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노래패 꽃다지가 4집 앨범 <노래의 꿈>을 발표했다. 2001년 싱글 음반 <반격>을 발표한 이후 10년 만이다.
꽃다지는 쉬지 않았다
새 음반이 10년이나 나오지 않자 많은 이들은 꽃다지가 활동을 중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꽃다지 민정연 대표는 “꽃다지는 음반을 내지는 않았지만, 지난 10년간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고 손사래 친다.
음반만 내놓지 않았지, 꽃다지는 그동안 40여 곡을 콘서트나 온라인을 통해 발표하고 매년 100여 회의 공연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4집 음반을 내놓으면서 ‘10년 만에 돌아온 꽃다지’라는 타이틀을 멋지게 걸고 싶었지만, 쉰 적이 없어서 그럴 수 없었다”며 농담하는 민정연 대표. 그들이 쉴 수 없었던 이유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데, 어찌나 저희가 만나는 사람들의 세상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지. 저희가 만나는 분들의 현장이라는 건 정말 처참하다. 자기가 어제까지 일하던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담을 넘어야 하는 현실. 지금도 용역이나 경찰들에게 피 흘리면서 두들겨 맞는다. 그게 몇십 년 전 일이 아니라 바로 어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다. 근데 사실은 그게 어느 특수한 사람들의 삶이 아니다. KTX 승무원들이 싸움에 나섰을 때 자신들이 길거리에서 투쟁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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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 |
꽃사람의 지지로 4집 음반 탄생
노동자들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 늘 현장과 함께해 온 꽃다지의 상황도 쉽지 않았다. 새 음반의 작업이 계속해서 뒤로 미뤄진 것이다. 2002년 10주년 공연을 끝내고 2003년부터 새 음반 준비를 시작한 꽃다지. 2004년에는 새 음반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유인혁 프로듀서가 취직을 하면서 현재 정윤경 음악감독이 새 프로듀서로 들어온다.
노래패 새벽에서 출발해 현장 중심의 꽃다지와는 음악 여정이 많이 달랐던 정윤경 감독은 꽃다지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많이 망설였지만, 삼고초려를 통해 2004년 8월부터 함께 작업하게 된다.
꽃다지는 2005년에는 어느 정도 호흡도 맞췄고 새 음반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꽃다지를 가로막았다. 음반 작업을 시작할 즈음 멤버가 교체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의 문제는 돈 문제였다.
꽃다지의 후원모임인 ‘꽃사람’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음반 작업에 필요한 2, 3천만 원의 제작비용 전체를 대주겠다는 제안도 들어왔다. 하지만 꽃다지는 한 사람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다른 노력을 먼저 시도하겠고 그래도 안 된다면 나중에 요청하겠다며 사양한다. 그 제안을 받은 지도 5, 6년이 지났다.
이미 3집 음반 <진주>에서 ‘품앗이 투자’를 통해 500여만 원을 모금해 음반 작업을 했던 꽃다지는 다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 대해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은 꽃다지의 새 음반을 갈망하는 꽃사람이 일을 낸다. 막무가내로 100만 원을 후원계좌에 입금하고, 음반 작업하는 데 쓰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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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 민정연 대표. |
민정연 대표는 “직장생활과 결혼하고 바쁘게 살다 보면 꽃다지를 잊는 분들이 많은데, 스무 살 무렵부터 삼십대가 될 때까지 묵묵히 응원해준 친구다”라며 “우리가 음반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함께 속상해했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다”라고 말했다.
민정연 대표는 이 소식을 트위터로 알렸고 트위터 친구들은 “모금해서 음반 만들어라. 꽃다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라고 용기를 줬다. 4집 음반 <노래의 꿈>은 정말 꿈처럼 태어났다.
10년간 쌓인 노래로 만들어진 <노래의 꿈>에는 그야말로 꽃다지와 함께 한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다. 이전 음반들이 광장으로 나와서 같이 싸우자는 제안을 던졌다면, 이번 음반은 우리네 삶을 들려주고 듣고 난 후의 선택은 듣는 이들에게 맡긴다는 게 변화지점이다. 민정연 대표는 “기존의 꽃다지 노래를 기대했던 이들은 ‘맥이 빠진다’는 반응도 보이지만, 모든 노래를 듣고 난 후에는 ‘울컥했다. 내 삶을 되돌아봤다’는 반응들을 주셔서 나름 성공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한다.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 위로가 되려 해
4집 음반 중에서 주제곡인 ‘노래의 꿈’과 기자가 궁금해한 ‘한결이’란 노래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래의 꿈’의 정윤경 감독이 대학로를 걷다가 ‘연극의 꿈’이라는 연극 포스터를 보고서 노래가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나온 노래다. 민정연 대표는 “평소 노래운동이나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비슷한 노래가 나왔을 수는 있지만, 그 포스터를 안 봤다면 ‘노래의 꿈’이라는 제목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노래의 꿈’은 정윤경 감독이 꽃다지와 공동작업을 하기 3, 4년 전인 2000년 초반에 이미 만들어진 곡이다. 하지만 당시 꽃다지는 ‘꽃다지스러운’ 착한 화법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노래의 꿈’은 묵혀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 홍익대학교 인근 롤링홀에서 콘서트 때 공개를 한다. 이때의 꽃다지는 산전수전을 많이 겪은 상황이었고, 이들에게 날아온 ‘노래의 꿈’은 완전히 다른 곡이 되어 있었다.
민정연 대표는 “노래가 어떤 생명체라고 한다면 참, 속상하겠다. 지들이 좋다고 할 때는 막 부르다가 어느 순간 다른 곡을 선택하고서는 딱 팽개쳐버리고 만다”라면서 꽃다지와 비교를 한다. 노래의 삶도 꽃다지의 삶도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삶인데,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서러운 인고의 세월이 겹쳐져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노래의 꿈’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 살다 가지 내겐 작은 꿈이 있어 그대 여린 가슴에 들어가 그대 지치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려 해
때론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대 행복할 때 때론 그 사랑이 너무 아파 눈물질 때 때론 지난 세월이 그리워 그대 한숨 질 때 그렇게 나 언제라도 그대와 함께하려네
한땐 나와 나의 동료들은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땅으로 그들과 함께했지 그땐 그대들과 난 아름다웠어 비록 미친 세월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다시 한 번 그대 가슴을 펴고 불러준다면 끝까지 함께할 테요.
우리 함께 걷는 이 길이 더 소중해
(2005년 5월 롤링홀에서의 꽃다지 콘서트 실황)
기자가 ‘한결이’란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고 묻자, 민정연 대표는 “결혼도 하지 않은 남자가 궁금해하는 것이 신기하다”며 놀라워했다. 정혜윤 씨가 지은 노래인 ‘한결이’는 딸 한결이 갓난아기 때부터 엄마와 함께 연습실과 공연장을 따라다닌 이야기다. 사실 기자가 감수성이 풍부해서 ‘한결이’에 관심이 간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 편집국장의 딸 이름이 ‘한결’이라서 눈에 띄었다고 고백해 둔다.
정혜윤 씨는 99년 9월부터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부터 꽃다지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 전태일 열사 30주기 무렵 한결을 임신했고, 정혜윤 씨는 노래를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활동한 지 2년밖에 안 되고 이제 막 노래의 맛과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것도 알아갈 때였다.
임신 4개월쯤 민정연 대표가 겁도 없이 ‘공동육아’를 제안한다. 민 대표는 “그때는 뭣도 모르고 젊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지. 다시 그렇게 하자고 하면 절대 못 한다”라며 손을 젓는다. 한결이 태어나고 6개월 무렵 처음으로 한결을 데리고 3.8 여성대회 무대에 오른다.
처음에는 기저귀 가는 법도 몰랐다는 민정연 대표. “정혜윤 씨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제가 한결을 업었는데, 공연 내내 아이가 뒤로 넘어갈까 봐 허리도 펴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아이를 키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결이와 함께 공연장에서 그리고 연습실에서 노래하고 토론했다.
‘한결이’에서는 화법의 변화도 눈에 띈다. 아이와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인데 민정연 대표는 “예전 같으면 여성의 권리 이야기가 노래에 포함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 노래에는 아침 출근 이야기, 공연 이야기로 일상을 담았을 뿐”이라고 소개한다. 마지막 가사처럼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를 소중히 하는 성찰이 담겨 있다.
‘한결이’
1. 늦은 아침 단잠 빠진 너를 깨우며 일어나 출근하자 눈을 뜨라고 꿈결인가 생시인가 눈곱 찬 눈을 뜨며 어리둥절 세수하러 끌려가는 너 늦은 식사 허둥지둥 입엔 한가득 가득 어서 씹어 빨리 씹어 그래도 꼭꼭 씹어 카시트에 꽁꽁 묶여 답답해 짜증 내지만 짜증 낸다 쥐어박는 날 위해 웃는 너 걸음마도 떼기 전에 우린 함께 이 길을 걸었지 세상은 걸음 멈춰 있지만 우린 노래 불렀지
2. 아둥바둥 허둥지둥 연습실 도착해 모든 방이 자기 세상 여기 기웃 저기 기웃 노느라 정신 팔려 실수 연발하지만 모든 노래 따라 불러 작은 꼬마 가수 더운 여름 추운 겨울 거리 거리에서 무대에 선 나를 기다리는 너의 모습 잘 있을까 걱정돼서 자꾸 쳐다보지만 노래 따라 흥에 겨워 춤추고 있는 너 하루하루 네가 커갈수록 많은 세상을 보았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나눴지
3. 늦은 저녁 꾸벅꾸벅 조는 널 깨우며 일어나 집에 가자 눈을 뜨라고 잠에 취해 울어버린 너를 감싸 안으니 어린 마음 힘이 들까 마음이 찡하네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널 닮은 세상 있지만 우리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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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 |
우리는 이슬만 먹는 요정이 아니다
꽃다지는 한국 민중가요계의 대표적인 그룹이다. 한국에서 문화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을 물어봤다. 민정연 대표는 창작자, 유통자, 수용자 간의 원활한 소통이 안 이뤄지는 것을 꼽았다.
민중가요는 음반 가게 이외에도 노동조합의 문화부장, 가수들을 섭외하는 사람들도 중요한 유통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민정연 대표의 생각이다.
민정연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문화운동하는 사람들을 이슬만 먹는 요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섭외하실 때 ‘우리 사정 어려운 거 알지? 그냥 와줘’라는 말을 제발 쉽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투쟁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 때 천만 원 단위로 대중가수들을 부르는 경우를 보면 “어이가 없다”는 말로 분노하기도 했다.
꽃다지는 문화운동을 하는 후배들의 미래까지 고민하고 있다. 자신들이야 10년 이상 활동해오면서 문화운동에 대한 홀대를 그냥 감수할 수도 있다 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음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문화운동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민정연 대표는 “사실 우리가 노래에 집중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생계는 해결할 수 있다”며 “하지만 꽃다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선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정체성에 맞지는 않지만 공연비를 많이 주는 곳에서 공연하거나, 원하지 않는 정당의 선거 로고송을 제작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도, 꽃다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원하지 않는 일일 것”이라면서 꽃다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후원에도 관심을 보여주기를 부탁한다.
반주곡 좀 부탁하지 마세요
두 번째 문제는 수용자 간의 소통 문제인데, 민정연 대표는 수용자들의 주체성 부족을 문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반주곡 요청의 증가다.
민정연 대표는 “과거의 수용자들은 적극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악보나 반주곡을 요청하는 일이 없었다. 스스로 음반을 듣고 악보를 그리고 반주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반주곡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전화를 해온다는 것이다.
민정연 대표는 “꽃다지의 반주곡은 꽃다지 가수들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라며 “획일적으로 일반 노래패들이 꽃다지의 반주곡을 가지고 노래 부른다면 문화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노래패의 역량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일반 노래패 활동을 하는 이들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꽃다지도 이를 의식하는지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한 달에 한 번씩 ‘꽃다지 스킨쉽’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배우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민정연 대표는 “가을 이후 공연 일정이 많아져서 두 번만 했지만 앞으로 시간을 내서 계속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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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지의 연습실. |
내일을 잃어버린 노동자의 눈빛
민정연 대표는 꽃다지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서울역 광장에서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한 공연이었다고 떠올린다.
아이엠에프가 대한민국을 휩쓸던 98년 여름, 당시로써는 보기 어려운 4년이 넘는 장기투쟁을 벌여온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서울역에서 노숙 투쟁을 진행 중이었다. 꽃다지가 매주 수요일 진행하던 실업극복 문화한마당에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고, 수요일 당일 만나기로 했다. 무대 세팅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노동자들은 오지 않고 100여 명의 노숙인들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민정연 대표는 삼미특수강 해고노동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언제 오는지를 물었는데, 노숙인들이라고 봤던 무대 앞의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민정연 대표는 “제가 그들을 노숙인으로 착각한 것은 그들의 입성이 허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희망 없는 눈빛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장기 투쟁을 하면서 동료는 떠나가고, 가족은 낯설어지면서 그들은 목표를 잃어버린 눈빛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의 노동 현실을 개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빛이 그러하지 않을까? 민정연 대표는 한국 노동운동계에도 쓴소리를 던진다. “노동운동이 정말 어려워져서 비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비정규직 싸움에 연대한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싸움이 둘로 나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싸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꽃사람은 우리의 충전기
꽃다지의 이름 앞에는 ‘희망의 노래’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희망을 전하는 노래패이지만 그들의 희망도 바닥날 때가 있다. 민정연 대표는 “희망이 방전되지 않도록 충전해주시는 분들이 꽃사람들”이라고 고마워한다. 이들의 “노래 잘 들었어요. 이 노래는 잘 모르겠네요. 그 노래 듣고 울었어요”라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희망이라는 것이다.
꽃다지의 구성원들은 노동자들의 눈빛에 희망을 담아주고자, 꽃사람의 응원을 먹고 오늘도 노래 부른다. 민정연 씨는 “우리 스스로 행복할 때 그 순간까지 열심히 노래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홈페이지: http://ihopeso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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