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亂中日記)-130 난중일기 정유년(1597년) II 10월
16일. 계유. 맑음. 우수사와 미조항 첨사를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 현감 유형도 보냈다. 내일이면 막내 아들의 죽음을 들은 지 나흘째가 되는 날인데 마음 놓고 통곡하지도 못했다. 염한(鹽干:소금 굽는 사람) 강막지의 집으로 갔다. 이경에 순천 부사 우치적, 우후 이정충, 금갑도 만호 이정표, 제포 만호 주의수 등이 해남에서 돌아왓는데 왜적 열세 명과 적진에 투항해 들어갔던 송원봉(宋元鳳)등의 머리를 베어왔다.
17일. 갑술 맑았으나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새벽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하는데 하얀 띠를 두르고 있으니 이 비통함을 어찌 참으랴. 우수사가 와서 만났다.
18일. 을해. 맑음. 바람이 그치는 것 같았다. 우수사는 배를 부릴 수 없어 바깥 바다에서 잤다. 강막지가 와서 알현하고 임계형, 임준영도 와서 알현하였다. 삼경 초에 꿈을 꾸었다.
19일. 병자. 맑음. 새벽꿈에 고향집의 종 진(辰이 내려왔는데 죽은 아들이 생각나서 통곡을 하였다. 늦게 조방장과 경상 우후가 와서 만났다. 진사 백진남이 와서 마나고 임계형이 와서 알현했다. 김신웅(金信雄)의 아내 이인새(李仁世), 정억부(鄭億夫) 를 붙잡아 왔다. 거제 현령. 안골포 만호, 녹도 만호, 웅천 현감, 제포 만호, 조라포 만호, 당포 만호, 우우후가 보러 왔는데 적을 잡았다는 공문을 가져와서 바쳤다, 윤건 등의 형제가 왜적에게 붙었던 자 두 명을 붙잡아 왔다, 어두울 무렵 코피가 한되 남짓 흘렀다, 밤에 앉아 생각하느라 눈물이 났다. 어찌 말로 다하리요. 이제는 영령(英靈:죽은 혼령)이 되었으니 끝내 불효가 이 지경에 이르개 된것을 어찌 알랴. 비통한 마음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함을 억누를 수가 없다.
20일. 정축. 맑고 바람도 잤다. 이른 아침에 미조항 첨사, 해남 현감, 강진 현감이 해남현의 군량을 운반하기 위해 돌아간다고 보고하고, 안골포 만호 우수(禹壽)도 돌아간다고 보고했다. 늦게 김종여, 정수(鄭遂), 백진남이 보러와서 윤지눌(尹志訥)의 못된 짓을 말하였다. 김종려을 소음도(所音島) 등 열세 개 섬의 염전의 감자도 감검(監煮島監檢:감독관)으로 정하여 보냈다. 군영에 속한 사화(士化)의 모친이 배안에서 죽었다기에 곧바로 매장하도록 군관에게 일럿다. 남도포 겅응표, 여도 김인영의 두 만호가 와서 알현하고 돌아갔다.
21일. 무인. 사경에 비가 오다 눈이 오다 했다. 바람이 몹시 차가워 뱃사람들이 추어서 얼지 않을까 걱정하여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진시에 눈보라가 크게 일었다. 정상명이 와서 보고하기를 무안 현감 남언상(南彦祥)이 들어왔다고 했다. 언상은 원래 수군에 속한 관원인데 제 몸만 보존하려는 계책을 세우고자 하여 수군에 오지 않고 몸을 산골에 숨긴 지 이미 달포를 넘기더니 적이 물러간 뒤에야 중벌을 받을 까 두려워 비로소 나타났다. 그 하는 짓이 매우 해괴하다. 늦게 가리포 만호 및 배 조방장과 우후가 와서 절했다. 종일 눈보라가 쳤다. 장흥 부사가 와서 잤다.
22일. 기묘. 아침에 눈이 오고 늦게 갰다. 장흥 부사와 함께 식사를 했다. 오후에 군기시(軍器寺) 직장(直長) 선기룡(宣起龍) 등 세 명이 유지와 의정부의 방문(傍文)을 가지고 왔다. 해남 현감 유형이 적에게 붙었던 윤해(尹海), 김언경(金彦京)을 결박하여 올려 보냈기에 나장이 있는 곳에 단단히 다두어 두도록 했다. 무안 현감 남언상은 가리포의 전선에 가두었다. 우수사가 황원(黃原)에서 와서 김득남(金得男)을 처형하였다고 했다. 진사 백진남(白振南)이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23일. 경진. 맑음. 늦게 김종려 정수가 와서 만났다. 조방장 배경남이 우후 이의득, 우수사 우후 이정충도 왔다. 적량, 영등포 만호가 잇따라 왔다가 저녁에 돌아갔다. 이날 낮에 윤해, 김언경을 처형했다. 대장장이(冶匠) 허막동을 나주로 보내려고 초경에 종을 시켜 불렀더니 배가 아프다고 했다. 전마(戰馬)의 떨어진 편자를 고쳐 박았다.
24일. 신사. 맑음. 해남에 있던 왜군의 식량 삼백스물두 섬을 실어왔다. 초경에 선전관 하응서(河應瑞)가 유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우후 이몽구를 처형하라는 것이였다 .그 편에 들으니 명나라 수군이 강화도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경에 땀이 나서 등을 적셨는데 삼경 말에야 그쳤다. 사경 말에 선전관과 금오랑(금부도사)이 왔다고 한다 .날이 밝았을 때 들어왔는데 선전관은 권길(權吉)이고 금오랑은 훈련원 주부(主簿) 홍지수(洪之壽)였다. 무안 현감 남언상, 목포 만호 박수경, 나경포 만호 윤승남을 잡아갈 일로 여기에 온 것이다.
25일. 임오. 맑음. 몸이 몹시 불편했다. 윤련(尹連)이 부안에서 왔다. 종 순화(順花)가 아산에서 배를 타고 온 편에 집안의 편지를 받아보고 심회가 불편하여 뒤척거리며 혼자 앉아 있었다. 초경에 선전관 박희무(朴希茂)가 유지를 가지고 왔는데 명나라 수군이 배를 정박하기에 알밪은 곳을 헤아려 지게(馳啓:급보)했다는 것이다. 영희우(梁希雨)가 장계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되돌아 왔다. 충청 우후가 편지를 보내고 또 홍시 한 접을 보내왔다.
26일. 계미. 새벽에 비가 뿌렸다. 조방장 등이 와서 만났다. 김중려, 백진남, 정수 등이 와서 만났다. 이날 밤 이경에 식은땀이 몸을 적셨다. 온돌이 너무 더웠던 탓이다.
27일. 갑신. 맑음. 영광 군수 전협의 아들 전득우(田得雨)가 군관이 되어 인사하려 왔다. 그를 곧 부친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냈더니 홍시 백 개를 가지고 왔다. 밤에 비가 뿌렸다.
28일. 을유. 맑음. 아침에 여러 가지 계본(啓本:장계)을 봉하여 피은세(皮銀世)에게 주어서 보냈다. 늦게 강막지의 집에서 나와 지휘선으로 옮겨탔다. 저녁에 염장(鹽田)에서 일하는 도서원(都書員) 걸산(巨叱山)이 큰 사슴을 잡아 바치기에 군관들에게 주어 나누어 먹게 했다. 이날 밤에는 실바람도 일지 않았다.
29일. 병술. 맑음. 사경에 첫 나발을 불고 배를 출발하여 목포로 향하는데 이미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동풍이 약간 불었다. 목포에 갔다가 보화도(寶花島)로 옮겨 정박하니 서북풍을 막을 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적합했다. 그래서 육지에 올라 섬 안을 돌아보니 지형이 매우 좋으므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세웠다.
30일. 정해. 맑으나 동풍이 불고 우기(雨氣)가 많았다. 아침에 집 지을 곳에 내려가 앉았으니 여러 장수들이 와서 알현했다. 해남 현감 유형도 와서 적에게 붙었던 자들이 한 짓을 전했다. 일찍 황득중을 시켜 이장(목수)를 데리고 섬 북쪽 산 밑으로 가서 집 지을 재목을 베어 오게 했다. 늦게 적에게 붙었던 해남의 정은부(鄭銀夫)와 감산융(金信雄)의 부인 등과 왜놈에게 지시하여 우리나라 사람을 죽인 자 두 명과 사족(士族)의 처녀를 강간한 김애남(金愛南)을 모두 목베어 효시했다. 저녁에 양밀(梁謐)이 도양장의 둔곡(屯穀:둔전의 곡식)을 멋대로 나누어 준 일로 곤장 예순 대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