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27일
그들은 왜 쓰러지지 않고 끝끝내 살아갈까
밤새 당긴 활시위 맞고도 꼿꼿이 서서
세상을 물구나무 선 채 들어올리는 그 저력 뭘까
각 진 링에 갇혀 떠는 묵언의 질긴 인연
몸 부대끼는 틈으로 휘휘휙 칼바람 분다
가위로 싹둑 잘라낼 그 떡잎이 끈질기다
어떻게 살아왔나 유년의 가파른 길
봄이 오면 이 무거운 수레바퀴 삐걱 일텐데
무죄의 불혹을 넘기며 가난의 모순 이겨냈을까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을 삶의 언덕
이젠 자동 흡입기의 공룡같은 입 속으로
똑바로 들어가 산다 팽팽한 잡풀처럼.
-이재창 시인의 「잡풀論 - 年代記的 몽타주․15」 전문
*자유의 날(Freedom Day): 남아프리카 공화국
*세계 따삐르의 날(World Tapir Day)
613년 (고구려 영양왕24)수나라 양제 고구려 두번째 침략
1050년 [음]문종(文宗) 4년, 동여진의 두 촌락의 경계를 확정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게 함
1283년 [음]충렬왕(忠烈王) 9년, 주(州)·부(府)·군(郡)·현(縣)의 사심관(事審官)을 일시 폐지함
1324년 [음]충숙왕(忠肅王) 11년, 심왕 옹립 요청서에 서명한 관리들을 파면함
1397년 [음]태조 6년, 전란 중에 투항해 온 왜구들에게 관직을 줌
1410년 [음]태종 10년, 동북면(東北面)의 호급 둔전(戶給屯田, 일반 농민이 경작하는 둔전)을 면제해줌
1414년 [음]태종 14년, 하륜이 수도의 경치를 읊은 〈도성형승지곡(都城形勝之曲〉을 지음
1430년 [음]황희·맹사성 등에게 《태종실록》을 감수하게 함
1434년 [음세종 16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반포함
1434년 [음]도절제사의 본진(本鎭)이 부거참(富居站)으로 옮겨 가자 길주(吉州)의 토관(土官)은 혁파함
1447년 [음]세종 29년, 영중추원사 조말생(趙末生) 죽음
1447년 [윤]부녀자들이 절에 가는 것을 엄금함
1475년 [음]성종 6년, 영안·평안·황해도에 면화를 재배하게 함
1504년 [음]연산 10년, 소혜 왕후(昭惠王后, 인수 대비)가 죽음
1511년 [음]중종 6년, 방어청(防禦廳)을 혁파하고 소관 업무를 무비사(武備司)로 이관함
1516년 [음]중종 11년, 충청도 아산·평택 등지에 달걀만 한 우박이 내림
1556년 [음]명종 11년, 함흥에서 머리 둘에 다리가 넷 달린 말이 태어남
1573년 [음]선조 6년, 해운판관(海運判官) 황윤길이 조군(漕軍)을 구제할 계책을 마련함
1612년 [음]광해 4년, 평양에 있는 기자(箕子) 사당을 숭인전(崇仁殿)으로 고침
1617년 [음]광해 9년,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죽음
1682년 [음]숙종 8년, 허목(許穆) 죽음
1792년 [윤]정조 16년, 경상도 유생이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신원을 청함
1794년 [음]정조 18년,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사당을 수리함
1798년 [음]정조 22년, 화성(華城) 만년제(萬年堤)가 완성됨
1824년 [음]순조 24년, 왜관을 벗어나 난동을 부린 왜인을 징계하게 함
1837년 조선 제25대 국왕 철종의 비 철인왕후 출생
1854년 [음]철종 5년, 러시아 배가 함경도에서 백성을 살상함
1865년 (조선 고종2)경복궁 지을 영건도감 설치
1869년 (고종6)서울 동대문 중건 완료
1895년 한성~개성 간 전화 개통
1896년 (고종33)일본군 안동민가 방화 1000여채 손상
1897년 서울 관공립 소학교생 1천여 명, 동대문 훈련원에서 대운동회 개최
1921년 군사 통일 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무효 통첩
1922년 평양 감옥의 정치범 1,500여 명, 짐승 같은 대우 거부하며 6일간 동맹 투쟁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서울 견지동 88회관에서 집무 개시
1925년 경성 무산 청년회, 서울에서 창립
1927년 대한민국의 방송인 송해.
1935년 손기정, 서울에서 개최된 마라톤에서 2시간25분14초로 세계신기록 수립
1941년 조선총독부, 〈가격표시 의무화〉 명령 고시
1948년 제9연대, 제주 4·3 사건 진압 작전 개시
1949년 국회 농지개혁법안 가결
1951년 대한민국에서 군이 반정부 시위 진압
1953년 대한민국에서 한글 맞춤법을 소리나는 대로 쓰자는 안이 공포
1960년 검찰, 4·19 연행자 전원 석방
1960년 대법원, 3·15 선거 당시 중앙 선거 관리 위원을 겸임한 김두일·변옥주 대법관의 사표 수리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60년 허정 외무장관, 대통령직 대행
1960년 경향신문 복간
1962년 혁명재판소, 통사당-통일민전사건 선고
1963년 증권시장 공영화
1968년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상 제막
ㅡ충무공탄신 4백23주년을 하루 앞둔 1968년 4월 27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제막됐다. ‘애국선열 조상(彫像)건립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각계인사가 참석, 선열의 열을 되새겼다.
구리로 만든 충무공 동상은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고(故) 김세중씨가 13개월에 걸쳐 만든 작품으로, 좌대(座臺) 높이 12m, 동상 높이가 9m에 달했다. 30평 화강석 좌대에 세워진 동상의 전면양쪽에는 청동주물의 독전고가, 좌대 하충부분에는 청동주물의 길이 3m 되는 거북선이 놓였고 좌대뒷면에는 이은상씨의 명문이 새겨졌다.
당초 세종로에 세워지는 동상이니 만큼 세종대왕을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제가 훼손한 조선왕조의 축(=정기)을 되살리는 데는 이순신 장군이 최고라는 의견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져 충무공 동상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36년간 우리들은 각 시대마다 다른 표현과 방법으로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주변에 모여 이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며 입을 모아 민주주의를 갈구해왔다.
2004년 2월, 서울시의 광화문~세종로 네거리의 광장 조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한 때 이순신 장군 동상이 시청 앞 광장으로 옮겨질 뻔 했으나 점증하는 시민과 전문가의 반대 여론과 서울의 대표적인 기념물이라는 점 등이 고려돼 당초 시의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오늘도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박정희 후보 3선, 박정희 6,342,828표(득표율 53.2%) 김대중 5,395,900표(45.3%)
1972년 보사부, 수련의 파견으로 의사 없는 지역이 해결됨에 따라 의사의 해외 이주 억제 조치 폐지 결정
1975년 부산 동래 침투무장공비 검거사건
ㅡ부산시 동래구 석대동 거주 민간인이 산에서 거동 수상자 2명을 발견 신고, 출동한 군·경은 간첩 1명 체포, 5월 3일 간첩 추가 검거
1977년 일본 중의원, 한일대륙붕협정 비준안 통과
1981년 한일은행 민영화 발표
1982년 경남 의령 경찰서 우범곤 순경, 인근 5개 마을 주민들에게 총기 난사. 60여 명 사망, 35명 부상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실시 여소야대 정국, 민정 87석·평민 54석·민주 46석·공화 27석
1989년 정부 분당-일산 지구 신도시개발계획 발표
1991년 박정수외무통일위장,한국국회대표단 일행 25명이 제85차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에 참석
1991년 여·야 국회원내총무, 시위진압경찰의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 합의.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시위 도중 경찰에 맞아 사망 : 전국에 항의 시위 확산.
1992년 한국-타지키스탄, 국교 수립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1992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등 5개 재야단체,육군 제25사단 정도준이병(23 )의문사 의혹 제기
1993년 국회,박준규 의장의 사퇴안을 가결하고 이만섭 의원을 새의장으로 선출
1993년 서울지검,89년 밀입북한 뒤 해외에 체류하다 귀국한 소설가 황석영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1993년 감사원, 차세대 전투기사업(KFP)을 포함한 「율곡사업」 전반에 걸쳐 특별감사 실시 결정.
1993년 국세청, 일반업종 과세대상이었던 변호사, 의사, 가수, 탤런트, 직업 운동가 등을 중점 관리업종에 포함
1993년 세계 最古 로켓 항공우주연구소 채연석 박사팀이 복원, 발사 성공.
1993년 안기부 북한 다녀온 소설가 황석영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김포공항에서 체포 구속
1993년 환경처 태백시 대성산과 광양군 백운산 지역 자연생태계보호지역 지정
1993년 이만섭 국회의장 피선
1993년 소설가 황석영씨,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ㅡ1989년 밀입북한 뒤 해외에 체류하다 귀국한 소설가 황석영씨가 1993년 4월 27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1962년 월간 ‘사상계’에 ‘입석부근’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탑’과 희곡 ‘환영의 돛’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민중의 어두운 현실을 그린 사실주의 소설 ‘객지’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198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운영위원·민중문화운동연합 대표를 거쳐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1989년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남측 대변인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가 여러차례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이어서 독일에서 체류하다가 1993년 귀국하여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작품으로는 ‘한씨연대기(1972)’ ‘삼포가는 길(1973)’ ‘장길산(1984)’ ‘무기의 그늘(1989)’ 등이 있다. 1994년 국제 펜클럽의 ‘박해받는 작가 7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4년 서울고등법원,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파면 처분 취소 판결
1995년 안기부 박창희 외대교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전국교육자대회(잠실)에서 `新교육구상'을 발표하고 10대 실천과제 제시
1995년 노동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마련
1996년 통일원, 삼성전자ㆍ태창ㆍ대우전자 등 3개 기업이 신청한 1920만달러규모의 대북투자사업 승인
1996년 주한미군사령부 한국의 재판권행사에 항의
1998년 일본지방법원, 한국인 ‘군 위안부’ 3명에 일본 정부 30만 엔씩 지급 배상 판결
1999년 김대중 대통령, 5대그룹 총수 만나 구조개혁 약속 불이행시 금융제재 경고
2000년 헌법재판소 과외금지 위헌판결
ㅡ서울지법이 과외를 금지한 학원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와 제22조 1항 1호에 대해 위헌제청한 사건 등 2건에 대해 "자녀 교육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재판관 9명중 6명의 찬성으로 위헌 결정했다.
이에따라 이 법률조항은 이날짜로 효력을 상실했으며 1980년 7월 30일 이후 금지돼 온 과외교육이 사실상 전면 허용됐다. 헌재의 결정에 대해 학부모, 교사, 학교당국, 교육관련단체, 법조계 등은 `학교밖 교육영역`에 관한 한 부모의 교육권을 우선시한 법리성은 이해하지만 빗장풀린 사교육 팽창과 공교육의 붕괴에 대해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2000년 삼성자동차 프랑스 르노자동차에 건설비용의 10분의1도 안되는 가격으로 팔림
- 1995.4월 공사시작, 삼성자동차 55만평 공장부지 조성비용 6,000억원으로 다른 회사보다 4배이상 비싸 공장 가동후 적자의 늪에 빠짐
-- 르노-삼성-채권단이 합작설립한 ‘삼성-르노자동차’는 자본금3,600억원 자산1조원이상, 지분은 르노70.1% 삼성19.9% 채권단10%
2002년 부산 동의대사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
ㅡ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1989년 부산 동의대 도서관에서 농성 진압 도중 화재로 경찰관 7명이 사망한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명에 대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키로 결정했다. 찬성 5명, 반대 3명, 기권 1명의 다수결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경찰과 유족들은 공권력에 폭력으로 대항해 인명을 살상한 것도 민주화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5·3 동의대 사건`은 1989년 3월 입시부정을 폭로한 한 교수의 양심선언과 44일간의 총장실 점거투쟁 과정에서 일어났다. 학내 분규가 계속되는 와중인 그해 5월 1일 노동절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인근 가야3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공포탄 20여발을 발사하며 일부 학생들을 연행했고, 학생들도 다음날인 2일 가두 항의집회에서 전경 5명을 납치했다.
이에 경찰은 3일 새벽 구출작전을 벌였으나 농성 학생 100여명은 도서관 복도에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가 나 경찰관 7명이 숨지고 11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당시 검찰은 학생 70여명을 살인죄 등으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살인죄 대신 방화치사상죄 등을 인정해 이들에게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했다.
2002년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
2002년 수원 영통동 여성 연쇄살인사건 발생
2004년 민주당 당직자 일괄사표, 사무처 해단식
2004년 국가보훈처, 이애라 선생 2004년 5월 독립운동가에 선정
ㅡ국가보훈처는 27일 여성 독립운동가인 이애라(李愛羅·1894∼1922)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 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3·1운동 직후 남편이 ‘비밀 독립운동본부’ 를 결성하자 이를 돕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국민대회와 비밀회의를 개최토록 해 한성 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공헌했다. 선생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고, 1920년 출옥 후 수원·공주·아산 등지의 교회를 돌아다니며 여성부인회를 결성해 모금운동을 벌인 뒤, 1921년 러시아 망명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선생은 일본 경찰의 감시 소홀을 틈타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1922년 9월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04년 제5회 광주인권상에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선정
ㅡ(재)5·18기념재단은 27일 광주인권상심사위원회를 열고,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59) 여사를 선정했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뒤 88년 귀국, 군사독재정권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여왔다. 그녀의 저항운동은 미얀마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로 인해 7차례의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녀는 지난해 5월 이후 현재도 억류상태에 있다. 국제사회는 수치 여사의 투쟁에 지지를 보냈으며, 지난 91년엔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광주인권상은 지난 2000년부터 5·18정신을 선양하고 민족분단 극복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공헌한 국내·외 인사를 선정·시상해왔다. 수상자에게는 1만달러가 주어진다.
2004년 한국 로봇 ‘롭해즈’, 세계로봇경진대회서 1위 입상
ㅡ한국과학기술원 휴먼로봇센터 김문상 박사팀이 개발한 위험지역의 불규칙한 지형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격제어로봇 ‘롭해즈’. 2004년 4월 27일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이 세계 로봇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강성철 지능로봇연구센터 박사팀이 제작한 위험작업 로봇인 ‘롭해즈(ROBHAZ)’가 이날 미국 뉴올리언스대학에서 열린 세계 로봇경진대회 구조로봇 부문에서 우승한 것이다.
롭해즈는 지형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두 개의 트랙을 로봇 몸체 양쪽에 설치, 계단이나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최대 시속 5km로 이동할 수 있어 폭발물 탐지와 화재 현장에서의 인명 구조 등 위험한 작업을 위해 제작됐다.
세계 로봇경진대회는 97년부터 시작한 권위 있는 대회로 강 박사팀 외에도 구조로봇 부문에만 미국 카네기멜론대, 뉴올리언스대, 독일 브레멘대, 캐나다 마니토바대 등이 참여해 경쟁을 벌였다. 이번 구조로봇 부문은 지진 상황을 연출한 모의현장에서 20분 동안 어느 로봇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얼마나 많은 모의 희생자를 탐지하는가를 측정했다. 경기 결과 강 박사팀은 대회 사상 가장 높은 점수(123점)로 우승했다고 KIST는 밝혔다.
200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성화봉송 행사에서의 중국인 폭력시위 사건이 발생
2010년 오은선, 여성 산악인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논란
ㅡ4월 27일 오후 6시 16분(이하 한국시간) 대한민국의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이 안나푸르나(해발 8091m)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로 8000m급 고봉(高峰)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지난 1997년 갸셔브롬 2봉(8035m) 등정 이후 13년만에 이룬 쾌거였으며 이중 12개봉은 무산소 등정이다. 1985년 수원대학교 산악부에서 처음으로 산악계와 인연을 맺은 오은선은 1993년 故 지현옥 대장을 중심으로 한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참가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여성 산악인으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오은선은 이날 오전 1시 40분 라이벌이었던 고(故) 고미영 대장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서 캠프 4(해발 7200m)를 출발했다. 고미영은 2009년 7월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다가 추락해, 결국 사망했다.
캠프4를 출발한지 18시간이 지난 오후 6시 16분, 드디어 정상에 오른 오은선은 태극기를 들고 두 손을 흔들었다.
지구상에서 해발 8000m가 넘는 산은 에베레스트(8848m), K2(8611m), 캉첸중가(8603m) 등 모두 14곳으로,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있다. 지금까지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66)가 세계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이후 24년 동안 14좌를 완등한 19명은 모두 남성 산악인이었다. 우리나라 산악인으로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3명이 포함돼 있다.
오은선의 강력한 경쟁자인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Pasaban·37)은 5월 17일 오후 11시30분쯤 마지막 시샤팡마 정상을 오르며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했다. 스페인 바스크족 출신인 파사반은 2001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9년만에 14좌를 완등했다.
파사반은 오은선이 2009년에 오른 칸첸중가 등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은선의 하말라야 14좌 완등에 국내외에서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0년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인 대한민국의 새만금 방조제가 준공
2011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첫 방송
2011년 4·27 재보궐선거
ㅡ한나라당이 4.27 재보선에서 텃밭인 분당을을 내주고 강원도지사 탈환에 실패하는 등 사실상 완패했다.
한나라당은 경기 성남 분당을과 강원, 경남 김해을 등 ‘빅3’ 지역 중에서 분당을과 강원을 야권에 내주면서 ‘1:2’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거뒀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서가 짙은 김해을에서 김태호 후보가 승리를 거둬 화려한 재기를 하게 됐고 영남권 민심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여권으로서는 수도권 ‘텃밭’ 인 분당을에서 패하면서 패닉에 가까운 충격 속에 내년 총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각종 현안을 마무리 해야 할 청와대도 상당한 부담감을 안게 됐다.
2012년 80~90년대 가요 황금기 연 이호준 별세
2012년 남해고속도로 서영암 나들목 ~ 해룡 나들목 구간(목포-광양 고속도로)이 개통
2014년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 지킴이 해인사 성안스님 작고
2015년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2015년 이완구 국무총리 퇴임
2015년 평창올림픽 한국 국적 선택한 노르웨이 스키 스타 김마그너스
ㅡ크로스컨트리 스키 기대주 김마그너스(17·노르웨이명 마그너스 보어·사진)가 태극 문양을 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선다.
그의 소속사인 브리온컴퍼니는 27일 “김마그너스가 한국 스키 발전에 대한 강한 포부와 어머니의 나라에 대한 애정으로 한국 대표를 택했다”고 밝혔다. 마그너스는 1998년 부산 선박회사에서 일하던 노르웨이인 아버지 오게 보어(59)씨와 한국인 어머니 김주현(55)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을 부산서 보내 지금도 부산 사투리를 쓴다. 그는 크로스컨트리 시작 1년 만인 2012년 노르웨이 전국스키선수권에서 남자 15세 클래식 및 스프린트 우승을 차지한 차세대 유망주이다.
노르웨이는 ‘스키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크로스컨트리에서 올림픽 최다 금메달(31개)을 딴 이 분야 최강 국가다. 반면 한국의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올림픽 30위 안에 든 적이 없다. 마그너스는 최근 3차례의 전국체전에서 무려 1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압도적 기량을 과시했다.
2016년 대한민국의 MBN플러스 개국.
2017년 삼성전자 지주회사 포기
2018년 판문점 제3차 남북정상회담,
ㅡ김정은 위원장 군사분계선 넘어 남쪽으로 내려옴, ‘판문점선언’ 발표
2018년 4월27일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18년만이고,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11년만의 회담이었다.
회담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관계 발전 등이었으며, 그 결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총 3개항)이 발표되었다.
이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미국과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한국 재즈1세대 클라리넷 주자 이동기 세상떠남
2019년 DMZ 4.27 평화손잡기, DMZ길 500km((강원도 고성 - 인천 강화 교동도)에서 시민 20만명 손에 손 잡음
2021년 정진석 추기경 선종(90세)
ㅡ정진석 추기경 향년 90세.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1961년 사제품을, 1970년 주교품을 받고서 청주교구장에 취임했다.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됐으며 1998∼2012년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로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 머물며 집필활동에 매진해왔다.
2022년 가덕도 신공항 계획 국무회의 의결
BC399년 그리스철학자 소크라테스 세상떠남
ㅡ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4월 27일 독배를 마시고 숨을 거뒀다. 70세였다. 죄명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았다는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였다.
소크라테스는 첫 배심에서 500명의 아테네 배심원들 가운데 280명이 그의 유죄를 인정해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테네 재판 방식에는 유죄가 인정된 사람에게 항변의 기회를 준 후 다시 형벌을 정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제도가 소크라테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 소크라테스는 항변의 기회가 주어지자 "자신은 죄가 없다", "배심원들이 자신의 공을 인정하고 광장에서 향연을 베풀어줘야 한다"며 공격적인 항변을 한 것이다. 결국 유죄라고 인정한 280명에 다시 80명이 보태진 360명이 사형 지지자로 돌아섰다. 한달 뒤인 이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국외로 도망치라는 친구와 제자들의 설득을 거절한 채 독배를 마셨다.
소크라테스의 비극은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인들의 우연적인 결합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아테네는 30년동안 지속되다가 기원전 404년에야 끝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배해 사회 전체가 어수선했으며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두 차례의 전염병과 시칠리아 침공 실패 등으로 사회 분위기는 극도로 암울했다. 더구나 아테네 시민들이 극도로 불만스러워 했던 `30인 참주제`에 참여한 참주 가운데 악덕하기로 소문난 몇몇 사람과 적국인 스파르타에 전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전쟁과 폭정에 대한 쓰라린 기억이 들 때마다 소크라테스를 원망했다. 이때 우연히 찾아온 그에 대한 고발은 희생양를 찾고 있던 사회 분위기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 결국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셔야 했다.
1521년 인류최초로 지구일주 항해한 스페인항해가 마젤란, 필리핀 원주민통치자 라푸라푸와의 전투에서 세상떠남
ㅡ포르투갈 출신의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1521년 4월 27일 필리핀 막탄섬에서 원주민과 전투중 전사했다. 대탐험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이었다.
마젤란이 역사상 최초의 세계일주를 위해 스페인의 세빌랴를 출항한 것은 1520년 11월 28일이었다. 탐험 앤티워프 출신 상인의 경제적 지원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의 허락을 받고 시작한 탐험에는 다섯척의 선박과 270명의 승무원이 동원됐다. 이듬해 11월 28일 남미 남단과 푸에고 제도 사이를 통과해 태평양에 이른 마젤란은 수개월동안 서진을 계속해 1921년 3월경에 괌섬과 필리핀을 발견했다. 필리핀 세부에서는 군주와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스페인 왕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게 했다.
그러나 마젤란은 이날 섣불리 막탄섬을 공격하다가 부하 12명과 함께 전사했다. 나머지 선원들이 세빌랴에 도착한 것은 1522년 9월 8일이었고 생존자는 18명이었다. 비록 마젤란 자신은 세계일주를 하지 못했지만, 그는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 항해의 지휘자였다.
1667년 시각장애와 가난에 시달린 존 밀튼이 "실낙원"의 저작권을 10 파운드에 팔다
1788년 영국역사가 에드워드 기본 『로마제국 흥망사』(전6권) 완성
1791년 미국 무선부호(전신기) 발명가 모스 출생
1794년 청나일강 원류에 도달한 스코틀랜드 탐험가 짐 브루스 사망
1820년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출생
1822년 미국의 군인,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 출생
1865년 미국증기선 설타나 호 미시시피강에서 보일러폭발로 침몰 사망1,800여명
1822년 미국 제18대 대통령(1869-1877 재임) 율리시스 그랜트 출생
1882년 미국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 세상떠남 『자연』 『미국의 학자(미국의 지적 독립선언이라 일컬어짐)』 『수상록』
1891년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출생
1904년 이탈리아의 아랍학자 프란체스코 가브리엘리 출생
1906년 영국-청 티베트조약 조인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 개막
1927년 미국의 인권 운동가 코레타 스콧 킹 출생
1937년 이탈리아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48세) 옥중에서 뇌출혈로 세상떠남 『감옥에서 보낸 편지』 『옥중수고』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인간 모두는 나름대로 철학자이다”
1945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애인과 함께 처형
ㅡ서쪽과 동쪽에서 각각 진격해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이 독일 엘베강 중류 토르가우 부근에서 감격적인 악수를 교환함으로써 2차대전도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1945년 4월 25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가 정부(情婦)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밀라노를 탈출한다.
목적지는 스위스. 그러나 둘은 스위스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탈출 이틀 만에 이탈리아 북부 코모 호수 근처에서 파르티잔에 체포돼 좀더 살아보려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살려만 주면 제국을 주겠다”며 목숨을 구걸했으나 용서받기에는 그가 인류에 끼친 악행이 너무 컸다.
27일 약식재판을 거쳐 총살형에 처해졌고 시체는 28일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 군중 앞에 공개됐다. 이틀 뒤에는 히틀러도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을 선택한다. 무솔리니·히틀러에 앞서 4월 12일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도 세상을 떠 2차대전의 주역 네 사람 중 처칠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2차대전의 결말을 보지 못한 채 모두 세상을 떠났다.
1947년 양키 스타디움 (1923년)에서 베이브 루스 데이 행사가 열리다.
1952년 소련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전략 폭격기 투폴레프 Tu-16이 첫 비행
1957년 중국, 정풍운동에 관한 지침 공포
1959년 유소기, 중국 주석에 선출
ㅡ중국의 전국인민대표회의가 1959년 4월 27일 만장일치로 유소기를 국가 주석으로 선출했다. 1921년 공산당 창당이래 강경파인 유소기는 저명한 노동조직가로 알려져 왔다.
그는 1927년에 공산당 중앙위원이 되었고 1934년에는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1943년 중앙서기처 서기, 인민혁명군사위 부주석, 1949년 중앙인민정부위 부주석을 거쳐 1954년 중국공산당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헌법 초안의 제안설명을 하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 선출됐다. 1956년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그는 공산당의 조직과 이론 정립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고 정치권력 면에서도 모택동 다음에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그의 기술 우선, 엘리트 존중 등의 사고방식이 점차 모택동의 사상과 차이를 보여, 1966년 모택동이 주도하는 문화대혁명의 1차 표적이 되었다. 결국 1969년 10월 제8기 중앙위 확대 제12차 총회에서 `당으로부터 영구 제명과 당 내외의 일체 직무 해임`이 결의되어 축출됐다.
1960년 토고, 프랑스로부터 독립
1961년 시에라리온,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6년 소련 타시겐트 지방 대지진
1966년 페루여객기 안데스산맥에 추락. 49명 사망
1967년 몬트리올 만국박람회가 개막. 10월 27일까지 진행
1969년 볼리비아의 독재자 레네 바리엔토스 작고
1972년 아프리카 가나의 초대 대통령 콰메 은크루마 사망
1972년 미국 우주선 아폴로 16호 지구 귀환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 군부쿠데타, 칸 대통령 피살
1983년 소련, 우주무기 금지협정 제의
1989년 일본 마쓰시타전기 설립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세상떠남, 차세대 국가지도자 육성을 위해 사비70억엔 들여 ‘마쓰시타 정경숙’ 세움 “회사나 가게를 찾아오는 고객은 모두 신과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마음으로 고객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
1992년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 작고
1993년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단 25명을 태운 DHC-5 비행기가 가봉 근해에서 추락. 승무원 5명 포함, 탑승객 30명 전원 사망.
1994년 남아공 첫 흑인참여 자유총선거, 넬슨 만델라 65%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
1994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의 73번째 총리로 취임
1996년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 1976-83년 사이 군부독재정권 협력에 대해 대국민사과성명 발표
2001년 페루, 미주 대륙 최초의 고대문명 새로 발견
ㅡ남미의 페루에 잉카 문명을 앞서는 고도의 문명사회가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2001년 4월 27일자에 따르면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카랄 유적의 연대를 정밀 측정한 결과 약 4000년 전인 B.C 26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판명됐다.
당초 고고학자들은 카랄 유적의 연대를 B.C 1000년으로 추정했었다. 미국·페루 공동연구팀은 카랄 유적에서 발견된 식물 샘플에 대해 탄소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을 해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같은 결과는 아메리카 대륙에 고도로 집단화된 도시문명이 형성된 시점을 800년 이상 앞당긴 것으로, 이에 따르면 페루의 카랄이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도시문명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성립하는 것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에서 초기문명이 시작되고 있을 당시, 남미의 페루에서는 대규모 석조물과 피라미드 주거지가 건설되는 등 문명이 융성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또 당시 카랄에 이미 농어업 및 수공업 문화가 있었으며, 중앙집권적 정부나 조직이 주민들을 동원해 60피트 높이의 피라미드를 6개나 건설했다고 말했다.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카를로스 메넴과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대결한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메넴이 24.14%, 키르치네르가 22.04%의 지지를 얻었다.
2004년 리비아 국가원수 카다피 15년 만에 유럽 방문
ㅡ‘국제 테러국’의 오명을 씻고 개방을 가속화하려는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가 2004년 4월 27일 15년 만에 첫 유럽 방문에 나섰다. 카다피 국가원수는 27일 가장 먼저 유럽의 심장부인 EU 본부를 찾았다.
서 벨기에 브뤼셀에서 로마노 프로디(Prodi) 유럽집행위원회(EC) 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관계 정상화에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이어 프로디 위원장과 회담 후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리비아가 유럽과 아프리카의 가교 역할을 맡아 세계 평화 증진에 있어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유럽·미국 기업들이 리비아의 석유산업에 투자·개발해줄 것을 요청했다.
카다피의 브뤼셀 방문은 리비아의 ‘회개’의 대가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8년 만에 경제 제재를 완화한다고 발표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 미국은 1986년 미군 관리들이 주로 드나드는 서베를린의 디스코텍이 리비아 테러범에게 폭파된 이후 경제 제재 및 여행 금지 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최근 리비아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하고 팬암 등 서방 항공기 폭파사건을 배상키로 합의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고, 서방의 경제 제재 해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07년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세상떠남
2012년 파키스탄에 거주중이던 오사마 빈 라덴의 유족 전원이 모두 사우디아라비아로 추방되다
2012년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일어나 최소 29명이 다치다.
2020년 미국 페미니스트 고고학자 셀라 밀리지 넬슨 세상떠남(89세) 한국 신석기유적 발굴에 기여, 『영혼의 새』(한국 고대유적 소재로 한 소설)
2022년 중국, 베이징도 전면봉쇄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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