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7章 대상인(大商人)의 부정(父情)
①
오늘따라 달빛이 맑다.
차가운 달빛이 얄미운 계집의 눈빛 같다.
스슥- 슥-!
달빛 아래, 검은 연기가 선(線)을 끌며 가고 있었다. 끝없이 달리
는 검은 연기!
금릉성을 떠난 하운비의 몸자국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악양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운비의 손가락에는 묵룡여의환이 끼워져 있다. 그것은 신비한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끼고 있는 한, 묵룡신무(墨龍神霧)
가 여의주(如意珠) 같은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운비의 내
공은 배가되어 있었다.
얼마를 갔을까? 그는 누군가 자신을 따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얼른 신법을 더욱 빠르게 전개했다.
쉬잉-!
그의 몸은 더욱 빨리 날아올랐다. 하나, 따르는 자 또한 좀처럼
뒤처지지 않았다. 그는 꽤 먼 곳에 있었다.
'단장대협일까? 그가 아직까지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하운비는 호기심이 일었으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추적자가
누구인지 알 겨를이 없는 상태였다.
"여의비천(如意飛天)-!"
그는 일갈(一喝)을 터뜨리며 까마득히 날아올랐다.
휘이이잉-!
그가 먹빛 용같이 날아오를 때.
"우우……!"
꽤 먼 곳에서 장소성이 들려 왔다. 그를 따르는 자가 그를 놓치며
부르짖는 소리였다.
아련히 들리는 장소성.
하운비는 그 소리가 조금 낯익다 여겼다. 하나, 그는 무정히도 뒤
돌아보지 않고 더욱 빨리 움직여 갔다.
"우……!"
소성은 더욱 구슬퍼졌다.
②
자시(子時).
이제 달빛은 가히 극한미(極限美)를 느끼게 했다.
뽀얀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달덩어리.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거
기에 나타난다고 했다. 가슴 속에 연인이 있는 사람에게는 연인의
얼굴이, 그리고 무심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여인상이 거기 떠오른
다고 했다.
황홀한 달빛 아래.
만인이 아내로 맞고 싶어하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흐흑… 아버님, 어이해 오지 않으십니까? 자시가 되었는데……."
여인은 누추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허름한 베옷, 하나 그녀의 용모는 너무도 뛰어나 허름한 옷에 가
려지지 않았다.
오똑한 콧날, 딸기를 빼물고 있는 듯 도톰한 입술, 그리고 방울방
울 떨어지는 눈물방울마저 미를 더해 주었다.
꽃의 혼백 같은 여인.
사마화혼(司馬花魂), 그녀가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 뒤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그들 모두 복면을 쓰고 있는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금삼(金衫 : 금빛 소매)이 대어진 홍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훗훗… 고집쟁이! 정말 돈에 노랭이인데?"
그는 와호장룡지세(臥虎藏龍之勢)로 누워 있는 거대장원을 보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사마대장원!
그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사마대장원은 쌍소(雙所) 중 하나
로 불릴 만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용병(用兵)이 있다. 그 중 다
섯은 마마맹에도 드문 절세고수이다.
달 아래 누운 사마대장원.
그것을 보고 눈물을 떨구는 사마화혼.
파문당한 여인의 눈물이 달빛에 영롱해지는데, 갑자기 둔중한 소
음이 들리며 굳게 닫혔던 사마대장원의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문은 아주 활짝 열렸고, 안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수는 여섯, 다섯 고수가 오행진(五行陣)으로 한 사람을 호위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가운데 선 사람, 그는 바로 새석숭(賽石崇) 사마충(司馬忠)이었
다.
사마충의 가슴에는 나무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은은한 향기를 뿌
리는 자단목갑(紫檀木匣)인데, 뚜껑이 열려져 있었다. 그 안에서
칠채보광(七彩寶光)이 뻗쳐 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용안(龍顔)
만한 야광주(夜光珠)가 열 개 들어 있었다.
칠채영롱신주(七彩玲瓏神珠)!
전국시대, 그것으로 인해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었다. 그 하
나의 가치는 황금으로 일백만 냥에 달한다. 그것이 열 개이니, 곧
황금으로 치면 황금 일천만 냥이 된다.
사마대장원의 부(富) 중 십분지일(十分之一)이 목갑 하나에 담겨
빠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화혼아, 아비가 그리 비정한 사람은 아니란다.'
사마충은 멀리 서 있는 딸을 바라보았다. 사마화혼은 아버지가 나
오는 것을 보고 방긋 웃었다.
"아버님, 소녀이옵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
사마충은 가슴이 불타는 듯한 부정을 느꼈다.
"고얀 자식! 여자아이로 태어나 이것저것 분 바르느라 재물을 축
내더니, 이제는 목돈으로 갖고 가는군. 시집갈 때 줄 지참금에서
꼭 삭제하겠다. 헛헛……!"
사마충은 황금 천만 냥도 값 없다 여겼다.
'내 딸아이의 미소가 그것보다 값지다.'
그가 자신있어 하는데, 한 사람이 전음으로 충고했다.
귀금지존(鬼琴至尊), 그가 불안한 기색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홍포금삼인(紅袍金衫人)은 독강(毒 )을 익히고 있습니다.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수석호법(首席護法)! 놈이 화혼이와 함께 사라진 놈이 아닌지 모
르겠소이다!"
"아닙니다!"
귀금지존은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아주 빨랐습니다. 비록 암기에 당해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
만한 자는 세상에 없었습니다. 지금 온 자는 그 자만 못합니다.
그러나 음험한 눈빛으로 보아 암기를 지니고 있거나, 독술(毒術)
에 능한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헛헛… 수석호법 말대로 하리다!"
사마충은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황금(黃金)과 생명(生命)!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거래(去來)이다. 그리고 사마충에게 있어
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래이다.
밑지는 장사일까?
③
사마충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억만 냥짜리 딸을 천만 냥에 사니, 남는 장사다. 장사꾼은 으레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법이다.'
그는 몹시 기뻐하는 상태였다. 하나, 겉으로는 아주 비정한 행세
를 했다. 상대가 최후의 순간, 값을 올릴까 불안해서였다.
마마맹의 사자(使者)들과 여섯 사람의 사이가 좁혀졌다. 오십 장
떨어진 곳에 이를 때, 사마충 이하 여섯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사마충은 턱끝을 끄덕였다. 귀금지존과 암약한 바 있기 때문이었
다. 귀금지존은 먼저 현(絃) 하나를 퉁겼다.
띠이이- 딩-!
요란한 금음성(琴音聲)이 나며.
"어이쿠우!"
"대… 대단한 음공이다. 가히 파천황탄(破天荒彈)이다!"
"피가 거꾸로 흐른다."
마마맹 사람들 중 반 정도가 몸을 휘청였다. 금삼홍포인은 상체를
약간 휘청였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훗훗… 귀하가 귀금지존이라는 노선배시군?"
홍포인의 목소리는 창노했다. 그의 나이도 백여 세였다. 매우 고
령자이나, 귀금지존에 비한다면 젖비린내 난다 할 수 있었다.
'기선을 잡았다!'
귀금지존은 조금 안심하며 입술을 떼었다.
"살수마영(煞手魔影)인가?"
그가 묻자.
"천만에, 그분은 오지 않으실 자리이다. 훗훗, 그분은 죽음이 있
는 자리에만 나타나신다. 이 자리는 살리는 자리가 아니냐?"
"허긴!"
"노부는 사자일 뿐이다. 정체에 대해서는 알 필요 없다. 노부는
황금을 받고 사람을 건네 주라는 명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느긋이 팔짱을 꼈다.
"먼저 사람을 보내라!"
귀금지존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침착했다.
"수순이 잘못 되어서는 아니 된다. 훗훗, 황금이 먼저다."
"흠, 고집이 세군!"
"명 받은 대로 할 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노부도 마찬가지다."
"훗훗… 정말 질기군. 그럼 반 보(步)씩 양보하여 이렇게 하자.
동시에 보내기로!"
"좋은 생각!"
귀금지존은 쾌히 응낙했다.
그가 뒤돌아보자, 시주(屍珠)를 입에 물고 다니는 강시괴인(彊屍
怪人) 음시대제(陰屍大帝)가 소매를 들었다.
순간, 회색 기류가 일어나 자단목갑을 떠올렸다. 그것은 둥실 떠
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거의 같은 순간.
"가라!"
홍포인은 사마화혼의 등을 밀었다.
"아… 아버님, 소… 소녀가 갑니다!"
사마화혼은 눈물을 떨구며 사마충 곁으로 갔다.
자단목갑은 그녀가 걷는 속도대로 움직였다. 거리가 점점 좁혀졌
고.
한순간, 자단목갑은 사마화혼의 머리 위를 지나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차아앗-!"
"얍-!"
귀금지존과 홍포인이 서로 악을 써 대며 물건과 사람 쪽으로 움직
였다. 먼저 취한 쪽은 귀금지존이었다. 그는 사마화혼을 잡고 허
공에서 몸을 되돌렸다. 그가 십 장 되돌아간 다음에야 홍포인은
자단목갑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가 그 안을 살필 때, 귀금지존은 사마충 곁에 이르렀다.
④
"됐습니다, 장주!"
귀금지존이 득의해 하는데, 갑자기.
"화… 화혼낭자가 아닙니다, 귀금지존!"
화예마녀가 크게 말하며 손을 쳐들었다.
"아… 아니라니?"
"대체 무슨……?"
다섯 사람이 놀랄 때, 사마화혼이 몸을 뒤틀었다.
"노파의 눈매가 사나운데? 하나, 늦었다!"
독침이 옷 속에서 폭우처럼 뿌려졌다.
팟팟팟-!
"으윽! 네가… 가짜라니……."
사마충의 얼굴이 시꺼매졌다. 그의 가슴이 피로 물들었고 다섯 사
람의 몸뚱이는 호신강기 덕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직후.
"호호… 이제는 약값을 받아야지. 호호……!"
사마화혼은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천마신영(天魔神影)의 술법.
그것은 사마화혼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상승절기였다. 그녀는 가
짜였던 것이다. 너무나도 뛰어난 역용술(易容術) 때문에 귀금지존
과 사마충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고약한 계집! 가지 못한다!"
암기에 격중당해 몸을 휘청이던 귀금지존이 손을 쳐들었다. 그가
파옥무궁장(破玉無窮掌)이라는 상승절기를 쳐내려 하는데.
"으핫핫… 이것을 받아라!"
자단목갑을 취한 홍포인이 가까이 다가서며 소매를 어지럽게 흔들
어 댔다.
핑- 핑-!
철환(鐵丸)이 비 오듯 쏟아졌다. 가짜 사마화혼은 그 틈에 더 높
이 날아올랐고, 귀금지존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혼신공력을 일으
켰다.
꽈꽝-!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니, 폭음과 더불어 근처가 흑무(黑霧)에 잠
겼다. 매캐한 냄새가 가득 뿌려졌다.
"건곤독탄(乾坤毒彈)-!"
"저 놈은 정파의 변절자(變節者) 독절(毒絶)이다!"
"네놈이 감히 우리 노선배님을 희롱하다니!"
화혼오호법들은 이를 갈며 각기 절기를 시전해 댔다.
꽈꽝- 꽝-!
우레 소리가 나며, 흑무가 산산이 흩어졌다. 모든 것은 거의 찰나
지간에 벌어졌다. 흑무는 여지없이 흩어졌다. 땅바닥에 언제 던졌
는지 모르게 박힌 화살 하나가 있었다.
<마마신전(魔魔神箭)>
그 끝에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놀라운 글이 적혀 있었
다.
<고독(蠱毒)의 해약을 억만 냥에 팔겠다. 덤으로 화혼을 줄 수 있
으니, 며칠 안으로 거래에 응하라.
살수마영 적는다.>
그것은 바로 마마맹이 적을 희롱할 때 쓰는 신물이었다.
"으드득! 고… 고독이라니!"
"오오, 사마장주가 정신을 잃으셨소!"
"크으으… 저 놈들을 쫓아가 다 죽이리라!"
오대호법은 사마충이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 피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각기 하나씩을 잃은 후였다.
존(尊)!
그들은 자존심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이역의 절대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살수마영에게 화혼이 납치당한 이후, 다시 한 번 능멸을
당한 것이다.
다섯 호법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텅 빈
들판엔 수치심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마충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화혼아! 화혼아!"
그는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화혼아! 아비가 잘못했다!"
사마충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암기에는 고독이 들어 있었다. 고독
은 살아 있는 독이다. 그것은 그래서 아주 빨리 작용한다. 고독은
벌써 피를 타고 심장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으으, 화혼아!"
사마충은 점점 기력을 잃어 갔다.
쓰러진 대상인(大商人).
그는 난생 처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이었다.
⑤
"화혼아! 아… 아비 곁으로 오너라!"
그는 죽어 가면서도 딸을 찾았다.
"아아, 어찌할 수 없소. 고독은 해약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독이
아니겠소?"
"이런 독을 풀 사람은 부운신의(浮雲神醫)뿐인데, 그는 사흘 안에
찾을 도리가 없는 사람이고……."
"크으으… 사마대장원을 모두 털어서라도 황금을 끌어모아 고독을
살 억만 냥을 마련해야 하오. 그것이 우리 다섯 호법이 할 바가
아니겠소?"
다섯 사람이 낭패한 심정을 추스리고 있을 때, 돌연 먼 곳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 하나, 어찌나 빠른지 대지 위에 그려지는 검은 선 하
나만 보일 뿐이었다. 한순간.
"그 놈 냄새다!"
"화혼낭자를 훔치러 왔던 바로 그 놈이다!"
"나도 그 놈임을 알겠다!"
"저 놈이 여기에 오다니?"
"에잇, 모두 저 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다섯 사람은 동시에 머리카락을 빳빳이 일으켰다.
다가서는 사람, 그는 바로 과거의 살수마영 하운비였다. 그는 들
이닥치다가 열 줄기 눈빛에 접하며 속도를 줄였다.
'대단한 기세다!'
하운비는 강철 사슬에 묶이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몸이 나아가는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분노한 오대호법! 그들은 벌써 싸움을 시작했다 할 수 있었다.
⑥
하운비는 오행화혼진(五行花魂陣)에 걸려들고 만 것이었다. 하운
비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살수 시절에 터득한 육감으
로 일대 살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백척간두 위에 있는 기분이랄까? 콧등에서 땀이 흘러 나올 정도였
다.
화혼오호법은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그들은 진세를 유지하며
다가섰다. 그들은 하운비를 적(敵)으로 알고 있었다.
다섯 노고수들의 몸놀림은 갑자기 빨라졌다. 하운비는 강한 암경
(暗勁)을 느끼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묵룡여의진결이 일어나며
몸 주위로 검은 기운이 나타났다.
우르르르릉-!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니.
"요사한 놈!"
"사술(邪術)은 통하지 않는다!"
다섯 고수가 일제히 허공에서 멈춰 섰다.
"금(金)- 경금강(庚金 )-!"
금붕빙혼(金鵬氷魂)이 쌍수를 내밀자, 황금빛 유형강기(有形 氣)
가 기둥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거의 같은 순간.
"수(水)- 음수장하(陰水長河)-!"
장백의 괴인 음시대제의 손이 벌어지며 잿빛 기류가 꾸역꾸역 밀
려 나와 경금강과 한데 합해졌다. 순간, 적양마서생(赤陽魔書生)
은 쌍장을 합습(合什)했다가 벌리며 화염(火焰)을 토하기 시작했
다.
"화(火)- 태양화강(太陽火 )-!"
하늘과 땅이 불붙는 듯, 용암 줄기 같은 열류가 장심에서 토해져
나왔다. 후끈한 열기! 하나, 그 위력은 화예마녀의 을목강(乙木
)보다 낫다 할 수 없었다.
"목(木)- 을목(乙木)으로 가리다!"
휘이이잉-!
새파란 기류가 장강의 물줄기같이 쏟아졌다.
태청강기(太淸 氣)보다도 강한 을목강기!
그것은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수법이었다.
그리고 귀금지존, 그는 토(土)의 자리를 지키고 허공에 떠서 왼손
을 천천히 내밀고 있었다.
"개토(開土)- 귀영(鬼影)-!"
스스스……!
그의 손에서 일어나는 진기는 파공음을 크게 내지 않았다.
바로 그 점,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다섯 줄기의 강기가 한데 뭉쳤다.
오행상생(五行相生)!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
土), 토생금(土生金)!
화합(和合)의 이치가 작용되어 다섯 줄기의 강기가 본래보다 세
배 더한 위력을 발휘했다.
찬란한 오색신강(五色神 ).
붉고(紅), 푸르고(綠), 누런(黃)빛이 한데 어울렸다. 백여 장 안
이 빛에 의해 가려졌다.
하운비는 정지되어 있었다. 그는 태산 밑에 깔린 기분이 되었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소!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도 아니오!"
그는 중얼거리며 두 손을 합했다.
우르르르릉-!
오행강기가 그의 몸을 강타했다. 흑무가 흐트러지며 오장육부가
뒤집어졌다. 하운비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 하나 그는
뛰어나가지도 못했고, 맞서 싸우지도 못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다!'
그는 호신강기로 상대방의 수법을 막아 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오행강기는 더욱더 강해졌다. 싸움은 동귀어진(同歸
於盡)으로 접어들었다. 하운비가 죽거나, 그들 다섯이 죽어야 싸
움이 끝날 것이다.
하여간, 하운비의 묵룡여의진결은 하운비가 알고 있는 어떤 수법
보다도 위력적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공 대결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박살이 났을 테니까!
그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지반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저 멀리 있
는 사마대장원의 기왓장이 뒤흔들렸고, 흙먼지가 백여 장 높이로
일어나 모든 것을 감춰 버렸다.
하운비의 묵룡신무는 점점 희박해졌다. 그는 비지땀을 흘리고 있
었다. 코와 입술 사이에서는 붉은 핏물이 흘러 나왔고.
"으으으으……!"
하운비는 오장육부가 터질 듯한 고통을 겨우 참아 냈다.
다섯 호법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화예마녀
였다. 그녀는 코피를 터뜨리고 있었다.
오행진은 가장 기초적인 진세이다. 그것은 수레바퀴(車輪)와 같은
진세였다.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부딪치기 전에는 멈춰지지 않는
다.
⑦
꽈르르르릉-!
일(一) 대(對) 오(五)의 대결은 더욱 더한 소란을 일으켰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한 대결!
악양성이 생긴 이후, 이런 싸움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진(陣)의 수레는 더욱 빨리 굴렀다. 하운비는 손을 거두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나는 살아 복수해야 한다. 아아, 어찌 이들을 죽이고 내가 살아
남겠는가!'
그는 손을 거둘 태세에 들었다. 하나, 손을 뺄 틈조차 없었다.
꽈꽝- 꽝-!
만균뇌정성(萬鈞雷霆聲)을 연발케 하는 싸움은 정신(精神)의 싸움
이고, 내공의 싸움이었다. 억제할 수 있는 선(線)을 넘는 싸움이
고, 후회한들 소용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운비의 정신은 점점 흐려져 갔다.
한순간, 그는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우……!"
요란한 장소성! 그것은 금릉을 떠나 악양으로 오는 가운데, 그를
뒤쫓던 소리였다.
"우……!"
장소성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한순간.
"우……!"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흑발(黑髮)을 치
렁치렁하게 기른 괴인 하나가 새처럼 훌훌 떨어져 내렸다.
우두둑- 우둑-!
그의 근골(筋骨)이 나무 부러지는 소리를 내는 가운데, 그의 체격
이 본래보다 두 배 정도 늘어났다.
"우우……!"
괴인은 벙어리인 듯 장소성만 발하며 일 대 오의 내공대결판 안으
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정말 무모한 일이었다.
죽음을 자초하는 일일 테니까!
흑영(黑影)은 하운비 쪽으로 날아들었다. 한순간.
펑-!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으으으……!"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방수( 手)가 있었군?"
"크으으… 마마맹에 저런 고수가 있었다니……."
"아아악……!"
땅바닥이 칠 척 정도 내려앉으며 흙모래가 피어 올라 오십 장 안
을 바람 부는 사막(沙漠)같이 만들었다.
하운비는 땅 속에 파묻힌 상태였다. 그는 입을 조금 벌리고 있는
데, 핏물이 주루룩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를 향해 기어가는 사람
하나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실로 흉칙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우우……!"
하운비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
일 대 오의 내공대결을 단단한 몸뚱이 하나로 망가뜨려 버린 초강
의 고수. 그는 하운비가 모르는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 그대는 누구이기에 나를 구했소?"
하운비는 기어오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으으으으……!"
피투성이가 되어 기어오는 사람은 하운비의 눈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나를 기억하느냐?
그의 눈빛은 그런 말을 하는 듯했다.
얼굴이 지독하게 흉칙한 사람, 그리고 벙어리에 금강불괴지신!
바로 금강동인(金剛銅人)이었다. 그의 눈빛은 다정(多情)했다. 그
는 하운비 곁으로 다가가 하운비에게 절을 했다.
⑧
"으으으으……!"
그는 꾸벅 절을 한 다음, 얼굴을 쳐들었다. 하운비는 그의 뜻을
쉽게 알아 낼 수 없었다.
"왜 절을 하시오? 절을 할 사람은 나인데?"
하운비는 그의 눈빛이 너무도 친하다 여겼다. 그가 받아 본 눈빛
중 그렇게 우정(友情) 어린 눈빛이 있었던가?
"으으……!"
금강동인은 하운비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는 몹시 조급해하고 있
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었다. 한순간, 하운비의 뇌리를
때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주 자상한 목소리.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람, 자신을 악마(惡魔)로 여기지 않
고 구해 주었던 사람.
<금강이 너를 찾으리라. 금강은 너의 내음을 기억하고 있다!>
하운비는 문득 그 글을 기억했다. 글은 목소리가 되어 그를 후려
갈겼다.
<대의를 위해 싸우겠다고 하면, 금강이 네게 그것을 주리라!>
하운비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대는 부운신의의 하인(下人), 금강이란 사람이구려?"
금강이라는 말이 나오자.
"헤헤……!"
금강동인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진짜 금강동인이었다.
그는 하운비의 몸 내음을 기억하고 있다가, 하운비를 찾아온 것이
었다.
"헤헤……!"
금강동인은 웃으며 하운비 곁으로 조금 더 다가섰다. 그는 곱은
손을 품에 넣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붉은 보따리 하나.
그는 그것을 꺼내 하운비에게 내밀고 무엇인가를 원하는 눈빛이
되었다.
하운비는 그의 다정한 눈빛, 그리고 반갑다는 표정에 푸근한 마음
을 느끼며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나를 믿는구려? 나는… 눈빛으로 마음을 읽겠소."
"헤헤……!"
금강동인은 손으로 가슴을 쳤다.
- 나도 너를 믿는다. 그리고 나는 너를 좋아한다!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아, 그것을 주십시오."
하운비는 신비감에 취했다. 붉은 보자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신
비한 흡력(吸力).
하운비는 저도 모르게 부운신의가 적은 말을 그대로 행했다.
"대의(大義)를 지키겠으니, 그것을 내게 주시오!"
"우우……!"
금강동인은 기뻐 장소성을 지르며 붉은 보자기를 내밀었다.
그 때, 화혼오호법은 대단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나뒹굴다가 겨
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장 상태가 나은 사람은 귀금지존이었
다. 하나, 그도 제대로 서지 못할 정도로 내외상(內外傷)이 심했
다.
⑨
그는 하운비를 도운 사람의 등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도에 저런 고수가 있다면, 천하가 일찍 평정될 것을!"
그의 머리카락은 아주 희었다. 내공이 흐트러지며 백발이 되돌아
온 것이었다. 즉, 주안공(駐顔功)이 깨졌다는 것이다.
하운비는 무릎을 꿇었다. 그는 부운신의의 품에 있다가 자신에게
전해진 붉은 보자기를 아주 천천히 끌렀다.
우선 고서(古書)가 보였다. 고서 위에는 봉서 한 장이 있었다.
봉서를 들자, 고서의 제목이 드러났다.
<부운화타경(浮雲華陀經)>
하운비는 제목을 본 다음, 봉서를 보았다. 봉서 표면에도 글이 있
었다.
<천살복마성(天煞伏魔星)의 주인에게 이것이 전해지기를 빈다.>
필체는 하운비가 동굴 안에서 본 필체와 똑같았다.
중원검절(中原劍絶)의 함정에 걸려들어 다 죽게 되었던 하운비를
구한 사람이 바로 부운신의였다. 하운비는 그와의 인연을 하나의
간단한 기연(奇緣)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부운신의는 하운비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찌직-!
하운비는 피 묻은 손으로 봉서를 개봉했다.
<우선 고맙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이제 그대는 금강동인의 주인이고, 동시에 부운화타경(浮雲華陀
經)의 의발전인(依鉢傳人)이다.
노부 부운신의는 마마맹(魔魔盟)에 잡히기 직전이다.
친구 무이초옹(武夷樵翁)을 이용해 노부를 제압한 그들의 계략에
환멸을 느끼고, 그들의 거대한 힘에 공포를 느끼는 상태이다.
마고천장(魔高千丈)!
정파는 도탄에 빠진 것이다.
그대가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숙명(宿命)과도 같은 일이다.
하늘은 공평하다. 마(魔)의 하늘이 있는 동시에, 백도의 하늘도
있는 것이다.
그대는 바로 하늘이 정한 천기수호자(天機守護者)이다. 그대의 근
골(筋骨)이 바로 그것을 말한다.
그대의 근골은 당세제일(當世第一)이다.
부디 천하백도를 위해 몸을 바쳐 주기 바라고, 부운화타경은 그대
의 탕마행(蕩魔行)에 대한 예물로 적당하다 믿는다.
천지간의 도리를 파괴하려 하는 마도 무리들이 그대의 흰 손 아래
처단된다면, 마마맹에 끌려가 굴복하지 않고 자결한다 해도 유감
이 없을 것이도다.
부운신의가 적는다.>
⑩
구구절절 의미심장한 구절들뿐이었다.
부운신의는 의재(醫才)이다. 그는 강호대세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
이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의술을 지닌 덕에 마마맹의 노림 대
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대로 하리다, 노인이시여!"
하운비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부운화타경을 품에 넣고 몸을 일
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했으나,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
다.
신기한 것은 금강동인의 체질이었다. 그는 오행진을 파괴하며 큰
내상을 입었는데, 하운비가 글을 읽는 가운데 생기발랄하게 되어
하운비가 걷자 박수를 치며 바로 뒤로 따라붙는 것이었다.
"헤헤……!"
금강동인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바보에 벙어리, 하나 그는 언제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하운비는 휘청휘청 걸어갔다.
썩은 짚단처럼 누운 오 호법은 하운비가 흉칙한 괴인과 함께 다가
서자, 기가 막힌 듯 한숨만 내쉬었다.
"휴우!"
"이것이 종말(終末)인가?"
노고수들의 눈빛이 흐트러질 때.
"금강! 다섯 노인장에게 응급조치를 해 줄 수 있느냐?"
하운비가 금강동인의 어깨를 툭 쳤다.
"헤헤……!"
금강동인은 물론 그럴 수 있다는 듯, 펄쩍펄쩍 뛰며 귀금지존 곁
으로 갔다. 그의 손에는 침(針)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귀금지존은 그가 다가서자 최후의 대결을 시작할 자세를 하다가,
그 물건을 보고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부운신침(浮雲神針)이라는 물건이다. 그것은 고금일신의(古今一
神醫)라는 부운신의의 물건인데……?"
그는 그제야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금강동인과 하운비를 번갈
아 보았다.
하운비는 죽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빤히 드러나 보이는
데, 그 얼굴은 귀금지존이 본 얼굴 중 가장 늠름하고 아름다운 것
이었다.
"오… 오해였던가?"
그는 더듬거리며 축 늘어졌다.
금강동인이 재빨리 다가서 그의 혈도에 침을 꽂았기 때문이었다.
금강동인이 귀금지존에게 침술을 쓸 때, 하운비는 새석숭 사마충
곁으로 다가갔다.
사마충은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였다. 그의 얼굴은 자주색이었다.
코와 귓구멍에서 피고름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 곁, 마마신전(魔魔神箭)이 모든 것을 비웃는 모습으로 을씨년
스레 땅에 박혀 있었다.
"훗훗… 살수마영의 신위가 상당한데?"
하운비는 작게 중얼거린 다음, 사마충의 상세를 살피기 시작했다.
사마충은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마비시키는 패혈천마고독(敗血天
魔蠱毒)에 걸려 있었다. 하운비는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
는 상태였다.
그는 사마충의 상세를 살핀 다음 내려놓고, 품안에 거뒀던 부운화
타경을 꺼내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갔다.
의경은 다섯 편으로 꾸며져 있었다.
일편(一編) 경혈맥락도(經穴脈絡圖),
이편(二編) 침구제방(針灸諸方),
삼편(三編) 만초만약편(萬草萬藥編),
사편(四編) 만독편(萬毒編),
오편(五編) 부운오절기(浮雲五絶技).
하운비는 만독편을 자세히 살폈다. 얼마 후 그는 고독에 대한 것
을 소상히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의경이 바로 무공부록이라
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명술을 쓰는 비법 중 반 정도가 무공술법
이라는 것이었다.
경전을 지은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본시 인간에게는 잠재능력(潛在能力)이 있다.
그것은 사악한 마음을 먹고, 곡식과 육류를 취함으로 인해 막히는
것이다. 무가의 내공은 바로 그 사악한 힘을 버리는 대신, 진원지
기(眞元之氣)를 얻는 것인데… 이 책에 적힌 의술의 이치도 그러
하다.
인간의 몸 안에는 많은 잠재력이 있다. 그것을 일깨울 수 있다면,
의술과 약술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침(針)으로 경혈(經穴)을 자극하는 것도 잠재력을 일으키는 것이
고, 도인술(導引術)도 그러하다.
본의(本醫)는 여기에 다섯 가지의 내공을 적는다.
그것은 모두 구생활혼술(救生活魂術)이다. 모든 것에 십이 성 능
하게 되면, 잡초(雜草)에서 영약을 뽑고 죽어 가는 자의 몸 안에
서 백 년을 더 살 영기(靈氣)를 일으키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
다.>
부운화타(浮雲華陀)!
그는 약과 독을 재배하는 의가(醫家)에서 창시조가 되는 사람이었
다. 그가 남긴 구생활혼술 다섯 가지는 수준에 따라 이렇게 나누
어졌다.
⑪
천원생령기(天元生靈氣)!
인체에 숨겨져 있는 잠원지기(潛元之氣)를 일으켜 내는 비법이다.
그것은 타인을 상대로 쓰는 방법이다.
불사장생비결(不死長生秘訣)!
자신에게 쓰는 요상대법(療傷大法)으로, 주안공(駐顔功)과 동시에
장생지기(長生之氣)를 북돋우는 방법이다.
혼원무극수(混元無極手) 십팔해(十八解)!
침법(針法)도 되고 진기타통법(眞氣打通法)도 오묘한 방법이다.
마마맹에 잡힌 부운신의는 혼원무극수까지 익힌 다음, 자신의 능
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달은 바 있었다.
네 번째 수법은 구결은 아나, 터득치 못한 것이었다.
일지심인(一指心印) 만생대라아함기공강(萬生大羅阿含氣功 )!
일지심인은 한 가지 지법이다. 그것은 사술(死術)이 아니고 생술
(生術)이었다. 내공이 오 갑자 이상이어야 시전할 수 있는 수법이
고, 본래는 천축(天竺) 천룡사원(天龍寺院)의 장교술법(掌敎術法)
이었던 것이었다.
극성으로 익히면 손가락이 홍옥(紅玉)같이 달아오른다.
홍옥심인지강(紅玉心印指 )!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손가락이 붉게 달아오르기 때문이었다.
다섯 번째 수법.
화허항마심결(化虛降魔心訣)!
어떤 술법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 몹시 난해한 수법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오묘한 내공 비결이었다. 하운비는 그것이 묵룡여의진결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경의 구결이 삼보무공 중 하나와 거의 비슷하다니!'
그는 또 하나의 하늘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삼보의 무공은 정파무공 중 최고이다. 한 인간의 능력으로 평생을
다해 익혀도 익힐 수 없는 것이 그것인데, 평생 의도를 걸은 사람
이 창안한 것이 그와 같다니?
"만류귀종(萬流歸終)이다."
하운비는 간단한 진리를 알 수 있었다.
사마충을 쓰러뜨린 독에 대한 것은 만독편(萬毒編)에 수록되어 있
었다.
<패혈천마고독(敗血天魔蠱毒)을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오 갑자(甲子) 공력(功力)으로 일지심인공(一指心印功)을 사용하
는 것과 고독을 만든 사람이 만든 해약(解藥)을 먹는 것이다.>
오 갑자 공력이라는 것이 하운비를 흠칫하게 했다.
"오… 오 갑자 내력이라면 삼백 년 수위의 내공인데……."
하운비는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그는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내외상(內外傷)이 지극히 심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의지력이 있
기에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비결을 알아 냈는데, 구할 길이 없다니!'
하운비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바로 그 때였다.
"드… 드디어 나타났는가?"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오오, 드디어 무성후예(武聖後裔)가 나타났단 말인가?"
목소리는 땅바닥에서 났다.
사마충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는 한 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하
운비의 손가락에 끼워진 볼품없는 묵옥환을 보며 아래턱을 떨었
다.
"무… 묵룡여의환! 오오, 드디어 나타났다. 이… 이제 무성천하
(武聖天下)가 시작되는 것이다. 너…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렸다!"
"사… 사마대인(司馬大人)! 무슨 소리요?"
하운비는 사마충이 깨어나 말을 한다는 사실보다 묵룡여의환을 알
아본다는 데에 더 크게 놀랐다.
"노부를 안고 노부의 처소로 들어가 주게나. 시… 시간이 없네.
너무도 오랫동안 기다렸네!"
"예… 에?"
"거… 거기 가면 알 것이네. 천고제일비밀(千古第一秘密)이 어떤
것인지를!"
사마충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신위(神威)가 있었다.
하운비는 그의 목소리에 끌려 그를 받쳐 들고 사마대장원 쪽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 서 있다가 길을 터 주었다. 모두
하운비에게 증오의 눈빛을 토하고 있었다.
하운비는 무조건 안으로 들어섰다. 사마대장원은 지극히 광활했
다. 하운비는 문을 아홉 개 지난 다음에야 사마충의 처소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사마충의 거처는 석옥(石屋)이었다. 그 안은 아주 초라했다. 고금
제일의 거부가 살기에는 부족한 장소였다.
⑫
쓸쓸한 돌바닥 위, 사마충의 몸이 천천히 눕혀졌다.
"장주, 거처입니다!"
하운비가 말하자.
"장… 장진실(藏珍室)로 가게. 거기 가면… 으으, 일번(一番)이라
쓰인 물건이 있을 것이네!"
사마충은 피를 뿌리며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기에 자신의 목숨보다도 급하게 처리하려 할까?'
하운비는 사마충의 태도가 초범(超凡)함에 새삼 놀라며 그가 하라
는 대로 장진실로 들어갔다. 장진실은 사마충의 거처와 붙어 있었
다.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진이보(奇珍異寶)가 있었
다.
기진이보에는 번호가 붙어 있었다. 하운비는 장진실 안으로 들어
가며 방향 감각을 잃었다. 장진실 안에는 진도(陣圖)가 매설되어
있었다. 보이는 대로 가면 길을 잃게 된다.
사마충은 상술(商術)의 기인인 동시에 진법의 대가였던 것이다.
하운비가 방향을 잃고 있는데.
"우측으로 삼 보!"
사마충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하운비는 얼른 오른쪽으로 세
걸음을 내딛었다.
"좌측으로 일곱 걸음, 그 다음 홍문(洪門)을 향해 세 걸음 간 다
음, 중극(中極)을 찾아 곧바로 가면 그것이 있네!"
사마충의 목소리는 아주 또렷했다. 하운비는 그가 말한 대로 걸어
갔다.
한순간, 보기(寶氣)로 인한 환각(幻覺)이 모두 사라졌다.
하운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선반 앞에 이르렀다. 붉은 융단이
깔린 선반의 높이는 하운비의 허리 높이였다.
선반 위, 녹슨 고검(古劍)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제일기진(第一奇珍)>
녹슨 고검은 그런 글이 쓰인 천에 덮여 있었다.
"녹… 녹슨 검 말씀이십니까?"
하운비가 크게 말하자.
"그… 그렇네!"
"이것을 갖고 나갈까요?"
"그… 그렇게 하게."
"예!"
하운비는 얼른 손을 내밀었다. 한순간.
웅웅……!
묵룡여의환과 녹슨 고검이 함께 울기 시작했다. 전광(電光)이 두
물건 사이를 흐르는 듯, 두 물건은 서로 통하는 듯했다.
'신비스러운 일이다!'
하운비는 피가 끓는 기분이 되었다. 그는 붉게 녹슨 고검을 거머
쥐고 밖으로 나갔다.
사마충은 앉아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는
데, 얼굴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고독이 주는 고통은 지극히 크다. 사마충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보다도 거대한 희열과 감동으로 인해 고
통을 감수해 내는 것이었다.
⑬
아주 너른 석부(石府)가 있다. 그 안은 사람이 기거하는데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벽에는 야광주가 박혀 있어 언제나 낮인데.
<세 가지 검도(劍道)를 얻은 다음에야 문이 열림!>
누가 썼는지 모를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옷자락을 매
만지며 글을 읽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구결을 외울 것! 그 다음 세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함. 세 가
지 모두를 통과하면, 바로 무영지검(無影之劍)을 얻었다 할 수 있
음.>
글을 보는 사람은 하운비였다.
"지하에 연공관을 지어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하운비는 계단이 무너짐에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무로검관(無路劍關)>
사마대장원의 진짜 비밀은 바로 이 장소였다. 하운비는 사마충의
얼굴을 기억했다.
"정말 고집쟁이 노인이다!"
그는 검을 쳐들었다. 검 위에는 사마충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사마충은 그것을 평생 지니고 있었으나, 단 일 성(成)밖에 얻지
못했다. 그는 무림제일인이 될 근골(筋骨)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
을 알고 연공관 하나를 짓게 되었다.
천룡(天龍)!
그는 천룡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운비는 그의 눈에 천룡으로
보였다. 사마충은 그래서 하운비를 무로검관에 빠뜨렸던 것이다.
'부마동부로 나의 고행이 다한 줄 알았는데…….'
하운비는 정좌를 했다. 그는 일단 십이주천 운기행공에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데, 어디에선가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흘러드는 것이 아닌가?
탁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그 위에 금합(金盒)이 있었다. 향기
는 그 안에서 흘러 나왔다.
하운비는 조식하기 이전, 향기의 출처를 향해 접근해 갔다.
"이렇게 유혹적인 향기가 있다니!"
하운비는 금합을 내려다봤다. 뚜껑이 잘 닫혀 있는데.
<천년설련실(千年雪蓮實)이 들어 있으니, 식량으로 대신하기 바
람. 물은 탁자 아래 샘에서 얻고…….>
역시 사마충의 배려였다. 하운비는 천년설련실이라는 말에 크게
놀랐다.
'북천산(北天山)의 만년설(萬年雪) 아래에서만 자라고 있는 천년
설련실이란 말인가?'
그는 금합 뚜껑을 열어 봤다. 안에는 살구만한 과실이 가득했다.
황금빛 과실!
선인(仙人)이라도 그것을 식량으로 삼지 못한다. 너무 희귀한 것
이기 때문이다. 한데, 사마충은 천년설련실을 일백 개나 모아 두
었던 것이다.
백 일(日)!
그는 백 일이면 천룡이 검을 얻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니, 백 일 안에 검을 얻지 못하면 천룡이 아니다. 백 일 넘게도
검을 얻지 못한다면, 안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운비는 허기진 김에 천년설련실을 하나 취해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맛은 아주 훌륭했다. 그는 허기진 김에 설련을 다섯 개나 쉬지
않고 먹었다. 그는 오 일 간 먹을 식량을 한 번에 소모한 셈이었
다.
뱃속이 뜨거워지며 내외상 자리가 스르르 낫기 시작했다.
"약효가 상상 이상이다!"
하운비는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조식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의 진원지기(眞元之氣)는 천년
설련실 덕에 전에 비해 뒤떨어짐이 없이 충만하게 되었다.
그는 무영지검 위에 적힌 구결을 읽기 시작했다.
<쾌(快)를 넘어라!
환(幻)보다 변화막측해야 하며, 중(重)은 천지(天地)의 무게만 해
야 검을 얻었다 하는 것이다.>
검결은 하운비가 알고 있는 어떤 술법보다도 오묘했다.
쾌를 넘는 쾌속!
환(幻)을 능가하는 변화(變化)!
천지의 무게보다 더한 장중함!
세 가지를 다 얻는 것이 바로 무영지검을 얻는 길이었다.
하운비는 구결을 쉽게 외울 수 있었다. 묵룡여의진결과 일맥상통
하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오 주야(晝夜) 후.
하운비는 첫번째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신상(神像)이
여럿 있었다. 신상이라고 하기보다 마귀상(魔鬼像)이라 해야 좋을
것이다.
열여덟 개의 마신상!
그것은 하나의 검진을 형성했다.
천축국(天竺國) 소뢰음사(少雷音寺)!
오래 전에 사라진 천축의 명파(名派)가 소뢰음사이다. 마신상이
이루는 검진은 소뢰음사의 수호검진이었다.
십팔윤회마검대진(十八輪廻魔劍大陣)!
마신상은 각기 다른 검결을 취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검을 비스듬히, 어떤 것은 검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하운비는 정중앙(正中央)에 우뚝 섰다.
그 순간, 검진이 형(形)이 아닌 무형(無形)으로 발동되었다.
"대단하다!"
하운비는 몸이 사분오열되는 고통을 맛봤다.
'무형지물(無形之物)이 나를 옭아매다니!'
그는 손도 꼼짝할 수 없었다.
열여덟 줄기의 검기가 그를 휘감았다. 신기한 것은, 움직이지 않
는 한 그를 베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검진은 하나의 진세(陣勢)였다. 사마충의 역작 중 하나이고, 바로
기환편(奇幻編)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웅웅……!
검명(劍鳴), 그리고 하운비의 콧등에 땀방울이 맺힌다. 하운비는
정지되어 있었다. 그는 검초를 되풀이해 생각했다.
무영지검은 그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못했다.
- 빠르게 쳐낸다. 그림자(影)도 남기지 않고. 따라서 무영검(無
影劍)이다!
검결은 그 정도로 설명을 그쳤었다.
하운비는 일잔혈검(一殘血劍)을 기억했다.
살수로서의 습관이 남은 탓일까? 손끝이 저절로 꿈틀거리는데, 바
로 그 순간 사위(四圍)가 무형검막(無形劍幕)에 가로막히며 온몸
이 저릿저릿했다.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운비는 숨을 멈췄다.
스슥- 슥-!
빗발치듯 다가서는 검기들!
그냥 서 있다는 것은 무리였다. 사람인 이상 도망치고 싶은 마음
이 나게 된다. 하운비는 빠져 나가야 한다는 유혹을 느꼈다.
하나, 그는 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츠츳츳-!
검진은 더욱더 강해졌다. 하운비의 땀이 더욱 끈끈해졌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운비는 정신을 한데 모으고 오랜 시
간을 지낸 탓에 약간의 공허감을 느꼈다.
의식이 찰나지간 사라지는데, 그 순간 하운비는 검진에 빠진 이후
느끼지 못했던 신비한 허탈감을 맛봤다.
"엇!"
하운비는 둥둥 뜨는 기분을 느끼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그 순간.
우르르릉- 꽈꽝-!
열여덟 자루 검이 다시 그의 진퇴를 봉쇄했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하운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왜 허탈감이 느껴졌을까? 텅 빈 곳으로 되돌아간 듯한 공허감은
어이해 나온 것일까?'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 순간, 그의 머리를 후려치는 깨달음
이 있었다.
'마음마저 멈춰야 한다!'
하운비는 신비영주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 심(心)을 죽여야 살(煞)이 더욱 커진다!
그것은 살기를 숨기고 자존심을 허물어뜨리라는 가르침이었다. 한
데, 그것이 이 장면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지 않는가?
'진은 움직임에 따라 일어난다. 진을 중단시키려면 몸이 움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하운비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는 마음을 완전히 풀어 놓
기 시작했다. 자아(自我)마저 천천히 망각되었다. 그는 공허 속으
로 정신을 내던져 두었다.
하운비라는 것!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그는 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어디일까? 사방이 완벽하게 갇혀진 곳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둔팍한 소리가 났다. 가끔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빛이 차단된 방 안, 누군가 앉아 각도(刻刀)를 쓰고 있었다.
팍-!
나무가 깎여 나가는 소리.
나무 조각이 사람 얼굴로 변화되고 있었다.
팍- 팍-!
조각도는 아주 섬세히 움직였다. 그것은 신이라도 행하지 못할 정
도로 정교한 손놀림이었다. 깎여진 얼굴은 수백 개인데, 모두 한
가지였다. 그 얼굴은 아주 무정(無情)해 보였다. 그 얼굴에는 정
(情) 뿐만 아니라 심(心)도 담겨 있지 않아 보였다.
그 얼굴, 바로 하운비의 얼굴이었다.
하운비는 조각같이 서 있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의 뇌리를 깨어 보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마음을 풀어(解) 버린 것이었다.
텅 빈 마음, 그것은 태초(太初) 이전(以前)의 공허지경(空虛之境)
이라 할 수 있었다. 하운비는 아주 오랫동안 망아지경에서 모든
것을 잊고 지냈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아니, 어느 한순간 그의 의식(意識)이 되살아났다. 바로 그 순간,
하운비의 마음과 함께 잠들었던 검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열여덟 줄기 검강이 다가서는데.
"찻-!"
하운비는 저도 모르게 검을 쳐들고 있었다.
검은 한순간만 움직였다. 그리고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보라! 열여덟 개의 마신상이 모두 반으로 갈라져 누워 있지 않은
가?
"이… 이럴 수가?"
하운비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살을 꼬집어 확인해 보
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 십팔마신상을
베어 버리다니?
반 토막 나 널려진 마신상!
그것과 함께 잘려 누운 것이 있었다.
쾌검(快劍)! 누가 이 자리에서 쾌검을 말하겠는가?
하운비는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 그가 움직이는 것을 막는 것은
없었다.
"아아, 나도 모르게 검을 써서 검진을 파괴하다니… 그림자 한 줄
기 없는 가운데 검초를 사용하다니!"
하운비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거기 글이 적혀 있었다.
<걸어 나오는 자는 바로 대천검(大天劍)의 일 결(訣)을 얻은 자이
다!
바로 무영검법(無影劍法)!
그것이 어떤 것인지 걸어오는 사람만이 알리라.>
역시 사마충이 쓴 글이었다.
"내가 무영지검을 얻었단 말인가?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한데… 기오막측한 초식을 쓴 것도 아니고, 내공을 쓴 것도 아
닌데!"
그는 넋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사실, 이 순간의 경험은 그의 무공의 뿌리를 흔들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무성궁에서 전래된 절기, 그것은 기(技)가 아니라 도(道)였다. 하
운비는 초(招)를 익힌 것이 아니라, 심(心)을 얻은 것이다.
정신보다도 빨리 움직이는 검, 그것은 이제 상대가 있어야 제 위
력을 나타낼 것이다.
죽일 것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 수법!
베어지는 것이 있어야 빨리 나아가는 검초!
그것이 바로 대형지검(大兄之劍)이라 불리는, 그림자 없는 검법이
었다.
끼이익-!
하운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반 넘게 열리는 찰나, 갑자기 눈앞으로 수많은 채대가 날아
들었다.
휘휙- 휙-!
채대는 나비 떼같이 흩날렸다.
환중환(幻中幻)!
하운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되어 눈을 꼭 감았다. 본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느낌!
그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가서는 것들…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하나 하나 일정한 방
향도 없이 제멋대로 날아드는 천 조각들.
하운비는 일순간 마음을 잃어버렸다. 마음이 텅 비며 모든 것이
거기 담겨졌다. 오 장 안에 있는 미세한 먼지 하나의 움직임조차
느껴졌다.
"차아앗-!"
하운비는 녹슨 고검을 쳐들며 마음이 흐르는 대로 검을 그어 댔
다.
스슥- 슥-!
묵적광(墨赤光)이 무지개처럼 피어 올랐다. 그것은 찰나지간 방
안을 뒤덮었다가는 사라졌다.
하운비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몸 주위에는 반으로 잘린
천 조각이 수없이 떨어져 있었다.
한데, 천으로 보인 것은 사실 나방이었다.
흡혈독접(吸血毒蝶). 피를 빨아먹으며 백 년을 산다는 운남(雲南)
의 독물(毒物)이고, 불에도 타지 않고 도검에도 잘리지 않는 지독
한 해충이었다.
흡혈독접의 수는 천(千)에 달했다.
"아아, 나는 단지 일점천(一點天)했는데… 어이해 검기가 흩어져
천 곳이 동시에 베어졌단 말인가!"
하운비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영지검이 가르쳐 주는 것은
그의 의식에 새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본능(本能)에 새겨지
고 있었다. 하운비가 알려 해도 알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
다.
그것은 본시 알 수 없는 신검지학(神劍之學)이니까.
하운비는 환(幻)마저 얻은 셈이었다.
중(重)!
그 시험은 출구에 있었다. 십만 관(貫) 철강암(鐵 岩)이 문을 막
고 있었다.
그리고 주서(朱書)되어 있었다.
<중검(重劍)으로 파(破)하면 나가리라!
중(重)하지 않다면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파괴가 되지 않는다면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검초를 얻은 사람이라 할 수 없고, 그대와
나와의 인연도 끝나는 것이다.>
사마충의 글은 몹시 진중했다.
"정말 어렵소이다. 어이해, 검도 천 년 간 아무도 얻지 못한 형의
심검(形意心劍)을 내가 얻어야 한단 말이오?"
하운비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영지검이라는 것! 그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하다고 알려진
형의심검도(形意心劍道)였다. 그것은 이심발검(以心發劍)을 능가
한다.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 검은 이미 나아간다.
검형(劍形)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백 년 넘게 검술만
익힌 노검사(老劍士)라 해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고금제일검(古今
第一劍)이기도 했다.
⑭
살수마영(煞手魔影)!
그 이름은 아직도 죽은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은 마마맹의 태상
호법으로 건재해 있었다.
사마충은 하운비의 얼굴을 새삼 바라봤다. 과거, 모태랑(毛太郞)
이 자세히 살피듯이.
꽤 시간이 흘렀다. 사마충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달라질 것은 없소!"
그의 목소리는 전에 비해 보다 침착했다.
"달… 달라진 것이 없다니요?"
"살수마영이 아니라, 마마대공(魔魔大公)이라 해도 하는 수 없는
일이오. 이미 그대는 사마대장원의 모든 것을 차지한 사람이 된
것이오!"
"아아, 너무하십니다. 어이해, 저를 궁지로 모십니까?"
하운비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사마충은 그 표정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비애를 아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과거에 살수마영이었는지 모
르나, 지금 이 사람은 천하를 구할 사람이다.'
사마충은 모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더 넙죽 절을 했다.
"제가 죽기를 바라지 않으신다면, 저를 거둬 주십시오!"
"장주, 차라리 제게 명해 주시오. 화혼낭자로 인해 진 빚을 갚기
위해, 장주를 위한 청부고수(請負高手)가 될 테니!"
하운비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헛헛… 그럼 해결된 셈입니다. 헛헛… 양녀(養女) 화혼을 납치한
빚을 갚아 주십시오. 그 빚은… 헛헛, 저의 주공(主公)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그렇게 하리다!"
하운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대장원의 모든 것은 이 순간으로 그의 물건이 된 것이었다.
"주… 주공!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소. 사실 화혼에게 박하게 한
이유도, 주공이 나타나실 경우 파풍무영검과 더불어 황금 일억 냥
을 기증하기 위함이었소. 아아,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외다!"
사마충은 조금 허탈해했다.
"장주! 어서 해법을 말하시오."
"사마대장원이 정말 얼마나 엄청난 곳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마충은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는 벽으로 다가가 손을 댔다.
한순간 벽이 요동치며 옆으로 물러났다. 이제껏 벽으로 보였던 곳
에서 문이 만들어지면서 아래로 향한 계단이 보였다.
"먼저 드시지요!"
사마충은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알겠소!"
하운비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계단 세 개를 밟았을 때, 사마충이 갑자기 손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펑-!
바닥에 있던 파풍무영검이 떠올라 계단 쪽으로 날아갔다.
"어… 엇!"
하운비가 검세를 느끼고 휘청일 때, 사마충이 돌연 벽을 후려쳤
다.
꽈르르릉-!
우레 소리가 나며 통로가 우르르 허물어졌다.
"이… 이게 무슨……?"
하운비는 영락(永落)의 순간을 맛보며 크게 소리쳤다. 사마충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렸다.
"해독약을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헛헛, 마마맹 놈들은 저를 죽이
려는 것이 아니라 잡아 종으로 부리려 하는 것입니다. 헛헛, 놈들
을 찾아가 해독약을 넙죽 받아 먹으면 되는 것이지요. 헛헛……!"
꽈르르릉-!
우레 소리가 나며 목소리가 사라졌다. 석옥은 완전한 기관이었다.
그것 역시 기환편에 적혀 있던 것이리라!
"만리향(萬里香)을 쓸 때다! 훗훗……!"
사마충은 뒷짐을 지고 비틀비틀 걸었다.
'마마맹 천하는 오래 갈 수 없다. 노부가 주공을 잘 받든다면, 천
하무림계가 평정될 것이다. 이것은 노부의 소명이 아니겠는가?'
사마충은 코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패혈천마고독에 대한 부운화타경의 설명은 헛것이 아니었다. 해법
은 단둘, 일지심인공이나 해독약을 먹는 것이다.
사마충은 두 번째 방도를 택한 것이었다.
⑮
아주 너른 석부(石府)가 있다. 그 안은 사람이 기거하는데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벽에는 야광주가 박혀 있어 언제나 낮인데.
<세 가지 검도(劍道)를 얻은 다음에야 문이 열림!>
누가 썼는지 모를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옷자락을 매
만지며 글을 읽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구결을 외울 것! 그 다음 세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함. 세 가
지 모두를 통과하면, 바로 무영지검(無影之劍)을 얻었다 할 수 있
음.>
글을 보는 사람은 하운비였다.
"지하에 연공관을 지어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하운비는 계단이 무너짐에 따라 밑으로 내려왔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무로검관(無路劍關)>
사마대장원의 진짜 비밀은 바로 이 장소였다. 하운비는 사마충의
얼굴을 기억했다.
"정말 고집쟁이 노인이다!"
그는 검을 쳐들었다. 검 위에는 사마충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사마충은 그것을 평생 지니고 있었으나, 단 일 성(成)밖에 얻지
못했다. 그는 무림제일인이 될 근골(筋骨)은 아니었다. 그는 그것
을 알고 연공관 하나를 짓게 되었다.
천룡(天龍)!
그는 천룡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운비는 그의 눈에 천룡으로
보였다. 사마충은 그래서 하운비를 무로검관에 빠뜨렸던 것이다.
'부마동부로 나의 고행이 다한 줄 알았는데…….'
하운비는 정좌를 했다. 그는 일단 십이주천 운기행공에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데, 어디에선가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흘러드는 것이 아닌가?
탁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그 위에 금합(金盒)이 있었다. 향기
는 그 안에서 흘러 나왔다.
하운비는 조식하기 이전, 향기의 출처를 향해 접근해 갔다.
"이렇게 유혹적인 향기가 있다니!"
하운비는 금합을 내려다봤다. 뚜껑이 잘 닫혀 있는데.
<천년설련실(千年雪蓮實)이 들어 있으니, 식량으로 대신하기 바
람. 물은 탁자 아래 샘에서 얻고…….>
역시 사마충의 배려였다. 하운비는 천년설련실이라는 말에 크게
놀랐다.
'북천산(北天山)의 만년설(萬年雪) 아래에서만 자라고 있는 천년
설련실이란 말인가?'
그는 금합 뚜껑을 열어 봤다. 안에는 살구만한 과실이 가득했다.
황금빛 과실!
선인(仙人)이라도 그것을 식량으로 삼지 못한다. 너무 희귀한 것
이기 때문이다. 한데, 사마충은 천년설련실을 일백 개나 모아 두
었던 것이다.
백 일(日)!
그는 백 일이면 천룡이 검을 얻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니, 백 일 안에 검을 얻지 못하면 천룡이 아니다. 백 일 넘게도
검을 얻지 못한다면, 안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운비는 허기진 김에 천년설련실을 하나 취해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맛은 아주 훌륭했다. 그는 허기진 김에 설련을 다섯 개나 쉬지
않고 먹었다. 그는 오 일 간 먹을 식량을 한 번에 소모한 셈이었
다.
뱃속이 뜨거워지며 내외상 자리가 스르르 낫기 시작했다.
"약효가 상상 이상이다!"
하운비는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았다.
조식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의 진원지기(眞元之氣)는 천년
설련실 덕에 전에 비해 뒤떨어짐이 없이 충만하게 되었다.
그는 무영지검 위에 적힌 구결을 읽기 시작했다.
<쾌(快)를 넘어라!
환(幻)보다 변화막측해야 하며, 중(重)은 천지(天地)의 무게만 해
야 검을 얻었다 하는 것이다.>
검결은 하운비가 알고 있는 어떤 술법보다도 오묘했다.
쾌를 넘는 쾌속!
환(幻)을 능가하는 변화(變化)!
천지의 무게보다 더한 장중함!
세 가지를 다 얻는 것이 바로 무영지검을 얻는 길이었다.
하운비는 구결을 쉽게 외울 수 있었다. 묵룡여의진결과 일맥상통
하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오 주야(晝夜) 후.
하운비는 첫번째 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신상(神像)이
여럿 있었다. 신상이라고 하기보다 마귀상(魔鬼像)이라 해야 좋을
것이다.
열여덟 개의 마신상!
그것은 하나의 검진을 형성했다.
천축국(天竺國) 소뢰음사(少雷音寺)!
오래 전에 사라진 천축의 명파(名派)가 소뢰음사이다. 마신상이
이루는 검진은 소뢰음사의 수호검진이었다.
십팔윤회마검대진(十八輪廻魔劍大陣)!
마신상은 각기 다른 검결을 취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검을 비스듬히, 어떤 것은 검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하운비는 정중앙(正中央)에 우뚝 섰다.
그 순간, 검진이 형(形)이 아닌 무형(無形)으로 발동되었다.
"대단하다!"
하운비는 몸이 사분오열되는 고통을 맛봤다.
'무형지물(無形之物)이 나를 옭아매다니!'
그는 손도 꼼짝할 수 없었다.
열여덟 줄기의 검기가 그를 휘감았다. 신기한 것은, 움직이지 않
는 한 그를 베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검진은 하나의 진세(陣勢)였다. 사마충의 역작 중 하나이고, 바로
기환편(奇幻編)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었다.
웅웅……!
검명(劍鳴), 그리고 하운비의 콧등에 땀방울이 맺힌다. 하운비는
정지되어 있었다. 그는 검초를 되풀이해 생각했다.
무영지검은 그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못했다.
- 빠르게 쳐낸다. 그림자(影)도 남기지 않고. 따라서 무영검(無
影劍)이다!
검결은 그 정도로 설명을 그쳤었다.
하운비는 일잔혈검(一殘血劍)을 기억했다.
살수로서의 습관이 남은 탓일까? 손끝이 저절로 꿈틀거리는데, 바
로 그 순간 사위(四圍)가 무형검막(無形劍幕)에 가로막히며 온몸
이 저릿저릿했다.
'움직여서는 안 된다.'
하운비는 숨을 멈췄다.
스슥- 슥-!
빗발치듯 다가서는 검기들!
그냥 서 있다는 것은 무리였다. 사람인 이상 도망치고 싶은 마음
이 나게 된다. 하운비는 빠져 나가야 한다는 유혹을 느꼈다.
하나, 그는 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츠츳츳-!
검진은 더욱더 강해졌다. 하운비의 땀이 더욱 끈끈해졌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운비는 정신을 한데 모으고 오랜 시
간을 지낸 탓에 약간의 공허감을 느꼈다.
의식이 찰나지간 사라지는데, 그 순간 하운비는 검진에 빠진 이후
느끼지 못했던 신비한 허탈감을 맛봤다.
"엇!"
하운비는 둥둥 뜨는 기분을 느끼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그 순간.
우르르릉- 꽈꽝-!
열여덟 자루 검이 다시 그의 진퇴를 봉쇄했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하운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왜 허탈감이 느껴졌을까? 텅 빈 곳으로 되돌아간 듯한 공허감은
어이해 나온 것일까?'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 순간, 그의 머리를 후려치는 깨달음
이 있었다.
'마음마저 멈춰야 한다!'
하운비는 신비영주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 심(心)을 죽여야 살(煞)이 더욱 커진다!
그것은 살기를 숨기고 자존심을 허물어뜨리라는 가르침이었다. 한
데, 그것이 이 장면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지 않는가?
'진은 움직임에 따라 일어난다. 진을 중단시키려면 몸이 움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하운비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는 마음을 완전히 풀어 놓
기 시작했다. 자아(自我)마저 천천히 망각되었다. 그는 공허 속으
로 정신을 내던져 두었다.
하운비라는 것!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그는 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어디일까? 사방이 완벽하게 갇혀진 곳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둔팍한 소리가 났다. 가끔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빛이 차단된 방 안, 누군가 앉아 각도(刻刀)를 쓰고 있었다.
팍-!
나무가 깎여 나가는 소리.
나무 조각이 사람 얼굴로 변화되고 있었다.
팍- 팍-!
조각도는 아주 섬세히 움직였다. 그것은 신이라도 행하지 못할 정
도로 정교한 손놀림이었다. 깎여진 얼굴은 수백 개인데, 모두 한
가지였다. 그 얼굴은 아주 무정(無情)해 보였다. 그 얼굴에는 정
(情) 뿐만 아니라 심(心)도 담겨 있지 않아 보였다.
그 얼굴, 바로 하운비의 얼굴이었다.
하운비는 조각같이 서 있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의 뇌리를 깨어 보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마음을 풀어(解) 버린 것이었다.
텅 빈 마음, 그것은 태초(太初) 이전(以前)의 공허지경(空虛之境)
이라 할 수 있었다. 하운비는 아주 오랫동안 망아지경에서 모든
것을 잊고 지냈다.
어느 순간부터일까?
아니, 어느 한순간 그의 의식(意識)이 되살아났다. 바로 그 순간,
하운비의 마음과 함께 잠들었던 검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열여덟 줄기 검강이 다가서는데.
"찻-!"
하운비는 저도 모르게 검을 쳐들고 있었다.
검은 한순간만 움직였다. 그리고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보라! 열여덟 개의 마신상이 모두 반으로 갈라져 누워 있지 않은
가?
"이… 이럴 수가?"
하운비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살을 꼬집어 확인해 보
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직여 십팔마신상을
베어 버리다니?
반 토막 나 널려진 마신상!
그것과 함께 잘려 누운 것이 있었다.
쾌검(快劍)! 누가 이 자리에서 쾌검을 말하겠는가?
하운비는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 그가 움직이는 것을 막는 것은
없었다.
"아아, 나도 모르게 검을 써서 검진을 파괴하다니… 그림자 한 줄
기 없는 가운데 검초를 사용하다니!"
하운비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거기 글이 적혀 있었다.
<걸어 나오는 자는 바로 대천검(大天劍)의 일 결(訣)을 얻은 자이
다!
바로 무영검법(無影劍法)!
그것이 어떤 것인지 걸어오는 사람만이 알리라.>
역시 사마충이 쓴 글이었다.
"내가 무영지검을 얻었단 말인가? 내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한데… 기오막측한 초식을 쓴 것도 아니고, 내공을 쓴 것도 아
닌데!"
그는 넋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사실, 이 순간의 경험은 그의 무공의 뿌리를 흔들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무성궁에서 전래된 절기, 그것은 기(技)가 아니라 도(道)였다. 하
운비는 초(招)를 익힌 것이 아니라, 심(心)을 얻은 것이다.
정신보다도 빨리 움직이는 검, 그것은 이제 상대가 있어야 제 위
력을 나타낼 것이다.
죽일 것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 수법!
베어지는 것이 있어야 빨리 나아가는 검초!
그것이 바로 대형지검(大兄之劍)이라 불리는, 그림자 없는 검법이
었다.
끼이익-!
하운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반 넘게 열리는 찰나, 갑자기 눈앞으로 수많은 채대가 날아
들었다.
휘휙- 휙-!
채대는 나비 떼같이 흩날렸다.
환중환(幻中幻)!
하운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되어 눈을 꼭 감았다. 본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느낌!
그는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다가서는 것들…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하나 하나 일정한 방
향도 없이 제멋대로 날아드는 천 조각들.
하운비는 일순간 마음을 잃어버렸다. 마음이 텅 비며 모든 것이
거기 담겨졌다. 오 장 안에 있는 미세한 먼지 하나의 움직임조차
느껴졌다.
"차아앗-!"
하운비는 녹슨 고검을 쳐들며 마음이 흐르는 대로 검을 그어 댔
다.
스슥- 슥-!
묵적광(墨赤光)이 무지개처럼 피어 올랐다. 그것은 찰나지간 방
안을 뒤덮었다가는 사라졌다.
하운비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몸 주위에는 반으로 잘린
천 조각이 수없이 떨어져 있었다.
한데, 천으로 보인 것은 사실 나방이었다.
흡혈독접(吸血毒蝶). 피를 빨아먹으며 백 년을 산다는 운남(雲南)
의 독물(毒物)이고, 불에도 타지 않고 도검에도 잘리지 않는 지독
한 해충이었다.
흡혈독접의 수는 천(千)에 달했다.
"아아, 나는 단지 일점천(一點天)했는데… 어이해 검기가 흩어져
천 곳이 동시에 베어졌단 말인가!"
하운비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영지검이 가르쳐 주는 것은
그의 의식에 새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본능(本能)에 새겨지
고 있었다. 하운비가 알려 해도 알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
다.
그것은 본시 알 수 없는 신검지학(神劍之學)이니까.
하운비는 환(幻)마저 얻은 셈이었다.
중(重)!
그 시험은 출구에 있었다. 십만 관(貫) 철강암(鐵 岩)이 문을 막
고 있었다.
그리고 주서(朱書)되어 있었다.
<중검(重劍)으로 파(破)하면 나가리라!
중(重)하지 않다면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파괴가 되지 않는다면
천하에서 가장 무거운 검초를 얻은 사람이라 할 수 없고, 그대와
나와의 인연도 끝나는 것이다.>
사마충의 글은 몹시 진중했다.
"정말 어렵소이다. 어이해, 검도 천 년 간 아무도 얻지 못한 형의
심검(形意心劍)을 내가 얻어야 한단 말이오?"
하운비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영지검이라는 것! 그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하다고 알려진
형의심검도(形意心劍道)였다. 그것은 이심발검(以心發劍)을 능가
한다.
마음이 일어나기 이전, 검은 이미 나아간다.
검형(劍形)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백 년 넘게 검술만
익힌 노검사(老劍士)라 해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고금제일검(古今
第一劍)이기도 했다.
첫댓글 두번 반복되었습니다 잼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중간의 내용이 앞의 장과 중복이 되었네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