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학기 수업진단평가서
수업 과목: 서양 고대 철학
수업 일자: 2012. 03. 29.
이 름: 송혜성
1. 오늘 공부한 학습 주제와 학습내용 중 학습주제를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용어를 5개 쓰시오.
― 본질, 경험, 언어, 인식, 한계.
2. 위의 중요한 용어를 활용하여 학습주제를 200단어의 문장으로 논술하시오.
― “지각을 통해 경험한 인식들이 과연 대상의 실체이고 본질을 가리키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놓고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 첫 번째 시간의 중심 주제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많은 질의문답이 오갔는데, 교수님께서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되는 대상이 반드시 실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라는 맥락의 이야기로, 맹인과 일반인이 ‘빨간색’이라는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의 차이를 통해, 과연 ‘빨간색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반인과 맹인의 차이는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사용할 수 있느냐, 사용하지 못하느냐 입니다. 그런데 ‘색’이란 개념은 ‘눈’이라는 신체기관이 받아들인 빛의 파장을 뇌가 인식하여 구현한 형태입니다. 즉, 맹인은 ‘눈’이란 감각기관을 사용할 수 없기에, 기본적으론 색을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빨간색’은 색의 어떤 한 범주를 가리키는 언어적 표현이기에, 일반인과 같은 방식으로 맹인은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빨간색의 본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또 다른 차원의 전개를 불러옵니다. 기본적으로 물체는 가시광선을 받으면 그것의 일정 부분은 흡수하고 일정 부분은 배출(반사)해내게 되는데, 이 반사광을 뇌가 인식해서 구현해 낸 것이 ‘색’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체적인 수치값을 갖고 있습니다. 물리학에선 가시광선을 약 800 nm에서 400 nm인 전자기파라고 정의하고 있고, 빨간색은 그 가시광선 중에서 파장이 가장 긴 광선입니다. ‘빨간색’ 또한 물리학적 수준의 구체적인 수치값을 갖고 있는 개념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원리로, 어떠한 물체의 빛 반사계수 값을 알면 구체적인 색 수치값을 산출해 낼 수 있기에, 색 분별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일반인이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빨간색 물체를 바라보며 “이 물체는 빨간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맹인은 물체가 가진 빛 반사계수 값과 빨간색이 지닌 파장 값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이 물체는 빨간색이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인식한 ‘빨간색’과 맹인이 인식한 ‘빨간색’이 완벽하게 같다고 말할 수 없지만, 같은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합니다. 단순히 인식의 차원에서 본다면, 일반인과 맹인은 ‘빨간색’이란 개념에 함의된 공통된 특징을 어느 정도 일치된 수준에서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빨간색’을 인식하고 있는 두 일반인을 놓고도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눈’이란 감각기관을 갖고 있고 ‘빨간색’이란 개념을 알고 있다는 전제가 붙어도, 두 대상이 인식하고 있는 ‘빨간색’이 완전히 같은가에 대해선 의심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빨간색’이라는 어휘에는 물리학적인 수치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개념적 특질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사람의 인식 세계에는 그 어휘에 정의된 사전적인 개념 외에도 그 이상의 의미와 정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색을 면밀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화가의 ‘빨간색’과 색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일반인의 ‘빨간색’ 개념은 분명히 다릅니다. 무수한 사람을 죽이면서 피를 봐온 살인마의 ‘빨간색’과 공방에서 항상 화덕의 불꽃을 지켜보는 도예가의 ‘빨간색’ 개념엔 분명한 정서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지칭하는 빨간색과 ‘남’이 지칭하는 빨간색이 다르다는 불일치는 “과연 빨간색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낳았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어떤 대상의 본질’이 완전한 일대일 대응관계에 있지 않고 완전한 동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는 “과연 우리의 언어가 우리가 사유한 관념과 의미를 100% 표현하고 있는가?”와 같은, 한계에 대한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심은 “언어가 사유의 선행조건인가, 사유가 언어의 선행조건인가?”라는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 또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선 언어 없이는 사유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강의를 마무리 지어주셨습니다.
3. 오늘의 학습 내용 중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 형식으로 쓰시오.
―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진리를 규명하는 일에 있어선 현대의 경험주이든 선험주의든 이성주의든 신본주의든 결국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이러한 말들을 듣다 보면, ‘아, 과연 저러한 논리의 흐름을 따른다면 그렇겠구나.’하는 따위의 생각을 갖지 않겠습니까? 즉, 이러한 생각, 우리가 ‘논리’라고 부르는 생각, 뭔가가 타당하다고 타진하는 행동 기제, 이런 것들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철학에서는 ‘논리의 원천⋅근간⋅발생근거’ 따위에 대해 어떻게 논의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4. 오늘의 수업활동에서 재미있었거나 인상적인 것 또는 수업 방법 중 개선을 바라는 의견이 있으면 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