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민주당이 이겼다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민주당이 집권하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각 나라마다 정당체제와 선거제도, 정치문화 기타 등등의 배경이 다르고 선거에서 문제되는 이슈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건이 국제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굉장히 흔하고, 이는 유사한 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①탈냉전은 한국과 대만에서 권위주의 독재 정부의 붕괴를 낳았습니다. 나아가 워싱턴 컨센서스 및 동아시아 금융위기로 대표되는 1990년대의 국제경제는 기존에 발전국가 체제에서 우위를 구축한 보수 집권당의 기반을 강하게 흔들었고, 한국과 대만, 일본에서 드물게 기성 보수당 이외 정당이 집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②한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한 2020년에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한국과 뉴질랜드에서는 정부가 효과적인 방역 정책을 선보임에 따라 집권당이 총선에서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③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은 러시아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던 유럽 극우정당이 한동안 대중적 지지를 잃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비록 영국(의회제, 소선거구제) 프랑스(준대통령제, 결선투표제), 독일(의회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 서로 다른 정치제도를 택하고 있지만, 이들 3국이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가지고 상당부분 유사한 사회 구조를 공유함에도 집권당의 성향이 동일한 적이 흔히 없다는 것은 제법 흥미로운 점입니다.
그렇다면, 영-불-독의 집권당이 같은 성향이었던 때는, 보수당 캐머런 내각(2010-2016)- 대중운동연합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 기민련 메르켈 총리(2006-2021)이 병존한 약 1년 반이 마지막입니다.
좌파의 경우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2차대전 전후로 단 한 번도 없습니다. 2차대전 이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총리만 배출하면 관대하게 집권한 것으로 봐준다면 램지 맥도날드 총리(1924, 1929-1935) - 공화사회당 브리앙 총리(11차 내각, 1929. 7.29.-11.3.) - 헤르만 뮐러 총리(1928-1930)가 동시에 재임한 약 100일 정도가 가장 최근입니다.
그나마 프랑스에서 보수 공화국연합 시라크 대통령 시기, 좌파 사회당이 총선에 승리해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배출한 동거정부 시기를 좌파 집권기로 본다면 노동당 블레어 총리(1997-2007) - 사회당 조스팽 총리(1997 - 2002) - 사민당 슈뢰더 총리(1998-2005)가 동시에 집권했던 1998-2002년도 이에 해당한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 독일 사민당의 16년만의 재집권과 2024년 7월 4일로 예정된 영국 총선은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보수당이 14년간 장기집권을 했지만, 주요한 정책 실패와 유권자의 피로감이 가시화되면서 노동당의 정권 교체가 가시화되고 있거든요. 이코노미스트의 결과 예측 모델에 따르면, 7월 2일 기준 영국 하원 전체 650석 가운데 노동당이 431석, 보수당이 109석, 자유민주당이 48석, 영국독립당이 22석, 영국개혁당이 2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2019년 크리스마스 총선에서 200석을 겨우 넘기며 참패한 노동당의 성적표를 갱신하는 기록이자, 근 200년을 통틀어 토리당 최악의 성적입니다.
그런데 이번 6월 프랑스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개헌 이후 처음으로 하원을 해산하면서, 새로 실시되는 총선에서는 지금보다 집권당의 의석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이 총리를 배출할 수 있는 단독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의회 해산은 집권당의 유럽 의회 선거 패배 이후 국정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집권당의 부진과 함께 종래 집권당에 협조적이었던 정통 우파 공화당 내에서 현 시오티 대표(직위 상실 후 법원 가처분으로 회복)를 중심으로 국민연합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대두되면서, 오히려 총리직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구체적으로 프랑스 하원의원선거는 결선투표제로 운영되는데, 1차 투표에서 최다득표자가 유권자수 25%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하면, 유권자수 12.5% 이상의 득표 후보 또는 2위 후보와 2차 투표를 치르는 방식의 제도입니다. 6월 30일 치루어진 1차투표에서 76석이 당선이 확정된 가운데, 그중 38석은 극우 국민연합, 32석은 좌파 선거 연대 신인민전선 당선자가 각각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국민연합이 선전하는 경우 단독과반(혹은 우호적인 일부 공화당 의원 의석 합산 과반)을 차지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이렇게 근 100년만의 3국 좌파 동시 집권이 좌절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300년 전 껄무새의 명언이 떠오릅니다. 역시 정치에서는 확언과 단정만큼 쓸모 없는 게 없군요
첫댓글 개인적으로는 영국은 보수 장기집권+브렉시트로 난민, 이민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에 좌파가 집권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난민 문제 직격탄 쳐맞아 우파, 극우가 약진하고 있는 프랑스, 독일과의 차이점이 보여요
이민 문제가 모두 난민 문제는 아니죠. 시리아 난민 문제는 이제 10년 전이 다 되어 가고, 유럽의 극우 정당은 이제 이민문제뿐 아니라 도농 갈등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정치 변동을 남북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럽 정치를 해석할 때 이민 문제에만 집중하는 scope는 오히려 설명력이 낮아 보입니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건 없군요ㅋㅋㅋ 정말 예측할 수 없습니다 ㄷㄷ
ㄹㅇ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