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일원으로서 대 서막이 올려질 때부터 대단원의 두 번째의 막이 내려질 때까지 손에 땀을 쥐고, 눈가에는 눈시울을 슬며시 적시며, 긴장하고 지켜본 느낌을 주최측인 중앙일보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무대 밖, 무대 안 뒤 표정>
첫째로 막이 올려지기 전 극장 밖의 모습을 살펴보면 입장권을 미처 구입하지 못한 교민들이 발걸음을 동동거리며 애타하는 모습과 줄지어선 행렬 속에서 눈길로 심정을 읽으며 거대한 액수가 투자된 대형프로젝트가 성황리에 끝날 수 있을 것 이라는 확신과 희망이 들었다.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의 말끔한 차림을 한 모습이 숨은 손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둘째로 공연시작 30분 전쯤 무대 뒤에 연습실로 들어가보니, 처음 눈에 띄는 모습은 고희를 넘기셨을 듯 한(?) 연기자 윤복희님이 진지하게 연습에 임하시는 모습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아는 그분은 오직 신앙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며 살고 계시는 분이시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나는 주름진 모습의 얼굴을 보며 그 분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월의 자국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렇지?" 하시면서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 사진 한 컷...
공연 중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으신다는 그분. 금식으로 올려드리는 무대는 오직 신앙의 힘에만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흔적이 역력히 느껴졌다.
분명히 하느님의 선하신 일을 감당케 하실 사역의 보배로 쓰여지는 귀한 큰 그릇으로 여겨졌다.
무대뒤쪽 복도를 따라가면 몇 개 의 방이 나오고 첫 회 공연을 마치고 식사를 들은 후 두 번째 공연 준비중인 연기자들의 우렁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뮤지컬에서 보여질 각자 맡은 역할에 마지막 혼신의 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내가 아는 공연 배우인 정영숙님과 아주 오랜만에 기쁜 만남의 포옹을 하고 용기와 격려를 전해드리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번 공연의 뜻을 연기자들로 이루소서..." 라고 기도했다.
사람 낚는 역의 베드로 역할을 한 임병욱님과 잠시 짧은 대화를 나누고 공연시간이 되어서 돌아섰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가 주최측인 중앙일보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곳 밴쿠버에는 다 국가 다 민족이 모여 한 울타리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예술문화를 저들에게 알리는 귀감의 계기가 될 수 있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의 수난 길을 몸짓과 소리의 언어로 보여주는 공연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의 완성을 알리는 큰 계획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신 수난사를 통해서 우리 각자 모두의 마음속에 큰 깨달음의 울림으로 남겨질 것이라 본다.
영화로 본 ‘패션 오브 지저스 크라이스트(Passion of Jesus Christ)를 봤을 때 느낌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뮤지컬만이 주고 풍겨내는 고난도의 새로운 연기가 우리 관객에게 전달 되었을 것이다.
<공연>
구원의 손길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대속하시고 피 흘리며 매어 달리신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려는 구원의 통로에 서게 하셨다.
현란한 조명은 무대의 효과를 돋보이게 했으며 조명을 통한 한줄기의 빛들이 놓여져 일곱 무지개의 색감으로 나타난 무대예술의 극치에 경탄의 찬사가 조용하고 나직한 호흡으로 입가를 흘렸다.
조명의 영상 처리를 통해서 천지창조의 첫 시작은 대서막의 시작을 알리며 천천히, 천천히 막이 올려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긴장했고 어둠에서 빛으로 서서히, 서서히...
유다 땅의 입성을 통해서, 광야 생활의 펼쳐진 삶을 통해서 우릴 구원하려 하시는 무한한 하느님의 세계가 마리아를 통해서 그 아들 예수를 잉태케 하시고 탄생시켰으며 그 과정을 발판으로 우리 모든 이의 삶의 질고를 지시고 예수님은 공생의 삶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며 우리 모두가 선함으로 살게 하시려고 하였다.
우리 모두에겐 고통이 아닌 기쁨으로, 예수님에겐 기쁨이 아닌 고통을 초월한 구원의 역사가 고통으로 이루어 졌다.
광야의 생활에서 펼쳐진 삶이 고국을 떠나와서 살아가는 우리 이민자들의 삶과 비교 되었던 것도 불모의 땅에서 토착하려는 정신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라는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수님의 섬세하신 손길은 물 깃던 사마리아의 여인과의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 진실하지 못한 우리의 숨겨진 죄악의 대한 경고성을 알려주셨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얼굴에는 기쁨과 입에서는 ‘호산나, 호산나’ 찬양을 부르며 기쁘게 오실 이를 맞이하던 모습의 연기도 우리 인간에겐 사랑하며 사는 법을 손수 가르치셨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성경 말씀대로 여러 가지 마귀들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모습이 더 새 부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들어 못내 섭섭했지만, 한정된 짧은 시간의 제약 속에서도 우리 인간에게 가르치며 시사하며 보여주려는 혼신의 불꽃같은 연기가 있어 큰 위로를 삶기로 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쳐대던 기쁜 화음의 울림도 잠시 잠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축사하시며 떡을 때던 모습과 자주빛 옷을 입은 가롯유다의 어둡고 그늘진 눈빛의 얼굴에서 미리부터 알고 계신 예수님께선 나의 눈시울을 적시시며 순간 내게 속삭이셨다.
"내가 다 이루었느니라" <테 텔래 스타이> 하시고, "네 삶에 힘들고 지친 것을 슬픔의 잔을 옮겨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계셨다" <피할 만 하시거든 피해 주소소.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처럼>
예수님 수난의 고통은 시작되고 빌라도 군병들의 채찍에 맞으시며 굵은 피눈물을 흘리시고 몸소 받으신 고통으로 우리 멍에를 마다 않고 짊어지신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 모두가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신앙인이었다면 마음속으로 속죄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예수님 그분의 고통은 지금 바로 우리 자신들의 고통이다.
십계명을 통한 사랑의 결정 채를 보여주려 하셨던 것이다.
예술가들은 한 작품이 탄생될 때마다 산고를 통한 땀방울로 혼신의 열매를 맺듯이 모든 일은 우리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원들이 한마음이 되고 한 뜻과 한 소망을 믿음 안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수고하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과 숨은 손길의 자원봉사자들, 불모의 땅에 뮤지컬이라는 고난도의 예술, 대형 프로젝트를 과감히 올려주신 중앙일보에게, 그리고 더 크게는 한마음이 되어서 공연을 관람하고 격려해주신 우리 교민 모두의 사랑 앞에 우리 하나님 그 분께선 더욱 기뻐 귀히 여김을 받으신 줄로 확신하며 교민 사회에서 서로를 섬기며 사랑하는 이웃과의 삶으로 은혜의 긍휼함이 예전보다 더욱 넘쳐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바란다.
기쁘게 살아가시는 귀한 가정들 이루시기를 축복의 문안으로 끝맺음 한다.
연기자의 뇌리에는
오직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기의 타는 불꽃만이 있으며,
혼신의 호흡 속에는 그분을 섬기려는
고뇌의 뇌성만이 소리로 울려져 있고,
움직이는 율동의 몸짓 속에는
사모하는 전율의 혼이 들어 있다.
그분을 사랑하는 혼이 들어 있다.
첫댓글 관객과 연기자의 시, 를 이해...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러한 글 여기에 올려도 될른지요...사순절 기간이라 옛 글을... .
아주 좋습니다 필력이 대단하니 자주 올리십시요...
감사합니다. 누추한 글 죄송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