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다음엔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자료방 스크랩 예감 2
그냥바바 추천 0 조회 66 15.04.24 16: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흥타령
  지은이  박재희
  1
  - 이거이 꿈이여, 뭐여.
  위이이잉 귀울음인가, 퉁소 속을 지나는 바람소린가, 도둑고양이 흘레 붙는 소
린가. 소풍 온 개구쟁이들처럼 뒤란의 왕대숲을  들깨우는 소리에 달실네는 간신
히 눈꺼풀을 열었다.
  사르르사르르 댓이파리를 흔들며  바람 나부랭이나 찝쩍이던, 늘  듣던 바람소
리가 아니었다. 물결처럼 솨아 허리를 굽혔다가는  돌연 대노하며 솟구쳐서 몸통
을 맞부비며 울부짖는 대나무, 그 왕대숲을 통째로 뒤흔드는 바람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우수수 무리를 지으며 돼지우리  쪽으로 몰려가는 콩지스러기를
본 것도 같았다.  엊그제 서너 접의 곶감을 부리고 헐거워진  감나무에서 후드드
득 감잎들이 떨어지는 걸 본 것도 같았다.
  꿈결인지 생시인지, 머릿속에  질펀히 엉겨 붙은 소리의  부스럼딱지들은 필시
비를 몰고 올 바람의 짓거리일 터였다.
  - 잠이나 한숨 들었남.
  어둠 속의 몸을  배추벌레처럼 움츠리며 달실네는 세게  도리머리질했다. 잠자
리에는 들었으나 잠이 든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눈을 감은 채로 무당 방울 같은
색색의 소리 귀신들에게 머리 끄덩이를 휘돌림 당한 기분이었다.
  "야아, 자귀질하다 죽은  귀신 붙응겨! 거 좀  퍽퍽 못 찍냔 말여!  저런, 저런,
오메, 미련곰퉁이가 따로 없구마잉! 나무가 아야아야 할라, 이 오살할 밥통들아!"
  소스라치게 놀라 달실네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얼쩡대던 잠이 찬물을 뒤집
어 쓰고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당신들, 할망구라구 얕잡다간  국물두 ㅇ응게 알아서들 겨. 이래 뵈두  노가다
판에서만 반생이란 말여. 눈 감구 아웅 헐라거든 모가지를 걸라구들!"
  - 뭔 놈의 잠꼬대여.
  화다닥 장지문을 열고 서울네에게 지청 구를 주려다가 달실네는 쓴 물 삼키듯
이 말을 삼켰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으로 쓴  물을 삼킨 것이 처음이랴. 어제도 그제도  달실네는 서울네에
게 하고픈 말들을 서투르게 삼켰었다.
 
  "안 들려? 아, 방 하나  쓰자구우. 한 사나흘, 아니 한 달포쯤. 얼마 주면  되겠
어? 아, 특별한 일 따윈 없어. 서울 바닥이 하두 골지끈거려서 바람 쐬러 내려가
는 거라구. 정말 별일 없으니까  신경 끊구서 방값이나 불러. 얼마 주면 되겠어?
십만 원? 백만 원? 아, 그냥은 싫어. 글쎄 싫대두.  이런 답답이! 알았어. 이따 갈
게. 차가 끊어졌다구? 염려 푹 놔라. 자가용 타구 갈 테니까. 전화 끊어, 정순아."
  날콩 볶듯 빠르고 급한 목소리를 한 바구니 쏟고 전화는 끊어졌으나 달실네는
어안이 벙벙하여  수화기를 놓지 못했다.  띠띠띠띠 다좆치는 신호음이  꼭 금방
전화한 서울네의 목소리 같았다.
  서울네는 사십 년 전에 서울로 이사 간 뒤 만난 일조차 없었던 달실네의 소꿉
친구 덕례였다. 방금의 전화가 바로 그  덕례인지 아닌지를 목소리로는 알아보기
어렵지만, 높고 빠른  말투와 불여시라는 별명답게 깐죽거리는  낌새로 보아서는
영락없이 그 덕례임을 달실네만은 알 수 있었다.
  - 이기 뭔 씨나락 까는 소리여.
  '정순아'라는 끝말이 생급스럽고 흉물서러워서 달실네는 노래기 떨구듯 수화기
를 떨구었다.  환갑 진갑 다 지내고  칠순이 낼모레인 늙은이에게  정순아, 라니.
덕례야, 맞대거리 못한 게 쓴 물이 되어 목울대를 건드렸다.
  더구나 생뚱맞게 여기  와서 무슨 바람을 쐬겠다는 말인지 깜냥할  수 없었다.
사나흘이든 달포든 간에 여기가 놀이터도 아니고 유원지도 아니고 그 흔해 터진
온천도 해수욕장도 아닌데, 남도 끄트머리 촌구석에 와서 바람은 무슨 바람... 나
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풀처럼 주절주절 많은 말이 치받쳤다.
  - 장득만.
 달실네는 급히 손가락으로 바람벽을 짚어서  서울네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손때
로 저러어서 희미하기는 했지만 장득만이라는 이름 곁에 전화번호는 있었다.
  - 오메, 미안혀서  워쩐다냐잉. 여그는 방이 셋뿐인디 말여. 하나는  고추를 널
어놔서 발 디딜 데도 ㅇ어라. 또 하나는 내 방인디 쪼까 헐어서 말시. 또오 우리
막둥이가 오믄 나랑 한방을 써얄 틴디... 미안혀서  워쩐다냐잉. 아, 느그 돈 있구
시간 있구 세월 좋은디 하필이믄 이런 촌구석에  와서 뭔 바람을 쐰다구 그래싸.
내야 느그 얼굴 보고 잡지만도,  그려, 처녀적 꽃바람 싱싱헐 때 보구는 여즉 못
봤응게 보고 접제잉. 그라믄 그란 줄 알구 퍼뜩 들가거라, 덕례야.
  그렇지만 달실네는  02로 시작되는 그  전화번호를 끝내 돌리지  못했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달실네는 며느리를  불러 전화의 내용을  말했다. 집안을 구석구석  잘 치우고
저녁상도 잘 보도록 일렀다. 말을 다 듣고도  며느리는 멀뚱하게 서서 움직일 기
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긴 연우 애비가 죽은  뒤로 찾아오는 사람은 더러 있었어
도 묵어가는 손님은 없었던지라 이상해 할 만도 했다.
  "묵는 밥값은 주겠다여."
  서울네에게 밥값  받을 생각이란  조금도 없으면서  달실네가 던딘  말이었다.
'년'자에 개구리 배 터지는 힘을 넣어서  '서울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마을의 말
돌림을 모를 리 없는 며느리였다. 이 마을에 삽  꽃은 이래 제일 큰 부자가 바로
서울네라는 것도 잘 알  터였다. 남편 장득만의 이름으로 된 선산  말고는 이 마
을에 밭 한 뙈기가 없는 서울네인데도 사람들은 서울 갑부라고 시샘하듯 수군댔
다. 누가 서울 가서  보고 온 것도 아니고 마을 동구에 반반한 정자  한 채 세운
일 없지만 - 덕수 장씨 문중에 제각을 마을 복판에 떠억 지은 일 말고는 - 사십
년 세월 저켠에서 마을을 뜨고도 여태껏 토박이들 입질에 시달리는 서울네였다.
  "뭔 밥값이다요. 엄니 소꿉동무람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발걸음  가벼이 부엌으로 향하는 며느리 뒤에다 달실네
는 한마디 덧대었다.
  "십만 원이든 백만 원이든 부르는 대로 준디야."
  불침 맞은 듯 화급히  돌아보는 며느리의 토끼눈에다가 달실네는 자신도 모르
게 배시시 웃음을 보였다.
  그날로 자가용을 타고 온다던 서울네는 이틀이나  지난 해거름에야 왔다. 이제
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송이볶음도 닭도리탕도 다 동난 뒤여서 달실네는 적이 당
황했다. 달실네를 더욱 놀래킨 것은 서울네가 가져온 짐보따리였다. 장롱만 없다
뿐이지 웬만한 집  이삿짐 같았다. 서울네는 자가용이라기엔 좀 뭣한  트럭의 앞
자리에서 내리자마자 운전사에게 한 자 겨웃 넓이의 아랫방 툇마루를 가리켰다.
  "짐은 저기다 부리구  빨랑빨랑 가라구. 길이 좀  멀어야지. 후지긴 또 얼마나
후지구. 성질 같아선 아스팔트를 십 차선으루다  쫘악 깔구 싶다만. 아유, 엉덩짝
아파 죽겠네!"
  말눈치로는 엄청나게 변한  고향길 찾아오느라 꽤 고생했나  보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눈인사 차릴 겨를도 없는 사람 같았다.
  덕례.
  친정집에 온 양  만만하게 들어선 여자는 분명 이덕례였다. 언뜻  보기에도 달
실네보다는 열 몇 살이나 젊어 보이는, 늙은이라기엔  좀 이른 중년의 여자는 분
명 사십 년 전에  샛터를 등진 덕례였다. 웃을 때면 눈꼬리가  샐쭉 올라가고 보
조개가 얄밉도록  옴쏙 패이던 처녀적 모습은  간 데 없이, 허리며  배에 군실이
보기좋게 붙은 서울네였다.
  "이기 다 뭔 짐이여?"
  자동차소리에 놀란  양 헐레벌떡 텃밭을 뛰어나오는  며느리를 보며 달실네는
짐짓 볼멘소리를 냈다.
  "잘 있었어?"
  달실네에겐지 며느리에겐지 모르게  말을 건네고 서울네는 손수건으로 목덜미
께를 활활 부채질했다. 서울네는 혼이 달아난 듯  멀뚱하게 선 허리 구부정한 백
발의 달실네와 스물 몇 살에  본 박정순의 모습이 조금도 헷갈리지 않는 모양이
었다.
  "편안하셨어라우?"
  며느리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럼, 그럼. 잘  있었구말구. 아유, 이렇게 조신한  며느리가 삼시 세 때  따신
밥 지어 바치니 네가 그렇게 살이 오동통 찌지. 후분 팔자가 처억 늘어졌어, 년."
  며느리 앞에서 정순아 어쩌구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싶어서 달실네는 서
둘러 서울네의 손을 끌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니, 저 짐은 모두 어째라우?"
  "아, 그거. 나둬, 놔둬. 한숨 돌리구 나서 내가 치울 테니까."
  뭐라고 하려는 달실네를 손막음하고 서울네가 며느리에게 일렀다.
  "아가, 시원한 냉수 한 그릇 줄래?"
  "예에."
  조금 뒤 며느리가 쟁반에가 누리끼리한 꿀물을  받쳐들고 왔다. 서울네는 낚아
채듯 대접을 받아 꿀꺽꿀꺽 소리나게 들이켰다.
  "어, 시원타!"
  "웃뜸에서 사온 진짜배기 꿀이라요."
  돈 든 보람을 느끼는지 쟁반을 들고가며 며느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야, 정순아."
  며느리에겐 대꾸도 없이 서울네가 달실네의 무릎을 쳤다. 드디어, 라고 달실네
는 생각했다. 사십  년 간 호적에서나 써먹는 박정순이란 이름을  가까이에서 듣
게 되는구나, 하는 감회 때문이  아니었다. 소꿉동무 네 사람 중에 산 사람은 박
정순과 이덕례뿐이니, 세상에서 '정순아'를  부를 사람이 덕례인 건 당연했다. 그
럼에도 왜 이리 가슴이 떨리는 것일까.
  "나, 잠 좀 잘게."
  "뭐여? 어디서?"
  "아, 여기서. 여기가 내 방 아니니?"
  "그려. 여그서 같이 자야제."
  "같이? 아유, 난 같이 못 자. 너 딴 방 없니? 옆에서 누가 부스럭대면 토옹 잠
을 못 자서 말야. 내가 전화로 그랬잖아. 방하나 쓰자구."
  나무라는 말투에 놀라서 달실네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뭐라고 했다가
는 눈에 쌍심지를 돋우며 몰아붙일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려, 그려, 여그서, 이 안방에서 혼자 자더라고. 잔 뒷방을 쓸 텡게."
  "뒷방이 있어?"
  대답 대신  달실네는 얼른 장지문을  열어서 뒷방을 보여주었다.  바둑판 위의
텔레비젼과 높이 쌓인 이불과 거울이  삭은 앉은뱅이 장롱 사이로 사람 하나 겨
우 누울 만한 자리가 나타났다.
  "이만허믄 넉넉제잉."
  여차하면 며느리와 한방을 쓰게 될 것 같아서 달실네는 괜찮다는 고갯짓을 하
며 재빨리 장지문을 닫았다.
  "나, 잠 좀 잘게."
  진자주빛 비로드 원피스 위의  얇은 덧옷을 벗어 발밑으로 던져놓고 서울네는
목침을 당겨 머리에 괴었다.
  "곤한가벼."
  달실네가 뒷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내었을 때 서울네는  이미 축 널브러진 채
깊이 잠에 빠져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서울네는 잠에서  헤어날 줄을 몰랐다. 부스럭
대면 못 잔다더니, 거칠게 흔들어 깨워야만 겨우 가자미만큼 눈을 떴다. 뒷간 출
입도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했고, 며느리가 시아버지  생일상만큼이나 떡
벌어지게 차려오는 밥상도 숟갈을 드는둥마는둥 하고  놓았다. 그리고는 내쳐 잠
이었다. 찾는 거라고는  냉수 한 사발, 커피  한 잔뿐이었다. 이따금 전화  온 데
없느냐고 묻긴 했으나 딱히 기다리는 눈치는 아니었다.

  - 하마 일났능감.
  다섯 번을 치는 시계소리와 조심스레 마당을 지나는 발소리가 어둠 속으로 들
어왔다. 이어 뭔가를  쌓는 소리, 고르는 소리, 비료 푸대  꺾는 소리들이 바람에
섞여 간간이 들렸다. 어제 며느리가 날 저물도록  솎은 늦배추와 고추 농사 짓는
집이라면 거들떠도 안 볼 서리 맞은 어린 고추와 달실네가 벗겨 가른 도라지 한
삼태기와 곶감 지스러기가 장에 나갈 채비를 차리는 소리일 것이었다.
  제 몸보다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여섯 시 차로 나가서는 언제나 마을에서
제일 좋은 값에 팔고 아홉 시 차로 들어오는 며느리였다. 봄철에는 질경이, 참비
름, 다북쑥,  명아주 따위를 캐어 장에  냈다. 여름에는 장대비  쏟아진 이튿날로
소나무밭을 쏘다니며  송이버섯과 고사를 해다가는  냈다. 가을에는  유자, 단감,
배, 밤 따위를 냈으며, 만물이 뼈뿐인 겨울철에는 땅에 묻어 둔 도라지, 더덕, 무
따위를 캐내어 돈을 만드는 며느리였다. 농사꾼보다는  장사꾼의 아낙 노릇이 제
격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재가 밝은  며느리지만, 그래서인지 달실네에게는 고린
전 한푼 용채 삼아 준 적이 없었다.
  - 워쩐다요,  엄니. 연우가 그새  또 등록금을 달라누먼요. 기성회빈가  뭔가도
내야 된다요. 책도 사야 쓴다는디, 오메, 워쩌까잉.
  딴 주머니 차는 달실네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들으란 듯이 돈걱정을 할 때면
제일 민망했다. 영감이 땅 마지기나 남기고  죽었으니 망정이지 아들없는 며느리
밥 얻어먹기가 이 시린 날은 참말 무덤에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그러잖아도 며느리에게 용돈 얻어 쓸 생각은  조금치도 없는 달실네였다. 막둥
이 길수도 지난 달 회사에 들어갔으니 설령 며느리가 돈주머니를 내준다고 해도
마다할 달실네였다. 에미의 치맛바람 한 번 쐬지  않고도 유 학년 전체 수석이라
나 뭐라나, 공부를 잘하는 장손자 연우가 기특하고, 늘 누런 코를 훌쩍이고 다니
면서도 고뿔 한  번 앓는 일 없는  둘째 손자 성우가 기특하고, 또  밥사에 비린
것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며느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뿐이었다.
  - 그만 일나야제. 누웠음 뭐혀.
  첫차가 떠나는 소리, 암탉들이  꼬끼오 우는 소리, 동네의 개들이 요란스레 짖
는 소리에 더는 누웠지 못하고 달실네는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을 더듬어 은비
녀를 찾아서는 입에 물고, 손빗질로 가지런히  머릿결을 빗어다 똬리를 틀어서는
가운데다 은비녀를 단단히 질렀다.
  "웬 잠을 그리 퍼잔다냐."
  그저께처럼 어저께처럼 똑같은  아침 인사를 중얼거리면서 달실네는 장지문을
열었다. 곧 살금살금 서울네 옆을 지나서 방문을 열고 나갈 참이었다. 허나 장지
문턱을 넘다 말고 달실네는  흠칠 놀라 그 자리에 섰다. 희부연  봉창의 빛을 받
으며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은 사람 때문이었다.
  "오메, 언제 일났능감?"
  "...."
  "바람이 꽤 시끄럽제잉."
  달실네는 천천히 몸을 전기 스위치 쪽으로 움직여갔다.  켜야 될지 안 켜야 될
지 몰라서 몸이 더 굼떴다.
  "내가 언제 여기 왔니, 정순아."
  서울네의 말소리에 놀라서 달실네는  하마터면 자리끼로 떠놓은 사발 물을 밟
을 뻔했다.
  "나, 나흘 돼, 됐제. 그, 그것두 모르구 죽은드키 잠만 잔겨?"
  쑥쓰러움과 무안함이 범벅된 목소리였다. 형광등은 몇  번 깜박이다가 이내 환
해졌다. 헝클어진 파마 머리, 아직도 윤관만은  뚜렷한 입술 연지, 구겨지고 먼지
낀 비로드 원피스가  불빛을 받았다. 어느모로 보나 옛날의 샛터  미인 이덕례는
아니었다. 방물 판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들던 처녀, 마을에서 제일 먼저 귀를 뚫
어 귀걸이를 달고  다니던 멋쟁이의 모습은 어느 한구석도 남지  않았다. 첫날의
그 수선스러움은, 집주인의 안방을 뺏은 그 당당함은  잠 속에 묻어 둔 모양이었
다. 뭔가에 지치고  지친, 뭔가에 닳고 또 닳은, 칠성판에  눕혀도 까탈없이 잠들
것 같은 얼굴의 서울네였다.
  "전화... 나 찾는 전화 없었니? 회장님이라든가, 이 여사님이라든가... 그렇게 찾
는 전화 말야."
  실성한 듯 보이나 낯빛보다는 또렷한 말씨여서 달실네는 마음을 놓았다.
  "ㅇ었는디. 기다리는 전화 있능가베. 아, 그리 속 타믄 먼첨 걸잖쿠서."
  선반의 전화기를 내리려고 일어서는 달실네를 만류하듯 서울네는 방문을 열구
나갔다. 열린 방문으로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바람덩이에 몸서리를 치며 달실
네는 궁둥이를 덮는 털조끼를 찾아 입었다. 말이  좋아 가을이지 추석 명절을 쇠
고 나서는 찬물에 손 담그기도 섬뜩했다.
  "웬 바람잉감."
  방문을 나서니 바람은 왕대숲뿐 아니라 온  천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여름이라
면 장마를 몰고올 바람이요, 겨울이라면 눈보라를 몰고올 바람이지만, 이 가을에
새삼 태풍이 올 리도 없고보면 이상한 조짐이기는  했다. 뒷간에라도 가는 줄 알
았던 서울네는 마루 끝에 서 있었다.  바람을 보는지, 바람에 휘둘리는지, 어두워
서 얼굴빛을 살피기는 어려웠다.
  "아무려나 다행이제잉. 얼추 가을걷이는 끝냈으게 말여."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고무신을 찾아  신고 달실네는 하늘을  보았다. 새까만
하늘에 많고 많은 별들이 성우놈 눈동자처럼 반짝반짝 빛을 냈다.
  
 

  별밭 고르고  쾌청한 날씨였다. 더위가  시작된다고는 해도 아직은  그늘 밑이
서늘한 때였다. 날이면 날마다 벌건 햇덩이가  두말봉 꼭지에 걸렸지만 단오빔을
하기 전에는 어느 집이나 부체조차도 내놓지 않았다.
  - 오늘이 단오랑게.
  푸른 댓잎을 팔랑이며 이 집 저 집늘 기웃거려 보는 오십 척 대나무숲도 오늘
따라 괜스레 정겨웠다.. 마을의 여기저기를 두루 도는 척하다가 아랫마을로 뻗은
샛강 꽁지에 척 들붙는 개울물도 정겨운 단오였다.
  오늘만은 수건 동이고 땡볕에 나앉지 않아도  되었다. 고무래로 아궁이를 쳐내
다가 재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어제는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
아 반드르르 윤을  냈고, 화채 거리로 앵두를  한 소쿠리 따다 놓았고, 수리치떡
빚을 어린 쑥도 말끔히 다듬어 놓았다. 득만이가  샛강에서 잡아다 준 준치도 양
푼으로 가득 넘치니,
  - 오매, 좋은 거!
  정순의 입은 저절로 벙글어졌다. 그뿐이랴. 난생 처음으로 황소꿈을 꾼 것이었
다. 득만이가 황소를 타고 가면서 따라오라고 손짓하지 않았던가. 따라가려고 허
우적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꿈을 깼지만, 황소꿈이라니. 정순은
꿈에 황소를 만난 것이 참으로 꿈만 같았다.
  "황소만 타믄 말여. 득달겉이 달려올 텡게 아무  디도 가덜 말고 집에 딱 붙어
있으란 말여. 느그 아부지헌티 넙죽 절 허구설랑은 널 색시루 달랄 꺼니께. 알겄
제?"
  준치를 양푼으로 옮겨 담다 말고  정순의 입귀가 길게 올라갔다 요즘 들어 매
일이다시피 듣는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가슴속이  환해지는 걸 어쩌랴. 그렇지만
정순이 또한 언제나처럼 득만이에게 퉁바리를 놓았다.
  "치이... 허풍은. 아,  딴 마을 남정네들은 씨알머리두 ㅇ는  줄 아나베? 석구만
혀도 니보담은 머리통 하나가  크잖여? 윗마을 덕수두, 종욱이두, 장신이두 모다
니보담 크든디 워쩔  꺼여? 갸들은 모두 팔다리  비끄러맹 꺼여? 그래두 황소가
니꺼여? 치이..."
  키는 작아도  유난히 주먹이 큰 득만이었다.  실팍한 가슴, 떡벌어진  어깨, 발
빠른 득만이를 당해  낼 남정네는 없으리라 믿는 정순이었다. 괜히  해보는 투정
인 줄 알면서도 득만이 또한 지지 않았다.
  "그눔들 다아 속 빈 강정이여. 허우대만 멀쩡허제 붕알에 단물두 덜 든 놈들이
랑게?"
  "뭔 말을 그리 흉허게 허능감?"
  "일테믄 그렇다아 이 말이제. 아, 워디 씨름이 덩치루 가간? 씨름은 거 뭐이라,
순발력이라는 거, 그거이 좋아야  혀. 제아무리 힘이 장사래두 기술 ㅇ으면 말짱
헛거랑게."
  "치이..."
  "얄밉게시리 입 삐죽이지  말구설랑 그저 니는 꿈이나  자알꾸란 말여. 용꿈도
좋구 돼지꿈두 좋으니께. 알겄제, 요겄아!"
  소리가 나도록 군밤을 먹이고 으하하하 되바라지게 웃으며 득만이가 고샅길로
줄핼랑을 놓은 것이 바로 어제였다. 그런데 황소꿈이라니. 용꿈이나 돼지꿈은 아
니었지만 정순은 결코 그것에 뒤지지 않는 꿈이란고 생각했다.
  올해 해토모리부터 시작된 득만의  꿈은 곧 정순의 꿈이었다. 아니, 작년 단옷
날 웃뜸에서 벌어진  씨름 대회에서 시작된 꿈이라는 게 옳겠다.  씨름판 틈틈이
연분홍 치마 저고리  차림의 처녀가 들노래, 육자배기,  흥타령 - 특히 흥타령은
박수소리가 끊어지지를 않아서 씨름판도 쉴 겸 두 번이나 더  불러야 했다. - 을
부를 때 넋을  앗긴 당지마을 총각이 바로 장득만이었고, 씨름의  마지막 판에서
메치기당한 총각이 저물도록 모래판을  치며 통곡하는 것을 지켜본 샛터마을 처
녀가 박정순이니 말이다.
  본디 놀기 좋아하고 술 마시기 좋아하고 처녀들 곯리기 좋아하고 힘 자랑하기
좋아하는 득만이었다. 노래는  지지리도 못하지만 장단 맞추기는  워낙 좋아해서
젓가락이건 지겟발이건 잔가지를 치는 손도끼까지도 그의 손에 뒤어지면 음악소
리가 났다.
  음률에 좀 밝은 어른들은 그가 지나가면서 무심코 두드리는 지겟발 장단에 목
이 근질거려서  참지를 못했다. 꼭  당나무 밑으로 끌고가서  백발가든 청춘가든
그 장단에 소리목을 풀어야만 간신히 놓아주었다.
  시누대에 구멍을 뚫어 피리소리를  낸다거나 대나무로 퉁소를 만들어 부는 일
따위는 예사였다. 짤막한 밀짚 토막이나 버들가지의  통껍질로도 그는 귀신 부르
는 호드기소리를 곧잘 내었다. 감잎, 뽕잎,  담뱃잎까지도 그의 입술에 닿으면 그
대고 삐르삐륵삐이 음악소리를 냈다.
  정순이도 재 넘어 당지마을의  명고수 장득만을 귀동냥으로 익히 알고는 있었
지만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장득만 또한 호드기보다  고운 목청으로 노래하는 처
녀를 만나기는 처음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명년 단옷날의 씨름 대회를 기다리며
꿈을 키워 온 것이었다.
  "절대루 씨름판에 얼쩡대문 안 돼야. 사람덜이 또 니보구 노래허라구 헐 텡게.
알겄제?"
  "알았응게 니나 몸조심 혀. 이겼다구 우쭐해서  술 퍼마시믄 안 돼야 잉? 어른
들이 권해두 입에 대는 척만 허란 말여. 알았남?"
  어젯밤에도 두 사람은 절터에서 굳게 다짐을  주고받았다. 달이 왕소나무를 지
나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올라왔을 즈음에는  이미 호리병의 고구마술을 비워진
뒤였다. 술이 오르는지 득만이가 팔베개를 하고는 길게 누웠다.
  "아이고 대고 gm응... 성화가 났네 흐응...."
  낯을 씻거나 밥을 먹을 때는  가슴 가득 고여 있다가도 행주를 집어들거나 호
미를 잡을라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졸졸졸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새삼
목을 가다듬거나 풀거나 헛기침으로 청을 맑히지  않아도 되었다. 높낮이에 걸림
이 없도록 정순의 목소리는 늘 시월하고 부드럽게  트여 있었다. 그 목소리를 놓
칠세라, 손톱으로 호리병을 두드리는 득만의 손장단이 따라왔다.
  "우레같이 소리나는 임을 벌개같이 번득 만나 비같이 오락가락 구름처럼  흩어
지니 심중에 바람 같은 한숨이 안개처럼 흩어져라아...."
  "좇제!"
  득만이가 발을 구르며 추임새를 넣었다.
  "어찌 그리 목이 고운가!"
  한숨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득만의 입술에서 새나왔다.
  "참말로 사람소리 겉지 않네잉."
  "새삼 뭔 말잉감?"
  달빛뿐인 침침한 어둠  속에서 뒤를 힐끔 돌아보며  정순이는 짐짓 눈을 흘겼
다. 늘 듣는 소리인데도 득만의 칭찬에는 언제나  가슴이 빛으로 가득 차는 정순
이었다.
  "꾀꼬리가 따로 없네잉."
  "치이... 사람덜은 내 목청이 니 퉁소만 못허다고 흉보든디?"
  "아녀, 아녀. 서울 가믄 명가수 깜이여. 딴 디서는 그러코롬 노래 부르믄  못써.
알제? 돼지 겉은 놈들이 흰 눈을 까발기며 달려들믄 워쩌냔 말여."
  정순이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콧날이 시큰 하도록 기뻤다.
  - 에그, 그눔의 주둥이 좀 다물어라잉. 아,  바뻐 죽겄는디 일손이 잡혀야 말이
제. 아, 그 코맹맹이소리 당장 못 집어칠껴!
  하루에도 몇 번씩 부모님께  꾸중을 들으니 동생들도 언니를 밉상으로 여기는
데 득만은 달랐다.
  정순이 노래를 잘한다고 부추겨  줄뿐더러 허기지도록 밤새 노래를 불러도 군
소리 한마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들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득만이밖에 없
었다. 그와 혼인한다고 생각만 해고 정순의 가슴은 둥당둥당거렸다. 혼인만 하면
설거지하면서, 불 때면서, 나물  뜯고 밭 매면서도 거리낌없이 실컷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황소야 퍼뜩 이리 오너라잉.
  정순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 복판에 모두었다.
  "말 안 헐라구 혔는디...."
  "뭔디? 아, 싸게 말혀."
  "저어... 어제 보성에서 사람이 왔는디."
  "그란디? 어여 털어놔!"
  "별말 아니여. 그냥 저어... 보성  장날에 나오라구... 노래자랑허는디 돈두 주구
선물두 많이 준다잖여. 일등만 허믄."
  "그려서, 나간다구 혔단 말여?"
  목소리를 높이는 득만의  등에 정순의 손이 닿았다.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고
손은 곧 떨어졌다.
  "염려 놓으랑게. 당퇴 말두 꺼내지 말라구 딱 잡아뗏만 말여."
  "그려, 그려 잘혔구먼."
  득만이는 다시 두 손으로 머리를 괴고 뒤로 벌렁 몸을 눕혔다.
  "어여, 또 불러보더라고."
  노래를 하는 대신 정순은  득만을 뚫어지게 내려다보다가 아랫입술을 삐죽 내
밀었다.
  "치이...,"
  "아, 왜 또 그러능겨. 노래허라니께."
  - 오늘 아침에 덕례네 누렁이 잡아 묵었담서?
  따지고 싶었지만 정순은 참았다. 내일 씨름에  나갈 사람에게 개는커녕 애돼지
한 마리도  못 잡아 먹인 것이  미안해서였다. 눈을 감고 오직  정순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기만을 고대하는 득만이 믿음직해서였다.

 

  3
 
  "엄니, 이기 겁나게 비싼 낙지라요, 잡숴보시요잉."
  장이세 돌아온 며느리가 급히 차려낸 밥상에는 별나게도 비린 반찬이 많이 올
라 있었다. 쇠고기 장국이야 며칠 전에 밑반찬으로  끓여 놓은 것이니 그렇다 치
지만 병어튀김이며 산낙지와 꼬막무침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
  꼬막만 해도 그랬다. 보통 된장을 멀겋게 풀어서  찌개인 양 국인 양 끓이는데
오늘은 알맹이만 발라서 갖은 양념으로 무친  것이었다. 목구멍에 쩍쩍 달라붙으
며 넘어가는 고소한  산낙지도 생일날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낙지를 고르
던 젓갈질을 멈추고서 달실네는 남은 밥을 국에 부어 후르륵 마셔버렸다.
  "더 드시오, 엄니. 찬이 입에 안 맞으요?"
  병어살을 성우의 밥숟갈에 얹다 말고 며느리가  토끼눈을 떴다. 아마도 달실네
와 거의 동시에  굳강을 놓는 서울네에게 묻는 말이리라. 서울네의  밥그륵은 고
봉으로 올린 윗밥만 슬며시 깎여 있었다.
  "아냐, 아냐. 간이 썩 좋은데. 난 실컷 먹었으니 어서 애나 멕이라구."
  실컷 먹다니. 더덕구이와 물김치와 메밀묵이나 좀 건드렸을까.  그러나 서울네
는 정말로 맛나게 먹었다는 듯이  넓적한 얼굴 가득 헤픈 웃음을 퍼뜨리며 아직
숟갈도 들지 않은 며느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배가  좀 나온 것 말고는 뚱뚱하지
않은 몸피였으나 그  배가 웃음소리를 따라 꿀럭였다. 아까도 저런  헤픈 웃음으
로 며느리의 혼을 뺀 것이 아닐까.
  "우선 찬값이나 하라구."
  돈을 만진 지 오랜 달실네로서는  열추 어림할 수도 없는 빳빳한 뭉칫돈을 꺼
내어 며느리  치마에 앵기며 서울네가  말했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바깥 시척만
듣고 서울네가 아가, 에미야, 성우 에미야,  불러댄 통에 놀라서 달려온 며느리이
니 아직 장보따리도 풀지 않은 채일 것이다.
  온 지 나흘째지만 서울네가 그렇게 기세  좋게 며느리를 부르기는 처음이었다.
달실네조차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차게 며느리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더욱
이 아들을 잃은 지지난 해부터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나직이 에미야, 불렀을 뿐
담 밖으로 목소리가 튀도록 며느리를 불러보지는 못한 달실네였다.
  치마에 앵기는 돈을 엉겁결에 끌어안은 채 며느리는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 잠시 바람 쐬러 왔담서 소꿉친구끼리 이기 뭔 해괴헌 짓이여.
  이렇게 퉁을 줘야지, 벼르면서도 달실네 역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뱀껍질처
럼 번들번들한, 말로만 듣던 악어 가방 속에서  의뭉하게 똬리 틀고 앉아 살모사
대가리처럼 시퍼런 귀퉁이만  내민 지폐 뭉치 때문이었다. 말만 잘하면  어느 때
든 가방을 열고 한  움큼씩 집어내 줄 것 같은 서울네의  헤픈 웃음 때문이었다.
영감이 영면했을 때의  조의금 이후 처음 보는 뭉칫돈이었다. 그  조의금이 목숨
과 바꿔치기한 양  징해서 이후로 낱돈 만지기도  싫어진 것이니 돈 모양조차도
낯선 달실네였다.
  "아가, 따끈한 커피 한 잔 줄래?"
  썩은 밀가루처럼 칼끝도 안 들어가게  굳은 두 사람을 흔든 사람 역시 서울네
였다. 그제야 며느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둔 듯한 말을  두서없이 꺼내었
다.
  "돈은 뭔 돈이라요.  울엄니 소꿉동무람서요. 우리도 살 만큼은  사요. 쌀 있것
다, 밭에 푸성귀  널렸것다, 빈 방 있것다, 남정네도 ㅇ는  집이니께 맘놓구 푸욱
쉬셔두 되야요. 우린 참말이제  암시랑토 안 혀요. 울엄니 말벗이 생기니께 외려
좋은디 돈은 뭔 돈이라요. 돈은 뭔,,, 경우ㅇ이."
  먼저 며느리가 질겁을  하며 왕지네 털 듯  손사래를 치고는 부엌문으로 나갔
다. 그 바람에  앵길 치마를 잃은 뭉칫돈은 가지런함을 허물고  소반만하게 흩어
졌다. 달실네가 해야 할 말을 며느리가 재빠르게 쏟아놓았으므로 그녀 또한,
  "커피는, 식전 댓바람에 뭔 놈으 커피여."
  중얼거리고는 설사끼라도 있는 듯 허겁지겁 방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 시에미보구 알아서 챙기라는 거여, 뭐여?
  시꺼먼 물에다 노른자를 동동  띄워 방으로 들여가는 며느리의 뒤통수에 달실
네는 원망스러운 눈길을 꽂았다.
 
  새벽녘의 바람은 아침이 되었어도 여전히 마당의 낙엽이나 콩지스러기를 휘몰
고 쏘다녔다.  대숲의 일렁임으로 보아서는  바람기가 숙은 것  같은데 털조끼의
앞섶을 헤치는 바람은 코끝에서 알짱대는 바람보다 한결 매서웠다.
  밭두둑에 앉아 철 늦게 올라온  당파며 시금치 따위를 일 삼아 거두어서 달실
네가 돌아왔을 때 돈은 다시 가지런한 모습으로  선반에 올려져 있었다. 돈 말고
도 악어 가방, 작은 보석 상자, 드라이어,  커피병 같은 낯선 물건들이 선반이 좁
아라고 들어 차 있었다. 때 절은 왕골  바구니와 약상자와 전화기는 어디다 치웠
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눈에 선 것이 비단  선반뿐은 아니었다. 한 벽을  온통 물들이며
걸린 옷들도, 장지문을  허리 높이로 가로막은 이불도 방문을 반의반쯤  막고 선
이 층짜리 화류장도 모두 처음보는 것들이었다.  미루어오더니 첫날 툇마루에 부
려 놓은 짐더미를 이제사 풀었는가 보았다.
  "엄니, 저 옷들 다아 엄니 드린다요, 서울엄니가."
  아침상을 들여놓고 며느리가  한쪽에 쌓인 울긋불긋한 옷들을  턱짓했다. 찹쌀
을 섞었는지 자르르르 윤기도는  밥맛이 없는데도 억지 춘향이로 고봉밥을 비운
까닭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 서울 엄니?  남정네두 ㅇ응게 푸욱 쉬라구?  누구 맘대루? 덕례, 지년이  뭔
낯으루다 내 집 문턱에 발을 들인다여?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누르느라 달실네는 뜨거운 숭늉을 입바람 불 새도 없
이 서둘러 들이켰다.  그래도 여태껏 먹은 산낙지들이 떨어진 제  발들을 찾으러
목구멍 가득 기어오르는 아주 고약한 느낌을 떨쳐버리기는 어려웠다.

 

4

  밑 모를 고약한 기분에 곤두박질치던  그 처음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단옷
날이었다. 준치국이며 앵두 화채며 수리치떡까지 채반  가득 부쳐 놓고 정순이가
허리를 폈을 때 라디오는 정오를 알렸다.
  사윗감과의 첫 만남은 부모님에게도 즐거운 일인가  보았다. 마당 구석에서 닭
털을 뜯으며 주고받는 입씨름이 한결 정답게 들렸다.
  "아따, 거 임자는 단옷날 항우장사헌티 막걸리 못 ㅇ어 묵으믄 여름내 더위 탄
다는 속담도 모르능가베."
  "뭔 걱정이다요. 항우장사가 집으루 와설랑은  철철 넘치게시리 술사발을 올릴
틴디."
  "이제 정온가 본디 은제나 온디야. 목 타 죽겄네잉."
  "황소를 타두 곧장은 못 올 게라우."
  "그라제잉. 황소 타구설랑은 마을마다 한 바퀴 돌아야 헐 텡게."
  "씨름판 생각 그만허구, 거 털이나 야물게 뽑으쇼잉."
  "암튼 말여. 머리털 나구는 첨잉게 알구나 있으란 말여."
  "오메, 이 양반. 씨름판 귀경 놓치믄 병날 사람 겉네잉."
  어머니의 호들갑이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감빛 햇살이  이제 막 댓돌 위로 올
라서는 참이었다.  아버지가 집 안팎을  빗자국이 나도록 쓸고  황소금을 뿌리는
사이에 어머니는 약밥과 수정과를 안쳤으리라.
  오가며 들은 소문은  많아도 부모님이 직접 득만이를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처가에다 황소 한 마리를 갖다  바치지 않고는 절대로 딸을 달라지 않겠다는 득
만의 고집 때문이었다.
  - 맹물 떠놓구 맨숭허니  그냥은 못혀. 넘의 집 귀헌 딸을  그러코롬 데려와서
야 쓰것남. 도둑놈 심뽀제.
  세 딸의 맏이로 태어나 허드렛일꾼처럼 구박만 받고 자란 정순에게 득만의 고
집은 더없이 귀중한  것이었다. 지금껏 아무도 그녀를 귀하게 여겨준  사람이 없
었다. 말뿐이언정  말 한마디, 눈짓 한  번 따듯하게 받아보지  못한 정순이었다.
황소라니, 모자란 데  없는 남자가 못난 딸을 달라고 나선  것만으로도 애물덩어
리를 치우는 양 반가워할 식구들에게는 참으로 감지덕지할 혼례품이었다.
  타고난 목청으로 노래 하나 잘  부르는 - 그것도 식구들은 간살맞은 코맹맹이
소리라고 싫어했다 - 것  외에는 내놓을 것이 없는 그녀였다. 작달막한  키와 오
종종한 얼굴은 그렇다지만, 특히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펑퍼짐한 엉덩이에 득
만의 눈길이 머물면  정순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쩌다  득만의 손
이 손을  더듬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정순의 얼굴은 벌개졌다.  처녀답지 않게
굵은 손복, 불거진 손마디, 못 박힌 손바닥이며 지문 없이 두꺼운 손가락이 못내
민망해서였다.
  "농투사니 우리덜 손이사 다 같제. 누군 뭐 별난감."
  뒷짐 진 손을 우악스럽게  끌어다가 솥뚜껑만이나 넓은 자신의 손바닥에 얹는
득만이었다.
  "하늘 아래 니겉이 맘 넓은 사낸 다시 ㅇ을 꺼여."
  글썽이던 눈물을 기어이  쏟으며 정순이가 훌쩍이면, "어여, 한 가락  뽑더라고
잉. 하늘 아래 니겉이 멋들어지게 노래하는 처녀두 ㅇ응게 말여."
  씨익 웃으며  그 큰 귓바퀴를 정순의  입 가까이 대는 득만이었다.  그럴 때면
으레 그가 늘상 가슴에 꽂고 다니는 긴 퉁소가 그녀의 젖부리를 살짝 건드렸다.
  댓돌에서 놀던 햇살은 어느새 마루 끝을  따스하게 적시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소세를 깔끔히 하고서  정순은 마루에 올라 앉았다. 색경을 넘어지지  않게 세우
고는 대바늘로  머리에 가르마를 곧게  타서 동백기름으로 빤드르르  윤을 냈다.
엉덩이까지 찰랑대는 어리채도 세 갈래로 잡아 꼭꼭 땋아서는 고무줄을 칭칭 동
인 뒤에 빨간 비단 댕기를 들였다.
  "서둘 꺼 ㅇ응게 목간이나 혀."
  부산떠는 딸이 못마땅한지 아버지가 말끝을 높였다.  삼월이라 삼짇날 제비 새
끼 봄나들이 바람개비가 떴다아  - 하다 말고 정순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버지
의 말소리가 높을 때만큼은 노래는 금물이었다.
  "혼인날두 아닌디 목간은 왜 헌다요. 남사시럽게시리."
  손질 끝낸 닭 속에 밤, 대추, 인삼,  찹쌀을 잔뜩 넣어서 어머니가 건네면 아버
지는 속이 나오지 않도록 닭의  양허리에 칼집을 내고 닭다리를 서로 꼬이게 집
어넣었다.
  "딸년 몸단속은 잘혔능감, 임자?"
  음흉하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마루로 올라왔다.
  "오메, 이 양반! 별 흉측한 소릴 다 허네잉. 아그들 듣는 디서!"
  어머니가 기급스레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놀란 아버지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
다.
  "아니믄 아니제, 뭔 소릴 지르구 난리여, 여편네가!"
  바닥의 칼을 줍는 손에 매서운 성깔이 담겼다.
  "에잇! 빌어묵을!"
  새삼 신경질이 뻗치는지, 잡고 있던 닭을  흙바닥에 패대기치고 아버지가 일어
섰다.
  "참, 아버지두. 지가 뭐 어린애간디요."
  애교스럽게 웃으며 정순이가 마루에서  내려섰을 때 이미 아버지는 등을 보이
며 삽짝을 나서는 참이었다. 어머니를 도울까  망설이다가 정순은 색경을 버선목
에 넣고  집을 나왔다. 흙 속에  처박힌 계삼탕이 뱃구레 터진  짐승처럼 보기가
끔찍해서였다.
 
  그날, 득만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기는 왔지만 식구들이 다 잠든 뒤
황소 등에 업혀서 돌아왔다. 그마저도 먼빛으로  동구에 들어서는 황소를 발견한
정순이가 엎어지며 넘어지며 달려 내려왔을 때는 이미 덕례 집으로 들어간 뒤였
다.
  "쉬잇, 억병으루 취한 걸 워쩌. 시방 골아 떨어졌으니께 밝는 날 보더라고잉."
  지쳐 놓은 삽짝 밖으로 덕례의 오빠가 숨죽은 목소리만 내보냈다.
  "뭔 일루 이제사 온다요. 씨름은 버얼써 해거름 전에 끝났다든디."
  원망과 반가움이 반반인 목소리를 다시 숨죽인  목소리가 막았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술내와 입구린내가 정순의 코를 찔렀다.
  "쉬잇."
  여느 때처럼 임의롭게 덕례 집의  삽짝을 밀고 들어가려는 몸을 떡메 같은 남
자의 팔이 막았다. 돼지, 염소 따위의 집짐승을 도살하는 동네 대사 때마다 앞장
서서 도끼를 휘두르고 배를 가르는  일치레를 하는 덩치이니 정순은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묶인 기분이었다.
  "오메, 음전헌 처녀가 이기 뭔 짓이여. 이 야밤에 워쩔 꺼여어? 합방이라두 헐
참잉겨, 시방?"
  기가 딱 막힌 채  입을 벌리고 선 정순에게 흐흐, 누린내  나는 잇몸을 달빛에
비춰 보이고 덕례 오빠가 들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설거지도 미룬 채 달려간 정순에게,
  "버얼써 새벽에 갔는디."
  삽짝을 막고 서서 잇몸을 보이며 비아냥거린 사람도 덕례 오빠였다.
  - 술허구 웬수졌남.  몸뚱이가 술통이 되도록 퍼마시게. 아, 황소만  타믄 득달
겉이 달오마구 혔잖여. 그러니께  울엄니가 계삼탕꺼정 한 솥 끓여 놨제. 덕례가
아니었다믄 황소뿔에 받혀  죽은 뻔혔담서? 그기 참말여?  덕례 그 지지배 죙일
코빼기두 안 뵈든디... 참말여?

  해 떨어지기 무섭게 정순은 통닭과  호리병과 고르고 또 고른 말을 목젖이 닿
도록 싸가지고서 절터로  나갔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기다려도 득만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이튿날도, 다시 그 이튿날도 득만은 절터에 얼씬대지 않았다.
  - 씨름판에서 겁나게  욕봤제? 그깟 황소 ㅇ어두 사위 구박헐분들  아니여, 우
리 부모님. 얌생이 과 준다구 벼르시든디, 은제 올겨?
  투정은 싹 빼고 어르고 달랠 말만 가슴에 남았어도 정순은 득만을 볼 수 없었
다. 대신 까닭을  알 수 없는 소문의  형틀에 묶여서 정순은 숨도 제대로  쉬 수
없었다. 누가 누구를  먹었다는니, 누가 누구를 버렸다느니,  고약한 말질이 돌림
병처럼 마을에 돌고부터는 동네 사람도 집안 식구도 얼굴 보기가 소름끼쳤다.
  왜 무엇 때문에,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갑자기 하늘이 새까만  먹통처럼 보이
는 것일까. 세상을 살기가 이리도 싫어지는 것일까. 끼니를 잇는 것이 이리도 징
그러운 것일까.
  다시는 바람을 타고 흐르는 퉁소 가락을 들을  수 없으리라. 솥뚜껑 같은 손바
닥에 험투성이의 손을 얹을 수 없으리라. 퉁소가  젖부리에 닿는 것을 모른 척하
고서 아이고 대고 흐응, 하는 흥타령을 부를 수도 없으리라.
  "사내나 지집이나 그저 두리뭉실허게 생겨야제. 인물 잘나믄 못쓰능겨.  인물값
꼴값 두루 허기 십상잉게 말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득만네와 덕례네가  서울로 솔가했다는 말을 전한 다음 어
머니가 정순을 위로한다고  덧붙인 말이 고작 이것이었다. 뼈에 도배한  듯 깡마
른 딸의 얼굴을 맞보지 못한 채 어머니는 이를 옥물며 피눈물을 쏟았다.
 
  5

  "지옥 같애!"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찍어내며 서울네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부르르 머리
를 털자 불을 때던 달실네에게 물이 튀었다.
  "일, 일, 일! 그저 넌 밤낮없이  일이로구나. 예나 지금이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일벌레야. 지겹구 넌더리가 나지두 않니?"
  서울네는 부엌 구석에  쌓인 볏단 하나를 가져다  아궁이 가까이 놓고 털퍼덕
주저앉았다. 그바람에  부지깽이로 불구멍을  터주다 말고 달실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 살판 났능감. 뭔 심술이여.
  말을 내는 대신 달실네는 눈을 흘겼다.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 지, 서울네는 볏
단을 털어서 아궁이에  들이미는 중이었다. 타타다닥 발춤처럼  재빠르고 경쾌한
소리와 잔불꽃들이 아궁이 밖으로 나오자 서울네가 윗몸을 뒤로 젖혔다.
  "그만 때두 돼야. 웬만큼 엉겼응게."
  몸을 일으켜서는 솥에 간수를 치고 달실네는 서울네와 좀 떨어진 곳에다 볏단
을 깔고 앉았다. 짚수세미에  재를 듬뿍 묻혀서는 놋그릇을 썩썩 닦기 시작했다.
스텐그릇이며 사기그릇까지  며느리는 푼돈이 목돈 되는  대로 사다가 쟁였지만
제사상에 올리기는 놋그릇이 제격이었다. 가스 렌지  놔두고 장작불에 두부 만들
기가 제격이듯이.
  "아, 일 좀 그만하구 쉬어. 쉬라구."
  서울네가 돌아보며 쯧쯧 혀를 찼다.
  "일손 놓으믄 숨도 놓은 거이제, 워디 사능 거 겉응감."
  "아유, 이런 답답이. 어떻게 사람이 일만  하구 살아 그래. 짬내서 커피두 마시
구, 낮잠두 자구, 마실두  다니구, 음악두 듣고, 테레비도 보구 그래야 동물이 아
닌 인간이지. 며느리가 그러는 데 집 밖에두 안 간다며?"
  "나갈 일이 있어야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촌에서 밖일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덕례가 서울로 간 몇
년 뒤, 아버지의 주먹다짐을  못 견뎌서 쫓겨나다시피 시집 간 곳은  아들 둘 딸
린 홀아비집이었다. 열 살  아래인 새댁이 이뻐선지, 마을의 말돌임을 막아줄 셈
에선지, 그는 정순의 뜻대로 밖일을 시키지 않았다. 달실네 또한 죽은 듯이 들어
앉은 달팽이처럼 바깥  세상은 눈짐도 하지 않았다. 대낮에 나들이한  것은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었을 때뿐이었다. 연우 애비  때에도 달실네는 물에 불어터
진 주검과 함께 병풍 뒤에 있으면서 문상객들을 보지 않았었다.    
  "나갈 일이 없다구?"
  기가 차다는 듯이  서울네가 뒤로 돌아앉으며 혀를 끌끌 찼다.  아랑곳없이 달
실네는 짚수세미 가득 재를 묻혀서 놋그릇의 더께를 힘들여 닦았다.
  "아유, 나갈 일이야 천지지.  테레비 보면서두 몰라? 넌 제주도도 울릉도도  못
가봤다며? 남들은 동남아루 유럽으루 날아 다니는 판에  넌 정말 딱하구나. 이제
어디 사람 사는 꼴이냐. 염라대왕만 없다뿐이지 여긴 지옥이라구. 밖에서는 달나
라를 가는지 별나라를 가는지도  도통 모르고 시골 구석에 두더지처럼 처박혀서
죽도록 일이나 하구 사니 원."
  말 끝에 서울네는  다시 쯧쯧 혀를 찼다. 가마솥에는 허연  순두부가 불기운을
따라 떠다니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불이나 꺼부러. 너무 쫄믄 두부맛이 ㅇ응게."
  딱하다는 듯한 서울네의 눈빛이 보기 싫어서 달실네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
다. 서울네가 코를 벌쭘이더니 잽싸게 돌아앉아  아궁이의 장작들을 꺼내어 재에
비볐다. 투실한 몸피에 비해 잰 몸놀림이었다.
  "노는 입에 염불허기제. 일  놓으믄 뭔 맛으루다 살 꺼여. 일맛이 나야 살맛두
나구 밥맛두  나능겨. 시상 귀경이야 가만히  방에 앉아 테레비만 봐두  실컷 허
제."
  말하고 나자 새삼 지난 사십 년 세월의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아서 달
실네는 짚수세미를 놓고 두  다리를 뻗었다. 일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개
미떼처럼 달려드는 많고도 많은 시간들. 문어발처럼  휘어감고 놓아주지 않는 득
만과의 추억들. 버림받은 여자라는 그 뼈시린 눈총들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살아서 욕되느니, 이렇게 욕되게 사느니 차라리 죽으리라. 득만이가 준치를 잡
던 샛강에  빠져 죽으리라. 죽창처럼 날카롭게  베어낸 대밭에 엎어져 죽으리라.
흥타령을 부르던 절터에서 통곡이나 한바탕하고는 얼어 죽으리라.
  기필코 죽으리라. 텃밭에 감자를 심고 나서,  고춧대나 세우고 나서, 콩이나 털
고 나서, 설이나 쇠고 나서 그리고 나서는  반드시 몸뚱이라는 욕된 껍질을 벗으
리라던 맹세는 언제나 그 다음 일에 치여서 다시 미루어졌다.
  - 또 하루가 가부렀네잉.
  막막하게 남은 길고긴 세월의 길이에 몸서리치며 흐느껴 울면 어둠 속으로 퉁
소소리와도 같은 나직한 득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밤도 있었다.
  - 니는 성깔이 물러서 탈이여. 원체 모지락스럽지  못허니께 평생 손해만 보구
살 게 뻔혀. 니가 잘허는 거라곤 노래뿐이여. 정순이 흥타령은 서울 가믄 명가수
깜이제. 어여 노래나 뽑아봐.
  집 뒤로 유자나무밭을 병풍처럼 감싸면서 치솟은 대밭은 시집 온 첫날부터 달
실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득만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퉁소 가락을
콧노래할 수 있었던 지난날처럼, 멀리 텃밭에서  댓이파리들이 햇살을 튕기며 흔
들리는 것만 보아도 대밭이 내려는 가락쯤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가락
은 한 번도 달실네의 입에 오르지 못했다.  퉁소 가락뿐 아니라 육자배기도 흥타
령도 잊은 지 오래인 달실네였다.
  "엄니, 이것 쪼까 드시요잉."
  며느리가 고소한 내음을 풍기며  들어오자 달실네는 놀란 듯 다시 짚수세미를
집어들었다.
  "뭔디?"
  "핫케이크란다요."
  어느새 달실네 쪽으로 돌아앉은 서울네 앞에 며느리가 쟁반을 놓았다.
  "어서 났다냐?"
  달실네가 뜨악한 낯으로 묻자 며느리는 서울네의  눈치를 살폈다. 날이면 날마
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먹어대는 서울네의 군것질에 며느리는 매달려 살다시피
했다. 꿈도 일꿈만 꾸는 가을 복판인데  서울네가 돈푼이라도 내놓았으니 망정이
지 집안 들어 먹을 짓거리였다.
  "입이 궁금해서 말야. 내가 사오라구 한 거야. 아유, 색깔 제대로 냈네.  노릿노
릿 먹음직한데?"
  칭찬이 즐거운지 며느리가  활짝 웃었다. 연우 애비가 죽고서 이렇게  활짝 웃
는 며느리를 언제 보았던가.
  - 서울엔  특수 학교라는 게 있어.  연우처럼 머리가 비상한 천재들만  다니는
데야. 열 몇 살에 박사 딴 애두 있으니 말 다 했지 뭐.
  그 특수 학교에 연우를 넣어주겠다고 장담했으니 며느리가 신이 난 것도 무리
는 아니리라. 바로 오늘 아침 밥상머리에서의 일이었다.
  - 은제꺼정 있을 참이여. 낼모레가 제산디.
  오늘은 꼭 이  말을 하고야 말리라 벼르던 참이어서 달실네는  어이가 없었다.
친구 남편의 제사를 앞두고도 서울네는 떠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아침 잠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늘어지게 잔 다음 맞선  보는 큰애기처
럼 공들여 치장하고는 점심상을 받고, 그  다음부터는 줄창 달실네를 따라다니다
가 텔레비전에서 자정 뉴스를 보고 애국가가 나와야 밤세수를 나가는 것이 서울
네의 일과였다. 집장사 잘해서  떼부자 된 얘기, 자식 넷을 한자리하도록 잘키운
얘기, 아메리카로 아프리카로 쏘다니며  여우 목도리와 밍크 코트 산 얘기, 유럽
어느 나란가의 경치가 너무 근사해서 눈물 흘린 얘기.... 달실네가 새로운 일거리
를 찾아 몸을 놀리는 것만큼이나 부지런하게 새로운 얘기 거리를 쏟아내는 서울
네였다. 가끔 가다 말 끝에,
  - 여긴 지옥 같아. 일, 일뿐이야. 사람 사는 낙이 없으니 말야.
  후렴처럼 붙이기도 했다.
  - 왜 온겨. 지옥에 왜 왔능감. 시방이라두 싸게 가랑게. 안 잡을 텡게 말여.
  일을 거들기는커녕 허구한 날  졸졸 붙어다니며 쓸데없는 참견만 하는 서울네
에게 매몰차게 쏘아주려다가도  달실네는 참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서였다.
  쑥을 캐면 한식경도  못 돼서 쌀사루와 섞어 찐 쑥버무리를  해오던 친구였다.
들놀이를 나갔다가도 먹음직한 배추만  보면 그 자리에서 겉절이를 해내던 친구
였다. 귀걸이에 목걸이에  매니큐어까지 바르고 다녔지만 닥치는  대로 시원시원
하게 해내던 그 일솜씨만 아니었다면 달실네와  어울렸을 리도 없었을 것이었다.
달실네가 참은 것은 서울네의 옛모습을 안  잊었기 때문이었다. 집장사를 하면서
자식 넷을 키운  억척이가 일에 몸서리를 치는 까닭이  꼭 늙음 탓만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온 지 얼마 안  돼서였다. 바깥 툴입도 안 하고 어디 전화 한  번도 걸지 않고
심심해 하는 눈치길래,
  "영감 산소에 벌초나 갔다오제잉."
  달실네가 먼저 말을 걸었었다.
  지난 봄, 당지마을  선산에다가 장득만을 안장할 때 서울서 장의차가  다섯 대
나 오는 바람에  샛터마을까지 뻑적지근했던 기억이 나서였다.  그러나 며느리가
전해 준 말대로라면 이번 추석에는 아무도 성묘를 오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영감? 어느 영감?"
  "어느 영감이라니, 그리 뭔 말."
  말 끝을 서울네가 낚아챘다.
  "장득만? 아이고, 그 인간  말도 꺼내지 말아. 무덤을 파버리고 싶도록  치떨리
니까."
  서울네가 낯빛을 바꾸며 쏘아댔다. 옆모습이 어찌나  싸늘하게 굳어 있는지 겁
이 나서 다시 말도 못 걸 지경이었다.
  "서울엄니, 이렇코롬 설설 끓을 때 묵는 순두부맛이 기가 막히다요. 쪼까 드시
요잉."
  언제 들어왔는지 며느리가 사기 대접 가득  순두부를 퍼서 서울네에게 안겼다.
메밀가루와 말린 쑥, 두부판,  두부를 짠 보자기가 부뚜막 여기저기에 널린 것을
보니 그새 몇 번 들락인 모양이었다.
  "아따, 성우야. 제사 음식 손 타믄 못쓴다잉!"
  부엌문께에 놓인 채반의 전을  잽싸게 집어 도망치는 성우에게 며느리가 소리
쳤다. 날이 저물면 광주에 사는 둘째 아들  길수와 큰손자 연우와 아랫마을의 시
동생 내외도 제사를  지내러 들이닥칠 것이었다. 제기로 쓸 놋그릇만  닦아 대충
챙겨놓고 달실네는 허리를 쭈욱 폈다. 순두부의  뜨거운 김을 받아서인지 서울네
의 얼굴은 부황든 듯 누렇게 떠보였다.
  - 내일은 가겄제. 설마 허니 남의 영감 제사상을 구경헐라구.
  즈그 영감 제사도 입동  전이람서, 설마 허니 여그서 지내기야 허겄남. 자손들
도 쌨담서.
  성우에게 줄  순두부를 한 그릇  떠가지고 달실네는 부엌을  나섰다. 실비라도
흩뿌릴 듯 잔뜩 흐린 하늘에는 대바람 소리가 가득했다.

 

6

  그날따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푸지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영감은  마을의 남정네들과 토끼몰이를
나갔다. 아이들도 썰매를  지고 샛강으로 가버려서 달실네는  한갓지게 바느질감
을 벌려 놓고 인두질을 하던 참이었다.
  "실례합니다."
  숨소리, 발소리,  기침소리, 부스럭대는 작은  기척에도 임자를  알아채는 여느
아낙들처럼 달실네는 방안에서도  단박 그 목소리의 임자를 알 수  있었다. 날마
다 듣는 낯익은  목소리처럼, 바람의 결이 달라질 때마다 음정이  변하는 대숲소
리처럼 단박 알 수 있었다. 물론  단옷날 이후 한 번도 부르지 않았고, 또 한 번
도 듣지  못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입만 열면 오랜 시간의  문턱을 가벼이
넘어서 술술 풀려나올  것 같은, 바로 정순의 흥타령을 청하는  득만의 퉁소소리
가 아니겠는가.
  "실례합니다."
  버선코를 꺾던 인두를 화로에 꽂고 달실네는  일어섰다. 갑자기 일어나 탓인지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깊이 모를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어지럼증으로 문 쪽이  어딘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달실네는  무조건 찻
발을 내딛었다.  고쟁이가 화로를 스치면서  인두를 떨구었는지 탁  소리에 이어
탄내가 났지만 괘념치 않고 달실네는 방문을 화들짝 열었다.
  - 따져야제잉. 독허게 맘묵고 따져야제잉.
  무엇을 어떻게 따져야  할지 아무 마련도 없었다. 그저 고장난  축음기처럼 머
릿속을 뱅뱅 도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주인은 안 계십니까?"
  정강이까지 닿는 밤색 외투에 밤색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말했다. 멀끔한 허
우대에 몸피도 굵어졌지만 우뚝 솟은 콧 등에 비해 눈매가 서글한 그는 역시 황
소꿈을 앗아간 그녀의  남자 장득만이었다. 대충 쓸어넘긴  더벅머리와 서투르게
깎은 수염자리와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떠나지 않던 얼굴이 십여 년 세월의 인
두질로 희멀끔해지긴 했지만 그녀의 남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안 계신디요. 뭣 땀시 찾으시오?"
  달실네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숫돌에 벼리고 벼린  기나긴 세월의 날이 치잉
우는 듯한 귀울림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 황소만 타믄 득달겉이 달려오마구 철썩같이 맹세혀놓구, 워쩐 일이여! 딴 년
이랑 눈 맞아 도망쳐놓구설랑 이제사 뭔 낯으루 날 찾아온 겨!
  목청 돋우어 따지기에는 사내의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였다. 머리를 틀어올리
고 털조끼의 앞섶을 여미고 부숭숭한  얼굴로 신발을 질질 끌며 나온 깡마른 여
자를 그는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다.
  - 정순이, 나여. 아, 득만이랑게.
  사내가 웃으면서 솥뚜껑같은 손을 내밀었다면,
  - 그란디... 뭔 일로 왔능감.
  시원찮은 듯 대답하면서도 달실네의 가슴에는 환하게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헌데  달실네의 느낌대로라면 사내는 사죄하러  온 것도, 데려가려 온
것도 아니었다. 그가 달실네를,  아니 박정순이를 전혀 몰라보고 있다는 점이 너
무 기가 막혔다.
  한밤중에 일어나  미친 듯이 절터로  달려가던 일, 말라깽이  딸을 홀아비에게
여의자마자 어머니가  죽은 일, 영감 몰래  뱃 속의 것을 지워버리고  몸져 눕던
지난 일들이 이빨을  으드득 갈며 부아를 돋우었다. 드렇제만 달실네는  끓는 속
을 지구시 누르고소  말없이 장득만으로부터 몸을 돌렸다. 저 멀리  고샅길을 달
려 오는 영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이고, 서울양반.  이 누추헌 집에 워쩐  일이시요잉. 귀헌 걸음  허셨네요잉.
어서 안으로 싸게 드시오, 추웅게."
  영감은 일찍이 장득만을 알고 있는가 보았다.  그러고 보니 달실네도 영감에게
서 서울양반에 대한  말을 들은 것이 있었다.  제가 지을 터를 잡으러 왔다느니,
동네에 스피커를 설치해 준다느니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 서울양반이 장득만인 줄 달실네는 정말  몰랐다. 영감 또한 이웃 동
네까지 뚜르르 퍼지도록  흉한 소문 끝에 서울로  뜬 덕례의 남편이 서울양반인
줄은 모른 모양이었다. 알았다면 득만의 손을  끌어다 아랫목에 앉히고 달실네에
게 고구마술을 내오도록 이르지는 않았으리라.

 

장 프러덕션 대표
  한국 국악기사 사장
  장 득 만
  전화 00-000-0000-0

"집장산지 건축업인지루 떼돈 벌었다드먼 아닝가베. 이기 뭔 뜻이다요?"
  장득만을 문 밖까지 배웅하고  온 영감에게 달실네는 방바닥의 명함을 손가락
질했다.
  "어, 잃어블믄 큰일나제, 클나."
  대답도 없이 영감은 금박으루 테두리를  두른 명함을 두 손으로 받들 듯이 집
어서는 바람벽에다가 이름과 전화번호를 옮겨썼다.
  "횡재여, 횡재. 임자! 돈  생기믄 거 임자 나들이 입성이나 반반한  걸루 한 벌
하자구. 시집 올 때 못해 준 비단 두루마기두 한 벌 허구 말여."
  술동이가 바닥나도록 지나치게 마신 모양이었다. 영감의  얼굴은 전에 없이 발
그레 홍조를 띠었다.
  "대체 뭔 일루 왔다요."
  술김을 피하느라 얼굴을 돌린 채  달실네 또한 전에 없이 샐쭉하게 말을 뱉았
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장득만에의  노여움이기도 했고 그를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 보낸 영감에의 분풀이이기도 했다.
  "허허, 임자. 대밭 말여, 그걸  큰 거 한 장 주겠다지 뭐여. 논 열 마지기  사구
두 남을 돈을 말여. 허허, 참 별일이시."
  "뜬금ㅇ이 그기 뭔 소리다요."
  뜻밖의 일이어서 달실네의  눈은 자연 휘둥그레졌다. 부엌으로  내가려던 술상
을 든 채 발을 옮기지 못했다.
  "허허, 뭔 소리긴. 대밭을, 아니 밭을  사겠다는 말두 아니구 대나무만 몽땅 사
겠다아 그러더란 말시.  허허, 거 서울양반이 눈 하나는 밝드먼.  이 근동에서 젤
로 크고 오래 묵고 또 다들 누렁댄디 우리 해만 오죽이라나 하는 꺼먹대니께 맘
에 쏘옥 들었든 거이제."
  벌써 돈을 받기라도 한 듯, 영감은 턱을  손바닥으로 쓸며 사람좋은 웃음을 자
꾸 웃었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고 생각할수록 신명이 솟는 모양이었다. 장득만
은 저녁까지  먹고서는 자정이 넘도록  앉아 있다가 돌아갔다.  가면서 부엌으로
난 작은 문을 열고는 "저녁 맛있게 먹었습니다." 뜻밖으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반절을 했다. 달실네가 외면하자, "술이 참 맛있습니다." 한동안 그녀를 쳐다보더
니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문을 닫았다.
  "꺼먹대는 뭣에 쓴다요?"
  "낸들 아남? 거 퉁손가 젓댄가 그런  거 만든다고 허등만. 대밭이야 싸악 비어
부러도 석 달이믄 시퍼렇게 솟으니께 횡재한  택이제, 횡재. 허허. 이참에 광주의
큰놈 방도 얻어 주고 텃밭도 늘려야 쓰겄구먼."
  "안 돼야요!"
  호리병이 깨지는  듯한 목소리에 스스로가 놀라서  달실네는 하마터면 술상을
메칠 뻔했다. 엎드려서  뭔가를 끄적이던 아이들도, 술기운으로 녹작지근해진 몸
을 이불더미에  기대려던 영감도 벼락맞은 나무처럼  일그러진 눈을 달실네에게
치떴다.
  - 이라믄 안 돼제. 안 돼야.
  속마음에 채찍질하듯 그녀는 눈시울을 위로 흡떴다.
  "죽으믄 죽었제, 그 인간헌티는 못 판당께요!"
  다시 똑똑하게 말그루를 박고 나서 달실네는 방을 나섰다.
  - 후우 -
  알지 못할 설움덩어리가 목구멍을 메웠다. 까마득하게  잊은 줄 알았던 눈물이
후드득 개수통으로 떨어졌다. 시집  온 뒤로 울음자국을 보인 일도 없었고, 소리
를 지른 적도 없었는데.... 험한 꼴을 보인  것이 못내 열적었다. 달실네는 식구들
이 모두 잠 든  뒤에야 방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으나  영감의 코고는 소
리는 들리지 않았다.
  "섭섭했남?"
  이불 속에서 영감의 손이  달실네의 손을 찾았다. 달실네가 골아눕자 허허, 영
감의 나직한 웃음과 뜨거운 몸뚱이가 어둠 속으로 거너왔다.
  "팔기 싫음 말제. 한 팔믄 되잖여.  ...나이가 몇인디 그랴, 시방. 여직두 처녀적
맘인가베."
 
  7
 
  괘종시계가 일곱 번을 쳤다. 달실네는 천천히 다래끼를 들고 일어섰다. 며느리
가 유자 상자를 이고 첫차로  나간 뒤 줄곧 마루에 앉아서 맥을 놓고 있었나 보
았다. 올해는 유자가 유난 스럽게도 많이 열려서  가지 휘어지게 열린 것도 놀랍
지만 때깔 또한 얼마나 고운지.
  - 아유, 이쁘기두 해라. 샛노란 약병아리 같구나.  이 유자를 받는 조상은 기분
두 째지겠는 걸.
  서울네가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유자뿐만이 아니었다. 해마다 간신히 모양새
나 갖추던 포도와 양다래도 올해는  단물이 흠뻑 들어서 가을내 성우와 동네 꼬
마들의 군입거리가 되었다.
  - 다아 임자가 걱정돼서  허는 짓이닝께 말리지 말란 말여. 늙은이는  손에 쥐
구 죽을 망정 돈쌈지가  비믄 안 돼능겨. 아무래두 낫살이나 더  먹은 내가 먼첨
죽을 테니께, 거,  영감 ㅇ다구 삯일하러 밖에  나댕기지 말구 저것들 팔아 쓰란
말여. 유자나무 한 그루면 딸 시집 보낸다구  허니께 자식들이 아무리 보채두 유
자밭을 팔지는 말어.  알것남? 망녕 들기 전에는 광  열쇠두 며느리 주믄 안 돼.
임잔 모지락스럽지 못해서 그거이 늘 걱정이랑게.
  벌써 십  년이나 되었나 보다.  뱃구레가 졸아들도록 천식이  심해지자 영감은
무슨 생각에선지  집 안팎으로 과실수를  심기 시작했다. 몸이  축난다고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마당 구석에서  구렁이 같은 몸체를  뻗어올려 잔줄기를
친 포도나무, 장독대 옆으로 들어앉은 양다래밭, 대문 앞의 아름드리 개오동나무
와 감나무는 모두 영감이 죽던  해 봄에 몸 사리지 않고 터 잡아 놓은 것들이었
다.
  - 성님두, 참. 아, 장대 겉은 아들이 넷이나 되는디 형수님이 뭔 걱정이라요.
  논농사를 배메기하라는 영감의 부탁이 유언을 듣는 기분이었던지 시동생이 떨
떠름한 낯으로 핀잔을 주었다.
  - 거, 모르는 소리여. 애비  ㅇ는 자식덜, 의붓에미 등이나 안 치믄 효자제, 효
자.
  그러나 영감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들은 별탈없이 제 갈 길을  찾아갔다. 광열
쇠를 받은 며느리도 품앗이에 지쳐 몸살을 앓을 망정 달실네를 내보내지는 않았
다. 마음에 늘 걸리는 것은 일찍 애비를 잃은 손자들뿐이었다. 물난리가 나던 지
지나 여름, 불어 난  개울물을 얕잡아본 것이 탈이었다. 휩쓸려 내려가던 사람은
구했지만 연우 애비는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
  "엄니, 유자 따러 가실라요?"
  "오오냐."
  발소리를 들었는지, 아랫방에서 길수의 잠 덜 깬  목소리가 새 나왔다 어제 늦
게까지 친구들과 술추렴을 했으니 아마도 며느리가 돌아와야 일어날 것이었다.
  "그냥 두시오, 엄니. 이따 지가 싸악 따버릴라요."
  곳집 앞에 세워 둔 장대를  들고 뒤꼍으로 돌아드는데 다시 하품을 문 소리가
따라왔다.
  유자밭에 오르자 마을이  한눈에 잡혔다. 언제나처럼 마을은  돼지, 닭, 개들이
짖는 시끄러움과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빛살로 아침을 꾸미는  중이었다. 마을의
아랫도리께를 적시며  흐르는 샛강도, 마을  옆의 산으로 치뻗어오르는  길 끝의
절터도 이제 막 말갛게 태어나고 있었다.
  - 망할 것. 왜 안 가능겨!
  밤새 불을 켜놓은 채  뒤치락거리길래 짐을 싸나보다 했는데 첫차가 떠나도록
서울네는 일어나지를 않았다.
  "첫차로 가야제. 낮차로는 해 안에 서울 못 떨어질껴."
  어제 한마디 슬쩍 던졌을  때도 못 들은 척 대답을 않던  서울네였다. 설마 오
늘 첫차로는 가겠거니 하던  마지막 기대마저 없어지자 달실네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마도  딱히 뭐라고 집어 말하기 어려운 그  느낌을 삭이
기 위해서 첫 차가 떠난 뒤의 시간 반을 마루에 앉아 있었나 보았다.
  서러움이랄 수도, 원망이랄 수도, 한이랄 수도  없는 그 무엇이었다. 뿌리 없는
물풀처럼 작은 물주름에도  간단 없이 휘둘리는가 하면, 떠 다니는  풍선처럼 실
바람에도 곤두박질치는 그  무엇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느것  하나도 가질
수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깨고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옆에서 치이기만 하는 울분의 그 무엇이었다.
  "아유, 숨 차. 숨이 차서 죽, 겠네."
  서울네가 숨을 할딱이며 올라와서는 달실네를 보자  발을 멈추었다. 아직 유자
는 반 다래끼도 못 차 있었다.
  "아니, 정순아. 새벽부터 이게 무슨 짓이냐, 응? 아들, 손자,  며느리, 그 시퍼런
것들 다아 놔두고서 왜 환갑 늙은이가 유자를 따냐구."
  "날 찾응겨?"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적이 없었으므로 달실네는 서울네가 떠날 인
사를 차리러 올라온  줄 알았다. 버스를 놓치기는 했어도 감이며  유자를 실어나
르는 트럭이 빈번해서 서울행 차편을 구하기는  손쉬웠다. 그러나 부수수한 파마
머리와 보라색 긴 치마는 결코 떠날 사람의 차림새가 아니었으므로 달실네는 곧
시큰둥해졌다.
  "아유, 제 키보다 서너  배는 긴 장대를 들고서 휘청대는 꼴이라니. 늙은이 노
망이 아니구서야 원. 그거 이리 내, 정순아."
  어제는 연우와 성우와 달실네가 길수에게서 장대 끝에 물린 유자를 받아 다래
끼에 담고 한쪽에서는 며느리가  크기를 갈라 상자에 담고 서울네는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었다.
  "아, 뭔 참견이여?"
  "장대 이리 달라구, 정순아."
  "정순아? 정순아, 라니."
  장대를 뺏기지 않으려고 힘겨룸하다가 갑자기 장대질을 멈추고서 달실네는 서
울네를 맞보았다.  늘 발치에서 어른대던  어떤 기운이 머리털을  세우며 길길이
뻗는 기분이었다. 쌀쌀맞은 댓거리에 서울네는 움찔 놀란 모양이었다.
  "왜, 왜 그래,  정순아. 네가 힘들어 하길래 내가 대신  장대질 하겠다는 데 뭐
잘못 됐어?"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조금도 숙어드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 맨들맨들한 사투리 말여. 그 사투리가 듣기 싫어서 그려."
  "사투리?"
  서울네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어 까르르르  웃음소리를 날렸다. 달실네의 얼굴
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서울말이 왜 사투리야. 정순이 네 말리 사투리지. 이상괴상한 전라도 사투
리!"
  장대는 어느 틈에 서울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내 말이 사투리라고요?  원 별 망측헌 소리  다 듣겄네잉. 아,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말 쓰는 거이 워찌 사투리여? 니 그  괴쩍은 말뽄새가 사투리제잉. 그라믄
니는 뭣 땀시 잠꼬대를 전라도말고 한다냐잉?"
  힐끗 달실네를 보더니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서울네는 장대질을 시작했다.
서울네라고 장대질이 손에  익을 리는 없었다. 장대 끝의 가위에다가  유자 꼭지
를 넣고 비틀거나  잘라서 유자를 잎사귀에 묻은 가지째로 따내야  하는데, 서울
네는 꼭 감을 따듯이  장대로 가지를 툭툭 쳤다. 꼭지 실한  유자이므로 잘 떨어
지지도 않으려니와  떨어져도 멍이 들기  십상이었다. 멍이 든  유자는 제사상에
올리지도 않지만, 저며서 유자차를 끓이기에도 나빠서  장에 내봤자 값이 똥금이
었다.
  "안 돼야, 안 돼야! 그러코롬 마구 치면 워쩌!"
  보다 못한 달실네가 잔소리를 했다.
  "어쨌거나 유자만 따면 될 거 아냐. 저리 비켜. 다친다구!"
  "안 돼야! 저런, 저런. 큰 가지를 마구 꺾잖나베. 아, 나무 버린당게 그라네잉."
  "거, 참. 천리 먼데서 찾아온 소꿉동무한테 되게 야박하게 구네. 아, 이깟  나무
몇푼이나 간다구 그래. 이 유자, 몽땅 내가 사면 될 거 아냐!"
  "오메! 아까운 유자 다 죽네잉!"
  "저 엄살 떠는 것 좀 봐. 아,  내가 나뭇값 준다니까. 얼마야, 대체. 오십만 원?
백만 원?"
   심통맞게 큰 가지  하나를 우지끈 꺾어놓더니, 무슨 재미가  들렸는지 서울네
는 유자나무를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미쳤남?"
  달실네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밤나무 털 듯 모진 모잴에  나뭇잎들이 우수
수 떨어지자 나무는  금세 앙상해졌다. 가리개를 잃은 유자는 가지째로  꺾인 채
나무에 볼썽사납게 매달려 대롱거렸다.
  "잡년!"
  달실네가 달려가서 거칠게 장대를 낚아챘다. 장대는  휘우뚱 중심을 잃고 쓰러
지면서 서울네의 명치끝을 때렸다.
  "정순이, 네 년이 날 쳤겠다."
  "그래, 쳤다! 어쩔텨!"
  "흐흥!"
  비웃음과 함께 서울네가  몸을 날리더니 달실네의 머리채를  잡았다. 머리털이
뭉턱 빠져나가는 아픔을 참느라 달실네의 입술에서 피가 번져나왔다.
  "아이구구! 나 죽는다아!"
  끌려만 다니던  달실네가 돌연 서울네를 힘껏  발길질하자 벌렁 나동그라지며
서울네가 비명을 질렀다.
  "이 쌔려 쥐일 년!"
  틈을 주지 않고 달실네는 서울네의 튼실한 몸뚱이를 덮쳤다.
  "덕례, 이년! 이 잡년!  내 다아 알제. 알았다구! 니년이 먼첨 치맛속을  보이며
득만이를 꼬셨제?"
  "뭔 소리여, 뜬금ㅇ이!"
  "바른 대루 대란 말여! 니년이 단옷날 득만이를  술 멕여설랑은 꼬셨제? 니 오
래비랑 작당해서 꼬셨제? 바른 대루  대란 말여, 이 잡년아! 그러잖음 오늘이 니
년 제삿날잉게!"
  눈을 번득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달실네는 나무에 걸어 놓은 낫을 발견
했다. 얼른 낫을  가져다가 서울네의 목에 날을 대니 서울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오메, 득만이 땜시,  그 잡눔 땜시 시방 이  지랄잉겨? 오메, 정순이. 너 이제
보니께 사람 몇 쥐일  년이구나잉. 내 워쩐지 고향 땅에 꼭 한 번  오고 접다 혔
드먼. 뭔 빚 갚을 것이 남은 것 마냥 찝찝하다 혔드먼. 아, 이 낫 못 치울겨!"
  사지를 벌벌  떨면서도 서울네의 얄팍한 입술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잡년, 잡
년, 잡년,  달실네도 입술을 달싹였으나 스스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흰자위를  드러낸 눈, 딱딱 맞부딪는  이빨, 낫을 든 손이  신대를 쥔
양 덜덜 떨렸다.
  무슨 짓을 저지른다 해도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신력이지 자신과는 아무 상
관이 없는 듯했다.
  "잡년! 어디 사내가 ㅇ어서 남의 사내를 붙어 묵냐, 이년아!"
  "아이고메, 잡년! 내가 니년 액막이 해준 줄이나 알더라고."
  "싸가지 ㅇ이 뭔 소리여. 덕례, 니년 땜시 내 신세가 요래 뒤틀렸는디. 외려 나
헌티 덤터기를 씌우구 지랄이여, 지랄이!"
  "신세 뒤틀린 건 나여, 나. 아,  날 보믄 몰러! 순 날건달 겉은 놈 잘못 만나서
꽃 겉은 내 청춘 홀라당 말아먹구설랑은 늙어서 오두가두 못허는 내 꼬락서니를
보믄 모르냔 말여!"
  "잡년! 그라믄 내 청춘을 요지경으루다 망친 년눔들 뒤끝이 좋을 꺼여?"
  "그려, 니년 말이 맞어!  좋은 것두 다 한때제. 일껏 고생  고생혀갖구 배가 부
를 만허닝께 거 무슨   프러덕션인가 뭔가를 차려설랑은 노래께나 허는 년들 꽁
무니를 쫓아다니는디, 오메, 징헌 거, 징헌 거어어엉."
  깔린 몸을 뺄 생각도 않고 달실네는 입을  크게 벌려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
운 울음소리에 달실네는 잠시 멍했으나  곧 낫을 거두고서 서울네 옆에 몸을 눕
혔다 눈을 감자 몸뚱이가 땅 속으로 스며드는 듯 아득한 느낌이 몰아쳐왔다.
  "전생에 니년허구 뭔 웬수가 졌길래에... 이기 뭔 팔자땜인가 혔는디이...."
  달실네가 할 넋두리를 서울네가 가락을 얹어서 늘어놓으며 울었다.
  참으로 이상했다. 서울네가 아무리 구슬프게 목놓아 통곡해도  - 무슨 울 일이
그렇게 많은지 서울네는 제 설움에 겨워서 울고  또 울었다. 어미 잃은 송아지처
럼 - 달실네는 전혀  슬프지가 않았다. 슬프기는커녕 해묵은 근심을 벗은  듯 홀
가분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일거리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결코 죽을  생각 따위
는 일 것 같지가  않았다. 문 밖을 나가서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고 멀리 절터까
지도 가보고  싶어졌다. 뿐만 아니라  묵은 건초더미에서 새움이  돋듯 흥타령의
느슨느슨한 가락이 줄줄 흘러 나올  것 같아서 달실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
물었다.

  - 하필이면 고향의 그것도 신성한 절터에서 약을 먹을 게 뭐람.
  진작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화류장의  쇳대와 악어 가방을  며느리에게 맡길
때, 동전 지갑 하나 달랑  들고서 서울 다녀오마고 집을 나설 때, 웬만한 눈치를
가진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남부러울
것 없는 서울갑부가 보잘것없는 고향 친구 집에 바람 쐬러 온다고 했을 때 알아
차렸으리라. 적어도 이십  년을 소꿉동무로 지낸 어릴 적 친구라면  그만한 눈치
쯤은 있어야 했으리라. 비록  세상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진 늙은이일지라도 늙은이
라면 누구나 살아온 옛길을 더듬어  보게 된다는 것을 받은 사람조차 없는 오랜
감정의 빚일지라도 그 빚을 갚기 전에는 결코 눈감지 못한다는 것을.
  - 말이 씨가 된다드먼, 옛말 하나두 그른 거 ㅇ네잉.
  한 달이나 지나서야 미국에서  날아온 서울네의 딸에게 뼛가루를 내주며 달실
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왜 화장했느냐고 다그친다면 달실네로서도  대답할 말
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류장에도 악어 가방에도  묏자리를 살 만큼의 값진 금
품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장씨  문중의 선산에다 산소를  쓰려고 했지만
간신히 연락이 닿은 장득만의 집에서는 이덕례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경
찰이 찾아낸 이덕례의  호적에도 올라 있는 것을 딸 하나뿐이었다.  그나마도 딸
이 먼저 전화해 오지 않았더라면 뼛가루를 샛강에 뿌려야 했을 것이었다.
  - 오늘이 니년 제삿날잉게.
  아무래도 말이 씨가 된 것만 같아서 달실네는 딸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당신의 땅 그리고 나의 땅
    지은이  안혜성

  휴우!
  불면증에 지끈대던 두통이 슬며시  가라앉자 옅은 수면의 늪 속으로 빠져들던
경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바닥이 꺼지도록 내리쉬는 응어리진  한숨이 살얼
음처럼 여비게 내려앉던 졸음을 여지없이 깨버린  까닭이었다. 울화증에 그는 침
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탁상시계를 보았다.  새벽 두 시였다.  두어 시간이
넘도록 몸을 뒤척이면서 간신히 눈을 붙인 지 십여 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누적된 수면 부족으로 인한 두통이 다시금 바늘이 되어 뇌관을 찌르기 시작했
다. 상실감을 가누지  못한 그는 방문께를 노려 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정작
그가 흘겨 보고  있는 대상은 방문 밖에 서서  아들을 향해 정한이 서린 한숨을
치쉬고 내리쉬는 그의  어머니요, 어머니의 독선적인 사랑법임을. 그러니까 그들
모자는 지금 방문을 경계선으로 한 채 서로  대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적어도 겉
으로 보면 맞서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신붓감으로 집에  데려왔던 여자
에 대한 모자의  이견 탓이었다. 어떻든 어머니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경민 자신은 이 같은 자신의  졸렬한 행위의 배후에는 보다 복잡
한 문제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한숨소리에 뒤이어질  장탄식 앞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심한 생각에  침대에 벌렁 다시 드러누웠다. 그 순간  성깔이 대단
한 어머니가 자식의  방문을 까부수고 그에게 달려들  것만 같은 위기감에 그는
섬뜩한 한기마저 느꼈다. 그가 고교 이 년생이었을  때 국영수 회에도 무려 다섯
과목에 걸쳐서 과외를 강요했던  어머니에게 반기를 들 셈으로 지금처럼 방문을
때려 잠그고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십대의 이유 있는
반항은 불과  하룻밤도 지나지 않아서  무참한 실패로 끝났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방문을 망치로 까부수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십  년 전의 치기 만만한  행동을 기억해 내자 소태를  씹는 기분이었다.
꽤 두툼한 담요를  머리끝까지 당겨 덮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라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머니의 한숨에 뒤이어질 수도 있는 질책이나, 또는 전혀 그럴 리
는 없겠지만 어머니가 그에게 제시해  올 수도 있는 회유책을 미리 차단해 버릴
셈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건만  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이 서른에 십
년 전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 탓일 터였
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남의 행동을 미워하다 말고
어느새 그것을 배워버린다던가. 그러나 그는 다시금 한숨을 치쉬었다. 그가 영원
히 구제 불능의 미성년자로 살아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탓이었다.
  그는 지금  닷새째 그의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칩거하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감금의 길을 택한  중증의 자폐증 환자처럼. 그러나 조금은 배타적인  자신의 휴
식법에 대해서 그가 극심한 자괴심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을는지도 몰랐다. 사실
그는 삼 년째 다니고  있는 r 신문사의 외신부장과 편집국장으로부터 병가  신청
서에 대한 승인 날인을 받은 뒤 오랜만에  쉬고 있는 중이었기에, 더욱이 신경정
신과 전문의 인  친구 형에게 찾아가서 건강 상담을  한 뒤 건강 진단서는 물론
회사 소견서까지 떼어다가  오 부장에게 제출한 터였다. 그러니까 그는  고교 시
절에 잠시 앓았던 경증의 조울증  병력과 이즈음 들어서 신문사 기자 생활에 대
한 부적응증에 부쩍  시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이 같은 부적응증과는  결코 무관
하지 않을 터인 시대 상황, 그러니까 경색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80년대 중반의
정황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휴식 공간과 시간을 절
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 같은  그의 변명은 엄살만은  아니었다. 80년대에 들어서부터  언론에 대한
정부 당국의 고삐가 기자들의 숨통을 한껏 조여오면서 그의 부적응증을 또한 부
추기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정치 관계 기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 보니
외신 기사에 대한 그외 신문사의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1980년 7
월에 수십 명의 기자의 목을  짤라버린 터라 그의 신문사는 심각한 인력난에 시
달리고 있건만 충원보다는 당국의 눈치를  보는 일에 더 급급해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특히 일손이 부족한 외신부 사정은 더욱 딱했다.
  발로 뛰는 외근 기자들과는 달리 외신부 기자들이 종일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티커(외신을 찍어내는 기계)가  스물네 시간 토해내는 방대한 양의  외신 뭉치쯤
은 너끈히 처리될 수 있다고 경영진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타부서 동
료들의 사분지 일에도 못 미치는  다섯 명으로 이뤄진 그의 부서 기자들은 사나
흘이 멀다고 야근을 해대야 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단지 과대한 업무량 때문
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그는 한국 정치가 관련된 외신 기사마저 소신껏 다룰 수 없는 기자의 애
환에 비애를  느끼고 있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정치부 기자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는 현실은 달리  어찌 해 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외신 기자들이 한국의 정치  사안에 대한 기사를 써서 전세계 계약 신문사
는 물론 그의  신문사에게까지 타전해 주고 있건만  그것마저 신문에 게재할 수
없는 상황이 비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헌데 그와 같은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그는 기이한 병증마저 얻어버렸다. 한국의 정정에  관련된 기사를 발견할 적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이한 충격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문제의  외신 기
사를 발견한 즉시  철자로 절단해서 그 기사를  오한철 부장에게 넘기곤 했는데
이를 은밀한 기밀 사항인 것처럼 부국장에게 넘기는 부장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
련의 과정이 고역이었던 것이었다.
  "시국에 민감한 외신 기사들은 결코 타부서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말아요. 불량
한 목적에 오용될 소지가 다분하니까 말이오."
  오 부장이 매번  그에게 당부를 할 적마다 그는  부장과 자신 모두가 이 나라
통치자의 내밀한 하수인 내지는 모 기관의 기관원으로 전락한 듯한 가책을 가누
기가 어려웠다.
  "김 기자. 거 요즘에 들어온 뜨끈뜨끈한 외신 기사 좀 보여줄 수 없어?"
  법원 출입 기자인 장원철이 며칠  전 그의 등을 치며 물었을 때 그는 놀란 나
머지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었다. 바로 그때  그는 광주는 물론 일부 지
방 도시와 일부  서울 대학생들 간에 내밀하게  번지고 있다는 반미주의에 대한
<LA 타임스> 특파원이 쓴 기사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 국장께서 절대로 외신기사를 타부서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말도록...."
  "당신... 월급 남산에서 받고 있어?"
  선배 기자가 그를 비웃으며 돌아서자 그는  수치심에 심장이 저렸었다. 그에게
는 병가를 내고도  남을 만큼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었다. 그러
니까 그는 부장의 병가 승인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병가 신청서는 물론 친
구의 형이 써준  건강 진단서를 이 층 거실 탁자  위에 있는 대로 다 펼쳐 놓은
채 그의 병가의 필요 불가결성과 그의 독특한 휴가법의 정당성을 가족들에게 과
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문제는
그가 이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는 데 있을 것이었다.
  경민은 결국 개운치 않은 느낌을  떨치지 못한 채 담요를 내 박차고는 침대에
서 일어나 앉았다. 누군가가 열쇠 구멍 틈으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엿보고 있
는 듯한 불안증이 엄습하자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진짜 정신 질환자마냥.
  "아휴유우!"
  마치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는 그 때 두 번째 장탄
식을 터뜨렸다. 그는 어머니가 퍼부은 욕설을 들은  듯한 환청 탓에 귀를 틀어막
았다. 이구.  이 못난 자슥아! 식음까지  전폐하고 방문까지 걸어 잠그고  누워만
있는 거냐? 이눔 나와 담판이라도 벌여볼 것이지 이 무슨 해괴 망측한 짓거리냐
말이다.
  그는 어머니의 욕설을 맞받아칠  양으로 침대에서 방안으로 냉큼 내려선 다음
방문을 향해서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그를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윤미광의 고
운 영상이었다.
  그녀는 그의 신문사  옆 건물에 있는 은행의 창고 직원이었다.  고객을 위해서
웃으려고 애를 쓰는  듯이 보이건만 서글픈 눈매가  인상적인 그녀가 바로 그가
지금으로부터 보름 전에  집으로 데려왔던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와
의 첫 대면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무도 몰래 그의 집을 뛰쳐나간 길로 종적
을 감췄던 비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안긴 듯한 가책을 털어버릴 양으로 심호흡을
한 그는 드디어 방문  앞에 버티고 섰다. 어머니가 당장 그의  방으로 쳐들어 온
다 해도 한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어머니와 맞서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다음 순
간 방문을 열어젖히고  어머니 앞에서 선수를 치고  싶은 열망에 휘말려든 그는
도어를 힘있게 그러쥐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소리쳐 외치고 싶었다.
  - 어머니, 저는 번번이  제 앞길과 꿈을 가로막고 나서는 어머니의  그 지긋지
긋한 자식 사랑에 진력이 났어요. 제가 이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틀어박
혀 있는 진짜 이유를 어머니는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요. 그래요. 저는 지금 과
로 때문에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제 결혼과 장래마저도 망치려는 어머니
의 자식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지겨워서 이렇게 시위를 하고 있다구요.
  그는 어머니에 대한 구토증에 고개를 내저었다.  경기도 처녀가 전쟁의 와중에
부산 국제 시장까지 내려가서 포목점 점원으로 살다가 가게 주인의 골샌님 아들
과 눈이 맞는 바람에 결혼까지  한 다음 포목상으로 성공한 어머니의 끈질긴 삶
에 대한 애착과 아들에 대한 편애에 질식할 것 같았다.
  경민은 전력을 가다듬을 셈으로 잠시 호흡을  가누었다. 순간 아들처럼 당신의
분노를 다스릴  양으로 숨길을 추스르고  있는 어머니의 심호흡을  그는 들었다.
그것은 환청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방문을 열어 젖히려던 그는 주춤 멈춰섰다.
당신의 여한을 탄식으로 터트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한 듯한 섬뜩한 느낌은
모자의 대치극에서 승자로 일어서고자  했던 방금 전의 열망을 졸지에 앗아버리
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때 깊은 자각과도 같은 강한 느낌에 그는 휘말려들었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적개심을 한 순간에 녹여버렸을 만큼 그 느낌은 강렬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각성  그것은 방문을 경계선으로
해서 대치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가  그의 대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것은 모자가 같은 자리에 서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공범자 내지는 동
지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희한한  사실에 대한 발견이기도  했다. 그는
곧장 침대를 향해서  뒷걸음질쳤다. 자식의 허약한 실체를 훤히 뚫어본  그의 어
머니가 당장에라도 딱부러지게 선언할 수도 있는 얘기에 그는 와락 겁이 났다.
  "야 이눔아, 그깟 지집아가  그렇게 좋으면 그아와 결혼하믄 될 것 아이가. 언
제는 니가 에미허고 상의하고  살았나? 수천만 원 들여서 미국유학 보내 놓았드
니 딱 한 달 만에 모든 것 집어치우고 거지꼴이 된 이몽룡이마냥 집안으로 들이
닥쳤던 놈이 니가 아이고 누구였드나 말다."
  그는 어머니를 적대자로 몰아세웠던 지난 닷새 동안에 느꼈던 것보다도 더 참
담한 패배감을 곱씹으며  책상으로 다가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윤미광의
액자 아니 바로 그녀가 그의 책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미광이. 도대체 너 어디 있는 거니?"
  그는 방문 밖으로  새어나갈 불빛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탁상용  전등을 켰다.
그제야 한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액자는 책상의 구석진 곳에  벌렁 나가떨
어져 있었다. 마치 어머니의 냉대에 그의 집을 뛰쳐나갔던 그날처럼.
  "불쌍한 미광이."
  그는 냉소와 훈기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
녀에게 청혼했던 지난 해 가을에  반강제로 입을 맞췄을 때처럼 액자 속의 입술
역시 싸늘했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외면할 셈으로 휴지를 찾아든  그는 액자
위에 부옇게 앉은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그는 추억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그녀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삼 년 전인 1982년 초봄,  그러니까 그가 한
달 만에 미국 유학을 때려치우고 귀국한 뒤 이년 간의 백수 생활을 신문사 입사
시험 합격으로 마감한  직후 출근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가 고졸  학력의 은
행원의 영상을 그리게 된 것은 그 무렵,  사회부에서 같이 일했던 신출내기 경찰
출입 기자인 장원철 선배 때문이었다.  신문사 선배들이 장선배를 '샤스마오리'라
고 부를  적마다 '사슴앓이' 내지는  '가슴앓이'라고 잘못 알아들었으리만큼 기자
생활이 낯설었던 그 시절 노총각인 장 선배가 한때는 말 그대로 '가슴앓이'를 했
던 적이  있는 연모의 대상이 바로  윤미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뒤 단 선배와 어울려서 소주잔을 기울였던 그는 이미 비련으로 끝나버린 선배의
'가슴앓이'의 사연을 건네 듣자마자 대뜸 자신의 여자로 택해 버렸던 것이었다.
  "야. 김경민. 내가 별볼일 없는 은행원 때문에 속을 끓이다가 어줍잖은 첫사랑
의 상처를 깨끗이 털어버릴 수 있었던 까닭은  말이지,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에
있었던 해프닝 때문이라구.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송금하느라 은행 출입을 하면
서 결국 짝사랑을 하게 되었던 그녀가 불쑥 편집국으로 나를 찾아온 거야."
  그러니까 1980년 5월  18일 그 엄청난 일이  광주에서 터진 지 일주일째 되던
날 그녀는 불시에 편집국으로 들어선 즉시 할 얘기가 있노라며 선배를 불러내더
라는 것이었다. 그 무렵에도 그녀를 사모하고 있던  선배는 선뜻 그녀의 뒤를 따
라나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체면을 벗어던진  채 읍소를 했다는 것이었
다.
  "장 기자님.  신문사에는 광주로 내려가는  비상 취재 차량이  있겠지요? 제발
단 한 번만 제가 그 비상 교통 수단을 이용하게 해주세요."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가슴앓이' 선배가 오히려  더 놀랬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광주와 타지역을 연결해  주는 전화선마저 끊긴 것은  물론이고 기사 검열 제도
때문에 그 지역에 대한 취재 활동이 중단된 마당에 도대체 일개 '샤스마오리' 기
자인들 무슨 수로 그와 같은 비상 교통 수단을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그런 부탁은 불가능해요."
  "그렇지만 장 기자님은 대한민국  아니 세계의 오지 어느 곳이라도 취재를 위
해 달려갈 수 있는 기자시잖아요."
  그녀는 막무가내로 강청하더라는 것이었다.
  "지금 정부가 그곳 사람들의 행동을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미
스 윤은 대체 무슨 일로 전쟁터로 변한 그 도시를 찾아가려는 거요?"
  그녀는 '어젯밤 죽기를 각오하고 걸어서 광주를 빠져나온 자기 사촌 대학생'으
로부터 그녀의 부친이 어제 오후에 사망했다는 부음을 전해 들었으며 그날 안으
로 내려가지 않으면 장녀로서  부친의 장례식마저 불참하는 불효를 범하게 되었
노라고 울면서 선배를 붙들고 늘어졌다는 것이었다.
  "서...선배님. 그...그녀에게 비상 차편이라도 마련해 드렸습니까?"
  "내가 미쳤니? 그처럼 위험하고 불가능한 일을 해주게?"
  선배는 덤비듯 물었던 경민에 대한 능멸감을 감추려 들지도 않았었다.
  "어떻게 좀 도와주시잖구요.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겠습니까."
  "당신, 그때 어디 있었지? 질서와 안전의  땅에서 느끼한 양식 실컷 먹고 싸왈
라 싸왈라 미국말 배우느라 여념이 없었던 당신이 그때의 절박한 상황에 대해서
장광설을 편다한들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선배는 그를 비웃어  주고는 경찰서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며  자리를 떴었다.
그는 마치 선배 기자로부터 따귀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얼얼한 통증을 이기지
못한 채 자기 혐오감을 삼킬 셈으로 소주잔을  거푸 비웠었다. 그러자 그리고 망
각하고 싶었던 그 당시의 일이 필름의 화면처럼 선명히 뇌리에 떠올랐었다.
  사회학도였던 그는 당신의 포목상을 내로라하는 기업체로 키우고자 했던 모친
의 야망에 떼밀리듯,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났었다. 그
때가 바로 반정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던 1980년 4월 중순이었다.
  "지금 젊은것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주먹을 치켜들고 정부 욕을 하면서
싸 다니는 꼴이 아무래도 심상찮단 말이다. 이  불안한 시국에 니가 미국으로 떠
날 수 있다니 얼마나  잘된 일이냐. 이곳이 여차하면 네게 연락하마. 그러면 LA
근처에 있는 풀장 딸린 집 한 채 사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날 공항에서  그는 모성애에 대한  작은 환상마저 깨지는  것을 경험했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전한 생존책을 마련하기
위한 첨병으로써 자식을 타국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내밀한 음
모에 반기를 드는 길만이 조국을 되찾는 유일한  길임을 그는 그때 직감했다. 때
문에 뉴욕 근교에 있는  N 대학교에서 어학공부 과정을 밟기 시작했던  바로 그
날부터 귀국할 수 있는 적당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었다.
  기다리는 자에게 역시  기회는 찾아온다고 했던가. 반귀머거리  생활을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햄스테이크로 저
녁 식사를 하면서 무심코 식당에 설치되어 있는 TV에서 뉴스를 보다 말고 경악
했었다. 아프리카의 빈국 아니면 군부 독재로  악명이 높은 캄보디아에서나 터졌
음직한 반정부 데모이라고 짐작하면서 느긋하게 뉴스를 구경하던 터라 TV 화면
속에서 낯익은 한국인들과 그들의 구호를 발견한 충격은 더욱 컸었다.
  "아아니... 저건 우리나라에서 터진...."
  형편없는 영어  듣기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감했다. 조국의  남녘에 있는
도시에서 엄청난 유혈  사태가 터졌음을. 그리고 그곳 시민들로 하여금  들고 일
어서게끔 내몰아간 원인의 제공자격인  군부 세력이 막강한 철권 정치를 자랑하
면서 끔찍한 학살과 보복 행위를 자행하고 있음을.  이는 또한 동란 이후 처음으
로 터진 동족 상잔의 혈투였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었다. 그는 집으로 국제 전화
를 걸었다.
  "경민이가? 와 무슨 일로 이렇게 이른 아침에 값비싼 전화를 했노?"
  그는 방금 전에  느꼈던 충격과는 또 다른 충격을 맛보았다.  호된 피난살이와
그 지역 출신인 시모 슬하에서  매운 시집살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입에 익힌 경
상도 사투리로 어머니는 느긋하게 전화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머니는 텔레비전 뉴스도 보시지 않으셨나요?"
  어머니의 안일한  시국관에 대한 혐오감이 아무  죄없는 경상도 사투리로까지
번지는 증오 확대증을 가누며 그는 어머니에게 반문했다.
  "어젯밤 뉴우스 말이가? 뭐 볼거리가 있어야제. 온 밤 푹 잘 잤다 아이가?"
  "그, 그렇다면 과,  광주에서 터졌던 그 학생들의 데모나 군인들이  마구잡이로
학생들을 때려잡았던 사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단 말입니까?"
  "뭐라꼬? 아니 그  광주 아이들이 또 들고  일어났단 말이가? 아니 그 아이들
들고 일어서 보았댔자 지네  뒤통수만 깨지는 무모한 짓거리를 또 했단 말이제?
아이구, 왜들 이라나 모르겄다. 수출도 좀 될 만하고 살 만허다 싶으면 아아들이
와 그리 설쳐대는지  정말 귀찮아 몬 살겄다. 우ㅉ든 우리집과  아부지는 물론이
고 서울 사람들 다 잘먹고 잘 살고 있으니께 염려는 치와뿔고 니 공부나 잘하고
있거라이. 엄마의 선견지명에 놀랐제? 그럼 전화 이만 끊는데이."
  경민은 무력감을 절감하면서  전화를 끊었었다. 어머니와 서울  사람들의 평안
한 모습이 역설적으로 광주 사태의 참담함을 더욱 극명하게 웅변해 주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빌어먹을! 그러나 그는 그  욕설이 그 비극의 나라로부터 멀리 도망
쳐 온 격인 자신에게  향할 수밖에 없음에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이 사태가 그의 귀국을 위한 가장 그럴 싸한 빌미를 제공해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바로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기숙사에서 나
와서 어학공부를 위한 강의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의 등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
다. 함께 어학 코스에 등록했던 이스라엘 학생인 아이작이었다.
  "하이. 경민. 너 언제 귀국하니?"
  "아니, 귀국이라구?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니?"
  "너희 나라에 정말 대단한 시빌 워(내란)가 일어났잖니?"
  나라에 화급한 일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귀국 이유를 반문하고 있는 그를 이
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아이작을 보자 그는 등골에 식은땀이 솟았었
다. 강의  첫날 아이작이 자랑스레 얘기했던  여타 중동국과 6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을 때 미국 유학중이던 그의  큰 형 조셉이 조국의 전쟁 소식에 접하자마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노라는 그 얘기는 그날 온종일 경민의 귓전을 떠나지 않
았었다. 물론 한국이 타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조국에
서 득세하고 있는  군부 정권을 적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으니  딱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의 조국이 다시금 무서운 동족 상잔의 분란에 휘말려들어간 것만은 분
명하지 않은가.
  또한 그 분쟁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계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 분란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신군부가 그러쥐고  있는 무한대한 권력욕이었고 그와 같은 군
부의 권력 남용이 필사적인 시민의 저항을  초래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바른  정치와 민주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상식에 속할 터였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해결책인 민주화라
는 이상적이고도 추상적인 정치  개념이 단기간에 걸쳐서 즉각적으로 한 나라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데 한국 정치와 한국 국민들의 고민이 상존하고 있을 터
였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더욱 풀이 죽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작의 형처럼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들고 전선으로 달려갈 수 있는 행운아도 될 수 없었
기에, 그리고 조국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에 좌절감은 더
욱 깊었었다. 다만 그는 타국인들 앞에서 분쟁에  휘말려 있는 조국에 대한 무력
감과 수치심만을 떠안겨  준 군부의 졸렬한 통치욕이  혐오스러웠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그는  조국의 비극과 그의 개인사가 얽혀지는 것을 느꼈
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는 증오와 살상에  앓고 있는 조국은 물론  군부의 총탄에 쓰러지는 동족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장래를  위해서 외국어를 싸왈라대며 햄스테이크를 먹을 수
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미국 유학과 탄탄한  미래가 지금 군부 정치에 시달리
는 조국과 죽어가는 동족들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어줄 수 없다는 엄연한 사
실만이 귀국을 위해서  짐을 꾸리는 그의 손놀림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그는 다
음날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유학을 떠난 지 한 달 뒤의 일이었다.
 
  미광이의 사진 액자를  정성스레 닦은 그는 탁상  불빛에 그녀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이런! 작은 휴지 조각이  눈매에 붙어 있는 그녀는 마치 경민의 아픈 손
길에 울고 있는  듯이 보였다. 사실일 터였다.  그녀는 그의 어설픈 청혼 때문에
상처를 입은  채 종적을 감춰버렸으므로.  그는 그녀의 고향집  주소를 알아두지
못한 무신경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녀의 단짝인  유명자가 재학중인 학교와 학과
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행방을  찾아내는 일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사진을 품에 안았다.  그러나 그녀를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액자는
뾰족하게 각진 모서리로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보름 전 그날 미광이를 향한 내 요청이 이처럼 그녀의 가슴을 찔렀던 것일까?
회한이 가슴을  쳤다. 그날 신문사 지하  다방에서 만났던 그녀를  낡은 '포니'에
태우고 집으로 오는 동안  그는 몇 번씩이나 그녀에게 간청했는지 모른다. 아니,
그의 요청은 그녀에게는 명령이요 협박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미광이는 번번이 어머니의 기대를 깼던 내 얘기 기억해요? 거금을 돌려서 유
학보냈던 아들이 박사님이 되어서 풀장 딸린 저택을 사놓고 미국으로 초청해 줄
날을 학수고대하던  어머니 앞에 거지꼴로  대문에 들어섰다는 얘기  말야. 나는
결혼 건으로  다시금 어머니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게 된 거지. 내  얘기 이해해
요?"
  그녀는 여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졸 학력에  대한 자격지심 탓일 터였다.
그러나 그는 결혼 직후 야간  대학이건 전문대학이건 간에 실력이 닿는 대로 그
녀의 대학 진학을 성사시켜 주겠노라고 이미  그녀에게 약속했던 터였다. 때문에
그는 어머니에게 지방대학 출신이라고 얘기하도록 그녀에게 당부했었다.
  "언젠가 미광이에게 얘기했었지? 조치원 출신인 우리 어머니가 경상도에서 겪
었던 매운 시집살이  때문에 경상도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얘기 말야.  그런데 우
리 어머니가 더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지방  사람이 있는데 전라도 사람들이라구.
그러니 한  번만 간청하겠는데  우리 어머니가 미광이의  고향이 어디냐고 묻거
든...."
  그는 고향을 숨기도록 부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가책에 입을 다물었었다.
  "너무나 어렵게 자랐다는 어머니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는데 말이지. 어머니는
당신의 과거에 대한 원망과  수치심 탓인지 엉뚱하게도 없는 이들이나 핍박당하
고 있는  이들을 미워하고 계시드라구.  그러면서도 때로는 엉뚱한  선심을 쓰는
시혜자로 변하기도  하구 말이지. 어떻든  지방 사람들에 대한  어머니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우린  반드시 결혼해서 잘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미광이
는 단 한 번만  거짓말을.... 그렇다고 전라도가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도 아
니구."
  "이젠 됐어요. 그만해 두세요. 경민 씨의 부탁을 들어드리겠어요."
  그녀의 강한 대답에 놀란 그는  부모 앞에 그들이 앉았을 때까지도 고개를 들
지 못했다. 정작 그녀가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시혜자처럼 여겨졌기에.
  "그래, 부친이 세상을 뜨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홀로 되신 모친과 동생의 생
활은 어떻게 꾸려가시는지...."
  미광이는 죄인마냥 낮게  대답했었다. 부친 생존시에 적잖은  규모의 꽃가게와
화훼 단지를 일궈놓으셔서 다행이 생계 문제에  대한 걱정은 없노라고. 어머니의
탐문성 질문은 뒤이어졌다.  아가씨는 결혼을 한 뒤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할 계
획인가, 지금 서울에서  결혼한 사촌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형부 되는 분은 어떤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가.  경민은 한 여자의 인격을 여지없
이 난도질하는  어머니의 질문 공세  앞에서 부아가 치밀어올랐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여자들의  인권과 인격의 파괴자는 단지 가부장제 아래의  사회 제도
나 남자들의 여성 차별 탓만은 아님을. 여자들  사이에 도도히 버티고 있는 치사
한 경쟁심과 질투심 역시 여자의 생존과 위치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 대학교는 어느 학교를 나오셨던가?"
  "재수한 뒤에도 대학교에 낙방을 하자 아예 취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는
관계없이 내년 봄학기부터 야간 대학교에 입학할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각본과는 달리 말하는 그녀에게 그는 위기감을 느꼈었다.
  "그래요? 공부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참 공부가 되겠지요. 헌데."
  피의자를 심문하듯이 따지고 드는 모습이 언짢았던 듯 부친이 일어섰다.
  "아이구, 당신은 왜 그리 서두르시는 거예요? 왜 그리 안달이냔 말이에요?"
  아버지는 다만 당신의 형편없는 위상을 손님에게까지 드러내보인 격인지라 입
맛을 다시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평생을 세무 공무원 주사로 눌러  앉았다가 이
제는 세무 관계  비서격으로 아내를 돕고 있는  부친에게 그는 동지애를 느꼈었
다.
  "아가씨의 고향이 어디시라던가. 고향이 전라도 광주라고 했던가요?"
  희생양을 찾아낸 노련한 어머니의  눈매에 번득이는 잔인한 쾌감을 목격한 경
민은 그제야 절감했다.  어쩌면 어머니의 전라도 광주 사람에 대한  턱없는 편견
은 단지 박정희 정권의 불균형적인  경제 개발 정책이 양산한 빈곤층에 대한 막
연한 거부감 탓만은 아님을. 그렇다면 무엇이 어머니에게 쾌감을 맛보게 했을까.
군부 정권 앞에서  그리도 무참하게 무릎을 꿇던  시민들의 허약한 모습에 대한
동정심과 강자 지향의 일반 국민들의 보편적인 성향과는 전혀 다른 어머니의 득
의 양양한 눈빛  앞에서 경민은 섬뜩한 한기마저 느꼈었다. 그는  미광이의 손을
찾아 쥐면서 부르짖었었다. 미광아, 부탁이다. 단  한 번만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
딱 한 번만 거짓말을 해다오. 그의 손을  뿌리친 미광이가 모친 가까이 다가앉았
었다.
  "어머님, 잘못 아셨군요. 제 고향은  전라남도 광주가 아니랍니다. 마음씨 고운
이들이 모여 사는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었지요. 그럼 이만...."
  아들을 놓고 처녀와 한판 싸우면서 승리를 확신했던 모친은 약자의 반격에 아
연 실색했었다. 낭패감이 역력한 어머니를 뒤로 한 채 그들은 거실을 나섰다.
  "이젠 집에 돌아가야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녀는 고향을 배반한 고통 탓인 듯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안 돼. 이대로 떠날 순 없어. 내 방에서 커피 한 잔만 마시구 가라구."
  그는 기진해  있는 그녀를 부축해서  억지로 그의 방으로  안내했었다. 커피를
준비해 올 양으로 문을 나서던 그는  발을 멈추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공연
실황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가 그녀의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리라는 생각 때문이
었다.
  "미광이 옆에 있는 VTR 세트 속에 <사이먼과 가펑클>의 공연 실황 비디오가
들어 있거든. 스위치만 켜면 볼 수 있어요. 그럼, 커피를 가져올게요."
  그러나 블루마운틴을  갈아서 끓여온 커피와 과일을  챙겨들고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기겁했었다. 윤미광이  종이 쪽지 하나 남기지 않은 채  그의 방과 집에
서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었다. 그 즉시 그녀는 은행을 그만두었다.
  결국 올곧지 못한 요청을 했던  자신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물론 그녀를 잃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적수로 쉽사리
단정지어버린 채 이 같은 자기 폐쇄의 치졸한 저항에 매달렸던 까닭은?

  그는 어느새 품안의 온기로 인해서 따스해진 미광이의 액자를 책상 위에 조심
스레 세워 놓은  다음 방문밖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꼭두새벽의  괴괴한 정적만
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자식과의 대결을 마감할 수 있는
뾰족한 묘수를 발견해 내지 못했던 것일까. 마치  미광이를 잃은 뒤에도 선뜻 해
결책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자신처럼?
  그는 전등불을 끈 다음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러나 머리는 온통 잡념들로 들
끓고 있었다. 깊은 미로 속을 헤매는 막막한  느낌에 시달리던 그는 드디어 시인
하고야 말았다. 그가 지금 사고의 전환점에 서 있음을. 그는 오늘 밤 자정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적대자로 여겼던 안일한  생각을 되새겨봐야 했다.  그리고 방금
전 방문을 사이에 둔 채 모자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을 때 불시에 그를 사로잡
았던 생각 - 그러니까 그들 모자가 미광이, 아니  기실은 광주 사태의 의미와 광
주 사람에 대한 편견 - 을  놓고 함께 공모자로 서 있는 듯한 새로운 자각에 대
해서도 심사 숙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장 선배가 미광이의 편집국  출현을 계기로 해서 그녀에 대한 미련을 털
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 순간  확신했었다. 미광이를 사랑해  주는 길만이
그가 미국 유학  한 달 만에 짐을 싸들고  귀국한 행동을 정당화해 주는 유일한
길이요, 광주의 치유를 위한 작은 고통 분담책이 될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미광이의 사랑에 대한 내 확신은 언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녀와의  결혼 가능성을 저울질하면서 그가  기이한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한 것은 그녀로부터 부친의 사망에 얽힌 비보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였을 것
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사귄 지 일 년 남짓  지났던 작년 겨울 그녀는 그의 연정
을 신뢰했던 듯 부친의 진정한 사인이 자연사가 아님을 밝혔었다.
  "아니, 그렇다면 부친께서 사고라도 당하셨단 말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털어놓았었다. 광주 비극의  와중에 집 앞 차도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염려가 되는지라 이미 철시했던 꽃가게 문을 빠꼼히 열고 차도
께를 내다보려는 찰나 어른은 그만 차도 건너편에서 날아온 유탄이 심장에 박히
는 통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의 얘기를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연인의 육친이  맞았던 비참한 최후에  대한 단순한
충격과 연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놀라움과  동정심 외에 찜찜한  감정의 찌끼와
기이한 두려움이 수반되었던  그 복합적인 느낌. 이는 어쩌면 광주의  비극을 바
라보는 '광주 사람 아닌' 그리고 '광주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의 복잡
다단하면서도 이중적인 느낌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단순히 광
주의 비극을 자초한 군부의  비열한 통치욕만을 향해서 욕설을 퍼붓고 삿대질하
는 것으로는 결코 후련해지지 않는  그 미묘한 느낌을 나는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광주 사람에 대한 연민과 미안한  마음만으로는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는  또한 그 사태의 근원적인 원인 제공자가  군부였다 손치
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와 같은 도  다른 동족 상잔의 쟁투를 발발시키는 데 단
단히 한몫을 거든 셈인,  그래서 육이오 동란 외에 또 다른  동족 살인이라는 역
사의 부담을 이 나라 국민 모두에게 떠안겨 준 격인 광주 사람들의 너무도 순진
무구한 정외감에 대한 존경심과 이를 웃도는 아쉬움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까.
  경민은 혼돈에 빠진 채 반문했다. 이 같은  내 미묘한 감정은 힘겨루기에서 처
참한 패배자로 나가떨어졌던 광주 사람들의 우매하리만큼 순진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바라보는  서울내기 특유의 냉정하고 방관자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인
가? 아니면 이는 또한  줄곧 우리 집에서 식모살이요 점원살이를 도맡아했던 전
라도 사람들의 곤핍한 삶에 대한 경멸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와 미광이의 결혼을 전폭적으로 수락할 수도 있노라며 내 허를 찌
를 수도 있는  어머니의 극적인 회심을 상상하다  말고 난데없이 나를 엄습했던
그 불안감의 실체는  바로 광주 사체를 바라보는  복합적인 내 느낌과 연루되어
있단 말인가? 그,  그렇다면 나는 그녀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결코 털어버릴
수 없는 부친의 사망에 얽힌  슬픈 사연과 광주의 상처를 반쪽이나마 나눠 갖는
일이기도 한 그녀와의 결합을 내심 무서워하고 있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추악하면서도 영악한  자신의 실체에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아울러  자신에게 최소한 진실했다는 사실에  기이한 안도감을 느꼈
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식속에 상반된 의식이 엇도는 바람에 혼돈을 느꼈다.
이 같은 증상을 두고 사람들은 정신 분열증의  초기 증세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
는 자신의 의식 흐름을 예의 주시하다 말고  드디어 시인했다. 윤미광을 향한 사
랑과 또한  그녀에게 발목이 잡혀버린 듯한  이중적이고도 모순된 느낌이야말로
바로 광주의 비극을 향한 그의 복합된 느낌에  다름 아님을. 그렇다면 이제 상황
은 분명해졌다. 그는 미광이와의 파경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를 어머니의 독선적
인 자식 사랑과 광주 사람에  대한 편견 탓으로 돌릴 속셈으로 이 어처구니없는
소극을 연출해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모든 행동의  진의가 미심쩍
었다.
  생각의 가닥을  여기까지 훑어 올라가던 그는  푹신한 침대마저 바늘방석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숨길이 막힌 듯한 갑갑증을  이기지 못한
그는 이 월 중순의 싸늘한 밤기운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러
고도 답답증이  가시지 않자 그는 방안의  전등불을 있는 대로 다  켰다. 이제는
방문을 걸어 잠글 필요조차도 없을  터이기에 그는 방문을 마저 열 셈으로 방문
께로 걸어갔다. 중요한 것은  방문을 여닫는 따위의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가 미광이와 광주 문제에  대해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사랑으
로 품어 안을 것인가 아니면 이처럼 이중적인 자기 모순을 의식 깊은 곳에 숨긴
채 어영부영 살아갈 것인가를 양단간에 결정짓는 문제였다.
  때마침 그의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이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남을 배려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란 그의 집에는 가정부 외에는 아버지밖에 없을 터였다.
  "아버지?"
  "그래 내다, 아비다."
  어! 웬일이세요?  그러나 부친에 대한 반가운  마음만은 숨길 수 없어서  그는
방문을 냉큼 열었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손에는 맥주  두 병과 마른 안주가 놓여
있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그는 아버지 못지않게 마실 것도 반가웠다.
  "니가 창문 여닫는  소리를 듣고는 어쩐지 네가  잠을 설치고 있는 것 같길래
느이 엄마 몰래 이걸 챙겨 들고 올라왔다. 들어가도 되겠냐?"
  "물론이죠. 아버지께서는 갈증을 달래 줄 선물까지 가져오셨잖아요?"
  그는 콧날이 시큰했다.  성깔이 불 같은 마누라와 외곬수로 치닫는  자식 틈에
서 눈치보며 살아온 부친의 쇠잔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얘. 차라리 뜨끈한 동태찌개에 밥을 말아먹는 게 낫지 않겠냐?"
  아버지는 당신을 반기는 자식을 대면한 것으로도 기쁜 듯 활짝 웃었다.
  "요 며칠 동안 마음 고생이 대단했을 텐데. 이 애비가 한 잔 따라 주랴?"
  그는 부친보다 먼저 맥주병을 냉큼 쥐고는 어른의  잔을 먼저 채워 드렸다. 부
자는 각기  얼굴을 외면한 채 맥주  잔을 비웠다. 체증으로 남아  있던 답답증이
시원한 맥주와 함께 내려가는 느낌에 그는 오랜만에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헌데 초저녁에 바람을 쏘이고 온 것  같던데. 기분은 좀 어떠냐? 이제 이틀만
지나면 병가도 끝날 텐데. 신문사에 출근해도 무방하겠냐?"
  그는 산책에 대해서 부친이 알고 있는지가 내심 놀랐다.
  "속이 좁아 터진 아들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인들 편하셨겠습니까...."
  그는 속절없는  심정 털어놓았댔자 어른의 심사만  아프게 할성싶어서 침묵했
다. 부자는 달리 할말도 없어서 맥주만을 들이켰다.
  "아이고, 깜박 잊을 뻔했구나. 사실은 맥주보다도 더 빨리 건네주고 싶었던 게
있어서 너를 급히 찾아왔는데...."
  어른은 형편없는 기억력에 혀를 차면서 잠옷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펴, 편지, 미, 미광이로부터 온 편지죠? 맞죠?"
  그는 아버지의 손에서  거의 빼앗다시피 해서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그
는 이마를 찌푸렸다. 너덜너덜 찢겨진 편지의  곁봉투는 물론이고 이미 편지마저
삐죽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편지 봉투가 우선 그의 심사를 뒤틀었다.
  "얘. 오늘 오후에 온  편지가 그렇게 찢어진 건 복동이 짓이니 유념치 말아라.
그 녀석 종이만 보면 좋아서 앞발로 찢어발기지  않더냐. 게다가 느이 엄마나 나
모두 어제부터 미광이에게 궂은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나 싶어서 그에를 찾아
다녔는데, 오늘 초저녁에는  너마저 집을 나갔길래 행여나 하는 마음에  그 편지
를 먼저 읽어보았으니 양해하거라."
  "아니, 어제부터 두 분이 미광이의 행방을 찾아다니셨다니. 웬일로요?"
  그는 어머니까지 미광이를  찾아나섰다는 얘기가 선뜻 믿겨지지  않았다. 그렇
다면 무엇이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러나 그는 그녀가 보내온  편지 내
용이 더 궁금했기에  반나마 찢겨 있는 봉투에서  미광이의 글발을 꺼내어 들었
다. 그는 미광이와의 재회를 위한 단서를 건네줄  수도 있는 그녀의 서신에 우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부친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나 자식
의 속내를 알아차린 부친은 마지막 잔을 급히 비우고도 방을 나서지는 않았다.
  "미안하다만 사실 그 편지는 어제 오후에 왔었다. 그애의 글을 읽은 느이 엄마
와 나는 편지 내용에 아연 실색했었다. 그애가  우리 집을 뛰쳐나갔던 기막힌 사
연을 알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에 오늘 아침 일찌감치 은행을  찾아나섰던 거고.
물론 헛걸음을 쳤다만 말이다. 여하튼 미광이의 글을  읽은 뒤부터는 네 방에 있
다는 그  물건이 궁금하기 짝이 없더라.  결국 오늘 초저녁에 니가  슬며시 집을
나서길래 우리는 그틈에 비상 열쇠로  니 방에 들어와서 그 물건을 보지 않았겠
니?"
  "아아니, 제 방에 있다는 그 물건이 도대체 뭔데요?"
  그는 어머니의 무지막지한 망치질에 다시 한 방 맞은 듯한 패배감에 어머니에
게 예의 질긴 적개심을 느꼈다.
  "니가 신문사 사람으로부터 빌어다 놓았다는 비디오 말이다."
  "뭐라구요? 부모님께서 광주 관련 비디오를 어떻게 찾아내셨는데요?"
  "아니 미광이에게 보여주려고 니가 비디오 세트에 꼽아 두었지 않았었니?"
  그는 부친의 반문에 실소를 했다. 설마 그  비극의 극치를 어떻게 타도시 사람
도 아닌 미광이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혼사가 걸려 있는 날에.
  "그래, 네가 깜박 착각했던 것이로구나. 미광이가 그날 울면서 우리 집을 뛰쳐
나갔던 것처럼 우리도 끔찍한 내용이 목불인견이지라 얼마나 가슴이 에던지 원."
  그는 자신의 실수를 부인하기도 무엇해서 비디오 세트 스위치를 눌렀다.
  아!
  그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총소리에  질겁하며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계엄군의
손에 들려 있는 차검한 총에서 총성이 터졌다.  소복 차림의 늙은 어머니가 자식
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치며 통곡했다.  다시 계엄군이 방아쇠를 당겼다. 또
다른 여인이 상복을  입은 채 관을 쓸어안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또다시 총탄이
터졌다. 이제는 상복마저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노모와 아직도  애티가 나는
젊은 여인네가 함께 관을 붙들고 서러운 곡성을  토해내었다. 그 비디오는 한 장
면씩 교차하면서 인간의  잔학성과 비통함의 양극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 뼈저린 현장의 절묘한 대비는  이 땅에서 불과 몇 년 전에 터졌던 동족 상잔
의 통한 너무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에 대한 인간의 부연
설명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은 채....
  경민은 그제야 기억해내었다.  며칠 전 외신부 동료로부터 광주 항쟁  당시 현
지에 있었던 독일 기자가 취재해서 편집해 놓았던 문제의 비디오를 빌려다 놓았
었음을. 그는 그 무렵 미광이에게 고향 땅을  숨겨달라고 청해야 하는 떳떳치 못
한 느낌 때문에  광주의 참극을 담은 부담스러운  비디오 구경을 미광이의 방문
뒤로 미뤘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만 독어와 영어로  적힌 표제가 잘려 있는 문
제의 비디오를 미국 가수의 공연  실황이라고 깜박 착각한 채 그것을 그날 아침
일찍 미광이를  위해서 VTR 세트에 끼워  놓았던 모양이었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이었다.
  이제 그는 윤미광의 생채기를  도려 파내 버림으로써 적어도 그의 삶으로부터
광주의 비극을 떼어내  버리고 싶었던 자신의 음험한 욕구를 직시해야  했다. 자
신을 위해 남의 진실을 왜곡하면서 타인을 조작하고자 했던 추한 음모를 직시하
는 일은 비통한 광주 관련 비디오를 보는  것 못지않게 괴로웠다. 그는 계엄군의
총탄이 아니라 양심의 총탄에 맞은  듯한 고통에 짓눌린 채 비디오 플레이어 스
위치를 까부수듯 껐다.
  "저 비디오를 보면서 목이 메었지. 유탄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가게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이들이 비명 횡
사한 부친으로만 보이더라는 미광이의 글을 읽은  뒤여서 더욱 그랬겠지. 통곡하
는 여인들이 죄다 그애  모녀로만 보이더구나. 그애 착하더라. 광주를 영원히 잊
고서 부잣집 외며느리로 잘  살아보려고 양심과 고향을 배반했던 자신에게 우리
가족이 사람의 도리를 일깨워 주었다고 감사의  글까지 덧붙였으니 말이다. 이젠
광주 사람으로 꿋꿋이 살겠노라는 각오도 편지에 써 놓았었고."
  "아, 아버지... 이제 그, 그만하십시오."
  부친의 얘기가 그를 단죄하는 질타로 느껴지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 보니 힘없는 국민들만 속아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치 지도자들이
고 언론인들이고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서 사태의 내막을 감추려 들었다고 생각
하니 괘씸하고 말야. 원 세상에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다니."
  경민은 바로 아버지가 조소하는 대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
에 있었기에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국가 안보와 안녕과 질서  그리고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한다는 거대한 명복 아래서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 숨기며 이제
와서는 이나라  국민들에게 이 엄연한 사실마저도  영원히 망각하도록 부추기는
이들 속에 그 역시 버티고 있음을 이제는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나, 그만 내려가마. 미광이의 글 읽고 마음이 가라앉는 대로 안방으로 내려오
너라. 걸핏하면 방문 걸어  잠그는 소싯적 버릇을 못 버리는 너  때문에 속을 끓
이던 느이 엄마, 어제오늘  미광이 글 읽고 비디오 보면서 내리  섧게 울고 나더
니 고혈압 증세가  도진 모양이야. 방금 전에도 네게 사과해야겠다며  니 방안에
서 서성대더니만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하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그냥 내려와
버렸더라. 지금은 냉수만 연신 들이켜면서 끙끙 앓아 누워 있고 말이다."
  경민은 방금 전에 문 앞에서 서성대던 어머니의 불안한 발길의 의미를 뒤늦게
야 헤아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든 그들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음이 재
확인된 셈이었기에 낯은 뜨거웠다. 그가 부친에게 할  말을 잊은 채 비디오를 꺼
내 들고도 잠시 멈칫대는 사이 부친은 다시금 되돌아섰다.
  "그냥 참고로 알아두거라. 사실 느이 엄마 전라도 사람이다. 내리 삼 년  지속
되는 가뭄에 사경 답 다 날리고 병약한 아내마저 잃었던 홀아비 머슴이 단 손으
로 길렀던 불쌍한 여식이 바로 느이 엄마란  말이다. 느이 외조부 따라서 조치원
까지 올라와서 목숨 부지를 하다가 부산까지 피난갔다가 포목 장수로 부자가 된
느이 조부모댁 가게 점원으로 살다가 냉대 끝에 나와 결혼까지 했으니 시집살이
가 얼마나 심했겠냐.  느이 할머니헌테 전라도 개땅새라고  무시당하며 살더니만
언젠가부터는 느이 할머니  원망하다 말고 전라도 땅에 한을 품게  되더구나. 느
이 엄마 이해해 줘라. 결국 우리 모두 단  몇 대만 거슬러올라가면 다 고향을 떠
나 살아야 했던 불쌍한  떠돌이들이 아니었겠냐?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따로
없는 기라. 서울양반이셨던 느이 조부 어르신도  피난통에 경상도 마누라 만나시
는 바람에 반은 경상도  사람으로 사시지 않았겠냐? 이렇게 갈라지고 저렇게 찢
어져서 피타 삿대질하면서 살게 된  것도 너나 할 것 없이 시를 잘못 만나고 사
람 잘못 만나고 지긋지긋한 이  땅의 가난 탓이 아니더냐? 느이 엄마 용서해 줘
라."
  지지리도 고생하며 자랐을 어머니의  사연에 놀란 그가 충격을 추슬렀을 때에
는 그의 부친은 이미 방을 나간 뒤였다.  경민은 그제야 사사건건 남편과 자식을
이기려고 기를 쓰던 어머니의 아집이 뿌리 깊은 열등감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음
을 깨달았다. 그는 미광이의 편지에 볼을  비비면서 방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
다. 서러움이 울컥 목젖  위로 치솟으며 한 순간에 시야를 흐려놓았다. 미광이가
불쌍했다. 어머니의  가슴 아픈 유년기도 안쓰러웠다.  또한 광주 사람과 이나라
사람 모두가  서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손등으로 눈매를 훔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적어도 이 순간 그가  울어주어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다.
정녕 통곡해 주어야 할 위인은 바로 김경민 그 자신일 터였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