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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멸망시킨 당은 신라마저 삼키려 상주쪽으로 군사를 보내길 원했다
설인귀는 대신라 전쟁의 총사령관이고 실제전투는 소장방이 맡았다
하늘재 넘어서 당군이 함창 일대 까지 진출했다
삼국유사는 김유신이 꾀를 내어 소정방을 살해 했다고 한다
한편 당은 융성해진 토번을 상대하기 버거웠다
또한 백제 고구려인도 나당 전쟁에서 신라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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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교(때다리)
함창 윤직사거리에서 점촌 버스정류장 가는 길 상주시와 문경시의 경계지점에 조그마한 냇물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당교인데 지금은 새길 이 난 도로 밑에 콘크리트 다리가 때다리(당교)가 있었던 자리이다
함창 윤적2리 지역명을 당교라고도 하고 문경시 도로명에도 나타난 이곳이 1,362년(660년)전 나당 연맹으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신라와 합심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약속을 어기고 신라마저 삼키려 수만 명의 군사가 모전천 수로 근처에서 진영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김유신은 승리를 환영하는 의미로 잔치를 베풀어 술에 짐독(새의 깃털에서 나온 독)을 넣어 몰살시킨 뒤 이곳에 묻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을 남기게 된다
혹자들은 소정방도 이곳에서 죽어 어딘가에 묻혔다고 이야기가 전해진다
되놈(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 묻힌 자리 되다리라 불렀던 것이 때다리가 되었고 당교라고도 했다
모전천
모전천
문경시의 노력으로 자연 친화적인 하천으로 변신한 모전천의 봄 활짝 핀 벚꽃의 풍광은 경이롭기까지 한다
수많은 영남인들은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단 채로 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공평 표석골 앞 공평 저류지
김유신 장군 승리의 전승비가 공평 표석골에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동네 이름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문경 시청에 있는 당교사적비
당교사적비
아쉬움을 달래듯 "당교사적비"란 이름으로 함창 윤직사거리 화단과 문경 시청 두 곳에 세워져 있다
중국으로 봐서는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엄청난 역사의 현장을 자그마한 사적비 하나로 대처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먼 훗날 이 지역을 재조명하여 조사 발굴을 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에 잠겨본다
장승백이
임진왜란 때 전사한 장군의 비석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고 하여 장승백이라 부르게 된 마을을 지난다
유곡마을 입구
경상남도 남해에서 시작하여 평안북도까지 잇는 국도 3호선 신작로가 깔리면서 마을과 마을로 연결되었던 영남대로길이 흔적 없이 사라진 길이 많을 것이다
국민학교를 다닌 1963년 기억으로 점촌역 앞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한 버스는 유곡마을을 지나 영강을 끼고 불정역을 지나 꼬불꼬불한 자갈길 이화령을 넘어 수안보 괴산 충주를 거쳐 서울로 가거나 점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김천역에서 환승하여 서울을 갔던 기억이 난다
점촌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모전천을 따라 길쭉한 들판을 거쳐 고려시대 때부터 유곡역이 있었던 유곡에 다다른다
역 : 고려, 조선시대 육로의 길을 30리(12Km) 단위로 끊어 설치했다
부임 퇴임하는 관리, 공문서를 전달하는 사령과 역졸, 과거길의 선비, 조선 통신사, 보부상, 상단, 조운과 공물운송,유람객들의 숙식을 하게 하고 말을 준비해 놓았던 곳이다
점촌 북초등학교 앞 도로 이켠에 자리한 비석거리
주변에 방치되어 흩어진 비석을 1962년 현재의 자리에 19기를 모아 놓았다
관찰사 찰방비 역리비가 14기고 일제강점기 이후의 5기를 진열해 놓았다
[출처] 내 고향 문경 영남대로길을 가다|작성자 백호