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9)] 추어탕, 가을 보약 한 그릇 대령이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1.10.17
우선 제철이 여름인지 가을인지부터 헛갈린다. 흔히 여름철 땀을 많이 흘릴 때 추어탕 한 그릇 하면서 "시원하다"고 이야기한다. 여름 보양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추어의 '추鰍'는 물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의 합성어다. 추어는 '가을 물고기'이니 추어탕은 가을 음식인 셈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미꾸라지를 먹었다. 이미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고려 풍속에 양과 돼지가 있지만 왕공이나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고 하고 미꾸라지를 예로 든다.
그러나 그뿐 '추어탕'에 대한 기록은 쉬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미꾸라지는 좁은 세상에서 살면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하찮은 미물로 묘사된다.
19세기 초 서유구의 <난호목지>에 드디어 미꾸라지는 제 모습을 보인다. 이름도 버젓이 한글로 '밋구리'라 하고, "살은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이야기한다. 미꾸라지가 드디어 별미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50년 쯤 뒤인 19세기 중엽 무렵에 출간된 오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미꾸라지는 '추두부탕鰍豆腐湯'이란 이름으로 '정식' 데뷔한다. 내용도 오늘날의 추어탕 혹은 추탕과 흡사하다.
미꾸라지를 잡아서 진흙을 토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과 동일하나 미꾸라지를 두부와 더불어 솥에 넣고 불을 지피고, 미꾸라지가 두부로 피신(?)하면 그걸 끄집어내서 자르고 다시 두부 전을 붙인 다음, 메밀가루를 넣고 끓인다는 내용은 오늘날의 추어탕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한양 도성의 반인(泮人)들이 즐겨 먹는다고 상세히 부연한 것을 보면 당시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먹었고 한양 도성에서는 천민들이 즐겨먹었음을 알 수 있다. 반인은 성균관에 노역하던 천민집단으로 성균관 부근의 반촌(泮村)에 살았고 성균관의 쇠고기 공급도 맡았다. 이들은 조선 후기 소의 매점매석 등 각종 폐단도 저지른다.
일제강점기의 <해동죽지>에는 "서리가 내릴 무렵 두부를 만들어 이것이 미처 응고되기 전에 추어를 넣고 다시 눌러서 굳게 하여 얇게 썰고 생강, 천초를 넣고 가루를 섞어 삶는다"고 했으니 처음으로 추어탕은 가을철 음식임을 보여준다.
조선 말기, 일제강점기에 서울의 경계지역이었던 청계천의 걸인집단에서 추어탕을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떠돌지만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1930년부터 서울에는 지금도 유명한 추탕집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추어탕이 상업화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지금은 상명대학교 부근에 자리한 '형제추탕'은 1930년 동대문 밖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창업자에게 아들이 많아서 '형제추탕'이라 불렀고 일제강점기에는 랜드마크 노릇을 했다. 즉, "형제추탕 앞에서 싸움났다"고 하면 모두 알아들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당시 제법 그럴듯한 운동회에 '형제추탕' 깃발을 들고 참석한 사진이 남아 있다. 지금도 '형제추탕'은 국산 미꾸라지를 사용하고 맛이 칼칼한 서울식 추탕을 끓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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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추탕
1932년 '용금옥'이 문을 열었다. 당대 경성의 정치, 문화, 경제계의 모든 저명인사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던 집이다. 북한 부수상 박성철이 남북회담 차 서울에 왔다가 '안주인의 안부'를 물었던 집이고, 월북한 전 고려대 교수이자 김일성의 통역관이었던 김동석도 '용금옥의 안부'를 물어서 더 유명해진 집이다.
1933년 '곰보추탕'이 문을 열었다. 지금 주인은 창업자의 며느리로 이미 40년 이상 추탕국솥에서 매일 추탕을 끓여내고 있다. 전형적인 서울식 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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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추탕
'서울식 추탕'은 '남도식 추어탕'과 달리 통 미꾸리를 사용했으나 지금은 미꾸리를 구하기 힘들어 대부분 미꾸라지를 사용하고 이름도 '추탕'과 '추어탕'이 혼용되고 있다.
영호남의 남도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사용하고 된장 국물을 육수로, 배추 우거지나 속대 정도를 사용하고 산초로 비린내를 제거하나 서울식 추탕은 14가지의 재료가 들어갈 정도(곰보추탕)로 화려하다. 양지살 등을 곤 쇠고기 육수에 쇠고기, 계란과 두부, 유부, 고사리, 대파, 양파 등 여러 가지 채소를 넣고 끓인 화려한 육개장 스타일이다. 특히 서울식 추탕은 고춧가루를 사용하여 그 맛이 칼칼하여 해장국으로도 참 좋다.
남도식 추어탕 맛집으로는 서울 덕수궁 옆의 '남도식당'과 여의도의 '구마산'을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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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식당 추어탕
지방에서는 강원도 원주 원주고교 앞의 '원주복추어탕'과 대구 대구백화점 뒷골목의 '상주식당' 전북 남원의 '새집' 등을 손꼽는다. 대부분이 업력이 깊은 노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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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복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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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새집 추어탕
■추어탕 유명한
곰보추탕: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767-6/02-928-5435/일요일 휴무/11:00-21:00/주차장 있음
형제추탕: 서울 종로구 평창동 281-1/02-919-4455/명절 휴무/09:00-21:00/주차장 있음
용금옥: 서울 중구 다동 165-1/02-777-1689/2, 4 일요일, 명절 휴무/10:00-22:00/주차장(유료)있음
남도식당: 서울 중구 정동 11-4/전화없음/공휴일 휴무/11:30-21:00/주차장 없음
구마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43. 미원빌딩 2층/02-782-3269/일요일, 명절 휴무/11:30-22:00/주차장 있음
상주식당: 대구 중구 동성로 2가 54-1/053-425-5924/명절과 1, 2월 휴무/09:00-20:30/주차장 없음
원조복추어탕: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 406-13/033-763-7987/명절당일 휴무/09:00-22:00/주자창 있음
새집: 전북 남원시 천거동 160-206/063-625-2443/연중무휴/09:00-21:00/주차장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