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1박2일 관광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운영진(카페지기님, 총무님, 산악대장님과 운영위원님)과 속리산 관광 엄상용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백령도 관광 출발 전날부터 기대와 설렘이 과거 홍도를 오가는 뱃길에서 경험한 최악의 뱃멀미로 건강염려증(역치나 인내심)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생강을 씹어볼까, 생강 편이나 차를 준비할까, 아니면 복약으로 대체할까, 야단을 떨었다.
CJ수요산악회는 2024년5월22∼5월23일(1박2일) 백령도 관광을 다녀왔다.
관광 일정 첫째 날, 5월22일 04시30분에 청주체육관을 출발하여 07시에 인천 연안부두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하늘은 구름이 끼고 바다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내심 걱정이 되었다. 버스 내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대기 중 집행부에서 백령도 뱃길은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과연 섬에 들어가는 것도 다시 돌아 나오는 것도 하늘이 도와야만 계획한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인 이상복은 서해에 대해“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릴.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 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겨있지 않을까, 내가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 파도치고 있습니다”
백령도로 출항하는 배는 1,680톤급“코리아프라이드”호로 승객 556명과 일반화물 40톤을 동시에 적재 및 수송할 수 있는 초쾌속 여객선이다. 여객선은 08시30분에 인천 연안부두 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하여 짙은 안개 속을 가르며 35노트의 속력으로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12시20분경에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 도착하였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소재한 백령도. 본래 이름은“곡도(鵠島)”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백령도(白翎島)”라 붙여졌다 한다. 북한과 가장 가깝게 있는 넓이 50.98㎢의 섬으로,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석지 매립으로 면적이 크게 늘어나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백령도는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해병 6여단(별칭은 흑룡부대)이 주둔하고 있다. 해병대원들은 타군에 비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8각모(화랑도 정신인 오계와 세 가지 금기를 포함하여 팔계의 뜻), 명찰은 붉은색(피를 상징) 바탕에 노란색(땀을 상징)글씨로 이름이 쓰였고, 짧은 스포츠형 머리, 그리고 해병 긍지의 첫마디“나는 국가전략 기동부대의 일원으로 선봉 군인임을 자랑한다”“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는 미국 해병대의 슬로건인“Once a Marines always a Marines”에서 유래한 것이다 말한다(전도봉 전 사령관).
여객터미널 앞에는 백령도 현지 (주)까나리여행사에서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버스로 이동하여“아구와콩나물”식당에서 굴정식 백반으로 오찬을 하고 첫 번째 견학지는 “용기포 등대 해변”으로 규암이 풍화와 침식으로 인해 생긴 해식동굴과 규암에서 떨어져나온 암석 덩어리가 몽돌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견학지는“사곶 해변(천연기념물 제391호)”은 세계에서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으로 나폴리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곳이다. 세 번째 견학지는 우리나라 기독교가 전래한 첫 번째 섬이 백령도이고 1912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설립한 중화동 교회를 보면서 112년의 역사의 흔적들을 보게 되었다.
네 번째 견학지는 올해로 14주기를 맞는 천안함 46인 용사 위령탑을 찾았다. 오랜 시간 동안 오고 싶었던 곳이다. 입구에서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국화꽃 다섯 송이를 구입하였다. 위령탑으로 오르는 길 초입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한다. 위령탑에 다섯 송이 국화꽃을 헌화하고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묵념을 하면서 나는 가슴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2010년3월26일 21시22분 백령도 남서쪽 약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초계 임무를 수행 도중 북한의 해군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하였다. 천안함 폭침으로 순직한 46명의 천안함 희생 용사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이었고 아들이었다. 46명의 용사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날 연신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랑했었고 연민이 있었고 자기희생이 있었던 46명의 용사들, 세월이 흘러도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잊지 않겠다고. 대한민국이 위대해질수록 감사드릴 것이며 어려울 때는 그 애국심을 기억하겠다고 온 국민은 약속하였다.
시인 오세영의 천암함 46인 헌정 시“2010년 3월 26일 그날을 기억하리라. 온 세상이 생명의 숨결로 작약(雀躍)하던 그 봄날 얼굴에 탈을 쓰고 오히려 파괴와 죽음의 굿판을 벌린 자들 있었나니, 이제는 속지 않으리라 다시는 그 광대극에 놀아나지 않으리라. 2010년 3월 26일 그곳을 기억하리라 태풍 자고 아늑히 봄 물결 잠방대던 그 안식의 바다. 삶의 공존 공영을 꿈꾸던 그 무한 항로를 몰래 숨어 강탈하려는 자들 있었나니 이제 다시는 그 가면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2010년 3월 26일 그대들이 맞이한 그 순결한 죽음을 기억하리라. 우리의 안마당 백령도 서남쪽 1km 인당수(印塘水)그곳은 본디 인간 존엄을 지키던 최후의 보루, 자유와 평화의 성지(聖地)였거니 정태준 일병, 조지훈 상병, 정범구 병장…………한주호 준위. 아, 장렬하게 산화한 47 영령(英靈)들이여 그대들은 꽃잎처럼 성스럽게 그대들의 붉은 피를 푸른 바다에 뿌렸구나. 아아, 조국의 이름으로, 겨레의 이름으로 아니 한 인간의 이름으로, 우리들은 결코 잊지 않으리니 그대들이여, 물에 빠진 심청(沈淸)이 연꽃으로 피어나듯 다시 살아 이 땅에 돌아와서, 이제는 온 인류를 지키는 군신(軍神)이 되거라. 방패가 되거라.
다섯 번째 견학지는 백령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두무진이다. 머리카락처럼 뾰족한 바위가 많아 예전에는 두모진(頭毛鎭)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바위의 형상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하는 것 같다 하여 두무진(頭武津)이라 바뀌었다고 한다. 백령도 두무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승지다. 명승 8호로, 국가지질공원과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도 지정됐다. 장장 4㎞나 이어지는 해안 절벽을 바라보며 10억 년 풍상을 버틴 기기묘묘한 바위 앞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며 감탄했던 옛 선비의 기록에 공감하였다. 두무진 포구 왼쪽 능선 위에는 통일 기원비가 서 있다, 통일 기원비에는“조국의 허리가 잘리워 지내온 지난 반세기는 온 민족의 아픔으로 점철된 각고의 세월이었습니다.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이 피맺힌 절규는 모든이의 눈시울을 적시었고 민족의 하나 됨을 외치는 함성은 지금도 이땅을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이곳에 온 겨레의 간절한 소망과 뜨거운 해병대의 뜻울 담은 통일 기원비를 세워”........ 백령도 흑룡부대 장병들이 민족 통일을 기원하는 그림과 마음을 담아 1992년5월25일에 건립한 기념비이다.
여섯 번째 견학지는 유람선을 타고 비경을 즐길 수 있는 해상관광으로 해안가와 절벽 위 능선 사이로 형제바위, 부엉이바위,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등 그 형태에 빗대어 이름을 붙인 만상의 기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절벽 틈에는 기댈 곳을 찾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 깎아지른 절벽에 녹색 물감을 흩뿌린 듯한 두무진 풍경이 그림처럼 눈에 담긴다. 해안가에는 까만 가마우지가 날개를 펼치고 일광욕을 즐기는가 하면, 해수면에는 천연기념물 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이 가끔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지만 모습은 아쉽게 보지 못하였다. 이런 기기묘묘함에 휩싸이다 보면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두문진 유람선 해상관광을 마치고 선착장 앞에 위치한“대성횟집”에서 회정식으로 만찬을 하였다. 이번 관광길에 혼자 참석하여 식사 시간이 되면 착석해 있는 회원들의 빈자리를 찾아 새로운 분들과 식사 하는것이 조금은 불편하였다. 만찬 자리는 민들레 님 가족과 함께 식사하였다. 민들레 님께서 부인에 안부를 물어보며 함께 오시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나는 민들레 님께 처음으로 부인에 참석하지 못한 사유를 말씀드리며 의견을 구하였다. 병에 대한 이해와 인과관계가 되는 원인에 여자로 당사자가 되어 살펴보라는 의견을 주셨다.
만찬 후 숙소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았는데 하소오 님, 어울림 님과 함께 룸메이트가 되었다. 1969년7월1일 친구 13명은 필자와 친구(신동화)의 입대 송별회를 마련해주었다. 이후 필자는 7월4일 육군에 입대하였고, 친구는 공군에 지원 입대를 하였다. 그 후 서로의 소식을 모르다 가끔 친구들 편을 통해 직업군인이 되어 장기 복무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룸메이트인 하수오 님으로 부터 그간의 친구에 안부를 듣게 되었고 전화 통화도 하였다.
관광 둘째 날(5월23일) 까나리여행사와 아침 06시50분에 만나 식당으로 이동하여 조찬으로 미역국 백반으로 식사하고, 일곱 번째 견학지로 고봉포에 위치한 사자바위(이구아나바위)를 보았다.
여덟 번째 견학지인 심청각으로 이동하여 북한 황해도 장산곶 앞바다와 백령도 사이에는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간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를 보았고, 백령도 남쪽에는 환생한 심청이 타고 온 연꽃이 바위가 되었다는 연봉바위가 있지만 견학은 하지 못했다. 심청각은 인당수가 보이는 백령도 북동쪽에 자리한 전시관이다. 앞마당의 효녀 심청상은 뱃머리에 선 심청이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모양으로 조형되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북한의 태산봉과 월내도를 향해 포신을 겨눈 M47 탱크도 전시되어 있다.
아홉 번째 견학지는 콩알크기의 자갈들이 바닷가에 널려 있어 콩돌해변이라고 불리우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해안의 길이는 800m, 폭은 30m 정도이며, 콩돌들은 백령도 지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암이 부서지고 해안 파도에 의해서 닳고 닳아서 만들어진 해안으로 콩돌을 만들어 낸 투명한 자갈이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신발과 양말을 벗고 콩돌에 발 마사지도 체험하였다. 관광해설사는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콩돌을 모아 원하는 글씨도 써보라 권유하여 예쁜 모양으로 이름을 만들어 보는 추억을 만들었다.
공식적인 견학 일정을 마치고 오찬으로 백령도“두메 별미 짠지떡 칼국수”집에서 토속음식인 메밀 칼국수와 짠지 떡(만두 모양으로 짠지로 속을 만들었는데 피가 두꺼워 떡같은 질감)으로 오찬을 한 후 1박2일 관광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연안부두 터미널로 발길을 옴겼다.
최북단에 홀로 떠 있는 바다의 종착역인 백령도. 맑은 날이면 북녘땅 장산곶이 먼발치에서 보이는 섬, 더 이상 북상할 수 없는 군사분계선을 머리에 인 채 홀로 떠있는 섬으로 아름답고 기묘한 암석들이 펼쳐져 있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우리 국토를 수호하기 위해 전사한 46인의 호국영령들, 백령도 흑룡부대 장병들이 민족 통일을 기원하는 그림과 마음을 담아 건립한 기념비를 보면서 다시 한번 안보의 중요성을 체험한 중요한 관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관광을 기획한 CJ수요산악회운영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끝.
첫댓글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을 해 주시니
읽는 입장에서는 소홀했던 견학(또는 체험)이 컨닝을 해도 충분조건이 성립될 듯 합니다.
이 글 보신분들은 백령도 여행을 안하고도 백령도를 손바닥에 얹어 놓은 듯 알게 되겠네요.
박노현 선생님의 관찰력, 준비성, 세세함이 적나라하게 들어납니다.
좋은 정보와 자세한 여정 잘 읽게되어 고맙습니다.
이제 소문나면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이 글을 베껴서 숙제(백령도 기행문)를 하려고
우리 CJ산악회의 여행 후기글을 퍼나를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언제나돌아오는길목에서,어느성우에목소리처럼맑고넓은지식을학습하였는데이번엔기회가없어아쉬웠습니다.저는늘46인용사들의위령탑을찾아"영원히꺼지지않는불꽃"을보고싶은마음만갖고실천을하지못해아쉬움이많았는데.이번관광을통해안보에대한인식을고취할수있는장이되어더욱뜻깊어운영진께감사를드립니다.늘~관심을갖고써주시는댓글에용기를갖습니다.
백령도여행에 무엇을 보고 온지도 가물가물 했었는데
이렇게 탐방 순서까지 나열해 주시며 세세하게 기록해 주셔서
다시금 백령도를 다녀온거 같습니다...
여행에 남는건 추억인데 저는 틈만나면 정신없이 뜯어온 백년도쑥 (이름 까먹음 ㅎ~)
현물로 남으니 쑥향기와 함께 백령도를 다시금 추억 합니다~~
좋은 여행 후기 감사드립니다~~^&^
댓글에다시한번더감사드립니다.의초인"싸주아리쑥"처럼향기로운 민들레님과부군께서언제나.늘~처음처럼베풀어주시는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기가 딱 막힐 정도로 세밀하게 쓰셨습니다.
저는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지만, 2008년 또는 2009년에 한 번, 2018년에 백령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보내줘서 6시간인가 배를 타고 술 먹으러 갔고, 두번째는 산악회를 따라서 갔죠.
세 차례 가본 백령도는 처음 갔을 때 46용사 위령비(사고가 2010년에 났죠?)를 제외하곤 박노현님이 쓰신 내용 거의 그대로입니다.
세밀한 산행기를 남겨주신 박노현님의 정성에 다시 한 번 감복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도 조금 더 만족한 여행을 드리지 못 해 늘 송구한 마음입니다.
항상 강건하세요.
늘~격려글에감사합니다.이번백령도프로그램은여러모로 기획을잘하셨습니다.운영진덕분에마음에간직된회한들을해소할수있어감사드리고ᆢ특히회원들에모습을담아주시기위해동분서주하는카페지기님~넘~넘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