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행(海南行) 72
“건방진 놈! 감히 뉘 앞이라고! 닥쳐라!”
나우중의 신형이 움직인다. 그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온다.
“교룡등성수(蛟龍登星水)”
나우중의 검이 좌우로 비틀린다. 검이 기괴한 궤적을 그린다. 흡사 직각으로 꺾이기도 하고 일순간에 휘기도 한다. 엄청난 빠르기에 의한 검의 환영이다. 고죽노인의 눈이 침잠해졌다.
무정의 머릿속에 다시 한 번 글귀가 떠오른다. 눈앞의 검에 아랑곳 없이.............쾌섬동만정.........다섯 글자가 하나의 띠처럼 눈앞에 솟아오른다. 무정의 손이 그 끝을 잡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구부린다. 어느덧 하나의 고리가 생겨난다. 쾌와 정이 붙는........
이상하다. 뭔가 이상했다. 정에서 쾌로 간다. 쾌에서 정으로 간다. 무정이 고리를 비튼다. 양쪽으로 고리모양의 원이 생긴다. 그 중간에 동(動)이 있다. 정동쾌(正動快). 쾌동정(快動正)이라..........가만히 있다가 움직인다.
점이 선이 된다. 선이 점으로 화한다............은근히 말은 된다.
무정은 다시 고리를 편다. 그리고 정과 쾌 사이에 한자를 넣는다. 중(重)자였다. 정중쾌(正重快), 쾌중동(快重動)이라......
검이 나타난다. 이번에는 그 검을 잡은 사람도 나타난다. 선이다. 그의 몸
에서 선들이 나타난다. 그 선의 중심에서 흰빛이 나타난다. 그 빛이 선을 타고 날아온다. 검을 잡은 손에 이른다. 섬이었다.
검이 날아온다. 그제서야 그는 도를 든다. 그리고는 앞으로 뻗는다. 쾌로 변환되는 순간 쾌의 종착점과 검사이에 도를 슬며시 찔러 넣는다. 검이 부딪힌다. 피하지 않고........그는 정이고 중이다. 쾌는.........그 검이었다.
그 검의 속도가 무정에게 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거였다.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움직이는 점도......그 점이 뭉쳐진 선도모두가 스스로 만든다. 나는 정이다. 허나 움직이는 순간 동으로 변한다.
저쪽에서 만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동일 것이다. 반대로 움직인다면....섬이나 쾌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시명이이 세상을 이룬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정이 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정의 몸에서 옅은 묵기가 새어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무아지경에 빠지고 몸이 다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차아앙!”
“쓰벌 우린 호구냐!”
“글게요 성님! 나잇살은 무지하게 쳐먹은 것 같은데 사람 보는 눈은 영~~~~~”
고전하는 고죽노인에게 상귀와 하귀가 덤벼들었다.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괴물 그 자체였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강한 내력에 속도, 그리고 검술, 도저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뒤에서 홍관주가 틈틈이 장력을 날려 그를 막아주지 못했다면 이렇게 버틸 수도 없었다.
겨우겨우 막아내는 고죽노인이었다. 온몸에 검압에 의한 잔 상처가 그득 그나마 만시명의 모습에서 본 심득이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흘리는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면서 분전하는 고죽노인이었다.
홍관주도 점점 지쳐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라도 이렇게 무정에게 내공으로 막을 씌워주면서 장력을 날리는 것은 엄청난 내공소모였다.
이제 점점 가늘어지는 진기를 느끼면서 난감해하는 그였다.
“제길!.....제엔장!”
유정봉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몸만 성했더라면 어떻게들 싸웠던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제 몸이 아니다. 너무나 지치고 고갈된 내력에 얼굴들이 하얗게 변해있다. 그렇다고 다른 제자들을 내보낸다면............몰살이다. 이도저도 안 된다. 어떻게든 저들이 승부를 내야 한다.
“아미타불.....세존이시여.....”
아직 일주천조차 못하고 힘들어하는 명각을 보면서 명경은 불호를 외웠다.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저 이렇게 세존을 부르는 수밖에는 없는 그였다.
“그렇군! 귀무혈도에게 무슨 일이 있군! 그래서 그렇게 결사적으로 막고 있구만...........”
“ ! ”
상귀와 하귀의 표정이 변한다. 일순 나우중의 눈이 변한다. 그의 내력이 급상승한다. 최고의 내력을 끌어 올린 것이다. 그가 땅을 박찼다.
“섬영도성하(閃影濤星河)!”
“파아아아앗”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한줄기 빛이 되어 무정에게 폭사하고 있다. 고죽노인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허공의 어느 곳을 향해 찌르고 있던 그였다.
“파앙”
“커억!”
고죽노인의 신형이 왼쪽으로 날아간다. 그의 신형에 튕겨나간 것이다. 입에서 피를 길게 쏟으며 가고 있었다.
“파카캉”
“콰자작!....”
상귀와 하귀의 장창이 부서진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서로 십자로 교차된 창이다. 그 창이 그대로 부서져 나간 것이다.
“이야야야야얍”
“빠아아아앙”
홍관주의 주먹에서 엄청난 기가 발출되었다. 크게 땅을 휩쓸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권력이었다.
“ ! ”
아무도 맞지 않는다. 이미 공중으로 솟구치며 다가오는 나우중이었다. 그의 검이 그대로 찔러진다. 홍관주의 머리와 무정의 윗배를 통째로 관통할 요량인 것이었다.
“쩌어어어어엉”
“크읍!”
엄청난 폭음과 함께 나우중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간다. 시커먼 묵기가 홍관주의 눈앞에서 휘돌고 있다. 홍관주는 오른쪽을 보았다. 무언가 길게 뻗어진 것이 보이는 그는 그 물체를 따라 서서히 뒤로 돌았다.
엄청난 팔뚝이 보인다. 그의 눈이 다시 위로 올라간다. 단단한 어깨와 넓은 가슴, 그리고 두터운 목이 보인다. 그 위의 얼굴이 보인다. 무정이다.
틀림없는 무정인데............무정의 눈이.............떠져 있었다.
무정은 부지불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무언가 더 떠올랐고 그것을 생각하는데 주위의 공기가 요동쳤다. 순간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그가 향하는 점이 보인다. 그 물체와 점과의 중간에 그저 도를 찔러 넣은 것이다. 그러자 온몸의 묵기가 순간적으로 도 끝으로 몰리면서 퍼져 나갔다. 불식간에 육장여의 묵기를 집어넣었던 그였다.
나우중은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거대한 도가 나타났다. 그의 눈앞에서...........정확히 자신의 검이 노리는 곳과 일치했다. 게다가 이 내력........ 엄청난 내력이다. 근 삼 갑자를 상회하는 자신의 내력이다. 헌데 이렇게 되 튕기다니........
“.......................”
무정은 조용히 앞으로 나선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고죽노인과 부러진 창대를 들고 망연자실하게 주저 앉아있는 상귀, 하귀, 그리고 온몸을 떨면서 힘들어하는 홍관주..........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였다.
이젠 열 명도 채 안 되는 해남검파 사람들이 보인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만시명도, 그 옆에서 만시명을 부축하는 나천해도 보인다. 무정의 신형이 움직인다. 천천히 나우중의 앞에 삼장여의 거리를 격하고 서 있었다.
“..............”
무정의 신형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냥 빠르게만 가지 않는다. 어느 때는 빨
리 또 어느 때는 느리게 동과 섬을 오가면서 그렇게 최고의 묵기를 끌어 올
리며 신형이 폭사되고 있었다.
“ ! ”
나우중의 눈이 커졌다. 물경 열개이상의 그림자가 보인다.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무정의 초우였다. 그때였다.
“파아아앗.....”
무정의 몸이 다시 움직인다. 순식간에 몸의 환영이 생겨난다. 그러자 무정의 초우가 도대체 몇 개인지도 모를 숫자가로 나우중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나우중의 입술이 깨물린다. 그대로 검을 휘두른다.
“콰악”
“컥!.....”
어느새 나우중의 오른 팔목에 초우가 박힌다. 나우중은 팔을 빼며 뒤로 물러선다. 쾌......쾌중에서도 극쾌였다.
“..............”
무정은 조용히 눈앞에 도를 들었다. 이젠 알 것 같았다. 쾌의 힘을.......
쾌는 단 한순간이다. 모든 것은 섬이 말해주는 것이다.
구태어 그렇게 하나하나를 나눌 필요가 없다. 애당초 투로는 없다. 초식도 없다. 상황에 맞추어, 그날의 날씨, 상대의 무공, 자신의 상태에 맞추고 그렇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게 다였다. 쾌후에 만도 올 수 있고 정도 올수 있다. 모든 것은 유동적인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무정이었다.
어차피 도는 하나일 뿐, 섬으로 만든 환영으로 나우중의 눈을 막고 그가 섬으로 움직이는 순간 쾌도를 찌른 무정이다. 나우중의 눈에는 쾌중의 극쾌로 보였을 것이다. 이미 자신은 쾌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이야아아압”
두려움을 떨쳐버리듯이 나우중이 움직인다. 공기가 요동을 친다. 무정의 감각에 그가 원하는 점이 잡힌다. 무정은 천천히 움직인다. 자신의 왼 어깨였다. 철갑이 씌워져 있지만 저정도의 내력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의 몸에서 점이 느껴진다. 그 점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기이한 점들의 파동이 느껴진다. 지금이었다. 섬에세 쾌로 가는 직전이었다. 무정이 오른쪽으로 한발 내딛었다.
“파아앗”
“ ! ”
나우중은 미칠 것 같았다. 사라진다. 없어져 버리는 무정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를 일이다. 분명히 그는 찔렀다. 허나 환영이었다.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도 없다. 찰나의 순간 모든 안력을 집중한 순간 사라지는 무정이다. 그때였다. 그의 왼쪽안면에 강렬한 타격이 터졌다.
“퍼어어억!”
“크아악!”
피하면서 왼팔을 내민 무정이었다. 주먹에 안면을 강타당한 나우중은 신형을 틀면서 바닥에 굴렀다.
“좌아아아아악.....”
근 삼장 여나 무정의 왼쪽뒤 대각선으로 튕겨져 나간 그였다. 허나 그건 무
정의 힘이 아니다. 이건 나우중의 힘이다. 무정은 방향만 돌려놓은 것이다. 강제로.....
“크아아악! 이럴 수는 없어!”
일어서면서 광분하는 그였다. 그는 무적이다. 이대로 중원에 나가도 구파일방의 장문인들 조차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했다. 헌데 저자에게...........귀무혈도 저자에게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에서 혈광이 폭출했다.
“아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그의 신형이었다. 무정의 신형도 달린다. 그자의 신형은 자신보다도 빠르다. 확실히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을 몰랐다. 무조건 빠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마치 예전의 자신처럼.......
무정의 신형은 섬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묵기를 등으로 보낸다. 주위의 묵기를 빨아들이며 신형을 멈춘다. 그리고는 묵기를 좌측팔로 보낸다. 그의 팔이 휘돌려진다. 무정의 신형이 팔을 따라 돈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무정의 신형이 돈다.
막 검을 내뻗으려던 나우중은 섬뜩했다. 그가 정지해있다. 허나 그대로 찌른 그였다. 역시 환영이었다. 그는 오른쪽으로 신형을 옮긴다. 대각으로 갔을 무정이었다. 허나 무정은............반 바퀴를 돌아 뒤에 있었다.
“쩌어엉”
“크아악!”
그의 등판에 무정의 주먹이 작열했다. 이것은 곡(曲)이었다. 그가 섬에서 쾌로 바뀔 때 슬며시 방법을 바꾼 그였다. 이렇듯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나로 꿰어버린 무정인 것이다.
“파아앙”
무정의 발이 땅을 찬다. 그대로 앞으로 폭사되고 있다. 기회였다. 지금이야 말로 자신이 섬에서 쾌로 변화할 때였다. 정,중,동을 지나 섬에서 수많은 환상이 피어오른다. 원래 무정이 갖고 있던 공기를 찢는 무정의 신형이 공기의 압력에 흔들리면서 피어오른 것이다. 무정의 오른팔이 들린다.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그 줄기를 찾아 그대로 묵기를 도 끝에 이동시켜 밀어 넣었다.
“파아악.....”
“컥!”
단말마의 비명이 솟구친다. 나우중의 가슴 앞에 초우가 그대로 비죽이 나와 있다. 어느새 날아가는 나우중의 신형을 추월해 초우를 찔러넣은 무정이다. 그 둘이 같이 땅에 내려서고 있다. 허나 결과는 너무도 달랐다.
“타탁...”
“좌아아아아악....”
무정은 신형을 세운다. 도는 이미 빠져나와있다. 나우중은...........바닥에 길게 대자로 엎드려있다. 등의 상처에서 피가 샘솟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