 순간 '아, 이거 장난 아니다' 싶었습니다. 딛고 일어설 때 발이 터질까 무서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매우 천천히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다리는 힘이 빠져서 후들거리기 시작하고 올라갈 기력이 바닥다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의 톱로핑 빌레이를 봐주시던 타나님에게 휴식을 외치면서 반도 못가서 쉬고 말았습니다. 내려갈까 계속 망설였는데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이 한켠에 있어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타나님이 중간중간 팁도 주시고 어디를 밟으면 좋은지도 알려주셔서 힘든 와중에도 계속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슬립이 나면서 '악' 소리도 냈지만 타나님이 저를 주시하면서 계속 텐션을 적당한 정도로 주셔서 결국에는 1피치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탑로핑이 걸린 볼트와 앵커를 만지려고 하자 곧바로 운봉대장님께서 만지지 말라고 외쳐주셔서 그대로 두고 바로 하강을 시작했습니다. 탑로핑으로 올라간 이후의 하강은 지난 시간에 배운 하강기를 이용한 하강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하강기를 이용한 하강은 하강 속도를 본인이 정하지만 탑로핑 하강 시에는 빌레이어가 내려주기 때문에 빌레이어가 내리는 속도, 줄 텐션에 맞추어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엉덩이를 뒤로 못 내리고 힘을 주지 못하니 전혀 내려가지지가 않더군요. 조금 헤맨 뒤에야 서서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체감상 한번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다른 분들보다 5~10배는 오래 걸렸던 같은데 긴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빌레이를 봐주신 타나님께 넘 감사드립니다. 사실 타나님께서 후반부에 텐션을 주지 않으셨으면 저 절대 끝까지 못 올라갔을겁니다ㅠㅠ 그래도 한번 올라갔다 오니 불가능한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밀려들어왔습니다. 물론 경력자분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게 사람들이 암벽에 빠지는 이유인가 싶었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불가능한 난이도로 느껴지는 슬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운봉대장님께서 톱로핑 빌레이 보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톱로핑 빌레이를 볼 때에는 한 발을 암벽쪽에 갖다 대고 몸을 약간 기울여서 하강자의 하중을 잘 받아내게끔 하는게 중요 포인트였습니다. 그리고 1미터 정도 내려왔을 때는 우선 멈춘후 텀을 두었다가 다시 천천히 내려보내야 안전하게 부상 없이 하강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중간에 셀파님도 제가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줄을 당길 때에는 왼손 감지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당겨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톱로핑 빌레이도 스무스하게 보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점심무렵에는 마스타님도 암장에 도착하셔서 제가 두번째로 오를 때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셀파님 역시 슬랩을 올라갈 때의 저의 자세를 꼼꼼하게 봐주셨습니다. 발이 1자가 되게끔 유지해야 한다는 것, 몸을 일으켜 세우기 전에 미리 다음 발이 밟을 홀드를 눈으로 찾아두어야 한다는 것, 계속 좌우로 번갈아가며 양손을 이동시키며 중심이동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 등 많은 팁들을 알려주셨습니다. 나중에 밴드에 올라온 저의 슬랩 등반시 모습을 보니 셀파님 말씀대로 정말 저의 발이 몸과 1자를 이루지 않고 바깥으로 꺾여 있더라구요. 앞으로 연습할 때 이 부분을 더욱 주의하면서 올라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세현님이 저의 톱로핑 빌레이를 봐주셔서 다시한번 같은 피치를 도전했습니다. 아까처럼 몇번을 중간에 휴식을 취한 끝에 간신히 탑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답답한 초보자의 빌레이를 봐주신 세현님께도 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운봉대장님께서 멀티피치 후등 빌레이 연습을 하자고 하셔서 다시 슬랩을 오르게 되었는데 이미 힘이 빠진지라 중간에 도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ㅠㅠ 교육생이 실력이 미진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늦은지라 자리를 정리하고 다같이 하산을 하였습니다.
그 외 오늘 배우거나 들은 내용들 중 기억 나는 것
- 암벽화에 습기 묻으면 안된다, 슬립나기 좋으니 습기 있는 곳 밟지 않게 조심하라
- 슬랩 오를 때 양손 중지쪽으로 암벽을 잡으려고 노력해라
- 등반할 때 매듭 확실한 방법만 써라, 애매한 건 배제하라
- 오르는 도중 쉴 때에는 등반장비의 안전을 믿고 몸을 완전히 뒤로 기대어 편하게 쉬어라
- 선등 아닌 이상 추락해도 크게 다칠 일 없으니 사리지 말고 과감하게 해라
- 무릎보호대 저렴한 거라도 사서 쓰면 좋다
- 팔자 되감기 매듭 맬 때 모양을 지금보다 좀더 예쁘게 매야 한다
- 산림감시원(?)은 조용히 와서 우선 사진부터 찍고 말을 건다, 한번 걸리면 과태료가 최소 50만원 이상이다
- 배낭 짐 챙길 때에는 무거운게 위로 가게 해라
- 인수봉 가려면 오늘 오른 슬랩 정도는 무난하게 오를 수 있어야 한다...
- 암벽화는 어디를 가든 무조건 필수로 챙길 것
- 코드슬링은 자주 안 쓰니 평소엔 오토블럭으로 감아서 끈처리 하고 하강기랑 같이 걸어두면 더 좋다
-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미리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미리 신속하게 해두면 좋다(예: 하산 시 장비 정리가 느리다면 좀 더 미리 시작하기)
- 자일은 원래 1인 1자가 원칙이다. 그래서 기본 가방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무게에 적응해야 한다)
오늘 교육을 진행해주신 운봉대장님과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타나님, 세현님, 마스타님, 셀파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주에도 이번주 처럼 알찬 5주차 교육을 기대하겠습니다^^
첫댓글 와오 ~
오늘의 일기 수고하셨습니다 ~~😁
암벽등반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담주가 기대됩니다~ 곧 뵙지요
넵 블랙님~ 담주에 봬요ㅎㅎ
오늘 즐거웠습니다(카페 가입 했습니다)
오늘 암벽화 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주에도 암장에서 뵙길 바라요~
눈이 아포서.. 다는 못읽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프리맨님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이팅👍🏻👍🏻 자주 나오시다 보면 금방 적응하실 거예요 고생하셨습니다
넵, 앞으로 계속 자주 나오면 차차 적응되겠지요? ㅎㅎ
일기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ㅎㅎ 큰 도전 하고 오셨군요 담주에 뵈어요~ㅎ
한라산 기상이 안 좋아서 못 올라가셨다고 들었어요ㅠㅠ 다음주에 암장에서 봬요~!
꼼꼼히 다 읽은 일인 ㅋ
좋아요 ㅎㅎ
한잔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